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뉴스에서 서울의 모대학에서 학생들의 평가를 상대평가로 더욱더 강화하겠다는 기사가 나왔다. 예를들어 교직실습같은 몇몇 과목들은 아직도 절대평가를 하는데 이런 과목들까지 모두다 상대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우석훈씨가 뭔가 이런일이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작년말 칼럼에 절대평가 주장을 한 내용의 글이 기억나서 옮겨놓는다. 아마도 교육실습까지 상대평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약 9-8년 전에 했던 그런 낭만적(?)인 교생실습은 영영 불가능해질것이다. 그리고 괜히 치기어린 낭만을 추구했다가는 영영 패배자의 낙인이 찍히겠지... 이런 생각 불편하다. 
 


한겨레신문 2009.11.14 [야!한국사회] 대학, 절대평가로 바꾸자

“요즘 대학생”이라는 용어는 아마 대학교에서 요즘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유행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용어는 탐탁지 않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조직이라는 눈으로 보면, 나는 대기업, 정부기관, 공무원 조직, 그리고 시민단체까지, 아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형의 조직을 경험해본 사람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총리실에 근무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대학에 있는 순간이 가장 마음이 불편했다. 그룹사 시절의 현대도 금기가 많고, 관성이 많았고, 눈치 볼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대학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밖에서 보는 사람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대학은 지금 지옥이다. 불신, 불안 그리고 증오와 같은 것이 가득 차 있다. 꿈은 물론 ‘꿈’이라는 단어 자체도 잃어버린 듯한 표정 없는 학생들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고,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제시할 수 있는 방안도 없다는 것은, 정말로 처음으로 겪는 무기력증이라고 할 수 있다. 낭만? 지옥에나 가버려.

지난 6주 동안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지난주 서울대, 그리고 이번주에 동국대를 끝으로 서울의 큰 대학들을 한 번씩 돌면서 강연회를 했다. 대학의 분위기는 대부분 우울했다. 지금 한국의 대학생들은 앓고 있고, 그들은 모두 동굴에 갇혀 있다. 일부 과에서는 한 학기 등록금이 700만원이 곧 넘어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들이 돌았고, 학생들은 왜 대학에 다니는지, 그리고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그야말로 학문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문사철이라고 불리는, 취직 안 되기로 소문난 과의 대학원 진학률은, 한 명, 두 명,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부르스’가 펼쳐지고 있다. 한마디로, 서울대 법대와 상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대학, 대부분의 과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과 극도로 높아진 경쟁만이 지배하고 있다.

자, 나에게 딱 하나만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권한을 준다면, 나는 이 대학 사회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물론 등록금을 없애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학생들이 직접 바꾸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 자, 생각을 해보자. 한 가지가 있다. 채점 방식을 지금의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이다. 이건 돈 드는 일은 아니고, 한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는 교수들이 절대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절대평가만 도입해도, 학생들끼리 서로 협력해서 공부하고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소한의 ‘협동’과 ‘연대’가 시작될 것이다. 동료들을 적으로 보고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한 미션 임파서블, 그 불신 지옥은 이 간단한 장치만으로도 해소할 수 있다. 학점 인플레? 그런 거 좀 생기면 어떤가. 대신에 학생들에게 동료와 친구를 돌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친구는 적이 아니다. 그 간단한 사실을 배우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는 상황, 미국의 대학 교육처럼 최소한의 시민으로서의 소양도 우리는 지금 가르쳐주지 못하는 셈이다. 경쟁력은 유럽에 뒤지고, 기초 교육은 미국에 뒤지고, 창의성은 사라지고, 저격수 같은 스나이퍼 정신만 길러주는 한국 교육, 지금 대학은 지옥이다. 절대평가가 지금 우리 대학생들에게는 절대로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구조적으로 친구를 적으로 돌리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학문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기업도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 지금 밑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창의와 협동 없는 암기기계들과 21세기를 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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