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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해가 넘어 가는 시간. 밖에 있던 사람들이 집을 찾아 돌아오는 시간. 나는 그제서 집을 나선다.

옷을 차려 입고 지갑을 챙기고 구두를 꺼내 신고 전철역을 향해 여유를 부리며 걷는 나는, 최소한 차림새만은 누가 봐도 고등학생 차림은 아니다.

저녁 8시쯤의 종로는 오히려 대낮의 종로보다 더 바쁘고 분주하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여기 저기 영어 학원이 무슨 대형 백화점 마냥 번쩍거리며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출입구들이 늘어서 있는 그 사이에, ‘스테이션’이란 카페 간판은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

문을 밀고 들어가자 저 구석 자리에 형민이 혼자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상철인?”

“그 녀석, 연락 안 된다.”

지난 번 패싸움으로 경찰서에 함께 들어갔던 이후로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엔 상철이 아버지가 본때를 보여준다고 단단히 작심했나보더라.”

본때를 보여준다? 본때가 뭔데?

어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다. 중요한 것이 눈에 안 보일 수도 있는건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그럴듯하면 진짜 그 속에 숨어있는 것이 아무리 크고 중요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형민이 말을 코웃음 한방에 날려버리며 상철이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카페에 앉아 담배 몇 대를 피운 후 우리는 홍대 앞으로 향했다. 거기서 또 다른 한 팀을 만나서 놀기로 되어 있었다. 논다는 게 별게 아니다. 우리 좋은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노는 것 아닌가? 맥주나 한 파인트 씩 시켜 놓고 가진 폼 다 재면서 마시고, 또 다른 놀 거리에 대해 얘기를 하고, 어디 가면 뭐가 있다더라, 어디가 좋다더라, 이 옷 어디서 사 입었다, 이 신발, 이 가방 등등, 학교, 시험, 대학, 이런 것들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필요하다고 하면 캐묻지 않으시고 거의 그냥 용돈을 내주시는 아버지는 내가 정말 말처럼 책이나 참고서 사는데 필요해서 돈을 달라는 것으로 다 믿으시는 걸까? 가끔, 아주 가끔은 아버지가 내게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 무슨 책을 사려고 하느냐, 그냥 읽을 책이냐, 아니면 보충 수업에 필요한 참고서냐, 물어주셨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없었다. 말했지만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학교를 안 나가면 멱살을 잡고서라도 나를 끌고 학교로 데려가시던가, 차라리 죽도록 패주던가, 혹시 그래주지 그러나 은근 기대해보는 내가 이상한 놈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결코 나를 야단치거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대립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냐고? 대립만 없었던 것이 아니니까. 대화라는 것도 없었으니까.

가족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을 나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채우려했나보다. 혼자는 싫었지만 나에게는 옆에 가족이 없었다. 대신 우리끼리 모여 있는 동안에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서로 보호막이 된다는 기분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저 간섭이 싫어서 비슷한 놈들끼리 모여다닌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내가 그들을 잘 모르듯이 그들도 우리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으니까 어른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지만 어른들은 이미 우리 나이를 겪었으면서 왜 우리들을 모를까. 그러면서 다 아는 체는 왜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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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살던 곳 평택에서 서울까지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두 살 내게 서울은 낯설었다. 갑작스런 전학에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으쓱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마 어리둥절을 으쓱함이 잠시 누르고 있었나보다. 적어도 처음엔 말이다.

서울에 아버지가 얻어주신 집은 강북의 작은 연립주택이었다. 도우미 할머니께서 아예 우리와 함께 살면서 돌봐주셨고 가끔 아버지께서 올라오시는 식이었다.

낯선 서울, 낯선 학교에 익숙해지고자 처음엔 꽤 노력을 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한눈팔지 않으려 애썼고 숙제도 열심히 해갔다. 말이 없는 성격 때문에 친구를 금방 사귀지는 못했지만 시험 보면 성적은 좋은 편이어서 서울로 이사시켜놓은 것에 대해 아버지는 일단 안심하셨을 것이다.

문제는 강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강진이는 5학년이었던 나에 비해 아직도 누군가의 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였나 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머리만 아프다고 할 때도 있었고 배도 같이 아프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는 날이 잦아지자 아버지는 강진이를 데리고 종합병원까지 데려가 진찰을 받게 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여전히 강진이는 두통을 호소했고 가끔 조퇴에 결석까지 하는 날이 생기자 아버지는 결국 나는 남겨두고 강진이를 평택 집으로 데려가셨다.

매일 함께 지내던 녀석이 떠나고 나자 있을 때와 기분이 참 많이 달랐다. 함께 있을 땐 안 나던 생각들이 가끔 나기도 했다. 어떤 땐 강진이 얼굴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려, 실제 강진이가 여기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넓은 서울 바닥에 그래도 나 혼자는 아니었는데.

‘나도 가끔 머리 아프고 배도 아프단 말이야 자식아. 나도 여기 이렇게 떨어져 나와 지내는 것 싫단 말이야.’

아버지를 따라 나서는 강진이 뒤에서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면서도, 형이랑 그냥 여기서 지내자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잘 가. 가서 아프지나 마. 나는 형이니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

겨우 초등학교 5학년. 그 나이에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난 참 솔직하지 못했다. 혼자서도 잘 지내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시키고 있었다고 해야 맞다. 그렇게 조금씩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웠던 것 같고, 그게 지금 생각하면 가끔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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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언제부터인가 학교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보면 이미 대낮이었고, 아니, 대낮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어나 좀 밍기적거리다 보면 오후 서너 시가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때쯤이면 어떤 놈인가 전화를 걸어오게 되어 있다.

“뭐하냐?”

“뭐할까 생각중이지.”

“자식, 있다 보자.”

몇 시도 아니고 ‘있다 보자’ 라고만 해도 그것이 해가 지는 어둑할 무렵, 단골 카페에서라는 걸 우리끼리는 알아먹었다.

해가 슬금슬금 져갈 무렵,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옷장을 연다. 적지 않은 옷들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다. 보통 사람들이 입으려면 용기가 필요할 듯한 옷도 내 맘에 들면 망설임 없이 사들였다. 옷이고 뭐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는 건 어딘지 바보 같아 보였다.

반짝거리는 회색 셔츠와 검은 바지를 꺼내어 거울 앞에서 몸에 대보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현관 벨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더니 처음 보는 웬 젊은 남자가 서있다. 대학생 정도 되었을까, 나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고 적당히 뺀질거리게 생겼다.

“네가 강석이냐?”

“누구에요?”

들어오라는 말도 안하는데 마루로 성큼 올라서는 인상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여기서 혼자 지내냐?”

누구냐 묻는 말엔 대답도 없이 실내를 휘휘 둘러보며 물어대는 폼이 더욱 마음에 안 든다.

“누구냐니까요?”

“누구 같으냐?”

내가 뭐 자기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보는 줄 아나보다. 내쫓기 위해 물어본 줄 모르고 되묻기는.

“......”

내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자 별 수 없이 신분을 밝혔다.

“네 과외선생이다. 영어 과외 선생”

“전 그런 거 안하거든요. 어떻게 오셨나요?”

누가 보냈을지 짐작하면서도 자연스레 그렇게 묻고 있었다. 누구 맘대로 과외선생이냐는 심사였다.

그 날 나는 오랜만에 책상을 펴고 앉아 그 남자가 들고 온 프린트물을 앞에 놓고 문장의 5형식에 대해,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라나, 하는 것에 대해 그 과외선생의 설명을 들어야했다.

한 시간 좀 넘게 혼자 실컷 설명을 하더니 문제지 두 장을 숙제로 내주며 일어섰다. 다음 주 월요일 5시에 또 오겠다고 했던가?

그 과외선생과 마주 앉아 공부를 한 것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난 그 시간에 집에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학교도 가다 말다하고 있는 놈에게 과외선생은 무슨. 아버지도 참.

프린트물, 문제지, 모두 휴지통에 쑤셔 박으며 녀석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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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30 0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3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08-31 06:16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4

 

 

 

 

“야야, 밖에도 좀 나가 놀고 그라지, 하루 종일 방에만 있나? 깝깝하지도 않나?”

할머니가 방문을 열어보셨을 때 나는 지난 어린이날 아버지께서 사주신 동화책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른들은 왜 책을 읽고 있으면 갑갑할 거라고 생각 했는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음껏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아니 나를 잊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불쌍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갔던 것 같다.

실제로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책 속에서 내 맘대로 골라 만나는 세상들에서 더 행복을 느꼈던 나를 두고 집안 어른들은 나가 노는 것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아이로 여기셨다. 아버지는 그것이 나름 기특했는지 내가 사달라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다 사주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에게 뭔가 해주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을 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책을 사달라고 하면 되었다.

책을 읽지 않을 때 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종이와 연필만 보이면 나는 뭔가를 그리곤 했다. 앞에 보이는 물건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동그라미와 네모를 이리 저리 비껴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내 손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안 계신 집. 경주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번갈아가며 나와 강진이를 비롯해 온갖 집안 뒤치다꺼리를 해주셨다. 엄마가 생각나 훌쩍거린 기억은 없다. 혹시 그런 모습을 보고 나를 가여워 할까봐 참았다.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겨우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딱 한번 울었던 기억이 있긴 하다.

그날 나는 할머니를 따라 시장엘 갔다 오는 길이었다. 할머니는 사야할 것을 잊어버리고 안산게 있다며 얼른 다녀올테니 나보고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그 자리에서 그야말로 꼼짝도 안 하고 서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며 할머니가 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기다리면서도 나는 거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져갔다.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내 옆을 지나쳐 가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도 왜 눈물이 났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처음 ‘나는 혼자’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서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졌고 눈물이 신발 등으로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드니 뛰어 오셨는지 가쁜 숨을 쉬고 계신 할머니였다.

“아이고, 이누마. 여태 여기 이러고 서있었나. 고기 사고 그집 아지매랑 한참 수다떨다가 이자뿌꼬 그냥 집으로 갔다 아이가. 퍼뜩 생각나서 너 없어졌을깨미 을매나 맴 졸이며 담박질 해서 왔는지 모른데이. 아이쿠, 이눔 이거, 꼼짝 안코 여기서 기다렸구마. 어디 가서 앉아있기라도 하지 그랬나. 다리 안 아프나?”

할머니는 내가 눈물을 찔끔이고 있는 걸 보시고는 나를 끌어안고 토닥이셨다.

“이눔 이거 우야노. 사내 자슥이 이리 여릿해서 우야노.”

그땐 시장 바닥이었으니까, 나를 알아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눈물이 나왔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나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해, 나는 5학년이 되었고 집을 떠났다.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강진이와 함께 서울의 좋은 학군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기 때문이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이웃 아는 분의 소개로 재혼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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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26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람들한테 아름다움을 베풀어요.
할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아름다운 끈이 이어졌겠지요.

hnine 2013-08-26 14:13   좋아요 0 | URL
연작이어요. 조금씩 써놓았던 이야기인데 여기에 풀어놓고 이제 잊어버리려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오기 2013-08-2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저 덩달아 '싸아~' 합니다~~~~~~
글쓰기를 즐기는 님의 모습에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
좋은 책 추천 고맙습니다!!

hnine 2013-08-28 09:06   좋아요 0 | URL
어려운 책 보다는 이해가 쉬운 책 위주로 고르려고 했는데 도움이 되신다면 제가 영광이지요.
 

3

 

 

 

원래 혼자 지내던 방인데도 아버지 가시는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고 들어온 방은 유난히 썰렁해보였다. 썰렁한 방, 썰렁한 책상, 그 썰렁함에 내 마음 저 구석의 뜨거운 설움과 화가 섞여져 좀 누그러질 수 있다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왜 십년 전 엄마가 떠나던 그날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어제의 싸움질이 다른 때와 특별할 것은 없었다. 내놓으라고 할 때 순순히 가진 돈 다 내놓는 녀석 별로 없는 것도 의례적인 일이고, 문제는 더 어르고 겁주면 다 내놓게 되어 있는 것을 형민이 자식이 너무 빨리 흥분을 해서는 주먹을 휘둘러버린 것이다. 주먹을 휘두르면 가진 것 다 털어놓기까지의 시간이 더 단축될 것이라는 형민이 생각은, 맞은 녀석이 그 상황에서 갑자기 소리를 질러버림으로써 오히려 우리 쪽을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만 불렀으니까. 순식간에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고, 미처 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경찰이 달려들었다. 경찰서로 주르륵 끌려갔고, 보호자 연락처들을 대고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제일 먼저 경찰서에 나타난 보호자는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경찰서에 들어서자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를 찾으셨다.

“어데, 다치진 않았나?”

아버지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보았지만 죄송하다든지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대신 고개만 한번 젓고 시선을 아래로.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듣고 싶은 것도 없다는 심사였다.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제일 먼저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순전히 아버지 덕분이었다는 것 밖에.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각서라도 쓰셨을까? 각서로만 이루어진 일이었을까?

벌렁 누워 한 쪽 팔을 들어 눈 위에 올려놓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려는데 현관 옆 신발장 위에 봉투가 보였다. 열어보니 그 속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두고 가신 것이다. 얼마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그 중 대충 몇 장을 뽑아들고 나와 담배를 사러 집을 나왔다.

편의점에는 내 나이 정도 되는 아이들 몇 명이 가방을 메고 선채로 라면을 먹고 있었고, 계산대의 점원 역시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였다. 점원은 내 나이를 묻지도 않고 달라는 담배를 꺼내어 준다. 한 공간 같은 시간에 비슷한 나이대의 누구는 담배를 사고, 누구는 담배를 팔고, 누구는 앉지도 않고 선채 바삐 라면을 먹고.

누구하고도 눈 마주치기 싫었던 오늘, 처음으로 담배를 내미는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나를 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 치자 얼른 눈길을 거둔다. 내가 담배를 살 나이가 안 된다는 것을 알만 한데 내게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을 보니, 너도 여기서 알바할 나이는 안 된 것 아니냐?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이를 물으면 대꾸할 것도 없이 나와서 다른 가게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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