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삶과 종교가 하나로 된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종교 율법 간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치,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영역에서 그들이 항상 이슬람의 전통과 가치관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슬람은 적어도 무슬림들에게는 삶 그 자체와 동일시된다. 이것이 정교분리의 세속적 가치관에 익숙한 서구인들이나 우리가 이슬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2001년에 일어난 9.11 테러 이후 우리는 이슬람권과 첨예하게 대립해 온 미국 중심의 인식 틀을 통해 이슬람을 이해해 왔다.

 

그래도 9.11 테러를 기점으로 국내에 이슬람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관련 서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왜곡과 편견에 가깝다는 점을 알면서도 속 시원하게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은 없었다. 몇몇 책은 너무 학문적이거나 전문적이어서 일반 독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못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세 권의 책은 이슬람을 종교로서가 아닌 오랫동안 형성된 문화적 체계로 보고,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폭넓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 수 로이드 로버츠 여자 전쟁(, 2019)

* 캐런 엘리엇 하우스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메디치미디어, 2016)

* 제럴딘 브룩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뜨인돌, 2011)

    

 

 

여자 전쟁()30년 넘게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코소보 등 전 대륙을 넘나들면서 여성 인권을 취재한 영국의 언론인 수 로이드 로버츠(Sue Lloyd-Roberts)가 쓴 유일한 책이자 유작이다. 그녀는 이 책을 여성의 날에 맞춰 공개하려고 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201510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딸이 저자가 쓰지 못한 마지막 장(12)을 마무리 지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저자에게 보내는 딸의 진심 어린 메시지가 있다. 가슴 뭉클해지는 글이니 꼭 읽어보시길.

 

저자의 눈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은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감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파키스탄, 요르단)이다. 대부분 무슬림 여성은 여러 형태의 베일을 두르고 길을 나선다. 여성의 신체가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기인한 풍습이다. 감비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할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성 성기 절제술(Female Genital Mutilation, FGM)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자 전쟁은 여성들의 인권 유린 사례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정권의 부도덕함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비가시화되기 쉬운 중동 · 아프리카 · 아시아 여성들의 투쟁과 연대 의식에 주목한다.

 

여자 전쟁4장 제목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 감옥: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제목만 보고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무런 헌법적 견제도 없는 왕가의 통치를 받고 있다. 비록 사우디 정부는 약간의 제한적인 개혁을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선출할 수 없고 종교나 언론 혹은 집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사우디에서는 여성의 자동차 운전이 금지돼 있다. 사우디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사우디 사회 내부에 스며드는 서구식 문화 및 세속적 가치를 막기 위해 남편에 순종하는 무슬림 여성상을 강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메디치미디어)은 사우디 내부에 작동하면서 유지되고 있는 사우디인 특유의 수동적인 성격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언론인 캐런 앨리엇 하우스(Karen Elliott House)는 사우디 사람들의 내밀한 정서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전통과 종교적 규범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녀는 알라, , 이슬람 중심주의의 전통과 생활방식에 고분고분 따르는 사우디 사람들 대다수가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미로와 같은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미로를 허물어뜨리거나 탈출하려는 적극성과 진취성을 가진 사우디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항 의지를 사라지게 만드는 미로가 더욱 견고해질수록 여성의 지위와 인권에 대한 여론은 반이슬람적인 서구식 가치로 규정 받으면서 외면 받는다. 아랍의 봄을 이끈 계층이 분노한 청년층이라면, 사우디 사회의 개혁 요구는 여성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근본주의적이며 보수적이기도 한 여성들 역시 존재한다. 서구 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한 젊은 사우디 여성들도 남성우월주의(‘남성이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운전은 남성만 할 수 있다’)와 이슬람 중심주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뜨인돌)을 쓴 호주의 언론인 제럴딘 브룩스(Geraldine Brooks)는 앞서 소개한 두 명의 저자들과 다르게 무슬림 여성들을 억압하는 이슬람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권력체계가 이슬람 신앙을 왜곡해 여성들을 이용하고 억압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 기득권층이 코란을 해석하는 권리를 독점하고, 종교적 규범을 지키기 위해 코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진보적인 무슬림들의 소극적인 저항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지적에 따르면 몇몇 진보적인 무슬림은 명예살인과 여성 성기 절제술과 같은 반인권적인 관습을 이슬람 신앙과 철저히 분리하려고 한다. 그들은 서구권 국가에 망명하여 반인권 · 반문화적이라는 오명이 씌워진 이슬람 신앙 자체를 보호하는 데 급급하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이슬람 사회에 만연된 현실적인 문제를 보지 못한다. 제럴딘 브룩스는 진보적 무슬림이 근본주의적 무슬림을 향한 내부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슬림 여성들의 몸과 삶을 짓밟는 관행들을 타파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슬람권 국가에서도 작게나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아랍의 봄이후, 무슬림 여성들의 권리 향상 열망도 높아지고 있다. 세상이 느리게 진보하는 게 사실이라면 언젠가 이들도 코란에 갇힌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여성 운동의 물결을 흠뻑 적신 미국과 유럽의 여성들도 어느 날 갑자기 자유를 만끽한 것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고 작은 여성 운동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방식을 만들려는 여성들의 여정을 계속될 것이다.

 

 

 

 

Trivia

 

 

* 엘 사와디FGM을 처녀막에 대한 집착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여자 전쟁, 36)

 

→ 이집트의 여성운동가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의 오자.

 

 

*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우울한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의 하마스(Hamas),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Mujahedin) 분파들, 이집트의 수많은 급진주의자들과 알제리의 이슬람구국전선(Islamic Salvation Front)이 자신의 조국과 이슬람 세계 전체의 모범이라고 주장하는, 남녀가 분리된 황막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237)

 

오류. 하마스는 이스라엘 정부와 대립하는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이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집권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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