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반쯤 읽었나. 이 책을 읽는 일은 생각보다 더 무섭고 더 답답하고 더 아프다.


보통 돈이 너무 필요해서, 급해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성들은 성매매에 뛰어든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선불금으로 업주로부터 돈을 받고 거기에 아주 높은 이자를 붙이는 식이다. 매일 일을 해서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는데 너무 고되어 하루라도 일을 빠지면 결근에 대한 벌금을 크게 때리고 지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렇게 이자를 못갚는 게 조금 쌓이면 그 이자는 원금에 추가되어 상환해야 할 금액이 급격하게 커진다. 이 돈은 그러니 갚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사실 성매매 여성들이 선불금을 받고 일을 하면서 그 돈을 메꾸기는 힘들다, 빚에 허덕인다, 정도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그런데 김주희는 레이디 크레딧에서 고작 그만큼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빌리는 돈은 업주로부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채업자가 끼어들기도 하고, 사채업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나 고금리의 이자를 때려버린다. 그래, 사채업자들도 연관되겠지, 라고 짐작 가능한 부분이지만, 여기에 저축은행이 끼어든다. 저축은행이 이 '아가씨'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 그러면 아무런 담보가 없는 그녀들에게 뭘 믿고 돈을 빌려주나? 그녀들의 담보는 바로 그녀들의 몸, 그 자체였다. 그 몸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갚을 것이기에 그 몸은 담보가 되고, 그래서 높은 금리로 은행은 아가씨들에게 대출을 해준다. 혹여나 그 돈을 못 갚으면 그 갚지 못한 대출은 채권이 되어 이제 금융시장을 떠돌게 된다. 어떻게든 갚아야 할 돈이긴 하지만 갚아야 할 대상이 여기에서 저기로 바뀌고 그 금액은 자꾸 불어나는 것.



2011년 J 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조직폭력배인 '조 씨'가 여론에 오르내리게 된다. 조 씨는 강남에 룸살롱을 여러개 가지고 있으면서 수십억의 돈을 벌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은행으로부터 받은 '아가씨 대출'이 크게 한몫을 한거다. 강남에 룸살롱을 하나 차리려면 자본금이 필요하고 룸살롱 업주는 저축은행에 가 창업자본금을 빌리게 된다. 이때 근거가 되는 서류는 아가씨들의 '선불금 서류'. 정식으로는 아가씨들에게 선불금을 지급할것이고 아직 사업 시작 전이라 돈이 없으니 은행이 돈을 빌려다오,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 씨는 실제 업소 아가씨들이 아닌 다른 숱한 아가씨들을 모아서 명의를 빌려 선불금 서류를 만들고 그걸 근거로 해 큰 돈을 대출 받았던 것이다. 은행의 비리를 수사하던 중 이게 다 드러났던 것. 



이 일을 책에서 언급하면서 김주희는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를 그만두게 하면, 그것이 바로 탈성매매가 될까? 전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사는 이 큰 세상이 이미 성매매월드라는 것이다. 진정한 탈성매매를 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



매춘 여성들의 선불금 차용증이 시중 은행에서 대출의 근거, 위험 회피의 수단이 되는 현실은 이 시대 자본축적 방식이 여성들의 매춘화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성매매 문제를 알선자와 구매자의 문제로만 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문제설정이다. 여성들이 '탈성매매' 후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가정된 사회의 구성 양식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단편적인 해법만 제시할 뿐 사회적 의미의 '탈성매매'는 이루어질 수 없다. -P.154



성매매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널리 퍼져 있다. 2012년 성매매 알선과 탈세 혐의로 국내 최대 규모의 유흥주점 업주 형제가 구속기소되면서 이 업소의 규모가 세상에 드러났다. '어제오늘내일', 소위 'YTT'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이 업소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룸살롱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19층에 객실 169개의 세울스타즈호텔과 지하 1~3층에 룸 180개를 가진 유흥주점을 운영했고, 유흥주점의 연간 매출액만 650억 원, 2년 동안 하루 평균 200~300회, 도합 최소8만 8000회의 성매매를 알선했다고 한다(서울중앙지방검찰청,2012). 이렇게까지 규모가 큰 업소가 존립할 수 있고 심지어 호황을 누린 것은 이 업소를 이용한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의 남성 손님, 이 지역 공무원, 경찰 간에 카르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르텔 자체가 곧 유흥업소의 미래 수익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P.168~169



이러한 대출 사례로 미루어볼 때 '유흥업소 특화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여종업원, 혹은 '여종업원의 수'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출 상품은 '여종업원'을 무엇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인가. -P.170



알탕 카르텔은 여성들이 원하지 않아도 여성들을 포르노 랜드에 살게 하고 성매매 월드에 살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포르노 랜드이고 성매매 월드이다. 진정한 '탈성매매' 를 이루려면 이 카르텔 자체를 부숴야 하는데.



아직 절반이다. 절반이 남아있다. 남은 절반에 희망이 있을지, 계속 읽어보겠다.


여러분 이 책 읽으세요, 두 번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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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22 10: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몸이 자산이라는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그것이 채권이 되어 내내 떠돈다는 것도, 한번 저당잡히면 내 정보가 내내 굴러다니는 것인데 너무 싫고 화가 나더라구요.
이 책은 정말 읽어야만 하는 책이 맞습니다!

다락방 2022-04-22 10:53   좋아요 4 | URL
저는 여성의 몸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준다는 걸 처음 알게 됐고요 너무 놀랐습니다. 여성들은 사채업자든 은행이든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는 걸 자신과의 신뢰 형성이라 생각하는데 정작 은행을 비롯한 업주나 사채업자, 중개업자등은 그 여성의 몸을 담보로 본 것이라니.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게다가 정말 눈깜짝할 사이 원금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버리니 그 돈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갚을 수 있겠어요. 돈 생기면 성매매 일을 그만둘까봐 이자도 높게 받고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아 정말 미친 세상이에요. ㅠㅠ

청아 2022-04-22 13: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겉보기엔 아닌것 같지만 이 책에나온 사실들을 보면 이 사회 전체가 남성가족부인것 같아요. 지나친 남성가족부라서 여성가족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가족부 안에서는 성매매가 자연스러울꺼고 포르노가 이상하지 않겠죠. 그것들을 이용해 여성이란 존재를 착취하는것도 당연할테고. 그러니 금융도 사법기관도 이익을 공유하고요. 증언들도 안타깝고
많이들 알아야할 금융성노예아닌가 싶어요ㅠㅠ

다락방 2022-04-22 12:33   좋아요 4 | URL
나라 전체가 여자를 상품화하고 도구화하면서 자기들 이익을 채우는 것 같아요. 정작 중간에서 몸 갈려나가고 마음고생도 하는 여성들의 손에는 돈 한 푼 쥐어지지 않는데 말이죠. 아 정말 미치겠어요.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이 아주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업소에서 하루에 200~300 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니. 진짜 성매매에 미친 나라 같아요. ㅠㅠ

잠자냥 2022-04-22 1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여성 선불금 서류로 대출이 가능하다니 정말 놀라운 나라네요. 말잇못….

다락방 2022-04-25 07:59   좋아요 1 | URL
저는 성매매 하는 남성이 우리나라 남성의 절반이라는 것에도 기가 찰 노릇이라 생각햇는데(아마 실제로는 더 많겠죠) 온 나라가 하나 되어 성매매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이 책 읽고 들더라고요. 진짜 성매매에 미친 대한민국이에요. ㅠㅠ

그레이스 2022-04-22 1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경제구조, 안전망, 화원주의 ...이런 단어들이 지나갑니다.
그나저나 다락방님 서재에 들어와보니(처음 들어와본 듯요) 서재의 달인 금뱃지 장난 아니네요 ㅎㅎ
독서의 역사도, 알리디너의 역사도, 여성주의 책읽기 역사도...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집니다.

다락방 2022-04-25 08:00   좋아요 1 | URL
굉장히 모순적인 경제구조죠. 몸이 갈려나가는 건 여성들인데 돈은 남성의 손에서 나와 다른 남성의 손으로 들어가고요. 성매매 여성들은 결코 그 돈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아 집 사고 차 사고 아니, 그게 다 뭐에요, 그 업계 자체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 구조인데요. 여자를 팔아 돈을 버는 건 남자라는 게 너무나 심란합니다. ㅠㅠ

책읽는나무 2022-04-22 1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면서 너무 놀랍기만 해서 정말...ㅜㅜ
부채가 곧 감옥 같은 세상인 것이었어요.
조직폭력배들의 연루, 저축은행, 러시앤 캐시등등 실제 거론되어지는 은행과 사채업자들의 이야기에 입을 다물 수 없는 정보들을 읽고 나서 머리가 띵~ 하던데, 그리고 또 한편으론 작가님 괜찮으신가? 약간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놀라운 책으로 다가왔거든요.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생각도 바뀌고, 그래서 법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22-04-25 08:01   좋아요 2 | URL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들이 이 책 안에 가득하더라고요. 저는 아가씨 대출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고 거기에 높은 이자를 때리고 그 이자가 원금이 되고... 그런 세상에서 도대체 성매매 여성들이 어떻게 그 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겠어요? 그 여성들이 있어야 남자들이 돈을 버니 결코 내보내지 않으려고 그런 수작들을 부리는건데. 정말 답답하고 마음이 아파요 ㅠㅠ

mini74 2022-04-22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라민 은행의 여성 망신주기 아가씨대출 선불금 등 ㅠㅠ 리뷰 써야 하는데 생각만 많아집니다 ㅠㅠ

다락방 2022-04-25 08:02   좋아요 1 | URL
선불금 서류가 대출의 증빙이 되다니, 너무 어이없죠. 저는 정말 기가 차고.. 어차피 이런 세상이라면 저 역시 성매매 월드에서 살고 있는건데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장은 정말 거대하더라고요. 관련된 자도 엄청나고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