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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들 ㅣ 이매진 컨텍스트 42
R. W. 코넬 지음, 안상욱.현민 옮김 / 이매진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믿음.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남자가 그까짓 일로 울면 안 된다’라는 시선 때문에 감정을 수축시키며 살아왔다. 특히 한국 남성들은 ‘강한 남자’가 돼야 한다는 경쟁심리 속에서 살아왔고, ‘남성성’은 어느새 이들의 삶을 살아가는 인식의 지도가 되었다. 남성이 쥐고 있는 이 낡은 인식의 지도가 시대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어떻게 만들었는지 추적한 책이 R.W. 코넬의 《남성성/들》(이매진, 2013)이다.
‘천지개벽’이니 ‘상전벽해’니 하는 말로도 어쩌면 부족할 것 같다. 기나긴 세기 동안 있었던 남성성의 형성 과정을 묘사하려면 말이다. 근대의 ‘남성성’ 개념은 한 사람의 행동을 여성성과 견주어서 규정한다. 남성성과 거리가 먼 사람은 종종 부정적인 것(‘눈물이 많은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 등)으로 폄하됐다. 그렇지만 남성성을 성격과 행동 등 개인성(individuality)을 근거로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은 젠더 분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젠더가 ‘육체적 경험, 인격, 문화’가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면 남성성은 애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제도 담론이 그렇게 명명하고 실천하도록 지식 체계를 동원한 결과가 된다. 따라서 젠더는 ‘사회적 실천’이며 사람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젠더를 배치한다. 저자는 젠더를 배치하는 실천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재생산의 무대’라고 말한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남성 중심적, 남성 우월적 가치평가, 남성에 의한 여성지배 구조의 재생산적 구조 등을 들 수 있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란 사람은 가부장제 사회관계를 재생산한다. 헤게모니(hegemony, 주도권)를 잡은 남성들은 여성을 현모양처의 틀에 가둬놓았고, 동성애 남성에게 ‘남성성에 배제된 비정상적 존재’라는 낙인을 새겼다. 헤게모니 남성성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특성을 보인다. 국가는 신체가 건강한 남성에게 ‘나라를 지키는 애국심 강한 군인’으로, 기업은 일할 수 있는 남성에게 ‘국가 경제의 기둥’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성을 전시하고, 남성에게 주도권을 부여한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 ‘국가 경제의 기둥’에 배치되지 못한 동성애 남성과 여성의 능력은 무시 받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지위가 격하된다. 동성애 남성, 트랜스 남성(female-to-male transgender)은 헤게모니 남성성을 실천하는 ‘재생산의 무대’에서 추방당하는 ‘종속된 남성성’이 된다.
최근에 와서 전통적인 성역할 구분은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인간이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에 장애요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성역할의 이상적인 모델로서 심리적 양성성의 개념을 제시한다. 심리적 양성성이란 한 개인이 강인한 남성성과 섬세한 여성성 모두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성적인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남성적 역할과 여성적 역할을 융통성 있게 적절히 수행할 수 있다. ‘잃어버린 남성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대안 중 하나가 ‘심리적 양성성’이다. 현실에서 무너진 헤게모니 남성성(실추된 권위)를 ‘심리적 양성성’으로 보상하려 한다. 하지만 심리적 양성성을 중심으로 한 남성 운동은 기껏해야 단순 논리 차원에서 남성의 권위만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뿐이며 가부장적 구조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데 일조한다. 또 성차별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
남성성은 ‘헤게모니 남성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젠더 질서에 가장 높은 정점에 위치한 헤게모니 남성성은 ‘남성성의 모범’으로 자리 잡아 동성애 남성이나 트랜스 남성 같은 특정 유형의 남성성을 차별하고, 혐오한다. 헤게모니 남성성을 수호하는 남성은 자신이야말로 ‘진짜 사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진짜 사나이’란 없다. 오늘날 혐오와 차별을 양산하는 ‘재생산의 무대’ 위의 주인공은 남성이다. 그들이 입고 있는 무대복은 ‘헤게모니 남성성’이다. 이제 여성들도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남성을 위한 연극’을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