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영원그림눈짓

 

전창수 지음

 

 

1

 

내게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이미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포기했다. 애를 먹여 살리려면 돈을 벌어야 했고, 아내는 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내게 맡겨진 아이들은 무려 7. 아들이 셋이고 딸이 넷이다. 그들 모두 연년생이다. 첫째가 일곱 살 딸이고, 막내가 한 살배기 아들이다.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라 그런지, 더욱더 나의 아이들은 애틋했다.

내 나이 50. 내 나이 마흔셋에 첫 아이를 낳았고, 딸이었다. 내리 네명을 딸을 난 후에 내리 세명을 아들을 낳았다. 아내는 아이를 더 갖자고 한다. 나는 하루에 세가지 일을 한다. 새벽에는 우유배달을 하며, 아침에는 택배를 하며, 저녁에는 오토바이로 배달을 한다. 그렇게 해서 벌어야, 한달에 간신히 500만원 정도를 번다.

새벽에 우유배달은 내가 쌓아온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새벽 4시부터 배달을 하면, 3시간이면 끝난다. 택배일은 아홉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4시 정도에 끝난다. 저녁 배달일은 저녁 여섯시부터 열두시까지 한다. 내가 자는 시간은 고작 2시간이다. 쉬는 날은 따로 없다. 그나마 일요일이 조금 한가하긴 하다. 택배와 우유배달이 쉬는 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요일은 저녁에 또 배달을 하러 가야 한다. 배달은 월요일에 쉬는 날이다. 그래서, 일요일은 점심 때까지 잠을 잔다. 1주일 동안의 부족한 잠을 일요일에 한꺼번에 보충한다. 일요일날 늘어지게 자고 있으면, 아내는 투정을 한다. 모처럼 쉬는데, 자고 있다고. 그럼 나는 이렇게 핀잔을 한다. 매일 2시간만 자는데, 일요일에 잠도 못자냐고. 그럼, 아내는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저 멀리서 혼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내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또 잠을 청한다.

 

아이들이 나를 볼 시간근 일요일날 오후에 딱 2시간 정도다. 그 시간에 아이들은 나한테 달려든다. 아빠, 있다. 놀아줘, 놀아줘! 나는 아이들하고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몰라서, 뻐끔뻐끔 아이들을 쳐다보면, 아이들은 마치 낯선 사람을 쳐다보듯이, 바라보면서 한없이 순수한 눈빛을 반짝인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그냥 노래라도 불러줘, 한다. 그럼, 나는 돌아와요 부산항해를 열창한다. 내 청춘이 돌아오길 바라면서.

 

누군가는 이 삶이 불행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삶이 행복하다. 적어도, 나는 이 삶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행복하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놈은 자산이 100억쯤 있었고, IT업체를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나는 그놈에게 중소기업 사장이면서, 여태껏 결혼도 못했냐고 항의했더니, 그 중소기업 사장이 나에게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아내처럼 예쁜 사람은 본 적이 없었고, 아직까지 자기는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처음으로 이렇게 설레어 본다고. 아내를 나한테 달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못했지만, 아내는 슬금슬금 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놈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적어도 시간이 없어서 자기하고 얘기도 못하는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얘기했다. 그럼, 우리 이혼하자고. 그리고, 아이들도 다 데려가라고. 아내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날 당당하게 이혼을 했다. 나는 그래서, 지금 혼자가 되었다. 아이들도 없었고, 아내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벌어야 할 이유까지도 없었다.

2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이미 남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내라 불렀고, 아내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행복하냐고 물었다. 아내는 무척 행복하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애들도 새아빠를 무척 좋아하고 잘 따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새 남편도 아이들에게 잘하고 아내한테도 잘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러냐고, 잘 지내라고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새벽에 우유배달을 한다. 그리고 우유배달을 하면서 신문배달도 한다. 일을 줄일 필요가 없었다. 애들을 돌보느라, 아내에게 신경쓰느라 눈치를 볼 필요 같은 것은 없었다. 우유를 배달하면서 신문을 동시에 배달하다 보니, 우유도 신문도 같이 들어가는 곳도 생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유도 배달하고 신문도 배달하다 보니, 신문배달 경쟁업체에서 나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신문업체 배달사원까리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곤 하는데, 나는 우유배달하면서 택배도 하고 저녁에 또 배달까지 하니, 돈에 미친 사람이라면서 슬슬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내도 없고, 애들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그래서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돈 때문이 아니라고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그들이 모이는데 가면, 그들은 나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저 멀리로 달아나 버렸다. 나의 외로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나는 세상이 점점 더 싫어졌다.

 

나는 그래서 고민했다. 우유배달하면서 신문배달하면서, 택배도 하면서, 저녁에 오토바이로 배달까지 하는데, 일을 더 늘릴 방법을. 아예 나에게 쉬는 시간을 주지 않는 방법을.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외로워져 갔다. 어느 날, 신문배달하는 곳의 지국장이 내게 말했다.

 

신문배달하는데 정보가 얼만큼 중요한지 모르지? , 신문배달을 취미생활쯤으로 알고 있는 거냐? 이런 식으로 할거면 그만해! 벌써, 너 때문에 신문구독 중지한 사람이 몇 명인지 알아? 자그만치 3명이나 돼!”

 

난 항의하고 싶었다. 3명은 나 때문이 아니라고. 그러나, 지국장은 내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만두든지, 3명의 구독중지한 만큼, 돈으로 만회하든지 해! 아니면, 신문구독할 사람을 데려오든가!”

 

그리고 난 결심했다.

 

그러면, 제가 돈으로 만회해 드릴께요.”

 

그러자, 지국장이 오히려 당황한 듯 했다.

 

, 얼마를 줄 건데?”

 

하나당 2만원이니까, 제가 매달 6만원씩 돈으로 드릴께요. 그리고, 제가 신문 3가지를 볼게요

 

, ?”

 

그렇게 하면 되죠?”

 

, ,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긴 되지

 

그럼, 저희 집에 3가지 신문 넣는 걸로 하고, 신문배달 계속할게요.”

 

, 그래!”

 

지국장은 나이가 65세란다. 내 나이보다 무려 15세나 많다. 함부로 대들면 안 되지. 나는 그렇게 신문배달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3

 

아이들이 내게 전화를 했다. 일곱명의 아들딸들은 아빠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며,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이제 일곱 살된 가장 큰 딸은 아빠 얼굴이 왜 그러냐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가장 막내인 한 살짜리 아들은 아빠라는 말만 했다. 아이들의 옆에는 새아빠가 있었다. 딸한테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아빠한테 전화한다고 했더니, 엄마는 마트에 뭐 사러 가야 한다고, 일하는 아줌마랑 같이 나갔다고 했다. 일하는 아줌마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요리해주고 청소해주고 그러는 아줌마가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월급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새아빠가 월급을 두둑히 챙겨준다고 했다. 그러면, 그 아줌마는 엄마랑 같이 일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항상 엄마랑 같이 요리하고 엄마랑 같이 청소도 한다고 했다. 그럼, 엄마는 정말로 행복한 거 맞냐고 물었더니, 나랑 같이 살 때는, 그걸 혼자서 다 해서 힘들어했다고 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들이 이제 새아빠랑 놀이동산에 놀러가기로 해서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 잘 다녀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더니, 또 다시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신문사 지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국장이 이 시간에 웬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신문 3개를 보는데, 서비스신문 없냐고 물었다. 지국장이 알았다고 너는 특별히 배달사원이니까, 2개 신문을 더 서비스로 받으라고 했다. 나는 지국장에게 고맙다고 했다.

 

심심해서 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을 다섯 개나 볼 수 있다. 드디어, 외롭지 않겠다 싶었다. 신문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오니까. 외로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신문이 있어서 나는 좋았다.

 

나는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저녁 오토바이 배달일을 그만두었다. 하나를 그만두지, 나를 왕따시키던 같은 신문배달사원이 내게 저녁에 오토바이 배달일에 대해서 물었다. 새벽에는 신문배달일을 하고, 저녁에는 오토바이 배달일을 하고 싶다고 내게 알아봐줄수 있느냐고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한 노하우를 그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왕따에서 벗어났다.

 

아내는 떠났다. 아이들도 떠났다. 나는 아내가 떠난 집의 월셋방에서 TV 하나도 없는 집에서 지낸다. 신문이 내게 주는 유일한 위안거리다. 책이라고는 단 한권도 없다. 나는 그래서, 노트북을 샀다. 와이파이가 가능한 노트북을 샀고, 와이파이가 나올 수 있는 장치를 해 놓았다. 오토바이 배달일을 그만두니 시간이 많았다. 특히 일요일은 완전히 쉬게 되니, 정말로 내게는 시간이 많았다.

 

시간이 많은 것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일요일이면 노트북을 하고, 신문을 읽었다. 1주일치 몰아서 읽었다. 그렇게 외로움을 모르게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어딘가에서 아내를 보았다. 아내의 얼굴에 있던 볼살이 다 빠져나갔다. 아내는 더 이상 통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통통하고 건강해 보였다. 나는 아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고, 그냥 아내를 모른 척 하고 지나쳤다. 아내도 나를 못본 듯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이들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 아까 우리 못 봤어?”

, ?”

아빠 그냥 가면 어떡해!”

, 그게!”

 

새아빠가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왔다, 아빠, 나중에 전화할게.”

아이들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또다시 외로워졌다. 아이들에겐 더 이상 내가 필요없었다. 아내도 나를 잊어가는구나.

 

 

4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 TV를 구입했다. TV를 보고, 인터넷을 보고, 신문을 보았다. 그래도 견딜 수 없어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고, 연예프로그램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또 소설을 읽고 시를 읽었다. 지국장에게 얘기해서, 우리 지국에서 발행되는 신문 7종을 모두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지국장은 내게서 더 이상 6만원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국배달사원 특권으로 신문 일곱종을 모두 무료로 보았다. 지국장이 내게 성실한 배달 사원이라며, 표창장까지 수여하기도 했다. 우리 지국은 내 덕분에 유료배달부수 전국 탑을 기록하기도 했다.

 

나는 신문배달만으로 수입이 500만원을 넘게 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택배일과 우유배달일도 모두 그만두었다. 지국장이 내게 신문부수관리도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다른 일을 그만두고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낮에는 지국에서 지국장 보조로 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새벽 두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했다. 그리고 토요일은 새벽에 배달만 하면 되었다. 나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간이 많이 남았고, 나에겐 돈의 여유도 조금씩 생겨갔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아내는 나에게서 점점 잊혀갔고, 나의 아이들도 더 이상 내게 연락해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나의 가족들에게서 멀어져갔다.

5

 

어느 덧 10년이 흘렀다. 나는 지국장이 되었다. 지국장은 신문사 본사로 들어갔다. 신문사 본사에서 전국지점을 관리하는 본부장을 돕는 본부차장이 되었다. 지국장은 내게 신문사를 맡으라며 지국장을 물려주었다. 내가 관리하는 배달사원은 무려 24명이다. 우리 지국은 갈수록 신문을 배달시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져갔다.

 

나에게 가족은 잊힌 지 오래다. 나는 지금은 본부차장이 된 전 지국장에게 가족에 대해서 물었다. 전 지국장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도 가족과 헤어진 지 오래라고. 아내도 아이도 모두 떠났다고. 그러나 외롭지 않다고.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이 있고, 동료가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주말이었다. 나는 마트에서 오랜만에 실컷 먹고 싶은 걸 먹고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시식용 음식으로. 그러다가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 누구세요?”

여보, 나야!”

?”

, , 여긴 왠일?”

여보, 요즘 뭐해?”

신문사 지국장 되었어

그래? 그럼, 잘됐네. 오늘 나랑 데이트하자. 한가하지?”

?”

괜찮지?”

, , 그래...”

 

아내였다. 얼굴이 몰라보게 말라 있었다. 남편이 있는 사람이 왜 나한테 데이트신청을 하는 건지 이해는 안 되지만, 나는 그녀의 넉살에 넋을 잃고 말았다.

 

남편은?”

, 저기, 나 다시 이혼했어

, ?”

애들은?”

애들은....”

?”

애들은 나 혼자 키우고 있어

?”

위자료로 70억 벌었어

, ?”

그래서 그 돈 가지고 생계 유지해

, 그래?”

애들은 새아빠 좋아하지 않아?”

새아빠는 좋아는 했는데, 새아빠가 어느 날 나랑 같이 사는 거 싫증났다며 위자료 많이 줄테니 이혼하자네. 그래서 이혼했어.”

, , , 그래?”

, 그래서 말인데.”

?”

우리 다시 결혼하자

, 뭐라고?”

애들한테는 아빠가 필요하고 나한텐 남편이 필요해

, 그래?”

, 그럼, 그래야 되나?”

그럼, 그래야지!”

 

나는 그렇게 아내와 다시 결혼했다.

 

 

6

 

아이가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있었다. 첫째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고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나는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아내는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가 그러면서 고백했다. 자기도 돈을 번다고. 무슨 돈을 어떻게 버냐고 했더니, 자기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자기가 쓴 책이 영원그림눈짓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데 그게 무슨 베스트셀러냐고 했더니, 책을 보긴 본 거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서, 아내가 인터넷을 검색해 주더니, 영원그림눈짓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것돈 무려 24주간 연속 1위였다. 주요 서점 싸이트 모두 1위였다. 대체 이 책으로 얼마를 버냐고 물었더니, 한달 수입이 3억이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한숨쉬지 말라고 했다.

 

그제서야 궁금해졌다. 나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나랑 왜 다시 합칠 생각을 했는지. 아내는 말했다. 내가 너무 힘들게 일하는게 안쓰러웠다고. 자기가 떠나면, 내가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그리고 또 있었다. 아이들도 아빠가 매일 없어서 힘들어 했다고.

 

그러면서 고백하기 힘든 말을 했다. 그 중소기업 사장과는 서로 합의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자기기 지겨워질 때까지만 같이 살아주면 위자료 충분히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소기업 사장이 지겨워질 때까지만 같이 살아준 것이라고. 그리고, 같이 사는 조건은 아이들이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조건이라고. 아이들이 크면, 자기를 즐겁게 못해줄 테니까 그때까지만 같이 살아달라고.

 

나는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대체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었고, 너한테는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었다. 아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중소기업 사장은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 덕분에 자신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고 했다고. 아이들의 순수함이 필요했다고. 그리고 아내하고는 항상 다른 방을 썼다고. 아이들한테도 새아빠랑 즐겁게 지내면, 아빠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얘기했다고.

 

나는 아내한테 화를 냈다. 아니, 아무리 그랬어도,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내가 아무리 힘들었어도, 나랑 같이 살았어야 한다고. 그 중소기업 사장의 방법은 잘못된 거라고. 자신의 상처를 왜 그런 식으로 치료하려고 하냐고.

 

아내가 눈물을 흘렸다.

 

좋은 방법 아니란 건 안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아내는 그때의 나랑 같이 살던 시간들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고. 아내가 펑펑 우는 바람에 나는 아내를 말없이 바라보아야만 했고, 아내는 한참을 울었다.

7마지막회

 

아이들이 나를 모두 쳐다보았다.

 

왜들 그래?”

아빠, 나 내일 소풍 가

아빠, 나 내일 미술시간 있어

아빠, 나 내일 점심 사먹어야 돼

아빠, 나 내일 수학여행 가

아빠, 나 내일 시험 있어

아빠, 나 내일 친구들하고 영화보러 가

아빠, 나 내일 친구네 생일이야

 

다들 한결같이 용돈을 달라는 소리였다.

 

그래, 알았다.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너희들을 챙겨주겠냐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여보, 걱정마. 여보꺼 용돈은 내가 챙겨줄 테니까

그렇지, 내 팔자가 그렇지.”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전 남편인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 잘 지내죠. , . 아이들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저 너머로 그 사장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제가 더 고맙죠. 덕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네요

, 잘 사시니, 다행이네요

 

아내가 전화를 끊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살짝 찡그린 미소를 보냈다.

아내가 웃었다.

 

아이들이 그런 아내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

창문 밖으로 바라보이는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였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행복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고, 나도 아이들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런 나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를 부른 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빠, 아빠

나의 눈에서 살짝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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