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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 세계의 젊은 작가 9인 소설 모음
올가 토카르축 외 지음, 최성은 외 옮김 / 강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나름 바쁜 직장인이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좋아하는 게임도 마음껏 하지 못하는데 책은 오죽하겠는가. 투자한 시간에 비해 얻는 게 있는 책(게임)이 우선순위가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선택 미스였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시간에 키냐르를 몇 쪽 더 탐닉하거나([은밀한 생]의 문장 밀도를 이 책과 비교하면 몇 '쪽'도 과분하다), [현대문학] 4월호에 실린 소설을 몇 편 더 읽을 수도 있었다(2006년 해외의 젊은 작가들과 올해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 중 고르라면 그래도 후자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아마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과 비영미권 소설에 대한 평소의 갈망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책을 샀던 것 같다. 사실 표제작은 그럴싸한 추리(+메타)소설이었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어 텀블러에 올리기까지 했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남이 하면 불륜'인 로맨스에 대한 뜨거운 집착이 절절했고, 상실과 권태에 빠진 부부 이야기인 세 번째 {몬테네그로 남자}는 감각적인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통상의 문학 단행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윤문(혹은 번역?)은, 너그럽게 넘어가주자.
이후 {눈꺼풀 너머}, {추파}, {정상회담}, 그리고 하나 건너뛰고 {결혼식날, 남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그의 영혼}은 명백히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소재, 문장, 문제의식 모두. 문장의 탓도 크겠지만(다시 한 번, 그냥 넘어가자), 한 작가의 작품 세계(아무리 젊은 작가들이라지만)에서 앞뒤를 자르고 맥락 없이 소개된 이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지극히 제한된 정서(의 흔적)일 뿐일 터다. 여러 사정상 '하나의' 단편으로서 완성도가 월등히 높지 않은 작품들이 묶인 선집은, 으레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과 비슷하게 작품 내적+단행본으로서의 외적 완성도의 실패를 목격했던 선집의 예로 [일식](한국문화사, 2002)이 떠오른다.
앞에서 하나 건너뛴 {마에스토소}는 조금 특별했다. 하프라는, 잘은 모르지만 일단 뭔가 낭만적인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의 예술혼을 파고드는 엽편이다. 긴 문단들이 거침없이 결말로 치달아,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이 작품이 더 길었으면, 더 길었으면(두 번 말했다) 하고 아쉬워했다.
대충 이렇게 정리 끝. '읽은 책' 칸으로 옮기고, 다시 볼 일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