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일을 하다 인터넷 공간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문득 내 싸이에 들어가 예전 글들을 보게되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사람들과 일들이 남아있었다. 그러다 2006년 9월의 어느 밤에 적은 글이 하나 있어 다시 한번 그 때를 추억하며 옮겨 본다. 다시 읽어보니 그래도 그 해 그 일 이후 나란 인간은 조금은 성숙해진듯 하여 나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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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집에 오는 길

 

매번 오는 길이다. 매일 보는 것들 매일 지나가는 길...하지만

가끔 그 길을 걷을 때 문득 우울해진다. 사소한 풍경 사소한 글들

다분히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는 우울해 진다. 우울해진 나는, 나의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신다. 조금이나마

이런 나의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하지만 단지 내

마음을 달랠뿐이다.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듯이...본질적으로

나의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럴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프고 아파서 내 머리 속을 지우개로 지우고 싶다.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ㅋㅋㅋ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 수 없다.

비록 지금은 고민이 많고 힘들지만 이런 나의 괴로움이 나의 마음의

살을 찌운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듯이 내 마음도 인격도 성장하겠

...시간이 지난다고 누구나 다 이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전거를 탈때 힘든 고갯길을 만나면 난 생각한다. "힘들어도

조금만 오를면 내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줄 내리막길이 있겠지"

그런 기대를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내리막길이 있다. 지금 난

어디에 있나? 아마도 아주 심한 언덕길을 오르고 오르고 있을

것이다. 땀을 흘리고 다리와 허리는 아파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하지만 나는 내리지 않는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기 때문에...

I can do it !  몇번씩 되뇌어 본다....I can do it !  I can do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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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7-2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빛눈물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예전 글을 다시 읽으면 감회가 새롭지요? 저도 아주 가끔 제 알라딘 서재 글을 읽었었는데
저는 좀 창피하더라고요,^^;;
언제 시간이 나면 맞춤법이라도 좀 고쳐야지 하는데 그럴 시간은커녕 다시 읽지도 않아요, 요즘은.^^;;
I can do it !은 요즘의 제게도 필요한 메시지네요.^^
내일부터 올림픽이 시작되는 게 너무 기대되는 밤입니다.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블로그에 글 올리는게 뜸했는데. 그래도 가끔식 짧은 글을 쓰려 노력해야 겠다. 어제는 일찍 퇴근을 한 후 방배동 예술의 전당에 있는 국립예술자료원에 가 자료를 대출하고 집에 일찍 들어갔다.

 

아내와 규진이, 나 이렇게 우리 세식구가 앉아 저녁밥을 먹었다.

양파, 고추, 된장찌개, 고등어구이, 물김치...

 

어찌나 맛나는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었다. 밥 먹은후 과일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주변을 돌고 자주가는 산책길로 발길을 돌렸다. 날씨가 선선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차가 없는 곳이라 아이들도 신나게 뛰어다닌다. 규진이도 "아빠 갔이 뛰어요"한다. 뒤에서 뛰어가는 규진이를 보고 있으니, 그 쬐그만 놈이 어떻게 저렇게 컸지 하는 생각이 든다.

 

산책을 하고 셋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난 앞에서 걸어가고 규진이와 아내는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아내가 웃는다. 뒤를 돌아보니 ㅋㅋ

 

내려가다 다리가 간지러워 손을 난간에 기댄 후 다리를 긁적긁적 거렸는데, 뒤에서 규진이가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게 아닌가!!!

 

어찌나 귀여운지!!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에게 나란 존재가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걷는 걸음거리, 말투, 행동 모두 규진이에게는 삶의 척도 또는 모방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규진이는 아내의 행동을 따라하지는 않지만 내가 하는 이런 사소한(?) 행동들은 꼭 따라한다. 조심해야 겠다.

 

다시 교육과 관련된 책들을 들추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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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7-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나 <숲 유치원> 같은 책도 함께 읽어 보셔요~ 즐겁게 살아가며 나누는 이야기를 잘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햇빛눈물 2012-07-06 1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방금전에 소개해주신 <잃어버린...> 주문을 했습니다. 정말로 제가 딱 지금 보고 싶었던 책이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학교에서 겪은 일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적어본다.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되새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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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운동장 한 켠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보였습니다. 아침 조회를 하고 산책을 하려는 저에게 그 학생들은 순간 절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지나칠까, 가볼까? 가면 분명히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데...
살짝 고민을 하다, 그래도 가보자 하는 마음에 가보았습니다. 역시나, 운동장과 3호관 사이 수풀 사이에서 1학년 2명이 내려오더군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그리고 근처에 있던 2학년 3명에게 인사를 하더군요. 저는 1학년 학생과 2학년 세명을 불렀습니다. 1학년 한 명은 순간 도망을 가고 나머지 한 명만 이 저에게 잡혔죠. 그 놈은 제가 아주 잘 아는(?) 사이라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제가 오라고 하니, 대뜸 한다는 말이, "왜요, 저 담배 안 피웠어요..." 그래서 제가 "야, 내가 언제 담배 피웠냐고 물었냐, 나한테 오라고 했지!"

 

그 다음부터 그 놈과 저의 혈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살짝 건드리니, 경찰에 신고한다. 그래서 저는, 신고해라. 그리고 그 놈이 옆에 있는 친구한테 왈 "야 어디에 신고해야 하냐?" 친절한 친구 왈 "교육청에 하면 되" 옆에서 지켜보는 저의 생각은 아주 복잡해졌습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도대체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능숙해졌는지, 화의 감정을 누르고 조곤조곤 따지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놈은 저에게 반말까지 하며, 저의 속을 긁더니 제가 살짝 강한 행동을 하자, "때리시려구요, 때려보세요..."하더군요. 순간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잘 참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놈이 강적인게, 수업 시간(8시 10분 정도였습니다)이 좀 지나니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며 저한테 "확인증 써줄거죠, 빨리 써줘요"하더군요. 그것도 저에게 요청이 아닌 거의 지 동생한테 강제하듯이 말이죠. 이 정도되면 저는 거의 요즘 말로 표현하면 '멘붕' 상태에 빠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침 10분간의 산책 시간이 사라지며 아주 기분이 '뭐'같아 지더군요. 그런데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저의 기분을 배설하려 하는 것 보다. 그 어떤 조금의 깨달음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때문입니다. 오늘 한겨레신문을 읽으니 혜민스님의 아주 가벼운(?) 칼럼이 있더군요. 제목이 '단비'였습니다. 제목이 아주 심플하면서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에서 저에게 깨달음을 준 문구는 이렇습니다.

 

"잠을 청하기 전에 도량을 잠시 돈다. 어느덧 비가 멎고 하얀 구름 사이로 달님이 살짝 얼굴을 드러내신다. 은은한 달빛 덕분에 산봉우리를 하얀 구름이 고고히 휘감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도량을 몇바퀴 돈 뒤 잠을 청하기 위해 내 처소로 발길을 돌린다. 엊저녁과는 달리 발밑 촉촉해진 땅이 느껴진다. 그 순간 퍼뜩 작은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오늘과 같은 단비는 사실 비 자체가 달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비를 받아들이는 땅이 비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단비로 느껴진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말이다. 즉 똑같은 비가 와도 받아들이는 토양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단비로 느껴질 수도 있고, 홍수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가 학생들에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사실 좋게 생각하면 조금의 사명의식과 학생들을 생각하는 교육적인 의식에서 출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혜민스님의 위 글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당연히 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런 의도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마음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도 중요하구나 하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모든 'Action'은 사실 저의 '일방통행'

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거나나 사랑하는 마음, 부모자식간의 관계에도 듣고 말하는, 행동하고 바라보는 자 서로의 상호소통의 상태가 중요한데, 하물며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는 더 할텐데, 이점을 지금까지 저는 망각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덧, 개인적으로 곽노현 교육감님에게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고, 학생인권조례도 찬성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쩔수 없이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점은 이 조례로 인해 가장 변한 점은 학생들을 생활지도 할때 학생들이 교사에게 "저 신고할거예요"라는 협박아닌 말씀들을 아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런 소리 들을 때마다 기분이 아주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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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대에 근무하시는 박승규 교수님의 논문들 최근에 재미나게 읽고 있다. 지리학의 필요성, 중요성 그러나 정반대의 현실에서 지리학이 지리전공자들이 해야할 일들에 관한 원론적인 차원의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교수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엮은 <일상의 지리학>도 같은 맥락의 글인 것 같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다.

 

며칠 후에 박승규 교수님을 뵐 기회가 있는데, 책에 사인도 받아야 겠다. 아래 글은 읽은 논문의 밑줄 친 부분들이다.

 

 

 

인정,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쓰여지지 않은 공간을 발견하다

- 지리학이 인문학인 또 다른 이유 -

 

1. 서론

 

지리학을 인문학이라 했다. 지리학이 인간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라 했다. ···· 지리학은 일상적인 사물이나 공간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한 번의 기획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한 번의 기획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리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한 번의 기획으로 지리학의 학문적 존재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

 

인간은 공간 위에 거주한다. 그렇기에 인간 개개인의 공간은 자아의 연장이다. ····

 

내가 존재했던 공간의 소멸은 나에 대한 망각을 재촉한다. 망각은 나를 잊게 한다. ···· 나의 기억을 망각하게 강요하는 것은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근본적으로 나를 부인하게 한다. ····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공간을 소비한다. 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을 때 개인의 정체성은 강화된다. ···· 인정받지 못하고, 망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렵다. 그렇기에 인간은 개별자로든 집단으로든 자기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지속적인 인정투쟁을 벌인다.

 

   

헤겔은 인간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보았다. ···· 헤겔과 호네트는 인간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고유한 발전을 위해 권리를 쟁취하려는 투쟁의 문제이다. ···· 동일시와 같음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아니라, 차이와 다름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인정은 더욱 빛을 발한다. ····

 

인정 투쟁의 문제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가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 한다면 그것은 공간의 문제이다. 공간은 인간의 정체성을 표현해주고, 인간 존재의 깊이와 밀도를 표현해주는 또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 인간 삶의 과정에서 일상 공간의 생산과 소멸은 삶의 생성과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 인정 투쟁의 문제는 인간 존재가 생산하는 다양한 공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노두인 셈이다.

 

      

 

지리학에서도 인정과 관련된 논의가 있다. 지리학에서 다루는 인정은 다문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다.(위 대구대 최병두 교수의 책 참고) ···· 다문화 현상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과 장소의 문제이며, 사물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나아가 다문화 사회에서의 공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문화 사회라는 개념 대신에 ‘다문화 공간’을 제안한다. ···· 그렇기에 인정의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본 논문을 작성하였다. ···· 철학적 개념으로서 ‘인정’을 이용하여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 인정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이고, 인간의 근원적 문제이기에 이것을 통해 지리학이 인간의 근원적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힌다. 이를 위해 헤겔의 인정 개념을 살펴보았다. ····

 

  

 

정작 헤겔의 인정 개념은 주체-객체의 인간관을 전제하고 있어 상호인정 과정에서 상대방을 타자화 시키는 약점을 보인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주체성의 이념에 근거하여 나와 너의 만남을 통해 형성되는 인정 개념을 제시하였다.(서로주체성의 개념은 위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책을 참고)···· 인정 개념을 이용하여 관성적으로 인식하던 지리인식과 공간에 대한 사유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궁극적으로 지난번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선택과목 개편과정에서 나타났던 지리학의 학문적 위기를 상기하면서 지리학의 학문적 존재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2. 인정, 인간 존재를 설명하다: 사회적 존재론에서 인간학적 존재론으로

 

1) 헤겔의 인정,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다

 

헤겔은 인간이 자연이나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 두 종류의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 ‘대상의식’ ···· ‘자기의식’ ····

 

헤겔은 이같은 인정 투쟁 과정을 「정신현상학」 ‘자기의식’장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사례로 보여준다. ···· 이처럼 인정은 내가 인정받기 위해 나는 나와 동등한 자유로운 인격을 갖고 있는 상대방을 전제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헤겔에게 인정은 단순하게 인간 상호간의 인정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에게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에 존재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 그렇기에 헤겔의 인정 개념은 공동체성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존재론에 근거한다. ····

 

2) 서로주체성의 인정,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다.

 

···· ‘홀로주체성’ ···· ‘서로주체성’ ····

 

헤겔의 인정이 나와 너의 관계에서 상호인정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하더라도 나와 너의 관계 방식 자체가 주체-객체 관계의 도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면, 나와 너의 본질적 속성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

 

부버(Buber)는 인간의 본질을 ‘사이존재’로 본다. ‘사이존재’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신체와 다른 인간의 신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을 말한다.

 

   

(마틴 부버의 책으로는 위 세 가지 책을 참고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때 사이는 인간의 신체를 전제로 한다. 인간의 신체와 신체 사이의 빈 공간은 몸을 통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언어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실존적 만남의 과정에서 성립하는 그런 공간이다. ···· 내 몸이 있는 곳과 더불어 나와 함께 있는 타인의 몸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부버의 논의는 주체-객체로 이루어진 인간관을 극복하게 한다. ···· 그렇기에 그에게 상호인정의 문제는 나를 중심으로 하는 타자화된 너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체-객체의 인간관에서 빚어지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버는 내가 있던 중심에 너를 배치한다. ····

 

타자에 대한 인정은 그의 상황을 인정하고 그가 세계 속에 존재하는 방식을 존중한다. 반면에, 타자에 대한 부정은 타자의 세계를 점령하고 그의 시간과 장소를 새롭게 규정하며, 타자의 영혼과 타자의 생활세계를 말살하기 위한 구실로 기능한다. 그렇기에 서로주체성에 근거한 인정의 구조는 개인의 시간과 장소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자신의 시간과 장소를 새롭게 규정하도록 허락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두렵지 않게 한다.

 

3. 지리학, 인정을 통해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고, 쓰여지지 않았던 공간을 발견하다

 

1) 지리학의 본질,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이게 하다

 

지리학에서 다루는 보편적 공간 범주에서 벗어나,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지만, 의미가 발견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공간(invisible space)'에 천착해야 한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파울 클레(Paul Klee)의 말은 보이는 것을 떠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세계를 열어준다. ····

 

Fruits on Red. 1930. Watercolor on silk. 61.2 x 46.2 cm. Sta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y.

(내가 좋아하는 클레의 그림 중 하나다.)

 

클레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화가가 자신의 경험세계에서 일어나는 삶의 현실성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의 근원적 장소는 화가와 세계가 만나는 ‘사이영역’이다. 클레가 말하는 사이영역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무의식과 의식, 인간과 자연, 주관과 객관과 같은 양극이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영역이다. 화가는 삶의 현실성을 산출하는 양 극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사람이다. ····

 

클레의 말에 동의한다면, 지리학자는 중요한 공간과 그렇지 못한 공간,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 사이 영역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 지리학은 일상 공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어느 하나의 가치체계를 대변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하고 낯익은 공간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낯설은 공간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 사람들에게 안개는 일상이다. 안개 없는 일상을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이 안개를 발견한 것은 터너(Turner)의 풍경화를 통해서이다. ···· 예술가의 그림이 우리에게 익숙한 현상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듯이, 지리학자는 우리 일상을 구성하는 공간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

 

인간과 공간의 관계는 우리 삶의 생성과 변화의 과정에서 진화해 간다. 새로운 공간의 등장과 부침은 새로운 지리인식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새로운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

 

지리학도 예술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 삶을 구성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공간에 대한 발견은 지리학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

 

공간이 지리학자만의 독점적 대상일 수는 없지만, 공간을 통해 지리학이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면, 지리학은 지금과는 다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하고 낯익은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쾌적하지 않은 공간에 대해 언급한다. 작고 초라한 공간을 세상에 드러낸다. 우리 삶에서 늘 필요한 공간이지만, 정작 지리학자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지 않았던 그런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 존재가 생산하는 다양한 공간에 대해 ‘철학하기(philosophiren)’를 시작해야 한다.

 

2) 공간에 대한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 우리 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다

 

우리 삶터로서 공간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이질적이고 균열적인 공간 조각의 퍼즐을 맞추어야만 우리 삶터의 의미를 완성한다. 파편적인 공간 조각을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가능하다. 각각의 공간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는 그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인간에 대해 말해준다. 자기 자신과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공간과 장소에 퇴적되어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의 편린들이다. ····

 

지리학의 학문적 존재이유는 이처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한 모습과 권력에 기울어져 있는 이념적 지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바르트(Barthes)는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들추어내고, 본질을 회복하려 한다. ····

 

바르트의 이같은 생각은 지리학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리학은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를 통해 우리 사회에 감추어져 있던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공간의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공간 범주를 발견해야 한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공간은 우리 주변에 퍼져 있다. 푸코(Foucault)가 ‘분산의 공간(space of dispersion)’이라 명명한 이같은 공간은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공간이다. ····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를 통해 언어의 원형을 회복하려 했던 바르트의 생각처럼, 지리학에서도 ‘하얀 글쓰기’를 통해 인간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 갖던 지리학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한다. ····

 

지리학은 세상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다면 지리학의 역할이 미진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리학이 세상에 필요한 학문이며,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근원적 인식의 틀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문학이 지리학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4. 인문학으로서 다시 시작하는 지리학의 부활

 

크리스테바(kristeva)는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 공간이라 말한다. 정신적 공간이 인간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항을 ‘다시 시작하는 부활’이라는 뜻으로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

 

 

(책을 찾아보니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반항' 개념과 관련된 책이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란 제목으로 나온 책이 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 하면 <사랑의 역사>가 아닐까 한다. 사진의 책은 새로 나온 개정판이고 집에 초판이 있는데, 다른 책과 같이 읽으려다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한다.)

 

지리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인식하고 바라볼 수 있는 담론 생산은 크리스테바가 언급하는 반항의 연장선에 있다. 통념적인 지리인식에 대한 반항을 통해 다시 부활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하게 과거의 영화를 부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학문으로서 지리학의 전통을 복원하면서도 변화하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진화하기 위한 반항이다. ····

 

지리학이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지 못하고, 학문적 존재이유를 설파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모습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공간은 하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세상을 인식하는 기본전제이다. 공간은 인간의 본질적 기원에 맞닿아 있는 근원적 요소이다. 그렇기에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리학은 인간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본질적이고 근원적 차원에 천착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지리학은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소거시킨다. 여러 개의 해답을 갖고 차이와 다름에 대한 인정을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말하고, 쓸 수 있는 학문이 지리학이길 바래본다.

 

-끝-

 

대한지리학회지 제46권 제6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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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남김다. 오늘 보고온 교향악 축제 첫 공연인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대한 간단한 인상을 글로 써봤다. 고클래식 사이트에 올린 후 옮겨 본다. 아쉬움이 큰 공연이었다. 궁합이 있다면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나와는 맞지 않은듯 하다. 그래도 다른 공연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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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어김없이 교향악 축제 기간이 다가왔다.
올해 그 시작을 알리는 교향악단은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공연 후기를 쓸만한 능력은 없어 간단한 인상과 궁금증을 올려 봅니다.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에서 협연자인 루실 정은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해야하나, 그나마 서정적인 2악장 멜로디는 좋을 법했는데 그나마 오른손 터치가 불안정한 느낌이었습니다.

연주 후 앵콜 곡이 하나 있었는데, '의례적 앵콜'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커튼콜도 앵콜 곡 이후 한번 밖에 없었습니다. 박수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더군요. 그 후 약간의 어색함이 지난 후 악장이 일어났습니다. 안 들으니만 못한 앵콜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리고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음 기회에 꼭 좀 더 완성도 높은 차이콥스키 4번 교향곡을 듣고 싶다는 '욕심'을 만들어준 공연이었습니다. 곡의 성격상 또한 제 스타일상 뭔가 '박살'낼 듯한 기세의 4악장을 좋아하는데 그 기대에 약간(?) 부응은 했습니다만, 현악기 주자들이 힘, 스태미너가 부족해보였습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리엔치 서곡에서도 그랬지만 강남심포니의 금관 주자들의 연주는 상당히 매력적이라 생각합니다.(물론 중간중간 실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리고 아르떼 TV를 통해 강남심포니의 연주를 봤을때부터 궁금한 점입니다. 뭐 제 생각이 좀 보수적이라(다른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뭐 이걸 보수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듯 합니다만.)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오늘 강남심포니 여성 단원들의 복장은 정말 '민망'함 그 자체였습니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볼때는 음반으로만 듣던 소리를 직접 연주자들의 몸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하고 보며 감흥을 받는 재미가 크죠. 그런데 오늘 강남심포니 여성 단원들의 화려한(?) 복장은 청중들의(물론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연주를 방해할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모든 단원들이 '솔로이스트' 수준의 드레스를 입은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좋은 지휘자들은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개별적인 '솔로이스트' 수준으로 대한다 하지만, 그건 다분히 연주 실력으로 애기할 부분이겠죠.

특히 제2바이올린 파트에 여성 단원은 허벅지 위쪽까지 크게 트인 드레스를 입어 연신 치마를 추스리더군요. 제가 거의 정면이었는데, 보는 제가 민망했습니다. 그렇게 추스리고 신경쓰이는데 어떻게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연주에 집중은 할 수 있을까? 걱정 아닌 걱정이 되더군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복장에 대한 규칙은 없을 듯 보이지만 연주자가 연주에 집중할 수 있고 청중의 감상을 방해 하지 않는 수준에서의 화려함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남은 공연이 있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공교롭게도 향후 전주시립교향악단과 목포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한다고 합니다. 물론 볼 수는 없지만, 어떤 곡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올해 최대의 관심 공연은 서울시향의 볼레로와 마지막 날 공연인 운파메모리얼 오케스트라의 브루크너 교향곡 4번 입니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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