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 - 저명 신경과 의사가 감각 이상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
기 레슈차이너 지음, 양진성 옮김 / 프리렉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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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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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 한세상 산다는 거 생각하기 달렸는데

무얼 그리 안타깝게 고개 숙여 앉아 있소.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

 

- 송골매 1집 수록곡 <세상만사>(1979) 중에서 -

 


이러구러: 정해진 방법 없이 이렇게 저렇게 일이 진행되는 모양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아무리 백번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눈으로 보면서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할 때 눈으로 보는 시각 정보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는지를 시사한다. 오감 중에 살아가는 데 절대로 없으면 안 되는 감각 하나만 떠올려보자. 아마도 대다수 사람은 시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봐도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눈으로 보는 시각 이미지가 실제 사물의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착시라고 한다. 1976년에 NASA가 공개한 화성 표면 사진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에 찍힌 화성 표면에 얼굴 형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화성의 얼굴이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고화질 사진으로 촬영한 화성 표면에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의 정체는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 또는 언덕이다. 화성에 얼굴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제대로 속았다. 그것도 자신들의 눈과 뇌에 속은 것이다. 그들은 왜 화성의 암석 덩어리에서 얼굴 형상이 보였던 것일까? 이러한 심리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한다. 우리는 모호하거나 불규칙한 형상의 물체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친숙한 형태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만 기묘한 형상이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레이돌리아가 빚어낸 형상은 허구이며 가짜에 가깝다.

 

눈으로 보는 것이 착각과 오류를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청각이 시각보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하듯이 듣는 것만 듣고 싶어 한다. 1994년에 발표한 댄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수록곡 <교실 이데아>에 사탄의 메시지가 있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음모론을 믿은 사람들은 <교실 이데아>를 역재생하면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고 했다. 몰상식한 개신교 인사들은 <교실 이데아>를 만든 서태지가 의도적으로 사탄의 메시지를 심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교실 이데아>는 사탄과 전혀 관련 없는 노래다. <교실 이데아> 음모론은 귀에 익은 발음을 떠올리려는 뇌와 청각 기관이 함께 일으킨 착각의 산물이다.


감각 인식 오류는 세상의 진실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먹어보면서 맛을 느끼고, 어떤 소리를 듣고, 직접 만져보면서 주변 세상을 인식한다. 오감을 총동원하여 느낀 세상을 진짜라고 믿는다. ? 당연히 내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했고, 먹어봤으니까. 하지만 우린 항상 크고 작은 감각에 속으면서 살아간다.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세상은 정확하지 않다. 개인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뇌는 생소한 경험보다 친숙한 경험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접하는 복잡한 정보를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세상은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는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감각의 한계와 특이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신경과 전문의다. 이 책에 소개된 환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감각을 가지면서 살아간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희소 질환인 선천성 무통각증을 겪는 사람, 향수 냄새가 지독한 악취로 느껴져서 괴로워하는 사람, 모든 것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채워진 왜곡된 형태로 보이는 사람까지. 이들은 모두 이상한 감각이 만들어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과장되고 왜곡된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환자가 있는 반면에 갑자기 찾아온 감각 이상 반응으로 인해 예전의 일상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진찰한 환자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그들의 복잡한 심경까지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서술 방식은 전문 지식과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 경험으로 무장한 의사나 학자들이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환자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기만 하는 전문가 입장에 서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건강하고 똑똑한 의사와 이상한 감각으로 인한 질환과 장애를 안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환자를 철저히 구분하게 만드는 경계를 무너뜨린다. 저자는 매우 솔직하다. 자신 또한 감각의 거짓말에 당한 적이 많다고 고백한다. 자기도 언젠가는 감각기관이 제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감각의 거짓말에 속는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오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감각이라고 믿고 있던 착각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감각의 속임수로 만들어진 세상과 진리를 지나치게 확신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감각의 한계, 즉 인간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한계가 불편하더라도 외면해서 안 된다. 의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감각 이상과 오류를 무조건 고쳐야 할 비정상적인 문제로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다.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상한 감각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건강하지 않고 불행하게 사는 장애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 어떤 환자는 감각 이상을 질병과 장애라기보다는 세상을 색다르게 보게 만드는 특별한 창()으로 여긴다. 감각의 거짓말을 피할 수 없는 우리는 똑똑하지 않지만, 살아갈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무능하지 않다. 이 세상을 무기력과 자책의 늪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감으로 해석한 각자만의 경험이 녹아든 감각의 제국(諸國)’ 속에서 살아간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른 사람이 구축한 감각의 제국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개입하고 지배하려는 사람을 감각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라고 불러야 하나. 이 한세상 산다는 건 오감으로 느끼기에 달렸다. 오감으로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라는 이유로 고개 숙여 앉아 있지 말자.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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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6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간간이 자주 보이네. ㅎ
난 눈을 못 믿겠으면 청각을 믿어보라고 할 참이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맨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게
청각이라잖아. 그런데 그것도 못 믿겠구만.
이건 딴 얘기지만, 송골매하면 배철수지만 세상만사는 구창모가 불렀지.
지난 3월말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71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배철수 씨가 그와 동갑이라더군. 세월 참 빨라.
나에겐 영원한 오빠지. ㅋ

cyrus 2023-04-06 19:49   좋아요 1 | URL
계속 글을 써서 남기다가 또 갑자기 조용히 사라질 수 있어요. 이제는 정말 예전처럼 책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싶어요. 세월이 지나니까 체력과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네요. 시력은 정말 안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