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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본 영화는 <부러진 화살>. <도가니>와 마찬가지로 사법부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 비판을 제기하게 된 영화인지라 영화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지막 장면(극중 김경호가 호송차에서 내리는 수인들에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는 교도관들에게 '인권', '권리' 등을 애기하며 따지며 교도관들의 이름을 손바닥에 적는 장면)이 못내 아쉬웠다. 보면서 뭔가 불편한 심기가 느껴졌다. 나도 어쩔수 없이 '보수'적인 마인드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앞 뒤 상관가리지 않고 '인권', '교도관근무수칙'같은 원리원칙적인 애기만 하는 그의 태도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 원칙을 따지고 교도소에서 독학으로 법전을 공부해서 검사와 판사와 대거리를 할 수 있는 그 힘이 대부분의 소시민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너무 자신만 아는 위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임은 어쩔수 없을 것이다.)


극중 김경호 교수의 성격이 외곬수에다 자기와 수가 틀리면 '꼴통', '쓰레기'라는 등의 독설을 내뱉는 지극히 사회성 없는 인간이라는 내용이 많이 알려졌다. 영화에 좀 실망을 느껴 원작이 된 책이 궁금해 검색을 해보니 전문 인터뷰어인 서형씨가 쓴 책이었다. 


책의 머리말에 보니 서형씨도 인터뷰를 하면서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나보다. 어려운 사람인듯 하다. 하여튼 이 사건은 사실 김명호 교수 개인의 성격이 이렇다 저렇다 할 필요는 없는 사안이다. 재판을 '법'대로 하지 않는 사법부의 문제에 있기에.


검색을 해보니 김명호 전 교수가 책을 냈다. 제목 또한 그의 성격이 느껴진다. <판사 니들이 뭔데?> 어째 보면 시원할 수 도 있겠다 싶다. 챙겨봐야 겠다.


ps : <판사 니들이 뭔데?>의 출판사 제목부터 아주 직설적이다. 석궁이 겨누고 있는 화살촉처럼. '석궁김명호출판사'. 개인 출판사인듯하다. 그러니 이름이 이렇게 지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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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물론 혼자. 왜? 혼자 볼 수 밖에 없을만큼 내 주위에 같이 영화를 볼만한 사람도 없기도 했고, 내가 보고자 하는 영화들이 죄다 다른 사람들은 제목도 모르는 영화들이다 보니 어쩔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정말 좋았다. 지금은 자리가 옮겨진것 같은데, 낙원상가에 있는 필름포럼이 나의 아지트였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였던것 같다. 

그때 봤던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 왜그런지 제목은 죄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튼 그 큰 극장에 나 포함 5명 정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곤했다.  

그 후로 영화를 본 일이 별로 없다. 보긴 봤지만.('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도...) ...그런데 최근에 나를 극장으로 이끌 아주 흥미로운 영화 두 편이 있다. 장애인 부부의 부부이야기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과 한국판 식코라 불리는 의사출신 송윤희 감독의 '하얀정글'이다. 

물론 둘다 다큐 영화이다. 내 취향이 다큐를 좋아하다보니...이 영화들은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적어도 '달팽이의 별'만큼은... 왠지 눈시울을 촉촉히 적셔줄 그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오늘 신문에 실린  '달팽이의 별'관련 기사이다. 

한겨레신문 2011.12.5  “우리가 놓친 현실이 주는 따스한 전율이 좋다” 

  

» 암스테르담 다큐국제영화제에서 <달팽이의 별>로 아시아 최초로 대상을 받은 이승준 감독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사무실 커다란 포스터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제에 따라간 7살 딸이 엄마랑 먼저 귀국하며 보채듯 물었다. “우리 가고 아빠가 상 받으면 어떡해?” 사실 아빠도 ‘설마설마’했다. 본선 16편 장편경쟁작에만 뽑혀도 영광으로 여기는 최고 권위 다큐멘터리 영화제. 게다가 독일의 세계적인 거장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작품과 본선에서 겨루는 상황에서 아빠는 “수상은 생각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편 부문 대상이라니. “장애인 부부의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와 삶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담고 있다” “난 독신인데 부부를 보고 결혼하고 싶어졌다” 등의 언론과 관객의 호평이 쏟아졌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던 딸이 옆 환자에게 자랑하듯 말을 건넸다고 한다. “우리 아빠가 만든 <달팽이의 별> 아세요?”

1일 서울 시내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준(40) 감독은 케이블채널에서 방송될 ‘트로트 관련 다큐’를 편집하고 있었다. “(독립 다큐 피디로서) 먹고살아야 하니까”라며 웃는 그의 어깨 너머로, 지난달 26일 받은 24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대상 트로피가 보였다. ‘다큐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이 영화제의 꽃인 장편에서 아시아 최초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본선에 뽑혔다는 이메일을 받고도 너무 기뻐 혼자 사무실에서 뛰며 소리쳤다”고 했다.

1년 남짓 촬영한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 중복장애인 남편 ‘영찬’씨와 곱사등이 아내가 살아가는 얘기를 담았다. 아내는 눈과 귀가 닫힌 남편의 손등에 손가락으로 점자를 찍는 ‘점화’로 세상의 소리를 전한다.

일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영찬씨는 밝다. 그의 눈엔 어둠이 깔렸지만, 아내를 위해 형광등도 갈아준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니까 소나기를 맞으며 울기도 했다는 아내의 옛 얘기를 듣고선 아내를 더듬어 꼬옥 안아준다. 나무를 껴안고 계절을, 바람을 느끼는 영찬씨의 감각도 쫓아간다. 그들의 곁에 선 카메라의 시선은 따뜻하다.

영찬씨는 말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이 감독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에서 가치를 찾는 영찬씨의 긍정적인 태도와 두 부부의 동화 같은 사랑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2008년 <교육방송>(EBS) <원더풀 사이언스-제2의 뇌, 손>을 연출할 당시 부부를 처음 만났다. 1년 뒤, 중복 장애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킬 생각으로 영찬씨를 만났는데, 그를 잡아끈 건 영찬씨의 웃음이었다.

“영찬씨를 만나러 맥주를 두 병 사갔어요. 대뜸 천상병 시인을 아느냐고 묻더군요. ‘천상병 시인도 생전에 지인들이 캔맥주나 페트병을 사오면 호통을 쳤대요. 맥주는 병에 들어야 제맛이죠’라며 웃더군요. 그 웃음을 보고 이 사람의 인간적인 매력을 담고 싶어졌죠.”  

 

영화는 한 장애인이 힘들어하고, 버텨내고, 희망을 찾는 수순을 밟지 않는다. “동정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을 그들도, 나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는 “내가 드디어 해냈고, 우리가 해냈다”고 말했다. ‘우리’라 한 것은 2억원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가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펀드, 미국 시네리치 제작지원 펀드, 한국 교육방송, 일본방송 <엔에이치케이>(NHK), 핀란드 국영방송 <위엘에>(YLE) 등의 다국적 제작비 지원을 받아서다. 외국을 돌며 작품가치를 직접 홍보한 결과다.

그는 “사실 내가 한 방법도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큐 감독들과 제작비를 지원하는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연결해주는 통로와 지원제도가 국내에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에 자신의 다큐작품을 납품해온 그가 다큐영화로 확장한 것은 독립피디로서의 활로를 모색한 것이다. 그간 독립피디들은 방송사로부터 형편없는 제작비를 받고도 한번 방송되면 저작권이 방송사에 귀속돼 직접 작품을 해외에 팔거나, 극장에 거는 등의 2차 저작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다국적 제작비를 끌어들여 방송·영화에 동시에 상영할 작품을 스스로 만든 이유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큐 감독이 꿈이었다는 그는 느릿느릿 걸으며 우리가 놓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 ‘달팽이 다큐 감독’을 자처했다.

“다큐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큐의 팩트(사실)가 주는 전율감이 어렸을 때부터 좋았어요. 휴머니즘이 잔잔하게 묻어나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달팽이의 별>은 내년 3월 개봉을 준비중이다. 시청각 장애인도 볼 수 있게 음성해설과 자막을 넣은 ‘배리어프리 영화’로도 동시 제작한다. 영화를 미리 본 기자로서 덧붙이자면, 관객들이 이 영화를 4개월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건 너무 길고 고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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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기사에서 아주 오랜만에 기분 좋은 내용을 봤다. 우리네 국악 음반이 국내 발매 음반으로는 처음으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조금씩 나오는 국악음반에 관한 소식도 조금씩 듣고 있어서 국악 음반을 출시하는 '악당이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뭐 우리끼리 인정하고 뭐 그러면 되겠지만, 그래도 권위있는 단체에서 인정해주는 거니 뭐 기분 나쁜 일은 아닐게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왜 우리네 음악 시상식에서는 국악에 대한 국악 음반에 대한 시상 소식은 없는 것일까?  

얼마전에 판소리와 관련된 다큐 영화 <탱큐 마스터 킴>이 소개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이먼 바커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재즈 드러마가 세습무속인인 고 김석출씨의 장구 연주를 듣고 한국의 소리에 매료되어 그 후 7년 동안 17번이나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국악을 소리를 배우고 겪은 내용이 주된 다큐의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이 다큐를 보지는 못했지만, 개봉할 당시 번뜻 든 생각은, 왜 우리들이 먼저 우리의 것에 대한 인정을 해주지 못하고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이번 <악당이반>에서 출시한 국악음반의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일 또한 기쁘면서도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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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1.9.6   전통 가곡 담은 국악음반 국내 첫 그래미상 후보에 올라

전통 가곡을 담은 국악 음반이 국내 음반 사상 최초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국악 전문 음반사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51)는 5일 음반 <정가악회 풍류 Ⅲ-가곡>이 내년 봄 열리는 제54회 그래미상에서 ‘서라운드 사운드’와 ‘월드뮤직’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통보를 그래미상사무국 쪽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클래식, 가요, 전통음악을 통틀어 국내에서 레코딩된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1957년 제정된 그래미상은 전미국 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가 1년 동안의 우수한 레코드와 앨범을 선정해 수여하는 음반업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영화의 아카데미상에 비견된다.

가곡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지은 시를 관현반주에 노래로 부르는 문인악의 하나로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국내에서 지난 5월 발매된 「정가악회 풍류 Ⅲ-가곡」은 ‘우조 이수대엽’ ‘우조 두거’ ‘우락’ ‘반엽’ ‘계면조 두거’ ‘평롱’ ‘계락’ ‘편수대엽’ ‘태평가’ 등 9곡을 여창가객 김윤서씨가 노래하고 거문고, 가야금, 대금, 피리, 해금, 단소, 장구로 구성된 정가악회가 연주한 음반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의 대청마루에서 공연하고 녹음했다. 국악 음반으로는 처음으로 일반 CD의 최고 24배 용량에 이르는 월등히 높은 음질인 데다 멀티 채널이 가능한 SACD(슈퍼오디오CD)로 제작해 현장의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가 고스란히 가미된 것도 이 음반의 특징이다. 악당이반은 지난달 31일 국악계 제1호 기술벤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영일 대표는 “유네스코에 등재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에게조차 소외받는 우리 전통 가곡의 가치를 환기시키고 싶어 그래미상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통 가곡이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음악계는 반기고 있다.

국악평론가 정창관씨는 “매년 국내에서 수천 수만장의 음반이 출시되지만 아무도 그래미상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하던 차에, 우리 전통 가곡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우리 음악계의 큰 경사이자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도 “그래미상이 미국 음악제전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권위와 전통을 인정받는 상이기 때문에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커다란 영광”이라며 “우리의 전통음악이 세계적으로 조명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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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2011-10-04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국악은 정말 소중한것입니다. 아끼고 발전시켜 해외에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연주한 정가악회와 음반사의 열정에 감동입니다. 그런데 금년 11월말에야 발표할 그래미상후보를 미국에서도 아직 아무도 모르는데 한국내 언론에서만 이 음반이 그래미 후보에 이미 올랐다고 온통 기사가 나오네요. 혹시 그래미에 접수한것을 후보에 오른걸로 잘못알고 오보를 하고 있는듯도 합니다. 부디 오보가 아니고 11월말 공식발표에서 정식후보로 지명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햇빛눈물 2011-10-04 11:1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궁금해서 지금 악당이반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니 정식 후보는 아닌 것 같네요. 역시나...평소에 관심 없다 기사거리다 싶은지 과장 기사를(아니면 평범한 이들이 충분히 오해할만한 기사) 쓴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러다 정식후보에서 탈락되면 그 충격이 클 것 같네요. 어제 KBS클래식 FM(어떤 프로인지는 기억이 설겆이 하다 들어서...ㅋ)에서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의 인터뷰가 나오더군요. 살짝 우리것에 대해 무관심한 이 사회에 대한 불만이 들어난 듯 하여 씁쓸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난 마광수의 글을 좋아하게 됬다. 뭐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의 독특한 성적 관념도 사실 난 별로 관심이 없다. 그의 독특한 페티쉬즘 더더군다나 관심이 없다.(솔직히 나도 요즘 이상하게 끌리는 부분이 있다. 예당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면 멀리서 여자들의 검은 정장에서 특히 바지와 구두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 스타킹 부분이 눈에 띈다. ㅋㅋ) 하지만 그의 글은 재미있다. 도발적인듯 하며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글이 재미있다. 에둘러 애기하지 않고 그냥 들이대는 듯한 글이 좋다.(그렇다고 그의 사랑의 핵심은 '성욕'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의 책이 뭐가 있나 찾아 보니 몇권 된다. 신간 '페티시 오르가즘'과 '돌아온 사라'는 지금 검색을 해서 알게 되었다. 나머지 책들은 집에 있는 책들이다. 읽었거나, 읽다 말았거나 앞으로 읽을 책들이다. 

더이상 이 사회가 그에게 돌팔매질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에게 '음란(淫亂)'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으면 한다. 솔직히 그보다 더 '음란(淫亂)' 인간들은 이 세상에 세고 셌다.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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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4.4  “감옥에 갇혀있던 사라 다시 왔다, 또 가둘래?”  

[한겨레가 만난 사람] ‘돌아온 사라’ 출간 앞둔 ‘19금 교수’ 마광수

마광수 교수(연세대 국문과). 한국 사회에서 ‘내놓은 왕따’를 꼽으라면 아마도 첫손가락에 들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60살의 이 독신남자에게 음란물 제조자란 딱지를 붙여놓고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한다. 28살에 교수가 되었고 38살에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책을 쓴 비범한 작가이자 교수였던 그는 41살 때인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냈다가 검찰에 긴급체포돼 미풍양속을 해친 전과자로 전락했다. 그 이후의 삶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엉망’이 되었다. 우울증이 왔고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20여년의 시간 속에서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마광수 문학’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지난해 시집 <일평생 연애주의>(문학세계사)와 올해 들어 <불안>(1996)을 개작한 <페티시 오르가즘>(아트블루)을 낸 데 이어 이달 중에 신작 소설 <돌아온 사라>(아트블루)를 낼 예정이다. 작가에게 <돌아온 사라>는 <즐거운 사라>의 ‘복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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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돌아온 사라>는 제목이 야유적이다.

“<즐거운 사라>가 감옥에 갇혀 있는 지 20년이다. 그래서 이제 그만 사라를 돌아오게 하라. 그런 거지.”

-그때 왜 잡혀갔는지 아는가?

“나중에 <문화일보>가 취재한 걸 보니 당시 현승종이라는 법학자 출신의 국무총리가 특별지시를 했대. 날 잡아넣으라고. 영장도 없이 강의실에 쳐들어와 잡아갔어. 그걸로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어. 감옥살이에 연금 박탈에 교수 면직에 정신병, 우울증, 그 많던 머리칼 다 빠지고, 젠장….” 

-<돌아온 사라>엔 선생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 그래, 나다, 어쩔래?다.”

-19금 소설은 팔기 어려울 텐데.

“출판사 잡는 데만 1년 걸렸다. 이해하면서도 이상해. 한국 사회가 분명 더 야해지긴 야해졌는데 겉으로는 왜 20년 전과 똑같지? 높으신 분들, 하느님 찾는 분들, 엘리트님들 낮에는 근엄한 목소리로 마광수 죽여라 해놓고 밤에는 룸살롱 가는 것도 똑같아.”

-이참에 <즐거운 사라> 해금운동을 해볼 생각은 없나?

“한승헌 변호사님한테 여쭤봤어. 그분 말씀이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죽어도 안 될 거라고. 2007년엔 홈피에 내 팬 한분이 <즐거운 사라>를 올리는 바람에 또 기소가 됐어.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판검사님들은 왜 그리 유치해? 똑같이 물어보는 말 ‘이 책을 딸한테 읽힐 수 있느냐’고. 내가 그랬어. 아니, 왜 아드님 걱정은 안 하시냐고. 솔직히 <즐거운 철수>였으면 날 잡아갔겠냐고.”

-작가로서 문학이론가로서 성에 주목한 특별한 계기라도?

“난 조숙했어. 어릴 적부터 엄청 책을 읽었지. 서구 문학을 읽다 보니 사랑 없는 문학은 시체더라. 물론 <노인과 바다>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럼 사랑은 뭐냐? 핵심은 성욕이었어. 사랑의 목적은 성욕의 해소야.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과 사랑을 억지로 분리시켜. 사랑도 거룩해야만 사랑이고. 웃기고 있네, 싶더라. 그래서 처음엔 이론으로 주장하다가 욕심이 나서 아예 창작으로 나선 거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이고 공개적인 성담론이란 평을 받았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를 내니까 많은 엄숙주의자들이 날 무지하게 욕하더군. 문학도 아니라고. 그런데 <나는 야한…>은 내가 쓴 시 제목에서 따온 거야. 28살 때 우리나라 최고 지성의 문학지라고 했던 <문학과 지성>에 발표한.”

41살 ‘즐거운 사라’로 감옥살이·우울증 겪어
20년만에 새책 들고 한국사회 ‘터부’ 재도전“
사회는 더 야해졌는데 겉은 그때와 똑같아”

-학창시절은 범생이였을 것 같은데, 아닌가?

“대광고가 예능교육을 참 잘 시켰어. 나는 시를 쓰면서 그림도 잘 그려 미술반 했고, 연극 했고, 교지 편집 했고, 성가대원이기도 했지. 졸업할 때 주는 상 3개를 모두 다 받은 건 나뿐이었어. 공부 잘했다고 우등상, 결석 안 했다고 개근상, 각종 학원문학상, 백일장, 미술대회상을 휩쓸어 학교를 빛냈다고 주는 공로상. 연대 들어갈 때도 내가 톱이었어. 4년 장학금을 받았지. 서울대는 내가 싫어 안 갔어. 거기 출신 중에 괜찮은 작가 봤어? 그렇다고 범생만은 아니었어. 내 별명이 광마잖아? 그거 고교 때 선생님들이 붙여준 거야. 내가 그때부터 좀 독특한 시를 쓰고 그림도 다르니까 선생님들이 날 보면 니가 미친 말이란 녀석이냐? 그랬어. 그때부터 마광수 별명이 광마가 된 거야. 전시회 출품작으로 아담과 이브를 그렸는데 에덴동산이니 당연히 올누드로 그렸지. 그랬더니 미술선생님이 물감으로 치부를 다 가렸어. 이건 그리면 안 된다. 난 정말이지 그게 더 이상했어. 진짜 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독서의 힘 아니면 가정환경 영향?

“물론 독서의 힘이지. 나는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남들 같은 부권의 억압이 없었다는 것, 그 점도 내 자아 형성에 작용하긴 했을 거야, 아마.”

-기질적으로 남다른 면이라도?

“특별히 남다른 기질은 없고, 있다면 몸이 많이 약했어. 그래서인지 내가 제일 무서웠던 건 폭력. 동네 애들에게 늘 가진 걸 빼앗기고, 얻어맞았어. 내가 겁이 많으니까 뱀을 잡아다가 놀리고 내가 울면서 도망치면 그러는 내가 재밌어서 더 쫓아오고. 아이들 세계는 사디즘의 세상이야. 나중에 <즐거운 사라>로 잡혀갔더니 조사실에 욕조가 있어. 물고문할까 싶어 덜덜 떨었다.”

-종교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가?

“관심이야 지대했지. 종교 책도 많이 읽었고. 그런데 결론은 반종교야. 나는 허무맹랑이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읽어봐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특히 기독교는 교리도 합리적이란 생각이 안 들었어. 그런데 왜 한국의 권력층들은 다 큰 교회에 다니는 거지?”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게 특이했다.

“나도 그랬다. 그분 정말 철저한 퓨리턴이잖아? 술·담배는 물론 커피도 안 마시는. 그런 분이 내 시가 유니크하다고 뽑아줬어. ‘배꼽이 섹시해’ 뭐 그런 시였는데.”

-마광수가 윤동주 연구로 박사를 했다는 건 더욱 의외였다.

“윤동주로 박사 한 게 내가 처음이다. 그의 쉽고 어린애 같은 시세계가 좋았어. 나는 이상이 제일 싫어. 천재라고 떠받드는 사람은 더욱 싫고. 그냥 똥폼이야. 윤동주에겐 그런 똥폼이 없어. 쉽고 순수하고 똥폼 안 잡는 점에서 나와 윤동주는 같아.”

-유미주의를 문학적 모토로 삼고 있는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마광수에게 아름다움은 인공미다. 자연미의 시대는 갔다. 지금은 잘 꾸미는 인공미의 시대이고, 대표적인 것이 페티시이다. 누구는 나더러 외모지상주의자라고 하는데 내 주장은 타고난 외모 비관하지 말고 페티시를 통한 인공미로 자연미를 뛰어넘자야. 얼마 전 내가 가수 산다라 박을 위한 시를 썼어. 긴 가발을 쓴 걸 보니 무지막지하게 섹시하다, 그런 내용인데 누가 포털에 실어날라 유명해졌지. 연대 애들한테 물어보니 9만5000원짜리 가발이래. 그거 투자해 대박났잖아?”

-요즘 세대는 성형을 화장술의 하나쯤으로 여길 정도다. 그것도 페티시?

“마구잡이 성형만 조심하면 그건 일종의 심리치료야. 남자고 여자고 외모 신경 안 쓰는 사람 어딨어? 이쁜 여자가 좋다고 하면 페미니스트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서는데, 요즘 미국 페미니즘은 개혁운동이 한창이야. ‘립스틱 페미니즘’. 화장하고 이쁘게 가꾸면서도 얼마든지 페미니즘 외칠 수 있다는 거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100만부 팔리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에 별의별 성담론, 성정보가 범람한다. 이런 시대에 20년 전과 같은 성애문학이 필요할까?

“한마디로 잘못된 관점이다. 야동이 더 야하니 야한 소설은 그만두라? 소설은 영화가 할 수 없는 독자의 상상적 참여가 가능한 장르다. 서구에서는 그래서 에로티카 장르가 존재한다. 문학의 장점이다.”

-마광수 문학의 특징으로 경박함을 꼽는데?

의도된 경박함이다. 나는 늘 제발 쉽게 쓰자, 어려운 글은 못 쓴 글이지 심오한 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여튼 우린 너무 무거워. 우리나라 신간 소설 반이 일본 건데 그거 다 가볍거든. 그래도 가벼운 일본은 노벨상 2명, 무거운 우리는 한 명도 없어.”

-우리 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지나친 엄숙주의인 건 맞다. 왜 그렇다고 보나?

“종교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 기독교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대통령도 무릎 꿇리는 나라잖아? 종교, 특히 기독교가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섹스는 절대 낮의 담론이 되면 안 돼. 그러니 낮에는 교수, 밤에는 야수. 허허.”

-한국 사회가 이중적인 건 다 아는 바 아닌가? 일정한 선에서 타협하고 공존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라? 그것 참 어려운 주문이다. 그런데 타협의 기준이라도 있는가? 주먹구구, 건수 올리기, 아니면 괘씸죄. 왜? 문제는 작품이 아니라 마광수이기 때문이다. ‘교수란 새끼가 어떻게 제자 따먹는 얘기를 써?’ 그거지. 그거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 욕먹어라, 사서 고생 마라 하는 권유를 한다면?

“하긴 어머니 간병비만 수천만원인데 책만 쓰면 19금 딱지를 붙이니, 나도 고민이긴 고민이야. 아, 차라리 표준검열표라도 있어서 그걸 핑계 삼아 교양소설로 적당히 둔갑할 수 있다면… 그러면 두가지 반응 나오겠지? 마광수가 이젠 좀 정신을 차렸구나, 아니면 항복했구나. 장정일은 그렇게 항복했잖아?”

-소설가 장정일씨를 만난 적이 있나?

“3~4년 전인가 대구에서 그림 전시회를 했는데 거길 와서는 진지하게 충고하는 거야. 이제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한국이란 나라에선 안 되니 단념하라는 건지, 자기가 해보니 가치가 없더라는 뜻인 건지, 하여간 깜짝 놀랐어….”

-당신 문학은 한국 사회에 뭘 기여할까?

“꼭 뭘 기여해야 하나? 아무튼 기여한다고 치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나라 소설이 소설다워지는 데로 돌아가는 데 기여한 거지. 나는 이문열처럼 많이 팔리는 대중작가는 아니지만 나야말로 민중작가라고 자부해. 민중들에게 소설은 밤에 심심할 때 읽는 거야. 문화의 효용에 교훈설과 쾌락설이 있는데 나는 철저히 쾌락설 쪽이야. 나는 쾌락설로 한국 문화를 잠에서 깨운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런 따위의 구분을 믿지 않아. 내가 보기에 진보나 보수나 둘 다 비슷해. 그거 따지는 사람들은 다 권력추구 집단이야. 내가 말하는 문학적 문화적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검열의 완전 철폐, 표현의 자유의 완전한 보장, 그런 데 기여하는 사람들이야. 프랑스 68혁명의 모토가 뭐야? 모든 상상력에 권력을! 아냐?”

사랑 목적은 성욕해소…‘쾌락설’ 철저 옹호
표현자유·검열철폐 ‘모든 상상력에 권력을!’
“똥폼잡은 이상보다 쉽고 순수한 윤동주 좋아”

-쾌락주의를 지지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는 부정적인데.

“나는 사랑을 극단적으로는 정신병으로 본다. 플라토닉 러브는 솔직하지 못하다. 프로이트를 빌려 말하면 핵심은 성욕이지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란 말보다 성애라는 말을 쓴다. 사랑은 굳이 말한다면 어머니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을 말할 때는 통하지만, 인간 남녀 사이에 사랑이란 말은 뭐랄까 간사스러운 말이다. 하하.”

-그래도 남녀가 만나 40~50년 사랑하며 함께 살기도 한다.

“내가 한 말이지만 이건 명언이야. ‘사랑해서 섹스하는 게 아니라 섹스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추상적이야. 연대 애들도 들어보니까, 다 자보고 나서 살지 말지 결정한다는 쪽이더라.”

-하긴 요즘 젊은 세대는 성에 대해 훨씬 자유롭긴 하다. 프리섹스를 지지하나?

“준비중인 수필집에 이렇게 썼다. ‘부담 없이 즐기는 섹스 파트너가 좋다.’ 그게 원나잇스탠드잖아.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그리고 빠이빠이. ‘그 어떤 집착과 소유욕으로부터 벗어난 섹스’ 그런 점에서라면 나는 프리섹스주의자야.”

-결혼은 왜 했고 이혼은 왜 했나?

“결혼은 좋아해서 했고 이혼은 궁합이 안 맞아서. 내가 그 뒤로 쓰는 말이 있어. ‘겉만 야한 여자한테 속지 말자’, 으하하.”

-요즘 사귀는 여성은?

“4년 전에 공을 들여 쫓아다닌 여자가 있었는데 결국 나이 땜에 안 됐어. 그놈의 나이. 2년 전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내가 동거하자고 했더니 싫다고 도망갔어. 38살 여자였는데 죽어도 안 된대. 그러더니 얼마 있다가 9살 연하 남자한테 시집가더라구. 그러니 내가 상대가 되겠어, 아홉살 연하, 허, 아홉살….”

-노후대책은 있나?

“진짜로 걱정된다. 책 내기도 어렵고, 연금도 없고…내 소망은 오직 한가지다. 어느날 갑자기 단번에 죽는 거.”

그는 서울 용산 동부이촌동의 한 빌라에서 아흔의 노모와 간병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한눈으로도 섬약해 보였다. 부실한 듯한 치아 사이로 새나오는 쉰 목소리, 숱이 부족한 백발, 구부정한 허리… 거실에 진열된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젊은 마광수의 사진들은 자신감 넘치는 모더니스트의 전형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노마 진 시절에 찍은 빨간 비로드 위의 누드가 그 사이에서 아름답기보다는 애처로웠다.

아무리 근엄한 사회더라도 어쩌면 얼마간은 있어야 오히려 좋은 ‘유쾌한 이단아’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빛내줄 수도 있었던 한 영혼에게 우리 사회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남자는 비치 의자에 누워 여전히 계속 눈을 감고 있다. 남자는 백일몽의 환상에 빠져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잠을 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꿈도 없는 잠, 그저 피곤하기만 한 잠, 재미없는 잠이다. 그가 살고 있는 나라,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도 같은 그런 죽어 있는 잠이다.”(<페티시 오르가즘>의 마지막 구절)  

ps : 이 글을 정리하다 보니, 마광수에게 온갖 '음란'과 '성적 이상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니들은 깨끗해"하는 식의 비판이 아닌, 현실적인 상황 비판이 들었다. 인터넷을 해봐라. 내가 좀전에 '음란'이란 단어의 한자를 보려 검색을 하니 19세 확인을 하더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면서 아무나 다 볼 수 있는 모든 사이트(특히 언론사)에 들어가면 아래 사진들이 넘처 난다. 성형에 성적 광고에...정말 천박하다 못해 비굴할 정도로 들이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광수의 소설이 뭐 대수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수 없다.(여담이지만, 아래 가운데 지방흡입 광고 속 흰 티셔츠 입은 여인네의 상반신을 잘 보라. 가슴 유두 부분을 잘 보면 반창고로 붙인 것 처럼 보인다. 내 눈엔 너무 잘 보인다. 여자의 몸매를 더 잘 들어내기 위해 속옷을 입지 않아 그랬나 보다. 웃기다. 이런게 보이는 나나. 이런 사진을 이용해 광고하는 세상이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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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개념있는 기업가(?)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단순히 싸게 해서 많이 이익본다는 단순한 경제논리에 사로잡혀있기보다는, 제대로된 서비스로 제대로된 기업활동을 하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난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영화들 보면 부시고, 터지고, 깨지는 장면을 떠올리면 대부분 스펙타클한 화면만을 생각하지 미처 생생한 소리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씨너스 이수. 집에서 멀지 않으니 언제 한번 저 상영관에 가서 조용히 귀 좀 호강시켜 줘야겠다. 물론 주위에 팝콘이나 콜라 빨대 물고 있는 인간들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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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1.10  “이제 영화관의 경쟁력은 음향입니다" 

운영하는 극장들에 거액 들여 최적 설비 갖춰
작품 맞춰 수시로 리세팅…“미쳤다고들 해요”
주옥같은 영화 선별 ‘시네마 큐레이터’이기도   

 

사운드로 승부하는 ‘씨너스 이수’ 정상진 대표 

지난해 5월 서울 용산에서 경험한 <아이언맨 2>는 최악이었다. 문제는 내용도, 화질도 아닌 사운드였다. 최대한 올린 듯한 볼륨은 귀를 왕왕 울려대고, 고음역은 귀청을 찢을 듯하고 저음역은 너덜거렸다. 특히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깜짝 등장하는 콘서트, 전기채찍을 휘두르는 위플래시(미키 루크)와의 대결 장면 등에서는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차라리 고문이었다.

지난 4일 뒤늦게나마 서울 사당동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씨너스 이수 정상진(43) 대표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다. “아 그때요? 우리는 리콜상영을 했어요. 당시 스크린 뒤 저음역 스피커인 서브우퍼 8개 중 4개가 터진 거예요. 어쩌다 오는 분들은 잘 모르지만 자주 오는 관객들은 금방 알아요. 예매 관객들한테 모두 알리고 극장에 현수막을 붙였어요. 그 자리에서 다시 보여드린다고. 영화관에서 리콜한다는 얘기 처음 듣죠? 우리는 가끔 하거든요.” 
 
영화관 통로 천장에 쓰인 ‘모든 것이 끝나고 남는 건 필름뿐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이 재미있다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등의 구절에 정 대표의 고집이 묻어나고 상영관 입구 벽에 쓰인 ‘19,200와트, 세계 최강의 사운드시스템, 롤링스톤스가 고집한 전설의 파워앰프 EV-P3000, 세계 최초 영화관 사용’이란 문구에 자부심이 배어 있다. 다른 극장의 출력 규모가 7000~8000와트임을 아는 이는 안다는 투다.

“문제는 설비, 즉 돈입니다. 200석 규모의 상영관이면 앰프가 있는 영사실에서 스피커가 달린 스크린까지 100m 정도 되죠. 그 거리에 싼 케이블을 깔면 출력이 70%밖에 안 나요. 나머지 30%를 볼륨으로 커버하려니 왕왕 울리는 거죠. 앰프도 그래요. 4웨이 스피커의 경우 적어도 최소 10개 이상이 필요한데 보통 영화관에서는 4개가 고작이죠. 그렇게 되면 소리가 섞이고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1개관 설비에 통상 8000만~1억원이면 될 것을 씨너스 이수에서는 9억원을 들였다고 한다. 순도 99.9999의 3㎜ 선 네 가닥을 꼬아서 만든 스피커 케이블은 1m에 100만원짜리 특제다. 그리고 석 달에 한 차례 상영관마다 마이크 5대를 설치하고 사운드를 점검해 다시 세팅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소리의 틀어짐을 바로잡는 것이다. 큰 영화가 들어올 때는 별도로 한다. 여벌 설비를 갖춘 것도 자랑이다. 스피커가 터지면 영화 상영중에도 컴컴한 스크린 뒤로 가 갈아 끼운다. 알 만한 관객들은 이수에서의 영화 관람을 ‘소리로 경험하는 4디’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죽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영사실과 사무실 직원 사이에서 정 대표는 ‘정틀러’라고 불린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싫어서 붙인 이름은 아닌 눈치다.

“남들은 당연히 ‘또라이’라고 하죠. 돈 엄청 날렸어요. 애초 과장된 영화적인 소리를 내는 돌비시스템을 모르고 하이파이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비싼 스피커가 뻥뻥 나갔거든요. 주변에서 만류를 많이 했어요. 제이비엘(JBL)에서 수십억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시스템을 만드는데 네가 어떻게 하느냐면서요.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실패해도 일단은 해보자고 덤볐어요. 그래서 2004년에 개관한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씨너스 이채와 씨너스 이수는 상영관마다 설비가 다 달라요. 결국엔 프런트의 경우 피에이(PA: 대중용 음향 확성 장치)로 결론을 내렸지요.” 서울 이화여대 모모하우스는 그 실험 덕에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게 됐다. 일본 영화관 업계에서도 그를 불러 자문을 받을 만큼 음향 전문가가 됐다. 

그는 대학 영화과 재학 때의 경험으로 소리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영화를 제작할 때 녹음실에서 들어보면 대사가 잘 들려요. 그게 영화관에 가면 뭉개져 안 들리는 거예요. 특히 아주 낮은 남자의 목소리나 높은 여성 목소리가 그렇더군요. 대사 한마디에 테마가 들어 있을 수 있는데 말이죠. 괜찮은 영화를 영화관의 잘못으로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문제죠. 13.1 채널이고 15.1 채널이고 뭐고 대사가 잘 들리는 영화관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앞으로 경쟁력은 음향이라고 했다. “완전 에이치디 홈시어터의 화질은 영화관을 능가합니다. 영화관 스크린이 더 크다지만 일단 영화에 빠져들면 그 차이는 느낄 수 없어요. 온라인 동시개봉 시대가 되면 영화관의 경쟁력은 사운드밖에 없습니다. 집에서는 쿵쾅거리지 못하지만 영화관에서는 그게 가능하거든요.”

더불어 그가 표방하는 것은 시네마 큐레이터. 갤러리에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큐레이터가 있는데, 영화관에서는 왜 표만 팔고 마느냐는 거다. 2008년부터 매달 ‘미니씨어터’ 이름으로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영화, 재능있는 신인 감독의 쇼케이스, 진가가 묻혀버린 보석 같은 영화를 선별 상영해 왔다. 월·화·수·목 저녁 8시 고정이다. 이번 1월에는 중국 작가주의 영화의 현재를 대변하는 자장커 감독의 <24시티> <무용> <스틸 라이프> <세계>를 튼다.

그는 2007년부터 해마다 11월이면 여성을 위한 성담론장인 ‘핑크영화제’도 열고 있다. 여기서는 50여년 동안 에로스를 소재로 실험정신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명맥을 이어온 일본의 핑크영화를 상영한다. 제작비 300만엔, 촬영기간 3~5일, 35㎜ 필름 촬영, 베드신 4~5회, 러닝타임 60분이라는 룰만 지키면 자유로운 창작이 보장되는 일본 독립영화의 한 장르로 감독들의 등용문 구실을 하기도 한다.

“남산자동차 극장, 씨너스 이수, 씨너스 이채 등 영화관 세곳을 운영한다니 부자라고 해요. 지금이라도 청산을 하면 부채만 150억원 정도 돼요. 죽을 때까지 못 갚을지도 모르죠. 그럴 바에야 즐겁게 살자는 게 제 모토입니다. 영화관 건물을 사무실로 임대하면 지금보다 세배 정도 더 벌 수 있어요. 실제 그러라고 권하는 이도 있어요. 앞으로 30년간 작은 수금 가방을 들고 남의 사무실을 전전하는 거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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