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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 가는 시간. 밖에 있던 사람들이 집을 찾아 돌아오는 시간. 나는 그제서 집을 나선다.
옷을 차려 입고 지갑을 챙기고 구두를 꺼내 신고 전철역을 향해 여유를 부리며 걷는 나는, 최소한 차림새만은 누가 봐도 고등학생 차림은 아니다.
저녁 8시쯤의 종로는 오히려 대낮의 종로보다 더 바쁘고 분주하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여기 저기 영어 학원이 무슨 대형 백화점 마냥 번쩍거리며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출입구들이 늘어서 있는 그 사이에, ‘스테이션’이란 카페 간판은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
문을 밀고 들어가자 저 구석 자리에 형민이 혼자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상철인?”
“그 녀석, 연락 안 된다.”
지난 번 패싸움으로 경찰서에 함께 들어갔던 이후로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엔 상철이 아버지가 본때를 보여준다고 단단히 작심했나보더라.”
본때를 보여준다? 본때가 뭔데?
어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다. 중요한 것이 눈에 안 보일 수도 있는건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그럴듯하면 진짜 그 속에 숨어있는 것이 아무리 크고 중요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형민이 말을 코웃음 한방에 날려버리며 상철이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카페에 앉아 담배 몇 대를 피운 후 우리는 홍대 앞으로 향했다. 거기서 또 다른 한 팀을 만나서 놀기로 되어 있었다. 논다는 게 별게 아니다. 우리 좋은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노는 것 아닌가? 맥주나 한 파인트 씩 시켜 놓고 가진 폼 다 재면서 마시고, 또 다른 놀 거리에 대해 얘기를 하고, 어디 가면 뭐가 있다더라, 어디가 좋다더라, 이 옷 어디서 사 입었다, 이 신발, 이 가방 등등, 학교, 시험, 대학, 이런 것들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필요하다고 하면 캐묻지 않으시고 거의 그냥 용돈을 내주시는 아버지는 내가 정말 말처럼 책이나 참고서 사는데 필요해서 돈을 달라는 것으로 다 믿으시는 걸까? 가끔, 아주 가끔은 아버지가 내게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 무슨 책을 사려고 하느냐, 그냥 읽을 책이냐, 아니면 보충 수업에 필요한 참고서냐, 물어주셨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없었다. 말했지만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학교를 안 나가면 멱살을 잡고서라도 나를 끌고 학교로 데려가시던가, 차라리 죽도록 패주던가, 혹시 그래주지 그러나 은근 기대해보는 내가 이상한 놈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결코 나를 야단치거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대립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냐고? 대립만 없었던 것이 아니니까. 대화라는 것도 없었으니까.
가족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을 나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채우려했나보다. 혼자는 싫었지만 나에게는 옆에 가족이 없었다. 대신 우리끼리 모여 있는 동안에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서로 보호막이 된다는 기분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저 간섭이 싫어서 비슷한 놈들끼리 모여다닌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내가 그들을 잘 모르듯이 그들도 우리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으니까 어른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지만 어른들은 이미 우리 나이를 겪었으면서 왜 우리들을 모를까. 그러면서 다 아는 체는 왜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