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일이 있어 을왕리 해수욕장에 갔다, 세미나 시간이 여유가 있어, 혼자 해수욕장을 산책하다 '필'받아 썼던 메모다. 종이가 없어 커피 사며 챙겨 두었던 냅킨에다 메모했다. ㅋㅋ 내가 봐도 난 참 글씨가 정말....ㅠ.ㅠ 정말 나만 알아 볼 수 있는 글씨다.
2011. 12. 28 13시 05분 을왕리 해수욕장
그랬던 것 같다....
쌀쌀한 겨울 날 해수욕장. 아니 바닷가. 더운 여름날의 바닷가 해수욕장이 젊은 청춘들의 욕망의 도가니라면, 왠지 겨울 눈 내리는 바닷가는 좀 더 나이든 청춘(?)들의 작업의 장소 또는 진화의 장소 같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아니 그보다는 겨울 바다라고 하는게 더 좋겠다. 솔직히 난 겨울 바다를 싫어한다. 그리고 바다 보다는 산을 좋아하는 편이다. 산이 좋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듯 하지만, 바다처럼 모든 것이 다 하나가 되어버리지는 않는 산이 좋다. 햇살의 방향, 정도에 따라 대기의 상태에 따라 나무의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산의 풍경, 나무의 모습에서 난 편안함을 느낀다.
수많은 연인들은 보통 산보다는 바다를 겨울 바다를 찾는다. 연인뿐만 아니라 혼자가 된 한때는 연인이었던 이들도 바다를 찾는다. 그들은 왜 바다에 오는 것일까? 바다라는 공간이 겨울이라는 시간적 공간이 어떤 매력, 효용성이 있기에.
사람에게는 누구나 의미 있는 ‘공간’, ‘장소’가 있을 것이다.(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기에 ‘공간’보다는 ‘장소’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때론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그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과 안위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의 겨울 바다가 나에게 그 어떤 ‘감성’을 일깨워 준 것도 나의 의식, 무의식 속에 차디찬 이 바닷바람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시절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발을 동동 거렸지만, 마음만은 너무 뜨거워 내 몸을 주체할 수 없었던 대천 해수욕장의 겨울 바다. 그리고 동해의 경포 해수욕장과 추암 해수욕장, 망상해수욕장.... 내가 보고 밟았던 그 바다의 모래들의 느낌, 경험이 지금의 바다를 보면서 밀려오는 감성의 토대일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의 7할은 남녀 커플이고 그 외의 3할 정도는 여럿이 온 친구 그룹이나 혼자 온 이들이다. 과연 겨울 바다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무엇을 바라고 바다에 왔을까? 바다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을까? 구체적인 ‘장소’의 추억이 인간의 기본기를 만드는 건 아닐까? 추운 겨울 바닷바람을 쐬며 별 싱거운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