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일신서적 세계명작100선 82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일신서적 / 1993년 2월
평점 :
절판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을 들어봤다면, 그리고 조금의 관심을 느꼈다면 일단 이 단 하나뿐인 장편을 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그런 것을 차치해보자.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완벽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철학을 가진 자가 쓴 이 소설 역시 하나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생략하자. 이 소설의 가치는 첫째로 소설 안에서 헨리 경의 이름을 빌려 말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는데 있다. 사실 플롯이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은 소설이다. 그렇다고 문장력이 뛰어난가 하면, 물론 뛰어나긴 하지만, 완벽할 정도는 못 된다(이것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11장과 같이 별다른 플롯이나 대화도 없는 부분에서 이 책의 번역은 상당히 독자를 애먹인다).

수식과 묘사로 부드럽게 흐른다기보다 대화와 설명으로 차 있는 소설이다(그의 단편은 특히 간결한 문체로 인해 영국보다도 유럽에서 더 유명하며 교재로도 잘 쓰인다). 헨리 경의 입을 빌려 대화체로 풀려나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과 독설, 기지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만큼 매혹적이다.

둘째로 인간의 영혼을 대신 반영하는 초상화라는 환상적인 소재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포라면 이러한 소재로 심리, 괴기 소설을 쓸 수 있었겠지만 와일드는 대신에 유미주의와 헤도니즘의 경전 - 당위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美이자 쾌락인 - 을 써버리고 말았다. 도리안 그레이는 바로 이 경전을 찾은 선택된 독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와일드의 분신인 헨리 경의 영향으로 악(혹은 쾌락)에 빠져들고 파국을 맞이하지만 와일드는 여기에 일말의 교훈도 비판도 남기지 않는다. 아니 최소한의 책임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 도리안이 많은 사람들을 파국으로 몰고 갔을 때처럼. 자신에게 영원한 젊음을 안겨준 초상화를 스스로 파괴한 도리안이 초상화 대신 죽는 결말조차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결코 한 가지 결론만은 아니다. 당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끝으로 'All art is quite useless'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격언을 상기한다. 이 '잘 쓰여진' 한 권의 예술은 분명히 지극히 無用하다. 더 말해 무엇하리, 나는 이 무용함에 열광한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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