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치킨을 시켜두고 와인을 마시면서 텔레비젼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볼 게 없었다.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세계여행 프로그램이나 보자' 라고 했고, 나는 <걸어서 세계속으로>대신 <세계견문록 아틀라스>를 선택했다. 먹는 거 보고 싶은데 뭐 있을까 고르다보니 '국가비'가 '페루맛기행'을 했단다. 사실 이거 예전에 한 번 본건데, 그래도 이거 보자 엄마, 하고는 페루 맛기행을 틀어두었다. 국가비는 쉐프이고 요리를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페루의 전통 음식점에 들러 페루 사람들이 권하는 음식을 먹는다. 총 3부작이었는데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본 건 3부였고, 거기에서는 아주 통통한 애벌레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꿈틀꿈틀 살아있는 애벌레를 기름을 두른 팬에 튀기는 거였다.


이 장면의 모든 게 끔찍했다. 커다란 애벌레도 싫고,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도 싫고, 그걸 뜨거운 기름에 넣고 튀기다니, 애벌레한테 대체 왜이러는가 싶었다. 엄마랑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끔찍하다고 했다.


으앗, 끔찍해, 저런것까지 먹으면서 살아야해? 라고 투덜거리는 내 앞에는 치킨이 놓여있었다.



그 회차를 마치고 선택한 2부였는지 1부였는지에서는, 하아, 기니피그를 구워 먹는 게 나왔다. 기니피그를 통째로 구워서 기니피그 형태가 그대로 있었다. 마치 생쥐같기도 하고 토끼같기도 한 기니피그를, 페루 사람들은 길렀다가 먹는다고 했다. 먹기 위해 기르는 거였다. 아니, 자기가 길러놓고 어떻게 그걸 구워 먹을 수가 있어. 통째로 구워진 기니피그를 앞에 두고 국가비는 좀 망설였지만, 이내 고기 냄새도 나지 않고 먹을만하다고 했다.


엄마, 저렇게 통째로 그 모양이 그대로 보이는 걸 대체 어떻게 먹어. 그렇지만 또 먹다보면 고기 맛있다 할지도 모르지..



라고 말하는 내 앞에는 치킨이 놓여있었다. 닭을 튀긴거였다. 닭을 죽이고 털을 뽑아 뜨거운 기름에 넣고 튀긴 치킨. 나는 닭을 죽여 만든 치킨을 먹으면서 저기 저나라의 기니피그를, 애벌레를 먹는 게 끔찍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술안주로 치킨을 먹고 있었던 거다.



페루의 시장에서는 소의 혀를, 불알을, 심장을 팔고 있었다. 이야, 인간들 진짜 별 걸 다 먹는다, 하면서, 나는 치킨을 먹고 있었다.




나는 뭐야?

나는 도대체 뭐야?

내가 어떻게 감히, 애벌레를 먹는게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어? 기니피그를 먹는 게 끔찍하다고 말하는 게 나한테 가당키나 해? 닭튀김을 먹고 있으면서?

나는 뭐야?



'멜라니 조이'는 닭튀김을 먹으면서 기니피그 먹는 걸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인식'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가 쇠고기와 개고기에 대해 이처럼 완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인식(perception)'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종류의 고기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그것들 간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다. (p.13)


















이 책을 사둔지 오래였는데 읽기를 주저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도 역시 사둔지 오래인데 저 멀리 밀쳐두다가 중고로 내놨다. 육식의 성정치를 읽고 싶은 마음 그만큼 읽기 싫은 마음이 있어서 아직 사지도 않았다. 그렇다. 나는 이것들의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다.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제대로'알기 싫었다. 아는 것은 고통이고, 알게된 후에 그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알아, 아는데, 알아서 알기 싫어' 라는 마음이 있었던거다.


이 책의 저자는 놀랍게도 이런 나의 마음까지도 간파했다. 짐작하지만 알기 싫지, 그러니 고기를 먹어도 되는 이유들에 대해 합리화 하고만 싶지, 하고 자꾸 나를 쿡쿡 찌른다. 이 책에서만큼은 그렇게 찌를 때마다 어김없이 아팠고, 여기저기 찔리고 말았다. 기니피그를 어떻게 먹냐고 야유하면서 나는 닭을 뜯고 있었다. 그뿐인가, 며칠전에는 양꼬치도 먹었는걸. 양도 먹고 닭도 먹고 돼지와 소 먹기를 사랑하면서, 그런데 왜 기니피그는 안된다고 하는가. 기니피그를 먹는다면 '덜 도덕적'인가. 나는 기니피그랑 애벌레를 먹지 않으니 그들보다 뭔가 더 나은 것인가?


그럴 리 없잖아?



그러나 어느 수준에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다. 식육 생산이 깔끔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사업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싶지 않다. 고기가 동물에게서 나오는 줄은 알지만 동물이 고기가 되기까지의 단계들에 대해서는 짚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을 먹으면서 그 행위가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조차 생각하려 들지 않는 수가 많다. 이처럼 우리가 어느 수준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의식하지만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는 의식을 못하는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도록 조직되어 있는 게 바로 폭력적 이데올로기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이 같은 현상은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육식주의의 요체다.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무언의 계약이 이런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에 내재한다. 물론 축산업계도 자기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그 일이 쉬워지도록 우리 스스로가 돕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이 보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야외의 평화로운 농장에서 산다고 그들은 말하는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임에도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처럼 행동하는 까닭은 우리 대부분이 의식의 어느 차원에서는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p.95)



그렇다.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더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진실을 애써 보려 하지 않았다. 들여다보면 내가 불편할까봐 그랬다. 그래서 애써 고기를 먹는 나를 합리화했다. 침묵은 억압하는 쪽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랬다. 폭력에 눈감았다. 계속 고기를 먹고 있는 나인채로, 불편함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느 부분에서 분명한 약자이다. 여자라는 입장에서 그렇고 그래서 평등해야 한다며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니, 평등주의자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너는 성차별주의자야? 라고 반문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역시 그런 질문이 되돌아올 수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너는 육식주의자야?


성차별주의자냐는 물음에 대부분이 아니라고 펄쩍 뛰는것처럼, 나 역시 '육식주의자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라고 펄쩍 뛰겠지만, 그러나, 육식주의자가 아니라면,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침묵하면서,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알려 하지 않으면서 동물에 대한 폭력에 눈 감고 있는, 뒤돌아 서 있는 나는, 그렇다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내가 육식주의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아니, 나는 고기를 먹기는 하지만 육식주의자는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나? 이건 마치 나는 성평등을 주장하진 않지만 성차별주의자는 아니야, 하는 것고 다름없잖아? 내가 그들과 다를 게 뭐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성차별주의자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육식주의자다, 라는 것에도 역시 동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기 먹는 일을 비윤리적이라고 믿는 사람을 채식주의자라고 한다면, 고기를 먹는 일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채식주의자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면, 고기를 먹는 쪽을 선택한 사람은 무엇이냐는 얘기다.

현재 우리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이를 때 '고기 먹는 사람(meat eater, 한자로는 '육식자[肉食者]'라 할 수 있겠다.-옮긴이)'이라는 말을 쓴다. 한데 이 용어는 과연 정확한가?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식물(植物)을 먹는 사람(plant eater)'이 아니다. 식물만을 먹는 것은 신념체계에 바탕을 둔 '행동양식'이다. '채식주의자'라는 용어는 핵심적 신념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주의자'라는 접미사는 일정한 주의, 즉 일련의 원칙을 주장하고 지지하며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기 먹는 사람'이라는 말은 육류 소비 행위와 그 행위자를 분리한다. 고기 먹는 일이 당사자의 신념이나 가치관과는 무관한 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 고기를 먹는 사람은 신념 체계의 '바깥에서' 그것과 무관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 일이 진정 신념체계와는 별개의 행위일까?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는 게 우리에게 동물을 먹는 일에 관한 신념체계가 없기 때문인가?

산업화한 세계의 대부분에서 육식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선택이다. 생존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고기는 필수적이 아니다. 수백만명의 건강하고 장수한 채식주의자들이 이를 증명했다. 우리가 동물을 먹는 것은 단지 늘 그래왔기 때문이며, 그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동물이란 먹도록 되어 있는 게 아니냐, 즉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먹는다.

우리는 고기 먹는 일과 채식주의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다. 채식주의에 대해서는, 동물과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일련의 가정들을 기초로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식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행위,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왜 그러는지 이유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고기를 먹는다. 그 행위의 근저에 있는 신념체계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 신념체계를 나는 '육식주의(carnism)' 라고 부른다(carnism은 저자가 만들어낸 용어다-옮긴이).

육식주의는 특정 동물들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다. 육식주의자(carnist), 즉 고기를 먹는 사람은 육식동물(carnivore)과 다르다. 육식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육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육식주의자는 또 잡식동물(omnivore)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인간을 포함한 잡식동물은 식물과 육류를 모두 섭취할 수 있는 생리적 능력을 지닌 동물이다. 그러나 '육식동물'과 마찬가지로 '잡식동물'이라는 용어도 개체의 생물학적 특징만을 기술하지 철학적 선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육식주의자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고기를 먹는데, 선택은 항상 신념에서 비롯된다. (p.35-37)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육식주의자였다. 그리고 육식주의자다. 이것은 내 인식에 따른 것이었고 또한 내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어떤 동물을 먹는 것은 끔찍하지만, 그러나 어떤 동물은 '자연스럽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서 먹는 것. 선택에 따라 어떤 고기를 먹는 나는 육식주의자였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주변에 반려견,반려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에서는 나아졌지만, 나는 어떤 동물이든 나와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내가 앞으로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그것이 연인이든 친구든, 공동체를 이루든 동거든, 그 사람 역시 어떤 동물과도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이 내 집안에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고 털을 떨어뜨리고 나에게 그 몸뚱이를 비비는 것은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고양이랑 함께 사는 친구네 집에 가면 고양이가 나에게 올까봐 더럭 겁이 나는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해 나도 이제는 길고양이에게 소세지를 챙겼다 주는 사람이 되었지만(이마저도 그것이 길고양이에게 좋은 게 아니라고 해서 안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동물의 고통을 짐작조차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걸 알기 때문에 더 같이 살기를 꺼려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낚싯바늘이 붕어의 입에 꽂히는 걸 어릴 때부터 자주 봐왔는데(아빠가 낚시를 너무 좋아하셨다), 그 때마다 저 붕어의 입은 저 바늘이 뚫고 가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했다. 키우던 병아리가 닭이 되는 시점에 죽었을 때 아빠가 뜨거운 물에 넣었다 털을 뽑는 걸 보고는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가 먹는 닭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내게 오는 것인가, 아무리 죽었다한들 뜨거운 물에 담가지는 것인가. 동물 학대 영상은 차마 보지 못하고, 얘기로만 들어도 너무 끔찍하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생명에게 그토록 가혹하고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수정 교수님은 일전에 [동백꽃 필무렵]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어릴 적에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아이가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 데리고 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 아이가 앞으로 범죄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동물학대를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동물학대를 끔찍하게 여기면서,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은 과연 '괜찮은' 것이 되는가.



'멜라니 조이'는 우리가 진실에 눈을 감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동물의 고통을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고통스러워질테니까. 그러니 자기합리화로 애써 눈을 돌리며 어떤 동물들을 먹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이 고기가 되는 과정을 읽다보니, 그 과정이, 이미 짐작했다 하더라도,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알겠다. 나는 그 폭력과 학대에 가담한 사람이었다. 동물을 때리고 가두고 고통을 주는 모든 순간들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 개별적 존재들에 대한 고통에 더해, 어미와 자식을 떨어뜨리는 고통까지 더했다. 우유를 먹을 때 우리는 기꺼이 어미와 자식을 떼어놓는 고통을 그들에게 주고 있었다.




소들은 본디 길게는 1년까지 새끼에게 젖을 먹이면서 대단히 친밀하게 지낸다. 그러나 낙농공장 에서는 보통 송아지를 생후 몇 시간 만에 어미에게서 떼어 놓는다. 젖을 인간의 몫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송아지가 어미 소 눈앞에서 끌려갈 경우, 어미는 흥분하여 큰소리로 울어댄다. 그래서 어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가 젖을 짜고, 그 사이에 송아지를 끌어가기도 한다. (p.82)



이 지점에 대해서는 이미 샬롯 퍼킨스 길먼이 [허랜드]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먼저 샬롯 퍼킨스 길먼이 말했더랬다.




"우리는 고기는 물론이고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거든요. 소의 우유는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음식이죠. 우유를 모아서 유통하는 사업의 규모도 상당하고요."

그녀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그린 소를 가리켰다. "농부들이 소의 젖을 짭니다." 그러고는 우유 통과 의자를 그리고 몸짓으로 소 젖을 짜는 모습을 재연해 보였다. "그러고 나면 우유 배달원이 도시로 가져와 운반하지요. 모두가 아침이면 집 앞에 놓인 우유를 받아볼 수 있답니다."

소멜이 진지하게 물었다. "소는 새끼가 없나요?" (허랜드, 샬롯 퍼킨스 길먼, p.88)







동물들이 학대되는 과정, 죽어가는 과정을 맞닥뜨리면서 이제 나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채식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즐겁게 먹고 마시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나와 어떻게 타협해야 할까. 당장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머릿속에 떠올려도 죄다 고기들이었다. 하다못해 쌀국수를 먹으려고 해도 그 안에 고기가 들어 있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먹는 일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채식주의자들로부터 채식주의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육식주의를 멈춰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런 내가 뭘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좀 줄여나가는 걸로 일단 선택하기로 했다. 오늘 점심은 무얼먹을까, 고민하고 떠오른 게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었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자고. 그러면 내가 일곱번 고기 먹는 걸 네 번으로 그리고 세 번으로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혼자 먹는 밥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기는 좀 더 쉬울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자리라면 메뉴 선택에 조금 더 스트레스 받을 수도 있겠지만, 혼자 먹는 자리라면 아마 좀 더 쉽겠지. 혼자 먹을 때는 가급적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메뉴로 선택하자. 선뜻 그런 메뉴를 떠올릴 수 없어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차돌된장찌개도 탈락, 김치찌개에도 돼지고기에서 탈락, 순대국도 탈락, 뼈해장국 탈락, 쌀국수 탈락... 죄다 탈락이네. 쌀국수 먹을 때는 아마 주문전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빼고 주세요, 라고. 물론 육수는 고기 육수겠지만.. 그러다 떠오른 게 콩나물국밥이었다. 그래, 콩나물국밥이 있다. 하루는 콩나물국밥으로 된다, 그러나 다음은? 생각하다 보면 하나씩 떠오르겠지. 줄여가보자. 줄여나가 보도록 하자. 그리고 줄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학대받고 폭력에 노출된 동물들의 개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멜라니 조이는 말하고 있다. 나는 힘을 얻는다.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게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먹는 양을 줄이기만 해도 동물과 자신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한두 차례 고기를 먹는 사람은 매일 먹는 사람 보다 훨신 적은 수의 동물을 소비한다. 이것은 확실히 동물들에게 도움이 된다. 동시에 당신 자신에게도 유익하다. 가치관과 행동이 전보다 훨씬 조화를 이루는 걸 느낄 테니까. (p.202)



나는 폭력이 싫다. 폭력적인 것과 먼 삶을 살겠다는 내 가치관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려면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동물들의 고통을 짐작한다. 그러므로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단지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이 부조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동물들의 존재 의미가 자신들의 존재 그 자체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육식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아직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말할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면서 살아가겠다.




이 책에는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책이 언급되는데, 그 내용이 좋아서 읽고 싶어졌다. 내 책장 아직 읽지 않은 책들중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아는 나는, 얼른 가서 책을 꺼내들고 이 트라우마가 그 트라우마인가, 그러니까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인가를 확인해 보았다. 맞았다. 와- 읽고 싶은 책을 미리 준비해둔 나란 녀자.. 역시 책은 일단 사두고 볼 일이다.


















인식에서의 이런 차이점들은 우리의 ‘스키마(schema, 圖式)‘ 때문이다. 스키마란 우리의 신념과 생각, 인식, 경험을 구조화하는-그리고 역으로 그것들에 의해 형성되는 -심리적 틀을 이른다. 스키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자동적으로 정리하고 해석한다. 예컨대 ‘간호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마도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간호사 중에는 남자도 있고 흰 가운을 안 입는 사람도 있으며 병원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적잖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유형의 간호사들을 자주 접하지 않는 한 우리의 스키마는 이런 일반화된 이미지를 고수한다. 일반화는 스키마가 자기 고유의 기능을 해낸 결과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드는 엄청나게 다양한 자극들을 검토하고 해석한 뒤 일반적 범주(category)들에 나누어 넣는 일 말이다. 스키마는 요컨대 정신적 분류체계다.
- P16

우리는 동물을 포함한 모든 대상에 관해 스키마를 갖고 있다. 가령 동물은 포식동물과 그 먹이가 되는 동물, 유해동물, 애완동물, 또는 식용동물 따위로 분류된다. 우리가 특정 동물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그것의 관계-사냥할지, 도망칠지,박멸할지,사랑할지,아니면 먹을지-가 결정된다. 이 범주들 사이에 중복이 있을 수도 있다(포식동물의 먹이인 동시에 우리의 식용동물일 수 있다). 그러나 고기와 관련해 생각하는 한 대부분의 동물은 식용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 P16

어떤 면에서, 채식주의가 육식주의보다 먼저 이름을 얻은 것은 당연하다. 주류에서 벗어난 이데올로기들은 알아보기가 더 쉬우니까. 그러나 육식주의보다 채식주의에 먼저 이름이 붙은 데는 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확고히 들어선 이데올로기가 그 상태를 유지하는 주된 방법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아 있는 주된 방법은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으므로. - P40

우리는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생활방식이 보편적 가치를 반영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또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수의 신념과 행동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과학혁명 이전에 유럽의 주류를 이룬 신념 중에는 하늘이 지구를 에워싸고 도는 천구(天球)들로 이루어졌으며 지구는 우주의 고귀한 중심이라는 믿음이 포함되었다. 이 믿음은 너무나 확고해서 코페르니쿠스나 그 후의 갈릴레오처럼 반대 주장을 펴려면 죽음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니 우리가 이르는 바 주류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지극히 광범하게 퍼지고 확고히 자리 잡아서 그 가정과 관행들이 상식으로 여겨지는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다른 방식-일 뿐이다. 그것은 의견이 아니라 사실로 간주되고, 그 관행은 선택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규범이며, ‘원래 그런 것‘이다. 육식주의가 지금까지 이름을 얻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38

이데올로기가 확고히 자리 잡았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 한 예가 가부장제다. 이는 남성성을 여성성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고 여성보다 남성이 사회적 권력을 많이 갖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다. - P39

채식주의자들은 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먹는 음식을 옹호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는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보면서 히피나 섭식장애자로 규정하는가 하면, 심지어 반인간적인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채식주의자가 가죽 제품을 걸치면 위선자 소리를 듣고, 일절 착용하지 않으면 순수주의자나 극단주의자로 치부된다. 이처럼 그들의 깊은 감수성은 육식주의 세상의 온갖 편견과 도발에 끊임없이 부대끼고 상처받는다. 육식주의에 순응하여 가장 저항이 적은 길로 가기를 거부하고 소수자로 사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 P146

궁극적으로, 증언하는 일에는 어느 한쪽을 편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규모의 폭력 앞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희생자 아니면 가해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주디스 허먼은 모든 방관자는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한쪽 편을 들 수밖에 없으며, 도덕적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다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이렇게 지적한다. "중립은 압제자를 돕지 절대로 희생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결코 괴롭힘을 당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않는다." 증언하는 행동을 통해 우리는 주어진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역할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희생자와 함께 서기를 택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지라도, 허먼이 말하듯이 그들에게 "더 이상의 영광은 없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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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2-1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한동안은 고기를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채식과 관련한 책 중 이 책이 저를 가장 오래 반육식주의자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휴....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회생활하는 동안 꺾이고 말았습니다. -_-;;;

우리나라처럼 경직된 사회에서는 회사에 채식주의자가 있다는 건 다른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이더라고요. 저 사람 때문에 회식 메뉴도 마음대로 못 정하고, 점심 때도 눈치봐야 하고 등등. 다들 무언의 압박! 페미니즘처럼 채식주의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를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만들기에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가아지요.그 불편함이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든다면야..... 그러나 저도 다시 고기를 먹고 있어서... 채식주의자의 길은 너무나 힘드네요. 하하하;;;

고기 먹고 싶을 때 가끔 이 말을 떠올립니다.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에 나왔던 표현 같은데, 그의 접시에 담긴 비프스테이크를 바라보며 한 채식주의자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은 상처를 먹는군요.˝

다락방 2019-12-16 12:13   좋아요 1 | URL
다른 책을 더 안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이 책은 강력했어요. 굳이 알고 싶지 않아 외면했는데 이렇게 알게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저 역시 채식주의자가 있다고 하면 메뉴 선정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거든요. 너 때문에 이것도 못먹고 저것도 피해야 하고.. 하면서요. 이 책 읽으면서 그건 제가 사회에 페미니스트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수에게 불편한 존재. 그러나 저는 제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요.

저는 잠자냥 님처럼 반육식주의자로 지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주 그렇게 되지는 못할것 같고, 그러나 인지하는 만큼 지금보다 좀 더 멀어지는 삶을 사는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 또 희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 때는 육식의 성정치를 사서 읽어보면... ( ˝)

저는 지독한 육식주의자여서 채식주의자들을 되게 불편해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이제는 그 신념에 동의하는 사람 정도로 저를 조절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온 것 같아요. 그래도 갈 길이 멀죠. 아무튼 학대와 폭력을 좀 더 줄이는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멀어지라고 말하고 있는데 저는 스테이크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 너무 괴롭네요 ㅠㅠ

2019-12-16 1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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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8: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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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0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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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1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하이치킨버거랑 만두, 치킨 때문에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될수는 없겠지만
삼겹살과 스테이크, 삼계탕은 조금씩 줄여가고 있어요, 저는요.
우유랑 달걀이 최우선 과제인데 그건 아직 성장기 아롱이 때문에 자꾸 미뤄지네요 ㅠㅠ
쉽지 않은 일이고.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일이기는 해요. 하지만 사회가 변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중요한 건 제 자신의 실천인데, 저도 <육식의 성정치> 읽고 한 두주 열심히 실천하다가.... 에궁...

다락방 2019-12-17 08:05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로 만들지는 못할것 같고요,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도 저한테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할 수 있는만큼만 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 읽다 보면 소는 소대로, 닭은 닭대로, 돼지는 돼지대로, 계란은 계란대로 못먹겠는데 말이죠 ㅠㅠ
저는 그나마 우유는 안먹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유는 제가 소화를 못시켜서..
아무튼 혼자 먹는 점심에는 항상 고민을 해서 메뉴를 선정해야겠어요. 어제도 고민하다가 마라탕 먹었고, 오늘은 콩나물국밥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메뉴는 더 뭐가 있는지 차근차근 봐야겠어요. 저는 최소한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 라고는 생각하고 있는데, 그래도 스테이크가 포기가 안될것 같아요. 저는 혼자 먹는 스테이크를 너무 좋아해서 ㅠㅠ

저도 육식의 성정치 읽고 싶으면서도 계속 구매를 망설이는 게, 그거 읽고 나면 또 후폭풍이 장난 아닐까봐..

육식의 성정치 아직 읽지도 않았지만, 이 책만 읽고서도 채식주의자와 페미니스트를 따로 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휴...

clavis 2019-12-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지기 든 생각인데, 논술보는 친구들이 락방님 글을 많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12-17 14:17   좋아요 1 | URL
아니 클래비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논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고 스스로도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갑자기 논술 보는 친구들이 읽어야 한다 하시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감동이네요. 오늘의 감동 스티커 드립니다. 클래비스님은 항상 저를 너무나 좋게 봐주시지만 아무튼 오늘의 감동 ♡

심술 2019-12-1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읽었는데 앞으로 생명공학이 조금만 더 발달하면
세포분열 기술로 고기를 인공생산할 수 있다고 하네요.

동물 죽이지 않고서도 안심,등심,삼겹살,닭다리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내게 된다고요.

그 때가 오면 맘놓고 죄책감 없이 스테이크와 삼계탕을 먹게 되겠죠.

다락방 2019-12-17 16:38   좋아요 0 | URL
그 때가 빨리 와서 스테이크 좀 자주 먹고 싶네요 ㅠㅠ
전 지금 간짜장이 너무 먹고싶어서 .. 내일은 간짜장 먹을건데, 그런데 고기를 빼달라고 할까, 그 정도쯤은 그냥 허락할까 엄청 고민중이에요. 어차피 소스에 들어있는건데 뭘 빼달라고 해, 그냥 먹자.. 로 기울고 있긴 하지만.. 하아- 간짜장이 너무 먹고싶어요 엉엉 ㅠㅠ

Jeanne_Hebuterne 2019-12-22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고양이들과 함께 살다가 보니 채식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고기를 확 줄였는데요, 이 글 반가워요. 오랜만에 와도 등대처럼 늘 있는 다락방님 서재도 좋고요.
주변환경도 한몫 한 것 같아요, 제가 고기를 줄이게 된 건. 대체품이 있다는 것, 같은 지점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것 등의 환경의 역할도 있어요. 유제품을 넣지 않는 음식,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내가 장악할 수 있는 정도의 식단이요.
네,, 전 스테이크도 먹고, 생 굴도 먹고, 연어도 먹고, 하프앤 하프를 커피에 곧잘 넣어 먹는 사람이지만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뉴요커에서 했던 말, 요즘 사람들은 고기를 너무 자주 많이 먹는다, 이 말이 엑셀이 되었달까요.
타자의 고통을 내가 감수한다는 그런 문제로 식단과 동물실험, 동물보호 문제를 생각중인 요즘이어요.

다락방 2019-12-22 17:29   좋아요 0 | URL
쟌님, 저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아갈방향은 채식이 아닌가 합니다만, 그러나 제가 너무 약하고 간사한 인간인지라 제가 거기까지 닿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고통스러웠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삼겹살 먹고싶다는 욕망은 불쑥 튀어 나오거든요. 그래서 이 글에 쓴것처럼, 줄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보고자 해요. 의식적으로 혼자 먹는 식사에서는 고기메뉴를 좀 삼가해볼 예정입니다. 그정도쯤은 조금의 노력으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뉴요커에서 했다는 말은 저를 겨냥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너무 고기를 많이 먹어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아예 안먹는 건 아니더라도 조금 줄이는 것으 해볼만하지 않은가, 그래야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곳에 오래 있으면요, 쟌님, 좋은게, 오랜만에 오는 누구와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쟌님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noomy 2019-12-2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혼이 듬뿍(?) 느껴지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의식과 영혼에 큰 균열이 간 후로 나름 채식과 절식을 하려고... 하려고... 하려고... 매 찰나 노력하는 중입니다.-_-;; 마치 죽비를 든 싱어 형님이 떠오르는 그의 글은 ‘고기를 먹는 이유는 단지 고기 맛을 즐기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비효율적이고 비윤리적인 육식을 꼭 해야 하냐며 어제도 식탁 위 제육볶음으로 가는 저의 손끝을 사정없이 내리 치십니다. 아~ 정말 미칠 듯이 힘듭니다. 이놈의 식탐, 육식... 인식과 실천의 공극은 짧을수록 좋다지만 이 문제는 죽기 전까지 실천해야 할 일이니 조금 느긋하게 천천히 같이 갑시다~^^ 기회가 되면 저 책도 한번 읽어볼게요. 그나저나 클린미트는 언제쯤 실용화가 될까요?

다락방 2019-12-24 12:24   좋아요 0 | URL
조금 느긋하게 천천히 가야 저도 엇나가지 않게 잘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며칠전에 콩나물국밥집에 가서는 수란을 주는데 안먹었어요, 하고 바로 반납했습니다. 만약 제가 반납하지 않고 그대로 식탁에 둔다면 어차피 그것은 소비되는 것일테니까요. 소비를 줄여야 결국 학대되는 동물들이 줄어들테니, 아예 식용되기 전에 삼가야 할 것 같아서요. 어제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집에 가서 ‘고기 빼고‘ 달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두부랑 김치를 더 많이 넣어주셨어요. 하하하하.

저는 제가 삼시세끼 매번 다 잘 지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일단 혼자 식사할 때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엊그제는 징버거버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신 진미채김밥을 사먹었습니다. 극히 미미하겠지만, 그래도 제가 혼자 먹는 밥에서라도 소비를 줄이면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천천히 꾸준히 가려고 해요. 기운냅시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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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느껴야 되는지를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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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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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2-16 11:0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오히려 ‘이상한 남자들만 있는 건 아니야‘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장인물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는데 단편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하게 되더라고요. 뭘 말하는지를 모르겠어요. 단편들이 죄다 그랬어요. -.-

2019-12-16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2-1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사랑 금희언니 ㅜㅜ 세상의 다양한 취향은 참 놀랍고 신기하고 그래요.

다락방 2019-12-17 08:02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올해 사람들이 좋아하든 김초엽 작가에 대해서도 읽고 ‘대체 왜..‘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취향이란 이렇듯 모두가 좋아한다고 나도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흐흣

졔졔 2020-01-0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ㅋㅋㅋㅋ정말ㅋㅋㅋ정확하게 공감해요ㅋㅋ 독서모임에서 읽어가지구ㅋㅋㅋ꾸역꾸역 독후감을 쓰기는 했지만ㅋㅋㅋㅋ정확한 감상은 확실히ㅋㅋㅋ모르겠눼? 였어요ㅋㅋ

다락방 2020-01-03 17:23   좋아요 1 | URL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몰라서 물음표 열 개 되었어요. 저처럼 느끼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라니.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얼음장수 2020-03-05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떠들석해서 김금희를 읽었는데, 좋다 싫다 이전에, 밋밋하다는 느낌이었어요. 문체도 서사도 인물도. 저는 좀 더 팔딱거리고 열기건 냉기건 내뿜는 쪽이 좋아요.

다락방 2020-03-05 14:11   좋아요 0 | URL
얼음장수 님은, 그래서 제 글을 좋아하시는거군요!!! (맘대로 결론내리기 ㅋㅋㅋㅋㅋ)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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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9세의 여자 '브리짓'이 주인공. 그녀는 FBI요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했고, 재혼남 남편에게는 자신이 조직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숨겼다.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는 그녀의 상황(그녀의 세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前)남편이 떠났기에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채 실제 자신이 했던 일을 감추었던 것. 상처는 깊었고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으나,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늘상 함께하는 사람에게도 솔직하게 보일 수 없다는 것은, 둘 모두에게 고통이다.



그녀를 닮고 싶고 그녀의 뒤를 잇고 싶었던 현재 FBI 요원 '콜먼'은 FBI가 잡아들인 연쇄살인범의 자백이 거짓일거라 의심하고, 이에 이미 은퇴한 브리짓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브리짓과 콜먼 모두 연쇄살인범을 의심하고 증거를 찾아내지만, 그녀들 주변의 모든 남자들, 똑똑하고 경력도 있고 신뢰도 가졌던 그 모든 남자들은 누구도 그녀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들은 위험한 상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소설의 첫시작부터가 59세의 브리짓이 젊은 남자 범죄자와 싸우는 장면이다. 아직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 마구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브리짓, 싸워서 이겨버렷! 그리고 이 싸움은 내 기대이상으로 브리짓의 승리가 된다.




"경찰 가족이었어요. 아빠와 남동생은 시 경찰이었고, 여동생은 CIA에 있었죠. 여동생인 애리얼과 나도 어렸을 때는 바비 인형을 잘 갖고 놀았는데, 파티에 가는 대신 켄을 약물 중독 혐의로 체포하곤 했어요."
콜먼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야기를 농담으로 들은 듯했다. - P198

"…최대의 선은 진실을 감추는 것이라던데요."
"재미있네요. 맥스 비어봄을 잘 아나 봐요." - P312

꼴이 더 우스워지기 전에 마침내 택시가 도착했고 두 사람 모두 내가 택시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기사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지나는 모든 모퉁이를 헤아리며, 부디 택시 기사가 암살범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으로 다소 슬프졌다. 기사가 우회전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을 경우 곧장 택시에서 뛰어 내릴 요량으로 나는 차 문의 손잡이를 점검했다.
기사는 무사히 나를 호텔 앞에 내려주었고 난 누구의 도움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 P317

전날 밤에 쏟아낸 자기 연민의 잔여물 위를 뒹굴며 뷔페에서 가져온 것을 먹는 동안 나는 한 주의 날씨를 알려주는 날씨 채널을 켰다(더움, 더움, 더움, 비, 비, 더움, 비).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이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지 생각했다. - P319

"데이비드 바이스가 당신에 대해 또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고 난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꿈을 꾸게 된다고 하더군." -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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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브리짓과 그녀의 남편이 책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아보였구요. 저희 남편도 책은 읽는데 저랑 선호하는 분야가 달라서 같이 책 이야기 하는 일은 없고, 집에 쌓이는 책만 늘어갈 뿐이네요. ㅎ 연애할 때는 하루키도 좋아한댔으면서..

다락방 2019-12-15 12:00   좋아요 1 | URL
훌쩍 나이를 먹은 후에도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을 만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 참 좋아보이더라고요. 게다가 브리짓은 직업도 직업이지만 스스로 강한 여자라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누군가에게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그런 강한 여자라는 게 참 좋았어요.
 

전(前)애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었으나 언젠가부터 책을 한 권도 안읽는 사람이 되었어. 나를 처음 만나던 그의 나이 스물일곱에도 그는 책을 읽었었고, 책 때문에 나랑 만나게 된거였는데, 그런데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세월이 흐르고 그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가 내 글만큼은 항상 읽어왔다. 나와 연애하던 시절 그의 아이폰에는 다락방 폴더가 따로 있었다. 거기에는 나의 알라딘과 SNS 그리고 개인 블로그까지 즐겨찾기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내 글들을 빠짐없이 다 읽었고, 그래서 내가 읽은 책을 그가 읽지는 않았어도,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인용해둔 밑줄긋기를 읽고, 그 내용으로 농담을 하는 것까지 우리에게는 가능했다.


어제 페이퍼를 쓰고 나서도 생각한건데, 이렇게 내 글만 읽어도 어느 만큼은 아는 것이 가능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서 잘난척할 만큼은 전혀 안되겠지만(그건 나도 못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안읽었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읽을 수 있잖아. 게다가 얼마만큼은 또 머리에 넣을 수도 있고. 내가 쓴 글에서야 정보값이 별로 없다 해도, 인용문들에서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으니. 그러니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은 공부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말로 써머리잖아? 그렇지만 지극히 글쓴이의 주관이 담긴 것일테니, 그건 읽는이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고.


전애인은 내가 쓴 글을 읽고 쭉쭉 빨아들이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의 특징을 말하자면, 그것의 출처가 내 글인지 간혹 까먹는다는 데 있었다. 어쩌면 이건 남자들의 특징인건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특징인걸지도 모르겠고. 가끔 내 글에서 읽고 알아놓고서는 나한테 마치 전혀 새로운 걸 얘기하듯해. 나는 혼자 속으로 '그거 내 글에서 본거잖아, 내가 쓴거잖아' 했더랬다. ㅎㅎ


아, 그러니까 무슨 얘길 하려는 거냐면,

책을 읽기 싫다면 책을 읽은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이 좋은 써머리가 될 거라는 것. 물론 '좋고 나쁜'건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지만.



















'이라영'의 《정치적인 식탁》을 읽었다. 내용으로 보자면야 사실 특별할 게 없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글들이 이 안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이 정갈하게 정리해둔 글을 읽는 것은 또 그대로의 의미가 있고, 정치적인 식탁은 나에게 써머리가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예술을 공부한 사람이라서인지, 본문에 맞는 그림(혹은 사진)들을 삽입했다는 데 있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는, 그걸 보는 게 좋더라. 그러다가 이런 사진을 만났다.





'차별'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실린 저 사진. 아니, 저것은 내가 얼마전에 맥키넌의 책에서 본 바로 그 사진이잖아. 마침 책상에 맥키넌의 책도 있던 터라, 휘리릭 책장을 넘겼다. 자, 여기있다!




'엘리엇 어윗'의 저 사진은 차별, 불평등에 말하는 대표적인 사진이로구나. 엘리엇 어윗의 이름을 내가 외우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이 사진을 본다면 불평등과 차별에 관해 말하는 대표적인 사진이며, 맥키넌과 이라영이 모두 가져왔던 그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크- 너무 좋아. 나 똑똑해... 여기 나온 사진 저기 나온 사진 막 알아가지고 이렇게 다 찍어서 가져와. 세상 똑똑해.. 천재천재...



그러니 책 읽기 싫으신 분들이여, 써머리라도 읽자. 내가 작성한 써머리. 이렇게 천재가 작성한 써머리가 알라딘에 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정치적인 식탁 읽다가 빡친 부분을 가져와보겠다. 오늘은 또 오늘의 빡침이 있는 거잖아?

'허난설헌'과 '허균' 평전 모두에 들어있다는 '화담 서경석'의 일화이다.




나의 선친께서는 화담(서경덕의 호) 선생에게서 가장 오래 배웠다. 한번은 7월에 선생 댁을 찾아가니 화담으로 떠난 지 이미 엿새나 되었다 하므로 즉시 화담 별장으로 가는데 가을장마에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여울물이 조금 줄었으므로 겨우 건너서 화담에 이르니 선생은 거문고를 타며 큰소리로 읊조리고 있었다.

선친께서 저녁밥을 짓기를 청하니 선생은,

"나도 먹지 않았으니 내 몫까지 함께 짓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하인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이끼가 솥 안에 가득하였다. 선친이 이상히 여기고 그 까닭을 묻자 선생이,

"물이 막혀서 엿새를 집사람이 오지 못했기 대문에 내가 오랜 동안 식사를 못하였다. 그러니 분명 솥에 이끼가 끼었을 것이다."

하므로, 그 얼굴을 바라보니 조금도 굶주린 기색이 없었다. (정치적인 식탁 재인용,P.53-54)



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쳐돌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집사람이 안오면 솥에 이끼가 끼도록 밥도 안해쳐먹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자라지만 집에 온 손님한테 밥하라고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배가 안고파도 솥은 씻어서 좀 말려둬야지 이끼 끼게 내버려두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처구니 진짜 대박 상실했다. 이라영도 지적하지만, 이 평전에서의 저 일화는 '엿새를 굶고도 굶주린 기색이 없는' 화담의 굳건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P.54) 것이지만, 이라영도 빡치고 나도 빡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험한 말 나온다.



그러고보니 최근 지인이 겪은 일화도 생각났다. 열흘간 여행을 마치고 들어왔더니 남편이 열흘동안 설거지를 안하고 그대로 쌓아두었다는... 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이거 실화고 리얼이고 팩트야. 참나원. 열흘동안 설거지 쌓아두는 그 마음은.. 뭐야? 아내가 없다고 밥을 안해먹으면 안해먹는대로 꼴보고 싫고 걍 굶어죽어라 이런 마음 되지만, 설거지를 안했다니 또 그건 그것대로 살겠다고 쳐먹긴 하고 씻지는 않냐, 또 이런 마음 되는 것이다. 하아-


















얼마전에 '임지연'의 필모를 보고 원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 《럭키》를 보게되었다. 임지연의 등장부터 나는 너무 실망했다. 가슴골이 보이는 옷을 입고 요가를 하면서 임지연은 등장했다. 하아- 왜 임지연을 저렇게밖에 쓰지 않는가. 왜 저런식으로 등장하는가. 끝까지 임지연이란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범죄를 목격한 목격자로 숨어 살고 있는데, 그녀를 지키기 위해 킬러인 형욱(유해진)이 애쓰는 거다. 그러나 형욱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재성(이준)이 형욱 행세를 하며 형욱의 집에 살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임지연을 보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휴...

임지연 좀 그렇게 예쁜 여자로만 쓰지 말아라, 영화들이여.. 좀 제대로 좀 해봐요, 좀.... 이 사람에게 좀 생생한 캐릭터 좀 부여해줘!!


그건그렇고,


이준 나오는지 모르고 봤는데 이준 나오네? 이준이라면, 그 엠블랙이었나, 한창 내가 군무 즐겨보던 시절에 Y 좋아했었는데...그때 이준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극중 형욱은 유능한 킬러이며 돈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산다. 재성은 무명의 엑스트라 배우이며 매우 가난해서 월세도 내지 못하면서 산다. 월세 재촉도 힘겹고 가난한 것도 힘겹고 재성은 죽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월세 재촉하러 왔던 집주인이 냄새난다고 하는 말에, '씻고 죽자' 면서 대중목욕탕을 향한다. 거기에서 목욕탕 바닥에 미끄러져 기억을 잃게 된 형욱을 알게 되고, 그사람의 옷을 입고 그 사람의 차를 타고 그 사람의 집에 가 그 사람인듯 부자의 맛을 즐기며 살게 되는 거다.


재성이 가난했기 때문에 우울했을 것이고 그것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까지 심각해보였기에, 그래서 재성의 집에 쓰레기통 이백개 엎어놓은 것처럼 지저분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청소의욕을 느끼지 못한채로 살았을 것이다. 자기 몸도 씻지 못하는데야 뭐 집 청소를 하겠어. 그러나 재성은 크고 잘 정리된 집에 들어가 어마어마한 현금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집도 아닌 남의 집에 들어가 남의 돈을 쓰면서, 거기서도 그 깔끔한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쓰레기통 엎어놓은 것처럼 만들어. 반면, 형욱은 늘 깔끔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재성이려니.. 생각하며 옥탑방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너무 더럽고 지저분한거다. 그는 그 집을 싹 치우고 깨끗하게 지낸다. 기억은 안나지만 나는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게다가 형욱은 자신이 단역 배우라길래 드라마 촬영장에 갔다가 처음에 연기를 못한다고 엄청 잔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의 성공을 바란다는 걸 알게 되고는 미친듯이 노력한다. 발음교정부터 시작해서 연기에 필요한 것들을 습득해서 노력노력노력해서 인기있는 배우가 되어버리는 거다. 뭐, 노력한다고 갑자기 무명의 배우가 유명한 배우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설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성격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가난해서만이 아니라 그냥 크고 깔끔하고 돈 있는 집에 가도 지저분하게 만들어버리는 재성의 성격. 어느 집에 살든 깔끔하게 정리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하고자 하는 바를 최선을 다해 하려고 하는 형욱의 성격. 외모로만 보면 더 젊고 잘생긴건 이준이지만, 나는 극중 이준이 너무 싫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것도 안하면서 불평불만만 하는 캐릭터 너무 싫어. 진짜 저런 외모라도 싫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 이렇게 된것이야.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극속으로 들어가 내게 유해진과 이준 중에 누구를 선택하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고민없이 유해진이다. 어휴, 어떤 집이든 청소 안하는 거 너무 진짜 꼴보기 싫음 ㅋㅋㅋㅋㅋ


누군가 뭔가 잘한다면, 거기에 대해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너는 그거 잘하는 거 부러워'하는 거 진자 세상 부질없지 않나. 극중 형욱은 김밥집 알바조차도 현란한 칼솜씨 덕에 잘해낸다. '너는 칼질 잘하니까 김밥집알바를 해도 돈을 잘벌고 부러워' 라고 부러워만 하기전에, 칼질을 연습하는 것이 더 소용있는 것이다.



















어제는 치킨을 포장해 가서 와인을 따랐다. 그리고 무얼 볼까 하고 텔레비젼 리모콘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볼 게 없어. 그래서 나의 사랑 '맥켄지 데이비스'의 작품 중 아무거나 하나 보자, 하고 이 영화를 선택했다.


철없는 남자 세 명의 이야기여서 빻은 대사나 행동들도 나오고.. 그래서 으윽 보지말까,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그래도 '맥켄지 데이비스가 나오니까...' 하면서 봤단 말이야? 그런데 이 영화에서 무려, 아이고, 보기를 잘했지, 맥켄지가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다.


맥켄지님..

맥켄지여..

님은.. 누구십니까. 사랑합니다.

파티에 가서 눈맞고 싶어요, 맥켄지 당신과. 눈 맞아서 서로 오래 응시하다가 '나갈까요' 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나서고 싶어요. 파티에서 눈맞자요, 맥켄지님.. 흑흑 ㅠㅠ


내가 맥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영화속 맥켄지는 너무 아깝다. 이 영화속 여자들 캐릭터는 다 너무 아까워. 다들 자기 일 가지고 있고 어른스러운데 사랑에 빠지는 남자들이 다 개같이 한심해. 아무리 이 사랑을 통해 성장할 거라고는 하지만 진짜 개한심하다. 하아. 뭐랄까. 전체적으로 덜자란 어른 남성들이 철들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랄까. 나였으면 용서하지 못했을 머저리같은 잘못들을, 영화속 여자들은 잘도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들여 준다(여러분, 천사입니까? 천사여서 좋을 게 뭐에요? 철없는 남자들이나 구원하고!). 나라면 용서 못해! 용서 안해!!


맥켄지 아니었으면 끝까지 안봤을 영화다 진짜.





플랭크 한달챌린지 앱을 깔고 매일 도전중이었다. 비기너 모드로 시작해 처음엔 15초 플랭크를 하였지만, 25일째를 맞는 오늘은 무려1분45초다. 매일 밤에 꼬박꼬박 해서 여기까지 잘 해왔는데, 오늘 퇴근 후 저녁 약속이 있었고, 아마도 나는 술을 마실텐데, 술을 마시고 들어와 플랭크를 할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한거다. 그동안에도 술 마시고 한 적이 있긴 했지만, 으, 오늘은 혹여라도 많이 마시게 된다면... 못하고 곯아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24일을 해온 나의 기록에 흠이 생긴다. 나는 삐끗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아침밥을 포기하고 플랭크에 도전했다. 일어나자마자 매트를 깔고는 1분45초 플랭크를 했다. 힘들었다. 게다가 이렇게 일어나자마자 하는 게 딱히 좋을 리도 없을 터. 나는 롤링을 20회 하고, 소고양이 자세를 5회 하면서 몸을 좀 풀어주었다. 나비자세를 하고 스트레칭도 좀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여 2세트의 1분 45초까지도 해냈다. 으윽. 장하다, 잘했어. 멋지다 나여.


15초 20초는 괜찮았지만, 40초를 넘겨가면서부터는 다음날의 플랭크가 매우 두려웠다. 내일은 못할거야, 내일은 못버틸거야, 그런 두려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오늘 1분 45초까지 완성해냈고. 물론 중간에 1분30초였을 때였나, 2세트째를 끊어간 적이 있다. 50초-40초 로. 이제 5일 남았고, 어느날엔가는 아마 또 끊어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한달챌린지를 무사히 마치고 싶다. 무사히 마치기만 해봐, 내가 플랭크 시늉도 안한다!!





그러나, 아침을 늘 먹던 사람이 안먹으면 어떻게된다?

배고프다.


그래서,

출근길에 스벅에 들렀다. 샌드위치랑 커피를 주문해두었다. 정치적인 식탁을 읽으며 아침 식탁을 맞이한 것. ㅋㅋㅋ 그러니까 나는 아침을 안굶었지롱? 아침밥도 챙기고 오늘의 플랭크도 챙긴 나란 여자! 황홀해!





나는 어쩌면 이렇게 늘 반할 요소가 많은지.

오늘도 나는 나한테 반해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판 위키 사이트 ‘나무위키‘에서 ‘김치녀‘의 정의는 ‘권리는 챙기려고 하면서 의무는 안 한다‘로 요약된다. 특히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신앙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의식이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석이 따로 생기면 여성의 특권처럼 인식하지만, 여성이 명절 노동을 거부하면 의무와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한다. - P24

여자의 몸/무게는 나이와 함께 적을수록 높게 평가받는다. 뚱뚱한 여성이 예쁘게 보이더라도, 뭔가 더 예뻐질 수 있는데 불필요한 살이 미모를 가리고 있어 안타깝다는 듯 "살 빠지면 예쁘겠네"라고 한다. 마치 나이 든 여성에게 "젊었을 때 미인이셨겠다"라고 하듯이. ‘젊고 날씬함‘의 범주를 벗어나면 ‘아쉬움‘이 있는 몸이 된다. 뚱뚱하고 늙은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 - P31

어떤 세계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는 때로 사소한 낯설음에서 출발한다. "없든 혐오가 생기려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변태하기를 거부하고 무지에 양분을 주어 혐오를 발아시켰을 뿐, 없던 혐오가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때로 불편하다. 나는 모를 것이다, 몰라도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차라리 몰라도 되는 권력을 지향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자신의 세계에 그 낯선 세계가 스며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기 때문에 조롱해 멸시하거나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다. - P213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남에게 신세지는 것에 대해 너무 결벽증적으로 어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거리를 두면서도 대로 우리는 침투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맺고 산다. 내가 신세를 질 수도 있고, 나에게 신세 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성격인지,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좀 강한 편이다. 나는 이를 조금씩 흐트러뜨리려 애쓴다. 영원히 젊지 않으며, 영원히 건강하지도 않다. 인간에게 환멸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극적인 순간 나를 구출하는 존재도 인간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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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9-12-1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다락방님께 반해버렸어요~~~ 이렇게 마력적인 글을 쓰는 사람에게 안 받알수 있겠습니까?

다락방 2019-12-11 13:38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저한테 반했다고 쓴 글이긴 하지만 다른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되게 부끄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아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1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적 식탁> 저 인용한 부분 진짜 빡치죠.
휴.... 읽으면서 저는 걍 뒤져... 걍 굶어 뒤져 하고 중얼중얼.........

암튼 출근길에 스벅에 들러서 무려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그 부지런함이 참 대단하십니다.
전 늘 5분 지각 인생인데;

다락방 2019-12-11 13:39   좋아요 0 | URL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죠. 그런데 엿새를 굶어도 굶지 않은 것 같은 상태였다니. 영양상태도 좋았나봐요. 아내가 엄청 잘 챙겨준 모양. 아 진짜 꼴도보기 싫어요. 지가 안먹을 거면 솥에 이끼 끼지 않게 씻어 말려두든가요. 아 너무 싫어요.

저는 저 스스로가 지각하는 거를 좀 못견뎌하는 사람이라서요. 항상 미리미리 가 있는 편이랍니다. 아하하하하.
부지런하다.. 가 맞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미리미리 가있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이런 편이라서요.
결정적으로 먹는 걸 좋아합니다. 매우..매우... 이만 총총.

blanca 2019-12-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플랭크를 하는 다락방이라니. 이렇게 근사해도 되는 겁니까? 나도 따라 할래요.

다락방 2019-12-11 13:40   좋아요 0 | URL
그러나 아침 플랭크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휴 힘들었어요.
저 어깨가 굽어 등에 힘이 없는데 플랭크가 도움이 된다고 요가쌤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말듣고 바로 한달플랭크 시작한거거든요. 그런데 뭐 ..딱히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흐음..

아무튼 블랑카님도 플랭크 화이팅요!

단발머리 2019-12-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찾아봐야겠어요, 이책.

반해 버렸어요,에 1인 추가요!!!

다락방 2019-12-11 13:41   좋아요 0 | URL
네, 도서관 가시면 정리 차원으로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물론 최근의 저는 이 책 보다는 맥키넌의 책에 더 마음이 기웁니다만...

앞으로도 반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빠샤!

slobe00 2019-12-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올 때마다 반하는 사람들 천지일 걸요.. 정보만 있는 게 아니라 감성마저 흘러넘치는 완벽한 써머리~
저희 남편은 저 어디 가면 설거지하기 싫어서 전부 시켜먹고 사 먹고 냉장고 안은 썩어가게 두더라고요.

다락방 2019-12-11 13:43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이러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끄럽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지마세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너무나 좋아하며 말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되게 상식적인 문제잖아요. ‘내가 하기 싫은 거 남도 하기 싫다‘ 이거요. 아내 없는 동안 밥 안하면서, 설거지 안하면서, ‘으 이 싫은 거 그동안 아내가 혼자 다 하고 있었구나‘ 이런식으로까지는 생각을 못하는걸까요? 히융-

비연 2019-12-12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나는 나한테 반했다 라는 말에 아침부터 빙그레 웃게 되네요 ㅎㅎㅎ
저도 출근하면서 스벅 들르고 싶어요 ;;; 지금 프로젝트 사이트 주변에는 도대체 스벅이 없다는. 슬픕니다. 아흑.

다락방 2019-12-12 14:40   좋아요 1 | URL
어제는 의욕에 가득찼으나 오늘은 또 다른 기분이네요 ㅠㅠ
오늘 집에 가서 26일차의 플랭크를 하여야하는데 갑자기 회사 동료가 술을 마시자고 해서 몹시 흔들립니다. 술을 마시고들어가면 플랭크를 하기 힘들고 그간 잘 지켜왔는데.. 아아.... 그래서 일단 못마신다고는 해두었으니 자꾸 생각나는 술.. 저 그래서 지금 사무실 바닥에서 플랭크할까.. 이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 미쳤어 진짜.. ㅋㅋ

저는 오늘 아침에도 스벅에 들러 아메리카노 마시고 토스트도 먹었습니다. 토스트 속에 치즈랑 계란이랑 베이컨이 잔뜩 들어있어서 맛있어요 ㅜㅜ


그런데 비연님, 단발머리님 제2의성 완독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비연 2019-12-12 16:23   좋아요 0 | URL
으악. 으악. 완독하셨다구요? ㅡㅡ;;;;;;
전 아직입니다. 일더미에 쌓여 잠시 접어두고 있었지요.
(회사는 제게 정말 돈 이외에는 주는 게 없네요. 흠. 돈이 크겠지만ㅜ)
이러다가 제... 오만원이.. 불쑥 나가버리는 건가요?
다시금 정비하여 다음주까지 다 읽어버리겠습니다. 불끈!

비연 2019-12-12 16:23   좋아요 0 | URL
그리고 .... 자꾸 생각나는 술은... 먹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플랭크는.. 내일 두배로.

다락방 2019-12-13 08:11   좋아요 1 | URL
ㅎㅎ 비연님의 제2의성 화이팅입니다! 빠샤!!

저는 어제 술을 참고 플랭크를 하였습니다. 음화화핫.

단발머리 2019-12-18 09:06   좋아요 0 | URL
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예정보다 한 달이 늦었는데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 그 책이 <제2의 성>이기 때문이죠!

비연님 얼른 일 마무리 하시고 완독하시길 기원합니다!!

다락방 2019-12-18 09:08   좋아요 0 | URL
비연님, 시간이 자꾸 흐르고 있습니다. 벌써 12월 18일 이라고요..... 3=3=3=3=3=3=3=3=3=3=3

- 2019-12-13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이끼.....ㅋㅋㅋ 솥뚜껑으로 뚝배기 깨고 싶은 일화네욬ㅋㅋㅋㅋㅋ
그리고 맥켄지... 맥켄지여 ㅠㅠㅠ(잠시 바빠 잊엇다)

다락방 2019-12-15 12:01   좋아요 0 | URL
저는 한순간도 맥켄지를 잊어본 적 없습니다. 이것은 찐사랑 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맥켄지 너무 아까워요. ㅠㅠ

솥에 이끼 끼게 두는 남자라니, 왜 사는 걸까요? 아 너무 싫어요 진짜 ㅋㅋㅋㅋㅋ

clavis 2019-12-1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적인 순간에 나를 구출하는 존재..인간.. 요즘 레포트를 쓰고 있는데(영어ㅠ)그래서 이런 문장을 보면 한국어만 더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다락방 2019-12-17 14:18   좋아요 1 | URL
그러합니다, 클래비스님.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도 구렁텅이로 밀어떨어뜨리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런 인간을 끌어 올리는 것도 인간인 것입니다. 영어 레포트라니, 으으 듣기만 해도 너무나 힘들지만, 화이팅이요 ㅠㅠ
 

















며칠전에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상적 대화에서는 혐오표현임에 분명한 대화들이 섹스 중에 오고간다면, 그것은 그저 연인들 사이의 더티토크가 되는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의 혐오표현이 침대에서는 혐오가 아닌 것이 되는걸까. 혹은 혐오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 내밀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그것을 말하기를 허락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혐오인데 참고 있는 것일까, 분위기 깨기 싫어서?


나는 섹스중에 사실 그다지 어떤 험한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혐오 표현이라고 하면 섹스중에 어떤게 오고갈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것이 혐오인가 아닌가, 혐오이나 허용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게서 나오는 답이 진리일 수도 참일 수도 없겠지만, 친구가 묻는 말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는 거다. 그러나, 행위에 대해서라면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행위에 대해서라면 나는 요즘 매우 생각이 많았다. 요즘 포르노에 대해, 음란 영상물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이건 계속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는데, 시작은 DSO 계정의 음란물 신고 트윗 덕분이었다. 다른 SNS 를 잘 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트윗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음란물들이 아주 많이 올라온다. 아예 성을 매매하는 계정에서부터 오프라인에서 만나 섹스를 하자는 계정까지 수두룩하고, 지인들의 사진으로 음란사진에 합성해주겠다는 것, 그리고 성관계 영상까지. 신고를 하면서 알게됐는데, 거기에 올라오는 성관계 영상은 소위 내가 알아온, 내가 경험해온 성관계 영상이 아니었다. 가학적인건 물론이고 불쾌함을 넘어 폭력적이고 수치스러웠으며 혐오스러웠다.



나는 살면서 포르노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는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감정 없는 육체관계에 대해 통 흥미를 느낄 수 없는게 아닌가, 해서도 그렇고 포르노를 어디서 어떻게 봐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십대 초반에 [터보레이터]를 본 게 전부라 할 수 있는데, 터보레이터의 영상속 내용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터미네이터를 본따 만들었으나, 내용은 확 뒤집어져서, 미래에서 여자를 강간하기 위해 온거다. 그런데 영상 속 여자들이 매우 특이했던 게, 처음엔 강간하러 온 남자들을 보고 놀라지만, 이내 강간을 즐기고 헤어지면서는 다시 오기를 바란다는 거다. 이것이 강간판타지라는 것인가.



강간은 다른 사람의 몸에 성적으로 침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간은 내가 허락하지 않았으나 내 몸에 억지로 밀고 들어옴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라면 사람이 몇살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본능적으로 싫어할 것이며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어떤 여자들은 강간 판타지가 있다'는 말은 매우 갸웃한 것이었다. 그래, 다른 사람의 판타지에 대해서 내가 뭐라할 순 없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왜, 어째서 강간 판타지를? 그리고 내게 '나는 강간판타지가 있어'라고 말한 여자는 한 명도 없었던 반면, '강간 판타지 있는 여자들이 있다'고 말하는 건 왜 모두 남자였을까. 여자들은 스스로 강간판타지가 있다는 것을 남자가 아니면 말하기 두려워서였을까.


나는 최근 DSO 계정에서 같이 신고해달라고 음란 계정들을 올리면 그것을 부지런히 신고하고 있다. SNS특성상 성인 인증 없이도 가입이 가능하고 거기엔 초등학생도 그리고 고등학생도 모두 가입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영상들을 맞닥뜨릴 수 있다. 내가 본 영상들은 무척 충격적이었고 그걸 보면 성인의 영혼도 온전치 못할 것 같았다.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보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무엇보다 미성년자들이 이런 식으로 성인 남녀의 나체를 보는 것도, 그리고 성관계를 알게 되는 것도 끔직하게 싫어서(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성인남자의 고추를 보게됐고, 그것을 폭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지런히 신고를 하고있다. 신고를 해도 박멸할 순 없고 계속 생겨나지만 그래도 끝까지 따라가 신고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신고하고 있다.


신고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몇 개의 영상쯤은 보게 된다. 동물들과 관계하는 변태적인 성행위도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여자를 피멍들게 때리는 영상들을 보았고, 여자 얼굴에 정액을 쏟아붓는 것도 보았다. 아주 많은 영상들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고추를 물고 있었다(더러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침을 뱉거나 오줌을 싸거나 하는 것들도 있었고, 입 안에 정액을 쏟아붓는 것도 있었다. 더 쓰는 건 이 페이퍼 자체를 음란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만하겠지만, 나는 그걸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영상 속에서 여자들이 설사 즐기는 것 같은 표정과 신음소리를 보인다해도, 내게 그것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모든 행위들에 있어서 나는 너무 소름끼치고 수치스러워서 '여자들아 그런 거 하지마' 하고 간절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나는, 그 영상들의 모든 행동들에 있어서 백프로 자유로운가?



아니었다. 나도 그 안에 어떤 행위들이 내 것이었던 적들이 분명히 있었다. 어떤 것들은 상대가 좋아하기 때문에 억지로 참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그렇게 참을 필요 없이 가능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분명 저 영상들을 보며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봤을 때 그것은 분명한 폭력이었다. 애시당초 그들의 자세 자체가 달랐으니까. 그렇다면 외부에서 보기에 폭력이지만, 그것이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외부에서 보면 폭력인 것이 내 것이 되는 순간 괜찮아지는 것이 되는 것일까? 외부에서 봤을 때 폭력이지만 우리 둘 사랑하는 사이, 연인사이에서는 허용되는 것이야, 너 좋고 나 좋고 우리 둘다 좋으니 이것은 섹스야, 가 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어느 순간 그것들 중 일부를 즐겼다는 사실을 놓고 보았을 때, 내 허용치는 그만큼이지만 저들 혹은 다른이들은 나보다 허용치가 더 넓다고 판단하면 그뿐인걸까.



우선 나는 그 영상들을 보고 매우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아프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찍고 그리고 즐겨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 건강할 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상이, 남자와 여자가 어떤식으로든 성관계를 맺고 있는 영상이, 내게는 분명 끔찍하게 느껴졌다. 정말 싫다, 는 감정을 갖게 했다. 이런 영상 싫다, 이런 행위가 싫다, 는 생각을 갖게 한거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다른 성에게는 이것이 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안다. 그 지점에서 나는 심한 괴리감을 느꼈다. 같은 영상을 보고 어느 한쪽은 아 싫어, 괴로워, 고통스러워를 느끼는데 어느 한 쪽은 네 얼굴로 내 정액을 받아줬으면 해, 같은 욕망을 느낀다는 게, 따라하고 싶어한다는 게 정말이지 처절하리만큼 괴로웠다. 이걸, 이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왜그럴까. 이게 어째서 가능할까, 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여자들은 이 영상이 끔찍하고 남자들은 영상속의 남자처럼 하고 싶은 건 왜그럴까.

그건 아마도 굴복하고, 무릎꿇고, 더러운 걸 몸에 받는 쪽이 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은 힘을 쓰고, 핥는 걸 느끼고, 배설하는 쪽이고. 남자들이 영상속에서 고통스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말과 행동이 남자들에게는 없었다. 고통스럽지 않으면서 쾌락과 배설이 따라온다면, 게다가 자신의 힘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 영상은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왜 여자인 나는 고통스럽고 왜 남자인 너는 흥분하는가.



당신이 받은 폭력은 그 남자에게 흥분이고, 당신이 받은 고문은 그 남자에게는 쾌감이다. 당신을 보는 것은 이제 그 남자에게는 마스터베이션 거리가 된다. (p.24)



다시 강간판타지 얘기로 돌아가면,

나는 강간판타지를 가진 어떤 여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부터 본인의 판타지였을까?

그러니까 만약 세상에 포르노가 없었다면, 강간하는 영상들이 없었다면, 그걸 찍고 보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저 스스로 '내 몸이 침범당하길 원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섹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했던 섹스들도, 내가 '내 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나는 이건 별로지만 네가 좋아하니까' 참았던 것들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이 아닌' 것이 될까.

나는 우리에게 포르노가 준 수치가, 포르노가 공급한 폭력이 내재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이러는 게 섹스에서는 응당 당연하다는 것이, 이것이 은밀한 관계가 가진 '특권'이라는 것이 내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버린 거란 생각을 하게된 거다. 만약 내가 그런 영상들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그런 영상을 찍고 보는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내 섹스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었을 것들은 과연 몇 개나 될까. 게다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수치스럽지 않았나. 수치스러움을 참지 않았나. 어떤 요구들에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하는 마음에 '싫어, 그건 하지마' 라고 요구할 순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이정도 까지는 그래도 할 수 있지' 로 폭력을 내재화하지 않았나. 포르노를 보고 남자들은 폭력을 자신의 것처럼 만들고, 여자들 역시 그것을 자기 안에 쌓아버린 것 같다. 나는 포르노를 보지 않는 사람이고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포르노 보기를 꺼려할 것이다. 물론, 보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포르노를 보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라도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정도를 어느 틈에 알고 있잖아.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채로 시작하는 섹스가, 과연 평등한 관계에서 오는 섹스일까?

섹스에서, 네가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평등한가? 평등했나?

단순히 어떤 자세를 취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시작과 끝의 순간들에, 나는 폭력을 내재화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 '그러지마' 하게되는 것들을 나는 하고 있었나. '내가' 하면 괜찮은 게 되는건가.

나는 수치스럽지 않았나.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수치심을 배우며 이 수치심을 성적 허세로 가리는 법을 익힌다. (p.28)






이 책 《포르노에 도전한다》의 원제는 《only words》이다. '단지 말' 이라는 제목인건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얼마나 적절한 가져옴인지, 그러니까 국내에서 '포르노에 도전한다'는 제목을 이끌어올 이 책이 왜 '단지 말'이란 제목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어휴, 따먹고 싶게 생겼네' 라는 말을 내가 들었을 때, 그는 나를 '아직' '따먹지'는 않았으나, 그런 욕망을 가짐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하며, 언제든지 저 남자가 그 말을 실행하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저 표현'인건가? 그저 말만 한건데 뭐 어때, 하며 웃을 수 있는가? 저 '말' 자체에 성적 희롱이 담겨있다. 그것이 그저 말뿐인가.

맥키넌은 이 책 only words 를 통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백인 전용'이라는 간판은 '유대인 사절'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차별행위로 간주된다. 인종 격리는 "나가!" "당신은 여기 못 들어오게 되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어날 수가 없다. 상대를 높이는 것이나 깎아내리는 것이나 모두 의미 있는 기호나 의사 전달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p.36)



인종적으로도 성적으로도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서, '평등'은 '단지 말'에 불과하고, 그러나 차별적 '표현'은 그저 말뿐인 게 아니다. 그것은 행위에 다름아니다. 폭력적 말은 폭력적 행위다. 포르노에서 강간이 벌어지고 정액을 쏟아낼 때, 그 안에는 강간을 당하고 정액을 받고 있는 행위가 있다.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로 변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르노 안의 행위들은 게다가 실생활에서도 행위로 이어진다. 그게 맥키넌이 '반포르노'를 주장하는 이유이고, 내가 그녀의 책을 읽는 이유이다.





캐나다는 이미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그러한 견해를 거부했다. - P10

이 책은 사람들에게 표현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해악의 실상, 즉 표현이라는 것이 여성과 어린이에게, 피억압 집단을 위한 평등의 가능성에, 특히 여성들의 인권에 무슨 짓을 하는지를 바로 볼 수 있게 하려는 시도이다. - P11

상당수의 포르노가 인종적·민족적 적대감을 섹스와 연결시킨다. 또 포르노는 공격행위를 쾌락으로 제시함으로써 힘없는 자에 대한 폭력에 대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 P17

전쟁중에는 세르비아 파시스트 군인들이 이슬람 여성과 크로아티아 여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하기 위해 수용소에 감금했다. 이런 강간·살해 캠프에는 포르노가 판을 치고 있었다. 그 캠프들에 있었던 여성들에 따르면, 군인들은 포르노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행위를 자신들에게 그대로 실행했다고 한다. 또 그녀들에게 자행된 성적 잔학행위가 그대로 포르노르 만들어지고 있다고도 보고된다. - P17

포르노는 뿌리 싶은 성적 부속물을 만들어내는데, 여성 혐오가 바로 그것이다. 그 여성 혐오는 다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르노 옹호를 추진하고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 P18

이렇게 수천 년 침묵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카메라가 발명되고,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카메라에 담겨지게 된다. 당신이 고통받는 동안 그 고통의 리듬에 맞춰 셔터 누르는 소리나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그 영상물들이 다른 어딘선가 매매되고, 사람들에게 돌려가며 보여지거나 서랍 속에 감춰져 있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그 영상물 속에, 당신이 겪었던 일들은 영원히 남게 된다. 남자들이 그것들을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 또 누구나 그 속에 담긴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남자가 당신을 포르노 제작에 사용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은 그 영상물들을 통해 늘 다시 행해지고 되살아나며 또 느껴지고 있다. 당신이 받은 폭력은 그 남자에게 흥분이고, 당신이 받은 고문은 그 남자에게는 쾌감이다. 당신을 보는 것은 이제 그 남자에게는 마스터베이션 거리가 된다. - P24

당신에게 표현이란 마치 영화를 향해 소리지르는 것과 같다. "누구든 저 남자 좀 말려요!" 하고 소리쳐도 관객들은 아무 소리도 못들은 듯이 행동한다. 꼼짝도 하지 않고 영화를 보거나 당신에게 방해받았다는 듯이 자세를 살짝 고쳐 앉는다. 영화 속 장면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된다. 당신이 지른 소리의 여운이 귓속에서 사라지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하기나 했는지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당신 자신의 경험은 마치 당신 눈에는 보이나 멈출 수 없는 영화처럼 더이상 당신에게 현실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이렇게 현실의 삶이 예술을 모사模寫한다. 당신의 현실은 포르노 대본이 그리는 대로 규정된다.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수치심을 배우며 이 수치심을 성적 허세로 가리는 법을 익힌다. 또 성적 무능과 이 성적 무능을 매력으로 만드는 법을 배운다. - P27

성의 은밀함을 배우고, 아는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말하지 않는 습관을 익힌다. 이런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당신은 자기 몸을 빠져 나와 대신 다른 사람을 가장하는 법을 배운다. 당신은 애교가 넘치고 고분고분하며 곧잘 남을 흉내내는 아주 수동적이고 말이 없는 자아를 개발해낸다. 한마디로 말해 당신은 여성다움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 P28

미국 여성의 38%가 소녀시절 성추행을 당한다. 우리 여성 중에 24%가 결혼생활에서 남편에게 강간을 당한다. 우리 중에 거의 절반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강간 피해자가 되거나 강간당할 뻔한다. 많은 수가 두 번 이상 이런 경험을 겪고, 특히 유색인 여성이 심하다. 또 많은 여성이 여러 남자들한테, 그것도 대개 아는 남자들한테 당한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85%가 사용자들한테 성적 괴롭힘을 당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의사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섹스를 위해 매매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언제든지, 심지어 불황 속에서도 항상 돈 주고 성을 산다는 것이다. - P29

포르노를 옹호하는 것은 표현으로서의 성적 학대를 옹호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또 동시에 포르노 및 포르노 옹호가 여성들로부터 표현, 특히 성적 학대에 대항하는 표현을 박탈해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강요된 침묵과 우리를 둘러싼 포르노 논쟁의 소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성들은 강요된 침묵 속에서, 여성들을 속박하는 굴레(이것에는 성적 특징이 주어지기 때문에)를 마치 스스로 좋아서 택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한편, 포르노 논쟁은 헌법의 보호 아래 활보하며 제대로 된 담론으로 (심지어 여성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통용되는 검열의 정의는 힘없는 사람들의 표현을 막는 정부의 행위라는 것에서, 국가권력의 배후에 숨어 힘없는 사람들을 침묵시키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폭력이라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 P31

수정헌법 제1조(譯註:1789년에 만들어지고 1791년에 효력 발생. "미합중국 의회는 특정종교를 옹호하거나 자유로운 종교행위를 금지하거나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또는 평온하게 집회하고 피해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 청원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가 이러한 생각과 감정의 교환 과정을 보장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포르노에서 일어나는 일은 마음 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일어난다.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 두어야 하는 것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에게 섹스를 강요하고, 공갈협박하고, 압력을 넣고, 속이고 꾀는 것은 포르노에 들어 있는 사상이 아니라 포르노 산업이라는 것이다. 포르노에서 여성들은 윤간 장면을 찍기 위해 윤간당한다. 여성들은 윤간이라는 생각에 의해서 윤간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섹스 영화를 만들려고 여성을 폭행하고, 성기를 삽입하고, 사지를 묶어 재갈을 물리고, 옷을 벗기고, 음부를 벌려 래커와 물을 뿌리는 것은 포르노 때문이지 거기에 담긴 사상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포르노를 위해 섹스 영화를 만들려고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것이지 섹스살인의 사상이 그녀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포르노가 표현하는 사상을 사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포르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짓들이 필수적이다. - P38

마찬가지로 포르노의 최종 소비단계를 보면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은 포르노에 들어 있는 사상이 아니라 남자들이다. 포르노를 보고 만들어진 남성, 포르노를 보고 바뀐 남성, 포르노를 보고 충동을 느낀 남성들이 여성을 공격한다. 포르노가 시렁에서 뛰어내려 여성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론상으로 여성들은 포르노가 가득 들어찬 창고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그래도 포르노는 껍데기 안에 조용히 들어 있다. 문제는 포르노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이 저질러지느냐, 포르노를 사용하면 무슨 일이 발생하느냐 하는 것이다. - P39

포르노 소비자들은 어떻게든 그 포르노를 3차원의 세계에서 실행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조만간 어떻게든 그렇게 한다. 포르노는 그들에게 욕구를 일으킨다. 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그 행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낄 때, 그들은 실행한다. 그들은 매일매일의 생활로부터 흥분을 느껴 항상 성기가 발기돼 있을 수 있도록 이 세상을 포르노 천지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택한 활동 영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포르노 소비자로서의 교사들은 여학생 제자들을 자신과 잠재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고 무의식중에 강간범의 입장에서 강간에 대해 가르칠 가능성이 있다. 의사들은 마취 상태의 여자들에게 성적 가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고, 분만 장면을 구경하거나 고통을 주면서 즐길 가능성이 있다. 또 의대에서 성교육을 하면서 포르노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 P43

화장실 벽에 낙서나 하는 수준의 포르노 소비자들도 있지만, 사법적 의견을 쓰는 보시자들도 분명히 있다.
아마도 포르노 소비자들 중에는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상원 법사위원회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전화를 받는 경찰관도 있을 것이고,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 기사를 편집하는 사람ㅗ 있을 것이고, 일반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포르노 소비자들 중에는 자기 처나 딸, 환자나 제자, 또는 매춘부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면서 거기 나오는 대로 시키는 사람도 있다. 또 그들 중에는 자기 종업원과 환자를 성적으로 괴롭히고, 자기 딸을 성추행하고, 자기 처를 구타하고, 매음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마다 포르노가 옆에 있고 그런 행위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친목회에서 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성들을 집단 강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때 그들은 포르노를 높이 쳐들고 큰 소리로 읽으면서 그대로 흉내 낸다. - P43

이들 중에 어떤 자들은 연쇄 강간범이 되거나 연쇄 강간살인범이 된다. 이런 행위들에서는 때로 포르노 사용과 제작과의 경계가 애매하다. - P43

그렇다고 해서 모든 포르노가 학대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일부 포르노가 강제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들어 모든 포르노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모든 포르노는 성의 불평등 상황하에서 만들어진다. 거기 사용되는 사람들은 거의가 어렸을 때 성적으로 학대받은 가난하고, 절망에 빠져 있고, 가정이 없는, 팔려 온 여성들이다. 포르노 산업은 이런 상황을 악용하면서 이윤을 착취한다. 또 포르노 산업은 이윤을 낵 위해 이런 상황을 유지시킨다. 이런 상황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선택을 강요한다. 노골적인 폭력이 들어 있지 않은 포르노의 경우조차도 여자들에게 그 장면을 연기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 P45

안드레아 드워킨과 나는 포르노를 ‘영상물과 말을 통해 여성을 복종시키는 생생한 성적 묘사물‘로 정의하는 ‘반反포르노법‘을 제안한 바 있다. - P48

포르노는 단순히 경험을 표현하거나 해석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대체한다. 메시지를 현실에서 가져오는 것을 넘어, 포르노는 현실의 자리에 대신 들어서서 실존적으로 거기 존재한다. - P51

포르노는 여자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여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내고, 여자에게 해서 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시각에서 ‘여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혹은 ‘여자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여자를 다루는 남자는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사회적 현실을 구축함으로써 그 제작과 사용 과정을 통해 세상을 온통 포르노 천지로 만든다.
사회가 포르노로 넘쳐나게 되면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이 바뀌고, 포르노 내에서의 표현 문제라는 관점에서 섹스 자체의 본질이 바뀐다. - P51

포르노에 나오는 여자들은 실제로 즐기는 것이고 강간은 시뮬레이션 기법이라는 주장은 하면서 왜 그 반대의 경우, 즉 여자들의 쾌감은 시뮬레이션 기법이고 강간은 실제라는 주장은 안 하는지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답은 소비자가 쾌감을 느끼려면 시나리오가 남자의 강간에 대한 환상, 자신은 여자를 학대하고 여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환상에 부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돈을 주고 처음에는 저항하는 것처럼 하다가 결국 굴복하도록 시킨다고 해서 그 섹스가 서로 교감하는 섹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포르노를 매춘의 수단으로 만든다. 그 섹스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돈이 강제력의 매개체가 되고 동의同意의 외양을 제공한다. - P55

섹스를 하면서 보는 것도 나중에 사진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사진들은 전리품이며, 사진을 보면서 성적 만족을 느낀다. 나체춤을 에로티시즘의 ‘연출‘인가 아니면 에로티시즘 그 자체, 즉 하나의 섹스행위인가? 라이브 섹스 쇼는 어떻게 다른가? 영화에서 실제로 행해진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과, 영화에 나오는 집단강간을 흉내내는 실제의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 또는 실제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 사이에는 남자들이 성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놓고 볼 때 아무런 차이가 없다. - P56

미국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은 지배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종속된 집단에 대해 사실상 무엇이든 말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동시에 힘있는 개인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핑계로 삼아 힘없는 사람들이 표현수단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매체의 권한을 뒷받침하는 효과만 낳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피해를 입는 쪽은 종속된 집단이며, 자신들을 나쁘게 보이도록 하는 진술은 사실이더라도 제소하겠다고 확실한 위협을 할 수 있는 쪽은 대부분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 P119

영상물을 갖고 생각해 보자. 포르노를 금지하는 현행법은 우선 포르노가 여성들에게 해악을 준다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런데 포르노가 퍼지면서 새로운 시장(예를 들면, 비디오나 컴퓨터)과 합법적인 장으로 영역을 넓혀가서는 여성에 대한 학대가 점점 더 학대로 보이지 안게 되자, 즉 여성에 대한 학대가 점점 더 섹스로 보이게 되자 현행법은 더욱 약화된다. 그래서 법원은 무엇이 포르노이고 무엇이 포르노가 아닌지를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 P131

성인 여성들을 사용한 포르노에 관한 법의 역사에 비춰 보면 아동 포르노의 경우는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동 포르노는 성취향이 다른 소수파의 표현(실제로 그렇더라도)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이들이 어린이와 섹스에 관한 ‘사상‘을 주장하는 것(실제로 그렇더라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아마도 심의를 받는 영화에 사용된 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런 결론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동 포르노가 유해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순전히 어린이들과 성인들 사이에 권력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 터인데, 여전히 그런 불평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 P133

이러한 표현과 평등 문제의 맥락 속에서 다시 한번 나와 안드레아 드워킨이 성안했고 인디애나폴리스시에서 통과시킨 반포르노 조례에 대한 사법적 의견을 살펴 보자. 이 조례에서는 포르노가 행하는 해악들을 정리해서 평등권에 대한 침해로 정의하고, 그런 해악들을 차별행위로 간주하여 소추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조례에서는 포르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의 학대에서 차지한 포르노의 역할을 입증하고, 박탈된 자신들의 민권을 회복하고, 포르노를 중지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는 이것이 사상에 대한 검열로 간주되고 있다. - P133

평등이 단지 말에 불과한 게 아니라 현실인 사회에서는 인종족 또는 성적 공격과 모욕의 말들은 의미 없는 소리가 될 것이다. 사람과 물건 사이의 섹스, 인간과 종이조각 사이의 섹스, 현실세계의 남자와 비현실세계이ㅡ 여자 사이의 섹스는 성적 흥분을 깨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학대의 골동품들은 박물관의 공룡 뼈 옆에 있는 유리상자 속에나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침묵의 상황이 그 뒤에 숨어 있는 자들에게 하나의 권력 행위이고 침묵 속에 침잠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강요된 무권력의 경험이지만, 그 날이 오면 침묵의 상황은 권력행위도 아닐 것이요 강요된 무권력의 경험도 아닐 것이다. 그 날의 침묵은 생각을 넓힐 수 있는 휴식이 될 것이고, 표현에 모양을 지어주는 매력이 될 것이며, 새로운 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 P155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인권운동가들과 여성운동가들은 콤스톡의 후예가 등장했다며 긴장했다. 그러나 제2의 콤스톡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수호하려는 남성이 아니라 포르노는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이에 대한 제재가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캐서린 맥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이었다. 변호사인 맥키넌과 작가인 드워킨은 포르노가 미국 사회의 여성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장려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평등권이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포르노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포르노의 규제를 주장한 사람들은 성도덕과 윤리적 차원이나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그릇된 영향 등을 고려애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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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2-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쓰고 났더니 오늘치 에너지 다 소진되어버렸다..

단발머리 2019-12-10 12:33   좋아요 1 | URL
인용해주신 글들은 아직 다 못 읽고, 본문만 읽었어요.
읽기에도 힘든 글을 이렇게 정리하고 완성해 낸 그대에게 휴식 시간을 드리고 싶네요.
포르노에 관심이 없는데도 우리는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하네요 ㅠㅠ

다락방 2019-12-10 12:44   좋아요 1 | URL
힘들긴 하지만 너무 좋은 독서였어요. 어서 빨리 드워킨 책도 읽고 싶어요. 드워킨 책중에 <MERCY>란 원제를 가진 [신에게는 딸이 없다]라는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은데 역시나 절판이고요 ㅎㅎ 출판사들이 분발해줘야 할텐데 말입니다.

[21세기에 지켜야 할 자존심] 보면 정희진 쌤이 앎은 고통을 수반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알아가는 과정 역시 그러하리라고 생각해요.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편이 나았을까, 생각해보면 또 그건 그게 아니니까요.

열심히 읽을거에요, 단발머리님. 열심히 읽고 쓸거에요. 그래도 일단 오늘은 치킨 좀 먹어야겠어요 ㅎㅎ

잠자냥 2019-12-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킨 먹을 만한 페이퍼네요. 두 마리 드셔도 될 거 같은데요. ㅎㅎ

전 여태까지 살면서 포르노 본 적 진짜 없는데, 이걸 또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고는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ㅠ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포르노 권장하는 사회도 참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휴... 글에서 묘사된 부분만 읽어도 끔찍한데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니 세상 참....

암튼 치킨 많이 드세요. (참, 근데 발은 꼭 씻고 드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10 17: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치킨 허락 받았다. 만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르노를 어떻게 보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남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보는걸까요? 포르노를 보는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봐요. 그게 그 위디스크.. 그런 데서 보는걸까요? 예전에 고등학생 때 목사 딸과... [동물적 본능]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아마도 포르노 보다는 에로 영화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자꾸만 야한 거 보자고 저를 불렀는데, 저는 매번 갈 순 없었어요. 그렇지만 포르노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알음알음으로 남자들끼리는 수단이 있는가 봅니다.

사실 포르노 본 여자들은 드물지 않나요? [터보레이터]도 같이 비디오방에서 보던 친구가 보다말고 토할 것 같다고 나가자고 해서 중간에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토할 것 같아서 못보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해보고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다니, 정말 괴이하지요?

아무튼 저는 퇴근을 하면 빨래를 돌리면서 치킨을 먹겠습니다.

발 씻고.. 꼭 씻고요...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