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 답이다 - 진화 심리학자의 한국 사회 보고서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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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진화심리학에 대한 짤막한 에세이들로 엮여 있는 책이다. 이미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는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고 내용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진화심리학에 대한 편견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일단 진화심리학이 과학이라고 생각하며, 과학으로 증명된 이론으로 이 사회를 좀 더 살기좋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물론 진화심리학이 프로이트류의 심리학에 비해 진화적 가설에 대한 과학적 실험들로 여러가지 사회현상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폭력이나 살인, 아동학대, 여성차별의 문제등을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본성이라 어쩔 수 없는 듯 설명한다고 하여 기피하고 과학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저자는 서문에서 "진화 심리학은 논쟁이 벌어지는 어떤 행동이 왜 일어나는지, 어떤 조건 하에서 그 행동이 줄어들지 설명함으로서 이를 장려 또는 억제하는 정책에 따르는 이득과 손실을 보다 정확히 가늠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암이 발생한다고 암치료를 멈추지 않듯이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고 인간에 대한 변화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매우 접근하기 편하게 쓰여졌다. 더구나 한국적 상황에 대입되는 예시들이 많아서 읽어내리기도 매우 친숙하다. 더구나 최근 벌어지는 여성혐오나 테러리즘, 갑질에 대한 문제, 계부모의 학대문제, 타인을 도와 주는 문제, 성매매, 등에 대한 심리적 분석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타당해 보인다. 물론 지면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서 편집한 탓인지 중복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심하지 않다. 무엇보다 전문 서적이 아니고 대중입문서의 경우라 이해하기 더 쉬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본성을 안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본성을 어떻게 억제되는가 또는 발현시키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일 수 있다. 물론 여러가지 예시를 통해 조그만 해답을 던져주는 친절함을 베푸는 면도 있지만, 입문서이다 보니 그 해결책이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면도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좀 아쉽기는 하다.

 

이제 진화 심리학의 분야에서 국내 연구원들의 저서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외국의 사례와 실험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어지는 사례와 실험으로 좀더 풍부한 인간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이 책이 그 길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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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대상에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동성애가 아닐까 한다.

 

나 역시 동성애에 대한 일정정도 공포가 있었다. 동성애와 관련한 그 막연한 공포와 혐오스러운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난 이러한 질문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동성애자들은 변태새끼들이고 그냥 징그러운 호모였으니까? 내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반응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혐오감정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솔직히 이유도 근거도 없이 동성애자는 모두 삐뚤어진 변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만약 나에게 접근하는 놈이 있다면 죽도록 패고 한 대 더 때려야 할 막연한 적이었을 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인천인권영화제에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서, 그해 출품해야 할 작품들을 리뷰하는 도중 어쩌면 내 일생의 영화를 만났다. 연분홍치마라는 영화창작 집단 소속 혁상 감독의 작품인 <종로의 기적>이 그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동성애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거의 180도 바꿀 수 있었다. 아마 인천인권영화제가 관객들의 인권감수성 함양과 인권의식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그 해 영화제에서 가장 모범적인 관객은 내가 아니었을까?

 

동성애를 가장 반대하고 저주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을 분류해 보면 몇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기독교인들, 진보적 민족주의자들, 이성애만이 정상이라고 느끼는 가족주의자들 등등.

이런 분류는 순전하게 내 개인적인 분류이고, 이들의 공통점은 정상적인 것이 있고 비정상적인 것이 있으며 비정상적인 것은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던가 폐기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하... 이 분들은 정말 답이없다. 성경에 동성애를 비난하는 구절 하나로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동성애자들을 대하는 모습은 자신이 신의 대리인인지 신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긴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따라야 한다는 그 신념과 믿음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하고 싶지 않지만, 같은 하나님의 말씀 중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씀은 하나님 말씀으로 취급도 하지 않고 세속의 부와 교회 크기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시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다. (참고로 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보기 좋았더라는 말씀을 좋아한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동성애자도 결국 신의 창조물일텐데 왜 그리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노동이나 환경, 평화 등의 견해는 진보적인데 동성애는 타락한 서구 문명, 특히 미 제국주의의 더러운 찌거기로 여기면서 위대한 한민족의 쇠퇴를 두려워 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 의견을 듣다보면 나치와 뭐가 틀린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인도 학살했지만, 동성애자도 무시로 학살했다.

 

이성애만 정상이라고 느끼고 가족은 이성끼리 만나서 결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은 동성애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며, 동성애를 일종의 변태적 일탈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성간 동성애에 대해 더욱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이전에 나는 세번째 유형이 아니었을까 한다. 나는 왜 동성애자들이 싫었을까? 왜 두려웠을까? 그건 내가 그들에 의해 범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추행과 성폭력에 두려움을 갖듯이 난 나와 같은 남성에게 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던건 아닐까? 그런 원치 않는 성관계를 상상했을때 소름이 돋아올라서 그들에 대한 근거없는 적대와 편견과 혐오를 키우는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공포와 혐오에 찌들다 보면 동성애자들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된다. 더구나 에이즈를 전파하고 (동성애 가정은 인정하지 않으니)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약화시키는 혐오스러운 존재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단지 성정체성을 다르게 느낄 뿐이다. 이러한 성정체성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본질 중 하나이며 개개인의 성정체성으로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물론 이 사회에서는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에이즈는 동성애를 하면 발생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가정이란 삶을 나누는 사람들의 집합이 되어야지 단순하게 이성애자들의 결합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성애자들의 가정 중에 얼마나 폭력적이고 파행적이며 이상한 가족이 많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정상가족이라고만 여기고 있다)이며,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보다 더 결속력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성이 되건 동성이 되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성애를 누릴 수 있고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결혼은 결국 불허되었다. 이 사회의 사법쳬계가 이들의 결혼을 인정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다. 법의 한계다. 그런 법은 수정하고 고치면 해결된다. 그러나 이들을 향해 뿜어지는 혐오적인 발언과 욕설은 차마 볼 수가 없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 중 혐오와 모멸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지만, 극복해야 하는 그 감정들에 휘둘리면 얼마나 많은 비극들이 벌어지는지..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하다 보면 '사랑의 종교'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저주와 혐오'는 이 땅에는 인간의 질서만 있지 신의 질서는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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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권영화제가 5월 26일 부터 6월 1일까지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1996년부터 개최된 영화제로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쟁취', '영상을 통한 인권의식과 인권교육을 확산'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힘겹지만 쉬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게 어떠실지...

 

<슬로건 해제>

나는 오류입니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 조심스레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서 내가 ‘틀렸다’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내가 틀릴 것이라 가정하고, 늘 나를 지켜봅니다.
내 휴대전화를 보고, 사진을, 글을, 통신기록을
마치 틀렸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듯이 주시합니다.
내 머리모양, 옷매무새 하나까지도 그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오류입니까
내가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는 다른 몸을 가진 여성/남성/혹은 다른 누군가가 되기도 하고,
나는 이주민이 되기도 하고,
나는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다 협박을 받게 되기도 하고,
나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다 허공으로 몸을 던지게 되기도 하고,
나는 테러 의혹으로 감시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도 오류인 걸까요?

그러다 잠시
질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내 마음의 외부와 마주합니다.
지금 당장은 나만을 향하는 불안들이 영화 속 '삶들'과 만납니다.
영화 안/밖의 사람들이 모두 나일 수도 있다가, 나였다가
이내 섞입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사이
내가 오류라는 불안은 저만치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오류입니까
나의 존재 자체를 오류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물음이며, 항변입니다.
내 몸이 규격화된 여성/남성의 몸이 아니라서 틀렸다고 하는 성별이분법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국적이 없기에 내가 틀렸다고 하는 법에,
나 스스로 몸을 던지게 만드는 노동환경에,
나와 내 가족이 이성혼 관계나 혈연관계가 아니어서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제도에,
그날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나를 틀렸다고 하는 국가에,
이제 이 물음은 이것들만을 향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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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서 조현증을 앓고 있는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피해대상이 여성이었고 범인은 일면식 없는 대상 중에서 유독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유독 여성이라 지칭하는 것은 남성들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었지만, 범인이 최종 범행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었고, 사건 후 범행동기에 대해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혐오' 범죄 논란이 제기된다. 사실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지위상승과 비례하여 증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은 평등하다는 논리는 그저 이론적인 논리일 뿐이고 사실상 성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여성은 언제나 약자이고 피해자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터질 것이 터진게 이번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지속되고 있는 여성혐오살인이 이제서야 사회적 논의의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 아닐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남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다는 의견도 있고, '주토피아'를 인용하면서 "육식동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동물이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 남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는 것은 결국 '남성혐오'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의 의견을 들어서 조현증으로 인한 망상피해로 인한 범죄이지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라고 발표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특정한 사건을 여성혐오살해인지 조현증으로 인한 망상으로 인한 살해인지 그 진위를 따지고 싶지는 않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다. 다만, 우리사회에 여성혐오가 없다는 주장,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거리가 좀 있다.

 

나는 딸을 원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는 다면 당연히 아들이었으면 했다. 그 이유는 딸을 낳아서 기른다면 아들을 낳아 기를때보다 심적인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아들이야 밖에서 무엇을 하던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딸은 어디서 무엇을 하던 크게 걱정스러울 것이고 많이 불안해 할 것이이라는 이유) 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건 이 사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아니 나 자신이 남성이지만 이 사회의 남성지배구조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라고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회에서 딸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부모로서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가부장적인 남성지배사회 속에 있는 여성들을 보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난 다른 어떠한 분과학문보다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워서 전전긍긍했던 경험이 있다. 아직도 난 페미니즘 공부가 어렵다. 아니 여성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어렵다. 그것은 여성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나의 경험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사회적 약자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일상에 대해 나는 무지하며 무지하기 때문에 용감하게 여성에게 이것 저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남성으로서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누가 뒤따라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으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해본 적도 없고, 사귀던 여자가 갑작기 폭력적으로 돌변하여 구타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어느 날 누군가가 날 남성이라는 이유로 죽이려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을 주관화하여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로 일반화해 버리고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발달한 나라에서 여성이라고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웃고 넘겼다.

 

그럼에도 저녁 늦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여성이 혼자 택시를 타고 갈 때 택시 번호를 스마트 폰에 찍어 놓고, 늦은 밤에든 여자들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 그건 어디서든 잠재적 범죄자들이 튀어나올 지 모르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서 불쾌하시다는 남성분들 스스로 생각해 보시라. 누가 먼저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있는지... 난 남성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여성들이 지적하고 나왔을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없다. 당신이 그런 남성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다른 남성들은 당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하고 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가부장제가 안착하면서 남성에겐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창녀일 뿐이었다. 남성의 욕구에 맞추어서 배분시켜 놓은 여성의 자리를 생각하면 모든 역사는 여성혐오의 역사일 뿐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어린아이 같고, 이성이 모자라고 감정적이며, 남성없이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이며, 심지어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만 온전하게 되는 존재이다. 그런 여성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을때 느끼는 남성들의 곤혼스러움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지 여성들을 공격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 등장하는 별별녀들에 대한 모멸과 멸시를 보라. 남성들에게 그런 모멸적인 언어를 사용하는가? 최근에 등장한 메르스 갤러리에서의 미러링을 보니 그 동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퍼부었던 모욕과 조롱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이제서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 아닐까? 하긴 남성들은 이러한 미러링에도 발끈하면서 난리치지만, 여성들은 이러한 멸시와 차별을 몇천년을 받아왔던 것이다. 이래도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없다고 이야기 할 것인가? 단순하게 약자의 문제로 포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 할 수 있을까? 여성혐오를 단순하게 약자에 대한 억압으로 일반화 시킬 수 있을까? 여성이 소수자이고 약자 임에 틀림없지만 단순하게 약자로 통칭하여 일반화시키기에는 좀 어려운 여성문제는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을 인정하기 어려워 약자의 문제로 여성문제를 물타기 하는 것은 아닐까?

 

인정 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직 이 사회에서 성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성혐오는 존재하고 있으며,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남성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임을. 남성혐오를 조장하지 말라고 떠들기 보다는 더 이상 여성이기에 죽을 수도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여성들이 싸우고 있다. 남성들은 그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하여 나가야지... 난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그러냐고 징징거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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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5-2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머큐리님.
저도 역시 그 생각을 했어요.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고 빼애액 거릴 때, 사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건 그들 자신이 아닌가 했거든요. 밤길이나 택시가 위험하다는 것, 오히려 남성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무엇으로부터 위험한가요? 그들도 `다른 남성들로부터` 위험하다고 하죠.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남자들`일 수 있는 건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머큐리님.
최근에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남자사람들이 자꾸 `모든 약자의 문제`라며 가르치려 들어서, 여자인 사람들보다 더 `옳은 페미니즘`을 가르치려 들어서 `남자들의 사고 한계인가`라는 회의에 빠져있었는데, 머큐리님의 글이 위안을 주네요.

머큐리 2016-05-24 11:51   좋아요 0 | URL
무수한 여성들이 가르침이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5-2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이다!
제가 십년간 활동중인 팬사이트(성격상 여자가 다수)에 꾸준글 중 부모님의 남자형제와의 차별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 남자형제 얘기해보면 나도 감수하는게 많다고 하겠지요. 그런거지요. 왜 정당에서 여성할당을 하고 장애인 할당을 하겠습니까. 머리로 아는 것과 다른 백만서른가지가 있는거지요. 부자가 가난체험을 한다고 가난이 주는 절망감에 얼마나 다가갈까요. 그저 불편함을 조금 아는 정도에 그치기 쉽습니다.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식인이겠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말`로 논쟁할 때 저역시도 가능하면 남자 여자라는 단어로 가지 않습니다. 내가 얻고자하는 합의 외의 `그러나`로 시작되는 온갖 이야기를 하는게 피곤해서요 ㅎㅎㅎㅎ 군대문제도 가능하면 경제적인 문제로 지금같은 무상 노동력 제공은 가난한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는게 된다거나, `평화`나 `국방 효율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는거죠. 여성은 사회적 약자인가 라는 큰명제보다는 비슷한 대학 진학률에도 여성의 낮은 정규직 취업률및 관리직 진급률이나 여성이 주로 취업하는 직종의 낮은 평균임금, 최저임금 수준 일자리에서 여성의 높은 비율 같은 구체적 사안에서 `왜`와 `어떻게 할까`로 나아가는 식으로만 얘기합니다. 다행입니다 이런거 설득하는 직업을 가지지 않아서 아하하하하

참, 그나저나 저 팬사이트 말입니다... 요 몇년새 어린친구들이 죽고싶다 취업하고 싶다는 글이 매일처럼 올라와서 그 절망이 어떤 분노로 갈까 아득해집니다.....

머큐리 2016-05-24 20:41   좋아요 0 | URL
요즘 청년들... 정말 고민이 많죠... 그 고민과 분노가 기성세대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단계로 발전했으면 하는 생각이...ㅎㅎ
그나저나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가 이제 곧 입니다. 판타스틱 영화제만 하면 휘모리님이 자동 연상되는거 아시려나? ㅎㅎ

건조기후 2016-05-24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저녁 늦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여성이 혼자 택시를 타고 갈 때 택시 번호를 스마트 폰에 찍어 놓고, 늦은 밤에든 여자들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 그건 어디서든 잠재적 범죄자들이 튀어나올 지 모르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서 불쾌하시다는 남성분들 스스로 생각해 보시라. 누가 먼저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있는지... 난 남성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여성들이 지적하고 나왔을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없다. 당신이 그런 남성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다른 남성들은 당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하고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대자보로 만들어서 길거리에 붙이고 싶네요...

저도 정확히 그 지점의 모순을 말하고 싶었어요. 여자친구가 늦게까지 회식할 때 걱정은 왜 하고 택시 번호판은 왜 찍고 밤늦게 데려다주기는 왜 데려다주는지 한번만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오는데... 그리고 여성혐오가 아니라 모든 약자의 문제라고 강변하는 것도 어이가 없어요. 약자의 문제라고 하면 조금 괜찮아진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둘 다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인데!

머큐리 2016-05-24 20:44   좋아요 0 | URL
저의 개인적인 경험상 남성이 여성주의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장애가 많고 심리적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뭔가 회피하고 두려운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사실 남자들의 기득권은 작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여성주의에 동의하고 실천하려는 남성들은 많이 있습니다. 같이 가야죠...
음 저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너나 잘하세요~` 라고 말할게 틀림없을텐데...^^;;

Arch 2016-05-2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에노 치즈코의 책을 보면서 이거 억지스럽지 않을까 싶은데도 요소요소 모든 것들이 다 여성혐오랑 관련이 있더라구요. 재미있고 아프게 읽은 책 중 하나예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강남역 인근 여성혐오 살인사건과 최근의 분탕질에 대해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정리가 되질 않네요. 뭐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머릿속이 꽉 막힌 것 같아요. 원래 말을 조리있게 하는 편도 아니지만 ^^

머큐리 2016-05-24 23:47   좋아요 0 | URL
아치님이 조리 없으면 누가...^^;; 저도 사건을 접하고 나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들어 한번 정리해 본 건데... 아직 머리 속에서 복잡하게 떠다니는 생각이 많아요. 조금씩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아치님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pjo9412 2016-05-2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에서 글 내렸다. 개소리를 여자입장에서 듣기 좋게 장황하게 써놨네.

머큐리 2016-05-25 08:51   좋아요 0 | URL
글의 목적이 그거에요... 일부 남성들(분명 전체 남성들은 아닐테니) 입장에서 개소리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ㅎㅎ
 
레드 퀸 : 적혈의 여왕 1 레드 퀸
빅토리아 애비야드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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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출판사에서 펴내는  '블랙 로맨스클럽 시리즈로 출간된 작품이다. 사실 로맨스 소설이라고는 읽어 본 적이 없지만 이런게 로맨스 소설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를만큼 독특한 작품이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면 보통은 남녀간의 심리적 상황이 주를 이루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사건과 욕망에 대한 솔직한 묘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법인데,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라는 분과로 분류해야 할지 아니면 판타지 소설이라고 분류해야 할 지 조금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그만큼 로맨스보다는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그건 이 소설이 품고 있는 배경이 기존 로맨스 소설로 분류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사건의 전개는 사랑이 아닌 일종의 계급투쟁이 주된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똑 같은 모습의 인간이되 피의 색깔이 다른 인간들이 있다. 은팩의 피가 흐르는 인간과 적색의 피가 흐르는 인간. 은색의 피가 흐르는 인간 (은혈)은 적색의 피가 흐르는 인간(적혈)과 태생적으로 틀리다. 그들은 일종의 초능력을 타고난 인간들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인간들이다. 귀족적이며 고귀하고 전투적이며 모든 권력의 중앙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적혈들은 자신의 지배를 보증하기 위한 소모품이며 더럽고 비천하고 전쟁에서 소모되어도 별의미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은혈들이 지배하는 이 세계는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현재 서로 전쟁 중에 있다.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어서 적혈들은 16세가 되면 남녀 상관없이 사회에서 일정한 직업이 없으면 군대에 가야 한다. 그리고 군대에서 복무한다는  것은 일종의 전쟁소모품으로 언제든지 목숨을 잃는 일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인 적혈 소녀 '메어 베로우'는 먼저 전쟁터로 징집된 세명의 오빠들과 같이 군대에 입대해야 하고 이를 거부하기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할 결심을 한다.

 

은혈들의 지배가 강고하지만 이에 저항하는 적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혈들은 '진홍의 군대'를 조직하여 은혈들의 지배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 방법은 테러... 은혈들의 지배을 끝내고 적혈들도 은혈들과 같은 조건의 삶을 살기 위한 싸움의 와중에 '매어'는 왕국의 왕자인 '칼'을 만나 은혈의 왕국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적혈에서 없는 초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왕국에 거주하게 된 '메어'는 은혈의 통치를 전복하기 위해 왕국에서 '진홍의 군대'를 돕기 시작한다.

 

세계를 가르는 거대한 두 개의 계급과 투쟁이 있고, 생물학적 능력의 차이가 있으며, 생물학적 능력의 차이가 곧 신분과 계급의 차이로 드러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난다.

곧 차이는 차별로 전환되고 그 차별로 인하여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서 이탈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혹은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정치와 테러과 음모와 배신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있지만, 적혈에게도 은혈과 동일한 능력을 지닌 능력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복합적으로 진행된다.

 

로맨스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 (사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조금 읽긴 했지만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 보통 주인공의 특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모르지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메어 베로우'는 기존의 여성성을 뛰어 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0대 소녀의 여린 감수성은 있지만 현실에 대한 자각,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깨기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기존의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런 점이 굉장히 신선하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 로맨스적 요소가 들어간건지, 로맨스 소설의 분야가 판타지 소설로 확정되어 버린건지 모르겠다.

 

항성 혼종은 새로운 만족을 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의 처음은 기존 로맨스물에 새로움을 갈구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듯하다. 그 뒷 이야기는 더욱 장대하고 치열하게 진행 될 것으로 예상되고 처음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로맨스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 지에 궁금함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적혈의 여왕으로 등극하게될 여주인공의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기존의 로맨스물의 주인공처럼 될 것인지, 뭔가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할 것인지 이게 제일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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