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문 1
카와하라 마사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선배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으나 읽다 보니 어렸을 때 포켓 사이즈의 해적판으로 대충 구경한 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연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꽤나 오래된 작품이라는게 커버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커버를 넘기면 어김없이 작화에서도 오래된 티를 느낄 수 있다.

내용은 한마디로 [드레곤볼]류의 무한 등장하는 강자와의 배틀 그리고 주인공의 승리다. 비슷한 격투기 만화로 [격투왕 바키] 시리즈나 [유우코의 대공] 같은 작품이 있다만 ([권법소년] 정도의 수작은 예외로 한다)시기적으로 아마 이 작품이 원조라 생각된다. 여기에 '무츠 원명류'라는 무패의 살인권이 소재로 등장한다. 알다시피 [바람의 검심] 등에서 보여지는 소년만화다운 활인권과 어느정도 대척점에 서있는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라문] 역시 소년만화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만화 캐릭터도 인간처럼 죽는다'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질 수도 있다'인 것이다.

격투만화 치고는 내외적으로 과장됨이 없는 것은 이 작품의 장점이다. 특히 여백의 미라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는 작풍은 다른 만화들에서 보이는 피와 근육의 난무보다 훨씬 깔끔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초이즘의 냄새까지는 지우지 못했다. 아니 이 작품이 원조가 맞다고 하면 위에서 언급한 [유우코의 대공]이나 [격투왕 바키]에서 남자 주인공 곁에 히로인이 붙어다니며 눈물 흘리는 공식이 아마 이때 완성된건지도 모른다. '남자는 강하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를 지배하므로 더 강하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엔딩은 예상했던대로였다. 여백에 이어 여운을 남기는 엔딩 장치다. 다만 무츠가 죽는 모습(패배하는 모습이 아니라. 기대도 안한다) 그리고 공개되지 않은 필살기(?) 사문의 청룡, 백호 기술을 볼 수 없다는 사실만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격투기 만화의 효시 혹은 고전으로서의 의의는 있는 작품이었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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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
헨리 밀러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세계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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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쁜 소설이다. 혹은 나쁜 책이다. 어쨌든 나쁜 무엇인가다. 그래서 끌리는지도 모른다. 잘 썼다고도 말하기 곤란하다. 번역의 문제 같지는 않다. 원체 이해를 목적으로 씌여지지조차 않는 문장이다. 현학적이라기보다 비속하고 몽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루하지는 않다. 사실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소설이다. 역시 그래서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문장이 사치스럽고 이미지가 사치스럽고 사고가 사치스럽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비유 중 사치스럽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사치스러움을 비속한 언어와 생활로 포장하고 있는게 정말 패러독스다.

이 소설을 읽고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있다면 '파리에 가봐야 한다'라는 강박 관념 정도. 그리고 그보다도 인상깊은 것은 한 끼 식사를 위해 돈도 품위도 지성도 인격도 섹스도 자존심도 모두 내던질 수 있는 주인공의 식사지상주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는 고프되 자신을 버릴 수 없는 나는 한참 내공이 아래인 셈이다. 이 소설을 읽고 한 장면이라도 섹스 장면이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존경을 표하겠다. 그전에 이 소설을 끝까지 읽기만 해도 존경을 표하겠다. 그러나 물론 읽지 않는게 더 좋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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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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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읽는 이외수 씨의 소설이었다.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채 작품을 읽는 것은 때로는 하나의 축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괴물>을 처음으로 읽은 내게 있어 이외수 씨의 다른 작품들까지도 그다지 기대되거나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문장은 참으로 좋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때때로 등장하는 동물학 식물학 심리학 화학 용어들에 대해서 작가는 현학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독자층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작가는 소탈하다. 더 좋게 말하면 진실하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참 좋다.

옴니버스의 형식을 차용한 점에서도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일대기 형식으로 죽 써내려갔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충분히 완결성을 띠며 이외수 씨의 진솔미가 드러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아무래도 각 에피소드들이 다루고 있는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이다. 절도, 살인, 섹스, 네크로필리아, 사기, 전생 등. 이것들이 결국에는 분리되지 않고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구성이다.

그러나 그 전체적인 주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도입부는 물론 작품의 중반까지 이 작품을 피카레스크로 보는데 아무 무리도 없다. 그리고 초생일류라 자처하는 주인공 전진철의 야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악'은 패배한다. 그것도 불교의 힘에 의해서다. 이것은 톨스토이만큼 교훈적인 결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이외수 씨가 전하고 싶었던 주제를 톨스토이로 치환해버리고 나면 이 소설에서 남는 것은 충격적인 소재와 유연한 언어를 빌린 현대사회, 더 구체적으로는 도시문명의 비판이다. 동양적인 것 그리고 자연적인 것에 대한 경도가 때때로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역시 개인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종평점은 별 3개반.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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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이야트 민음사 세계시인선 12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지음 / 민음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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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영문학도에게는 잘 알려진 작품이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원작자는 오마르 카이얌이라는 11세기의 페르시아 수학자라는 점이다. 이것을 19세기에 영국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재발견하여 번역한 것이 당대 사회 분위기에 딱 맞아 히트를 쳤고 그렇게 영문학사에 있어 고전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피츠제럴드가 원전에 충실해 번역을 하지 않은 것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한글 번역본을 읽으면서 페르시아 원전을 너무 많이 훼손했다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고 오마르의 루바이(4행시)가 아닌 작자미상의 루바이를 끼워넣었다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2차 창작으로서 이것은 피츠제럴드의 창작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피츠제럴드의 영어 원문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는게 오히려 예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19세기 말엽 유럽은 이른바 세기말 사조에 휩쓸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극한 현세주의 혹은 carpe diem을 노래하고 있는 [루바이야트]가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얼마전까지 20세기초에 서있던 우리에게도 이는 전혀 먹히지 않을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조상도 노래했다고 하지 않던가, '풍류'라는 것을. 실제로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헤도니즘이라기보다는 에피쿠리어니즘을 배경으로 깔고 있기에 천박하게만 보이지도 않는다. 일상의 소중함을 자극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 '자 이제 열심히 살아야지?'하며 은근슬쩍 퓨리터니즘을 강요하는 다른 수많은 책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삶에 지쳤을 때, 달리는 것을 멈추고 다른 책이 아닌 이 책을 손에 들도록 하자. 끝으로 영어 원문을 읽을 수 있는 사이트를 하나 소개한다. 민음사의 이 책은 피츠제럴드의 [루바이야트] 초판에 들어있던 삽화가 들어있지만 이 사이트에서는 다른 삽화를 만날 수 있다. by f.y.

사이트주소 http://www.arabiannights.org/rubaiy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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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일신서적 세계명작100선 82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일신서적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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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을 들어봤다면, 그리고 조금의 관심을 느꼈다면 일단 이 단 하나뿐인 장편을 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그런 것을 차치해보자.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완벽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철학을 가진 자가 쓴 이 소설 역시 하나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생략하자. 이 소설의 가치는 첫째로 소설 안에서 헨리 경의 이름을 빌려 말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는데 있다. 사실 플롯이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은 소설이다. 그렇다고 문장력이 뛰어난가 하면, 물론 뛰어나긴 하지만, 완벽할 정도는 못 된다(이것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11장과 같이 별다른 플롯이나 대화도 없는 부분에서 이 책의 번역은 상당히 독자를 애먹인다).

수식과 묘사로 부드럽게 흐른다기보다 대화와 설명으로 차 있는 소설이다(그의 단편은 특히 간결한 문체로 인해 영국보다도 유럽에서 더 유명하며 교재로도 잘 쓰인다). 헨리 경의 입을 빌려 대화체로 풀려나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과 독설, 기지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만큼 매혹적이다.

둘째로 인간의 영혼을 대신 반영하는 초상화라는 환상적인 소재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포라면 이러한 소재로 심리, 괴기 소설을 쓸 수 있었겠지만 와일드는 대신에 유미주의와 헤도니즘의 경전 - 당위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美이자 쾌락인 - 을 써버리고 말았다. 도리안 그레이는 바로 이 경전을 찾은 선택된 독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와일드의 분신인 헨리 경의 영향으로 악(혹은 쾌락)에 빠져들고 파국을 맞이하지만 와일드는 여기에 일말의 교훈도 비판도 남기지 않는다. 아니 최소한의 책임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 도리안이 많은 사람들을 파국으로 몰고 갔을 때처럼. 자신에게 영원한 젊음을 안겨준 초상화를 스스로 파괴한 도리안이 초상화 대신 죽는 결말조차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결코 한 가지 결론만은 아니다. 당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끝으로 'All art is quite useless'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격언을 상기한다. 이 '잘 쓰여진' 한 권의 예술은 분명히 지극히 無用하다. 더 말해 무엇하리, 나는 이 무용함에 열광한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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