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일이 있어 을왕리 해수욕장에 갔다, 세미나 시간이 여유가 있어, 혼자 해수욕장을 산책하다 '필'받아 썼던 메모다. 종이가 없어 커피 사며 챙겨 두었던 냅킨에다 메모했다. ㅋㅋ 내가 봐도 난 참 글씨가 정말....ㅠ.ㅠ 정말 나만 알아 볼 수 있는 글씨다.

 

 

2011. 12. 28 13시 05분 을왕리 해수욕장

 

그랬던 것 같다....

 

쌀쌀한 겨울 날 해수욕장. 아니 바닷가. 더운 여름날의 바닷가 해수욕장이 젊은 청춘들의 욕망의 도가니라면, 왠지 겨울 눈 내리는 바닷가는 좀 더 나이든 청춘(?)들의 작업의 장소 또는 진화의 장소 같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아니 그보다는 겨울 바다라고 하는게 더 좋겠다. 솔직히 난 겨울 바다를 싫어한다. 그리고 바다 보다는 산을 좋아하는 편이다. 산이 좋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듯 하지만, 바다처럼 모든 것이 다 하나가 되어버리지는 않는 산이 좋다. 햇살의 방향, 정도에 따라 대기의 상태에 따라 나무의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산의 풍경, 나무의 모습에서 난 편안함을 느낀다.

 

수많은 연인들은 보통 산보다는 바다를 겨울 바다를 찾는다. 연인뿐만 아니라 혼자가 된 한때는 연인이었던 이들도 바다를 찾는다. 그들은 왜 바다에 오는 것일까? 바다라는 공간이 겨울이라는 시간적 공간이 어떤 매력, 효용성이 있기에.

 

사람에게는 누구나 의미 있는 ‘공간’, ‘장소’가 있을 것이다.(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기에 ‘공간’보다는 ‘장소’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때론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그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과 안위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의 겨울 바다가 나에게 그 어떤 ‘감성’을 일깨워 준 것도 나의 의식, 무의식 속에 차디찬 이 바닷바람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시절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발을 동동 거렸지만, 마음만은 너무 뜨거워 내 몸을 주체할 수 없었던 대천 해수욕장의 겨울 바다. 그리고 동해의 경포 해수욕장과 추암 해수욕장, 망상해수욕장.... 내가 보고 밟았던 그 바다의 모래들의 느낌, 경험이 지금의 바다를 보면서 밀려오는 감성의 토대일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의 7할은 남녀 커플이고 그 외의 3할 정도는 여럿이 온 친구 그룹이나 혼자 온 이들이다. 과연 겨울 바다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무엇을 바라고 바다에 왔을까? 바다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을까? 구체적인 ‘장소’의 추억이 인간의 기본기를 만드는 건 아닐까? 추운 겨울 바닷바람을 쐬며 별 싱거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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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0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바닷가 겨울바람은
참으로 시원하구나 싶어요.

남녘땅 바다는 더욱 한결 따스하면서 시원해요.
겨울에도요~

기회 되시면 전남 고흥 발포 바닷가를 겨울에 와 보셔요 ^^;;;
(너무 멀겠네요 ㅠ.ㅜ)

햇빛눈물 2012-01-09 18:21   좋아요 0 | URL
시원하긴 하죠...ㅋㅋㅋ
제가 전공이 '지리'라서 관심이 많은데 고흥의 발포라...어디서 이름을 좀 들어본것 같은데, 기회되면 꼭 찾아가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청소하고 그동안 와이프는 일을 하고 아점을 먹었다. 그리고 와이프는 피아노를 배우러 학원에 가고 난 학원 근처에 있는 빵집에서 신문과 12월호 르몽드디플로마티크(르디)를 커피 한 잔 먹으며 읽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거의... 아메리카노만 먹었는데 요즘에는 달짝지근한 카페모카가 그렇게 맛날수가 없다. ㅋㅋ

 

오늘자 한겨레신문 기획기사에 인하대 김진방 교수의 인터뷰가 있었다. 상당히 긴 글인데 좋은 글 같아, 줄 친 부분만 옮겨본다. 공교롭게도 2011년 12월 르디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 제목이 <공유지의 비극, 희극으로 바꾸려면>이라는 글인데 공통점은 모두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최초의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한다)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어쩔수 없이 모두 이기적인 동물일까? 공유지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수 있는 것일까? 두툼하지만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한겨레신문 2012.1.4  선택2012-1 경제 민주화  김진방 교수 인터뷰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경제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책에는 수요.공급곡선이 있지만, 세상에는 없다. 경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다. 그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 그래서 개선해야 한다. .... 핵심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자본과 자본의 관계 두 가지로 요약된다. 두 맥락 모두에서 참여가 중요하다. 하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다. .... 기업에 고유한 네트워크나 지식 등을 노동자가 능동적으로 축적하며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 .... 두번째는 자본끼리의 참여다. 지배대주주가 외부 투자자를 적극적을 경영에 참여시켜야 한다.

 

진보는 다르다. 경제 분야에서도 공공성 확대라는 체제의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게 바로 경제 민주화 이슈다. 보수가 강조하는 것은 재분배다. 소득세를 늘리고, 소득 분재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등의 구호를 외칠 것이다. 그 전제는 현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승작독식 질서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진보는 그 질서 자체를 건드려야 한다. ....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핵심 질문은 '우리 경제 체제는 경제의 공공성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경제는 사적 영역이라는 게 보수의 논리, 시장만능주의다. 그런데 자원 생산과 배분은 시장영역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공공영역에도 경제가 있고 생산.배분을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최근까지도 바게트빵 가격을 지방정부가 관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빵값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나 빵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을 경제정책에 반영했다.

 

보편적 복지는 사실 개념 설정이 정확하지는 않다고 본다. .... 수혜자가 국민 전체가 된다거나 무상이 된다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 사실 분노의 이유는 실업이 아니다. 근로빈곤이다. 그런데 다들 일자리 이야기만 하니 답답하다. 일자리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열심히 일해도 어렵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모두가 사익을 추구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어떤 영역, 어떤 집단에서는 이익이나 효용이 아닌 박애.우애.배려.보복심리 등이 작용한다. 요즘에는 경제학도 많이 바뀌었다. 행동경제학, 실험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이타심에 근거한 경제학 연구를 많이 한다. .... 비정규직 문제는 유연성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노동을 분리통치해 교섭력을 낮추는게 문제다. .... 정규직화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데, 어차피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비용은 발생하고 누군가 진다. 누가 지느냐의 문제다. 현재는 약한 개인이 너무 많이 진다. 기업의 부담이 더 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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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5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글을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에서 읽었어요.
시장을 믿는 사람들의 끝을 요즘 보는거 같은데, 미국에서는 다시 공화당이 우세할지 모른다 하네요. 물론 오바마가 민주당이라 하더라도 그다지 잘 한 것은 없지만요.

햇빛눈물님, 너무 오랜만에 들리셔서 새해 인사 못 드렸어요.
새해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지리 관련된 좋은 글들, 올해도 부탁드립니다.

햇빛눈물 2012-01-05 14:54   좋아요 0 | URL
오늘 신문에 보니 공화당 대선주사 첫 경선에서 롬니가 1위를 했다고 나오더군요. 뭐 오바마나 롬니나, 통합진보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이럲식의 정치의식이 무의미하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말할수 밖에 없는 정치 현실이 가끔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되네요. 마녀고양이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알라딘에서 너무 좋은 님들을 알게되서 기분좋은 2011년이었습니다.
 

요즘 하도 게을러져서 블로그에 글 쓰는 것도 한동안 뜸했다. 12월에 본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8.9번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대한 후기도 메모만 해놓고 페이퍼 작성도 못했다. 솔직히 그렇게 바쁘지도 않고 더구나 요즘 방학기간이어서 시간도 얼마든지 충분하지만 늘어지는 요즘이다. 한동안 늘어졌으니 이제는 기운 좀 차려야겠다.

 

오늘자 신문에서 본 기사 하나 스크랩한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실증적 비판서이다. 그런데 책의 저자가 식민지근대화론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주축이 되어 만든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같은 저자의 2005년에 나온 <개발 없는 개발>을 먼저 읽는게 도움이 될 듯 하다. 경제사학의 관점에서 '식민지 개발, 근대화론'의 논리적 허구성을 파헤친 책이니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겨레신문 2012.1.4  식민지근대화론 ‘실증적’으로 비판하다

 

`일제 초기 조선의 농업’ 출간
김제·만경평야 기존 연구 등
농업개발론 실증 비판 초점
개발론·수탈론 치우침없이
‘구조론’ 통해 사실 규명 집중

 

 » 2007년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조정래 작가가 쓴 소설 <아리랑>에 묘사된 전북 김제·만경평야가 1904년 당시엔 바닷물이 수시로 들어오는 갯벌이었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농업이 가능한 지역으로 개발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당시 김제·만경평야는 갯벌이 아니고, 다양한 수로가 만들어져 있는 등 농업이 이뤄지고 있었다”며 “실증적 연구를 철저하게 펴지 못한 식민지근대화론의 오류”라고 주장한다. 한길사 제공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 그 초록색 들판은 누구에게나 한없이 넉넉하고 푸짐하면서도 경건하고 겸손한 마음까지 품게 했다.” (조정래, <아리랑>)

 

“<아리랑>이 시작되는 1904년으로 돌아가면 그 지평선까지는 광활한 갯벌과 소금기로 풀이 죽어 있는 갯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정래는 징게 맹갱 외에밋들의 광활함과 풍요로움을 구성지게 노래했다.” (이영훈, ‘김제 역사의 본류에 진입 못 하고 이방인으로 맴돈 조정래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구별조차 못하는 엠비시(MBC)’, <시대정신> 2007년 가을호)


조정래 작가는 장편소설 <아리랑>을 통해 풍요로웠던 전북 김제·만경평야의 모습과 거기에서 벌어진 일본인들의 참혹한 수탈에 대해 말했고, 경제사학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갖가지 실증자료를 들어 이를 비판하며 ‘일본인들이 개발하기 전 김제·만경평야는 갯벌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2007년 벌어졌던 이 논쟁의 진정한 승자는 과연 누구였는가?

 

6년 전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저작을 통해 ‘실증’을 무기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공격했던 허수열 충남대 교수가 다시 한번 식민지근대화론을 실증적으로 비판한 책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한길사 펴냄)을 펴냈다. 허 교수는 조정래의 ‘수탈론’, 이영훈의 ‘개발론’ 모두 사실로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산더미 같은 자료들을 뒤적여 그가 내린 결론은 매우 건조하다. “일제 초 김제·만경평야는 조정래가 생각한 것처럼 풍요로운 평야지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해안에서 6~7㎞ 떨어진 벽골제 앞까지 갯벌이었다고 본 이영훈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흔히 수탈론과 개발론의 대립으로 압축되는 식민지근대화 논쟁은 여전히 우리 역사학계의 가장 큰 화두다. 최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자유민주주의 논쟁’과 같은 역사 인식의 대립도, 그 근원을 따져올라가다 보면 일제강점기에 대한 해석의 대립에 닿는다.

 

특히 실증적 방법론을 내세운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기존 민족주의 사학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식민지근대화론의 진앙지라 할 수 있는 낙성대연구실(현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창립 멤버였던 허 교수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논쟁을 제기한다. 곧 식민지근대화론이 보여주는 실증적 연구가 도리어 실증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각종 통계와 사료, 지도 등 엄청난 규모의 실증적 자료 분석을 담은 이 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이 강조해온 농업개발론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제시대 농업연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는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김낙년 엮음)이 정리한 일제시대 조선의 국내총생산(GDP) 추계다. 이 자료에서 나타난 1910~1945년 사이 농업생산의 성장에 따른 국내총생산의 비약적 증가는 ‘일제시대에 근대적 개발이 이뤄졌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기초적인 근거가 됐다.

 

그러나 허 교수는 “1910년대의 국내총생산 통계는 과소평가되어 있으며,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다면 일제강점기 때 비약적 성장이 있었다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농업생산량 통계의 작성법은 1908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1915년 관련 훈령이 나오면서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됐기 때문에, 1917년까지의 통계는 아직 체계화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조선총독부가 1918년과 1919년 <통계연보>에서 과거 통계들을 수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김제·만경평야에 대한 연구는 이런 큰 문제의식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방법 가운데 하나다. ‘벽골제가 저수지가 아닌 방조제였고 그 앞까지는 갯벌이었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당시 보잘것없던 한국의 농업생산력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실증적 접근을 편 허 교수는 “벽골제는 저수지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종합적으로 볼 때 김제·만경평야에는 농업용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정상적인 농업이 이뤄졌다”고 결론짓는다. 이밖에도 재배면적과 농업기반시설의 변화, 우량품종의 보급 등 다양한 농업생산 요소들을 검토한 연구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농업생산이 급증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장은 사실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했다고 해서 무작정 전통적인 수탈론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수탈은 생산수단이 일본인 수중으로 집중되고, 소득이 민족별로 불평등하게 되고, 그것이 민족차별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이 확대 재상산되는 식민지적 경제구조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허 교수는 개발론과 수탈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총체적인 구조를 보는 ‘구조론’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책의 첫머리에서 “서로 다른 이론의 안경을 쓴 과학자에게는 같은 사실도 다르게 보인다”는 미국 경제학자 새뮤얼슨의 경구를 인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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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1 (금) 서울시향 말러 교향곡 7번 성시연 부지휘자

역시나 공연 후기 페이퍼를 느즈막히 작성한다.(이번주 금요일에는 9번 교향곡이 잡혀있다) 요즘 ‘말’들이 많다. 정명훈 서울시향 음악감독의 연봉이 20억이 넘으며 너무 과하다고 말이다. 사실 연봉은 2억이 조금 넘는다. 문제는 그 이외의 부수 비용과 그 지출내역이 문제다. 제대로 회계처리가 되지 않은 듯 하다. 

그런데 이 논쟁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하다. 왜 소수의 사람들만이 듣는 클래식 음악에 그것도 우리 음악도 아닌 서양음악에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가, 그 돈 있으면 ‘국악’에나 투자해야 한다. 이런 식의 비판은 정말 아닌 듯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 서울시장을 지지한다. 그리고 정명훈 지휘자의 정치적인 색깔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정명훈 지휘자의 음악은 좋아한다. 그리고 그의 취임 이후 서울시향의 발전은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디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이제 공연 애기를 해보자. 벌써 1년이 지났다. 작년 8월 26일 말러 교향곡 2번의 감동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그 전에도 말러의 교향곡을 좋아했지만, 그 날의 공연 이후 더한 애착과 ‘실연(實演)’ 감상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교향곡 10번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명훈 지휘자가 아닌 성시연 부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았다. 제임스 드프리스트의 교향곡 10번 공연(사실 이 날 공연도 다른 어떤 공연보다 상당히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때는 객석의 빈자리가 꽤 보여서 이번 공연에서도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날 첫곡은 Wagner의 Lohengrin 1막 전주곡이다. 예습은 DG에서 1971년 녹음한 Rafael Kubelik 지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의 연주를 들었다. 아직 오페라를 듣고 있지는 않아 느낌은 사실 별로다. 오페라 전주곡 정도 듣는 정도이니, 하여튼 이 음반은 로엔그린 음반중 손에 꼽히는 명반이라고 불리우는데 음질은 그렇게 좋지는 않는 듯 하다.  



서울시향의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의 러닝타임은 8분 30초 정도였다. 다른 연주와 대동소이한 수준이였다. 도입부에 천천히 이어지는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의 묘한 멜로디 라인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음반으로 들을 때는 그렇게 따로 구분해서 듣지는 않는 편이지만 공연장에서 보게 되면 눈에 보이는 연주자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자연스럽게 구분해서 듣게 된다. 그러면서 악기에 대해서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하여튼 도입부 주요 멜로디 라인의 선율 처리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담백하면서도 유려하다. 그리고 호른의 소리도 상당히 깨끗하다. 이런적 처음이다. 살짝 아쉬운 점은 후반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의 심벌즈의 소리가 너무 소심하게 처리된 듯 하다.

드디어 말러 교향곡 7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이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이들이 이 곡을 어려워 하는 것 같다. 우선 예습은 크게 두 앨범으로 들었다. SONY에서 1965년 녹음한 Leonard Bernstein과 New York Philharmonic의 앨범, 그리고 Hanssler에서 1993년 녹음한 Michael Gielen과 SWR Sinfonieorchester Baden-Baden und Freiburg의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인 이 곡의 나름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이는 ‘길렌’ 옹이다. Hanssler에서 나오고 있는 그의 앨범들의 경우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그렇게 쉽지 않아 가지고 있는 것은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다행히 음원으로는 좀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그를 알게 된 것은 헌책방(신촌에 있는 ‘숨어있는책’)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을 때이다. 그때 들은 곡은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이었다. 내가 처음 브루크너 교향곡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교향곡 3번 부터였다. 헌책방에서 이리저리 책을 고르며 귀에 들어오는 길렌 옹의 브루크너 사운드를 들으며 기분 좋게 책들 사이를 헤매던 기억이 난다. 책을 구매한 이후에 친절하신 사장님께 음반을 빌려 들어보게 되었다.  



나 같은 경우 아직 애기가 어려 집에서 여유 있게 오디오에 CD를 넣고 감상을 하지는 못하고 거리를 헤매며 헤드폰(AKG K-450 3년 정도 전에 샀는데, 크기도 적당하고 소리도 괜찮은 듯 하다. 다른 놈 하나를 사고 싶은데 혹 좋은 헤드폰 아시는 분?)을 통해 듣거나 운전(이번에 새로 산 차가 Bose 스피커가 달려 있어 나름 들을만 하다)을 하며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길렌의 말러 7번의 경우 1악장 도입부터 내 귀에 ‘쏙’ 들어왔다. 음질도 상당히 맘에 들었다. 멜로디의 변화가 크고 소리의 폭이 큰 이 곡의 경우 잘 못하면 귀가 상당히 피로할 듯 한데, 79분이나 되는 이 곡을 상당히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Gustav Mahler Sinfonie No.1 4mov Sinfonieorchester des Südwestfunks
Dirigiert von Michael Gielen Freiburg, 2002 

그러면 서울시향 성시연 부지휘자의 말러 7번은 어떨까? 1악장. 러닝타임은 21분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다들 기대하고 있을 도입부의 테너호른(실제로는 처음 봤다. 연주자가 악기를 잡는 방법이 좀 특이하다) 솔로. 연주자도 외국인으로 전용 연주자를 따로 기용한 듯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처음부터 어긋난다. 도입부의 “빰빠~빰빰~~”하는 부분부터 이상하다 싶더니 중간부분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이탈이 발생했다. 번스타인의 1965년 앨범처럼 당당하게 쭈욱 뻗어나오길 기대했는데 너무 과한 기대였나? 그리고 워낙 튀는 부분이라 조금의 음이탈도 귀에 쏘옥 들어올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아쉬웠다. 그 이후 보니 연주자의 얼굴도 멀리 있는(난 항상 2층 A블록 맨 오른쪽 통로 부분에 앉는다) 나에게 보일 정도로 티나게 좀 붉어진 듯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 자신감이 상실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호른 파트는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서울시향의 공연 후기를 쓰며 항상 언급하는 부분이 호른 파트의 약점이었는데, 오늘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1부의 로엔그린 1막 전주곡에서도 느낀점이지만, 오늘 호른 파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보였다. 호른 부수석인 미샤 에마노프스키(Michal Emanovsky)의 오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나머지 한명 전 6번 공연때 보였던 인물인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1악장의 발전부 초기 부분의 바이올린 소리는 신경질적으로 들리더니 끝부분 하프의 아름다운 소리에 이어지는 바이올린 솔로는 왠지 전체 음악과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확연히. 'solo'라고 하면 왠지 "나야 어때 멋있지.."해야 할 것 같은데, 이때는 "제 뭐야 별것도 아니네..."하는 듯한 인상이라고 할까?  

사실 1악장 중 최고(?)는 후반부였다. 언제나 만족감을 주는 팀파니 수석 아드리앙 페뤼숑(Adrien Perruchon)도 후반부에서 실수를 한 듯 보였다. 치면 안되는 부분에서 한 번 친 듯 보였다. 이것은 다분히 내 느낌이다. 미묘한 연주자의 표정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는 완전히 모든 악기들이 따로 노는 듯 했다. 비유하자면 지휘자 4명이서 연주를 하는 듯 했다. 연주자들이 집중도가 확연히 떨어지는 듯 보였다. 당연히 잔실수도 많이 들렸다. 그런데 당시 공연장에서 듣기에도 이 곡은 지휘자건 연주자건 상당히 까다로운 듯 한건 사실이다.

2악장 ‘Nachtmusik I’이다. 러닝타임은 15분 약간 넘은 듯 했다. 다른 곡들도 찾아보면 14분에서 17분 정도로 연주되고 있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긴 시간은 EMI에서 1968년 녹음한 클렘페러와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음반으로 22분이다. 2악장 또한 음산한 호른 솔로 파트가 시작을 알린다. 그에 이은 클라리넷. 정말 ‘베리 굿’이다. 서울시향의 목관 특히 클라리넷 파트는 지금까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으레 그러려니 한다.(ㅋㅋ) 그러나 전체적으로 패시지(passage)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딘지 자꾸 귀에 거슬린다. 단순히 원래 곡의 특징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상당히 많은 부분이었다. 2악장을 들으며 드는 생각은 확실히 어려운 곡이라는 생각이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려지면 ‘삼천포’로 가기 딱 쉬울 듯 하다.

3악장 Scherzo이다. 런닝타임은 10분 정도이다. 아르떼 TV를 통해 몇 번 본 성시연 지휘자의 모습도 그랬지만(물론 머리스타일은 조금 바뀌었다) 지휘 동작을 보면 나에게는 좀 부담스럽다. 좀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감정의 쓰나미’? 하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검은색 연미복의 안감이 보였다. 그런데 검은색과 너무 대비되는 분홍색이었다. 내 스타일이 뭘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보는 스타일이라 이런 것 까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쓰고 보니 내 자신이 좀 웃기긴 하다.

연주 내내 느끼는 거지만, 이번 연주에서는 유독 지휘자가 첼로 파트를 보지 않았다. 지휘자 왼쪽부터 1바이올린,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연주 내내 첼로쪽은 보지를 않는게 아닌가? 왜 그런지 지금도 궁금하다. 참고로 이날 첼로 수석은 이정란 부수석이 맡았다. 완전히 상황이 첼로 파트가 지휘자에게 ‘따’ 당하는 느낌이었다.(심지어는 4악장 첼로 솔로 파트에서 조차 눈길을 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예민했던 걸까? 그리고 재미있던 사건은 연주를 들으면 정명훈 지휘자처럼 암보로 지휘하는 사람도 있고 간단한 총보를 보고 지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날 성시연 지휘자는 조그만 총보 두고 지휘를 했는데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왠지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나에게는 크게 느껴진다. 지휘자가 그렇게 크게 소리날 만큼 총보를 넘기는게 무슨 의미였을까? 긴장을 했다. 아니면 뭔가 연주에서 틀리거나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신경질적이었다? 하여튼 별 생각을 다하는 듯하다!!

다시 Nachtmusik II이다. 4악장의 러닝타임은 14분 정도이다. 4악장의 백미는 1바이올린 맨 뒤편에 있던 기타와 만돌린이었다. 음반으로만 들을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이 악기들의 매력 말이다. ‘띵띵띵띵...’하는 소리가 아주 묘하게 들렸다. 타악기 주자들은 편히 쉬고 있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듯 말이다. 그런데 불연 듯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지휘자들의 왼손과 오른손 지휘봉의 움직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물론 지휘법과 관련된 책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 손대기는 힘들 것 같다. 하여튼 궁금하다. 그리고 왼손으로 지휘봉을 드는 지휘자들도 있을까?  

  

 

Gustav Mahler, Symphony No. 7 Mov. 5, "Rondo-Finale: Tempo I (Allegro ordinario)"
Conducted by Leonard Bernstein, Wiener Philharmoniker  

대망의 5악장이다. 러닝타임은 17분 30초 정도로 평이한 수준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성공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5악장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5악장이 어색하기도 하련만 시작을 알리는 페뤼숑의 팀파니 타격은 정말 발군의 실력이었다.(아마도 4악장에서 쉬면서 힘을 많이 비축한 듯 하다. ㅋㅋ) 또한 발전부에 나오는 팀파니 솔로 부분은 거의 드러머의 현란한 움직임과 다르지 않았다.(그러고 보니 팀파니의 북도 5개였다.) 왼손, 오른손 반대로 움직이며 타격하는 모습은 전성기 젊은 시절의 메탈리카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rich)를 보는 듯 했다.  

철학자이자 음악학자인 아도르노는 5악장에 대해 “화려한 외부와 궁핍한 내부 사이의 불균형”이라 비판했고, 음악학자 데릭 쿡 역시 이 악장을 실패작으로 애기 했다고 한다. 물론 전문적이 식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의 ‘복잡’한 의견일 것이다. 범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밤의 노래’라고도 불리는 음악에 난대 없이 튀어나오는 ‘팡파르’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난대없다’는 건 역시나 전문적 식견 없는 나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이제 3일만 있으면 말러의 9번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있으면 대망의 8번 ‘천인 교향곡’도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아쉽기도 하다. 다음에 꼭 다른 악단이든 서울시향이든 말러 치클루스를 진행 했으면 한다. 하지만 다행히 내년 서울시향 시즌 티켓을 전체 패키지로 싸게 구매해서 정명훈 지휘의 1월 13일 볼로도스와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부터 12월 28일 대망의 베토벤 교향곡 9번까지 표를 벌써 예매해 두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공연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벌써 기대된다. 
  

ps : 내년 시즌 프로그램은 보면 객원지휘자들의 면모가 상당히 매력적인건 사실이지만, 정명훈 음악감독의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이 정도면 사실 상임 지휘자라고 애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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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때는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물론 혼자. 왜? 혼자 볼 수 밖에 없을만큼 내 주위에 같이 영화를 볼만한 사람도 없기도 했고, 내가 보고자 하는 영화들이 죄다 다른 사람들은 제목도 모르는 영화들이다 보니 어쩔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정말 좋았다. 지금은 자리가 옮겨진것 같은데, 낙원상가에 있는 필름포럼이 나의 아지트였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였던것 같다. 

그때 봤던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 왜그런지 제목은 죄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튼 그 큰 극장에 나 포함 5명 정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곤했다.  

그 후로 영화를 본 일이 별로 없다. 보긴 봤지만.('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도...) ...그런데 최근에 나를 극장으로 이끌 아주 흥미로운 영화 두 편이 있다. 장애인 부부의 부부이야기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과 한국판 식코라 불리는 의사출신 송윤희 감독의 '하얀정글'이다. 

물론 둘다 다큐 영화이다. 내 취향이 다큐를 좋아하다보니...이 영화들은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적어도 '달팽이의 별'만큼은... 왠지 눈시울을 촉촉히 적셔줄 그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오늘 신문에 실린  '달팽이의 별'관련 기사이다. 

한겨레신문 2011.12.5  “우리가 놓친 현실이 주는 따스한 전율이 좋다” 

  

» 암스테르담 다큐국제영화제에서 <달팽이의 별>로 아시아 최초로 대상을 받은 이승준 감독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사무실 커다란 포스터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제에 따라간 7살 딸이 엄마랑 먼저 귀국하며 보채듯 물었다. “우리 가고 아빠가 상 받으면 어떡해?” 사실 아빠도 ‘설마설마’했다. 본선 16편 장편경쟁작에만 뽑혀도 영광으로 여기는 최고 권위 다큐멘터리 영화제. 게다가 독일의 세계적인 거장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작품과 본선에서 겨루는 상황에서 아빠는 “수상은 생각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편 부문 대상이라니. “장애인 부부의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와 삶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담고 있다” “난 독신인데 부부를 보고 결혼하고 싶어졌다” 등의 언론과 관객의 호평이 쏟아졌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던 딸이 옆 환자에게 자랑하듯 말을 건넸다고 한다. “우리 아빠가 만든 <달팽이의 별> 아세요?”

1일 서울 시내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준(40) 감독은 케이블채널에서 방송될 ‘트로트 관련 다큐’를 편집하고 있었다. “(독립 다큐 피디로서) 먹고살아야 하니까”라며 웃는 그의 어깨 너머로, 지난달 26일 받은 24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대상 트로피가 보였다. ‘다큐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이 영화제의 꽃인 장편에서 아시아 최초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본선에 뽑혔다는 이메일을 받고도 너무 기뻐 혼자 사무실에서 뛰며 소리쳤다”고 했다.

1년 남짓 촬영한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 중복장애인 남편 ‘영찬’씨와 곱사등이 아내가 살아가는 얘기를 담았다. 아내는 눈과 귀가 닫힌 남편의 손등에 손가락으로 점자를 찍는 ‘점화’로 세상의 소리를 전한다.

일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영찬씨는 밝다. 그의 눈엔 어둠이 깔렸지만, 아내를 위해 형광등도 갈아준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니까 소나기를 맞으며 울기도 했다는 아내의 옛 얘기를 듣고선 아내를 더듬어 꼬옥 안아준다. 나무를 껴안고 계절을, 바람을 느끼는 영찬씨의 감각도 쫓아간다. 그들의 곁에 선 카메라의 시선은 따뜻하다.

영찬씨는 말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이 감독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에서 가치를 찾는 영찬씨의 긍정적인 태도와 두 부부의 동화 같은 사랑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2008년 <교육방송>(EBS) <원더풀 사이언스-제2의 뇌, 손>을 연출할 당시 부부를 처음 만났다. 1년 뒤, 중복 장애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킬 생각으로 영찬씨를 만났는데, 그를 잡아끈 건 영찬씨의 웃음이었다.

“영찬씨를 만나러 맥주를 두 병 사갔어요. 대뜸 천상병 시인을 아느냐고 묻더군요. ‘천상병 시인도 생전에 지인들이 캔맥주나 페트병을 사오면 호통을 쳤대요. 맥주는 병에 들어야 제맛이죠’라며 웃더군요. 그 웃음을 보고 이 사람의 인간적인 매력을 담고 싶어졌죠.”  

 

영화는 한 장애인이 힘들어하고, 버텨내고, 희망을 찾는 수순을 밟지 않는다. “동정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을 그들도, 나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는 “내가 드디어 해냈고, 우리가 해냈다”고 말했다. ‘우리’라 한 것은 2억원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가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펀드, 미국 시네리치 제작지원 펀드, 한국 교육방송, 일본방송 <엔에이치케이>(NHK), 핀란드 국영방송 <위엘에>(YLE) 등의 다국적 제작비 지원을 받아서다. 외국을 돌며 작품가치를 직접 홍보한 결과다.

그는 “사실 내가 한 방법도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큐 감독들과 제작비를 지원하는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연결해주는 통로와 지원제도가 국내에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에 자신의 다큐작품을 납품해온 그가 다큐영화로 확장한 것은 독립피디로서의 활로를 모색한 것이다. 그간 독립피디들은 방송사로부터 형편없는 제작비를 받고도 한번 방송되면 저작권이 방송사에 귀속돼 직접 작품을 해외에 팔거나, 극장에 거는 등의 2차 저작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다국적 제작비를 끌어들여 방송·영화에 동시에 상영할 작품을 스스로 만든 이유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큐 감독이 꿈이었다는 그는 느릿느릿 걸으며 우리가 놓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 ‘달팽이 다큐 감독’을 자처했다.

“다큐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큐의 팩트(사실)가 주는 전율감이 어렸을 때부터 좋았어요. 휴머니즘이 잔잔하게 묻어나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달팽이의 별>은 내년 3월 개봉을 준비중이다. 시청각 장애인도 볼 수 있게 음성해설과 자막을 넣은 ‘배리어프리 영화’로도 동시 제작한다. 영화를 미리 본 기자로서 덧붙이자면, 관객들이 이 영화를 4개월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건 너무 길고 고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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