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뒹글고 있는 지나간 신문들을 뒤져보다가 한겨레신문에서 월요일마다 나오는 '함께하는 교육'에 있는 기사 두 개를 스크랩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스티브잡스에 관한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왜 '애플'의 제품에 열광할까? 또한 잡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현실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잡스의 죽음과는 '무관'한 이들 아닌가? 하등의 관련도 없는 이들이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죽음에 슬품을 표하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죽음에는 그리 쉽게 '애도'를 표하지 않는 것은 씁쓸할  따름이다) 그의 관련 서적들을 구입하고 있다. 

   

우리들은 단지 그의 죽음을 '돈'으로서만 이용할 뿐이다. 교보문고에 가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포인트에 잡스의 책이 '산떠미'처럼 쌓여 있다. 말 그대로 '산떠미'처럼. 그래서 더욱 손이 가지 않지만, 그건 나 같은 사람만 해당되는 듯 하다.(불티나게 팔리는 듯 하다. 그런데 들리는 애기로는 '오역'이 심하다고 한다. 하긴 번역을 그렇게 빨리 했으니...) 

서론이 길었다. 읽었던 기사를 옮겨본다. 

한겨레신문  2011.11.14  "어떻게"보다 "왜"가 중요하다. 

요즘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이 뜨고 있다. 지난해 3월 처음 나왔는데 채 2년도 안 돼 가입자가 2500만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끈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위력을 보여줬다. 한데 카카오톡을 만든 회사 ‘카카오’ 이사회의 김범수 의장 이력은 독특하다.

1992년 삼성에스디에스(SDS)에 입사했던 그는 1998년 ‘한게임’을 만들었다. 이 한게임과 네이버커뮤니케이션이 2000년 합병해 탄생한 회사가 엔에이치엔(NHN)이다. 엔에이치엔은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와 국내 최대 게임사이트 한게임 등을 운영한다. 2007년 8월 네이버를 떠난 뒤 몇 년 소식이 뜸했던 그는 갑자기 카카오톡을 들고 나타났다. 부침이 심한 인터넷 분야에서 한 사람이 여러 번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김범수 의장은 ‘스타 시이오(CEO)’라고 불린다.

그런데 그는 지난 10월19일 경제전문지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악착같이 살지 말라”고 했다. 성공한 사람은 대개 노력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그는 달랐다. 김 의장 인터뷰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15년을 가두잖아요. 최민식이 ‘어떤 놈이 대체 날 가뒀나’ 고민하고 관객들도 그 느낌을 쫓아가죠. 하나씩 비밀이 풀어지니까 ‘저래서 가뒀구나’ 하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나 싶었는데 유지태가 딱 한마디 합니다. ‘당신이 틀린 질문을 하니까 틀린 답만 찾을 수밖에 없다’고. ‘왜 가뒀나가 아니라 왜 풀어줬나가 올바른 질문이다’라고 말이죠. 거기서 땅 때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 의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문제를 인지하는 능력,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더의 능력은 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어떤 어떤 문제를 풀어봐’라고 말이죠. ‘어떤’ 문제를 풀어보라고 할지가 경쟁력이죠.”

김 의장은 ‘어떻게’보다 ‘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왜’냐고 묻는 학문이다. 이에 비해 실용성 학문들은 ‘어떻게’를 중시한다. 10월5일 사망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사진)는 인문학을 중시했다. 잡스는 지난해 1월27일 아이패드 발표회장에서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liberal arts & technology)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했다”는 말을 남겼다.

잡스는 항상 본질을 추구했다. 잡스는 리드대학을 한 학기 만에 중퇴한 뒤 철학과 인문학 강의를 몰래 들었다. 이러한 잡스의 성향은 독특한 경영 철학으로 발전했다.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본질만을 구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한데 여기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쓸모없다던 인문학이 자본주의 극대 발전기에 다시 주목을 받는 건 역시 인문학이 ‘쓸모 있다’는 게 여러 사건을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2011.11.14  스티브 잡스 같은 프리젠터가 되고 싶다면?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셋을 설득의 기본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토스, 즉 성품이다. 말이 좀 어눌하면 어떤가. 사람에게 신뢰가 가면 무슨 말을 하건 믿고 싶어진다. 반면, 사람 됨됨이가 의심스러울 때는 번지르르한 말에도 의심이 갈 테다.

파토스, 즉 감정은 그다음으로 중요하다. 기쁠 때와 슬플 때, 자신의 감정에 따라 똑같은 말도 달리 다가오는 법이다. 훌륭한 연설가는 듣는 이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안다. 때로는 필요한 감정을 부추기기도 한다. 적절히 흥분시키거나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식이다.

로고스, 즉 논리도 놓쳐서는 안 된다. 주장할 때는 ‘팩트'(fact·사실)를 정확하게 내놓아야 한다. 또한, 주장을 앞뒤가 맞게 펼쳐야 한다. 흐릿한 사실과 어물쩍대는 논리로 그럴싸하게 얼버무리려 해서는 안 된다.

맛깔스런 표현과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적절한 동작. 이런 ‘말의 장식’들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갖춘 뒤에야 의미가 있다. 진실된 가치와 감동, 논리가 살아 있는 내용, 여기에 적절한 표현과 매력적인 목소리, 동작이 더해질 때 호소력은 한껏 높아질 테다. 이렇다면 말하는 법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무엇보다 에토스를 충실하게 다져야 한다. 그런 다음 파토스를 길러야 한다. 로고스 교육은 이 둘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주변의 논술학원들을 둘러보라. 대부분은 이 셋을 거꾸로 가르칠 테다. 학생들은 논리적으로 따지는 법부터 배운다. ‘논리 감각’을 익힌 뒤에는 ‘고급 논술 과정’이 이어진다. 감동적으로 말하고 쓰는 방법을 익힌다는 뜻이다. 파토스, 품성에 대한 교육은? 거의 보지 못했다. 논술을 배워서 인격이 훌륭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이렇게 배운 학생은 ‘입만 까진 아이’가 되기 쉽다.  

2500년 전 소피스트들도 다르지 않았나 보다. 소피스트란 논·구술 교사, 프리젠터(presenter), 변호사를 합쳐놓은 듯한 직업이었다. 그들은 말하는 법을 가르쳐서 많은 돈을 벌었다. 다음의 이야기는 파토스 없는 논리 교육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한 젊은이가 소피스트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자신이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기도록 가르쳐주면 엄청난 수업료를 내겠다면서 말이다. 소피스트는 반색을 하며 그를 받아들였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젊은이는 재판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수업료를 내려 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소피스트는 제자를 고발했다. 법정에 나란히 선 스승과 제자. 먼저 선생이 주장을 펼친다. 이 재판에서 이기건 지건 젊은이는 수업료를 내야 한다. 내가 이긴다면 당연히 수업료를 받아야 한다. 만약 젊은이가 이겼다면? 그래도 수업료를 내야 한다. 젊은이는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기게 해주면 수업료를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학생의 변론이 뒤를 이었다. 나는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재판에서 이긴다면 당연히 수업료를 줄 필요가 없다. 재판에서 져도 마찬가지다. 선생에게는 첫 재판에서 이겼을 때만 돈을 주기로 했다. 첫 재판에서 패배했는데, 왜 내가 그에게 수업료를 주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스승과 제자는 똑같은 논리 위에서 정반대 주장을 펼친 셈이다. 이는 소피스트들이 주로 썼던 ‘디소이로고이'(dissoi logoi)라는 기술이다. 이렇듯 인격을 가다듬지 못하는 논리 교육은 사기꾼만 만들어낼 뿐이다.

<위대한 연설>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소피스트 10명을 소개하는 책이다. 지은이 김헌 교수는 앞의 예와는 다른 소피스트들의 모습을 들려준다. 큰 선생은 인품도 훌륭하기 마련이다. 소피스트들도 다르지 않았다. 굵직한 소피스트들은 에토스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았다.

예를 들어보자. 리쿠르고스의 연설 기술은 아주 빼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진정성이 있었다. 조국 아테네를 사랑하는 마음과 정직함은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였단다. 그는 돈을 주무르는 재무장관을 무려 12년 동안이나 했다. 사실, 아테네에서 재무장관은 1년씩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리쿠르고스는 편법을 썼다. 1년을 근무한 뒤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올리곤 했다. 일종의 ‘바지 장관(?)’을 쓴 셈이다. 이런데도 아테네 시민들은 너그러이 눈감아 주었다. 리쿠르고스의 깨끗한 돈 관리와 능력을 믿은 덕분이다. 훌륭한 성품은 원칙과 논리마저도 뛰어넘게 한다.

아테네 최고의 연설가로 꼽히는 데모스테네스는 또 어떤가. 그는 리쿠르고스와는 많이 달랐다. 데모스테네스는 돈에 약했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이럼에도 시민들은 데모스테네스를 언제나 환영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아테네를 집어삼키려는 마케도니아에 맞선 ‘독립투사’였다. 조국 독립을 향한 그의 ‘에토스’는 자잘한 잘못을 덮어버렸다.

이제 우리 시대 최고의 프리젠터인 스티브 잡스를 돌아보자. 그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애플의 제품을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 숱한 최고경영자(CEO)들은 잡스를 흉내 내기에 바쁘다. 최고경영자가 노타이 차림으로 회사 제품을 직접 소개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브 잡스처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들은 우리네 논술학원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지 않을까? 호소력의 뿌리는 논리가 아닌 에토스에 있다. 잡스의 매력은 ‘창조와 개척’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에토스에서 뿜어져 나왔다. 겉모습만 따라 해서는 결코 잡스처럼 되지 못한다.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다면 자신의 진정성이, 에토스가 무엇인지부터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그리스 10대 연설가들의 명성은 하나같이 말재주가 아닌, 인간적인 매력에서 나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ps : 검색해보니 연설과 관련된 이런 책들도 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책들이지만, 연설, 그들의 '말'에 대해서는 궁금해서라도 읽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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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1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라는 문구에서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에 주로 포커스를 맞추지만
왜 이러한 상황에 처해졌는가, 앞으로 어디로 나가야 하는가, 현재 어디인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물론, 왜만큼 어떻게도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아하하.

햇빛눈물 2011-11-18 08:4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상황판단'도 중요하죠. 문득 드는 생각. 현재의 정부, 특히 교육부에서는 현실 학교, 교육 현실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상황도 정확히 모르니 내놓는 대책이 모두 X판인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머리 아프네요. ㅋㅋ
 

작아 2011년 6월호에 실린 김용택 시인이 쓴 "노을 아래 가난했던 당신"을 옮겨 봅니다. 개인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요즘처럼 풍요로운 세상에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일 수 있겠지만, 부족하던 시절 날 생각해주는 친구, 사람간의 '정'이 있던 시절이 그리운건 아이러니 하지만, 결핍의 기억과 결핍의 공유, 결핍의 나눔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건 어쩔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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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내 소원은 소풍날 반찬으로 멸치 볶음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고추장에다가 빨갛게 볶은 멸치나, 아니면 볶은 멸치에다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을 넣어 버루린 멸치. 다른 아이들의 멸치 볶음을 보면 나는 기가 죽기도 하고 부럽기 그지없었다.

어쩌다가 한 번쯤 멸치 볶음을 얻어먹을 때의 그 맛은 참말로 대단했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소풍 때나 보통 때 도시락 반찬으로 멸치 볶음을 가져간 적이 없었다. 소풍 갈 때의 반찬은 늘 볶은 소금이었다. 소금을 볶은 다음 깨를 넣고 고춧가루를 치고 참기름을 조금 넣으면 맛있는 깨소금이 되었다.
...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동안 자취를 했기 때문에 반찬은 늘 김치뿐이었다. 김치 이외의 반찬을 나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가 큰아버님이나 아버님께서 순창 장에 오셔서 국밥을 사먹은 적이 있고,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 외엔 한 번도 김치로부터 해방된 적이 없었다.
...

시디신 김치, 궁댕내가 풍풍 나는 신 김치, 그 김치로 6년을 살았어도 나는 지금 신 김치를 새로 담은 김치보다 좋아한다. 어쩔 땐 김치마저 모자라 시디신 김치 국물을 아껴가며 몇 끼 밥을 때웠던 적이 많았다. 그렇다고 새 김치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맛이 없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먹는 것은 지금도 다 맛이 있다. 어떤 음식이 맛이 있고 어떤 음식이 맛이 없는지 나는 모른다. 반찬 투정이니 뭐니 하는 것을, 나는 말로만 들었다. 어떻게 먹는 음식이 맛이 있고 없단 말인가.
...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차비와 등록금 이외의 그 어떤 용돈도 써본 기억이 없다. 군것질을 할 수 없는 나의 유일한 군것질 거리는 늘 생쌀이었다.
...

그렇게 김치로만 중고등학교 6년을 살았으니, 소풍을 가도 나는 한 번도 멸치 볶음은커녕 도시락 한번 제대로 싸가지고 소풍을 가본 적이 없다. 소풍, 하면 나는 잊을 수 없는 친구 둘이 생각난다. 시계방을 하던 백운행이란 친구와 문종해라는 친구이다. 소풍날이면 그냥 밥만 덜렁 싸가지고 가는 나를 위해 이 친구들이 내 도시락 반찬까지 많이 싸가지고 왔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들은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 깔아 놓은 이불 속에 발을 넣으면 냉랭하다 못해 발이 시려오던 내 자취방에 앉을 자리가 없어 멍하니 서 있을 때 이따금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연탄불로 따뜻해진 아랫목 이불 속에 내 손발을 넣어 몸을 녹이게 하고 밥을 주던 종해와 종해의 어머니. 어머님은 아마 돌아가셨겠지만 종해는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6년, 그리고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소풍 때 그렇게도 싸가고 싶었던 멸치 볶음을  끝내 한 번도 싸가지 못하고 나는 그만 졸업을 하고 말았다.
...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딸랑거리는 빈 도시락 통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해 저문 강 길을 가 보았을 것이다. 그 아름답던 노을 아래 가난했던 당신.
나는 멸치에 대한 글을 자주 썼다. 오늘도 또 쓰고 말았다.
  

ps : 여러분 과연 어떤 '음식' 어떤 '친구'가  떠오르나요? 오늘 그 '음식'을 그 '친구'와 함께 먹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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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칼럼 페이지에 보면 오늘의 트위트가 있다. 거기에 아주 섬뜩한 글이 있어 옮겨본다. 섬뜩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김경찬 피디 @PDtheripper

최근 들은 섬뜩한 실화. 교육에 목숨 건 엄마는 학원가를 주름 잡았고 아들을 다그쳐 명문대 의대에 보냈다. 아들은 엄마의 뜻대로 의사가 됐다. 그런데 아들 손전화에 저장된 엄마의 명칭은 '미친년'. 성공의 유산은 증오였다. 믿고 싶지 않은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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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2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상하게 동하지 않아서 신문을 쌓아놓았더니
이런 칼럼이 있었군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저 한숨이~

햇빛눈물 2011-09-27 10:33   좋아요 0 | URL
저도 한숨이 나오더군요. 학생들에게 애기를 했더니 충격적이라고 반응하는 학생들도 있고 나름 이해를 하며 그럴수 있다라고 애기하는 학생도 있더군요. 그들 입장에서는 나름 또다른 할 애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 문제이다. 한국지리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에게  농업부분이 나올때 자주 하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농사는 '도박'같다고. 셋째 외삼촌께서 아직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끔은 쌀이나 여러 농작물을 삼촌께 받아 먹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작년인가 삼촌이 무 농사를 무지하게 크게 하셨는데(다른 사람들이 걱정할 만큼), 그런데 작년에 무값이 폭등한 적이 있다.  아래 글은 작년 10월 초 각종 언론보도 머리 기사이다.

‘배추대란’ 일파만파… 무값도 폭등
무값도 배추만큼 폭등…"1개 4,000원"
"이러다 깍두기도 못 먹겠다", 무값도 폭등

그런데, 이런 시기에 우리 외삼촌은 다른 농사는 거의 짓지 않고 몇만평에 무 농사만 하신거다. 그야말로 '대박'나셨다고 한다. 그래서 삼촌 대출금도 거의 값고 돈 많이 벌으셨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데, 난 한편으로 씁쓸했다. 무슨 농사가 로또, 경마도 아닌데 이렇게 농부들의 수입이 천양지차면 어떻게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수 있단 말인가? 

내 기억으로는 내가 초등학교때즈음 이 외삼촌이 농협에서 많은 돈을 빌려 그 당시 유행(?)하던 유리온신을 지어 토마토 농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외가댁에 가서 내 동생과 같이 온실에 들어가서 토마토를 따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이때 토마토 농사가 아주 좋지 않아(가격이 폭락했던건지 병충해때문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청 어려웠던 적이 있었었다. 

내가 농부도 아니고 농사를 하지는 않지만, 절대로 농사 일이라는게 이렇게 돌아가서느 안된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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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9.19   농사가 도박인가?

땀흘린 만큼 거두고
그래서 농사가 가장
정직하다고 했는데,
이젠 아닌 모양이다

충남 당진의 농부 안병석씨는 올해 농사를 망쳤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 탓이다. 임차한 간척지는 습지로 변해, 씨를 뿌려보지도 못했다. 집 앞 물빠짐이 좋은 땅을 골라 정성껏 고추를 심었지만, 탄저병에 전멸했다. 이 와중에 충북 괴산의 한 농부는 하우스 재배라는 ‘고추 도박’으로 큰돈을 벌었다. 2만㎡의 하우스에서 비 피해를 피했고, 덕분에 가격폭등의 과실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사상 최대 구제역으로 전국의 양돈농가들은 심한 피해를 입었다. 돼지를 땅에 묻고 반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농장을 다시 시작하지 못한 곳이 많고, 보상금을 받았다지만 손해를 메우기엔 태부족이다. 하지만 구제역 태풍을 용케 피한 호남·제주 등지의 농가들은 돼지고기값 급등으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

얼마 전에는 낙농가들이 납품가격을 올려달라고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소동을 겪었다. 따지고 보면 국제 곡물값 급등이 발단이었다. 수입 곡물로 생산되는 사료 값이 30% 이상 올랐는데, 우유 납품가격을 3년째 묶어놓았으니 낙농가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난해에만 500여 낙농가가 폐업 신고를 했다. 초지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 낙농산업은, 사료값이 생산비의 70~80%를 차지하는 고비용 구조이고 국제 곡물값 등락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위험산업이다.

언제부터 농사가 도박이 됐는가? 땀흘려 일한 만큼 거둬들이고 그래서 농사가 가장 정직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아닌 모양이다. 기후변화나 가축질병 또는 국제 곡물값에서 일이 벌어지면, 1년 농사 꼼짝없이 포기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하늘만 바라보고 천수답 농사를 짓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정부까지 농산물 수입에 직접 나서면서, 농사의 예측가능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판에 이마트 같은 유통대기업들은 농민들을 상대로 인정사정없는 가격 후려치기에 나서기 일쑤이다.

최근에 여러 선진국의 농업과 협동조합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결론은 두가지다. 선진국의 농사는 여전히 땀흘린 만큼 보상받는 정직한 생업이고, 협동조합이 농민의 정직한 소득을 보장하는 최선의 장치라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70대 농부 에릭 레이는 평생 소젖 짜는 일로 여섯 자녀를 출가시켰다. 농장 깨끗하게 관리하고 우유 품질 잘 유지하는 게 자신의 일이고, 우유 수집과 가공 및 수출은 모두 협동조합기업 폰테라(Fonterra)가 책임진다. 폰테라는 강력한 브랜드로 전세계 시장 개척에 나서고, 낙농가들이 100% 지분을 갖고 있으니 납품가격을 후려칠 이유도 없다.

키위를 수출하는 협동조합기업 제스프리 또한 2700여 생산농가들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농민들은 세계 제1의 키위 브랜드인 제스프리가 정해준 ‘스펙’에 맞춰 최상품을 생산하고, 그만큼 알찬 수입을 얻는다. 경쟁국인 이탈리아나 칠레의 농가보다 50% 이상 높은 가격을 보장받고 있다. 폰테라와 제스프리는 기후변화와 각종 질병에 대응하고 국제가격 변동을 완충하는 구실도 당연히 맡는다. 폰테라와 제스프리가 농가소득을 잘 보장할 수 있도록 뉴질랜드 정부는 수출독점권이란 큰 힘을 보태주었다.

뉴질랜드에 폰테라와 제스프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농협이 있다. 하지만 시장을 장악하는 힘도, 농가소득을 떠받치는 구실도 기대치에 훨씬 못미친다. 영농 후계자를 양성하는 국립 한국농수산대학에서는 협동조합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유엔이 정한 내년 세계협동조합의 해에는 이런 구호가 퍼지기를 기대한다. “정의로운 농업은 협동조합에서 시작한다.”  

ps : 예전 뉴질랜드로 답사를 갔을때 제스프리 키위농장에 들른적이 있다. 아주 인상이 선한(사진이 집에 있어 올리지 못하는데 나중에 올리겠다.) 농장주인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농장을 둘러보았다.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땅에 질소고정식물인 클로버를 심어 키위를 키우고 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애기를 해주셨다. 바로 이런 농부의 자부심이 그 나라 농업의 핵심 키워드이며, 경쟁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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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09-20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사꾼만 도박하지 말라 할 수 없어요.
농사꾼을 뺀 모든 사람들이 도박하는 삶이잖아요.

햇빛눈물 2011-09-20 13:49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씁쓸하지만 그렇기도 하네요.
 

2007년 뉴질랜드 답사 이후 아주 오랜만에 해외 답사를 나왔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하지만 왜 가고 싶어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인도. 

이번 여행은 가고 싶은 마음과 가기 싫은 마음이 마구마구 교차되는 여행이었다. 떠나는 날까지 날 아주 괴롭게 했었다. 

이제 혼자가 아니다 보니, 집 생각과 아이 생각 와이프 생각에 어디 나와도 맘이 편치 않다. 다음에는 좀 참았다. 규진이 크면 같이 와야 겠다. 

전에는 어디 해외 간다고 하면 여행 책자를 사거나 인터넷을 통해 여러가지 내용들을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렇지 않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손에 쥐어졌다. 예전에 사 놓고 읽진 않은 책이다. 책 내용을 대충 알기에 내가 왜 이 책에 손이 가는지는 이해간다. 

  

하지만 내내 드는 생각은 인도와 이 책은 참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난 개인적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부류이기 때문에 인도에 며칠 있지 않았지만 내내 불편할 뿐이다. 뭐 지저분한 환경과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이름 모름 '신'을 모시고 있는 사당 비슷한 장소와 그곳에서 생각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그 옆에서 똥 싸는 소. 그리고 구걸을 하는 노숙자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떤 나라기에 이런 .... 이해하기 힘들다. 

어제 바라나시에 왔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네팔의 룸비니에서 차 타고 8시간을 달려 바라나시에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갠지스 강가에 있는 가트(ghat)에 가 배를 탔다. 때마침 지금이 시바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기간이라고 한다.(약 한 달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이른 새벽부터 무지하게 많았다.  

누가봐도 더러운 물에서 목욕하고 기도하고 빨래하고 좀 떨어진 하류부 화장터에서는 화장을 한 후 타다 남은 재를 강가에 버리는 풍경. 

  

물론, 우리네 개념으로 이들의 생활 환경을 이해할수도 없거니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의 '신'에 대한 믿음이 거리에서 갓난 아이를 업고 1달러를 외치는 아주 젊은 애엄마를, 거지들을, 구걸하는 아이들을 재생산하는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 여행에서 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읽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한다. 

ps : 책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앞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종교 신앙의 요체, 그것의 위세와 주된 영광은 그것이 합리적인 정당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동성애자를 차별하기 위한 법적 소송은 이른바 종교적 차별에 반대하는 소송으로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법은 그것을 존중하는 듯하다. "나더러 동성애자를 모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 편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 하지만 "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쨌든 여기서도 종교가 모든 것을 이긴다.

어쨌든, 이들을 비판을수는 있으되, 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개념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킨스식으로 이야기 한다면 "늘 그렇듯이 종교는 으뜸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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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개인적으로는 번역이 좀 이해불가여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그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인도에 계시는군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햇빛눈물 2011-08-10 16:57   좋아요 0 | URL
네, 좀 전에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인도를 무어라 무어라 애기하곤 하는데, 전 솔직히 너무 별로였습니다. 물론 제가 있는 그 짧은 기간동안 제가 무얼 알겠냐마는, 좀 인도여행에 대한 '거품' 혹은 '환상'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가 '존 레논'은 아니니깐요? 아무나 그럴수 없는데 말이죠. ㅋㅋ 저 또한 마찬가지였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