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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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독특하고 재밌게 생긴 책장이네. 멋지다.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의 표지를 보는 순간 단박에 반해 버렸습니다. 가구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제작한 5단 책장이 아니라 우리집 방과 거실의 높이, 폭에 꼭 맞는 책장. 그것도 기왕이면 많은 책을 꽂을 수 있도록 최소한 6단 책장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늘 노래 부르곤 했는데. 폭이 넓은 복도의 양옆을 칸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은, 마치 계단처럼 생긴 자그마치 7단 책장이 떡하니 제 눈앞에 나타나니.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표지가 책장과 서재의 모습인데다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라는 제목과 ‘어떤 집을 짓고 싶으세요?’라는 문구에서 이 책은 ‘그래, 바로 서재에 관한 책’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 예상과 다를 수도 있다고 조금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e-메일로 지은 집’ 이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아리송했거든요. e-메일로 집을 짓다니. 대체 무슨 의미지?


그런데요. 제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알아채는 데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초반 몇 장을 넘기니 바로 드러나더군요. 함께 집을 짓고 싶다는 국어교사 송승훈의 제안에 건축가 이일훈이 어떤 집을 꿈꾸는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서로 질문하고 답변을 주고받은 기록, 그것도 e-메일로 의한 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새로 지을 집을 구상하기 전에 집주인이 갖는 꿈을 글로 써보라는 건축가의 제안에 ‘구름배 같은 집’이었으면 좋겠다면서 집의 요소요소에 대한 생각, 을 조목조목 늘어놓는 건축주. 집을 짓는 건축자재를 논할 때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비교하고 논의하고 자료를 첨부하는 건축주와 건축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면서 일을 진행시켜나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2005년 8월 23일부터 2007년 12월 30일까지. 건축주 송승훈과 건축가 이일훈은 메일을 주고 받았는데요. 손 글씨로 쓴 편지가 아니라 e-메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의 사생활이 담긴 글이어서 처음엔 금지된 것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고받는 메일이 쌓일수록 이건 단순한 글이 아니라 현재 ‘집’에 살고 있고 이후 언제라도 ‘집’을 지을 이들이라면 꼭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서재가 갖는 의미, 공부를 하는 장소이므로 너무 편한 것보다 다소 긴장감이 드는, 어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장치들을 해달라는 대목은 책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돌아보게 했는데요.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집이 바로 ‘잔서완석루’,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입니다.


이 책의 공저자인 이일훈과 송승훈, 두 저자는 알고 보니 제게 낯선 분이 아니었습니다.  건축가인 이일훈은 <뒷산이 하하하>란 책을 통해 첫만남을 가졌구요. 건축주이자 국어교사 송승훈은 제가 자주 들락거리는 ‘책따세’의 일원이시더군요. 특별하지 않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지만 그래도 어찌나 반갑던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진짜 멋진 책은 다 읽은 후에 작가가 엄청 친한 친구처럼 느껴져서 내킬 때마다 전화를 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요.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이후 언제라도 제가 꿈꾸던 집을 지을 때. 그때 이 두 저자와 꼭 한 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책장을 덮고 난 이후로도 내내 건축가 이일훈이 던진 말들이 떠나지 않습니다.  

"어떤 집을 꿈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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