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케이션은 선전에 조종된다

 

노엄 촘스키는 “영상을 통한 미국화는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무서운 효율성으로 무장한 채 우리 안으로 침투한다. 따라서 영화, TV 등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상들에 대해 경계하는 법을 시급히 배워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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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즉 선전이라는 말은 요즘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부정적인 혐의를 받지 않았다. 1차 대전에서 일상적인 용어로 남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PR(Public Relations)의 아버지'로 알려진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선전이라는 용어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버리는 동시에 선전 전략과 활동을 긍정적으로 소개했다.

 

 

"영어에 '선전'만큼 그 의미가 심하게 왜곡된 단어는 없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전쟁 때 일어났다. 그 결과 이 단어는 음흉한 성격을 띠게 됐다. (중략) 본연의 의미에서 '선전'은 정직한 가문에서 태어나 명예로운 역사를 지닌, 그야말로 건전한 단어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프로파간다』중에서)

 

 

선전이란 사람의 생각을 휘두르는 조작 방식이라는 의심을 많이 받지만, 버네이스는 "대중은 마음대로 주무르는 무정형의 덩어리가 아니다"며, 기업과 정부는 대중이 기꺼이 수용할 만한 방법을 통해 존재와 목적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버네이스의 주장은 어떤 용어나 행위가 아무리 가치중립적이더라도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 의해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복잡한 사회ㆍ경제구조에는 버네이스가 제시한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선전 전략이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 우리가 의사소통을 힘들어하는 이유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10명 중 3명이 가족 간에 대화를 하지 않고, 10명 중 8명이 직장에서 동료와 불화를 겪는 그야말로 각박하고 외로운 시대다. 상대방과 진심어린 마음을 주고받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인맥 쌓기에 열중한다. 관리가 아닌 관계 맺기에 있어서는 서툴기만 하다.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저마다의 다른 개성과 색조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각자의 처한 상황과 고통에 대한 내성 그리고 타고난 천성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요즘처럼 물질적 풍요로움에만 의존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려는 이기주의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생각 없이 무시하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삼아 올라서기 위해서 애쓰는 인간들이 수 없이 많이 있다는 사실과, 또한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그저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남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일들을 저지른 사람들이 마지막 의지로 실행한 선택은 희망적이기 보다는 절망적인 쪽으로 기울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상처’다. 과연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아줄까, 나를 오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을까, 혹시 배신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과의 소통 부재와 스스로의 고립을 유발한다.

 

 

 

 

 ♣ 진정한 소통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결국,우리 사회가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 현상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국민통합도, 조직과 사회의 건강성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잘못된 의사소통의 폐해에 시달린 우리 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있다고 본다. 비록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드라마 <굿 닥터>에 ‘늑대소녀 은옥이’가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면 박시온(주원 분)은 ‘진정한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개들과 함께 자랐던 은옥이. 이 아이는 어른들의 잔인한 아동학대에 희생당한 친구다. 인간사회를 학습 받지 못하고 개들이 사는 세상에서 길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의 말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모든 행동은 개와 다름이 없다. 화가 나거나 경계를 하면 무조건 물어뜯고, 사람의 접근을 두려워하며, 인간의 소통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병실에서 길길이 날뛰는 은옥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단 아이를 진정시켜야 한다. 온몸이 피투성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도한(주상욱 분)은 강도 높은 진정제를 주사하라고 오더를 내린다. 조금은 잔인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며, 또한 치료 시간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김도한처럼 직업의식과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투철한 이가 있을까. 그는 의사가 가져야 할 완벽한 이성과 냉철함을 지니고 있다. 은옥이에게 그 어떤 해를 입혀서도 안 되며, 반드시 치료를 해서 낫게 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그 누구 못지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없고 박시온에게만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김도한은 모르고 박시온은 알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시온은 모든 이를 경계하며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은옥에게 사람이 아닌 개로 다가간다. 마치 엄마개가 새끼개를 찾아가듯, 무릎을 꿇고 두 손, 두 발로 어슬렁어슬렁, 그리고 조심스럽게 은옥에게로 기어간다. 조금씩 은옥의 경계가 풀어지려 한다. 박시온이 내미는 손에 자신의 손을 얹으려 할 뻔도 했었다. 다른 레지던트들이 은옥의 사지를 잡아 진정제를 투여하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이 짧으면서도 강렬했던 장면은 꽤 커다란 메시지를 던진다. ‘소통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소통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었다. 진정제 투여로 치료를 할 수 있었으니, 결론적으로 보면 김도한도 은옥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박시온은 소통의 결과가 아닌, 소통의 방법을 건드렸다. 상대방의 처지가 되는 것, 그 처지가 설사 낮고 추하며 형편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밑으로까지 내려가 보는 것, 그렇게 된 후에야 상대방과 진정한 소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박시온은 보여줬다.

 

‘커뮤니케이션’, 우리는 이 단어를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다. TV 광고에서, 직장에서, 교육을 통해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심지어 우스개 농담 속에서도 듣게 되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소통을 하는 자세는 어떠한가. 이미 고착화된 생각을 쥔 채 상대방을 맞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절대’, ‘반드시’라는 말로 나의 생각을 견고히 하는 데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자세는 이기적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오고 감이 불가한 이기적인 소통만 낳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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