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과 당신 - 서울대 빗물연구소 한무영, 그가 밝히는 빗물의 행복한 부활
한무영 지음, 강창래 인터뷰 / 알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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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난 비를 맞지 않았다.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을 알려오면, 비가 오지 않더라도 일단 우산을 꼭 챙긴다. 길을 걷다가 갑작스레 비가 내리면 당장 우산부터 산다. 그리고 난 생각한다. ‘비를 맞는 게 싫어.’

 

그런데 먼 과거 속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항상 비에 맞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 비가 내리면 비 맞는 일도 즐거운 놀이였다. 옷을 내리는 비에 내맡기며 뛰어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랬다.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즐거움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은 산성비 때문이었다. ‘대기오염이 심해 비가 산성이니 맞아서는 안 돼.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져.’ 어른들은 산성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될 거라고 겁을 줬다. 그 말을 믿기 시작하면서 비에 젖기를 싫어했던 것 같다. 비를 보면 낭만보다는 ‘탈모’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리가 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편견이다. 비를 맞을 때마다 찝찝했는데, 서울대 빗물연구소장 한무영 교수의 책 《빗물과 당신》을 읽고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낸다.

 

비가 산성이라는 말은 맞다. 깨끗한 대기상태에서 내리는 비라 해도 처음에는 산성이다. 오염된 대기에 내리는 비는 조금 더 강한 산성일 수도 있겠지만, 땅에 떨어지는 순간 중성이나 알칼리성으로 변한다. 별다른 대기오염 사고가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산성비가 내릴 확률은 거의 없다.

 

우리는 산성비를 오해해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 평소에 즐겨 사용하는 샴푸나 린스의 산도가 pH 3.5, 흔히 마시는 주스는 pH 3.0, 콜라는 심지어 pH 2.5다. 대기 오염된 빗물의 산도는 3에서 4 정도로 나온다. pH 수치가 낮을수록 산성에 가깝다. 비 맞아 대머리 될까 봐 걱정된다면, 먼저 샴푸나 린스부터 피해야 할 것이다.

 

빗물은 잘 관리만 하면 훌륭한 자원으로 쓸 수 있다. 내리는 비의 1∼2%만 받아두어도, 물은 차고 넘친다. 물 부족 국가라는 인식은 물의 사용량과 필요량을 부풀린 셈이며, 강을 중심으로 댐을 막고 물 관리를 잘못한 결과이다. 물을 콘크리트로 막아놓으면 오염되기 쉽다.

 

깨끗한 빗물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옛날에는 처마 밑에서 항아리로 빗물을 받아 세수도 하고 주변 텃밭에 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하수도나 하천으로 버려지고 있다.

 

빗물은 공짜로 떨어지는 가장 깨끗하고 귀한 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름에 내린 엄청난 양의 빗물을 우리는 어떻게 대했나? 우리나라의 물 관리 정책은 빗물을 그냥 버리는 쪽이었다. 그 결과 빗물을 활용하지 않고 제방만 높이는 등 ‘돈을 들여 돈을 버리는 정책’을 실행했다.

 

빗물을 어떻게 모으고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빗물을 모으려면 집수면과 필터, 저장 시설만 있어도 충분하다. 모인 빗물은 수돗물 등 생활용수는 물론 공업용수, 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다. 대규모의 댐을 막아 물을 공급하는 방식은 댐 건설비와 정수처리 비용이 많이 들지만, 빗물은 이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집중호우에 의한 홍수의 위험성을 낮춘다. 빗물을 모아두는 공간이 있으므로 저지대 침수나 하수구 역류 등의 현상이 덜 일어난다.

 

빗물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생활 깊숙이 인식되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빗물의 가치에 대한 교육을 늘리고 정책과 비전을 널리 홍보해야 한다. 기업이 효과적인 빗물이용 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하고 국가는 빗물이용시설 설치비용을 지원하도록 한다. 빗물관리를 대중화하고 빗물의 이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착한 빗물에 대한 오해부터 떨쳐내야 한다. 그동안 나쁜 물이라면서 편견의 시선으로 봤다. 편견은 잘못된 정보로부터 빚어진다. 가끔 비를 맞더라도 몸을 움츠릴 필요도 없다. 어린 시절처럼 비를 맞는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빗물도 자세히 보아야 좋고 많이 모아야 사랑스러운 소중한 생명수다. 빗물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우리 삶에 있어서 소중한 존재가 되고 그 참모습을 알 수 있다.

 

마침 글을 마무리 지을 때가 되자 회색빛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랜 무더위 끝에 내리는 비가 반가운 마음에 창가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빗물,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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