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포노에 올렸던 글입니다. *

익스플로러 다운으로 세번째 씁니다(망할 -_-).
처음엔 길게 썼는데, 이제 더이상 같은 말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네요-_-
어쨌든 터너,라는 낭만주의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 작품을 이번 스킨으로 썼다,라는 요지입니다.

 

 

 

터너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1775.4.23~1851.12.19]

 

런던 출생. 14세 때부터 로열 아카데미에서 수채화를 배우고, 이듬해 아카데미 연차전()에 수채화를 출품하였다. 그는 주로 수채화와 판화 제작으로 일생을 보냈는데, 20세 무렵에는 유화를 시작하여 풍경유채화를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R.윌슨을 비롯하여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국내 여행에서 익힌 각지의 풍경을 소재로 삼았다. 24세 때에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고, 3년 후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802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풍경화의 소재를 모아 500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겼다. 한편, 이 무렵부터 N.푸생, C.롤랭의 고전주제적 풍경화에 끌려, 특히 구도를 잡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820년 전후부터는 그의 양식에 변화가 생겨, 자연주의적인 방향에서 벗어나 낭만적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1819년 T.로렌스의 권유에 따라 처음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색채에 밝기와 빛을 더하게 되었다.

 《전함 테메레르 The Fighting Téméraire》(1838), 《수장() Peace:Burial at Sea》(1843), 《비·증기·속력》(1844), 《디에프항》 《노럼성과 일출》 등의 대표작은 그의 낭만주의적 완성을 보여 준다. 존 러스킨의 절찬을 받았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주목받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중 망명해 온 그후의 인상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무단 복사. 누가 백과사전 아니랄까봐 영양가 없는 얘기만 잔뜩.

 

 

 

 

이번 스킨으로 쓴 작품은 바로 이거. 

Colour Beginning
1819; Watercolor, 22.5 x 28.6 cm; Tate Gallery, London

 



 

터너는 그 앞에서 인간이 끝없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자연을 그렸습니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이자 눈보라 시리즈의 하나로,
기존 관념을 깨는 대담한 구도와 색체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당대의 나폴레옹을 작품 속에서 한니발로 치환했다는 해설;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한니발은 자연에 굴하지 않고 결국 알프스를 넘었다는...)

Snow Storm - Hannibal and his Army Crossing the Alps
1812; Oil on canvas, 91 x 66cm; Tate Gallery, London

 



 

또한 터너는 사회적 이슈를 종종 소재로 다루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주를 이루는 것은 자연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1783년 노예선에 전염병이 발생하자 선장이 그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사건,
에 대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비판적인 메시지보다는 자연의 막막함(?)이 더 다가오지 않습니까?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 Typhon coming on ("The Slave Ship")
1840; Oil on canvas, 90.8 x 122.6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비슷한 맥락에서, 다음은
1841년 전쟁중에 터너의 친구이자 동료가 탄 배가 바다에서 침몰하는 일이 생기자,
거기에 대한 애도를 담은 작품입니다.

War - The Exile and the Rock Limpet과 대구(?)를 이루는 작품이라고 하구요-_-a
제목에서부터 우울함이 짙게 배어나오는,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작품입니다.
또 처음으로 터너를 알게 한 작품이기도.
(물론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렸을 때 미술 교과서에서 이미 알았을지도) 

Peace - Burial at Sea
1842; Oil on canvas, 86.9 x 86.6 cm; Clore Gallery for the Turner Collection, London


 


 

끝으로, 그의 작품관과 좀 동떨어진 그림인데 예뻐서 올립니다.
아마 터너 생전에도 이런 그림은 잘 팔렸을 거에요.
자세한 정보는 못 찾겠는데, 다작을 남긴 작가라서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까봐.

Mortlake Terrace
1827; oil on canvas, 92.1 x 122.2 cm; Andrew W. Mellon Collection

 


 

이상 이미지 출처는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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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예전 포노에 올렸던 글입니다. *
 
 

이번에 고야 책을 하나 샀(얻었)습니다. 

저희 서에서 공짜로 책을 몇 권 사준다길래,
저는 무조건 가격이 비싼 순서로 몇 권 골랐거든요-_-a
B4사이즈의 책은 태어나서 처음 만져봤습니다 =_=

아직 그다지 고야와 친하진 못하지만 앞으로 친해질겸,
그의 대표작(?) 이미지를 2개 올립니다.

 

 
[Saturn]
c. 1821-1823 / 146 x 83 cm / Oil on plaster remounted on canvas


Sophia라는 고딕/새드코어 밴드의 음반을 통해서 알게 된 그림.
[Saturn eating his son] 혹은 [Saturn devouring his son]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로마신화에서의 새턴(혹은 사투르누스)은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로,
아버지 우라누스를 죽이고(거세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우라누스는 저주를 남깁니다: 너도 언젠가 이렇게 될겨-_ㅠ
크로노스는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자식 또한 똑같이 자신을 죽이리라고.
그래서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리지만,
결국 6번째 자식 제우스의 꾀에 당해 왕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림은, 고야가 말년에 자신의 집 벽에 그린 '검은 그림'시리즈의 하나입니다.
뭐 신화와는 다르게, 삼키는게 아니라 씹어먹고(...;) 있는데
무서운 그림이긴 하지만, 단순히 무서운 것 이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포가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크로노스의 표정을 한 번 보세요.

하여간,
인과응보라지요.

 


 

[The Shootings of May Third 1808]
1814 / Oil on canvas / 104 3/4 x 136 in.


나중에 알았지만 이게 진짜 고야의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어쩐지 미술 교과서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한 그림이죠.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시기상으론 이 작품이 훨씬 앞입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를 묘사한 작품으로,
기법은 물론이고 감성적, 정서적인 측면까지
후대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그림만으로 충분히 목소리를 전달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는 역시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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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포노에 올렸던 글 *
 
 
Judith I (혹은 Judith und Holofernes), 1901
Oil on canvas, 84 x 42 cm


 
Judith II, 1909
Oil on canvas, 178 x 46 cm


 

[유디트1]에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고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림트의 유디트는 살로메로 전시되고 불리곤 했다. 이런 오해가 빈번하다 보니 도리어 제목을 잘못 붙였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유티드와 살로메는 많이 닮았다. 클림트에게 '매혹적인 여자와 목 잘린 남자'라는 구성이 필요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다. 유디트를 택한 이유를 클림트는 대답을 한 적이 없다. [유디트2]는 여자의 시선이 옆을 향해 있어 더 공허한 느낌이고 관찰자와도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전작품에 비해 춤추는 듯한 자세에 더 율동적이지만 장식이 늘어나고 행위의 모든 단계를 제한하고 있어 동작이나 활기, 생명력 등이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색체를 띤다. 사실 살로메냐 유디트냐 한쪽으로 정하는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성모 마리아에 비견할 만한 여성 영웅 유디트가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예언자의 목을 벤 사악하고 타락한 여자인 살로메와 구별할 수 없게 된 연유가 무엇인지… 흥미를 가져볼만 하지 않는가? 세례 요한을 소유하지 못한 살로메는 패배자다. 유디트는 애국적인 행위로 칭송되었고, 남자들의 숭배를 받은 그녀는 승리자다. 그런데 클림트의 유디트는 승리자로 보이지 않는다. 황금빛밴드들은 그녀가 무엇에 묶여 있음을 암시한다. 승리의 쾌감은 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남자의 머리카락처럼 사라져버린다. 남는 것은 욕망뿐, 그녀는 자기 욕망 속에 갇혀있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뻐하는 축제가 끝난 다음 사람들은 각자 가기 집으로 돌아갔다. 유디트도 베툴리아로 돌아왔다.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청혼하는 남자도 많았다. 게다가 재산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역사의 뒷길로 물러나 줄곧 혼자서 고독하게 살았다. 몹시 쓸쓸한 결말이다.

-신성림, 클림트, 황금빛 유혹, 다빈치, 2002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결혼의 변화]에 유디트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비단 클림트뿐만 아니라 살로메 혹은 유디트는 많은 회화의 소재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에겐 유디트 하면 클림트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군요. 끝으로 클림트의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 [키스]를 소개합니다. 옛날, 그녀가 좋아하던 그림이었죠, 훗.

 

Der Kuß, 1907-8
Oil on canvas, 180 x 180 cm


 

 

 

이미지 출처는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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