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에 읽는 한국여성사
정현백 외 지음 / 사람의무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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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불과 30여 년 전만 돌아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구석이 남아 있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도 상당 부분 개선해야 한다. 남성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회 구성원이 육아와 가사는 여성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가장 쉽게 떠오르는 문제다. 잘못된 사회 구조와 의식이 성 불평등을 일으킨다. 여성은 생명의 뿌리이자 역사의 대지였다. 이름 없는 꽃이자 면면히 흐르는 생명의 물결이었다. 아쉽게도 역사 속에서 그 목소리, 그 모습을 쉽게 보고 듣지 못했다. 역사의 언어 바깥에서 흘러왔기 때문에 제대로 기록되고 평가되지 못한 채 여성들의 삶은 잊혀졌다.

 

이 책은 그러한 여성의 삶과 정신을 역사의 수면 위로 올려놓는 작업이다. 한국사를 관통하며 강인하고 폭넓은 정신으로 자기 세계를 일구어낸 여성의 역사를 정리해 공식적 역사로서 정당한 자리매김을 시도한다. 한국 여성사를 쓰는 것은 일반적인 역사 쓰기와 구별된다. 역사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보는 작업이다. 유명한 여성인물 중심도, 사건 중심도 아닌, 일반적인 역사에서 보지 못했던 여성들의 삶을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총체적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고대 모계사회에서 다산(多産)은 가장 중요한 생산력이었다. 여자가 많은 아이를 생산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렵보다 채집이 안정된 생산을 보장했던 선사시대에서 생리적으로 채집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여성이 중심이 되는 모계사회는 당연했다. 하지만 노동력이 요구되는 농경사회에 진입하면서부터 남성들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가부장 사회로 진입했다. 고구려, 고려 시대에는 시집살이가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흔히 쓰는 ‘장가간다’는 표현은 ‘사위가 장인의 집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고려 시대에는 형제, 자매들이 유산을 골고루 상속받아 해마다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다. 아들이 없으면 딸과 사위 혹은 외손이 모계 쪽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처가살이와 모계사회의 흔적은 조선 시대 중기 이후 유교식 가부장제가 뿌리내리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존여비와 남아선호 사상이 굳어지면서 딸의 상속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 시대의 여성들은 집안을 벗어난 사회 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가부장제라는 남성 중심의 규율에 따라 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희생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 여성들도 있었다. 특히 여성들이 배운 한글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다.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봉건적 모순이 결집한 결혼제도에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성평등문제가 구체적으로 제기된 것은 동학 농민전쟁 때 동학군이 과부의 재가허용을 요구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재가허용, 조혼, 이혼의 자유 요구는 남녀평등문제의 핵심으로 제기됐다. 이와 함께 전통사회에서 교육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던 여성들에 대한 제도교육의 필요성도 지적됐다. 이후 여학교 교육을 받은 이른바 신여성들이 1920년대 들어 늘어났다. 신여성들은 여성의 직업 활동과 함께 자유분방한 연애,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고 몸소 실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근대 여성사를 논할 때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여성운동을 빠져선 안 된다. 최근 의병장으로 활동한 윤희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윤희순은 항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의병가를 직접 지어 부르고, 군사훈련에 참여했다.

 

여성이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견되는 지금까지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여성의 삶은 여전히 감추어져 있다. 역사의 갈피마다 배어 있을 여성의 활동을 조명하기에는 기록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남자의 글과 책 속에 묻혀버린 여성의 목소리와 삶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여성의 활동을 보존한 기록을 발굴하는 과정 중에 과거의 못된 남자들의 생각도 함께 발견하게 된다. 놀라운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들을 가볍게 보는 남자들의 시선이다. 1920년 처음으로 여성 전화 교환수가 등장했다. 이들의 고충은 성희롱이었다. 조선의 남성 고객, 일본 남성들은 여성 전화 교환수들에게 성희롱을 일삼았다. 꼭 기억되어야 할 역사 속에는 이처럼 남자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이야기가 있다. 뭐 부끄러워도 좋다. 역사 속에서 더 많은 여성의 삶을 불러내야 한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삶의 현장에 도전하고 승리했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바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국정교과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건 불쏘시개로 쓰고, 역사 속의 여성을 발굴하고 보존한 국사 교과서를 보고 싶다. 미래의 아이들이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남자 위인보다 여자 위인을 많이 찾는 날이 올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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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11-0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 의병장 이야기는 정말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습니다. 역시 책 세계 이야기는 그 깊이를 가늠 할 수 없네요.

cyrus 2016-11-08 15:47   좋아요 0 | URL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든 사람이 아닌 이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식이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