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은 635킬로그램의 의학적으로 치명적인 뚱보가 된 마흔 다섯 살의 사내가 20년 만에 침대 바깥으로 나오기까지 그와 그의 가족, 연인이 겪는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 맬컴이 침대로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않겠다는 자신의 선언을 무력하면서도 집요하게 실천하는 과정을, 질투와 분노와 연민이 뒤범벅된 시선으로 지켜보는 동생 ‘나’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635kg의 몸을 묘사하는 화자의 서술은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로 읽는 이를 압도한다. 인간에서 거대한 식물로 변해버린 맬컴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의료장치와 마치 참전 간호사처럼 형의 몸 구석구석을 닦고 치료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의 모습이 읽고 있으면 후각마저 자극될 정도로 생생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침울하고 무기력하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대신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선택한 맬컴. 사랑에 실패하고 죽을 때까지 형과 한 방에서 살 운명이라고 자포자기한 ‘나’, 탄광사고의 생존자로 그 기억에 짓눌려 있는 아버지.

 

특히 소설 속 맬컴의 모습은 흡사 피터맨을 연상시킨다. 침대에만 살다가 비대해진 피터팬. 피터팬은 자라지 않는 아이의 대명사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를 거부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 세계로 편입되지 못하는 어른아이들을 가리켜 ‘피터팬 증후군’이라 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어린아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없지만 몸은 어른이지 그의 행동은 어린아이와 같다. 집에 있으면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며 그가 누운 침대 자리 주변에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답변 대신 머리가 가발이 아닌지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순진무구한 점이 있긴 하다. 그리고 엄마 없이는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책임감,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감, 이런 부담감에서 벗어나 영원히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싶은 심리가 맬컴의 물컹물컹한 살덩어리에 압축되어 있다. 맬컴에게 '네버랜드'는 침대다.

 

무엇이 그를 ‘살찐 피터팬’이 되게 만들었을까? 아들에 대한 엄마의 맹목적인 사랑만이 원인이 아니다. 사소한 말 한 마디가 그의 순순하고 연약한 성격에 큰 상처를 줬을 것이다. ‘나’의 은사이기도 한 케이 선생님은 맬컴에게 나중에 어른이 돼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맬컴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선생님이 한 말.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142쪽)

 

세상 심지어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루마저도 담을 쌓고 자신을 폐쇄적인 침대에 가둔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맬컴은 유년시절에 생긴 상처 때문에 고통을 성장하는 내내 자각했을 것이다. 맬컴의 몸에 생긴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의 약손마저도 미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 말이다.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과 그에 따른 무력감이 뚱뚱한 사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밥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직업을 가지는 것을 귀찮게 여기며 루의 사랑을 포기할 정도로 삶의 의욕은 상실되어 있다. 맬컴의 삶은 게으르고 나태한 존재라기보다는 자신을 세워 나갈 수 있는 의지와 정신적 힘의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인 것이다.

 

“기분이 우울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간의 본능은 어딘가에 숨어서 혼자만의 안락함을 누리는 거예요. 다시 말해, 침대로 가는 겁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죠. 어차피 당신도 이런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겠지만요.” (117쪽)

 

마음속에 내재된 상처가 곪을수록 인간의 본능은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만의 세계 속에 갇혀 지내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맬컴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현실은 외면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맬컴, 아버지는 ‘자기만의 방’이라고 할 수 있는 연장이 가득한 다락방. 아이러니하게도 맬컴에 밀려 어머니와 짝사랑했던 루로부터의 애정과 인정을 받지 못한 애정결핍자 ‘나’ 역시 잠시 형처럼 생활하기도 한다. 소설 속 가족 이야기는 단순히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쭉 따라 가다보면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남에게 드러내지 못한 채 숨기기기에 급급했던 우울 속의 나태함. 우리 마음 속에는 맬컴처럼 ‘살찐 피터팬’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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