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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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기다림'이란 화두에 끌린다. 길고 긴 기다림과 목적지에 닿겠다는 그 마음은 언제나 나를 건드린다. 그런 면에서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좋았다. SF 라는 장르를 빌어서도 충분히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준 <관내분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작가의 글이었다. 그 따뜻함은 최은영의 소설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특별할 게 없다. 앞에서부터 내리 세 편의 단편을 읽노라니 모두 주는 느낌이 비슷해, 아 다른 단편 역시 그러하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단편들을 모아둔 이 단편집 한 권의 분위기는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문목하' 작가도 동시에 떠올렸는데, 내게는 김초엽 보다는 문목하, 로 정리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북마크를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 문장면에서는 인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말.



어찌되었든 나는 SF 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국내 여자 작가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문목하,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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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9-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딱 다락방님이 느낀 거의 그대로여서 중반까지 읽고 덮어둔 상태입니다. 큰 재미를 못 본지라 이 책에 대한 다수의 열광이 살짝 갸우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sf 를 몰라서 그른가 싶기도 하고 그랬음요.

다락방 2019-12-08 19:55   좋아요 0 | URL
sf를 모르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진행,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중에 책 읽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의 감상도 저랑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저도 좀 갸우뚱 했습니다. 치니님은 중간에 덮으셨네요. ㅎㅎ 관내분실은 읽으세요 치니님. 그건 좋아요!

blanca 2020-01-2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지금 이 책 이북 결제 직전인데 읽을까요, 말까요. 냉정하게 얘기해 주세요.

다락방 2020-01-20 17:32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은 읽으셔도 좋을겁니다. 아마 근사한 리뷰를 써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랑 다르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우리 모두는 대화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각자 어떤 대화냐는 다르겠지만, 아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친밀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나의 경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에너지를 듬뿍 받는 타입이다. 앞으로의 일상을 유지하게 해줄 힘이 된달까. 사랑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며 사랑이 언제나 답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랑 없이도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랑을 주고 또 받는다는 확신에서 오는 충족감은 그 자체로 고유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은 많은 경우에 대화로 가능해진다.


슬퍼하거나 짜증날 때 유독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내 안에 사랑과 욕망이 가득찼을 때, 기쁨과 환희가 가득찼을 때 그걸 털어놓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내가 얼마나 사랑을 하는지 그리고 사랑을 받는지, 내가 얼마나 지금 기쁜지 얼마나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진다.


며칠전 읽었던 책으로 리뷰도 썼지만, 공부뽕 가득 찬 것에 대해서도 마구 수다를 떨고 싶다. 그 날 당장 친구와 문자메세지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직 나는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더 하고 싶다. 저자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했는지에 대해서 조잘조잘 얘기하고 싶다. 아직 그 공부뽕에 대해서도 다 얘기하지 못해 뭔가 가슴 속에 쌓여있는데, 그런데 또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다. 'E. M. 포스터'의 《모리스》를 읽고 그런게 생겨버렸다.


상대의 눈을 보고 묻고 싶은데, 너라면 어떨것 같아 묻고 또 그 답을 듣고 싶은데, 한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모리스에 나를 대입해 이야기나눠보고 싶은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나는 욕구불만이다. 자, 글로라도 쓰도록 하자.



















모리스는 대학에 다니며 클라이브랑 사랑을 하게된다. 남자와 남자이니 동성애다. 그들은 3년간 사랑을 나눈다. 그들에게 생애 처음 사랑이었고 또 그들은 서로에게 반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클라이브의 태도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모리스는 예전처럼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클라이브는 묘하게 달라졌어. 그러더니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가 싫어져서' 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정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자를 사랑했던 그는, 이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다. 동성애는 감춰야하고 병이고 죄악이었던 그 당시에 클라이브는 자신이 이제 '정상'이, 무려 '정상'이 되었다고 하는 거다. 그러면서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하는 거다.



이것은 모리스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나랑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성(SEX)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하니, 대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앞으로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여태 이성애를 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가족이 아닌 타인은 '남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와 연애하던 시절 나를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고 이성(SEX)적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연애를 했다. 우리는 그 시절 많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나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내 사랑을 줬고 열정을 줬다. 시간과 에너지도 줬다. 우리가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나와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어느날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 이제 더이상 너랑 연애를 할 수 없어, 나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어." 라고 한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걸까. 나는 어쩌지? 다른 성(SEX)을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나에게로 돌아와'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먹힐까? 아예 성적 취향이 바뀌어버린건데, 그런 사람에게 나에게 돌아와, 우린 다시 사랑해야해, 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클라이브는 이제 '정상'이 되어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리스와의 사랑도 끝나버렸다고. 그러나 모리스에게 이 얘기는 갑작스럽고 모리스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 사랑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너는 이미 정리가 되었고 다른 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당연히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클라이브가 여자랑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을 때조차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다. 그 기대는 그렇게나 오래 간다. 그러나 클라이브에게 동성애는 이제 역겨운 것이 되어있고, 모리스가 어서 빨리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축복받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클라이브와 모리스는 가장 가까운 사이었다가 이제 그 누구보다 멀어진 사이가 된다.


그러나 클라이브가 모리스를 사랑했던 시절, 그 강렬한 우정은 진짜였으므로,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다시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 그렇게 되어야지. 그러나 모리스의 동성애를 고쳐야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리스의 사랑, 모리스의 성적 취향은 고쳐질 수 없는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선천적인 것이었다. 그런 모리스 안에는 다른 남성을 향한 욕망이 들끓어 오른다. 플라토닉 한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사랑을 갈망한다. 그는 그 모든 걸 나눌 애인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치료도 받으려 해보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모리스가 되어, 나에게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나의 이성애인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나는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나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성적 취향이 바뀌었다면,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돌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만약 다른 여자가 생긴 거라면, 다른 사랑을 하는 거라면, 기다릴 수 있다. 어쩌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라도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쯤은 있는 거니까. 동백이 엄마는 용식이에게 '기다리면 안와, 기다리는 사람은 쳐들어오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어쩌면, 조금쯤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그가 좋아하는 성별에 내가 속하니까.

그러나 그가 동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나의 기다림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나는 거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가 이성애를 하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다시 이성애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만약 그가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나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이 끝나버렸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친구로 남는 방법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모리스는 클라이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관계는 나와 그의 관계와 다르고, 나는 모리스가 아니다. 나는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그의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내 안에 애정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소식을 전하며 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을 접고, 연인의 포지션은 세이 굿바이 해야겠지만, 친구의 포지션으로 새롭게 헬로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잡아도 소용이 없잖아. 그러면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라는 포지션을 내 안에 되새기면서.



"그러면 우리 좋은 일 있으면 알려주는 사이가 되자."

"그래."

"음, 나쁜일도 알려주자, 그냥 일어나는 일 모두 다."

"그게 사귀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러면 30프로만 이야기하자."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오래오래 친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동성애인을 질투하게 될까? 모르겠다.




모리스는 스물네살이다. 새로운 애인을 만났다. 모리스는 젊다. 나는 모리스가 참 젊구나, 생각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그는 이미 성숙한 어른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내가 보는 모리스는 젊다. 계급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우리 함께하자, 라고 말할 수 있는 데에서는 아, 나는 그가 한없이 젊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답이었을지도 몰라. 현실감각 없이 무조건 사랑하니까 우린 함께하자, 라는 것이 궁극적 답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어야 했을까?



나는 아무 상관 없어. 누구라도 만날 거고, 어떤 일도 피하지 않을 거야. 의심하려면 의심하라고 해. 그런 건 이제 지겨워. 형한테 표를 취소해 달라고 해. 비용은 내가 댈 테니. 그게 바로 우리가 자유를 얻는 출발점이 되는 거야. 그리고 나서 다음 일로 넘어가는 거지. 모험이지만 이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은 없어.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잖아. (p.329)



그러게.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런데도 그런 선택들을 하고 결국은 이렇게 사는 것이, 내게 최선이었을까? 나는 잘하고 있는걸까? 나는 최선을 선택한걸까? 이게 맞는건가? 이게 나한테 더 나은건가?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모리스와 그의 애인에게는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 그러니까 모리스가 '그가 어디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 약속을 한 것도 아니지만, '어딜가야 그를 볼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그가 있는 장소, 그가 있고자 하는 장소, 그에게 그곳에서 만나자, 했던 바로 그 장소, 펜지의 보트하우스.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펜지의 보트하우스 같은 장소를 꿈꾸었다. 나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거기에 가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를 만날 수 있는 장소. 그러나 애인과 있었던 시간을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런 장소를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장소가 없었으니까. 올림픽공원의 어느 호수앞 벤치, 이런거 정해뒀으면 좋았을텐데.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으면서, 나는 외로울 때면 항상 여기를 와요, 나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꿈이었어, 나는 모든 생각을 여기에서만 해, 나는 여기에 오면 마음에 안정을 찾아, 여기 이곳을 내가 무척 좋아해, 여기서 저 호수를 바라보면 그곳이 천국인 것 같아, 나는 주로 여기서 시간을 보내, 여기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완벽해, 나는 항상 당신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 나만의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런 곳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에게 그걸 언급한 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를 만나고 싶어질 때, 그러나 대체 어디로 가야 나를 만날지 알 수 없을 때, 아 맞다 거기에 가면 그녀가 있어! 이런거 확신하고 달려올 수 있을텐데. 다다다닥 숨이 차게 뛰어 오면 벤치에 여느때처럼 가만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혹은 책을 읽는 나를 만날 수 있을텐데. 그러면 그는 가쁜 숨을 다독일 수 있을텐데. 헉헉, 숨을 내쉬면서 진정시키고, 여기에 오면 너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여기에 있는 건 변함이 없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텐데. 나는 그에게 여기에 있는 거 알면서 왜 뛰어왔어, 하면서 내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고, 가만 옆에 와 앉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넬텐데. 땀 닦아, 냄새난다...


(응?)



모리스와 애인에게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는 게 너무 부럽다. 너무 부러워.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 나도 갖고 싶어, 펜지의 보트하우스. 그리고 그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도 몰라, 나는. 그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그가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몰라. 아, 자기 방 침대... 그런 거 말고. 나도 그런 거 있어야 되는데, 오고 싶을 때 와서 나 만날 수 있게.


자, 잘들어라.

내가 이제 말해줄게.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를.

어디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는지 말해줄게.

약속없이 나를 만나려면 어디로 와야 하는지 말해줄게.

잘 들어, 두번 말하지 않아. 이 여자가 어디있을까, 어디로 가면 이 여자를 볼 수 있을까, 안타까워 뛰어오고 싶다면, 나는, 바로, 언제나,




회사에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일곱시반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그 시간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회사에 있다!!!!!!!!!!!!!!!!!!!!!!!!!!!!!!!!!!!!!!



내 사무실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초조해하지말고, 어디에 있을까 발 구르지 말고, 안타까워하지말고, 애태우지말고, 그냥,



회사로 와! 내 사무실로 와! 내 회사가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 다!!






어제 집에 가서 바질페스토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오전에 그걸 만들 생각에 들떠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만들었어. 그렇게 상을 차려냈다.





그러나 맛은.. 내가 기대한만큼은 아니었어. 흐음. 나는 내가 만든 파스타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만들어서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파스타 를 안좋아하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거 먹다가 결국 밥을 갖다 먹었는데, 왜냐하면 저 사진만 보면 우아한듯 보이지만, 사실 감춰진 솔직한 사진은 이것이다.





갓김치랑 총각무김치가 있었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술상이여. 저렇게 먹다가 밥 먹고 싶어서 밥 가져와서 먹으면서, 역시 나는 밥과 김치가 좋아. 내가 만든 파스타는 싫어.. 하게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만든 파스타를 나는 싫어해. 으하하하하.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배도 좀 불렀고. 넷플릭스 화면을 열고 뭘 볼까 하다가, <인간중독> 포스터를 보았다.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송승헌의 섹스씬 연기가 매우 구렸다고 기억하고 있고, 영화도 별로였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송승헌에 비해 꽤 열연했다고 기억하는데, 그런데 여자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자 매우 속상해졌다. 한 영화에서 여배우에 대해 기억하는 게 노출이 많고 섹스씬 열연이라니, 이제와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니. 물론 내가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뭔가 배우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다시 오만년만에 인간중독을 재생시켰다. 여전히 송승헌의 섹스신은 엄청 구렸다. 도무지 움직일줄 모르는 남자였다. 저렇게 잘생겨서 연기를 어쩜 저렇게 하냐 싶었다. 여자배우가 확실히 훨씬 더 열심히 연기하는 것 같았다. 여자배우 이름은 '임지연' 이었다. 이 영화 당시에 에로틱하다고 엄청 선전하고 배우의 노출씬으로 얘기도 있었던것 같은데, 그 후에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 그 당시 그녀의 노출이나 에로틱한 장면들로 이슈가 되었을지언정,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 그녀의 일은?





영화를 다시 본 게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니, 임지연은 분명 다른 필모들을 채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본 임지연의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다. 아무것도 안하진 않았을텐데, 분명 뭔가 했을텐데.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해보니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더라. 그러나 그중에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워낙에 한국 영화를 안보고 텔레비젼을 안보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뭔가 하나를 더 보자, 싶었다. 어쩌면 이렇게 볼만한 게 없을까. 내가 좋아할만한 작품이 아무것도 없네.. 그나마 다운로드가 가능한 게 [럭키] 였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 아아, 나에게 내적갈등 찾아온다. 간신도 보기 싫은데 그렇다면 럭키 뿐인가.. 럭키.. 넘나 내 취향 아닌 영화.. 관심이 1도 없는 영화인데, 나는 임지연을 보기 위해 럭키를 보아야 하나. 나여..


넷플릭스에 럭키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있었다. 그래, 넷플로 보자. 임지연님, 님을 보기 위해, 님을 기억하기 위해 저는 럭키를 봅니다. 럭키를 다운로드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좋은 작품을 필모에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말이다 보니 다들 시간이 빠르다, 벌써 12월이다 얘기를 한다. 그만큼 많이 하는 얘기가 아마도 '한 것도 없이 시간만 갔네'일 것이다. 해놓은게 뭐있나, 아무것도 없다, 하는 얘기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무언가를 했을거다. 하다못해 맹렬히 살아오기라도 했잖아.


회사에 입사한지 이제 1년 되어가는 막내가 며칠전에 그랬다. 차장님 벌써 12월이에요, 입사하고나니 시간이 빨라요, 아무것도 한 거 없는데 나이만 먹어요, 하고. 이제 이십대 초반의 막내가 자신이 일년간 한 게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씨가 한 게 왜 없어, 회사에 입사해서 돈 벌고 있고 2개월전부터는 운동도 시작했잖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 두 가지를 올해 시작했는데, 얼마나 대단해."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날까지 살아오면서도 '살면서 한 게 없어'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또 말을 하기도 하고. 이번 해에 나에게는 어떤 뚜렷한 사건도 업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이 시간이 흐른 건 아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무사히 마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가.



일 년간 일상을 보내느라 다들 고생하지 않았나.





오늘 아침엔 집에서 밥을 안먹고 나왔는데 회사 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스벅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굳이 사진 찍어 올린다.







아, 그리고 이 얘기 저 얘기 해서 까먹었을까봐 끝에 다시 쓰는데,



태사자는 집에 있고

나는 회사에 있다.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회사로 오면 된다.

까먹지마.






그는 반듯하게 살기로 했지만, 그건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도 속이지 안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이것이 시금석이었는데-남성에게만 끌리는 마음을 두고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남자를 사랑했고,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남자를 끌어안고 싶었고 자기 존재를 그들과 융합시키기를 열망했다. 이제 자신의 사랑에 응답해 준 남자를 잃어버리고서 그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 P85

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너댓 명가량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물론 그도 클라이브와 마찬가지로 홀어머니에 여자 형제만 둘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둘 사이의 유대감을 설명하기에는 클라이브의 두뇌가 너무 냉철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홀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고, 그건 최소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둘이 다시 만나자마자 그는 솟구치는 감정에 휘말려 친밀한 관계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남자는 부르주아였고 세련미도 없고 어리석었다. 마음을 터놓을 상대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더럼은 집에서 일어난 문제를 그에게 이야기했고, 그가 채프먼을 무시하고 돌려 보낸 일에 정도 이상으로 감격했다. 홀이 장난을 치기 시작하자 클라이브는 매혹되었다. - P99

「모리스, 모리스, 모리스 ……아, 모리스 ……」
「알아.」
「모리스, 사랑해.」
「나도.」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키스했다. 그런 뒤 모리스는 올 때처럼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 P102

그 뒤로 2년 동안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남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누렸다. 그들은 천성이 다정하고 굳건했으며, 클라이브 덕분에 날카로운 분별력도 발휘되었다. 클라이브는 황홀한 감정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향한 길을 낼 수 있음을 알고, 지속적 힘을 가진 관계를 꾸려 냈다. 사랑을 만든 것이 모리스라면, 그것을 보존하고 사랑의 강물로 정원에 물을 댄 것은 클라이브였다. 그는 냉소나 감상 때문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낭비되는 걸 참지 못했다. - P137

클라이브는 요즘 온화한 태도를 잃었다. 모리스가 볼 때 그것이 가장 심각한 증상이었다. 그는 작은 악의가 담긴 말들을 심심찮게 했고, 모리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이용해서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그는 모리스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랬다면 강건한 자의 사랑을 흔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따금 그가 외면적으로 공격을 피하는 듯 보이는 것은 반응을 하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부터 다른 뺨도 내주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면적으로는 아무것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합일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분개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때로 평행을 다리는 대화를 자못 유쾌한 태도로 진행하면서 가끔 클리이브가 곁에 있음을 확인하듯 그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가 뒤따라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홀로 빛을 향해 나아갔다. - P154

「알렉, 너한테 친구가 있는 꿈을 꾼 적이 있니? 오직 <내 친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닌 사람, 너를 도와주고 너도 그를 돕는 사람. 친구.」모리스는 갑자기 감상에 젖어 되뇌었다. 「너의 온 생을 함께하고 너도 그의 온 생을 함께할 사람. 그런데 나는 꿈이 아니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 P278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애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불가피했다. 그런 뒤 눈이 아파 오기 시작했고, 그는 지난 경험으로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았다. 그는 곧 자제력을 찾았다.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선 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했고, 어머니를 달래고 만찬 주최자에게 사과를 하고, 면도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는 평소처럼 출근햇다. 산더미 같은 일이 그를 맞았다. 그의 삶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도 없었다. 클라이브를 만나기 전에 그랬듯이, 그와 헤어진 뒤 그랬듯이, 그는 다시 외로움을 안고 남겨졌고 그것은 이제 영원할 것이다. 그는 실패했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알렉도 실패하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한 사람이었다. 사랑은 실패했다. 사랑은 이따금 기쁨을 가져다주는 감정일 뿐이었다.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P330

그는 지난 6년 동안 피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고 로맨스가 시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렉은 영웅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저 모리스처럼 사회에 파묻힌 한 남자였으며, 그를 위해 바다도 숲도 산들바람도 태양도 찬미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날밤 호텔에 가지 말아야 했다. 그 때문에 너무도 큰 기대를 품게 되었다. 빗속에서 악수만 나누고 헤어져야 했다. - P332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너져선 안 된다. 그는 클라이브 때문에 무수히 무너졌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컴컴해지는 폐허에서 무너진다면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마음을 굳게 먹는 것, 냉정을 유지하는 것, 믿음을 갖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 P339

모리스는 손을 폈다. 빛나는 꽃잎들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그래, 너는 내게 얼마간은 마음을 쓰지.」그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 얼마간에 내 인생 전부를 걸 수는 없어.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앤한테 네 인생을 걸고 있어. 너는 그 관계가 플라토닉한지 어쩐지 하는 건 걱정하지 않고 그저 그게 네 인생 전부를 걸 만큼 중요하다는 것만 알아. 나는 네가 앤과 정치에 쏟고 남는 5분 동안 써주는 마음에 내 인생을 걸 수는 없어. 날 만나는 일만 없다면 너는 나를 위해서 모든 걸 다 해줄 거야. 이 지옥 같은 1년 내내 그랬으니까. 너는 내가 네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또 나를 결혼시키려고 아낌없이 수고할 거야. 그래야 손을 털 수 있을 테니까. 너도 나에겐 얼마간은 신경을 쓰지. 나도 알아.」 - P346

클라이브가 항변하려 하자 그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네가 원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네 사람이었겠지만, 이제 내 인생은 다른 남자의 것이 되었어. 평생 한탄 속에 방황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그 남자는 네게는 충격적인 의미로 내 사람이야.」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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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2-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 왜 푸짐해요? 설레게? ㅋㅋㅋㅋㅋㅋㅋ 저 새우 봐 동해바다 새우 다 들었네! 나 왜 신남??

다락방 2019-12-05 14:25   좋아요 0 | URL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저 새우 베트남산 새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모리스 관련 내용 읽으면서는 아련했는데 갑자기 파스타에 총각무에서 빵터지잖아요. ㅋㅋㅋㅋ 파스타에 갓김치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다락방 님 덕분에 모리스 다시 한번 읽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9-12-05 14:45   좋아요 0 | URL
파스타에 갓김치 먹으니 갓김치가 파스타를 죽여버렸어요. 결국 갓김치승!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 책 읽고 뭔가 막 아!! 이렇게 되어서 토요일에 모리스 영화 충동적으로 예매해뒀거든요. 근데 극장 가자니 세상 귀찮음이 밀려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소할까, 또 이러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5:31   좋아요 0 | URL
우아 이 영화 엄청 좋아요. 근데 거의 막 내렸던데 어디서 예매를!
전 시간 안 맞아서 결국 스크린에서 보는 거 놓쳤어요. ㅠㅠ
(아 뾰루지 글 봤어요. 집에서 쉬세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05 15:53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KU시네마테크 에서 합니다. 건대.. 건대는 저희 집에서 멀지 않아 예약했건만..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 봐서 다시 예약하든가 해야겠어요.

하늘초록 2019-12-0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봤어요..글 읽어보니 책이 훨 좋을것같네요..^^

다락방 2019-12-06 17:41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하는 분들 많던데, 저도 읽으니까 좋더라고요.

보슬비 2019-12-0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꾸떡한 파스타가 좋아서 자주 막해서 먹어도 맛있던데요 ㅋㅋㅋㅋㅋ
사실 저도 바질페스토로 파스타는 성공 못했어요. 오히려 바질 페스토는 호밀빵에 발라서 치즈 올려먹거나, 맛있는 빵에 찍어 먹는쪽이 더 맛있더라구요. 그리고 이번에 저도 파스타 먹으면사 갓김치 먹었는데, 다른점은 푹 삭은 갓김치를 씻어서 달달고소하고 볶아서 같이 먹으니 피클보다 더 낫더라구요 ^^

다락방 2019-12-08 13:05   좋아요 1 | URL
바질페스토는 역시 빵에다 발라먹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스파게티는 정말 별로였어요. 그냥 오일파스타가 나은 듯..
보슬비님은 진짜 요리왕이신 것 같아요. 갓김치를 씻어서 볶아 먹을 생각을 하다니... 와, 저는 읽으면서도 그 맛이 상상도 안돼요. 오늘 아침은 늦게 일어나 라면 끓여서 밥 말아 먹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12-0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2-08 13:04   좋아요 1 | URL
https://blog.aladin.co.kr/fallen77/9985143

이 페이퍼 참고하세요. 태사자를 아실 수 있습니다!!

clavis 2019-12-1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생했어요 ㅠㅠㅠ락방님 누구세요? 누구시기에 저의 1년을 위로해주시나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가장 로맨틱하게 만드시는 회사에 계신 락방님!

저도 가장 작은 것을 가장 열정적으로..
체육과목 레포트하러 떠나겠습니다

다락방 2019-12-17 14:19   좋아요 1 | URL
체육과목도 레포트가 있나요... 어지러운 세상이네요.
아니, 클래비스님이야 말로 누구보다 고생하신 분이 아닙니까.
그 먼 나라에서 시험보랴 공부하랴 연습하랴 적응하랴..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일 년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클래비스님. 연말과 연초에는 그토록이나 고생한 클래비스님께 평안과 안정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하루카 요코'의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을 읽다 보면 하루카 요코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함께 다니는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가 종종 등장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다같이 페미니즘 공부를 하는 학생들인데, 하루는 한 명이 안보이길래 '그 학생은 어디갔냐' 물으니, '맥키넌 만나러 갔다'고 하는거다. 그렇다, 그 학생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다가 '캐서린 맥키넌'이 너무 만나고 싶어져서 슝- 미국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맥키넌을 만나겠다는 그 생각 하나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다보면 맥키넌의 이름은 종종 등장하는데, 위의 부분을 읽다가, 그러고보니 내가 맥키넌을 읽어보진 않았군, 하면서 책을 검색해 보았다. 아니, 이런 일이. 절판이었다.

















절판인데, 개인판매자들은 막 3만원에 이걸 팔아.. 예스로 가면 2만원 안쪽도 있긴 하지만, 이 책 정가가 8천원인 책인데.. 3만원이라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고매장을 검색해봤더니 전라도에 있는 알라딘에 이 책 중고가 상태 <중>인 상태로 4천원에 판매되고 있더라. 이 책을 너무 읽고 싶은 마음에 어제 잠깐, '전라도에서 이거 사서 저한테 보내주실 분!' 하고 페이퍼도 올렸었는데, 이걸 내가 어떻게든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를 계속 고민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도서관에 검색해보았지만 없었으므로 저런 페이퍼까지 썼던건데, 그러다가 도서관 이용을 자주하는 친구에게 '혹시 내가 서울 모든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느냐' 물어보았다. 도서관마다 들어가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슝- 검색하는 거. 친구는 있다며 알려주었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양천도서관에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래, 양천도서관에 가자! 그래서 어제 내가 올린 페이퍼를 부랴부랴 지웠는데,



양천도서관... 가려면 못 갈 것도 없지마는... 나는 양천도서관에 전화해 물어보았다. 나는 강동도서관 회원인데, 우리 도서관에 없는게 양천에는 있더라, 내가 그 책을 빌리는 방법이 양천도서관 가는 거 말고 혹시 또 있느냐, 물어보았다. 직원분은 책바다 서비스 이야기를 해주었다.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하면 강동도서관에서 양천도서관에 있는 책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 반납도 역시 강동도서관에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려면 일단 책바다 서비스에 가입하여야 한대. 좋다, 하자. 그렇게 나는 어제 가입을 했는데, 그리고 신청하려니, 내 소속 도서관에 일단 1회 방문하며 뭐 신청허가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어제 나는 퇴근하면서 도서관에 갔다. 그런데 책바다 서비스 담당자는 여섯시에 퇴근해버린대.. 나는 결국 하지 못했어...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페이퍼 삭제하지 말고 그냥 둘걸.


아무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출판사 여러분, 이 책 좀 재출간 해주세요!!

부탁드려요...제발요..... ㅠㅠ

저 이거 읽으려고 하다보니 너무 심신이 피곤해요.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저는 피로합니다. 걍 내주세요. 사서 읽을게요.. ㅠㅠ


















그리고 내는 김에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도 부탁합니다.. 이 두 책들 지금 나오면 잘 팔릴 거에요. 여러분, 힘내! 이거 내달란 말이야. 게다가 안드레아 드워킨은 다른 책도 많아요. 여러분, 이 책들도 도전해보자.




















《포르노그래피》원서를 사두고 시름이 깊다... 아마존으로부터 내게로 오고있을텐데, 그게 온다고 내가 어쩔겨... ㅠㅠ

저는 언제든 책을 위해 돈을 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 나말고도 좀 있잖아요? 이 책들 재출간하면 제가 알라딘에서 진행하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로 선정할게요. 그래봤자 같이읽는 사람 몇 명 안되지만...

힘내요, 출판사들...






하루키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예전만큼 하루키의 신간 소식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 으앗, 하루키니까 사야지! 하던 날들이 내게 무척 오래였지만, 지금은 무덤덤하다..

읽고싶어지면 그 때 읽을게, 하루키여..














박경리의 작품은 천천히 죄다 읽어볼 생각인데, 마침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다. 전후 성담론에 대한 박경리 나름의 답변이며, 성녀와 마녀 이분법에 대한 글이라고 하니, 으앗, 하루키의 책보다 이천배쯤 설레어버리는 것.














공부뽕 차는 독서를 했더니, 이 느낌 계속 이어가고 싶어 이 책도 장바구니에 빠르게 넣었다. 사실 어제 결제까지 갔었는데, 이렇게 충동적으로 계속 책을 구매하는 것이 옳은가... 를 고민하다가, 한 주 미루자, 생각했다. 월급 타면, 그 때..


얼마전에 와인냉장고가 비었으나 돈이 없어, '월급 타면 와인냉장고 채울거야' 라고 했더니, 제부가 내게 물었다. "월급 안타면 냉장고 못채워요?"


네.... 그렇습니다..왜요, 뭐, 왜. 그게 뭐.











아니, 가부장 무너뜨리기 라니...

제목이 너무 좋잖아요?

월급 타면.. 그 때 봅시다. 빠이룽..












오늘 아침 출근 길에는 '포스터'의 《모리스》를 읽으면서 왔다. 현재 100페이지 남짓 읽었는데, 아니, 설마, 사랑, 이렇게 짧은 순간이 다인 것은 아니지, 사랑 더 할거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되어 양재역에서 책장을 덮었다. 사랑 더해야지, 이정도로 끝내면 안돼. 뒤에 남은 페이지가 설마 다 추억인 건 아닌거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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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12-0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읽고 싶은 책은 다 재출간하라. ^^ 모리스 너무 너무 짧아요. 여하튼 좋은 결론이랍니다. 하루키 신간은 ㅋㅋ 저는 여전히 궁금하긴 해요.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 책 구입으로 할까 고민중이랍니다.

다락방 2019-12-04 13:12   좋아요 0 | URL
흑흑 재출간에 힘을실어주는 댓글 감사합니다, 블랑카님.
모리스 빨리 읽고 싶은데 일하느라 초조하네요. ㅋㅋ
하루키는 나중에 블랑카님 리뷰 읽고나서 결정해야겠어요. 으흐흐흐..
저도 한 번(어쩌면 두 번 혹은 세 번) 크게 지를건데(응?) 살 책이 너무 많아 미치겠어요.. ㅠㅠ

단발머리 2019-12-04 13:54   좋아요 0 | URL
여기에 줄 서면 되겠네요.
저도 블랑카님 리뷰 읽고 하루키를 결정하겠어요.
하루키 보다 강력한 블랑카님 파워~~~!!!

다락방 2019-12-04 16:34   좋아요 0 | URL
네, 여기에 줄 서시고 기다려봅시다. 하루키를 읽을지 말지.. ㅋㅋㅋㅋㅋ

blanca 2019-12-04 17:24   좋아요 0 | URL
ㅋㅋ 갑자기 부담감이 팍...

slobe00 2019-12-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출간하라~~~~
중고서점책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도 있던데 안되는 책도 많아서 아쉽네요..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낭독음원을 들은 적 있는데 진짜 귀여운 이야기였어요~ 조카분과 함께 읽어도 될것같은^^

다락방 2019-12-04 13: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중고서점에서 배송되는 책도 있는데, 제가 원하는 책은 절판된 책이라 배송불가 상품이라고 하더라고요. 매장에서만 구매 가능하다고.. ㅠㅠ 재출간 응원 감사합니다.

아니,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 귀여운 이야기라고요? 맙소사.. 어쩌죠 저는... 하아-

2019-12-05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5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19-12-0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결제는 두번 생각하고^^;;

다락방 2019-12-08 19:56   좋아요 0 | URL
오전에 적립금 유효기간 다 된게 있다는 문자가 와서 어서 빨리 결제하러 가야겠어요. 천원 잃기 싫어 몇만원 결제하는 어리석음이여... ㅎㅎㅎㅎㅎ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저자 '하루카 요코'는 방송활동을 하면서 더 잘 싸우기 위해 도쿄대학원에 가 공부를 시작한다. 도쿄대가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언제나 싸움에서 이기는듯 보이는 '우에노 지즈코'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뭔가 아닌 것 같을 때 싸움으로 상대를 이기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공부를 해서 싸우는 법을 배우자, 라는 게 하루카 요코가 바라는 바였는데, 하루카 요코는 자신이 바라던 것 이상을 배움으로써 얻게된 것 같다.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나는 이제 더이상 페미니즘 에세이를 읽고 싶지 않아서 뒤로 제쳐뒀던 책인데,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이 책 안에 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와, 하루카 요코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직업활동을 하던 중에 젠더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가고, 교육을 마치고 나서는 아는 분께 '우에노 지즈코 교수님께 배우게 해달라' 고 말씀드려서 도쿄대학원 사회학 과정을 청강하게 된다.


나는 일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쿄대라는 곳이 어느만큼의 위치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도쿄대의 학생들은 엄청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인것 같고, 일단 '도쿄대' 라고 하면 '공부하는 자들'로 알려진 그런 곳인가 보았다. 하루카 요코는 그런 도쿄대학원에 들어가 첫 수업부터 헤매개 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 학생들의 단어도 그렇고, 게다가 공부할 문헌이라고 준 것도 외국어마냥 어렵기만 하다. 1년간 읽어야할 문헌의 수도 어마어마한데 하루카 요코는 그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그 전 2년간의 문헌까지도 읽는다. 어차피 영어는 못하니까, 하며 영어 문헌은 제껴두려 했건만, 여기 학생들은 다 그 영어문헌도 읽고 있고 읽어야한다고 해서, 아, 그 어려운 영어 문헌까지 죄다 복사해서 그녀는 미친듯이 읽는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낮에는 대학원에 다니고, 그리고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그녀는 자정부터 아침 여섯시까지 커피를 쏟아 부어가며 공부한다. 와.. 진짜 완전 공부 뽐뿌 엄청 온다. 그래, 이렇게 공부해야해, 이렇게 공부하는 데 안될게 뭐람! 정말이지 감탄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한 공부였으니 아마도 그렇게 열정을 불사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자정부터 여섯시까지 공부하나요... 밤부터 아침까지 나는 잠이 쏟아질텐데.. 게다가 여섯시간 내리 공부라니..


결국 하루카 요코는 그렇게 3년을 공부하고나서는 다른 대학에 젠더론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가는 경지에 이른다. 이 공부가 너무 어렵고 대단해서, 그러니까 나 역시 이들이 공부한 문헌이나 주제만 봐도 머릿속에 물음표 천개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정도 과정을 마치면 다른 사람 가르치기에도 무리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여기에도 몇 번 언급했었지만,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 학생이었을 때, 공부를 마음껏 해도 좋았을 때 공부하지 않았던 나를 너무나 후회하고,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있는데, 그렇게 방통대 편입해봤지만 반학기 다니고 자퇴했고...그래서 역시 나는 안돼, 이러다가 최근에 여성학 공부를 하고 싶어서 또 몸이 꿈틀댄다. 주기적으로 대학원을 가면 어떨까, 대학 청강은 어떨까를 역시 고민하고 있는데, 그러다가도 경제적인 이유와 육체적인 이유로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 등록금 어쩔것이여.. 그리고 내가 공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학교 다니다가 쌍코피 나진 않을까... 안되는 이유들을 떠올리며, '그래 이렇게 부지런히 책을 읽자'하게 되는데, 이렇게 공부하는 여성의 책을 읽으니 공부 욕망 너무 솟아버려. 나랑 같은 욕망을 가지고 똑같이 번번이 포기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이럴 때 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을 건다. 친구는 나랑 같은 욕망과 같은 바람을 가지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포기하면서 서로 응원한다. 친구여...



공부하는 여성, 그리고 공부하면서 더 성장하고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여성을 보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유익한 독서였다. 공부 욕망 자극하는 건 진짜 너무 좋잖아?


그렇지만 이 책은 1999년에 쓰여진만큼, 낡았다. 시대에 뒤떨어졌다. 그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의 가르침을 받고, 그 어마어마한 도쿄대학에서 젠더론 강의를 들어도, 그래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페미니즘을 앞서 이끌 수 있다 하더라도, 구석구석 낡았음을 어찌할 수 없다.


하루카 요코는 '싫다고 말할 수 있으면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싫다고 얘기함으로써 일자리를 잃게 되면, 그건 성희롱이라는 거다. 정말이지 머릿속에 물음표 천개 돌아다니는 그런 발언이 아닌가. 싫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해도 성희롱이다. 그것이 성희롱이 아닌 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예고도 없이 내 앞에서 자기 고추를 꺼내놓는 남자라고? 그새낀 범죄자새끼다. 감옥에 집어 쳐넣어야 한다. 어딜 함부로 그 더럽고 징그러운 고추를 내밀어. 진짜 남자들 너무 고추부심 있는데, 그거 왜있지? 그렇게 함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추를 까는 새끼들의 고추는 잘라서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고 싶다. 그래야 안까고 다니지. 회의를 하다가 가슴께를 더듬는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다 성희롱이다. 미친놈이잖아? 회의를 하다가 왜 여자 가슴을 더듬어, 미친새끼가?


게다가 지금도 그렇겠지만, 이 시대의 일본도 낡았다.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사람이 열여섯의 가슴 큰 여자여야만 인정받는다. 제일 가치가 높다. 아니, 열여섯의 학생에게 가슴큰지를 확인하는 게, 말이 되냐. 하루카 요코는 그런 일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는 아름답게 찍은 프로필 사진이 놓여 있었다. 꽤 예뻐 보인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남자가 물었다.

"몇 살이야?"

"열여섯 살이에요."

"가슴은?"

"커요."

"음, 괜찮은 것 같은데? 한번 출연시켜 보자고."

출연이 결정되었다.

남자는 얼굴과 나이와 물건 크기로 일을 따내는 게 아니니까 능력을 갈고닦는다. (p.59)



이런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지고 논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아, 정말이지 일본 방송계는, 저 때가 아무리 2000년 전이라 해도 낡았고 후졌구나. 그러나 일본이 그때보다 지금 더 나아졌을까? 저거 너무 끔찍하잖아. 열여섯의 가슴 크기를 물어본다는 거. 진짜 .. 후아-



게다가 출연자에게 거짓말을 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일자리라 어쩔 수 없었을테지만, 하루카 요코는 자신의 신념과는 반대로 시키는대로 대답하고. 이 부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시키는대로 대답하는 지점이 있을까? 싶었다. 방송이 이정도로 무너지고 망가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뭐, 지금 딱히 좋은 방송인 것도 아니지만.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해 주세요."

방송국 측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프로그램의 주시청자는 당연히 주부들이다.

"네? 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러시면 안 되죠. 하루카 씨에게도 손해잖아요. 모든 주부의 반감을 살 만한 발언은 하지 말아 주세요."

"…."

그렇게 해야만 사랑남을 수 있다는 선택의 문제는 늘 나를 괴롭힌다. 이념과 현실은 부딪치는 대가 많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라서,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또래 여성 연예인 가운데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꽤 있다. 물론 이는 연예인에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p.126-127)



하루카 요코가 위의 부분에서 지적했듯이 이것이 비단 연예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전에 회사 동료도 '나는 사실 연애도 필요없고 혼자가 더 좋은데 친구들 앞에서는 혼자라 외롭다는 포지션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하는줄 알았다' 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대부분 그래야 하기 때문에, 반감을 사지 않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 더러 있지 않은가. 방송가에서 그것은 더 권장되는 것이고...





도쿄대가 대단한 대학이라고 하면 거기에서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 역시 대단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하루카 요코는 우에노 지즈코를 존경의 시선으로 보고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대단하다'고 칭송한다. 아마도 그녀로부터 배우고 싶었기에 간것이니 그런 태도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일테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어느 순간 배움이 쌓이다보면 그런 스승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제자가 나아가야 할 길은 청출어람이 아닌가..



나도 공부하고 싶다고 책읽는 내내 생각했지만, 나도 대학원 가서 좋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지만, 하루카 요코가 그랬듯이 내가 읽어야할 문헌들이 영어로 가득하고 무슨 막 기호학 구조주의 이런 거 나오면... 아아 역시나 '나도 모르겠다~' 이러고 그냥 뒤로 자빠져버릴 것 같다. 대학원이란 그런곳인가... 나는 아마 포기할거야. 게다가 하루카 요코가 다니는 대학원은 자꾸 발표 시켜... 싫어.......역시 이런 공부법 내 타입이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대학원 타입이 아닌건가.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알고 싶고 엄청엄청 똑똑해지고 싶은데, 대학원 너무 두려워... 그러면 책읽으면서 고작 이만큼에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나 부족한데... 하아-




아무튼 공부뽕 차오르는 독서였다.



(별은 3.5인데 0.5 가지고 내릴까 올릴까 엄청 고민하다가 올리는 걸로 한다... 자비로운 나인 것이다.)


남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남녀평등 시대라지만 집에 가면 마누라가 제일 무섭다.‘ ‘결국 가정은 여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저는 이런 식의 패배 선언이 매우 교활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메달을 땄을 때 매스컴이 다들 입을 모아 ‘내조 덕‘이라는 식으로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싫습니다. 야구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을 때 ‘아내가 연예게를 은퇴하고 요리하는 데 힘썼다‘는 미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아내가 요리를 잘해도 실력 없는 선수는 공을 치지 못합니다. 아내가 전업주부이든 아니든 메달을 따지 못하는 선수가 훨씬 많습니다. 왜 아내가 가장 무섭다고 말할까요? 뭔가 찔리는 일을 했거나 아내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를 정도로 둔감해서가 아닐까요? 가정은 결국 여자에게 맡겨야 한다고요? 그건 그저 여자를 추켜세우는 척하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 아닌가요? - P11

하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평범하고 괜찮아 보이는 청년일수록 평범한 상식과 평범한 고정관념에 단단히 매여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내 삶을 힘들게 했는지를. 이런 의미에서 남자를 고를 때 ‘평범함‘은 결코 좋은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 P141

내가 신인 때 대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방송 중에 상대방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때 선배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하다고 말해."
아, 그러면 되겠구나 싶었다.
모르니까 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으니까 모르는 채로 있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말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만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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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0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뽕’ 효과가 저한테까지 전해지네요. 약간 흥분되면서 약간 의기소침해지고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그냥 지나칠 책이 아니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12-03 18:19   좋아요 0 | URL
저 너무 공부뽕 차올라서 미네님 책도 내친김에 읽자, 단발머리님께 땡투하고 장바구니 똭- 넣었다가 참았어요. 다음주에 사려고요. 너무 충동적으로 자꾸 책 사는 것 같아서. 일주일만 참다가 사자, 지금은 소설 한 권 읽자, 하고 넣어뒀습니다. 다음주에 적립금 들어오면 그거 제가 드리는 거에요. 부자 되시라고요. 으하하하핫.
 
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레이첼 모랜 지음, 안서진 옮김 / 안홍사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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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좋은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든 답이 다 들어있다.


저자 '레이첼 모랜'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어 7년간 성매매를 하고, 탈성매매후에 10년간 이 책을 집필했다.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며 쓴 책이 아니라 그 과거로 돌아가 이 글을 썼고, 그 때 느꼈던 언어의 왜곡을 이제는 제대로된 언어로 찾아와 적어낼 수 있게 되었다. 과거는 그저 과거에 불과한 게 아니라, 미래를 막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단지 과거야'라며 휘휘 저어 떠나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나 성학대가 기반이 된 성매매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이 저자 본인의 것이었다면 오죽할까.


누구나 아프고 괴로운 과거가 있을 것이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그 과거의 시간들. 그런 과거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 때의 생각이나 느낌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금세 그 때의 내가 되어 다시 그 상처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런 고통스러운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글을 쓸 때는 물론이거니와 애인이나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아픈 과거의 나로 돌아가면 나는 현재에도 반드시 아팠다. 어느날은 그 아팠던 시절에 대해 얘기하다가 지금도 그 때의 아픈 내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대화를 중단해야 하기도 했다. 레이첼 모랜 역시 이 책을 쓰기 위해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책의 처음에 밝히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그 아픔속으로 들어가 다시 그 때의 내가 되어 그 때를 기술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하여 마치는 글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레이첼 모랜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다. 레이첼 모랜의 어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두 성인 어른이 만나 사랑이란 걸 하고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그 병은 치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약물에 중독된 부모들이라 레이첼 모랜을 비롯한 자녀들은 가난과 폭력의 상황에 놓인다.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학용품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대신 늘 입었던 지저분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한다. 다른 아이들은 지저분한 아이들이라며 이 아이들을 무시한다. 게다가 이 어린 형제들은 언제나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다른 형제가 아닌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이 가정에서 버틸 수 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름 영악해져야 하고 수시로 모든 것들이 내 탓이라는 필요없는 죄책감까지도 아이들의 몫이다.



레이첼 모랜은 분명 자기의 어린 시절에도 행복한 시절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부모를 원망하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러나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 역시도 계속 가지고 있다. 헌사도 부모들에게 바친다. 자신 안의 긍정적인 성격이라든가 강인하게 이겨내는 것들은 부모로부터 온 것일테니, 그런 자신을 만들어준것에 감사한다고. 그러나 나는 아마도 레이첼 모랜이 아닌, 레이첼 모랜의 책을 읽는 사람이어서인지, 그녀의 부모에 대한 감사는 별로 들지 않는다. 원망이 매우 크고, 결정적으로 '사랑이 답이 아니다'라는 답을 얻고야 만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성인과 성인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사는 것은, 그것이 사랑이기에 용납되어야 하는가? 아니, 아이들 다섯을 가난과 폭력에 방치한 것을 '그래도 사랑했으니까' 라며 고개 끄덕일 순 없는 법이다. 나는 그녀의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매우 크다. 사랑이 답은 아니고, 그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그토록이나 무책임한 사랑이라면 당신들에게 사랑은 아무 변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 가정에서 열네살이 되자 레이첼은 엄마로부터 내쫓긴다. 이제 다 컸으니 쉼터에 가서 네 살길을 모색하라는 거였다. 쉼터에 간다고 뚜렷한 대안도 없어 열넷에 레이첼은 노숙자 신세가 되고, 열다섯에 스물한살의 남자 애인을 만나 남자 애인으로부터 성매매를 권유받는다. 그렇다. 레이첼 스스로가 성매매가 답이라고 생각해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애인이 제안했고, 그러자 그것은 안될것도 없는 답이 되어 그녀 앞에 놓여진다.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성매매로 유입시켰다. 성매매로 그녀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그녀가 성매매를 선택했으니, 성매매는 레이첼 모랜, 그녀의 자유의지일까? 레이첼은 자신 앞에 놓인 성매매를 자기가 붙들었고, 자기가 인신매매되어 강제된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성매매를 성매매된 여성의 주관적 자유의지라 볼 순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더 권력 있는 남성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은 줄곧 수그러들지 않았고, 도망칠 수 없었기에 우리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착취를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했다'라고 표현하는 일이었다. 성매매를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뒷받침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성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성적인 요소는 즐길 수 없었고 견뎌야 했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업주에게는 빈 업소가, 성구매자들에겐 빈 필림이 남았을 테다. (p.127)



성관계를 즐기려고 내린 결정이 아닌, 경제적 이유로 내린 결정이 과연 '그녀가 원한거야', '그녀의 선택이야'로 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의 2부에서는 그녀가 철저하게 과거로 돌아간다. 성매매하던 당시로 돌아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얘기한다. 그 안에서 자신이 느꼈던 상실과 고통을 얘기한다.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성학대를 어디가서 신고도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서, 계약된 것 이상의 행위를 성구매자가 할 때에도 그것을 폭력으로 신고할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그 안에서 성매매된 여성들의 인권은 사라지고 자신의 가치 역시 상실한다. 성매매는 성매매된 여성과 구매자 모두에게 상실을 준다. 며칠전 페이퍼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락의 상호작용 역시 마찬가지. 남자들은 결코 자신의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요구할 순 없는 지독한 행위를 성매매 여성에게는 시도함으로써 그 나쁜 행동을 고치지 못하고 유지하며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고, 성매매된 여성은 다른 여자들이라면 허락하지 않을 행위를 허락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타락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타락하는 가운데, 세상은 더럽고 역겨운 행동을 요구할 수 있는 여자와 그럴 수 없는 여자로 나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라고 말하는 성매매된 여성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것은 비참한 현실에 놓인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얘기일 뿐이라며, 그 안에서는 절대로 존중받을 수 없다고, 행복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2부 전체에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하며, 그 일로부터 그녀가 보게된 것, 느끼게 된 것을 토로한다. 그녀에게 성매매는 성매매이며 성학대였고 폭력이었다. 이것은 노동이라고만 부를 순 없었다. 노동이라면 그안에 몸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술을 터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역겨운 상황에서 토하지 않을 수 있는 기술, 위험한 상황을 알아채는 기술들만이 늘어갔다 했다. 이것은 그저 노동일 수 있을까. 닫힌 문 뒤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안다해도 그 일에 대해 신고나 처벌을 할 수 없음에 침묵해야 하는 것이, 과연 노동이라고만 불릴 수 있는 일일까. 폭력을 수반한 노동이라면, 그것을 그저 노동이라고만 불러도 되는 것인가.



이 책의 추천사에 정희진 쌤은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라고 썼는데, 어떻게 이 책을 다 읽고서도 저런 문장을 써낼 수 있을까 심히 유감스러웠다. 성매매는 성학대고 성폭력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바로 그것이었다.



레이첼 모랜은 그저 겪었던 잔혹한 일에 대해 드러냄으로써 성매매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파악한다. 하나하나 자신이 겪었던 일이, 자신의 성매매 친구들이 겪었던 일들이 눈앞에 보이는 폭력 이외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녀들의 영혼이나 눈빛이 왜 사그러든지에 대해 그녀는 끊임없이 깊이 생각하고 그 일로부터 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그것들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3부에서는 탈성매매 이후에 대해 얘기한다. 성매매는 성매매했던 과거 자체를 감추고 싶기에, 성매매가 뻔히 드러나는 세상이지만 성매매에 몸담았던 여성은 그것을 감춰야 하기에 그 후에도 고통스런 시간들이 이어진다. 책의 초반에 그녀는 빈이력서를 앞에 두고 자신의 이력을 쓸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녀는 성매매된 여성으로서, 성매매를 반대한다. 성매매는 성매매에 유입되기 전 생각했던 것들과 완전히 다른 비참한 것이라고, 실상은 매우 다르다고 얘기한다. 또한 책들을 읽고 그녀는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것은, 그녀가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그녀가 되었기에 고통스러웠다는 걸 의미하며 동시에 현재로 돌아와 책을 읽고 그 때의 일들에 담긴 의미들을 파악한다는 데에도 역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성매매에 대해서는 당사자성을 갖고 있지 않아 성매매에 대한 입장을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과연 당사자가 아니기만 한가? 성매매가 존재함으로써 여성을 나누는 데에 어느 쪽에든 내가 들어갈텐데, 내가 성매매된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사자가 아니니 입장을 정리할 수 없어, 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레이첼 모랜은, 성매매된 여성이 아님에도 성매매에 대해 연구하고 생각하고 발언해준 사람들이 있었음에 놀라워하고 고마워한다. 그녀는 성매매된 여성으로써 성매매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고자 한다. 목소리가 없었던 자신을 대신해 주는 목소리가 저 밖에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우리가 확실하게 고립되기는 했었지만, 성매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밖에서 우리를 생각하고 우리에 대해 글을 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나는 목소리가 없었다.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저 밖에서 나를 위해 말해주려 하는 큰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p.401)



나는 이제 내 입장을 확실히 알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성매매에 반대한다. 그것이 내가 성매매에 대해 가진 입장이다.



레이첼 모랜은 성매매에 대해 돌아보고 고찰하며 책을 쓰는 것만으로 그녀의 행위를 끝마치지 않았다. 그녀는 <스페이스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만든다.


스페이스는 학대적인 성매매 현실에서 생존한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 새로 형성된 국제단체이다. 스페이스에는 현재 아일랜드, 독일, 덴마크, 프랑스, 영국, 미국, 캐나다 출신 회원들이 있다. 독자적 기구이며, 이 책의 저자가 창립자이다. (.431)



레이첼 모랜은, 아일랜드 정부에 노르딕 모델을 수용하기를 권고하였고, 아일랜드 정부는 그러기로 했다. 이야말로 한 인간이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내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게 아닌가.



레이첼 모랜은 스페이스 인터내셔널의 아일랜드 구성원 세 명중 한 명이고, 2013년 2월 6일 아일랜드 정부를 상대로 성매매 경험을 증언했다. 아일랜드 정의, 국방, 평등에 관한 국회 합동 위원회는 그 해 여름 6월 27일 아일랜드 법이 노르딕 모델을 수용하기를 권고하였다.

2014년 11월 27일, 아일랜드 정부는 노르딕 모델 강령을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공식 발표하였다. (p.430)



한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최대치, 통찰할 수 있는 최대치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고 한 인간이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책안에 쏟아 부어져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인생에 앞으로 성매매를 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 여성들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고, 성구매자들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할 책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성매매라고 포장되어 일어나고 있는, 두 눈 감고 용인하고 있는 성학대를 없애야한다. 여성들은 더이상 포르노에, 스트립쇼에, 성매매에 유입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들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기만을 그만둬야 한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태도와 의견들은 대개가 절대로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매매 당사자는 성매매의 범주 내에서만 수용되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 P34

성매매 여성이 이력서를 작성한다면 금방 채울 수 없는 빈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35

어머니의 관심은 담배 가격 인상과 복지 지원금 인상 이 두가지에 쏠려 있었다. 운전을 하지는 못했지만 할 수 있더라도 차를 갖는다는 꿈은 꿀 수도 없었기에 기름값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집을 소유한다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이자율이나 융자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거의 대부분 실직 상태였고, 어머니도 출산 후로는 직업이 없었기에 직장을 다니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율에도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저소득, 저학력층에 속하는 가정주부였고 남들과는 전혀 다른 현실 세계에 살아서 무역, 상업, 사업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도 관심이 없었다. 위에 언급한 대부분은 우리와 관계가 없었고 관계 있던 적이 전혀 없었다. - P45

물론 그 당시에는 내 경험을 정확하게 명명할 수 없었다. 단지 명백하게 합당한 이유들로 동네 이웃과 학교에서 내가 다르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나의 환경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생각은 옳았지만, 내가 그 그릇됨의 한 부분이었다고 믿은 것은 실수였다. - P48

노숙은 성매매 유입 경로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엔 종종 가출의 결과로 나타난다(내무성, 2004a). 가출은 견딜 수 없는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새 출발을 하는 수단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취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은 삶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려는 시도를 함과 동시에 기만 행위에 더욱 취약해진다. -쿠식 외, 2003 - P88

첫 성구매자는 40대 중반이거나 어쩌면 그 이상인 듯했고, 대머리에 안경을 쓴 사람이었다. 하얀 차가 도로 한쪽에 섰고 남자친구가 운전석 쪽 열린 창문으로 그에게 말했다.
"살살하쇼, 이 아이 처음이니까."
그곳에 나를 데려간 주제에 아끼는 체하던 그 위선을 보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움찔했다. - P94

이제 글을 쓰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순간 산문적 말더듬증을 경험하고 있다. 한 줄을 쓰고는 10분간 그저 응시한다. 적당한 길이의 문단을 써내는 작업은 고된 위업이다. - P95

성매매 집결지에 서 있도록 강요도게끔 내 자신을 최초로 허락했을 때, 이상하고 역설적이게도 과감한 결단을 내린 듯한 기분이 샘솟았다. 가출 이후 처음으로 삶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느꼈듯이 말이다. 몇 년 후 과거를 돌아보고 깊이 들여다본 뒤 그 감정이 주도권 상실에 대한 반작용이었음을 자각하고는 얼마나 어리석게 느꼈는지 모른다.
성매매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성매매는 자라난 가정에서 독립하는 일반적인 나이 혹은 권장되는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독립한 10대 여성들이 흔히 진입하게 되는 삶의 국면으로 널리 인식된다.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정말 알아야 할 때는 몰랐다. - P96

성매매되는 많은 자들의 경우 성인이 아니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성인과의 성관계에 ‘합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또한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비율이 나처럼 최초 성매매에 ‘합의‘하였을 당시 성인이 아니었다.
- P97

실상은 매우 달랐다. 삽입 성교를 하지 않았기에 벤버브 거리에서 하룻밤 동안 벌 수 있는 돈이 너무 적어 백 파운드를 벌려면 구매자를 열 명까지 만나며 내 몸이 사용되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특히 겨울이 오면 벤버브 거리에서 특히 녹초가 됐고, 암울했으며, 비참했다. 열 명의 구매자들에게 성적으로 이용되고 난 후 여성이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합의한 유사 성행위에 멈추는 경우는 드물었다. 구매자가 성기를 삽입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더라도 손가락이나 다른 물체들을 몸 안에 집어넣어 상처를 입히고 물고, 혀를 목구멍 여기저기 깊숙이 쑤셔 넣으며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 P99

성매매에 유입되어 있는 동안 행복하기란 그저 불가능할 뿐이라고 일찍이 결론에 도달했고, 내가 옳았다. 성매매 여성 중 행복한 여성은 한 명도 보지 못했고 그 후로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내 경험상 ‘행복한 창녀‘란 없다.
내게 성매매에 잠식된다는 말은 삶의 범위가 좁아져 모든 것이 그 당시 생활의 중심에 놓여 있던 성매매로 귀결된다는 의미였다. 성매매는 모든 것을 침범하고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취침 습관, 구매하는 옷, 대화, 내가 하던 것 못지 않게 하지 않던 행동들도 지배했다. - P109

때때로 ‘영원히 이게 전부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표면 위로 떠오를 때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쿵쿵거리며 요동쳤다. 마치 실수로 잘못 날아들어 와 방 벽에 부딪히는 새처럼 느껴졌다. 에워싸인 벽에 대한 두려움과 도망가고자 하는 절실함이 동일하게 작용하여 미친듯이 구는 새처럼 말이다. - P109

성매매 유입 한참 뒤 ‘아동 성매매‘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10대 초반의 나를 묘사하는 말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성매매‘라는 말과 나를 동일시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가 하는 게 뭔지, 그게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잘 알았지만 당시 나는 스스로를 전혀 아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항상 또래보다 더 성숙하다고 느꼈고 당시 열다섯이었는데 스스로 젊은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내 나이보다 더 큰 아이를 둔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그때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알게 됐다. - P109

존경받거나 선망되는 삶은 내게 불가능했다. 내가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 P111

열다섯 살을 ‘어린이‘로 부르는 것이 가능한가? 가슴이 발달하고 클리토리스가 기능하기 시작하면 여성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갖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10대 초반의 아이들과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들을 향한 성적 관심을 구별 지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항상 수상히 여겼다. - P111

성인이 되는 정말 중요한 분기점은 가슴이나 생긱기가 아니다.
물론, 그 모든 세월이 지나고,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열다섯 살은 아이라는 사실을 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아이였던 나의 이미자와 여전히 씨름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충분히 납등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내 아이가 당시의 나와 같은 나이가 되고 난 이후로 그 이미지를 외면하기 더 어려워졌다. 불가피하게 비교를 하게 된다. 아들이 열다섯에 얼마나 어렸는지, 세상을 상대할 준비가 얼마나 안 됐는지를 생각한다. - P111

사실 내게는 냉혹한 현실만큼이나 더 깊고, 괴로운 무언가가 있다. 그런 라이프 스타일에 내가 유입되고 그로 인한 영향력이 초래한 어떤 특정한 결말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성매매가 유일한 길이며 내가 다른 아무것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믿게 했다.
삶의 모든 면이 성매매에 잠식되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거짓에 잠식됐었기 때문에 그릇된 믿음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 P112

남성에게 자신의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모멸적인 것이 있다면 또 다른 남성의 이득을 위해 남성에게 몸을 팔아야 할 때이다. - P124

어떤 여성들은 포르노에 반대하지 않지만, 나는 반대한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포즈를 취한 채로 사진 찍히는 경험을 해봤기에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산업 안팎으로 여성을 막대하게 훼손하는 모욕적이고 착취적인 산업이다. - P126

솔직히 말해 현재 포르노를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고, 맺을 수도 없다. 포르노를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려는 어느 누구도 용납하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인간됨을 지키는 일은 때때로 무엇을 수용할지에 대한 경계를 세우는 일을 필요로 한다. 나는 스트립과 포르노가 초래하는 폐해와 수모를 겪었다. 무해한 산업이 아니다. 구별 지을 수 있는 산업도 아니다. 성매매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들이다. 이 체제는 그 정점과 핵심 모두에 상품화를 배치함으로써 여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저하시킨다. - P127

타락의 상호작용이라 함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남성의 마음이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성매매 여성이 고의적으로 이용하여 조종한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

우연히 목격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내가 통제권이 있는 듯 보였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갑을 쥔 사람은 그였기에 궁극적으로 권력은 언제나 그의 것이었다. - P133

그가 자신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말 걸기를 요청하면 결과적으로 그에 밀접하게 연관되는 방식으로 내 자신의 가치도 저하된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내 천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널드의 행동은 그야말로 벌레 같았다. 그의 성도착은 인간보다 못하게 취급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 욕망의 본질 자체가 타락했고, 그 타락을 조장하면서 내 자신도 타락한 방식으로 행동했다. - P136

서로에게 해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쪽 모두 알면서도 그중 누구도 신경 쓸 자비심은 없다는 점은 타락이 상호작용하는 또 다른 본질이다. - P137

‘살아 있는‘것을 단순히 진행하고 커나가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 경험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성매매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국제적이거나 문화적 수준뿐 아니라 미시적 수준에서도 살고 자란다. 그것이 손대는 각각의 삶에서 발달하고 진화한다. 성매매를 목격한 모든 곳에서 성매매의 진화를 보았고, 이 성장과 발달이 긍정적이었던 예는 결코 없었다. 타락의 상호작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성격과 부합하지 않는 그 어떤 다른 것도 생산해내지 않는다. - P138

쇼엔메이커는 벽에 쓰여 있는 낙서를 통역한다. ‘성구매자들에게, 우리는 당신 같은 남자들을 싫어한다. 당신에게서 가능한 많은 돈을 받고 싶다‘ 반대편에 쓰인 대답은 ‘재수 없는 매춘부들, 너희가 고꾸러질 때까지 박아줘야겠구나. 우리는 네 성기가 아주 아플 때까지 씹하고 빨거다. 고맙다‘ 였다. -줄리 빈델, 『가디언』, 2004년 5월 15일 자

여성의 마음속에는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남자와의 평범한 인간적 유대감이 자라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구매자들이 성매매 비용을 지불하는 여성들 중 몇몇에게 깊은 애정을 형성하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적어도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이런 현상은 성매매가 지니는 특이성이 아니다. 오히려 모욕적인 본질을 더욱 환신시키는 그 무엇이다. 인간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흐를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P144

이야말로 성매매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자신과 인생을 공유하는 여성에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이성적으로 기대를 할 수 없는 변태 성향을 다른 계층의 여성에게 떠넘기려는 남성의 고집이다. 여성들은 존중과 경멸, 품위와 천박, 존경과 비난이라는 두 부류로 구별되게 나뉜다. - P145

‘고급‘ 성매매 시장에서 겪었던 경험들만큼 ‘고급‘같지 않은 일은 없었다.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데 품격이 있을 리 없고, 성매매가 일어나는 환경이 상관있을 리 만무하다. - P152

고급 창녀 신화는 대체로 그 신화를 믿으려고 섹스에 큰 돈을 지불하는 구매자들의 욕망과 맞닿으므로(성매매의 다른 신화들과 같이) 계속 지속된다. 많은 성구매자들이 에스코트 에이전시에 전화하면 고급의 질이 집 문 앞에 도착할 거라 짐작하고 싶어 하며, 그 질에는 고급의 여자가 부착됐을 거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고급 창녀의 개념은 성매매 시장을 극대화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고, 그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 P157

성매매의 본질은 그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하얀 리넨에 엉덩이를 비빈다고 성매매가 다른 것으로 변하진 않는다. - P164

우리 ‘직업‘에서 겪은 경험을 학대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다. - P174

성매매 여성이 실제로 하는 일이란 자신의 몸이 성적으로 학대되도록 돈을 받고 허락하는 것이다. 성학대와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느낌들을 겪지만, 본인이 수용했기에 사실상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리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표현할 권리를 팔았다. 이는 성매매의 또 다른 쌍둥이이고, 이 두 번째 요소는 적어도 첫 번째 만큼이나 해롭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학대를 숨기고 내면화해야 하는 상황 또한 학대이다. 강요된 침묵은 학대적이다. - P175

그녀를 아프게 하는 기쁨을 누리려고 돈을 지불한 폭행범이 덜 학대적인걸까? - P175

성매매는 상업화된 성학대이다.
정확하게는 성매매가 성학대라고 인정되지 않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학대라는 진실된 이름이 성매매에 부여되지 않았고, 성학대가 방해 없이 맹렬히 지속될 수 있는 상업화된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성매매에 성학대라는 진실된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 성매매의 진정한 본질로 주의를 환기시켜 합당한 이름을 부여하고자 한다. - P185

우리 성매매와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오늘 이 기자회견에 모여 성매매는 여성 폭력이라고 선언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하루 아침에 일어나 성매매 여성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가난, 성 학대 경험, 우리의 취약함을 이용하는 업주들에 의해 선택당한다.
- 『선언문』, 여성 인신매매를 반대하는 연합체 회의, 2005 - P201

"아니, 난 정말로 신경 안 써요."
그녀의 얼굴 표정과 눈에서 어떤 여성들은 성매매 여성으로서 꽤 만족하며 스스로 낙인감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놀랍고도 새로운 이해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틀렸다. 그녀는 속았다. 나는 어떤 여성들이 왜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성매매가 진실로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거짓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내 자신이 그랬다. 수년 전 그 기자가 재차 물었던 바가 정확하다.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질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진실로부터 내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날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특히나 대중 매체에서 내 말을 반복할 사람에게는 정직했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나는 성매매가 실제로 사회와 인류에 해악이며, 여성을 멸시하며 착취하는 성매매를 다른 것처럼 포장하는 행위는 폐단이라고 생각한다. - P206

에로틱 댄서의 증언.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남자들에게 함부로 만져지고, 찔리고, 건드려지고, 성구매 되는 걸 아무도-나 자신도, 다른 여성들도-즐기지 않는다." -페기 모르건, 『아슬아슬한 삶』 - P248

성매매 여성들이 성적 즐거움을 느낀다는 신화는 ‘성매매 여성들이 남자에 의해 구조되고 싶어 한다‘는 유의 사회적으로 통요되는 신화와도 다소 관계가 있다. 성매매에서 이 신화가 유희되는 건 여성들이 아닌 남자들에 의해서다. 구조된다면 구조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 P255

부끄럽게도 어떤 말들은 너무 뻔한 거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가 일어나지 않는 다른 곳에서 그런 주장을 했는데 진실이라서가 아니라 그랬어야만 했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랬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성적인 무력함을 받아들이기보단 주도권 있는 척하는 게 덜 고통스럽고 창피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이 사실은 우리가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피해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싫었음을 증명한다. - P262

성매매 여성들이 주도권을 가진 체하는 주된 목적은 공공연히 당하는 수치를 없던 일처럼 만들려고 함이다. 이렇게 하는 많은 성매매 여성들의 입장을 백분 이해하지만 성매매가 그 진정한 본질에 부합되려면 쓰디쓴 진실은 폭로될 필요가 있다. 성매매는 주도권의 부재로 정의된다. - P263

성매매를 옹호하는 입장의 허황된 생각 중 일반적인 한가지는 성매매되는 여성이 선택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성매매되는 여성들의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고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타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성매매의 의도이자 목적이며, 여기에 신체적 자주성이란 아주 조금도 없다. - P267

이 구매자들이 여성들의 아버지, 오빠, 남동생, 남편, 아들, 그리고 파트너임을 감안해봤을 때 일반적으로 어떻게 남성과 여성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구매자 자신 또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는 기록되지도 검토되지도 않은 거대한 상실이다. - P280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해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열다섯 소녀에게 성매매를 하라고 부추기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을 텐데 그러려면 사람이 얼마나 손상되어야 할까? - P285

(성매매)비범죄화와 합법화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는 개념은 성매매의 또 다른 신화이며, 특히나 위험하다. - P314

성매매가 합법이 된 나라들에서 업주들이 근절되었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겠다. 그렇지 않다. 업주의 역할이 지방정부의 조직된 역할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정부가 업주이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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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2-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성매매 여성들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저자는 어떤 계기로 어떻게 그 산업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참 그리고 인용하신 구절 중 첫번째 구절 ‘우리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착추를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했다‘라고 표현하는 일이었다.‘에서 착취로 수정하셔야... ㅎㅎ

그리고 그 다음 <스페이스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설명하면서 인용하신 구절 중 ‘스페이스는 학대적인 성매매 현실에서 앳존항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 새로 형성된 국제단체이다.‘에서 ‘앳존항‘은 오타인지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다락방 2019-12-02 14:00   좋아요 1 | URL
오타 지적 매우 감사합니다 ㅠㅠ
제가 글을 등록한 뒤에 다시 살펴야 했지만, 이렇게나 길게 인용해놓고나니 다시 보기가 싫더라고요. 내심 ‘다음에 보자‘ 이러고 패쓰했어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인용문 이렇게나 많은 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것도 이게 최대라서 이만큼에 그친겁니다. 입력칸 추가하기가 더는 안되더라고요? 아직 인용하지 못한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앳존항은 생존한으로 밝혀져.... 쿨럭.)

이 책의 3부에서 탈성매매 이후가 나오는데요, 저자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야해서 코카인 중독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하거든요. 탈성매매도 그런 계기라고 이해합니다. 탈성매매 당시에 아이가 이미 있었어요. 탈성매매후에 코카인 중독에 심하게 시달리는데, 결국엔 벗어나게 되거든요. 전문적인 도움이 있었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얘기를 저자가 해요. 구조적으로는 아마 저자가 빚을 지고 어딘가에 소속된 게 아니라 더 나은 상황이었던 걸로 보여요. 저자는 남자친구의 제안(?!)으로 거리성매매로 시작했고 중간에 그 남자친구랑 헤어지거든요. 에스코트도 해보고 업소에도 들어가지만 그런 업소 자체에 구속력이 있었던 것 같진 않아요.

우울과 자살충동에도 시달렸고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가서 새 학교에 넣기도 했어요. 저자가 언제 아이를 낳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이미 성장하긴 했지만 본명으로 이 책을 쓰라고 해준 아들에게 혹여 누가 되진 않을까 싶어 아이를 낳게된 배경은 생략한 것 같아요.
탈성매매 한 후에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존재조차 몰랐던 이모와 고모를 알게 되고, 그래서 중도포기했던 교육도 다시 받게 됩니다.

저자 개인의 능력도 충분히 발휘된 걸로 보여요. 그 안에서 문제점을 보고 인지하고 어떻게 해야 겠다는 의지를 다잡고 하는 것들을, 마음먹는다고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요. 여러모로 대단한 책이었어요.

잠자냥 2019-12-02 14:09   좋아요 0 | URL
역시 약물중독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군요.... 저자가 암튼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본인 의지도 대단하지만 이모와 고모라는 존재도 참 행운이었군요.

(‘앳존항‘ 과연 어떤 단어에서 나온 오타일까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사전 찾아본 1인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02 14:23   좋아요 0 | URL
네 다른 사람들보다 더한 의지와 실행력도 있었고 운도 작용했다고 보여요. 야속하게도 그 운이 성매매 유입 전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합니다만... ㅠㅠ


사전 찾아보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앳존항은 도대체 어떤 항구의 이름일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9-12-02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