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웃음 어디 갔지? - 생각하는 그림책 1
캐서린 레이너 지음, 김서정 옮김 / 청림아이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1월 24일 목요일. 날씨 : 해. 제목 :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

 

오늘은 속담책을 보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 근대 이상하다. 완전 내가 곰이고 엄마가 주인이다. 기분나쁘다. 비교하자면 엄마는 기와집이고 나는 초가집이다. 너무나 기분나빠서 화가 나서 화산폭팔할 것 같다. 근대 오늘 공부는 너무 많아 힘들어죽겠다. 너무나 힘들다. 끝.

큰아이가 지난 겨울방학때 쓴 일기다. 늘 한 페이지의 절반 정도만 쓰던 아이가 왠일로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웠다. 도대체 뭘 썼길래? 궁금해서 봤더니 이런 내용일 줄이야...매일 조금씩 하기로 약속했던 문제집이 너무 많이 밀려서 야단을 쳤는데 그 사정을 모르시는 담임선생님께서 이걸 보시면 날 어떻게 생각하실지, 안 봐도 비디오다. 엄마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고쳐달라고 부탁해볼까. 아니, 불만이 가득 찬 아이에겐 소용없는 일이겠지...싶어 단념했다. 문제의 일기 때문에 엄마가 요렇게 가슴앓이를  하는 줄도 모르고 개학날 아침 아이는 일기장이 든 가방을 자랑스레 등에 메고 현관을 나섰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외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큰아이의 불만은 그 날 하루만의 얘기가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야단보다 잔소리를 싫어한다더니, 정말인가보다. 무슨 얘길해도 툴툴대고 짜증을 낸다. 예전에 비해 잘 웃지도 않는다. 밝게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예쁜 아이였는데...왜일까? 뒤늦게 태어난 동생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 웃음 어디 갔지?> 이 책에는 웃음을 잃어버려서 슬픈 호랑이 아우구스투스가 웃음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덤불 밑에 들어가고 높은 산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깊은 바다와 사막에도 가보지만 웃음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갑자기 만난 비를 피하느라 물웅덩이에서 철퍽 거리며 한참 놀고나서야 깨닫게 된다. 웃음이 바로 자기 코 밑에 있다는 걸. 행복할 때면 언제나 웃음은 거기 있다는 걸. 

무척이나 짧고 간단한 내용이다. 반면에 그 속에 든 뜻은 깊고도 심오하다.


 

주인공인 호랑이 이름부터 범상치않다. 바로 ‘아우구스투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이자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아우쿠스투스. 만약 황제인 그가 웃음을 잃어버려 슬픔에 빠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온 백성이 그의 웃음을 찾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지 않았을까. ‘황제의 웃음을 찾아주는 이에겐 금은보화, 혹은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하지만 호랑이 아우구스투스는 달랐다. 그저 쭈우욱 기지개를 켠 뒤 웃음을 찾아 나선다. 없거나 잃은 건 다시 찾으면 된다는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림 역시 시원시원하다. 얼핏 보면 붓 가는 대로 대충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흑갈색으로 서슴없이 죽죽 그려진 호랑이 줄무늬는 다른 사물이나 배경에 비해 호랑이를 더 돋보이게 했다. 더불어  독자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오로지 호랑이의 동작이나 표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건 바로 호랑이의 눈이다. 밀림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맹수 호랑이의 눈을 점 하나 콕, 찍어놓는 말다니! 정말 대담하다. 그리고 신기하다. 하나의 점에 불과한 호랑이의 눈이  어느 순간 씽긋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걸 아이는 처음엔 이상하다, 줄무늬 때문에 어떤 게 눈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몇 번 반복해서 보던 어느날 드디어 아이는 “호랑이 표정, 진~짜  웃겨”하고 쿡쿡 웃음을 뱉었다. 오호라....드디어 웃는구나!!



 
이때를 놓칠새라 아이에게 물었다. “호랑이가 왜 웃는 거야?”  “웅덩이에서 물장구 치는 게 재밌어서”  “호랑이는 행복이 뭐래?”  “재밌는 거”   “넌 언제 행복한데?”  “멋진 장난감 살 때랑 맛있는 거 먹을때”...순간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을 살포시 누르고 “엄마랑 아빠랑 동생보다 더?”  “음...” 이럴수가!! 고민할 게 뭐 있냐? ㅠㅠ “만약 가족이 함께 있는 거랑 장난감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어쩔거야??”  “그럼, 가족!!”   "그래, 행복은 머~얼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거...그게 바로 행복이네!!"  앗싸!! ^^

 

호랑이 아우구스투스가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결코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가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모든 곳에 있다는 진실을.

 

참, 표지에서부터 줄곧 옆모습만 보이던 호랑이가 웅덩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난 마지막에 가서야 정면을 바라보는데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치 책을 보고 있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하다.

 

 

행복에 대해 막연하게 갖는 생각-이상-과 지금의 생활-현실-을 웅덩이에 자신을 비춰보듯 마주봐야 한다고.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그 다음엔? 숙제를 끝낸 아이가 밖으로  놀러나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곳에 있는 행복을 만끽하라고. 

 

아이와 얘길하고 책장을 덮으면서 무척 홀가분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를 막 해결한 느낌. 혹시나 그 기분이 달아날까봐 얼른 아이를 꼬옥 안았다. 덩치는 크지만 아직 어린 아이. 이 아이의 마음을 그동안 너무 몰라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그리 거창하지 않으며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나 역시 잊고 살았다. 


너 그거 아니?  행복은 세상 모든 곳에 있지만 엄마는 니들이 웃을 때가 젤루 행복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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