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대화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각자 어떤 대화냐는 다르겠지만, 아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친밀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나의 경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에너지를 듬뿍 받는 타입이다. 앞으로의 일상을 유지하게 해줄 힘이 된달까. 사랑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며 사랑이 언제나 답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랑 없이도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랑을 주고 또 받는다는 확신에서 오는 충족감은 그 자체로 고유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은 많은 경우에 대화로 가능해진다.


슬퍼하거나 짜증날 때 유독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내 안에 사랑과 욕망이 가득찼을 때, 기쁨과 환희가 가득찼을 때 그걸 털어놓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내가 얼마나 사랑을 하는지 그리고 사랑을 받는지, 내가 얼마나 지금 기쁜지 얼마나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진다.


며칠전 읽었던 책으로 리뷰도 썼지만, 공부뽕 가득 찬 것에 대해서도 마구 수다를 떨고 싶다. 그 날 당장 친구와 문자메세지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직 나는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더 하고 싶다. 저자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했는지에 대해서 조잘조잘 얘기하고 싶다. 아직 그 공부뽕에 대해서도 다 얘기하지 못해 뭔가 가슴 속에 쌓여있는데, 그런데 또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다. 'E. M. 포스터'의 《모리스》를 읽고 그런게 생겨버렸다.


상대의 눈을 보고 묻고 싶은데, 너라면 어떨것 같아 묻고 또 그 답을 듣고 싶은데, 한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모리스에 나를 대입해 이야기나눠보고 싶은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나는 욕구불만이다. 자, 글로라도 쓰도록 하자.



















모리스는 대학에 다니며 클라이브랑 사랑을 하게된다. 남자와 남자이니 동성애다. 그들은 3년간 사랑을 나눈다. 그들에게 생애 처음 사랑이었고 또 그들은 서로에게 반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클라이브의 태도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모리스는 예전처럼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클라이브는 묘하게 달라졌어. 그러더니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가 싫어져서' 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정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자를 사랑했던 그는, 이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다. 동성애는 감춰야하고 병이고 죄악이었던 그 당시에 클라이브는 자신이 이제 '정상'이, 무려 '정상'이 되었다고 하는 거다. 그러면서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하는 거다.



이것은 모리스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나랑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성(SEX)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하니, 대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앞으로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여태 이성애를 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가족이 아닌 타인은 '남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와 연애하던 시절 나를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고 이성(SEX)적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연애를 했다. 우리는 그 시절 많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나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내 사랑을 줬고 열정을 줬다. 시간과 에너지도 줬다. 우리가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나와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어느날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 이제 더이상 너랑 연애를 할 수 없어, 나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어." 라고 한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걸까. 나는 어쩌지? 다른 성(SEX)을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나에게로 돌아와'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먹힐까? 아예 성적 취향이 바뀌어버린건데, 그런 사람에게 나에게 돌아와, 우린 다시 사랑해야해, 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클라이브는 이제 '정상'이 되어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리스와의 사랑도 끝나버렸다고. 그러나 모리스에게 이 얘기는 갑작스럽고 모리스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 사랑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너는 이미 정리가 되었고 다른 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당연히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클라이브가 여자랑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을 때조차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다. 그 기대는 그렇게나 오래 간다. 그러나 클라이브에게 동성애는 이제 역겨운 것이 되어있고, 모리스가 어서 빨리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축복받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클라이브와 모리스는 가장 가까운 사이었다가 이제 그 누구보다 멀어진 사이가 된다.


그러나 클라이브가 모리스를 사랑했던 시절, 그 강렬한 우정은 진짜였으므로,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다시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 그렇게 되어야지. 그러나 모리스의 동성애를 고쳐야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리스의 사랑, 모리스의 성적 취향은 고쳐질 수 없는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선천적인 것이었다. 그런 모리스 안에는 다른 남성을 향한 욕망이 들끓어 오른다. 플라토닉 한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사랑을 갈망한다. 그는 그 모든 걸 나눌 애인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치료도 받으려 해보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모리스가 되어, 나에게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나의 이성애인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나는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나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성적 취향이 바뀌었다면,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돌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만약 다른 여자가 생긴 거라면, 다른 사랑을 하는 거라면, 기다릴 수 있다. 어쩌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라도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쯤은 있는 거니까. 동백이 엄마는 용식이에게 '기다리면 안와, 기다리는 사람은 쳐들어오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어쩌면, 조금쯤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그가 좋아하는 성별에 내가 속하니까.

그러나 그가 동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나의 기다림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나는 거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가 이성애를 하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다시 이성애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만약 그가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나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이 끝나버렸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친구로 남는 방법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모리스는 클라이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관계는 나와 그의 관계와 다르고, 나는 모리스가 아니다. 나는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그의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내 안에 애정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소식을 전하며 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을 접고, 연인의 포지션은 세이 굿바이 해야겠지만, 친구의 포지션으로 새롭게 헬로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잡아도 소용이 없잖아. 그러면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라는 포지션을 내 안에 되새기면서.



"그러면 우리 좋은 일 있으면 알려주는 사이가 되자."

"그래."

"음, 나쁜일도 알려주자, 그냥 일어나는 일 모두 다."

"그게 사귀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러면 30프로만 이야기하자."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오래오래 친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동성애인을 질투하게 될까? 모르겠다.




모리스는 스물네살이다. 새로운 애인을 만났다. 모리스는 젊다. 나는 모리스가 참 젊구나, 생각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그는 이미 성숙한 어른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내가 보는 모리스는 젊다. 계급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우리 함께하자, 라고 말할 수 있는 데에서는 아, 나는 그가 한없이 젊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답이었을지도 몰라. 현실감각 없이 무조건 사랑하니까 우린 함께하자, 라는 것이 궁극적 답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어야 했을까?



나는 아무 상관 없어. 누구라도 만날 거고, 어떤 일도 피하지 않을 거야. 의심하려면 의심하라고 해. 그런 건 이제 지겨워. 형한테 표를 취소해 달라고 해. 비용은 내가 댈 테니. 그게 바로 우리가 자유를 얻는 출발점이 되는 거야. 그리고 나서 다음 일로 넘어가는 거지. 모험이지만 이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은 없어.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잖아. (p.329)



그러게.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런데도 그런 선택들을 하고 결국은 이렇게 사는 것이, 내게 최선이었을까? 나는 잘하고 있는걸까? 나는 최선을 선택한걸까? 이게 맞는건가? 이게 나한테 더 나은건가?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모리스와 그의 애인에게는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 그러니까 모리스가 '그가 어디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 약속을 한 것도 아니지만, '어딜가야 그를 볼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그가 있는 장소, 그가 있고자 하는 장소, 그에게 그곳에서 만나자, 했던 바로 그 장소, 펜지의 보트하우스.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펜지의 보트하우스 같은 장소를 꿈꾸었다. 나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거기에 가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를 만날 수 있는 장소. 그러나 애인과 있었던 시간을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런 장소를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장소가 없었으니까. 올림픽공원의 어느 호수앞 벤치, 이런거 정해뒀으면 좋았을텐데.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으면서, 나는 외로울 때면 항상 여기를 와요, 나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꿈이었어, 나는 모든 생각을 여기에서만 해, 나는 여기에 오면 마음에 안정을 찾아, 여기 이곳을 내가 무척 좋아해, 여기서 저 호수를 바라보면 그곳이 천국인 것 같아, 나는 주로 여기서 시간을 보내, 여기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완벽해, 나는 항상 당신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 나만의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런 곳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에게 그걸 언급한 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를 만나고 싶어질 때, 그러나 대체 어디로 가야 나를 만날지 알 수 없을 때, 아 맞다 거기에 가면 그녀가 있어! 이런거 확신하고 달려올 수 있을텐데. 다다다닥 숨이 차게 뛰어 오면 벤치에 여느때처럼 가만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혹은 책을 읽는 나를 만날 수 있을텐데. 그러면 그는 가쁜 숨을 다독일 수 있을텐데. 헉헉, 숨을 내쉬면서 진정시키고, 여기에 오면 너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여기에 있는 건 변함이 없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텐데. 나는 그에게 여기에 있는 거 알면서 왜 뛰어왔어, 하면서 내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고, 가만 옆에 와 앉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넬텐데. 땀 닦아, 냄새난다...


(응?)



모리스와 애인에게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는 게 너무 부럽다. 너무 부러워.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 나도 갖고 싶어, 펜지의 보트하우스. 그리고 그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도 몰라, 나는. 그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그가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몰라. 아, 자기 방 침대... 그런 거 말고. 나도 그런 거 있어야 되는데, 오고 싶을 때 와서 나 만날 수 있게.


자, 잘들어라.

내가 이제 말해줄게.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를.

어디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는지 말해줄게.

약속없이 나를 만나려면 어디로 와야 하는지 말해줄게.

잘 들어, 두번 말하지 않아. 이 여자가 어디있을까, 어디로 가면 이 여자를 볼 수 있을까, 안타까워 뛰어오고 싶다면, 나는, 바로, 언제나,




회사에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일곱시반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그 시간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회사에 있다!!!!!!!!!!!!!!!!!!!!!!!!!!!!!!!!!!!!!!



내 사무실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초조해하지말고, 어디에 있을까 발 구르지 말고, 안타까워하지말고, 애태우지말고, 그냥,



회사로 와! 내 사무실로 와! 내 회사가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 다!!






어제 집에 가서 바질페스토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오전에 그걸 만들 생각에 들떠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만들었어. 그렇게 상을 차려냈다.





그러나 맛은.. 내가 기대한만큼은 아니었어. 흐음. 나는 내가 만든 파스타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만들어서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파스타 를 안좋아하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거 먹다가 결국 밥을 갖다 먹었는데, 왜냐하면 저 사진만 보면 우아한듯 보이지만, 사실 감춰진 솔직한 사진은 이것이다.





갓김치랑 총각무김치가 있었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술상이여. 저렇게 먹다가 밥 먹고 싶어서 밥 가져와서 먹으면서, 역시 나는 밥과 김치가 좋아. 내가 만든 파스타는 싫어.. 하게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만든 파스타를 나는 싫어해. 으하하하하.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배도 좀 불렀고. 넷플릭스 화면을 열고 뭘 볼까 하다가, <인간중독> 포스터를 보았다.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송승헌의 섹스씬 연기가 매우 구렸다고 기억하고 있고, 영화도 별로였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송승헌에 비해 꽤 열연했다고 기억하는데, 그런데 여자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자 매우 속상해졌다. 한 영화에서 여배우에 대해 기억하는 게 노출이 많고 섹스씬 열연이라니, 이제와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니. 물론 내가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뭔가 배우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다시 오만년만에 인간중독을 재생시켰다. 여전히 송승헌의 섹스신은 엄청 구렸다. 도무지 움직일줄 모르는 남자였다. 저렇게 잘생겨서 연기를 어쩜 저렇게 하냐 싶었다. 여자배우가 확실히 훨씬 더 열심히 연기하는 것 같았다. 여자배우 이름은 '임지연' 이었다. 이 영화 당시에 에로틱하다고 엄청 선전하고 배우의 노출씬으로 얘기도 있었던것 같은데, 그 후에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 그 당시 그녀의 노출이나 에로틱한 장면들로 이슈가 되었을지언정,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 그녀의 일은?





영화를 다시 본 게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니, 임지연은 분명 다른 필모들을 채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본 임지연의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다. 아무것도 안하진 않았을텐데, 분명 뭔가 했을텐데.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해보니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더라. 그러나 그중에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워낙에 한국 영화를 안보고 텔레비젼을 안보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뭔가 하나를 더 보자, 싶었다. 어쩌면 이렇게 볼만한 게 없을까. 내가 좋아할만한 작품이 아무것도 없네.. 그나마 다운로드가 가능한 게 [럭키] 였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 아아, 나에게 내적갈등 찾아온다. 간신도 보기 싫은데 그렇다면 럭키 뿐인가.. 럭키.. 넘나 내 취향 아닌 영화.. 관심이 1도 없는 영화인데, 나는 임지연을 보기 위해 럭키를 보아야 하나. 나여..


넷플릭스에 럭키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있었다. 그래, 넷플로 보자. 임지연님, 님을 보기 위해, 님을 기억하기 위해 저는 럭키를 봅니다. 럭키를 다운로드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좋은 작품을 필모에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말이다 보니 다들 시간이 빠르다, 벌써 12월이다 얘기를 한다. 그만큼 많이 하는 얘기가 아마도 '한 것도 없이 시간만 갔네'일 것이다. 해놓은게 뭐있나, 아무것도 없다, 하는 얘기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무언가를 했을거다. 하다못해 맹렬히 살아오기라도 했잖아.


회사에 입사한지 이제 1년 되어가는 막내가 며칠전에 그랬다. 차장님 벌써 12월이에요, 입사하고나니 시간이 빨라요, 아무것도 한 거 없는데 나이만 먹어요, 하고. 이제 이십대 초반의 막내가 자신이 일년간 한 게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씨가 한 게 왜 없어, 회사에 입사해서 돈 벌고 있고 2개월전부터는 운동도 시작했잖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 두 가지를 올해 시작했는데, 얼마나 대단해."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날까지 살아오면서도 '살면서 한 게 없어'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또 말을 하기도 하고. 이번 해에 나에게는 어떤 뚜렷한 사건도 업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이 시간이 흐른 건 아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무사히 마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가.



일 년간 일상을 보내느라 다들 고생하지 않았나.





오늘 아침엔 집에서 밥을 안먹고 나왔는데 회사 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스벅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굳이 사진 찍어 올린다.







아, 그리고 이 얘기 저 얘기 해서 까먹었을까봐 끝에 다시 쓰는데,



태사자는 집에 있고

나는 회사에 있다.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회사로 오면 된다.

까먹지마.






그는 반듯하게 살기로 했지만, 그건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도 속이지 안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이것이 시금석이었는데-남성에게만 끌리는 마음을 두고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남자를 사랑했고,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남자를 끌어안고 싶었고 자기 존재를 그들과 융합시키기를 열망했다. 이제 자신의 사랑에 응답해 준 남자를 잃어버리고서 그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 P85

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너댓 명가량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물론 그도 클라이브와 마찬가지로 홀어머니에 여자 형제만 둘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둘 사이의 유대감을 설명하기에는 클라이브의 두뇌가 너무 냉철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홀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고, 그건 최소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둘이 다시 만나자마자 그는 솟구치는 감정에 휘말려 친밀한 관계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남자는 부르주아였고 세련미도 없고 어리석었다. 마음을 터놓을 상대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더럼은 집에서 일어난 문제를 그에게 이야기했고, 그가 채프먼을 무시하고 돌려 보낸 일에 정도 이상으로 감격했다. 홀이 장난을 치기 시작하자 클라이브는 매혹되었다. - P99

「모리스, 모리스, 모리스 ……아, 모리스 ……」
「알아.」
「모리스, 사랑해.」
「나도.」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키스했다. 그런 뒤 모리스는 올 때처럼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 P102

그 뒤로 2년 동안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남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누렸다. 그들은 천성이 다정하고 굳건했으며, 클라이브 덕분에 날카로운 분별력도 발휘되었다. 클라이브는 황홀한 감정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향한 길을 낼 수 있음을 알고, 지속적 힘을 가진 관계를 꾸려 냈다. 사랑을 만든 것이 모리스라면, 그것을 보존하고 사랑의 강물로 정원에 물을 댄 것은 클라이브였다. 그는 냉소나 감상 때문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낭비되는 걸 참지 못했다. - P137

클라이브는 요즘 온화한 태도를 잃었다. 모리스가 볼 때 그것이 가장 심각한 증상이었다. 그는 작은 악의가 담긴 말들을 심심찮게 했고, 모리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이용해서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그는 모리스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랬다면 강건한 자의 사랑을 흔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따금 그가 외면적으로 공격을 피하는 듯 보이는 것은 반응을 하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부터 다른 뺨도 내주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면적으로는 아무것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합일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분개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때로 평행을 다리는 대화를 자못 유쾌한 태도로 진행하면서 가끔 클리이브가 곁에 있음을 확인하듯 그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가 뒤따라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홀로 빛을 향해 나아갔다. - P154

「알렉, 너한테 친구가 있는 꿈을 꾼 적이 있니? 오직 <내 친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닌 사람, 너를 도와주고 너도 그를 돕는 사람. 친구.」모리스는 갑자기 감상에 젖어 되뇌었다. 「너의 온 생을 함께하고 너도 그의 온 생을 함께할 사람. 그런데 나는 꿈이 아니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 P278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애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불가피했다. 그런 뒤 눈이 아파 오기 시작했고, 그는 지난 경험으로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았다. 그는 곧 자제력을 찾았다.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선 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했고, 어머니를 달래고 만찬 주최자에게 사과를 하고, 면도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는 평소처럼 출근햇다. 산더미 같은 일이 그를 맞았다. 그의 삶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도 없었다. 클라이브를 만나기 전에 그랬듯이, 그와 헤어진 뒤 그랬듯이, 그는 다시 외로움을 안고 남겨졌고 그것은 이제 영원할 것이다. 그는 실패했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알렉도 실패하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한 사람이었다. 사랑은 실패했다. 사랑은 이따금 기쁨을 가져다주는 감정일 뿐이었다.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P330

그는 지난 6년 동안 피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고 로맨스가 시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렉은 영웅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저 모리스처럼 사회에 파묻힌 한 남자였으며, 그를 위해 바다도 숲도 산들바람도 태양도 찬미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날밤 호텔에 가지 말아야 했다. 그 때문에 너무도 큰 기대를 품게 되었다. 빗속에서 악수만 나누고 헤어져야 했다. - P332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너져선 안 된다. 그는 클라이브 때문에 무수히 무너졌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컴컴해지는 폐허에서 무너진다면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마음을 굳게 먹는 것, 냉정을 유지하는 것, 믿음을 갖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 P339

모리스는 손을 폈다. 빛나는 꽃잎들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그래, 너는 내게 얼마간은 마음을 쓰지.」그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 얼마간에 내 인생 전부를 걸 수는 없어.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앤한테 네 인생을 걸고 있어. 너는 그 관계가 플라토닉한지 어쩐지 하는 건 걱정하지 않고 그저 그게 네 인생 전부를 걸 만큼 중요하다는 것만 알아. 나는 네가 앤과 정치에 쏟고 남는 5분 동안 써주는 마음에 내 인생을 걸 수는 없어. 날 만나는 일만 없다면 너는 나를 위해서 모든 걸 다 해줄 거야. 이 지옥 같은 1년 내내 그랬으니까. 너는 내가 네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또 나를 결혼시키려고 아낌없이 수고할 거야. 그래야 손을 털 수 있을 테니까. 너도 나에겐 얼마간은 신경을 쓰지. 나도 알아.」 - P346

클라이브가 항변하려 하자 그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네가 원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네 사람이었겠지만, 이제 내 인생은 다른 남자의 것이 되었어. 평생 한탄 속에 방황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그 남자는 네게는 충격적인 의미로 내 사람이야.」 - P347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12-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 왜 푸짐해요? 설레게? ㅋㅋㅋㅋㅋㅋㅋ 저 새우 봐 동해바다 새우 다 들었네! 나 왜 신남??

다락방 2019-12-05 14:25   좋아요 0 | URL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저 새우 베트남산 새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모리스 관련 내용 읽으면서는 아련했는데 갑자기 파스타에 총각무에서 빵터지잖아요. ㅋㅋㅋㅋ 파스타에 갓김치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다락방 님 덕분에 모리스 다시 한번 읽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9-12-05 14:45   좋아요 0 | URL
파스타에 갓김치 먹으니 갓김치가 파스타를 죽여버렸어요. 결국 갓김치승!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 책 읽고 뭔가 막 아!! 이렇게 되어서 토요일에 모리스 영화 충동적으로 예매해뒀거든요. 근데 극장 가자니 세상 귀찮음이 밀려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소할까, 또 이러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5:31   좋아요 0 | URL
우아 이 영화 엄청 좋아요. 근데 거의 막 내렸던데 어디서 예매를!
전 시간 안 맞아서 결국 스크린에서 보는 거 놓쳤어요. ㅠㅠ
(아 뾰루지 글 봤어요. 집에서 쉬세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05 15:53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KU시네마테크 에서 합니다. 건대.. 건대는 저희 집에서 멀지 않아 예약했건만..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 봐서 다시 예약하든가 해야겠어요.

하늘초록 2019-12-0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봤어요..글 읽어보니 책이 훨 좋을것같네요..^^

다락방 2019-12-06 17:41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하는 분들 많던데, 저도 읽으니까 좋더라고요.

보슬비 2019-12-0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꾸떡한 파스타가 좋아서 자주 막해서 먹어도 맛있던데요 ㅋㅋㅋㅋㅋ
사실 저도 바질페스토로 파스타는 성공 못했어요. 오히려 바질 페스토는 호밀빵에 발라서 치즈 올려먹거나, 맛있는 빵에 찍어 먹는쪽이 더 맛있더라구요. 그리고 이번에 저도 파스타 먹으면사 갓김치 먹었는데, 다른점은 푹 삭은 갓김치를 씻어서 달달고소하고 볶아서 같이 먹으니 피클보다 더 낫더라구요 ^^

다락방 2019-12-08 13:05   좋아요 1 | URL
바질페스토는 역시 빵에다 발라먹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스파게티는 정말 별로였어요. 그냥 오일파스타가 나은 듯..
보슬비님은 진짜 요리왕이신 것 같아요. 갓김치를 씻어서 볶아 먹을 생각을 하다니... 와, 저는 읽으면서도 그 맛이 상상도 안돼요. 오늘 아침은 늦게 일어나 라면 끓여서 밥 말아 먹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12-0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2-08 13:04   좋아요 1 | URL
https://blog.aladin.co.kr/fallen77/9985143

이 페이퍼 참고하세요. 태사자를 아실 수 있습니다!!

clavis 2019-12-1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생했어요 ㅠㅠㅠ락방님 누구세요? 누구시기에 저의 1년을 위로해주시나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가장 로맨틱하게 만드시는 회사에 계신 락방님!

저도 가장 작은 것을 가장 열정적으로..
체육과목 레포트하러 떠나겠습니다

다락방 2019-12-17 14:19   좋아요 1 | URL
체육과목도 레포트가 있나요... 어지러운 세상이네요.
아니, 클래비스님이야 말로 누구보다 고생하신 분이 아닙니까.
그 먼 나라에서 시험보랴 공부하랴 연습하랴 적응하랴..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일 년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클래비스님. 연말과 연초에는 그토록이나 고생한 클래비스님께 평안과 안정이 깃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