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즈 위드 베네핏
윌 글럭 감독, 밀라 쿠니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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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하고 뻔한 내용이지만 플래시몹 때문에 기분 좋아지는 영화. 오, 뉴욕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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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18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씨.. 잠이 안와 ㅠㅠ
 

 

 

 

 

어제 온 책 박스에서 꺼낸 책들은 위와 같다. 알라딘 노트를 한 권 받았고, 시디도 한 장 포함되어 있다. 정란의 시디. 그리고 나는 오늘 일요일, 이 책들 중 한 권을 꺼내들었다. 그 책은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이었다. 잠깐, 그 책을 읽다가 그 책속에서 이런 구절을 보고 책 읽기를 멈추었다.

 

 

 

 

 

 

개들을 데리고 물이 많이 빠진, 그리고 아직 빠지고 있는 해변을 걷고 있는데 얕은 물속에서 뒹구는 게 눈에 띈다. 나는 발목까지 차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립된 아귀다. 아, 너무나도 그로테스크한 몸, 지독히도 불쾌한 입. 몸 전체 크기만큼 거대한 어둠의 문! 아귀의 몸 대부분이 입이다. 그런데도 그 초록 눈의 색깔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에메랄드보다, 젖은 이끼보다, 제비꽃 잎사귀보다 더 순전한 초록이고 생기에 차서 반짝인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그 가시와 이빨투성이 몸을 선뜻 집어 들 수가 없다. 한 남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걸어온다. 그들도 물속으로 들어와 그 불행한 물고기를 구경한다. 그 남자가 나에게 어깨에 걸고 있는 개 목줄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아귀의 육중한 몸 아래로 목줄을 넣어 아귀를 살짝 들어 올려서, 말 없는 괴상한 개를 끌고 가듯 천천히 깊은 물로 인도한다. 만세! 그 창의적인 정신과 따뜻한 마음씨에 환호가 나온다. 아귀는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초록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몸이 물에 완전히 잠길 때까지 허우적거린다. 그러더니 개 목줄 올가미에서 날렵하게 빠져나가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pp.22-23)

 

 

이 부분을 읽는데 친구  k 가 생각났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알 것도 같다. 그 친구 생각이 나서 더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인터넷 창을 열어 이 책을 주문했다. 주소는 그 친구의 회사였다. 아마도 그 친구는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책을, 예상하지 못했던 대상으로부터(그러니까 나) 받게 되겠지. 나는 그 안에 300원을 추가하여 메모를 넣었다. 그 메모에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을 받는 순간부터 앞으로의 많은 날들이 완벽한 순간이기를 바랍니다

 

라고.

 

 

 

 

 

 

 

어제는 친구와 극장에서 영화 『스토커』를 봤다. 예고편을 본 적은 있지만 그 누구의 리뷰도 읽지 않은 상황이었던 터라 내용의 전개가 당황스러웠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모르겠더라. 확실히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예전에 『줄리아의 눈』을 함께 보기도 했는데, 이 영화가 그 영화와 비슷하게 기분 나쁘다고 했다. 나는 스토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내가 전혀 모르겠고, 그렇지만 줄리아의 눈은 엄청 좋았다고 했다. 영화 감상은 이게 끝이다.

 

 

 

그리고 찾은 알라딘 중고샵은 내가 그 시간에 간 적이 처음이었던가, 와, 사람이 엄청 많았다.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고 여유롭게 책을 고를 마음도 생기질 않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돌아다니다가 두 권의 책을 찾아들었다.

 

 

이응준의 책은 개정판이 나왔다는 걸 알고 보관함에 넣어두었었는데 운좋게도 찾아냈다. 움화화핫. 백영옥의 소설을 충동적으로 집어들긴 했는데, 잘산건지는 좀 갸웃하게 된다.

 

 

 

 

 

 

 

 

 

 

 

 

 

 

 

사라진 아내를 8년간이나 기다려오며 다른 여자와 데이트조차 하지 않았던 남자 '그레이스'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에게 데이트 약속을 받아내고 그녀와 함께 펍에 앉아있게 됐다. 물론 얼마 같이 있지 못하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 순간은 얼마나 짜릿한가. 그와 함께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온 클레어에 대한 묘사다.

 

클레오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금방 감은 것처럼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을 어깨 위에 늘어뜨린 클레오는 고급스러운 밝은 색 스웨이드 재킷 안에 옅은 갈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발목이 드러나는 멋스러운 하얀색 7부 청바지를 입고 납작한 흰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p.417)

 

아, 이 장면을 읽는 나의 조용한 일요일에 갑자기 봄이 찾아온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다 벗기를 반복하고.. 역시 가장 좋은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려는 그 과정에 있는 시간인것 같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간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가! 게다가 이 여자, 진짜 멋지다.

 

 

클레어의 잔이 비어 있었다.

"한 잔 더 할래?"

"오, 좋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낼게요." 클레오가 말했다.

"1시간 20분이나 기다리게 했어. 술은 내가 사. 다른 소리는 하지 마!"

"그럼 다음 번 데이트에는 제가 사요?"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눈을 마주쳤다.

"좋아." (p.422)

 

 

자연스럽게 다음번의 데이트까지 약속하는 여자라니. 아 멋져.. 아릅다고 근사하다. 아, 이 여자 클레어는 근사하고, 그레이스도 괜춘하지만, 이 책이 썩 괜찮지는 않다. 시작과 전개가 흥미롭고 사소한것까지 세심하게 써낸 작가의 노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결말이 갑자기 허무해지고 말았달까. 이 책도 시리즈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레이스와 클레어의 얘기가 궁금해서 시리즈를 읽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스노우맨』을 읽고서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고서도, 『인어의 노래』를 읽고서도 그 다음 책들을 읽지 않았었다. 그러니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비염으로 약을 먹고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핸드폰이 울려서 깼다. 발신번호는 내가 모르는 번호였다. 누굴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댔다. 잘못걸린 전화였다. 나는 잘못 걸린 전화로 인해 잠에서 깼고, 깨고나니 젠장, 배가 고프다. 하아-

 

 

아직 일요일이 몇시간 더 남아있다. 남은 일요일은 메리 올리버를 읽으며 보내야겠다. 『완벽한 날들』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내 앞에 남아있는 날들도 완벽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이다. 그리고,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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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3-1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4시 28분에, 5시 53분에, 7시 23분에 같은 전화번호에서 전화가 왔고, 전부 받아서 여보세요. 라고 했는데 모두 바로 끊겼어요. 남자 같았는데.. 일요일 새벽에 무슨 사연일까요. 잊어버렸었는데 다락방님 글 보니 갑자기 생각나네요. 비 오네요. 꽤.

다락방 2013-03-18 10:36   좋아요 0 | URL
아, 그 사연. 저도 궁금하네요. 일요일 새벽에 전화해서 끊어야만 했던 사연이요. 저도 예전에 전화하고 목소리만 듣고 끊었던 경험이 있던지라, 그 비슷한게 아닐까 추측되고요. 물론 드림아웃님의 경우엔 상대가 아마도 자꾸 전화번호를 잘못 누른것 같지만요. 그 의도는 저와 같았던게 아닐까. 그거, 참 부질없는데 말이죠.

프레이야 2013-03-1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정말 비오네요. 이곳에도요. 낮엔 잠시 밖에 나가 봄꽃들을 눈으로 어루만졌어요. 산수유, 개나리, 목련. 무엇보다 스토커를 이번주 월욜 봤다는 사실과 완벽한 날듵을 오늘 펴들었다는 게 찌찌뽕이에요. 오래 쌓아두고 묵혀둔 옷들 대거 꺼냈어요. 과감하게 좀 버리려구요. ㅎㅎ 그리곤 지금 다시 완벽한날들을 폈어요. 다락방님에게도 완벽한 날들이길요. ^^

다락방 2013-03-18 10:3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완벽한 날들 다 읽으셨나요? 여유를 주는 책이긴 한데 문장들이 너무 시적이라고 해야하나, 좀 난해하기도 해서 제 취향은 아닌것 같아요. 문장들이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것 같아서 말이지요.

얼마전에 마산에 사는 친구가 꽃사진을 보내줬는데, 저는 아직 이곳 서울에서 꽃을 보지 못했어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파카를 입고 다녔답니다. 아, 얼른 꽃이 피었으면 좋겠어요. 꽃 보면 기분이 무척 좋아지니 말이죠. 한 주 잘 보내세요, 프레이야님!!

mira 2013-03-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날들 추천글들이 많던데 , 감성적인 글들이군요. 저는 추리소설 좋아해서 스노우맨 읽고 있는데 ㅎㅎ

다락방 2013-03-18 17:41   좋아요 0 | URL
스노우맨 재밌죠? 완전 빠르게 읽히잖아요. ㅎㅎ
완벽한 날들은 좋긴 한데 좀 문장들이 난해해요. 딱히 제취향의 책은 아니었어요.

테레사 2013-03-18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의 책을 잡고 있는 다락방님의 손톱이 아주 예쁘네요..반짝반짝 매니큐어한 솜씨하며...

다락방 2013-03-19 08:58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친구가 화장품 산다고 화장품 가게 같이 들어갔었거든요. 거기서 테스터 매니큐어 다섯손가락에 잽싸게 바르고 나온겁니다. 투명 매니큐어였는데 오, 그걸 알아보셨네요. 예리하셔요. 헤헷 :)
 
조금만 더 가까이 - 아웃케이스 없음
김종관 감독, 요조 (Yozoh)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일도 헤어지는 일도 이토록 피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모두들 반복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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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1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미가 먹던 샌드위치 맛있겠던데 ㅠㅠ

가넷 2013-03-1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딪쳐서 사고가 날까봐, 일방통행만 해서 잘 모르겠네요. 계속 그 버릇하니까 더 익숙해지나봐요 ..ㅠㅠ;

다락방 2013-03-17 13:42   좋아요 0 | URL
익숙한게 편하니까요, 가넷님. 엘리자베스 게이지가 자신의 소설 [스타킹 훔쳐보기]에서 남자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런 얘길 했어요.

한번도 사랑한 적 없는것보다 사랑을 잃어보는 것이 낫다.

가넷님, 사고 한번 치세요! ㅎㅎ

가넷 2013-03-16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니까 윤계상 주연이군요. 영화를 잘 안봐서 몰랐는데 차근차근 필모를 쌓고 있나보네요.

다락방 2013-03-17 13:42   좋아요 0 | URL
근데 이 영화 재미도 없고...의미도 잘 모르겠어요;;
 
소멸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류은희.조현천 옮김 / 현암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와 미움만으로 500 페이지나 채워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에겐 어떤 것들이 필요했을까. 나를 낳아준 나의 부모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 나라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형제들은 내가 자라면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다니고 친구를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쁜일도 있었을 것이고 또 많은 슬픈 일들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어떤것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로 이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기도 할 것이고. 이 책속의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증오하고, 자신이 살았던 거주지인 볼프스엑을 혐오한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리고 자신과 너무나 달랐던 형을 미워하고 비열한 웃음 말고는 가진게 없다고 생각되는 여동생들도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꿈꾸는 도시 로마에서 그를 살도록 도와주는 것은 자신이 증오하는 아버지가 벌어들인 돈이 아닌가. 로마에서 자신을 정착하도록 살아갈 장소와 친구를 소개해준 사람은 어머니의 연인이 아니던가. 내가 혐오한다고 해서 그 대상들로붙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내가 된 건 그들의 영향이 아니던가. 지금의 이 나라, 이 부모, 이 형제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가치관을 최고로 믿고 살고 있을까. 그 삶이 분명 지금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케빈에 대하여』를 케빈의 입장에서 쓴다면 이런 소설이 되지 않을까,잠깐 생각했다.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도 생각났다.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을 잊지 못할 찬란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그가 이 책의 끝에 언급했듯이,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함으로 인해서 결국엔 소멸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이 글로써 나는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며, 이 소멸에서 쓴 것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p.414) . 책에 실려있는 '조현천'의 이 책에 대한 해설은 나의 경우,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몇 부분을 옮겨두며 마친다. (굵은 글씨체는 책 그대로를 가져온 것)




그들은 식사하면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말을 해도 못마땅해 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구나, 하며 비난하고 말을 하면, 너는 쉬지 않고 말하는구나, 하며 비난했다. 집에 있으면, 너는 왜 밖에 나가지 않니, 하고 밖에 나가면, 너는 왜 집에는 안 붙어 있니, 했다. 내가 밝은 색 양복을 입으면 어두운 색을 입길 원하고 어두운 색 양복을 입으면 밝은 색을 입길 원했다. 마을 의사와 얘기를 나누면, 너는 언제나 의사에게 우리의 험담만 하니, 하고 의사와 얘기 나누지 않으면, 너는 의사와 얘기도 안 하니, 했다. 내가 파리보다 로마가 더 좋아, 하면 대번에 자기들이 로마를 싫어해서 내가 로마를 찬양한다고 했다. 디저트를 먹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들은 디저트에 대해 내가 한 말을 자기들과 연결시켰다. 디저트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힌 것은 그들과 아무 상관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무슨 말을 하든 언제나 내 말을 그들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볼프스엑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호수에 가고 싶다고 하면 늘 호수에만 가려 한다고 비난했다. 늘 호숫가로 가는 형과는 달리 나는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쯤 그곳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형은 2~3일마다, 여름철에는 더 자주 호숫가에 갔지만, 그들은 형을 비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숲에 가면 미친 사람 취급하고 형이 그러면 지극히 정상으로 여겼다. 식당에서 내가 마티니를 주문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곧바로 언제나 비싼 마티니만 시킨다고 했다. 어디엔가 가서 그들에게 그림엽서를 보내면, 그들은 대번에 내가 그들으 속을 뒤집으려고 그랬다고 했다. (p.56)



사람들의 약 90퍼센트가 그렇듯이 형도 최종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인생이 절정에 달했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이 사람들을 미칠 지경으로 몰아간다. 그들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자기 발전이 멈춘 다음에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 속으로 오그라든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역겨울 수밖에 없어서 이런 인간들을 볼 때마다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인간들은 처음에 우리를 우울하게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불행하게 하고 끝내 화나게 한다. 이런 인간들에게 모종의 조치를 취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p.62)



시간이 지나면서 형이 좋아하는 단어는 오로지 곡물, 돼지, 가문비나무, 소나무 등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파리, 런던, 카우카수스, 톨스토이, 입센 등이되었다. 형은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날 계속 열광시키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형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p.65)



하녀들 중 제일 나이 많은 이는 이제 일흔넷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하녀이고, 또한 임종할 때에도 하녀로 눈을 감게 될 것이며- 우리 집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하녀들이 그렇듯- 어쩌면 여든 넘은 노인이 되어도 여전히 하녀로 불릴 것이다. (pp.272-273)


소수 혹은 개인은 다수에 비해 훨씬 더 시류에 부응하며 행동한다는 이유에서 다수의 압력을 받는다. 시류에 부응한 생각은 언제나 시대에 부적절한 생각이다. 시대에 적절한 생각은, 실제로 시대에 적절한 생각인 경우라면, 언제나 당대를 앞지른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따라서 시대에 적절한 것은 으레 시대에 부적절한 것이다. 이에 관해 차키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대에 적절한 사람이다 함은 생각에서 앞질러 간다는 뜻이지 시대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것은 시대에 적절치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차키와 여러 날을 보냈다. (p.282)



나는 이 국가를 증오한다, 나는 이 국가를 증오할 수밖에 없으며, 이 국가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고, 불가피한 경우라면 절대 필요한 선에서만 관계할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이 국가는 더 이상 국가로 인정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개성을 잃은 비굴함을 종종 입증해 보였고, 매일같이,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모든 기회에 사회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나라이며, 언제나 하는 말처럼 민주주의 국가라고 떠들어대지만, 실은 가공스럽고 비굴하며 수치심을 모르는 국가이고, 자신의 가공스러움과 비굴함, 수치심을 모르는 철면피함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끔찍함을 대외적으로 자랑하기 까지 한다. 살인마에게 터무니없는 연금을 송금하고 공로 훈장을 떠안기면서, 셰어마이어와 같은 사람은 잊어버린 국가가 도채에 무슨 국가란 말인가, 나는 의문스러웠다. 살인마에겐 사치스런 삶을 영위하게 하고 셰어마미어와 같은 사람은 잊어버린 국가가 도대체 무슨 국가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p.341)



형제 중에서도 유독 나만 항상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부모님의 마음에도 쏙 들지 않았고, 부모님이 진심으로 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 후로는 차츰차츰 부모님의 마음에 들려는 노력까지도 포기하고 말았다. (p.386)




『양철북』에서 가해자인 독일인은 이 악몽을극복하기 위해 성장을 멈추었고, 케르테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서 피해자는 자식을 낳지 않음으로써 아우슈비츠 경험을 대물림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데, 베른하르트의 무라우 역시 이런 선상의 인물에 속한다. 무라우는 출생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그가 출생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이유는 자신의 부모가 과거 나치였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 때문에 무라우에게 고향집 볼프스엑 성은 나치 시절의 기억으로 얼룩진 곳이었다. 더구나 과거 나치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라우의 부모는 지방의 유지로 존경받고 있고, 이런 현실에 대한 거부감으로 무라우는 로마에 거주하는 중이다. (작품 해설,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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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3-1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읽어 보려고 했었는데, 생각한 것 보다 더 무겁네요.

다락방 2013-03-17 13:37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은 저보다 더 잘 읽으실것 같은데요? 저한테는 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더라고요. 책장이 더디게 넘어갔어요. 이 책 한 권을 일주일이나 붙들고 있었어요. 휴..

이진 2013-03-1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책이 끌리는 걸요. 음, 지금은 무리고 언제고 외국 고전을 시작할 때 이 책도 함께 읽으면 좋겠네요.

다락방 2013-03-17 13:40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이 책은 분명 매력적이고 굉장히 똑똑한 책이에요. 그렇지만 읽기가 정말 쉽지가 않더라고요.

단발머리 2013-03-17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으로만 봐선 약간 어려워보이지만, 으흠~~~ 다락방님 페이퍼를 읽어보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저는 장바구니에 넣지 않고, 제 책장으로 가져갑니다. 휘리릭~~~~~

다락방 2013-03-17 13:4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네, 어려웠어요. 저도 일주일이나 붙들고 있었답니다.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해보긴 했지만 끝까지 읽고나니 다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요일 오후인데, 잘 보내고 계신가요?
 

몇해전에 한 남자를 만나러 가면서 나윤선의 시디를 준비했었다. 그에게 그 앨범을 선물하기 위해 가방 속에 넣어가긴 했지만 정작 만나서는 주지 않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앨범인데, 시디를 이성에게 선물하는 것이 뭔가 은밀하게 느껴졌기에, 그가 내 마음을 오해할 것 같아서. 그러나 이야기가 깊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수록 그에게 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결국 그가 나를 위해 준비해온 선물이라며 시디 한 장을 내밀었을 때, 아, 나도 줄 수 밖에 없겠네, 하면서 나윤선의 시디를 내밀었던 것이다. 나는 「그리고 별이 되다」를 들려주고 싶어 그에게 그 시디를 줬던걸까, 그런데 그는 내게 「천사」가 좋다고 답했던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어제, 이 앨범을 들었다.












「surf」와 「coffee or tea」가 특히 좋은데, 오늘 아침에는 「coffee or tea」를 내내 반복해 들으면서 몇 해전의 그를 떠올렸다. 앨범의 타이틀인 '노마디즘'과도 그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를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이 앨범을 내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스트잇을 살짝 붙여주고 싶다. 아니, 쪽지에 메모를 적어 접어줘도 좋을테고. 거기엔 이렇게 쓸 것이다.



나는 coffee or tea 가 좋았어요.



그 다음날 혹은 며칠 뒤, 그로부터 어떤 답이 올지를 기다리고 싶다. 그가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그가 여행중일 때, 그 모든 시간에 이 앨범이 함께한다면 좋을것 같다. 




Would you like some coffee of some tea? oh
수줍어 말 못했지만

And if you want somebody just like me, oh
모처럼 용기내봐요

그거 아나요 매일 당신이
날 바라보며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리는걸요

So if you want some coffee or some tea, oh
오늘 날씨 한번 끝내줘요

But if you want somebody just like me, oh
날 좋아할지 자신없어요

좀 더 솔직할 수 없나요
알아버렸어요 당신도
매일매일 날 보러 왔잖아요

But I keep, I keep falling
and I keep, I keep. oh
yeah, I keep. I keep falling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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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3-1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머저리같은자식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3-03-14 09:37   좋아요 0 | URL
나는 미저리 너(그)는 머저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3-03-1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저리가 이 페이퍼를 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ㅋㅋㅋㅋ

다락방 2013-03-14 11:27   좋아요 0 | URL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13-03-1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가슴이 아픈;;;;;; 스토리입니다.
역시 타이밍이 중요한걸까요?;;;

다락방 2013-03-14 13:12   좋아요 0 | URL
네, 앤님. 역시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그 타이밍이란 것 자체도 운명의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흐음.

건조기후 2013-03-1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저리같은자식아는 태그군요ㅎ 모바일로 들어와보니 태그는 안보이는데 댓글보고 맞추는 재미ㅎㅎ 음 근데 시디선물에 은밀한 의미가 있나요 ; 전 여태 아무 생각없이 줬는데.. 뭐 상대방도 특별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거 같지만요 하핫

다락방 2013-03-14 15:0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 머저리는 태그. ㅋㅋㅋㅋ 제가 지은 유명한 시가 있죠. 저기 마중물님 댓글에도 썼듯이 나는 미저리 너는 머저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시디 선물에 은밀한 의미가 있는건 아니고, 저는 이성에게 시디를 선물할 때 은밀한 마음을 담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위의 경우에 그래서 은밀하다고 상대가 느낄까봐 겁을 먹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우리 사이 은밀한 사이가 되어 있었고....................네, 뭐 그런겁니다. 하아- 봄이 되니 유독 남자 생각이 나네요. 하하하하하.

mira 2013-03-14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이시디로 함 해볼까요? ㅎㅎ 세상의 머저리는 참 많아요.

다락방 2013-03-14 16:37   좋아요 0 | URL
꺅 >.<

해봐요 해봐요, mira-da 님!! ♡

2013-03-14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5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관찰자 2013-03-1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되니 유독 남자 생각이 난다는 다락방님 말이
왜케 공감되고 웃기나 몰라요.ㅋㅋ

다락방 2013-03-15 13:1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름에는 간절히 생각나고 가을에는 미친듯이 생각나고 겨울에는 애타게 생각나고, 저는 사계절 내내 남자 생각이 나는가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꼬 2013-03-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의 매력.

(아임 백~)

다락방 2013-03-15 14:39   좋아요 0 | URL
정말 잘왔소!!

dreamout 2013-03-1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offee or tea.를 저도 들어볼래요.

2013-03-16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6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7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