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와 드골 - 위대한 우정의 역사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 지음, 변광배.김웅권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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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양복을 입은 초로의 두 신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파나 의자가 아닌 건물의 계단 같은 곳에 앉아 열심히 얘기를 하는 사람과 그를 바라보며 경청하는 사람.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표정이나 모습은 생기가 넘친다. 무슨 얘길 저리도 재미나게 하는 걸까. 곰곰이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을까 착각이라도 할만큼. 자, 그렇다면 문제를 풀어보자. 책의 제목은 <말로와 드골>. 표지에 그려진 두 사람. 누가 말로이고 누가 드골인가? 두 사람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나로선 ‘찍어볼까?’ 하다가 금방 알아차렸다. 붉은색 글자의 말로와 초록의 드골. 빨강과 초록색 글자로 된 제목과 짝짓기라도 하듯 손에 불붙은 담배를 들고 있는 이는 말로이고 손에 초록색 안경을 들고 있는 사람이 드골이 분명하다. 거기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짧은 문구. 간단하지만 가장 명확하게 주인공과 책 내용을 소개하는 표지가 아닌가. 절묘하다. 멋지다.

 

솔직히 말로와 드골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앙드레 말로가 중국혁명을 다룬 <인간의 조건>을 썼다는 것과 샤를 드골이 프랑스의 대통령이었으며 최근 스캔들로 전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는 그 누군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것 정도? 때문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금방 와닿지 않았다. 이 두 인물이 생전에 어떤 계기로 만났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의문은 곧 호기심을 불러왔다. 이 둘의 접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 만나보자고. 까짓 거. 작가고 대통령이었다 해도 어차피 할배들 아냐? 모 방송국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짐꾼으로 활약했던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할배들 얘기야 얼마든지 들어주지. 말해보라고. 당신들 우정의 역사를.

 

말로와 드골. 그들은 서로를 가리켜 “그 파시스트!” “그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11년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만 봐도 그렇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특성상 좋은 조합이 아니다. 허나 그들은 1945년 7월 18일, 첫 만남을 가졌다. 만나자마자 드골 장군은 말로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이에 말로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신의 정치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스페인 내전과 레지스탕스 운동에 대해, 더 나아가 자신은 프랑스와 결혼했노라고 말하는 말로. 한 시간 정도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드골 장군과 앙드레 말로는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25년 이상 동안 그 강도 면에서 한결 같았던 그들 사이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 19쪽.

 

이후 책은 샤를 드골과 앙드레 말로의 성장과정을 전하는데 둘은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된다.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하면서도 소양을 갖춘 지도자로서의 어린 시절을 보낸 드골은 열다섯 살 무렵, 군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프랑스의 명문학교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말로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나는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던 할아버지와 열정을 지닌 아버지가 말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그에 비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결코 좋지 않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도 두 사람에게 완전히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남겼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포화를 뒤집어쓰며 참혹함을 겪은 드골과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통해 영웅적인 이야기에 젖어있던 젊은 청년 말로. 이후로도 둘은 장교와 모험가의 모습으로 평행선 위를 걷는다. 그러다 1930년대가 되면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을 잠식하려 하자 말로는 탐험가에서 투사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조건>을 출간하여 공쿠르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나치의 비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한다. 당시 드골은 프랑스의 군대를 걱정이 깊어져 <미래의 군대>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전문 장갑부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강연도 다녔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때 말로가 37세, 드골이 48세였다. 이전까지 줄곧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그리던 두 사람이 드디어 접점을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 즉, 인간의 자유, 존엄성, 그리고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의식이 그것이다. - 148쪽.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난다. 서로가 다른 성향과 기질을 지녔고 삶의 경험도 상반되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후 1959년 드골은 대통령이 되었고 말로를 문화부장관에 임명하기에 이른다. 조국 프랑스를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유럽에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우고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빛내는데 함께 손을 잡은 것이다.

 

드골 장군은 앙드레 말로에게서 자신과 같은 높이에 있고 자신에 상응하는 또 다른 자아, 그러니까 그를 포기의 유혹에 대해 경계하게 해준 그런 존재를 만났던 것이다. 그의 앞에서는 드골 장군은 드골 장군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고 행동할 수 있었다. -351쪽.

 

1970년 11월 9일 저녁 무렵, 짧은 산택을 마친 드골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곧 그의 심장도 멈추고 만다. 오래전 처음 만난 이후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신념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드골의 죽음 이후로도 말로는 자신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병과 건강악화로 1976년 11월 23일 새벽, 말로는 숨을 거둔다. 태어난 순간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도 달랐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말로와 드골, 그들의 우정은 참으로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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