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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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영화 [광해]를 봤습니다. 주연배우가 일인이역을 맡았는데 그 연기가 일품이라는 지인의 얘기에 더 궁금했는데요. 왕권을 둘러싼 권력의 알력과 정쟁이 치열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서 잔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영화는 저의 예상과 다른 면을 보여주더군요. 자객에 의한 암살을 두려워했던 광해는 자신과 꼭 닮은 대역을 세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는데요. 두 시간이 넘는 영화에 몰입해서 보고 나오면서 남편은 그랬습니다. “영화, 괜찮네” 영화평이 짜기로 소문난 남편에게서 실로 놀라운 반응이 나왔는데요. 전 주연인 이병헌의 연기도 좋았지만 그보다 주변인물들이 더 인상에 남았습니다. 진짜 왕이 아닌 하선을 보좌하고 지키려 애썼던 도승지 허균과 도부장, 조내관 그들의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라는 부제의 책 <왕의 하루> 출간소식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영화 [광해] 였습니다. 왕궁의 깊숙한 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라를 움직였던 조선의 왕, 그들의 일상이 어떠했을지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광해가 집권했을 당시 보름간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대목이 역사적으로도 사실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새벽 4시경, 서른 세 번의 종을 쳐서 파루를 알리면 도성의 문이 열리고 밤 10경 스물여덟 번의 종을 쳐서 인정을 알리면 도성의 문이 닫혔다는 책의 시작 부분, 역시 [광해]를 연상시키더군요. 침전에 든 왕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하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왕의 업무를 포함한 일상을 소개해놓았습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역사를 바꾼 운명의 하루’는 독특하게 시작합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분기점,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 왕이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 억울함을 털어놓으면 그 뒤에 전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해주는 형식입니다. 이를테면 고려의 변방지역 무장에 불과했던 이성계가 위화도회군하여 최영과 정몽주를 제거하고 조선을 세우게 되는 날을 비롯해서 궁궐에서 태어난 첫 번째 원자라는 축복속에 태어난 연산군은 생모가 폐비가 되어 죽음에 이르던 과정을 알게 되고 복수를 행하면서 결국 중종반정을 맞게 되는 왕의 운명을 바뀌게 했던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2부 ‘군신이 격돌한 전쟁의 하루’에서는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과 책사 한명회를 등에 업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처럼 팽팽한 대립과 갈등, 줄다리기가 어떠했는지 전해줍니다. 3부 ‘하루에 담긴 조선 왕의 모든 것’에서는 왕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왕위에 오르는 첫날에서부터 목숨이 다해 임종에 이르기까지 왕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알려주는데요. 왕의 이름, 묘호에 대한 것에서부터 ‘종’과 ‘조’가 어떻게 다른지, 왕의 결혼식, 왕이 되기 위해 ‘제왕학' 수업을 받는 것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집권기간 내내 치세를 누리고 문화를 발전시켰던 세종대왕이나 중종과 같은 왕이 좀 더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우리 시대는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상상해보곤 하는데요. 500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과 지금의 시간의 간극이 너무 커서인지 이러이러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가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지를 두고 가족들이, 직장동료들이, 친구들이 수시로 토론을 하고 서로의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신문과 방송 같은 언론 매체에서도 역시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이 암암리에 날선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마음 속에 한 분을 꾹 찍어 두었습니다. 정치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담쌓고 지내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하는 일개 주부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그 분이 꼭 대통령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됐냐구요? 2012년 12월 19일, 그 날로부터 한동안 전 내내 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저와 같은 생각이길 간절히 바랬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았던 거지요. 사람들은 그러더군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비슷할 거라고. 누가 대통령 자리에 앉더라도 서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미련은 버리라고. 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움은 이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장구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왕의 운명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 <왕의 하루>의 책장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더군요. 만약 그들의 하루가 바뀌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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