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님 서재에서 퍼온다. 

 

이번주에 나온 가장 중요한 번역서는 물론 칸트의 <판단력 비판>(아카넷, 2009)이다. 3대 비판서를 백종현 교수가 혼자 힘으로 완역한 셈인데, 이로써 최재희(이석윤)판 3대 비판서가 수십 년만에 완전히 세대교체되었다. 기념비적인 업적이며 역자가 '한국의 칸트'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겠다. 여하튼 덕분에 한국어로 칸트를 읽어볼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됐다(나는 대학 2학년 때인가 최재희판 <순수이성비판>을 읽다가 그만 둔 기억이 있다). 물론 온전한 세대교체 및 한국어 번역의 정착은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철학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읽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가령 학술논문에서도 백종현판 칸트가 인용된다면 비로소 '한국어본'의 소임을 완수하게 되는 것). 한국어로서 칸트는 아직 '젊은' 철학자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5. 16) 근대 정신세계 혁신, 그 파괴와 건설의 완결편 

“그의 철학은 너무나도 파괴적이었고 많은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의 사상은 근대 의식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노르베르트 힌스케 <현대에 도전하는 칸트>)


이 문장의 주인공이 바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다. 근대 철학의 혁신자이자 계몽 정신의 산마루였던 칸트는 파괴자였던 것만큼이나 건설자였다. 그는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정신의 새 건축물을 세웠다. 이 파괴와 건설의 논리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 그의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다. 이 세 비판서 가운데 마지막 저작 <판단력비판>이 칸트 전문 연구자 백종현 서울대 교수의 번역과 주해를 거쳐 새롭게 나왔다. 앞서 백 교수는 <실천이성비판>(2002)과 <순수이성비판>(2006) 번역·주해본을 펴낸 바 있다. 이로써 칸트 3대 비판서가 백종현판으로 완역됐다. 40년에 걸친 칸트 연구의 결실이다.  



우리에게 각인된 칸트의 이미지는 파괴자라는 말이 주는 격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는 단조롭고 엄격하고 규칙적인 삶을 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걸어다니는 시계가 그의 이미지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후년의 칸트를 칸트 생애 전체로 확대한 모습이다. 젊은 시절 칸트는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내기 당구를 즐기고 살롱과 클럽을 드나들고 흥겨운 대화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사교계의 총아, 멋쟁이 신사가 칸트였다. 그랬던 그는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정교수 취임을 전후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칸트는 사교계에 발을 끊고 은둔자가 됐다. 그 무렵 하나의 거대한 문제가 그를 엄습했던 것이다. 철학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적 의무감이었다. 골방에 틀어박힌 칸트는 고투에 고투를 거듭한 끝에 10여 년 뒤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책이 바로 <순수이성비판>(1781)이다. 칸트는 이 책에 이어 7년 뒤 <실천이성비판>(1788)을 완성했고, 다시 2년 뒤 <판단력비판>(1790)을 세상에 내보냈다. 3대 비판서를 완성한 후의 칸트는 젊은 날의 습성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노인이 돼 있었다.

칸트가 세 주저에 ‘비판’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계몽정신의 아들임을 보여준다. <순수이성비판>의 초판 머리말에서 그는 자신의 시대를 “모든 것이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라고 규정한 뒤 이렇게 말한다. “이성은 오직, 그 자신의 자유롭고 공명정대한 검토를 견뎌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꾸밈없는 존경을 승인한다.” 이성이 모든 것을 비판에 부친다면, 이성 자신도 그 비판의 법정에 서야 할 것이다. 이성이 이성 자신을 소환해 심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칸트 비판철학의 놀라운 전환이다. 인간 이성이 이성 자신을 규명함으로써,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없는 것,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과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간해 내는 것이 이성 비판의 제1과제라고 칸트는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 비판이란 이성 자신의 기능과 능력을 밝히고 그 한계를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서 그 한계를 모르는 이성은 가차 없이 탄핵당한다.  




칸트의 비판 작업은 정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이성의 자기비판 작업을 통해 칸트는 우리 정신이 세계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며, 그 인식을 통해서 사물 자체의 존재가 확실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인간 이성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현상세계의 창조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신이 담당하던 창조자 구실이 인간의 이성 안으로 옮겨졌다. 세계 존재의 근거가 신에게서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의식의 규정을 받는다는 이 발상, 신의 업무를 인간의 업무로 바꿔놓은 이 발상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그렇게 의식이 창조자 노릇을 한다고 해도 제멋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은 엄격한 법칙을 따른다. 이렇게 의식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연의 법칙’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이라면, 그런 자연의 법칙 안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의지로써 세계를 바꾸고 도덕적 이상을 구현해 가는 정신 능력의 근거를 규명하는 것이 <실천이성비판>이다. 물론 이때도 정신은 엄격한 내적 법칙 곧 도덕법칙을 따른다. <판단력비판>은 이 두 저서 사이 가교 노릇을 하는 책이다. 판단력은 자연과 자유 사이,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다. 행위하고 실천하려면 먼저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마음의 능력의 원천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칸트가 먼저 탐구하는 것이 ‘미적(미감적) 판단력’이다. 이 미적 판단력 규명이 이후 철학적 미학의 진정한 출발점을 이룬다. 나아가 칸트의 미적 판단력은 현대의 정치철학에도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한나 아렌트의 ‘정치 판단 이론’은 칸트의 이 판단력비판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명섭 기자)     

 

세계일보(09. 05. 13) 칸트 3대 저작물 완역 마침표 찍다

서양의 세 문화기둥인 그리스·로마 문화와 과학, 기독교 사상은 칸트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통합됐다. 그는 이 세 문화기둥을 동시에 한 시야에 두고 반성하며 설명했다. 한국 철학사와 정신사에 칸트 철학이 미친 영향도 지대했다. 한국에 칸트 사상이 유입된 것은 20세기 초. 우리 사회가 19세기 말부터 서양전통에 합류한 게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 저변에는 유교적인 가치 체제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서양의 가치가 사회 유지의 잣대가 되고 있다. ‘사회 정의’라는 문제만 하더라도 ‘서양 법사상’이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흐름의 핵심에 ‘칸트’가 있다. 칸트 철학은 우리보다 앞서 서양철학을 받아들였던 일본을 통해서였다. 한국 철학박사들 중 ‘칸트’를 주제로 학위를 받은 사람은 100명이 훨씬 넘는다.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를 주제로 학위를 받은 사람들보다 많은 수치다. 

이처럼 철학사에서 칸트의 비중이 컸으나, 그간 그의 사상이 ‘동일 학자의 일관된 설명’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칸트의 3대 저작물인 ‘순수이성비판’(1781년)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은 그의 인식론을 잘 담아냈으나, 한 학자가 풀어낸 경우는 없었다. 각기 지식(眞)과 행위(善)의 영역을 논한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 더해 감정 영역인 ‘미(美)’의 문제를 다룬 ‘판단력 비판’을 한 사람이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백종현(59)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성과는 눈에 띈다. 백 교수는 최근 ‘판단력 비판’(아카넷)을 내놓으며 칸트의 3대 저작물 완역에 이정표를 찍었다. 일본 저작물을 답습하던 관행을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칸트의 3대 저작물을 한 학자가 완역한 경우는 외국에서도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게 책을 출간한 아카넷 오창남 편집장의 설명이다. 



칸트가 10년에 걸쳐 3대 저작물을 내놓았듯 백 교수도 3대 저작물 번역에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했다. 2002년 ‘실천이성비판’에서 시작해, 2006년 ‘순수이성비판’를 거쳐 올해 ‘판단력비판’을 번역하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백 교수는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 저수지’에 모이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이 저수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칸트 철학이 우리 사회에 주는 뜻은 각별하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여러 가치를 논했던 칸트 철학은 ‘인간 소외’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는 현실에서 더 유용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치’가 있는데, 이 가치를 가치있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칸트는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어요. 사람이란 결함이 있는 존재인데, 이를 극복하는 가치있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나오지요.”

우리 사회의 좌우갈등과 빈부격차 등 문제점도 칸트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법률적 평등과 시민적 자유에서 조화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하면 갈등의 강도가 낮아진다고 백 교수는 설명한다. 사회의 소외층 혹은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중요하다. 백 교수는 “소외층들이 스스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며 “약자가 감사하다고 여기는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의 3대 저작물 완역은 일본 영향을 받았던 선배 학자들의 한계를 건너뛰었다는 의미가 추가된다. 또 통일되지 않았던 철학 언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는 점도 의미 있다. 일례로 그간 국내 저작물에서 ‘오성’(깨닫는 능력)으로 번역됐던 독일어 ‘VerStand’(아는 능력)는 본래의 뜻인 ‘지성’으로 풀이했다. 백 교수는 칸트의 3대 저작물 완역에서 더 나아가 4대 저작물의 하나로 그의 종교 철학을 다룬 ‘순절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번역하고 있다. 2∼3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번역이 끝나면 칸트 사상의 ‘진선미성’(眞善美聖)이 완결되는 셈이다.(박종현 기자) 

09. 05. 15.  



P.S. <순수이성비판>의 해설서로는 백종현 교수의 <존재와 진리>(철학과현실사, 2008)가 있지만 입문서도 겸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옮긴 카울바하의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서광사, 1992)가 예전엔 입문서 역할을 했었다. 김상봉 교수의 <자기의식과 존재사유>(한길사, 1998)는 짐작에 우리말로 씌어진 가장 쉬운 칸트 소개서가 아닐까 싶다('쉽다'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책들과의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지만). 칸트 전공자인 김상봉 교수는 언젠가 <판단력 비판>을 옮기겠다고 한 적이 있어서 나는 김상본판이 백종현판보다 먼저 나올 줄 알았다.  

개인적인 바람을 적자면, 승계호 교수의 입문서 <칸트>가 꼭 좀 번역/소개됐으면 싶다. 영어권의 칸트 입문서로 한국인 학자가 쓴 책이 읽힌다는 건 자랑할 만한 일 아닐까. 정작 이런 책을 번역하는 데에는 국내 학자들이 왜 인색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바람을 더 적자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번역 이후에 백종현 교수가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마저 번역해주면 좋겠다. 한국의 헤겔 전공자나 헤겔학자들은 임석진판을 넘어서는 <정신현상학> 번역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므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부지런한' 칸트 전공자가 아닐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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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민주노동당도 진보신당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보수정당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심정적으로 진보정당들이 약진하여 이 사회를 좀 더 약자들이 숨쉴 수 있는 사회로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아직까지 진보정당들은 이념도 실천도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분단된 폭압적 구조하에서 진보정당이라도 수립했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도 이들에게 한없이 욕심을 부리게 된다. 정작 참여하진 못하면서... 진보의 길을 묻는 기사가 있어서 퍼온다. 우리가 소망하는 진보는 결국 약자가 인격적으로 대접받고 살 수있는 사회가 아닐까? 그 실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를 참고하자.

일본판 88만원세대·비정규직 그들이 공산당원이 된 까닭 

[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제조업까지 파견직 허용 ‘평생직장 실종’
연봉 2백만엔 이하 ‘워킹 푸어’ 1천만명
공산당, 풀뿌리 조직개편·거리노동상담
 

진보의 길찾기 / 일본 공산당의 부활


전직 자위대원 사야마 가쓰노부(60·가명)는 지난해 10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선거 때마다 집권 자민당에 투표하던 그가 자민당과 대척점에 있는 정당에 입당한 것은 실직이 계기가 됐다. 1969년부터 1980년까지 11년간 자위대에서 일한 그는 지난해 주방 및 가구 재활용 업체에서 2개월간 파트타임으로 청소일을 하다가 해고됐다. 자위대 퇴직 이후 인쇄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각종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던 그에게 실직 뒤 수중에 남은 것은 3만엔뿐이었다. 하루 생활비를 500엔으로 줄이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일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예순살의 그가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때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적기)를 구독하는 이웃이 공산당과 한번 상의해보라고 귀띔했다.

사야마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일본공산당 지바현 나가레야마시 의원인 도쿠마스 기요코(58)는 당장 사야마와 함께 시의회에 가서 생활보호를 신청했다. 44살 때 세번이나 생활보호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한 경험이 있던 그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곧 다달이 7만엔의 생활보호 자금을 받게 된 그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여겼던 공산당에 대한 이미지를 싹 바꾸게 됐다.

지난달 26일 공산당 지바현 나가레야마시 동부지부의 일요모임에서 <한겨레>와 만난 사야마는 “사회 저변의 약자들을 돕기 위해 공산당에 들어왔다.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모르는 것도 여러 가지 가르쳐준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일정한 수입이 없어 결혼도 못했고, 오랜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가벼운 우울증까지 있다는 그는 이날 회의 동안 시종 활기를 보이며 간혹 유머까지 던지는 등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날 회의에는 종교단체 창가학회를 모체로 한 집권 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의 당원이었던 60대 여성, 70살에 입당한 홀몸노인 등 다른 신입 입당자들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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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과 산하 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이 지난달 29일 도쿄 신주쿠에서 개최한 ‘거리 노동생활상담’. 단순한 당 홍보활동이 아니라, 비정규직 등 해고의 광풍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을 표방했다 

쉰다섯살 우스이
 
 

해고됐다 당 도움으로 취직
“비정규직 노동조건 바꾸자”
공산당 입당하며 각오다져

자본주의 체제가 고도로 발달한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에서 최근 1~2년 사이에 사야마처럼 공산당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7년 9월 이후 매달 약 1천명씩 신규 당원이 늘어나 1만8천명이 새로 입당했다. 당원 증가 속도가 이전의 두 배가 됐다. 특히 20대~30대 전반의 젊은 입당자들이 이전에는 10% 정도였지만, 지금은 20~3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이 지난해 중의원 대정부 질의를 통해 파견노동자의 마구잡이 해고를 질타하는 동영상을 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당 강령을 보고 자발적으로 입당하는 전례 없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만 52명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입당했다. 젊은 공산당원 증가의 배경에는 평생직장을 자랑하던 일본 사회가 어느덧 ‘고용 불안과 숨겨진 빈곤 대국’으로 전락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공산당원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가 70년 전에 발표한 프롤레타리아 소설 <게공선>이 지난해 50만권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한 것도 공산당 붐에 불을 지폈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겐 70년 전 소설 속 가혹한 노동환경이 현대 일본의 자기 이야기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2002년 자민당 정권이 노동자파견법을 개정해 제조업까지 파견직을 허용하는 등 신자유주의식 구조개혁을 단행한 결과 비정규직이 35%로 늘어나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젊은이 둘 중 하나는 비정규직으로 전전하고 있다. ‘일본판 88만원 세대’인 비정규직의 양산은 빈곤의 확산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 급여의 50~60%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간 수입 200만엔 이하인 1천만 일본 ‘워킹 푸어’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몰아친 세계 금융위기와 경기 불황은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도요타 등 일본 대기업 제조업체들이 지난 5~6년간의 호황 때 사내 유보금을 수조~12조엔씩 두 배 가까이 늘려놓고도, 불황을 빌미로 기다렸다는 듯이 파견사원 등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해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고용보험에도 들지 못해 실직과 동시에 빈곤계층으로 전락했다. 해고와 함께 회사 기숙사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은 경우도 많았다. 올해 6월까지 비정규직 해고의 광풍에 무방비로 노출된 20만~40만명이 해고될 것이라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허술해진 사회안전망에서 퉁겨져 나간 그들에게 일본 공산당은 현대판 ‘가케고미데라’(에도시대 사회적 약자의 도피처 구실을 했던 절)였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시급 1천엔의 파견직으로 일하다 지난해 1월 해고된 우스이 도코미(55·가명)는 두 달치 생활비밖에 없는 막막한 상태였다. 해고 뒤 집 안에 틀어박혀 생활했던 그는 올 1월 사장이 공산당원이고 직원 상당수도 공산당원인 병원 청소회사에 취직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3월 공산당에 입당했다.

1922년 창당 이후 오랜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당원 40여만명의 대부분이 50~70대 중장년층이었던 일본공산당으로서는 최근 ‘젊은 피’ 수혈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데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물두살 아사노

자동차 부품공장 쫓겨나
당과 상담 해고철회투쟁
“나같은 약자편이라 입당”


아사노 기쿠코(22·가명·여)도 공산당이 최근 확보한 ‘젊은 피’의 한 사람이다. 고교 졸업 뒤 4년 가까이 일하던 자동차 정밀부품 공장에서 지난 3월25일 일방적으로 해고됐다. 지난 1월 공산당이 주최한 거리노동상담에서 알게 된 아베 마코토 도쿄도의원의 도움을 받고 회사를 상대로 해고철회 투쟁을 하고 있다. 다른 곳에 취직하기 어려운 불황 속에서 13만엔이라는 터무니없이 적은 퇴직금을 가지고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그는 지난 2월 “공산당은 나 같은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응원해준다”고 느껴 입당했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애초 정치에 관심도 없고 선거 때는 투표 현장에서 적당히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냈다는 그는 입당 이후 “우리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도쿄 신주쿠에서 일본공산당과 계열 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민청)이 공동 주최한 ‘거리 노동생활상담’ 캠페인은 사회적 약자와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공산당의 전형적인 활동이다. 지난해 11월 건축회사에서 쫓겨나 공원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쉰다섯살 남성은 이날 상담을 받고, 공산당 도의회 의원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 생활보호 신청을 했다.

열아홉살 때 결혼하고 스물두살 때 이혼해 두 자녀를 둔 싱글맘 스마노 요코(41)에게 일본공산당은 “곤란한 사람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 정당”이다. 또한 “국가의 정당보조금이나 기업체 정치헌금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당비로만 운영하는 깨끗한 정당”이라고 생각해 최근 자연스럽게 입당했다.

일본공산당은 지역조직 강화에 역점을 기울여 풀뿌리 정당의 이미지를 강화한 것도 당세 확장으로 이어졌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일본공산당은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에 밀려 의석수가 9석에서 7석으로 줄어든 데 충격을 받고 지역 밀착 활동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전국 2만2천여 지부와 3천여명의 지방의원들이 지역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산당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이 결과 지난 4월 지방선거에서 일본공산당은 의석을 9석이나 늘리고 2007년 참의원 선거에 비해 득표수도 50% 가까이 확대하는 등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에키 도시오 공산당 홍보부장은 “공산주의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한꺼번에 공산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있는 자본주의, 즉 규칙이 있는 경제사회를 실현하자는 것이 우리 목표”라며 “이것이 국민들이 공산당에 편안함을 느끼고 공감대를 넓히는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일본공산당은 2004년 1월 제23차 당대회에서 당강령을 대대적으로 개정해, 혁명정부 수립 목표를 포기하고 민주연합정부를 통한 의회주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공산주의 혁명이나 일당독재가 연상되기 쉬운 공산당 이미지를 탈피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에는 ‘민주집중제’라는 이름으로 각 지부에 현지 실정을 무시한 상의하달식의 지시를 내려보내기도 했지만, 현재는 각 지역의 자치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당 당원 증가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약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본공산당은 올 9월 이전에 실시되는 중의원 선거에서 650만표 이상을 얻어 현재 9석인 중의원 의석을 크게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재 공산당 지지율은 4~5% 정도에 그치고 있다. 소련 붕괴 등 사회주의 체제 몰락 이후 혁명노선을 포기한 뒤에도 일본 국민 전반의 공산당에 대한 거리감 또는 거부감은 여전히 강하다. 최전성기였던 1979년 중·참의원을 합쳐 40석을 확보했던 때에 비하면 현재 중·참의원의 16석은 초라하다. 정권교체의 바람이 거세질 경우 차기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 대 민주당의 구도가 강해져 부동표가 민주당에 쏠릴 수도 있다. 지방선거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산당의 득표력이 떨어지는 점도 고민거리다. 지역 당 관계자는 “우리 지역의 경우 지방선거에선 유권자들이 공산당의 정당명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투표를 하기 때문에 1만표 정도 나오는데, 총선에서는 아무래도 공산당이라는 간판이 부담스러운지 표가 적게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우에키 홍보부장은 “공산당은 일당독재 이미지가 있으니까 당명을 바꾸자는 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우리는 공산주의의 본질은 일당독재가 아니라고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당이 다수파로 다른 정당과 함께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사진 황자혜 <한겨레21>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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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위해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실천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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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5-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도 전경들이 투입됐네요. 더럽습니다.

머큐리 2009-05-16 11:53   좋아요 0 | URL
정말 경찰국가로 만들 생각인지....하는 짓마다 분노만 쌓이게 합니다
 

매주 목요일이면 송내역에서 부천촛불시민들이 조그만 선전전을 한다. 이정권이 저지른 만행을 규탄하고 추진하는 정책을 비판하는 선전물을 게시하고 시민들은 조용히 촛불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서 촛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알리는 집회.... 

오늘 함께 하시는 분이 DVD를 한 20여편을 들고 와서 무상분배를 하시는 것 아닌가...카페 내에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보관 중인 영화를 방출한 것인데 거기서 몇편 얻었다.  

이런 날을 재수 좋은 날 또는 땡잡은 날이라고...한단다. 난 오늘 땡을 잡은 것이고 오늘 잡은 땡의 내용을 공개하자면.... 

다 아는 영화지만 많이 보지 못한 영화.... 

자전거 도둑 

 

 

 

 

 

라쇼몽 

 

 

  

 

 

장미의 이름 

 

 

 

 

  

아비정전 

왕가위 감독, 장국영, 장학우, 장만옥, 양조위, 유덕화, 유가령이 출연한 영화.  

이 영화는 장국영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첨밀밀 

 

 

 

 

 

 

정복자 펠레 

 

 

 

 

 

빨리 보고 리뷰나 한 번 올려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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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숨책에 자주들르게 된다. 신촌 근처에서 업무 상 볼일을 보게 되는 경우가 벌써 3번째이고 보니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 듯 꼭 숨책에 들려야 될 의무감 같은 것이 드는 것은 지속적인 관행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하긴 어린시절 보물찾기하듯 헌 책방에서의 책을 찿는 것은 나름 짜릿함이라도 있으니....ㅎㅎ 

'토리노 하늘 아래의 두 고아 니체와 파베세'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니체야 유명하지만 파베세는 누군지 잘 모르겠고... 

철학책이라 생각하고 펼쳤더니 정교한 그림 밑에 글들이 씌여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프레데릭 파작' 이라는데... 왠지 느낌이 좋아서 골랐다.   

그림들은 정말 속된말로....죽인다...ㅎㅎ

 

 

 

알렝핑켈크로프의 '사랑의 지혜'에서 레비나스에 대한 언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레비나스에 대해 한 번 알아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이 있길래 함 구입해본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정체성으로 '사랑의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는 불완전한 존재로 부터의 해방'을 외쳤다는데, 철학에 대해 이리저리 관심을 갖는 나로서는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권 더 [고독의 철학' / 존 쿠퍼 포우어스 지음, 까치 ]  딱 보아하니 절판된 것 같아서 함 구입했다. 고독이라는 어감과 철학이 어울려져 있는데다 서문을 헨리 밀러가 썼다. 서문 첫머리에 "존 쿠퍼 포우어스에 대한 나의 탄상과 사랑과 존경은 20대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는 말에 그냥 구입했다....물론 가격도 매우 저렴했지만... 

헌 책방만 가면 빈 손으로 나오지 못하는 나의 책수집...버릇. 사실 책 수집이나 마찬가지다. 난 구입한 책을 모두 읽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직장인이고 읽는다해도 그것을 모두 소화시키기에는 지적배경이 턱없이 취약하기만 하다. 다만, 스트레스가 쌓일때 가장 좋은 도피처는 독서이고 이왕하는 독서 좀 더 영양가 있게 하자는 의미에서 인문학 책들을 선호하지만, 갈수록 뜬구름만 잡는 것 같아 허무할 때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 내 속에 차곡차곡 쌓이면, 세상에 소리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오늘도 행복하게 책들과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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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6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 영화 2014-10-22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85년에 도서관에 온 포우어스의 책을 대출해서 봤습니다만 딱 한 페이지 읽고 반납했슴 아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었습니다 제목이 뭐였는지 기억이 없군요 고독의 철학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단 한구절만 생각나는데 타아를 발견함이 사랑과 비슷하다는 그런 글이 있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