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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ㅣ 이어령 대화록 1
이어령 지음, 김태완 엮음 / 열림원 / 2022년 1월
평점 :
1.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 이 책은 고 이병철 회장이 던진 질문에 이어령 교수가 천주교의 신부님과는 다른 관점에 쓰여진 것으로, 영성에 관련된 대답들입니다. 이어령교수는 그분의 질문들에 대해서 자신이 느낀 바대로 대답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어떤 해답보다는 이어령 교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그 해답이 명답이 아니더라도 이어령 교수의 진심을 느끼는 것으로 이 작품은 의미있다고 할 것이다. 나는 이 중에서 하나의 대답을 꺼내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는 걸까요?
이어령 교수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신이 준 게 아니라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범하여 인간이 스스로 받은 벌입니다. - p.28
즉, 여기서 이어령 교수는 하나님은 인간을 벌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더 좋은 결론을 얻게 하기 위하여 고심하신다는 말이지요. 예수님은 우리를 포용으로 감싸주신다고요. 저는 여기서 제가 생각했던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3.
인간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짐작건대,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이브는 아기처럼 순수했을 거에요. 선악을 모르니까, 죄를 지을 수조차 없었겠죠. 하지만, 뱀의 유혹에 빠져서 선악을 알게 되면서, 사람은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뱀의 유혹에 빠져 버렸으니까요. 하나님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어령 교수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를 포용하시는 분이니까,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이미 용서하셨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담이 사과를 따 먹는 걸 막지 않았을까요? 만약, 인간이 영원히 아기처럼 순수하기만 하다면, 사람은 뱀의 유혹에 계속해서 넘어가서 결국은 뱀의 노예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사람은 선악을 알게 되고, 나쁜 짓도 저지르는 사람이 있게 되죠. 한마디로,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곳. 죽음 이후에 갈 수 있는 천국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말씀도 천국에 대해 강조하시죠.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갑니다. 그곳은 나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뱀의 유혹을 이겨낸 사람만이 천국에 가게 되니까요. 뱀의 유혹을 이겨낸 사람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회개란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회개가 없으면 뱀은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나쁜 짓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되고, 착한 사람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고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만난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죠.
4.
아담이 따먹은 사과 때문에 사람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길일 것입니다. 세상을 보다 더 살기 좋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높으신 뜻인 거죠. 아기는 순수하고 아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게 되죠.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보는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너무도 걱정스런 마음에 선악과를 만들었고, 다시는 불행한 사람이 없게 하려는 그런 목적이 아니었을까요.
이어령 교수의 대담집을 보면서 든 생각은 아니고, 이미 생각했던 것이지만, 이어령 교수의 대담집을 보면서 저의 이 생각이 더욱 더 확고해졌습니다. 우리가 뱀의 노예가 되어 살지 않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이어령 교수의 대담집에서 해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많은 생각을 통해서 신앙이 두터워지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신앙도 더 이상 자랄 데가 없는 데까지 자라나고 싶다는 다짐을 해보는 오늘입니다.
- 열림원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