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 조언 비판 명령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누군가가 내게 조언을 했다면? 물론, 나는 그 말을 무시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을 안 들을 것이다. 분명, 그 사람은 그러겠지. 내가 안 되면, 자기 말 안들어서 된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람 말을 들어서 잘 되면 자기 덕분이라고 그러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지속적으로 조언을 한다면?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말을 잘 들어서 되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그 사람 말을 잘 따랐는데, 한번 안 되었다면? 그때서야, 나는 생각할 것이다. 그 사람 말을 들어서 안 된 거라고. 결국, 내가 안 된 것은 그 사람 탓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안 된 건 부모 때문이라고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면을 보면, 부모 말을 너무 잘 들었다가 안 된 경우가 많다. 결국, 부모님 말만 듣다가 자기가 잘 안 되면 부모를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부모의 말만 잘 들으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장담을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잘 되는 경우는 드물다.
충고 조언 비판 명령은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충고 조언 비판 명령을 해서 얻는 건 나의 잘못된 만족감이다. 내가 충고 조언 비판 명령을 해서 그 사람이 잘 된 거라고 하는 허영심에 기댄 충고 조언 비판 명령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충고 조언 비판 명령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사람과의 관계는 틀어지기 마련이다.
무엇이든지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 충고 조언 비판 명령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졍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화법이고 조언의 방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질문으로만 이어지는 대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하게끔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 고민의 출발점이 바로 대화의 시작이다. 사랑, 그것은 대화로 시작한다. 그 대화가 바로 인생의 출발점이 되고 삶의 시작점이 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하는 삶. 그 삶은 본인이 스스로 먼저 노력했을 때 시작된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하는 삶은 살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생각만을 내세우는 삶은 진정 남을 위한 삶이 아니다. 충고 조언 비판 명령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질문이 뭘까를 고민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