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잠투정하는 아이를 겨우 재워놓고 책을 들었다. 원색의 화려한 표지로 포장한 다른 책과 달리 하얀색 표지가 유난히 눈길을 끌던 책이었다. 오른쪽 위 귀퉁이에 작게 씌여진 제목 <Q&A>. 여러 상징적인 문양과 인물, 그림들이 어우러져 영어 알파벳 Q와 A를 이루고 있었다. 감각적이면서 깔끔하다.




더구나 소설의 배경이 바로 인도, 인디아다. 여행자유화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인도의 풍습이나 유물, 유적을 다룬 책은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그에 비해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은 보기 드물다. 게다가 순식간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노란색 띠지의 문장!  “나는 체포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믿기지 않았다. 살인이나 폭행, 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아니라 TV퀴즈쇼에서 우승했다고 사람을 체포하는 나라가 요즘 세상에 어디 있겠어. 지금이 19세기나 20세기도 아닌데 말이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파리도서전 독자상과 남아프리카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걸 보면 저자가 책 속에서 풀어놓은 얘기가 전혀 황당한 내용이 아니라는 건 분명한데....그래도, 왠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왜지?




이 책은 주인공이 경찰에 의해 체포되면서 시작한다. 자신이 왜 체포됐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는 주인공에게 취조관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뭔 놈의 이름이 이래? 온갖 종교를 뒤섞어놓았군.”하며 대뜸 짜증부터 낸다. 그리고 그가 체포된 이유가 뭔지 알려준다. 토머스가 TV퀴즈쇼에 출연해서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속임수를 썼기 때문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빈민가에 살면서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웨이터가 박사도 풀기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모두 알아맞힐 수 없다는 거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퀴즈쇼 제작진과 취조관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토머스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굶주린 몸에 가해진 가혹한 고문으로 토머스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갈 즈음, 한 여인이 나타난다. 자신을 토머스의 변호사 스미타라고 소개한 그녀는 그가 퀴즈쇼의 모든 답을 어떻게 맞혔는지 알아내기 위해 토마스의 삶을 하나하나 추적해나간다.




이후의 소설은 토머스의 과거가 회상처럼 떠오르고 곧이어 그와 관련된 퀴즈쇼 문제가 연결되면서 진행된다. 예를들어 토머스와 친구 살림은 배우 아르만 알리가 출연한 영화를 자주 보러 갔는데 살림은 아르만을 좋아한 나머지 그의 대사를 외우다시피 했다. 그때 출제된 문제는 아르만 알리와 프리야 카푸르가 처음으로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는 무엇인가...였다. 토머스는 당연히 이 문제의 정답을 맞혔고 1000루피를 벌었다.




이렇게 퀴즈쇼에 출제된 열 세 개의 문제는 토마스의 삶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 두 개가 아니라 모든 문제가....우연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거 아닌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라고, 우연이 연이어 계속 된다면 그건 필연이고 운명이란 생각이 든다.




각각의 문제마다 보여지는 토마스의 삶이 때로 놀랍고 엽기적인 일,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계속 되는데도 지겹거나 뻔한 스토리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옥죄는 가난에서 벗어날 가망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낙천적이고 정직한 그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저자 비카스 스와루프의 이야기 풀어내는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데뷔작이니...굉장하다.




열 여덟살의 청년 토마스의 삶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인도의 숨겨진 면을 들여다본 듯하다. 타지마할 같은 유적지 몇 개와 뿌리깊은 신분제도 외에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극심한 빈부격차,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생활....등 이 책으로 인해 인도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형부근무 때문에 온가족이 인도에 살고 있는 언니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얘기 끝에 물었다. “근데 언니, 10억 루피가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나 되지?” “...왜?” “그냥 궁금해서...읽고 있는 책에 그런 대목이 나와서...” 언니가 알려준 방법으로 환율을 조회해봤다. 그랬더니 인도 10억 루피는 약 60,635,000원이었다. 꽤 큰 돈이다.




친정엄마는 나만 보면 늘 ‘책 자꾸 읽어서 뭐하냐. 퀴즈 프로그램 나가서 상금 좀 받으면 얼마나 좋냐’...고 핀잔을 주신다. 이담에 또 재촉하면 그땐 퀴즈쇼에서 우승한 것 때문에 체포된 토마스의 얘길 해드려야겠다. 그럼 단념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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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3-03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것 같아요. 어쩌면 인도라는 나라는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가장 피해를 입은 나라일 것 같아요. 인도하면 성자를 연상시켜버리면서 그속에 있는 온갖 사회문제와 인권문제를 덮어버리는.... 인도인이 그려낸 인도 사회의 모습 궁금하네요.

몽당연필 2008-03-0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번 읽어보실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금새 읽혀진답니다. ^^

2009-02-18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