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키스 Paradise Kiss 1
야자와 아이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처음 접한 아이 야자와의 작품이었다. 남주인공 죠지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나의 적'이라는 모토는 작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작품 전체가 화려한 의상에서 시작해서 끊임없는 대사와 잔글씨, 독백으로 가득차있었다. 이러한 외형적인 '럭셔리함'과는 대조적으로 [파라다이스 키스]의 주된 정서적인 분위기는 죠지로 대표되는 '쿨함'이었다.

주인공 캐롤라인(유카리)이 일상 혹은 현실을 대변한다면 죠지는 환상과 일탈의 영역에 속한다. 어지간히 찌들지 않은 이상 현실에 묶여있는 자는 누구라도 일탈을 꿈꿀 것이다. 따라서 캐롤라인이 죠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반면 죠지가 캐롤라인을 그토록 사랑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그것도 죠지 정도로 '쿨한' 남자가 말이다. 오히려 죠지가 자신과 닮은 카오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훨씬 개연성 있다. 동시에 캐롤라인의 자조적인 독백(자신은 인형에 불과하다는 등)들은 캐롤라인 자신뿐 아니라 독자들마저도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해도, 결국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롤라인은 끝까지 죠지처럼 쿨해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비루한 현실에 속해있었다. 아무리 겉으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해도 말이다.

이 '쿨함'의 정서는 비단 죠지의 온갖 독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파라키스 멤버들의 자유분방함에서도 발견된다. 가장 구체적인 예로 미와코를 들 수 있는데, 그녀의 거리낌없는 섹스(SM 포함)에 대한 발언들은 주변의 '덜 쿨한' 인물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허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러한 미와코에게 강간당한 경험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는 설정이 뒤에서야 밝혀진 일이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게 SM을 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굴며 섹스 중독자처럼 행동했던 미와코에 대해서, 최소한 나는 쿨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

캐롤라인이 죠지에게 빠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속해있는 즉, 쿨하지 못한 다수의 독자들에게 [파라다이스 키스]는 굉장히 매혹적인 작품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끝내 죠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마지막에 캐롤라인은 죠지를 떠나보내지만 그것은 죠지처럼 쿨해지기 위함이었다. [파라다이스 키스]는 죠지와 같은 그런 종류의 작품이다. 아무래도 쿨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 작품에 다가갈 수가 없다. 그래서 붙잡지 말고 떠나보내야만 한다.(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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