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 제왕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정치학 교과서
왕굉빈 해설, 황효순 편역 / 베이직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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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불혹의 나이를 처음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뿐인데 뭐가 달라질까 했어요. 왜냐면 다른 이들이 공포에 떠는 서른도 전 그냥 무덤덤하게 맞았으니까요. 근데 어우~, 불혹이 되니까 다르긴 다르더군요.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일단 계절마다 순하게 넘어가는 법이 ‘결코’ 없고 한 번 아프면 일주일은 기본, 열흘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불혹이 되면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는구나.


근데 좀 지나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더군요. 이전에는 눈여겨보지도 않던 것들에 눈이 가고 관심이 가지고 조금씩 파고드는 것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책을 고를 때 예전에는 어렵고 고리타분하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철학이나 인문서적의 책장을 뒤적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됐지요. 그래서 또 생각했습니다. 아, 불혹이 되니 읽어야할 책, 사야할 책들이 더 많아지는구나.


동양의 고전을 넘어 세계의 고전으로 일컫는 <논어> <노자> <장자>를 읽기 된 것도 모두 불혹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한비자>까지.


<한비자>는 정치인이나 전문경영인들이 반드시 읽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비자>를 ‘제왕학’이라고 한다기에 제가 읽을 일은 없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렇잖아요? 평범한 가정주부가 뭐 하러 그렇게 어렵고 골치 아픈 책을 읽겠어요? 그것 말고도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지만 복병이 있었습니다. ‘궁금증’이란 이름의 복병이. 도대체 <한비자>가 무엇을 담고 있는 책이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군주들이 곁에 두고 있었는지. 21세기 최첨단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인과 경영인들에게 정치철학 교과서가 되었는지. 문득 알고 싶더란 말입니다.


책은 제일 먼저 <한비자>의 저자(책의 양이 방대해서 후대에 글이 추가되었다고 하지만)인 한비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애를 이야기합니다. 한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남 앞에 나서기보다 조용히 글을 쓰는 일에 몰두했던 한비. 그가 쓴 글을 읽은 진시황이 한비를 만나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해서 그를 대면하게 되는데요. 순자 밑에서 함께 동문수학했던 이사의 시기와 모함으로 한비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렇게 한비가 죽고 난 후 한나라는 진에 의해 멸망을 맞게 되고 진은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최초의 통일제국이 됩니다.


군주를 위해서 쓴 글,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 쓴 글인 <한비자>는 한비의 사상뿐 아니라 그가 영향을 받은 초기 법가사상가인 상앙의 ‘법(法)’, 신도의 ‘세(勢)’, 신불해의 ‘술(術)’의 사상과 주장도 담겨 있는데요. ‘외도내법’ ‘외유음법’이라 하여 겉으로는 도(道)와 유학을 중시하는 듯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법(法)을 강조한 <한비자>는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강력한 왕권과 통치이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법은 당시 중국에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어서 법가와 관련된 책이나 의학서, 농업 같은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책은 불온하다하여 불태워지고 정치를 비판하는 학자들을 산 채로 파묻는 ‘분서갱유’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거지요.


한비는 여러 면에서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선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혼란한 시대였던 점이나 강력한 군주의 통치기술이나 독재를 주장했다는 것이 비슷한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강력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었다면 한비는 오직 법(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함과 동시에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이념과 통치기술까지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책, 55편 20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한비자>를 500여 쪽의 책 한 권으로 얼마나 이해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무심코 넘겼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비슷한 내용이 자꾸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고 할까요. 뭔가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 기분이 들지만 <한비자>를 통해 중국의 고대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오랜 불경기로 갈수록 삶은 팍팍해지고 특히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이이서 <한비자>는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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