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신박진영 지음 / 봄알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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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의 [레이디 크레딧]을 더 잘 읽기 위해 중간에 신박진영의 이 책을 꺼내왔다. 읽다보니 절반 정도 읽어둔 [레이디 크레딧]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레이디 크레딧은 성매매 안의 경제적인 착취 구조에 대해 더 비중을 싣고 써냈다면, 신박진영은 그 착취적 구조 속에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상품으로 소모되고 있는지, 얼마나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 더 비중을 싣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신박진영은 20년간 성매매 여성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여성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들에게 찾아가 여성들을 구출하는 일부터 시작해 성매매방지법 제정운동까지. 그녀는 누구보다 성매매여성들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한결같이 지금까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오며 신박진영이 자신이 정한 경계는 '성매매는 노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며 그것을 노동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을 성착취에 그대로 놓아두게 된다는 것이었다. 


성매매 비범죄화, 성매매 합법화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대하고 있고 거기에 대한 근거로는 이미 합법화를 하고 있는 나라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근거로 가져온다. 우리가 무엇을 시장에서 팔 수 있다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것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경쟁업체가 생긴다면 더 잘 팔기 위해 가격을 후려치거나 좀 더 싼 값에 원료(재료, 상품)를 구하려고 할 것이다. 여성을 상품화 하는게 합법적이 된다면, 그 여성들이 더 낮은 평가를 받고 후려쳐지는 것, 심지어 공짜로 데려올 수 있는 인신매매까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특별한 서비스까지(아이패드로 음료와 여자를 주문하며 음료를 마시는동안 그 여자가 오럴을 해주는 것도 가능해지는 실제 사례가 이 책에 나온다) 가능해진다. 


진보입네 자처하며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의 권리를 말하는 남자들(이 책에서는 김두식과 지승호)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결국 너희들은 그 안의 착취구조를 무시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적극적 동의라고. 성매매와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한 발을 뺀 채 당사자를 이용하는 행위(p.222) 라는 것이다.  진보지식인의 책임 회피나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행위 그리고 게으른 자세까지를 지적하는 신박진영의 모든 생각에 동의한다.



리뷰는 이정도로 하고 끝마쳐도 되지만, 읽다 보니 실제 성매매 여성이었던 '레이철 모랜'의 책이 자꾸 생각나고 또 이 책의 내용과 겹쳐서 좀 가져오야겠다. 신박진영은 이 책에서도 고급 성매매와 그보다 낮은 성매매에 대해 언급한다. (텐프로, 쩜오) 그러나 그 일에 있어서 '유흥접객원의 역할은 동일'(p.103)하다고.


이 점에 대해서는 레이철 모랜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고급‘ 성매매 시장에서 겪었던 경험들만큼 ‘고급‘같지 않은 일은 없었다.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데 품격이 있을 리 없고, 성매매가 일어나는 환경이 상관있을 리 만무하다. -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P152


고급 창녀 신화는 대체로 그 신화를 믿으려고 섹스에 큰 돈을 지불하는 구매자들의 욕망과 맞닿으므로(성매매의 다른 신화들과 같이) 계속 지속된다. 많은 성구매자들이 에스코트 에이전시에 전화하면 고급의 질이 집 문 앞에 도착할 거라 짐작하고 싶어 하며, 그 질에는 고급의 여자가 부착됐을 거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고급 창녀의 개념은 성매매 시장을 극대화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고, 그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P157



성매매의 본질은 그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하얀 리넨에 엉덩이를 비빈다고 성매매가 다른 것으로 변하진 않는다. -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P164


또한 레이철 모랜이 자신의 책에서 말한 '타락의 상호작용' 역시 신박진영은 자신의 책에서 얘기하고 있다. 성구매자들은 '포르노에서 학습한 것들을 성매매 안에서 실현하려 한다'(p.142)는 것, '특이 취향 자체가 문제되기보다는 그에 일방적으로 맞추어주고 무엇이든 받아주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의가 크다'(p.142)는 것. 


그 남성은 생리혈에 성적으로 도취되었다. 그의 성향은 평생 성매매 여성을 방문하도록 이끌었는데, 당연히 사생활에서 만나는 여성들과는 이런 욕망을 공유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성매매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자신과 인생을 공유하는 여성에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이성적으로 기대를 할 수 없는 변태 성향을 다른 계층의 여성에게 떠넘기려는 남성의 고집이다. 여성들은 존중과 경멸, 품위와 천박, 종경과 비난이라는 두 부류로 구별되게 나뉜다.

내 친구는 생리혈이 가장 많이 나올 때 그 구매자와 만나기로 하고 적어도 만나기 하루 전에 탐폰을 착용해서 피에 흠뻑 젖도록 했다. 그 구매자는 항상 단호하게 탐폰이 완전히 젖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만나면 그녀는 탐폰을 빼고 그 구매자는 어린 시절 경험을 다시 살게 된다.

나의 친구와 그 캐나다인 성구매자 사이 특이한 타락의 상호작용은 이렇다. 그 친구는 그 구매자가 만났던 모든 여성들과 감정적으로 거리를 갖게 만드는 그의 더럽고 역겨운 습관이 지속되어 그 구매자가 자신의 가치를 낮추도록 도모했으며, 그 구매자는 다른 어떤 여성에게도 제시하지 못할 역할을 감히 그녀에게 제시함으로써 그녀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성매매 내 타락의 상호작용은 바로 이와 같다. 영향을 주고, 반영하며 합병하면서 쌍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요구되면 제공되고, 찾으면 충족되고, 제시되면 받아들여진다. 타락은 스스로 갱신하고 재생하는 데 고수이고, 특정 박테리아가 습한 장소에서 가장 잘 번식하듯이 타락은 성매매를 가장 최적의 환경으로 여긴다.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 p.146


신박진영은 '구매자의 인격도 성매매 여성의 인격도 이곳에서는 돈이 지불되는 순간 사라진다'(p.150)고 했는데, 이것은 레이첼 모랜이 말한 '타락의 상호작용'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될 것 같다.



바깥에 날씨도 좋은데 나는 주말에 이런 책을 읽고 있었다.




예컨대 정치적 올바름이 여성 개인의 생존과 부딪힐 때 옳고 그름만으로는 사태를 판단할 수 없다. 매 순간 어떤 입장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을 통과해 지금의 나는 성매매는 사업도 직업도 아니며 결코 이를 ‘노동‘이라 부를 수 없다는 최소한의 선(경계)을 가지게 되었다. - P16

성매매를 노동이라고 말하는 순간 착취는 그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이 된다. 성매매 안의 착취적 본질은 악당 같은 포주와 특별히 폭력적인 몇몇 구매자만 제거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가 곧 성 착취다. - P18

이런 세계에서 입장 없음의 입장을 견지한다면 결국 현 상황의 방관자가 될 뿐이다. - P19

성매매에서 ‘남성의 본능 수호‘오 ‘성매매 여성의 자율 수호‘는 한 쌍처럼 붙어 다녔다. - P23

그러나 이런 여인의 육신을 일시의 상품으로나마 사야마 할 기회조차 없으면 안 되는 독신 노동자 빈민은 어떻게 할 것인가(오기여, <공창> 중)


위 글이 발표된 것은 1946년이다. 일제 강점기 해방 직후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독립의 기쁨을 나눌 때에도 성매매 여성들은 열외였다. 이들은 빈민 계층 독신 노동자의 성욕 해소를 위해 계속 ‘공창‘에 남아주어야 했다. - P23

‘성 판매 여성‘은 ‘판매‘하는 여성의 자율성을 부각하여 성매매를 사회적 구조 속에 놓이는 총체적 틀에서 볼 수 없도록 만든다. - P25

성차별적 사회 안에서 자원의 기울기는 언제든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킨다. 자원은 돈에만 있지 않다. 여성을 창녀라는 프레임 안에 둘 수 있는 것은 여성이 결국 남ㅅ멍의 소유물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 P26

성매매는 ‘도시의 하수구‘라며 성매매 여성을 정화의 도구로 호출하고 「늙은 창녀의 노래」에서 삶의 영감과 위로를 받는다는 남성들은 대체 누구를 증오하고 무엇을 찬양하는 것인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끌어내리지 못해 안간힘을 쓰고 여성을 구매할 수 있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쓰면서 동시에 여성들을 창녀라 낙인찍을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 P28

[성매매방지법]제정 이전 수많은 ‘퇴폐 이발소‘가 조직형 · 기업형으로 운영됐고, 명절에는 성매매 집결지에 방이 모자라 업주들이 인근 모텔까지 빌려 영업을 했으며, 여관발이 성매매와 목욕탕 성매매는 24시간 영업이 돌아갔다.낮시간에도 근무 중 잠시 ‘쉬러‘오는 사무직 남성들로 늘 북적였다는 게 당시를 경험한 성매매 여성들의 증언이다.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당시부터 한국의 성매매는 남성들이 받는 모든 서비스 업종에 부차적으로 제공되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가는 곳 어디든 성매매가 가능하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5

성매매는 매우 계획적인 행동이며 더구나 돈이 있어야 실행 가능하다. 남성들은 사회적 여건을 따져 성매매를 선택하며 자신의 경제 사정에 따라 구매를 계획한다. 돈과 계급이 관여하는 성매매 시장 안에서 이들은 구매자 남성 간의 위계화, 좌절, 소외 등을 겪는다. 성매매는 본능의 영역이 아니라 문화와 경제, 즉 구조화된 체계 속에 있다.
한국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시키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재생산하는 이러한 통념이다. 남자는 짐승이고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를 못 하게 하면 성범죄자가 된다는 말에 진정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 P38

구매자들이 업주에게 하는 가장 첫 질문이 ‘가장 어린 애가 누구냐‘라고 한다. 그리고 귀신같이 제일 어린 여성을 선택한다. - P41

장애인권의 문제는 보편적 복지와 닿아 있는 영역이다. 이런 사안을 성매매할 권리로 치환하는 건 문제적이다. 장에인에게도 성 구매자가 될 권리를 주라는 주장이 ‘인권‘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섹스 볼런티어에 나서야 할 이들의 인권은 열외로 하고, 대형 성매매 업소를 마치 장애인 인권을 위한 장소인 것처럼 홍보 하는 것은 지극히 한국 남성 성 구매자의 관점이다. - P43

2018년 KBS 「추적60분」에서는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성매매 업소가 2393개로 전국 고등학교보다 많다는 비교를 통해 한국 성매매 시장의 거대함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 P48

한국의 거대한 시장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가 성매매를 용인하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성매매 시장 규모를 줄여나가기 위한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거대한데 어쩌겠는가‘와 같은 ‘통념‘은 방법론일 수 없다. 누가 이 같은 체념을 추동하고 성매매를 자연적인 것으로 만드는지, 그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 P50

남자친구의 성매매 이력을 알려준다며 사업을 시작한 ‘유흥탐정‘이라는 사이트는 경찰이 잡고 보니 ‘골든벨‘이라는 성매매 알선업자들의 공유 애플리케이션에 등록된 무려 1800만 명의 성 구매자 명단을 이용한 것이었다. - P53

조용하고 얌전한 듯 굴면서 시킬 건 다 시키고, (일본도)한국처럼 콘돔을 안 쓰려는 구매자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 P56

부녀자를 접객원으로 두고 술을 따르고 흥을 돋우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다. - P57

지금 한국에서 성매매를 논할 때 ‘성매매는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거나 ‘우리 역사에 이미 오래도록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물론 그러므로 현재의 성매매가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피력하기 위한 말이다. 하지만 노예제 시절을 되새긴다고 지금도 노비와 신분제가 필요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래되었고 예전에도 있었다는 것이 현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 P59

남성의 욕구를 위한 도구로서 국가적 관리 대상이 되는 여성들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동원되면서도 동시에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 P65

좀 더 자란 뒤 성매매를 문제적으로 인식하면서 나는 내가 생각보다 성매매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 과거의 장면들에 성매매와 연관된 이미지와 장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근대무학으로 배운 단편소설에서, 무수한 영화 속에서, 길거리에서, 어른들의 사사로운 이야기에서 성매매는 이미 당연한 일상의 구조와 문화로 어디에나 존재했다. - P70

성매매를 당연시하고 여성들의 몸을 전시하고 쇼핑하기를 권리로 여길 때, 다른 모든 여성 서비스 직종 또한 성매매화된다. 성매매 합법화나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사례로 드는 대표적인 나라들의 상황도 동일하다. 성매매를 허용하는 스위스는 창의적인 업태들을 속속 만들어냈다. 2013년에는 지방정부가 길거리 성매매를 위한 드라이브인(drive-in) 성매매 장소를 만들더니 2016년에는 ‘페이스걸(facegirl)‘이라는 업체가 음료를 마시는 동안 구강성교를 제공하는 커피숍을 개장했다. 이 업소에서는 아이패드형 메뉴판으로 여성과 음료를 주문한다. 성매매가 ‘된다‘고 하는 순간, 그 가능성은 곧 ‘시장‘이 된다. - P88

더구나 국가 정책으로 만들어진 성매매 시장은 공권력과의 결탁을 배태하게 된다. 성매매 아선 업소들과 공권력의 뿌리 깊은 유착·부패는 성매매 시장의 본질적 성격에서 기인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성매매 알선 조직의 거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엄청나게 커진 규모의 경제가 권력을 만들고, 이 권력이 공권력조차 하수인 또는 공모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경찰도 이 ‘잘나가는‘ 사업에 끼어들기 위해 업주와 친구가 되고 투자자가 되고 결국 스스로 업주가 된다. 검찰은 스폰서 노릇을 자처하는 거대 업소의 조력자가 된다. - P89

온갖 직군의 사람들이 성매매 알선에 나서는 것은 손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개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포주와 공모하고 조직 폭력 단체로부터 현직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성매매로 기꺼이 이 이득을 취한다. 한편에서는 사채업자가 다른 한편에서는 무당이 성매매를 종용한다. 한국 사회의 온갖 자리에서 이들은 성매매 알선에 각자의 권력을 사용하고 이로써 부를 축적하고 있다. - P99

이 같은 남성들의 유흥은 대중문화를 통해 수업이 재현되면서 일상적인 것이 된다. 흥행에 성공한 「내부자들」(2015) 「베테랑」(2015) 을 비롯해 한국의 근·현대 사회상을 그리는 대표적 영화들에서 유흥업소는 사건이 이루어지는 매우 핵심적인 장소로 등장한다. 이곳에서 남성들이 서로의 권력고 연대를 재확인하며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동석한 접대 여성들의 모습 또한 반복적으로 배경이 된다. - P100

거절과 저항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사진고 영상을 찍고 부지런히 업로드하는 남성들은 누구의 인정이 필요한 걸까. - P116

비단 연예인뿐 아니라 정치인, 언론인 등 자신의 커리어 관리를 위해 여론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성 구매에 나선다는 것은 그들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이 크게 문제시될 일이라 여기지 않는 사회 환경에 기인한다. - P117

성매매하고, 성매매 사실을 경쟁하고 인증하는 이 소비자들은 알선 시장의 노예다. 돈을 바치고 열광적으로 후기를 게시하며 인정받으려 애를 쓴다. 성 구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도록 만들어진 사회에서 남성들은 성구매자로 창조된다. - P118

대부분의 여성에게 가장 큰 진상은 할 거 다 하고 돈을 안 내거나 사정 못 했다고 또는 서비스가 맘에 안 든다고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이들, 정해진 서비스 외에 더 많은 걸 요구하면서도 돈은 더 내지 않는 이들이다.
구매자들은 성매매 여성을 멸시하며 ‘돈 받고 몸이나 파는 주제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스스로에게도 함정이다. 그 역시 그‘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P119

성 구매자는 섹스에서 소외된 시장의 노예일 뿐이다. - P123

남성들은 다른 한 성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고 다 함께 그 구매권자가 됨으로써 그들 사이의 위계에 내재하는 착취와 폭력을 지워버린다. 절대적으로 낮은 계급(비남성)이 존재할 때 남성 간의 위계는 상대적 특권이자 견딜 만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특권을 잃지 않기 위해 남성 동성 집단은 부조리에 침묵하거나 착취에 공모한다. 또한 동성 사회에서 힘 있는 남성의 착취를 고발하는 대신 그들 외부의, 보다 낮은 계급인 여성에게 박탈감을 전가하고 분노를 퍼붓는다. - P126

질문할 것은 그들이 왜 성매매를 하는가가 아니다. 취약한 계층의 여성이 절박한 상황에서 성매매로 유입되고 이 시장은 너무나 손쉽게 그들의 취약함을 이용한다. 이때 그 ‘일‘이 과연 상식의 영역인가가 문제다. 그 ‘일‘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걸 ‘노동‘이라 인정하는 일이 과연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 P136

성매매는 그 존재만으로 성폭력의 경계 자체를 사라지게 한다. - P147

연구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에 대한 성 구매자 남성의 공감 능력은 성을 구매하지 않는 남성보다 낮으며, 강간 및 기타 강제적 성행위를 시도한 비율이 성 구매 남성에게서 높게 나타난다. - P148

여성이 노동자가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고 일정 가치를 기대하는 구매자들이 존재하며 그 기대를 배반할 때 가차 없이 훼손당하고 버려지는 이 과정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존중되지 않는다. - P149

이 시장에서 남성이 구매하는 것은 ‘성욕 배출‘의 기회가 아니라 내 성욕을 위해 대상을 지배하는 욕망의 실현이다. 성매매의 순간 "여성은 거기에 없는 것과 같다"는 구매자의 말대로, 성매매 현장에 ‘여성‘은 없다. 상품만이 존재하며, 그리하여 상품이 된 인간이 겪는 모든 폭력은 성폭력이 아닌 그 무엇이 된다. - P150

수많은 성매매 경험 여성들은 절대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성매매를 하는 대다수의 여성이 할 수만 있다면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이 사회가, 구조가 이를 외면하거나 보지 않는 것이다. - P151

현장에서 만나는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를 강간이라 단언한다. 그리고 성 구매자는 평소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 순간은 그저 짐승이 된다고 표현한다. 성 구매자를 상대하기란 매번 온몸의 긴장을 요하는 일이고 그렇기에 늘 온몸이 아프다. 내가 만난 자갈마당의 성매매 여성들은 상품으로서 몸을 준비하느라 아팠고, 그 몸을 상품으로 사용하면서 또 아팠다. - P160

네덜란드와 독일의 대형 성매매 업소 포주들은 성공적 사업가로서 자서전을 출간하고, 이들이 성매매 알선업소 운영을 컨설팅해주는 리얼리티 쇼가 제작되었다. 영세 사업자를 돕는 취지로 제작된 한국의 컨설팅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유사하지만 이들의 컨설팅은 성매매 알선업으로 성공하는 방법이고, 더욱 다른 것은 자본의 규모다. 그들은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할 만큼의 재력과 전방위 로비스트가 될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포주들‘은 정계로 나아간다. - P176

반성매매 활동가 레이철 모랜은 그의 책을 통해 이 기사의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국제 앰네스티의 입장은 ‘성 노동 프로젝트 세계 네트워크(Global Network of Sex Work Projects)‘에서 나온 것이며, 그 네트워크의 공동 의장은 성 착취 목적으로 인신매매를 하여 멕시코에서 15년형을 살고 있다. - P192

성매매 완전 비범죄화 사회가 수호하는 것은 결코 성매매 여성의 권익이 아니다. - P200

성매매 시장이 성립하면 그다음은 원하는 무엇이든 ‘구매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강간도, 모든 착취적 판타지도, 소녀와의 연애 같은 정서적 착취부터 어느 구멍이든 삽입하는 신체적 착취까지, 어디까지가 성매매인지 경계를 정할 수 없다. - P206

합법적 성매매 시장에서 성매매는 더욱 잘 닦인 사업으로 관리되고 이곳에서 여성들은 구매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팔게끔 설치된다. 모든 여성의 서비스가 공식적으로 성매매가 되는 것이다. - P207

일본 AV는 합법화된 ‘n번방‘이다. - P211

유명한 방석집 집결지가 있다. 그곳에서 막 빠져나온 여성과 함께 경찰 조사에 동행했다. 지방경찰청의 여성 청소년계 담당 경찰은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업주를 불러서 대질 조사를 받는 자리, 선불금이 포함 빚이 1억에 가까운 여성의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업소가 정해놓은 납득하기 힘든 비용 계산 규칙들을 확인하던 중 경찰이 업주에게 물었다. "왜 홀복값을 여성이 부담해야 하죠? 경찰복은 내 돈으로 사지 않는데." ‘민중의 지팡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체화한 것 같은 경찰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이 정말 고맙다. - P212

전문 인터뷰어로 많은 저서를 발간한 지승호는 2015년 《성 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라는 당사자 인터뷰집을 냈다. 나는 그들(김두식, 지승호)의 글에서 그들 자신의 도덕적 우월을 과시하는 것 외에 어떤 성찰이나 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중략) 진보를 자처하는 남성 지식인들의 이런 자세는 게으르거나 또는 자신들의 입장은 유보한 채 당사자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짓이다. 그들은 ‘성 노동‘을 주장하는 당사자의 당사자성에 열광하며 성 노동론에 힘을 싣지만 정작 그 당사자들의 인터뷰에도 등장하는 성매매의 폭력적 본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성 구매자의 문제, 알선업자와 내통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며 그저 성매매가 자신에게 필요하다 말하는 여성의 말을 취해 ‘당사자들이 원하니까‘로 이야기를 가져간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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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4-24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씨도 좋은데,˝라고 하시지만, 날씨가 이렇든 저렇든 다락방님 우선순위는변동 없었을 듯합니다. 저도 낮에 다락방님 페이퍼 읽고, 도서관 다녀왔어요. 다락방님 요 페이퍼에 등장한 책 세권이 서가에 조르르 같이 진열되어 있어서 데려왔습니다!

다락방 2022-04-25 07:55   좋아요 2 | URL
오오, 도서관 서가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니. 좋은데요? 후훗.
맞아요, 알라 님 말씀대로 날씨가 어떻든 저는 이 책을 읽었겠지요. 그래도 일요일 낮에는 일자산 다녀왔어요. 계속 책만 읽고 있을 순 없어서요. 초록초록한 나무를 보고 왔답니다. 후훗.
재미있는 책 읽기가 되진 않겠지만, 의미있는 책읽기는 될테니, 알라 님, 대여해오신 책으로 의미있는 시간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4-25 13: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실은 제가 플친님들 서재 마실다니다 보면
대여해서 보는 거 저만큼 선호하는 날나리 책꾼이 없는 것 같아요

다들 밑줄 많이 그으시고, 메모하시며 읽는데
저는 책 그만 들이고 싶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바꿔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04-24 2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시험기간인 아이 덕분에 도서관에 따라가서 <레이디 크레딧> 3부를 읽고, 밖으로 나왔는데...심적으로 정신이 조금 혼란스럽더군요.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에 충격도 오고..저녁을 먹는데도 정말 입맛도 뚝!!!! 책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었어요.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겨우~~ㅋㅋㅋ

바깥 날씨도 좋은데 주말에 이런 책을 읽고 있었다는 마지막 문구!!!
정말 가슴 찡한 문구입니다.
이 책도 쉽지 않겠군요.

다락방 2022-04-25 07:57   좋아요 3 | URL
저는 오늘 출근길에 레이디 크레딧 읽는데 등급제의 아가씨들..에 대한 설명을 읽자니 그냥 막 답답하고 그렇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한민국은 성매매에 깊이 관여하고 있고 여자 알기를 정말 상품 알기로 하는.. 막연하게 성매매 남성들이 많다는 건 알긴 했지만 성매매 업소가 고등학교 수보다 많대요!! 전 정말 너무 어이가 없어서.. 교육보다 더 중요한 성매매인 것입니다. 휴..

책나무 님, 화이팅이요!!

그레이스 2022-04-25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긴 발췌 행렬!

다락방 2022-04-26 07:34   좋아요 1 | URL
더이상 칸이 추가 되지 않아 더 못했습니다..

독서괭 2022-04-25 1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크.. 좋은 날씨에도 마음이 힘들어지는 책을 읽고 공유해주시는 다락방님. <페이드포> 사놨는데 빨리 읽어야하는데요..ㅎㅎ 5월엔 꼭 <레이디 크레딧> 읽고 페이드포도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미 4월은 포기)

얄라알라 2022-04-25 13:38   좋아요 2 | URL
독서괭님, 저는 오늘부터 시작이예요....같이 그냥 4월 도전해보실래요?^^ 늦게 입수한 주제에 완주하겠다는 허풍을 떠는 저..

독서괭 2022-04-25 13:44   좋아요 1 | URL
얄라님 저는.. 일단 <여성괴물>을 끝내야해서요.. 먼저 가세요..🥺

얄라알라 2022-04-25 13:49   좋아요 1 | URL
^^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같은 여행 노선 가고 있는 동반 여행자 느낌 납니다.
그렇게 독서괭님께서 밀어주시니, 그럼 저는 먼저 가겠습니다. 일단 <레이디 크레딧> ˝책을 펴내며˝는 다 읽었습니다. 차근차근 4월 26,27, 28, 29, 30^^;;

<여성괴물> 응원드리겠습니다. 저는 2/3쯤에서 중도하차했기에 드릴 말씀이 없이 부끄

독서괭 2022-04-25 13:53   좋아요 2 | URL
저도 책을 펴내며는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얄라님 화이팅입니다~!! 근데 5월 책이 어려워보여 벌써 걱정입니다😂

다락방 2022-04-26 07:35   좋아요 1 | URL
벌써 4/26 이고 4월은 30일 까지밖에 없네요. 저도 부지런히 읽어야겠습니다. 이제 절반을 넘긴지라 심히 걱정됩니다 ㅠㅠ

Jeanne_Hebuterne 2022-04-26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가 뭔가를 거절할 때 남자가 말하는 ‘비싸게 구네‘의 속뜻을 알고 박완서님의 말이 떠올랐어요.
토종이구나.
 
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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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은 따라잡지 못해 고등학교 자퇴하고 몸은 자꾸 마르지만 최애를 척추 삼아 간신히 버티는 삶.
책 자체도 재미없고 나로서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덕질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최애 때문에 살고 최애 때문에 어쩌면 나를 망치기도 하는.
덕질, 다들 이렇게 하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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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남편 이판사판
하라다 마하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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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그러나 속이 시원하기 보다는 판타지 같고, 얼마나 정치도 여성인권도 엉망이길래 이런 소설이 나온걸까 싶어서 한숨이 난다. 여기랑 별로 다를 것도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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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2-04-23 0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은 여성 인권 측면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뒤쳐진 나라죠.

몽골에서 친하게 지냈던 남녀 대학생들은 엄청나게 심각한 가부장제의 모습을 보여줬어요. 함께 놀던 무리에서 자신의 여자친구만 돌아가서 자라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명령하던 어느 남성과 그 말에 너무나도 당연히 복종하던 어느 여성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었죠. 그뿐 아니라 몇가지 단편적인 모습들을 보았는데,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생각을 해봤어요.

다락방 2022-04-25 07:58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가끔 SNS 를 통해서 일본의 여성인권이 얼마나 처참한지 보게 되는데요, 그래서 이 책은 굉장히 판타지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얼마나 이들이 정치에 그리고 여성혐오에 지쳤으면 이런 여성 정치인이 총리가 되는 책을 만들어 냈을까.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요.

일본도 한국도, 정말 어쩌면 좋은가요! ㅠㅠ
 















이제 절반쯤 읽었나. 이 책을 읽는 일은 생각보다 더 무섭고 더 답답하고 더 아프다.


보통 돈이 너무 필요해서, 급해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성들은 성매매에 뛰어든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선불금으로 업주로부터 돈을 받고 거기에 아주 높은 이자를 붙이는 식이다. 매일 일을 해서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는데 너무 고되어 하루라도 일을 빠지면 결근에 대한 벌금을 크게 때리고 지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렇게 이자를 못갚는 게 조금 쌓이면 그 이자는 원금에 추가되어 상환해야 할 금액이 급격하게 커진다. 이 돈은 그러니 갚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사실 성매매 여성들이 선불금을 받고 일을 하면서 그 돈을 메꾸기는 힘들다, 빚에 허덕인다, 정도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그런데 김주희는 레이디 크레딧에서 고작 그만큼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빌리는 돈은 업주로부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채업자가 끼어들기도 하고, 사채업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나 고금리의 이자를 때려버린다. 그래, 사채업자들도 연관되겠지, 라고 짐작 가능한 부분이지만, 여기에 저축은행이 끼어든다. 저축은행이 이 '아가씨'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 그러면 아무런 담보가 없는 그녀들에게 뭘 믿고 돈을 빌려주나? 그녀들의 담보는 바로 그녀들의 몸, 그 자체였다. 그 몸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갚을 것이기에 그 몸은 담보가 되고, 그래서 높은 금리로 은행은 아가씨들에게 대출을 해준다. 혹여나 그 돈을 못 갚으면 그 갚지 못한 대출은 채권이 되어 이제 금융시장을 떠돌게 된다. 어떻게든 갚아야 할 돈이긴 하지만 갚아야 할 대상이 여기에서 저기로 바뀌고 그 금액은 자꾸 불어나는 것.



2011년 J 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조직폭력배인 '조 씨'가 여론에 오르내리게 된다. 조 씨는 강남에 룸살롱을 여러개 가지고 있으면서 수십억의 돈을 벌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은행으로부터 받은 '아가씨 대출'이 크게 한몫을 한거다. 강남에 룸살롱을 하나 차리려면 자본금이 필요하고 룸살롱 업주는 저축은행에 가 창업자본금을 빌리게 된다. 이때 근거가 되는 서류는 아가씨들의 '선불금 서류'. 정식으로는 아가씨들에게 선불금을 지급할것이고 아직 사업 시작 전이라 돈이 없으니 은행이 돈을 빌려다오,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 씨는 실제 업소 아가씨들이 아닌 다른 숱한 아가씨들을 모아서 명의를 빌려 선불금 서류를 만들고 그걸 근거로 해 큰 돈을 대출 받았던 것이다. 은행의 비리를 수사하던 중 이게 다 드러났던 것. 



이 일을 책에서 언급하면서 김주희는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를 그만두게 하면, 그것이 바로 탈성매매가 될까? 전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사는 이 큰 세상이 이미 성매매월드라는 것이다. 진정한 탈성매매를 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



매춘 여성들의 선불금 차용증이 시중 은행에서 대출의 근거, 위험 회피의 수단이 되는 현실은 이 시대 자본축적 방식이 여성들의 매춘화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성매매 문제를 알선자와 구매자의 문제로만 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문제설정이다. 여성들이 '탈성매매' 후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가정된 사회의 구성 양식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단편적인 해법만 제시할 뿐 사회적 의미의 '탈성매매'는 이루어질 수 없다. -P.154



성매매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널리 퍼져 있다. 2012년 성매매 알선과 탈세 혐의로 국내 최대 규모의 유흥주점 업주 형제가 구속기소되면서 이 업소의 규모가 세상에 드러났다. '어제오늘내일', 소위 'YTT'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이 업소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룸살롱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19층에 객실 169개의 세울스타즈호텔과 지하 1~3층에 룸 180개를 가진 유흥주점을 운영했고, 유흥주점의 연간 매출액만 650억 원, 2년 동안 하루 평균 200~300회, 도합 최소8만 8000회의 성매매를 알선했다고 한다(서울중앙지방검찰청,2012). 이렇게까지 규모가 큰 업소가 존립할 수 있고 심지어 호황을 누린 것은 이 업소를 이용한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의 남성 손님, 이 지역 공무원, 경찰 간에 카르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르텔 자체가 곧 유흥업소의 미래 수익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P.168~169



이러한 대출 사례로 미루어볼 때 '유흥업소 특화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여종업원, 혹은 '여종업원의 수'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출 상품은 '여종업원'을 무엇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인가. -P.170



알탕 카르텔은 여성들이 원하지 않아도 여성들을 포르노 랜드에 살게 하고 성매매 월드에 살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포르노 랜드이고 성매매 월드이다. 진정한 '탈성매매' 를 이루려면 이 카르텔 자체를 부숴야 하는데.



아직 절반이다. 절반이 남아있다. 남은 절반에 희망이 있을지, 계속 읽어보겠다.


여러분 이 책 읽으세요, 두 번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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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22 10: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몸이 자산이라는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그것이 채권이 되어 내내 떠돈다는 것도, 한번 저당잡히면 내 정보가 내내 굴러다니는 것인데 너무 싫고 화가 나더라구요.
이 책은 정말 읽어야만 하는 책이 맞습니다!

다락방 2022-04-22 10:53   좋아요 4 | URL
저는 여성의 몸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준다는 걸 처음 알게 됐고요 너무 놀랐습니다. 여성들은 사채업자든 은행이든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는 걸 자신과의 신뢰 형성이라 생각하는데 정작 은행을 비롯한 업주나 사채업자, 중개업자등은 그 여성의 몸을 담보로 본 것이라니.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게다가 정말 눈깜짝할 사이 원금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버리니 그 돈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갚을 수 있겠어요. 돈 생기면 성매매 일을 그만둘까봐 이자도 높게 받고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아 정말 미친 세상이에요. ㅠㅠ

청아 2022-04-22 13: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겉보기엔 아닌것 같지만 이 책에나온 사실들을 보면 이 사회 전체가 남성가족부인것 같아요. 지나친 남성가족부라서 여성가족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가족부 안에서는 성매매가 자연스러울꺼고 포르노가 이상하지 않겠죠. 그것들을 이용해 여성이란 존재를 착취하는것도 당연할테고. 그러니 금융도 사법기관도 이익을 공유하고요. 증언들도 안타깝고
많이들 알아야할 금융성노예아닌가 싶어요ㅠㅠ

다락방 2022-04-22 12:33   좋아요 4 | URL
나라 전체가 여자를 상품화하고 도구화하면서 자기들 이익을 채우는 것 같아요. 정작 중간에서 몸 갈려나가고 마음고생도 하는 여성들의 손에는 돈 한 푼 쥐어지지 않는데 말이죠. 아 정말 미치겠어요.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이 아주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업소에서 하루에 200~300 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니. 진짜 성매매에 미친 나라 같아요. ㅠㅠ

잠자냥 2022-04-22 1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여성 선불금 서류로 대출이 가능하다니 정말 놀라운 나라네요. 말잇못….

다락방 2022-04-25 07:59   좋아요 1 | URL
저는 성매매 하는 남성이 우리나라 남성의 절반이라는 것에도 기가 찰 노릇이라 생각햇는데(아마 실제로는 더 많겠죠) 온 나라가 하나 되어 성매매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이 책 읽고 들더라고요. 진짜 성매매에 미친 대한민국이에요. ㅠㅠ

그레이스 2022-04-22 1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경제구조, 안전망, 화원주의 ...이런 단어들이 지나갑니다.
그나저나 다락방님 서재에 들어와보니(처음 들어와본 듯요) 서재의 달인 금뱃지 장난 아니네요 ㅎㅎ
독서의 역사도, 알리디너의 역사도, 여성주의 책읽기 역사도...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집니다.

다락방 2022-04-25 08:00   좋아요 1 | URL
굉장히 모순적인 경제구조죠. 몸이 갈려나가는 건 여성들인데 돈은 남성의 손에서 나와 다른 남성의 손으로 들어가고요. 성매매 여성들은 결코 그 돈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아 집 사고 차 사고 아니, 그게 다 뭐에요, 그 업계 자체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 구조인데요. 여자를 팔아 돈을 버는 건 남자라는 게 너무나 심란합니다. ㅠㅠ

책읽는나무 2022-04-22 1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면서 너무 놀랍기만 해서 정말...ㅜㅜ
부채가 곧 감옥 같은 세상인 것이었어요.
조직폭력배들의 연루, 저축은행, 러시앤 캐시등등 실제 거론되어지는 은행과 사채업자들의 이야기에 입을 다물 수 없는 정보들을 읽고 나서 머리가 띵~ 하던데, 그리고 또 한편으론 작가님 괜찮으신가? 약간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놀라운 책으로 다가왔거든요.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생각도 바뀌고, 그래서 법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22-04-25 08:01   좋아요 2 | URL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들이 이 책 안에 가득하더라고요. 저는 아가씨 대출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고 거기에 높은 이자를 때리고 그 이자가 원금이 되고... 그런 세상에서 도대체 성매매 여성들이 어떻게 그 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겠어요? 그 여성들이 있어야 남자들이 돈을 버니 결코 내보내지 않으려고 그런 수작들을 부리는건데. 정말 답답하고 마음이 아파요 ㅠㅠ

mini74 2022-04-22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라민 은행의 여성 망신주기 아가씨대출 선불금 등 ㅠㅠ 리뷰 써야 하는데 생각만 많아집니다 ㅠㅠ

다락방 2022-04-25 08:02   좋아요 1 | URL
선불금 서류가 대출의 증빙이 되다니, 너무 어이없죠. 저는 정말 기가 차고.. 어차피 이런 세상이라면 저 역시 성매매 월드에서 살고 있는건데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장은 정말 거대하더라고요. 관련된 자도 엄청나고요. ㅠㅠ
 


영화 <인 비트윈> 에서 in between 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죽은 자가 완전히 저쪽 세상으로 가기 전 아직 못다한 말이 있어 잠시 머무르는 지점을 말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친구 '스카일러'를 잃은 '테사'는 사고후 회복중 여러차례 스카일러가 자신의 주변을 맴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 얘기하면 주변인들은 테사를 이상하게 보고, 아직 그 사람을 제대로 떠나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안쓰러워한다. 그러나 테사의 말을 믿는 병원의 다른 환자는 그 세계를 연구하고 있고 믿고 있다. 그가 네 곁에 머무르는 건 너에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이고 또 너에게 듣지 못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 사랑이 가장 절실했던 곳으로 찾아가면 스카일러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 단 조심해야 한다, 네가 거기서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너는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볼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스포일러가 이제 잔뜩 담길 예정이다.)

그래서 테사는 스카일러를 만나기 위해 자신들이 데이트 했던 장소를 여기저기 찾아간다. 처음 만났던 극장, 함께 갔던 해변 등등. 그러다 폐가가 다 된 호텔에서 잠시 스카일러의 영혼을 만나지만 거기서 큰 부상을 입고 다시 병원에 실려온다. 닥터는 테사를 진찰한 뒤 교통사고 후 봉합한 심장이 터져 매우 위험한 상태다, 내일 재봉합 수술을 하겠다, 고 한다. 양부모는 걱정하는 가운데 테사는 스카일러가 이제 완전히 저 세상으로 갈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고 마음이 급해진다. 꼭 만나야 한다. 자신의 상처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고 살던 테사는 스카일러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랑한다고 자신이 말해주진 못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은 나질 않고 그런데 스카일러는 죽어버렸고, 꼭 만나서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러다 함께갔던 호수에 마지막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해 절친을 불러 거기에 데려다달라고 한다. 내일 수술을 앞둔 심장이 다시 터져버린 테사는 그렇게 친구의 차를 타고 호수로 향한다. 

나는 여기서 바로 현실로 튕겨져 나오는데,
이들은 고등학생이다. 아직 대학에 가지 않았고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이다.
아무리 절친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친구의 말-죽은 자가 아직 죽지 않았다-을 믿는다 하더라도,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앞둔 친구를 데리고 병원을 탈출하다니, 그래도 되는걸까? 친구의 말을 믿는다해도 그렇게 병원에서 데려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어쩌면 친구는 수술이라는 긴급한 상황에 대해서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데리고 나갔다가 테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러면 그 친구는 뭐가 되는 걸까? 
친구는 테사를 믿고, 테사를 위하는 마음으로, 거기에 대한 진심으로 데리고 외출을 감행한 것이지만, 외부에서 보는 사실은 아픈 친구를 데리고 갔다가 친구가 죽었다, 는 것이다. 그러면 그 뒷일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걸까?
테사는 친구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면 안되는 게 아니엇을까? 자칫하면 친구는 테사를 죽게 하는데 일조한 게 아닌가. 그 일로 평생 괴롭지 않겠는가.
실제로 테사와 친구가 운전하는 차는 스카일러의 조작으로 호수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한다. 바로 스카일러와 테사가 마지막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 교통사고가 났던 장소. 거기서 테사는 스카일러의 영혼을 드디어 만난다. 그리고 만난 후에 쓰러지고, 친구는 급하게 응급차를 부르고 테사는 다시 실려간다. 여기에서 만약 테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러면 진짜 친구는 뭐가 되는거냐고. 친구가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테사를 위해 진심으로 행동했다 해도, 그 당시에 그게 자신이 믿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해도, 테사가 죽어버리면, 그러면 그 친구는 도대체 뭐가 되는 거냐고. 와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얘들아 안돼, 그러지마. 그리고 스카일러도 그렇지, 왜 내일 수술할 애를 굳이 거기로 불러내냐고. 그건 너무 위험한 일 아니냐고. 아무튼 이 지점에서 영화바깥으로 튕겨져 나와 화딱지가 났다. 가끔 사랑은, 사랑에 빠진 맹목적인 사람들은 민폐를 끼치게 되는 것 같다. 얌전히 병원에 있었으면 다음날 수술 받았을 애를 데리고 나와서 길에 쓰러지게 만드는 친구라니. 그것은 결코 친구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아니지 않나. 아 너무 화가 난다 화가 나... 그러지마, 병원으로 데리고 돌아가라!!


자, 그리고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자.
스카일러(의 영혼)가 조작한 차는 사고 현장으로 테사를 데려왔다. 거기에서 테사는 사고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게 된다. 스카일러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기 바로 전, 그 전에 싸우고 이별을 말했던 테사는 스카일러를 찾아갔었다. 그 다툼에 대해 사과하고 스카일러도 사과한다. 그리고 테사는 말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그 장면을 지켜보는 '지금 여기'의 테사는 그제야 알게 된다. 내가 말했구나, 사랑한다고 말했어.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테사는 쓰러지고 응급실에 가게 되고, 응급실에 누워있는 동안에 스카일러가 찾아와 테사가 살아 생전 그토록 원했던 프랑스 파리에 데려가 키스를 하고, 좋았던 곳에 데려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보여준다. 스카일러는 테사에게 '이건 네 기억이야' 라고 말해준다. 테사는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네가 온 거구나' 한다. 그리고 스카일러는 그렇다면서 '너가 후회하지 않도록' 이라고 덧붙인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도록, 네가 사실은 사랑한다는 말을 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병원에서는 수술도 모두 끝나고 병원에서는 이제 할 걸 다 했의 이제 남은건 살고자 하는 테사의 의지라고 한다. 테사는 in between 에서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스카일러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렇게 현실의 테사는 살아난다.


영화를 보면서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현재 버전이구나, 싶었다. 영혼이 등장하는 영화. 사랑과 영혼 전에는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떠나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테사는 현실에서 방황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테사 마음이 아픈데 테사가 어떻게 주변까지 신경쓰겠나. 그러나 경계에서 스카일러를 말하고, 자신이 후회없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야 현실에서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이게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고 심지어 중간에 이러면 안되지, 라고 했으면서도 나는 마지막에,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고 그리고 드디어 작별을 하는 그 순간에 줄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눈물을 흘리며 그 영화를 보고 있었을 때는 점심시간이었고, 메뉴는 고등어 구이..

나는 손으로 고등어의 가시를 발라내다가 눈물을 닦고, 다시 가시를 발라 내다가 눈물을 닦고, 가시를 발라낸 살을 먹다가 훌쩍 거리고 그렇게 혼자서 생쑈를 했다. 그러다보니 고등어가 식어버렸고, 식어버린 고등어는 맛이 없다. 그래도 다 먹었다. 나는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야 하니까. 

마지막에 영화에서 흐르는 음악이 좋았다.






어제 퇴근길에는 대부분의 퇴근길에 그렇듯이 <THE HATING GAME>을 읽으면서 갔다. 조슈아와 루신다는 여차저차 싸워가지고 좀 냉랭했고 서로 빡쳐있었는데, 어쨌든 금요일 퇴근후에 조슈아 형의 결혼식에 함께 가기로 했으므로 조슈아의 차에 함께 타고 간다. 거기에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마음이 좀 풀어지게 되고 심지어 조금씩 루신다의 마음은 일렁인다.

"I'm thinking about kissing you, on my couch. I think about it disturbingly often." -p.244

"내 집 소파에 앉아 당신에게 키스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 심란할 만큼 자주 생각해." -책속에서















퇴근 후 바로 출발한 길이라 그들은 아직 저녁을 먹기 전이었고 배가 고파 낯빛이 안좋아진 루신다를 보고 조슈아는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한다. 그렇게 한 식당 앞에 차를 댄다.


We park in front fo a truck stop diner and ge touches my hand. What he says next makes my heart crackle bright with stupid hope, even though I know he's kidding.

"Come on. It's time for a romantic dinner date." -p.244


조쉬는 트럭 휴게소에 딸린 식당 앞에 주차한 후 내 손을 잡았다. 농담이란 걸 알면서도 그가 내게 한 말들이 내 심장을 바보 같은 희망으로 밝게 빛나게 했다.

"가자. 로맨틱한 저녁 식사 데이트를 할 시간이야." -책속에서



나는 스킨십 중에서 손잡는게 제일 좋다. 진짜 손 잡는게 제일 좋다. 손 잡는 건 그들이 연인이 될것이라는 시작을 알리는 스킨십이지만, 그래서일까, 가장 두근두근 하게 만드는 것이 손잡는 것인듯 하다. 이만큼 살아오고 이만큼 겪어왔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손잡는 게 제일 좋다. 그래서 아무나랑 잡을 수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손잡는 거 진짜 너무 좋고, 정말 좋다. 어제 조슈아가 루신다랑 손을 잡고 저녁 먹으러 가는게, 그걸 보는 내 마음이 그렇게나 좋았다. 엄마 미소... (하지마!)


그러다보니 손 잡는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에이미 밴더'의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 떠올랐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자주 인용했던 문장.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그때까지도 건널목에서 꼭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건넜다고 했다. (중략)오크우드 애비뉴에서 모퉁이를 돌면서 나는 충동적으로 조지 오빠의 손을 잡아 버렸다. 곧바로, 내 손을 꽉 잡는, 손가락들. 태양. 진분홍 무더기를 이루며 창문 위로 드리워진 더욱 탐스러운 부겐빌레아 넝쿨. 그의 따뜻한 손바닥. 인도에 웅크리고 앉은 오렌지색 줄무늬고양이. 낡은 검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활짝 열리는, 도시.

우리는 인도에 도착했고, 손을 놓았다. 얼마나 바랐던가, 바로 그때, 온 세상이 건널목이기를. (p.88)
















이 부분을 생각하다가 원서에서는 조지 오빠의 손을 잡는다는 단어를 어떤걸로 썼을지 궁금해졌다. 조슈아와 루신다는 touch 로 되어있는데 조지 오빠의 손을 touch 한걸까? 이게 갑자기 너무 궁금해져서, 이 책의 원서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엊그제는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머릿속에서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걸 또 깨달았다. 나는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고, 어김없이 올리브 키터리지 생각이 났다. 그러네, 나도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하네.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썼다. "죄송해요." 그녀가 속삭였다. 

"뭐가?"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서요."

"아니, 아니야." (p.46)



나는 위 대화가 너무 좋아서,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한다는 저 말이 너무 좋아서, 저 말은 또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해서 원서를 샀었다.
















되게 쉬운 문장으로 되어있었는데... 내가 페이퍼 쓴 줄 알았는데 못찾겠다. 아무튼 그래서 이 책도 샀었다는 얘기. 그렇다.



어제 인비트윈 보고 점심시간에 양재천 산책을 하면서 인 비트윈 이라는 위에 링크된 노래를 찾아듣고, 그러다가 우연히 내 폰에서 '아스트로'의 <붙잡았어야해> 도 들었다. 듣다보니 좋아서 반복해 들었다.






위 노래 듣다 보면 가사중에 '널 감당하기에 난 부족하기에' 라는게 나오는데, 어제 이 부분 듣다가 흐음.. 나는 아닌데, 나는 누군가를 감당하기에 내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했다. 나는 늘 날 감당하기에 니가 너무 부족했는데.. 날 감당하기에 넌 부족하기에.. 라고 나는 바꿔불러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렇다면 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이 지구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없겠더라. 너무 .. 감당 안되는 사람이다, 나는. 여러가지로다가... 

날 감당하기에 넌 부족하기에...




이 노래를 반복해 듣다가 퇴근길에는 비투비의 <그리워하다> 를 들었다.







이 노래를 막 따라부르면서 걷다보니 전효성의 <굿나잇 키스>도 듣고 싶어졌다.





이건 처음에 전주에서 뭔가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알 수 없는 단어가 나오는데, 자꾸만 '탄두리 치킨'으로 들린다.

탄두리 
탄두리

그러고보니 탄두리 치킨 먹은지 너무 오래 되었다. 본격 탄두리 치킨 먹으러 가야겠다. 이건 어디로 가야하나... 탄두리 치킨이 먹고 싶네요. 입맛없는 내가.

탄두리 치킨
탄두리 치킨


봄이고 막 그래가지고 내가 이런 깨발랄 노래들을 듣긴 했지만(가사는 결코 안깨발랄), 사실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이런 곡을 아무것도 안듣기가 일상이고 책을 읽을 때면 요즘은 가끔 이걸 틀어둔다.








아, 그러고보니 루시로부터 플러팅 스킬 좀 배워야겠어. 어제 루시가 조슈아를 뻔히 보다가 이러는거다.

"You're like a beautiful racehorse." -p.245

위의 문장은 해석을 스스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racehorse 는 '경주마' 라는 뜻입니다.


저 문장 외워뒀다 써먹어야지. 먼훗날에, muscle 덩어리 만나면, 나도 꼭 You're like a beautiful racehorse 라고 말해줘야지. 으흐흐흐. 아니.. 너무.. 너무하지 않습니까? 뭔가 좋은 문장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퇴근길은 봄밤이어서 더 막 거시기해졌는가 보다. muscle 생각도 나고.. 봄밤이라 그래. 봄밤과 muscle... 잘 어울린다. 봄밤에는 역시 muscle 이다. 물론, 여름밤에도...


가을밤에도

겨울밤에도

24시간 365일

내내..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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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22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다락방님이 쓸 수 있는 전개네요~ 마무리는 muscleㅎㅎ 오랫만에 비투비 그리워하다 듣네요^^ 저도 저 노래 좋아합니다. 그리고 손잡는게 저도 젤루 좋아요*^^*ㅎㅎ

다락방 2022-04-22 10:28   좋아요 1 | URL
오 거리의화가 님도 비투비의 저 노래를 좋아하시는군요. 저 노래 너무 좋아요. 자꾸 따라 부르게 돼요. 헤헷. 거리의화가 님도 손 잡는 거 제일로 좋아하시는구나. 손 잡는 거 진짜 너무 좋아요! >.<

프레이야 2022-04-22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밤과 머슬이 그렇게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군요 ㅎㅎ 올리브 키터리지에 저 대사 저도 좋아해요. 더 헤이팅게임 244쪽 인용문 번역문에 오타가 뜨아 보여서요. 자수=> 자주. 속닥

다락방 2022-04-22 11:36   좋아요 1 | URL
으앗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셔서 방금 막 수정했어요! *^^*

프레이야 님은 저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 보셨죠? 저 이 페이퍼 쓰면서 이 영화 프레이야님은 보셨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후훗.

프레이야 2022-04-22 12:10   좋아요 1 | URL
우히 못 봤어요.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보려고 찜했어요. ^^

다락방 2022-04-22 12:33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이 영화 아는 분은 프레이야 님 밖에 안계시겠지.. 생각했답니다? ㅋㅋㅋㅋㅋ

망고 2022-04-22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몬 케이크 저부분 I grabbed George’s hand. Right away: fingers, holding back 요렇게 쓰여있어요😊 다락방님 글보고 저도 궁금해서 찾아 봤어요😆😆😆

다락방 2022-04-22 12:40   좋아요 1 | URL
꺅 >.< 망고님, 너무 감사해요! 으하하하. touch 랑은 다를 것 같았거든요. touch 는 잡는 것보다 약하지 않나 싶어어요. 역시 grab 이었군요!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히힛.
물론, 책은 벌써 주문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4-22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 미소 ㅋㅋㅋㅋㅋㅋ아 미쳨ㅋㅋㅋㅋㅋㅋㅋ 하지 마요, 엄마 미소-

다락방 2022-04-25 08:02   좋아요 1 | URL
아니 그러니까 제가 일찍 결혼했으면 루신다 같은 딸이 있겠더라고요? 껄껄.. (웃고 있지만 웃는게 아님)

단발머리 2022-04-22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물 닦아내며 먹는 고등어구이 이야기 혹은 고등어 가시 발라내며 흐르는 눈물 닦아내는 이야기 넘 감동적이에요.
글고 저도 여러(?) 스킨십 중에 손 잡는 게 젤 좋아요. 그냥… 그렇다고요.
오늘치 다 웃고 가요. 감사감사감사링!!😘

다락방 2022-04-25 08:03   좋아요 1 | URL
그쵸? 손잡는 건 너무나 다정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진심인 것 같고요. 손 잡는 거 정말 좋아합니다. 후훗.

자고로 눈물이란 비린내 나는 고등어 가시바르던 손으로 닦아야 그 진심이 전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고등어 발라 먹고 눈물 닦고... 인생은 그런것이라 생각합니다. 후훗.

책읽는나무 2022-04-22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고등어 덕분에 비리면서 슬펐겠군요ㅜㅜ
고등어는 따뜻할 때, 먹어야 하는데...
저는 예전엔 손 잡는 스킨십 별로 안좋아 했었어요. 남편이 다한증이라 맨날 축축..ㅜㅜ
근데 요즘은 스킨십이 넘 없는 중년 나이대라서 그럴까요? 손 잡는 스킨십 무척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저도 손 잡아 보고 싶네요~🤲

다락방 2022-04-25 08:04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비리면서 슬펐습니다! 고등어 가시 먹으면 안되는데... 하다가 훌쩍, 이제 이렇게 이별인 것인가 훌쩍, 가시 바르자 훌쩍... ㅋㅋㅋㅋ

아, 다한증이면 손 잡는 것에서 오는 다정함에 앞서 신체적으로 불편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책나무 님 조만간 남편분과 같이 봄 길 걸으면서 손을 한 번 잡아보심이... ㅎㅎㅎㅎㅎ

mini74 2022-04-2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고등어 가시는 크니까 눈물에도 잘 발라내서 꼭꼭 씹어드실거라 안심하며 읽는 저 ㅎㅎㅎ 손 잡는 거 넘 좋아요 저도. 요즘 저는 똘망이 앞발 잡으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다락방님 이런 페이퍼들이 참 좋아요. 마음이 노곤노곤해집니다. 다락방님 선곡하신 노래들과 함께. 그래서 고마워요 ~~~

다락방 2022-04-25 08:05   좋아요 1 | URL
오늘 점심도 고등어 먹을까, 생각중입니다. 어쩐지 고등어 먹어야 할 것 같은.. 식기전에 부지런히 가시 발라서 따뜻하게 먹어야겠죠? 후훗.

이런 페이퍼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니님. 앞으로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필! 승!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