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1
키지츠 카츠히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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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름>에 대한 소감을 짧게 정리해 보면,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일본 민담 등을 소재로 하는 청년 대상의 호러 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작화 수준이 좋은 편은 아니다.

우선 <소름>에 전반적으로 일본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단행본 순서대로 칠석제, 황천 구먼, 혼죠 7대 불가사의, 두억시니 벚나무, 온타리영 축제, 귀 없는 호이치, 복을 쫓는(=_=) 고양이 등의 일본 민담과 관련된 소재들이 차용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나름대로 현장조사를 통한 고증을 시도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민담이라는 특성상 권선징악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식상한 면이 좀 있었다. 또한 한국인 독자로서는 와닿지 않는 부분도 몇 있었다.

민담 외에도 작가가 차용한 것은 많다. 도시 전설이라고 번역된 urban legend(영화 제목이기도 하다)의 에피소드를 보면 urban legend와 휴대폰 그리고 귀신(?)을 훌륭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 하면 [폰]을 먼저 떠올릴 한국 독자로서 그다지 신선하다거나 무서운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두억시니 벚나무 에피소드는 서큐버스(Succubus) - 夢魔를 차용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그 신화적인 배경이나 리비도(성인 만화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에 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초목점 에피소드는 영화 [엑스페리먼트]와 완전 일치하며, 4권에는 보르헤스(포르헤스라고 무지막지하게 번역되어있다)의 [바벨의 도서관]도 등장하는데, 이 역시 迷宮이라는 표면적인 이미지만을 차용했을뿐 원작에 담겨있는 무한성에 대한 고찰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작가는 이것저것을 차용하고는 있으나, 그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 결과로 호러 만화로서의 공포감을 따지기에 앞서, 창의력 없음과 어설픔에 대한 불만이 먼저 다가온다.(200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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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키스 Paradise Kiss 1
야자와 아이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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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접한 아이 야자와의 작품이었다. 남주인공 죠지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나의 적'이라는 모토는 작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작품 전체가 화려한 의상에서 시작해서 끊임없는 대사와 잔글씨, 독백으로 가득차있었다. 이러한 외형적인 '럭셔리함'과는 대조적으로 [파라다이스 키스]의 주된 정서적인 분위기는 죠지로 대표되는 '쿨함'이었다.

주인공 캐롤라인(유카리)이 일상 혹은 현실을 대변한다면 죠지는 환상과 일탈의 영역에 속한다. 어지간히 찌들지 않은 이상 현실에 묶여있는 자는 누구라도 일탈을 꿈꿀 것이다. 따라서 캐롤라인이 죠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반면 죠지가 캐롤라인을 그토록 사랑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그것도 죠지 정도로 '쿨한' 남자가 말이다. 오히려 죠지가 자신과 닮은 카오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훨씬 개연성 있다. 동시에 캐롤라인의 자조적인 독백(자신은 인형에 불과하다는 등)들은 캐롤라인 자신뿐 아니라 독자들마저도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해도, 결국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롤라인은 끝까지 죠지처럼 쿨해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비루한 현실에 속해있었다. 아무리 겉으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해도 말이다.

이 '쿨함'의 정서는 비단 죠지의 온갖 독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파라키스 멤버들의 자유분방함에서도 발견된다. 가장 구체적인 예로 미와코를 들 수 있는데, 그녀의 거리낌없는 섹스(SM 포함)에 대한 발언들은 주변의 '덜 쿨한' 인물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허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러한 미와코에게 강간당한 경험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는 설정이 뒤에서야 밝혀진 일이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게 SM을 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굴며 섹스 중독자처럼 행동했던 미와코에 대해서, 최소한 나는 쿨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

캐롤라인이 죠지에게 빠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속해있는 즉, 쿨하지 못한 다수의 독자들에게 [파라다이스 키스]는 굉장히 매혹적인 작품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끝내 죠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마지막에 캐롤라인은 죠지를 떠나보내지만 그것은 죠지처럼 쿨해지기 위함이었다. [파라다이스 키스]는 죠지와 같은 그런 종류의 작품이다. 아무래도 쿨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 작품에 다가갈 수가 없다. 그래서 붙잡지 말고 떠나보내야만 한다.(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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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마스터 19
시바타 요쿠사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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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만화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에어마스터]가 점하는 위치는 단연 독보적이다.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점, 스트리트 파이팅이라는 독특한 소재, 곡선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화풍, 소위 '격투혼'과 같은 것에 천착하지 않는 가벼움 등 [에어마스터]는 매력만점의 만화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격투기 만화라는 특성상 그 마초이즘의 세계 안에서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들은 지극히 수동적이며, 잘해봐야 촉매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친다. [수라] 시리즈나 [바키] 시리즈 등에서 이런 면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반면 [에어마스터]에 등장하는 여성 파이터들은 남성 파이터들과 어떠한 성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에어마스터] 안에 존재하는 차별은 여성과 남성간의 차별이 아니라 강한 자와 강하지 못한 자 사이의 차별뿐이다.

물론 [에어마스터]는 격투기 만화이며 따라서 폭력을 다루는 만화이다. 그럼에도 이 폭력은 근본적으로 마초적인 폭력과는 다르다. [에어마스터]의 캐릭터들이 스트리트 파이팅을 하는 이유는 돈이나 명예 혹은 지배욕과 같은 하등의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들 안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에너지 때문이다. 나이브한 이야기이지만, 무목적적이며 따라서 순수한 폭력과 투지로 점철된 세계를, [에어마스터]는 담고 있다.

이러한 폭력은 스트리트 파이팅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복싱, 가라데 등 '룰'의 세계에 싫증난 독자들에게 환영받을만한 부분이다(프라이드와 같은 이종격투기 팬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이러한 스트리트 파이팅이 우리의 생활 바로 옆에서 일어난다는 설정은 일견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후카미치 상위 랭커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상당히 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태권소년]에서 소개된바 있는 '팔극권' 달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아마도 인간이 아닌듯한) 랭킹 1위 묘망과의 대결 장면을 보면 특히 그러하다. 그러한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이 대결 장면에서의 카타르시스는 가히 압권이다. 바로 이 점이 [에어마스터]의 또다른 매력이다. 현실적인 스트리트 파이팅을 다룬 [홀리랜드]란 작품과 비교해보면, [에어마스터]는 완전히 판타지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마스터]는 대리만족으로서의 예술 '만화'라는 심각할 필요없는 장르에 충실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다.

전체적인 작화 분위기도 이에 걸맞게 묘하게 곡선적이며 아기자기하기까지 하다. 여타 격투기 만화가 과장된 근육과 각진 선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러한 화풍은 상당히 참신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작가는 이따금씩 황당한 유머를 삽입하여 독자를 뒤집어지게 만드는데, 이것이 아기자기한 작화와 상당히 잘 어울리고 있다(TV판 애니메이션이 이 점을 살리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한편으로 작가는 소재 자체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갑자기 전면 2컷 분할과 함께 카타르시스가 터져나오기도 하며, 곡선적인 화풍에 실린 동선의 역동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끝으로, 명분, 무사혼, 무도 정신 등 그 참을 수 없는 고루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격투기 만화의 주인공들이 끝까지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가치들이 [에어마스터]에서는 완전 찬밥 취급당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종종 그런 가치들의 옹호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여하간의 임팩트가 실려있지는 않다). [에어마스터]의 캐릭터들은 사랑과 증오, 복수 등 훨씬 인간적인 이유들을 놓고 서로 격돌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때로 이들의 격투의 동인은 정말로 무목적일 때도 있다. 나는 이런 시원시원한 [에어마스터]의 타격감을 사랑한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에어마스터]는 정말로 근간에 보기 드문 유쾌통괘한 매력적인 격투기 만화이다. 이것이 채 완결되지 않은 작품에 대해 성급하게나마 리뷰를 쓴 이유이다. 새 단행본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신노스케의 재등장이 환기시키는 카타르시스는 정말로 최고였다. 그의 활약을 기대하며 글을 줄인다.(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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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벨 리 민음사 세계시인선 3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정규웅 옮김 / 민음사 / 197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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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시인선을 대여섯 권 샀는데 그중 가장 가슴에 와닿은게 바로 이 작품 <애너벨 리>였다. 일단 영어라서 부담이 덜했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닌 시의 경우 번역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소설 전집을 살 정도로 개인적으로 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시집이 더 깊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문을 여는 동명의 시 '애너벨 리'에서부터 나는 푹 빠져버렸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감상적이지도 않게 포는 담담하게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있다. 정두수 씨의 포크 음악 같은 느낌이랄까. 이 아름다움은 형식적으로는 각운(脚韻)의 사용에서 오며, 내적으로는 죽은 아내를 향한 애도에서 비롯된다. 책의 뒤에 실린 해설에 더 자세히 나오지만 이러한 내/외적 미의 조화는 포가 시에 있어서 추구한 궁극의 목적이다.

여기에 이른바 괴기소설가로 알려진 포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환상문학적 요소가 결합되어 주된 시상을 이루며 시집 전반을 이끌어 간다. 그리고 압권이라 할 수 있는게 맨 마지막 시 '갈가마귀'다. 시집 전체의 1/4 내지 1/3을 차지하고 있는 이 長詩는 그 길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애너벨 리'에서 보이던 담담함은 '갈가마귀'에 와서는 절규와 절망으로 마침내 폭발한다. 음악으로 치면 고딕이나 둠 싸이키델릭에 가까운 분위기다. 음울하고, 몽환적인.

역시 해설에 나오는 말이지만, 포는 '갈가마귀'에서 각운으로 반복되는 Nevermore라는 한 단어를 주조하는데 매우 신중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포의 말 그대로, 이 시에서 과연 저 Nevermore라는 단어를 대체할 그 어떤 단어가 세상에 존재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외적으로 불우한 삶을 영위하던 포였지만 그의 詩作은 치밀할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시는 차갑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아름다움을 띄게 되었다. 시의 자세한 내용 언급은 일부러 피했는데, 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다. 소설가로서의 포가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포를 재조명할 소중한 기회이리라.(200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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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리처드 바크 지음, 이은희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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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은건 초등학생일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시골 5일장에서 헌 책들(주로 호색서적) 사이에 섞여있는 이 책을 다시 발견한 것도 고등학생 때였는지 대학 1학년 때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때 나는 필사적인 심정으로 2천원을 주고 이 책을 다시 샀다. 사서 뒤를 보니 정가가 2천원이었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메시아의 뜻이었을까. 그리고 정확하게 똑같이 말해서 그냥 우연이었을까. 이 책은 인간으로서의 현현인 메시아를 그리고 있지만 기독교적이지는 않다. 사실 그게 메시아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게 이 책의 주제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스포일러는 피하겠다.

이 책의 전개는 주제와 유기적이다. 옴니버스 형식 아니 차라리 이 책은 하나의 아포리즘이다. 성서의 비유로서 편람(아포리즘으로 가득 찬)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 편람은 펼치는 그때마다 그때의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다시 똑같이 말해서 무의미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모호해진다. 이 책 자체가 바로 책 안에 등장하는 편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는 지점에 이 책과 나라는 독자가 위치한다. 그리고 이게 '틀릴지도 모른다.' 물론 남는 것은 없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아니 남는 것은 있다. 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거기에 현재의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적혀있을테니까 말이다. 2003.10.14 f.y.

덧: 새로 나온 것은 반갑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2000원 짜리 책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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