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서 조현증을 앓고 있는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피해대상이 여성이었고 범인은 일면식 없는 대상 중에서 유독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유독 여성이라 지칭하는 것은 남성들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었지만, 범인이 최종 범행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었고, 사건 후 범행동기에 대해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혐오' 범죄 논란이 제기된다. 사실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지위상승과 비례하여 증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은 평등하다는 논리는 그저 이론적인 논리일 뿐이고 사실상 성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여성은 언제나 약자이고 피해자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터질 것이 터진게 이번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지속되고 있는 여성혐오살인이 이제서야 사회적 논의의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 아닐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남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다는 의견도 있고, '주토피아'를 인용하면서 "육식동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동물이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 남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는 것은 결국 '남성혐오'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의 의견을 들어서 조현증으로 인한 망상피해로 인한 범죄이지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라고 발표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특정한 사건을 여성혐오살해인지 조현증으로 인한 망상으로 인한 살해인지 그 진위를 따지고 싶지는 않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다. 다만, 우리사회에 여성혐오가 없다는 주장,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거리가 좀 있다.
나는 딸을 원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는 다면 당연히 아들이었으면 했다. 그 이유는 딸을 낳아서 기른다면 아들을 낳아 기를때보다 심적인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아들이야 밖에서 무엇을 하던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딸은 어디서 무엇을 하던 크게 걱정스러울 것이고 많이 불안해 할 것이이라는 이유) 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건 이 사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아니 나 자신이 남성이지만 이 사회의 남성지배구조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라고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회에서 딸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부모로서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가부장적인 남성지배사회 속에 있는 여성들을 보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난 다른 어떠한 분과학문보다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워서 전전긍긍했던 경험이 있다. 아직도 난 페미니즘 공부가 어렵다. 아니 여성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어렵다. 그것은 여성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나의 경험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사회적 약자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일상에 대해 나는 무지하며 무지하기 때문에 용감하게 여성에게 이것 저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남성으로서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누가 뒤따라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으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해본 적도 없고, 사귀던 여자가 갑작기 폭력적으로 돌변하여 구타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어느 날 누군가가 날 남성이라는 이유로 죽이려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을 주관화하여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로 일반화해 버리고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발달한 나라에서 여성이라고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웃고 넘겼다.
그럼에도 저녁 늦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여성이 혼자 택시를 타고 갈 때 택시 번호를 스마트 폰에 찍어 놓고, 늦은 밤에든 여자들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 그건 어디서든 잠재적 범죄자들이 튀어나올 지 모르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서 불쾌하시다는 남성분들 스스로 생각해 보시라. 누가 먼저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있는지... 난 남성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여성들이 지적하고 나왔을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없다. 당신이 그런 남성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다른 남성들은 당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하고 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가부장제가 안착하면서 남성에겐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창녀일 뿐이었다. 남성의 욕구에 맞추어서 배분시켜 놓은 여성의 자리를 생각하면 모든 역사는 여성혐오의 역사일 뿐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어린아이 같고, 이성이 모자라고 감정적이며, 남성없이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이며, 심지어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만 온전하게 되는 존재이다. 그런 여성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을때 느끼는 남성들의 곤혼스러움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지 여성들을 공격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 등장하는 별별녀들에 대한 모멸과 멸시를 보라. 남성들에게 그런 모멸적인 언어를 사용하는가? 최근에 등장한 메르스 갤러리에서의 미러링을 보니 그 동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퍼부었던 모욕과 조롱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이제서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 아닐까? 하긴 남성들은 이러한 미러링에도 발끈하면서 난리치지만, 여성들은 이러한 멸시와 차별을 몇천년을 받아왔던 것이다. 이래도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없다고 이야기 할 것인가? 단순하게 약자의 문제로 포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 할 수 있을까? 여성혐오를 단순하게 약자에 대한 억압으로 일반화 시킬 수 있을까? 여성이 소수자이고 약자 임에 틀림없지만 단순하게 약자로 통칭하여 일반화시키기에는 좀 어려운 여성문제는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을 인정하기 어려워 약자의 문제로 여성문제를 물타기 하는 것은 아닐까?
인정 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직 이 사회에서 성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성혐오는 존재하고 있으며,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남성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임을. 남성혐오를 조장하지 말라고 떠들기 보다는 더 이상 여성이기에 죽을 수도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여성들이 싸우고 있다. 남성들은 그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하여 나가야지... 난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그러냐고 징징거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