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를 하면서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April come she will 이 나왔다. 4월이다. 우연일까. 어제 자정을 넘겨 4월이 막 시작되는 그 때, 나는 이 책 속에서 4월을 만났다.


















황홀감뿐만 아니라 욕정도 느끼게 해주는 여인으로서의 데아, 베개 위에 머리를 얹어 놓고 있는 데아 등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공상적 유린 행위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것이 모독적 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강박 증세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것에서 발길을 돌리다가는 다시 돌아왔다. 순결에 대해 저지르는 위해(危害)행위 같앗다. 데아가 그에게는 구름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슈미즈 자락을 쳐들듯, 전율하면서 그 구름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었다. 때는 4월이었다. (p.544)



마지막의 '때는 4월이었다' 부분에 각주가 붙었다. 보통 주석을 넘겨버리는 나이지만, 왜 '때는 4월'에 붙어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거기엔 이런 설명이 있었다.


프랑스 문학에서 4월이 흔쾌한 사랑과 번식의 계절로 묘사된 것은 가장 유구한 전통이다. (p.544 각주)



오. 사랑과 번식의 계절, 4월이라니. 근사하다. 데아의 영혼을 사랑하던 그윈플레인이 이제 데아의 살을 사랑하게 되고 욕정을 품게된다. 거기엔 4월이란 변명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는 사랑의 포로가 됐다. 아니, 그는 데아를 알고부터 사랑에서 빠져나온 적이 없긴 했지만.



사람들은 왜 연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사로잡힌 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지만, 여인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거의 규칙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남자이건 그러한 정신 착란을 겪는다. 아름다운 여인, 그 얼마나 강력한 마녀인가! 사랑의 진정한 이름은 노예 상태이다.

남자는 한 여인의 영혼을 통해 포로가 된다. 그녀의 살을 통해서도 포로가 된다. 때로는 영혼보다 살을 통해 더욱 꼼짝 못하는 포로가 된다. 영혼이 정인이라면, 살은 안주인이다.  (pp.544-545)



이미 사랑의 포로가 된 그윈플레인에게 4월은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그를 사랑에 더 옭아맨다.



그윈플레인에게는 데아 이외의 다른 여인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유일한 여인이었다. 그를 원할 수 있는 유일한 여인이었다.

그윈플레인은 정체 모를 막연한 전율을 느꼈다. 무한에서 오는 생명의 항의였다.

거기에 무르익는 봄이 겹쳤다. 그는 까마득한 별들로부터 오는 이름 모를 영기(靈氣)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는 달콤한 불안에 감싸인 채 발길을 옮겼다. 한창 일에 열중하고 있는 수액의 떠도는 향기,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니는 매혹적인 발산체들, 멀리서 피어나고 있는 야간의 꽃들, 숨겨져 있는 작은 새둥지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모, 물과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뭇 사물이 뱉어 내는 한숨 소리, 시원함, 미지근함, 4월과 5월의 신비스러운 깨어남 등 그 모든 것은 광막하게 산재해 있는 성적 충동이며, 그것이 속삭이듯 관능적 쾌락을 살며시 제안한다.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더듬게 만드는 현기증 나는 도발이다. (pp.546-547)


하아. 나는 이게 이런 소설인 줄 몰랐어. 이렇게 사랑과 욕망에 대해 리얼하고 판타스틱하게 표현해내는 소설일 줄을 몰랐어. 위고님께 그만두시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사랑과 봄에 대해서, 그것이 불러오는 욕정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만두세요, 이제 그만하세요. 4월의 밤에 읽는 저같은 여자더러 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자, 그리고 4월은 다시 한 번 출현해 쐐기를 박는다.



우연의 간계가 그보다 더 완벽한 조치를 취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며, 유혹이 그토록 무르익도록 한 적도 없을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과, 한창 오르고 있던 만물의 수액(樹液)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그윈플레인은, 마침 살에 대한 몽상에 잠겨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능히 제압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유구한 본질이, 지각생 장정, 나이 스물다섯이 되도록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그 장정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가장 혼란스러운 위기의 순간에 그에게 제안이 들어왔으며, 그의 앞에 문득, 스핑크스의 벗은 젖가슴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젊음이란 하나의 경사면이다. 그윈플레인이 기울어 있는데, 그를 민 것이다. 누가? 계절이. 누가? 밤이. 누가? 그 여인이. 4월이 없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정숙할 것이다. 꽃 만발한 잡목 숲은 모두 공모자이다! 사랑은 절도범이고, 봄이라는 계절은 은닉자이다. (p.557)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아침에 출근하면서, 혹시 내가 자는 사이에 이 거리의 모든 꽃들이 앞다투어 피지는 않았을까 걱정됐다. 나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질 않았는데. 따뜻한 곳에 사는 친구들이 한 명씩 저마다 꽃이 피었다며 사진을 보내주는데, 그걸 볼 때마다 초조했다. 어쩌지, 이제 곧 여기도 필텐데 어쩌지. 나는 아직 지금 겨울인데. 하아- 그나저나 봄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겠지. 그래, 어디 한 번 맞아보자. 이번해에도 미쳐보자. 


게다가 이 책, 『웃는 남자』의 하권을 절반쯤 읽은 현재, 이야기가 완전히 색다르게 진행된다. 이런걸 반전이라 봐도 좋지 않을까, 하다가 그러나 이럴거라고 이미 상권에서 복선을 깔지 않았던가 했다. 아, 그러나 푹 빠져들어서 이런 이야기가 진행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 진짜 대단한 책이다. 어서 빨리 뒤 이야기들을 읽고 싶다. 그윈플레인에게 다가온 새로운 유혹으로부터 그윈플레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데아와 우르수스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아,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그저 이야기꾼이라면 나는 그저 심드렁했을텐데, 주인공의 입을 빌어낸 대사들로 충분히 그들의 심리가 짐작된다. 아, 진짜 대단한 소설이다.




아, 그나저나 4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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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rather dance with you than talk with you
So why don't we just move into the other room
There's space for us to shake, and hey, I like this tune

Even if I could hear what you said
I doubt my reply would be interesting for you to hear
Because I haven't read a single book all year
And the only film I saw, I didn't like it at all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The music's too loud and the noise from the crowd
Increases the chance of misinterpretation
So let your hips do the talking
I'll make you laugh by acting like the guy who sings
And you'll make me smile by really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with you
I'd rather danc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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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3-04-0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하~~~ 나두 읽고 싶포라~~

어제밤에 다락방님의 밑에 페이퍼 '웃는 남자(상)'을 읽고, 오늘 아침에 '웃는 남자(하)' 페이퍼를 읽으니, 아,,, 나도 읽고 싶다.

남자는 한 여인의 영혼을 통해 포로가 된다. 그녀의 살을 통해서도 포로가 된다. 때로는 영혼보다 살을 통해 더욱 꼼짝 못하는 포로가 된다. 영혼이 정인이라면, 살은 안주인이다. (pp.544-545)

이 구절 너무 감각적인데요. 진짜 밤에 잠 안 오는 구절 맞아요. ㅋㅎㅎㅎㅎㅎ

어제밤에는 간만에 먼 데서(아프리카, 수원, 잠실)에서 놀러오신 손님들이 가시고 정리를 마친 뒤, '레 미제라블 2'권을 읽다가 고개를 떨구고 꿈나라에 다녀왔더니, 목이 너무 아파요.
근데, 아.... 웃는 남자라... 너무 재미있을거 같아요.

그나저나, 나 일빠~~ 이야호 만세!

다락방 2013-04-04 11:14   좋아요 0 | URL
오오, 단발머리님! 아프리카에서 오시는 손님도 있어요? 꺅 >.<
저는 아프리카에 친구도 없는데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오시는 손님도 있답니까? ㅎㅎㅎㅎ

웃는 남자 되게 재미있어요, 단발머리님. 아직도 어린아이같은 감성을 가지신 단발머리님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보실거에요. 위고가 대단하기도 하고 말이죠. 단발머리님은 웃는 남자 읽으시면서 정말 몇 번이고 감탄하실듯요!!

단발머리님이 일빠인게 저한테도 만세!! 입니다. 기뻐요, 무척. 히힛

2013-04-01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4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사 2013-04-0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참다 못해 뒤를 미리 읽어보았어요. 다 읽고 나면, 아하 이 책 이런 것이었구나..사랑이야기인줄 알았다가, , 또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다가...다시 인간의 추함과 성서로움에 대한 이야기라는...그런 생각들이 연이어 달겨들더라고요..

다락방 2013-04-04 11:11   좋아요 0 | URL
오오 테레사님은 벌써 읽으신겁니까? 저는 아직 뒷부분 남아있어요. 요즘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할 게 많고 바빠서 정말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네요. 지하철에서도 딴짓하기에 바쁘고. 흐음. 저도 어서 빨리 다 읽고 싶어요!! 뒷부분 조금 남았어요.

라로 2013-04-0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봤어요~~~.ㅎㅎㅎㅎ 책을 읽고 싶었지만 주문하기엔 넘 늦었고,,,,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책이 읽어싶어지더군요,,그런데 책 읽을 시간은 없고,,일단 다락방님의 페이퍼로 요기를,, 다락방님~~~4월이에요!!!! 사랑과 번식의 계절~~~~많이 사랑하시는 4월 되시길!!^^

다락방 2013-04-04 11:11   좋아요 0 | URL
사랑과 번식의 계절 이라는 문구가 특히 확- 들어오네요. ㅋㅋㅋㅋㅋ 저도 사랑을 흠뻑 즐기는 4월을 보내야겠어요. 번식............은 빼고요. 하하하하핫.

나비님은 이 영화 어떠셨어요? 전 어쩐지 보기 싫어지고 있어요;;

비연 2013-04-0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둔 게 한참 전인데 아직 못 읽고 있는.. 근데 영화부터 개봉..ㅜ

다락방 2013-04-04 11:09   좋아요 0 | URL
비연님, 이 영화만큼은 특히나 더 책을 먼저 읽으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영화가 90분 밖에 안되더라고요...-_-

Kir 2013-04-0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는 남자>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그래서 러닝타임이 너무 짧은 게 불안했지만 영화를 봤는데...ㅜㅠ
영화는 어지간해서는 보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저랑 동행한 지인은 모두 이 영화를 본다면 지하에서 위고가 분노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테레사 2013-04-01 11:45   좋아요 0 | URL
흠...남자 주인공은 멋져 보이던데....그렇군요..전 안볼랍니다...

다락방 2013-04-04 11:07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 보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한건데요, 러닝타임이 90분인거 보고 이잉?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그래서 보기가 망설여져요. 대체 90분으로 뭘..했을까요? 점점 보기싫어지네요... 하아.

2013-04-01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4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3-04-0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pril come she will를 출근길 차 안에서 들었습니다. 만우절인데도 애들이 월요병에 지쳐서 그냥그냥 지나갔네요.

다락방 2013-04-04 11:07   좋아요 0 | URL
이 노래가 라임이 대단한 노래라는 거 아셨어요? 이근철이 얘기해주기 전까지 전 몰랐어요.

April come she will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May, she will stay,
Resting in my arms again

June, she´ll change her tune,
In restless walks she´ll prowl the night;
July, she will fly
And give no warning to her flight.

August, die she must,
The autumn winds blow chilly and cold;
September I´ll remember.
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각 월마다 라임이 살아있어요!! >.<

프레이야 2013-04-0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월이 없다면 사람들이 훨씬 더 정숙할 것이다...
프랑스문학에서 사월은 사랑의 계절로 더 의미를 두는군요. 웃는남자, 냉큼질러야겠어요. 땡스투유^^
빛나는 사월 보내세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3-04-04 11:05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정숙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4월이 있다는 게 너무나 근사하지 않아요, 프레이야님? 헤헷

프레이야님도 바람나는 4월 보내세요(응?)! 4월엔 바람 나는게 당연하다잖아요!! 히죽히죽 ^_____^

달사르 2013-04-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4월에 바람이 나는 건 지극히 정상인 거네요? ㅎㅎㅎㅎ

세번째 단락..'살은 안주인이다' 부분까지 읽고 나니 외로운 처녀는 이 밤에 더 못 읽겠소! ㅎ

위고 소설. 멋지군요. 다락방님 다 읽으시는 거 보고 저도 따라..?

다락방 2013-04-04 11:04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봄에 미치는것이 당연하듯 4월에 바람 나는것도 당연한겁니다. 달사르님, 우리 봄이고 4월이니 바람납시다! ㅎㅎ

저도 야밤에 살은 안주인이다 읽고 제 살들을 한 번씩 쓰다음어 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로운 처녀에겐 확실히 가혹한 부분인듯요. ㅋㅋㅋ

관찰자 2013-04-0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은 <웃는 남자>에서 4월을 찾으셨구나.
저는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에서 4월을 찾았어요.

아무려나,
봄은 봄이네요^^

다락방 2013-04-04 11:03   좋아요 0 | URL
오, [댄스 댄스 댄스]의 어느 부분에서 4월을 찾으셨어요, 관찰자님?

날씨도 좋은데 저는 마치 겨울인듯 옷을 입어서 기분이 구려졌어요. 이제 봄처럼 입고 다녀야지. 흐음.
 

 

 

 

'키이라 나이틀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안나 카레니나와는 아주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그래도 또 궁금하긴해서 친구랑 극장을 찾았다. 영화소개프로그램에서 이미 장면과 장면에서 넘어가는 장면이 극적이라고 했던걸 들었지만 내가 그런 장치들을 좋아할 수 있을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직접 보는것과 짐작하는 것은 달랐다. 나는 처음 이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매혹당했다.  '조 라이트'의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그것보다 못하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는 영화였다. 그보다는 톨스토이의 안나와는 '다르다'고 해야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원작을 제대로 살려내기 힘들지, 더군다가 그게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작이라면, 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과도 다르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여져셔는 안될것 같다고 해야할까. 어쨌든 '조 라이트'의 안나 카레니나는 감각적이다. 또한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축약하여 어떻게 잘 담을것이냐, 하는 것을 극중 인물들의 심리에 꽉꽉 눌러담은 듯하고, 그리고 그 심리가 보여지는건 초반에서 특히 잘 드러나며 사람을 끌어당긴다. 레빈은 키티를, 키티는 브론스키를, 브론스키는 안나를 향하는 그 마음과, 브론스키를 사이에 두고 그와 춤추는 안나를 질투하는 키티, 그런 키티와 브론스키 사이에서 어쩌지를 못하고 즐기고 싶으며 그러나 도망치고 싶은 안나. 그 셋이 무도회에서 춤추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키티는 자신에게 청혼한 레빈을 거절한다. 그녀의 마음은 잘생긴 군인, 브론스키에게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무도회에 안나가 등장하고 브론스키의 시선이 내내 안나에게 가있다는 걸 안 순간 키티는 가까스로 눈물을 참는다. 그전에 키티의 언니는 안나에게 말한적이 있다. 키티는 당신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고. 누구나 시기와 질투심이 생길 수 있다. 대체적으로 그건 '내가 갖고 싶은'것을 가진 상대에 대해 나타날 때가 많다. 예쁜 여자를, '그' 남자의 시선을 받는 여자를, 젊은 여자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선에서 부러워하고 시샘한다. 키티는 안나가 가진 매력이 부러웠고, 안나는 브론스키와 함께 살게된 뒤로 브론스키가 만나는 열여덟 어린 여자에 대해 질투를 느낀다. 나는 며칠전에 읽은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생각났다.

 

 

 

여인이 자신의 나이를 더 이상 봄으로 헤아리지 않고 겨울로 헤아리기 시작하는 때가 되면, 공연히 마음이 상한다. 마음속에 세월을 향한 말없는 원한이 생긴다. 그러면 활짝 피어나는 아름다운 젊음이, 다른 이들에게는 향기롭지만, 그러한 여인에게는 가시처럼 보이고, 모든 장미꽃 냄새가 따갑게 느껴진다. 그 모든 싱싱함이 자기에게서 빼앗아 간 것처럼 보이고, 자기의 아름다움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여인들의 아름다움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상권, p.374)

 

 

 

 

 

 

 

 

 

 

 

 

 

 

 

 

 

영화로 만나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나는 레빈에게 반했는데, 그는 충분히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손톱이 인상깊었다. 그가 자신의 아이를 아내로부터 건네받아 안는 장면에서 그의 손톱이 보였는데, 그 손톱은 지저분하고 때가 끼어있었던 것. 그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을 필요는 없다, 우리를 부리기만 하면 된다, 고 말하지만 레빈은 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그들과 함께 섞여서 일한다. 레빈의 손톱은 직접 일하는 사람의 손톱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 손톱을 보면서 이 영화가 더 좋아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랑'을 삶의 전부로 두어서는 안된다고. 안나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와도 헤어지고 사교계에서도 매장당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브론스키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러니 그녀를 살게하는 이유는 이제 오로지 브론스키와의 사랑이다. 브론스키의 사랑을 잃으면 그녀는 끝장이다. 브론스키의 말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더 신경쓰이는 이유다. 그래서 내 인생을 걸만한 것이 단 하나여서는 안된다. 사랑은 나를 지탱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여러가지들중 하나 여야 한다. 전부여서는 안된다. 사랑뿐이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 내 모든걸 거는게 단 하나여서는 안된다. 위험하다. 그것은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너는 나의 전부야, 라는 식의 태도는 그 사람을 잃었을 때 나를 무너지게 만든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에겐 여분의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중한 한 사람과의 인연의 실이 끊어져도 잠깐 휘청거릴 뿐 다시 제자리에 꼿꼿하게 서있게 해줄 여분의 사람이.

 

 

 

 

 

 

 

 

 

 

 

 

 

 

 

 

 

 

날씨가 무척 좋은 일요일인데, 나는 택시를 타고 병원엘 다녀왔다. 택시기사님은 날이 이렇게 좋으니 산이라도 가야하는데 일이나 하고 있으니 이게 뭡니까, 라고 하셨고 나는 거기에 대꾸했다. 저는 병원가잖아요, 라고. 기사님은 그러게요, 하면서 웃으셨다.

 

 

어제는 친구와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가자며 삼겹살집을 나왔는데 비가 오고 몹시 추운거다. 이렇게 추운데 맥주를 마실 자신이 없어졌다. 속이 차질걸 생각하니 너무 끔찍해. 우리는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우산도 없던터라 친구는 그냥 비를 맞고, 나는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다. 친구는 좀 떨어져서 걸으라고 챙피하다고 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들어간 카페는 따뜻했고 안락했다. 친구는 커피를, 나는 녹차라떼를 시켜두고 마시며 이제 좀 살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캬라멜시럽이 잔뜩 뿌려진 커다란 식빵 덩어리를 가운데에 두고 뜯어 먹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다 동시에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가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검색해보니 '브루노 마스'의 'Natalie'였다. 어, 이거 우리 엠피삼에 들어있는 노래잖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그러다 가사를 찾아보았는데, 오, 그녀는 그의 all my money 를 가지고 도망갔단다!!!

 

 

 

 

 

 

 

 

 



 

 









마지막으로 어제 가장 놀라웠던 일. 바로 브론스키의 나이였다. 트와일라잇의 재스퍼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검색해본 이 영화의 브론스키는 무려 1990년 생이었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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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3-3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빨간 스카프를 머리에 모자처럼 야무지게 두른, 우산을 쓰지 않은 여성분을 보고 오~괜찮은데~나도 스카프 저렇게 둘러야지 생각했었어요 ㅎㅎㅎ

전 이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해요^^

다락방 2013-04-04 10:50   좋아요 0 | URL
아른님 지금 프로필 사진 바꾸는 중이세요? 어떤 사진으로 바꾸실지 기대돼요!!

저는 음 똥색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요, 빨간 자켓을 입고 있었어요. ㅎㅎㅎㅎ 정말 추운 날이었어요. 하아-

세실 2013-03-3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나 카레니나 책을 읽은 직후라 영화에 많은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별로더라구요. 미성년 같은 브론스키의 외모도 그렇고.... 레빈과 키티의 스토리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
브론스키를 선택함으로서 안나의 삶은 참으로 기구했죠. 문득 나혜석이 오버랩되더라구요.

다락방 2013-04-04 10:52   좋아요 0 | URL
저는 당연히 제가 싫어할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연극적인 장면들이 무척 마음에 들더라고요. 안나 카레니나를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한건 음, 여전히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말예요. 장면장면들이 꽤 감각적이어서 좋았어요. 레빈이 농사짓는 모습도 그랬고요.

모든걸 다 버리고 선택한 사랑인데, 그 사랑에 모든걸 걸게 되는 그 상황에서 그게 아니라면 결국 죽음 뿐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파요. 하나에 모든걸 다 거는건 너무나 위험해요. 사랑이든 그게 뭐든 분산투자 해야할 것 같아요.

당고 2013-03-3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브론스키역 배우 67년생 여자 감독이랑 결혼했어요. 진정 브론스키 ㄷㄷㄷ
http://blog.naver.com/lawyergj?Redirect=Log&logNo=110164636738

다락방 2013-04-04 10:52   좋아요 0 | URL
완전 짱멋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애까지 있어요. 둘이나! 아~ 난 젊은 아빠가 무척 좋아요. 파란눈동자의 젊은 아빠라니. 그 아빠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요? 하아- 너무나 우월한 아빠야..

라로 2013-04-0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가 참 좋았어요!! 몰입을 방해하는 키이라 나이틀리 빼고요,,저도 그녀가 캐스팅 되었다고 해서 참 많이 고민했어요,,(고민해 봤자지만!!ㅎㅎ) 연극형식을 빌려와 장면의 변화를 준 것도 아주 좋았어요!! 그 덕분에 방대한 줄거리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했답니다. 좋아던 미남 쥬드 로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펐지만,,,ㅎㅎㅎ 키티와 레빈은 아주 좋았어요,,,,책은 레빈이 주 같은데 영화는 안나가 주라,,약간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영화에요,,,제가 키이라를 참을 수만 있다면;;;;

다락방 2013-04-04 10:54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레 미제라블] 보다 이 영화 [안나 카레니나]가 그 책의 방대한 이야기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않았나 싶어요. 게다가 매 장면장면 바뀌는게 정말 감각적이었어요. 감각적이란 단어는 이럴때 쓰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키이라 나이틀리라는 제가 싫어하는 배우가 떡- 하니 중심에 있는데도 영화가 괜찮더라고요. 좋았어요. 쥬드로는...하아- 저는 한 때 그의 미소 한 번에 심장이 콩닥거리기도 했었는데요...그러나 세월이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찾아간다니, 묘하게 위안이 되기도 해요. 저랑 이 영화 같이 본 친구도 한 번 다시 보고 싶대요. 자꾸 생각 난다면서요.

마노아 2013-04-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점이 별로여서 건너뛸까 했는데 이글 보니 급 관심 돋아요. 웃는 남자도 영화 평은 아직까진 별로던데 역시 관심 생기구요. 책은 열린책들이더만요. 그것도 두권. 아직까지 열린책들은 극복 성공한 적이 없는 1인...ㅎㅎㅎ

다락방 2013-04-04 10:57   좋아요 0 | URL
저랑 제 친구는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친구는 한 번 더 보고싶대요. 자꾸 생각난다고 하네요. [웃는 남자]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한건데, 책을 읽고있노라니 영화 보기 싫어졌어요. 상영시간이 90분이더라고요. 대체 이런 엄청난 작품을 어떻게 90분으로 축약했지? 싶으면서 별로 신뢰가 생기지 않는달까요..저 위에 Kercheis 님이 영화 별로라고...그래서 저도 갈등중이에요. 흐음.

마노아님, 열린책들 읽을만해요!! 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13-04-01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이라는 역시 예상대로 다소 새로운 안나였어요. 전체적으로 꽤 감각적으로 만들었더군요.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레빈과 키티 쪽의 장면에서요. 브론스키로 나온 배우의 눈동자 색깔이 헉..
춤추는 장면, 정말 대단했어요.
그리고 책 구매 안 하려고 했는데 '웃는남자'는 아무래도 다락방님 페이퍼 덕분에 사야할 것 같아요.
영화부터 보게 되겠지만요.^^

다락방 2013-04-04 11:03   좋아요 0 | URL
네, 원작을 읽는 쪽이 영화감상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왜, 블록으로 레빈과 키티가 대화하는 장면이요, 그 장면에서는 괜히 눈물도 나더라고요. 책도 막 생각나면서요. 처음 춤추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죠. 심리가 고스란히 다 드러났어요. 그 미묘한 기대와 질투와 긴장 모두가요. 정말 좋았어요, 저도.

웃는 남자는 프레이야님도 읽으시면 정말 좋아하실거에요. 위고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어요. 저는 이제 하권의 뒷부분을 남겨두고 있어요. 하아- 날씨도 좋은데 조용한 카페에 가서 나머지 부분을 읽고 싶네요.

바이런 2018-01-14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댓글 정말 오랜만에 다는거 같아요~ 요즘 <안나 카레니나> 읽기 시작해서 이 글을 봤는데 사랑을 삶의 전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말, 우리에게는 여분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 정말 좋네요. 역시 락방님의 페이퍼는 너무 좋아요 >_<

다락방 2018-01-15 10:56   좋아요 0 | URL
우아앗, 바이런님. 알라딘에서는 오랜만입니다. 이 글에 댓글이 달리는 덕분에 이 글을 저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어요. 제가 이런 글을 썼었군요. 2013년의 글이네요. 하핫. 그나마 이렇게 글로 적어놓았으니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느꼈구나, 하지, 그렇지 않았으면 영화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뻔했어요.

안나 카레니나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죠. 단순히 불륜을 저지른 여자의 이야기라고 퉁쳐버리면 안될만한 작품이에요. 톨스토이는 글을 정말 잘 쓰더라고요. 심지어 사냥하는 사냥개의 입장에서도 글을 쓰잖아요!!
아무쪼록 즐거운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과거에 제가 써둔 글이 지금의 바이런님께 좋은 글이 되었다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헤헷.
 
파리 vs 뉴욕 - 두 도시 이야기
바랑 뮈라티앙 지음, 최하나 옮김 / 새움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왼쪽은 파리, 오른쪽은 뉴욕에 대한 그림으로 두 도시에 대한 상징을 보여준다. 그 상징들은 누가 봐도 고개 끄덕일만한 것인데, 그래서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책장에 꽂아두고 간혹 꺼내볼만한 책과는 (나의 경우엔)거리가 멀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파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프루스트가, 뉴욕을 대표하는 작가로 샐린저가 등장했으며 파리의 휴식을 대표하는 것은 pause(멈춤)이고 뉴욕의 휴식을 대표하는 것은 go(달리기) 인것이 무척 인상깊다. pause 의 그림으론 담배피는 것이, go 의 그림으론 헤드폰을 쓰고 뛰는것이 그려져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재미있고 설득력있으며 강하게 다가오는 건 짝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파리는 콰지모도 뉴욕은 킹콩. 아..진짜 확- 다가오지 않는가. 작게 찍힌 글자들을 써보자면 아래와 같다.



파리: 파리의 대성당 '노트르담 드 파리'.

그곳에서 펼쳐지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꼽추인 카지모도는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남몰래 사랑한다.

카지모는 에스메랄다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p.78)



뉴욕: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펼쳐지는 영화 [킹콩]

비록 짐승에 불과하지만 킹콩은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헌신을 다한다.


"킹콩 그 녀석은 총에 맞아 죽은 게 아니오.

사랑 때문에 죽은 거지요." -[킹콩] 중에서  (p.79)




한편, 파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장 뤽 고다르는 '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오늘날 내가 할 말은 아주 간단하다. 영화를 만들라.'(p.98) 고 했고, 뉴욕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우디 앨런은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잘 만들면 관객, 적어도 특정한 관객은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고 애쓰거나 관객이 좋아하게끔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잘못이다. 그럴 바에는 관객을 촬영장으로 불러서 감독을 시키는 게 낫다.'(p.99) 고 했다. 둘 다 멋지네.



재미있고 귀여운 책이다. 앉아서든 엎드려서든 다리를 흔들며 즐겁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다리를 흔들면서 본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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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3-30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디 앨런의 말에서 '영화'의 자리에 다른 말들을 넣어도 마찬가지겠죠.
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맨날 까먹는 말.

다락방 2013-03-30 08: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드림아웃님. 저기엔 영화 말고 글이나 음악을 넣어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아주 유익한 말이었고, 우디 앨런이 더 좋아져요. 그러고보면 전 우디 앨런의 영화도 대체적으로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 책도 역시 저는 드림아웃님 덕에 읽고싶어졌던 책이었어요. 훗 :)

mira 2013-03-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같네요. 영화감독 이야기는 참 맘에 와닿네요

다락방 2013-03-31 19:47   좋아요 0 | URL
네, 영화감독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와닿았어요. 위에 드림아웃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우디 앨런의 말에는 '영화'라는 말 대신 다른 무얼 넣어도 성립하니까요.
 

어렵사리 구한 술을 마시는 곳은 주로 야외였다. 도시에서 사는 우리가 야외에서 술을 마실 일이 얼마나 있을까? 대학교 때 잔디밭에서, 혹은 한강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어본 경험 외에는 언제나 시끄럽고 컴컴한 공간에서 술을 마셨다. 이런 우리와 달리 라다크 친구들은 대부분 밖에서 술을 마셨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왜 안에서 마시냐는 게 친구들의 생각이었다. 차를 몰고 가다 경치가 좋은 곳이 있으면 어디에고 내려서 술을 마시는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특별한 장소를 가지고 있었다. 사막의 공터, 개울가 주변, 강 어귀, 룽따(티베트를 상징하는 오색 깃발. '바람의 말' 이라는 뜻)가 휘날리는 다리 근처, 모든 곳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였다. 라다크 친구들에게는 라다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술집인 셈이다. 너른 땅에 앉아 탁 트인 공간에서 술을 마시면 금세 호기로워져 이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앗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기운이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술에 취하는 것보다 자연의 정기에 먼저 취했다.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이나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월식이나 강 내음, 시원한 바람은 일종의 안주였다. 세상에 이런 호사스러운 술자리가 또 있을까? (p.105)

















그러고보니 나도 야외에서 술을 마신 경험이 별로 없다. 대학 축제 때 캠퍼스에서 마신 적은 있지만 사실 별로 축제에 참가하는 쪽이 아니어서 다른학교 남자들이 놀러왔을 때 한 번..이었나. 그리고는 올림픽공원에서 몇 번 마신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이기도 했고 혼자이기도 했다. 올림픽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좋은 이유는, 바로 근처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는 친구가 메신저를 통해 저 문장들을 사진 찍어 보내줬을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술을 마시고 싶다고, 나무들이 우거진 숲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싶다고, 그건 참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금세 화장실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란 여자, 낭만을 깨부수는 여자.. 야외에서 술을 마시려면 내게 깔끔한 화장실은 필수다. 난 술집에서 화장실 정말 중요해 흑흑 ㅠㅠ 어쩔수없어 ㅠㅠ 그래서 재작년인가, 같이 술마시던 남자가 '여자랑 둘이 술 마실 때는 화장실 깨끗한 집으로 가려고 하죠' 라고 말했을 때, 마음이 살짝 콩콩 거렸엇어...하아. 



여행기를 별로 읽지만 이 책의 저자들(두명이다)은 글솜씨가 빼어나서 읽기에 좋았다. 무엇보다 나는 신기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나는 '라다크'라는 지역이 있다는 것도, 그것이 인도 북부의 도시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됐는데, 나보다 훨씬 젊은 이들은 그런 라다크에서 까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세 번의 라다크 방문 끝에 카페를 열었다고 했는데, 라다크라는 도시는 사진으로 보는것과 책에서 읽는걸로는 내게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 가보고 싶은 곳도 아닌데, 이 둘은 그곳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고, 또 뜻하는 바가 같아 함께 여행하고 함께 그곳에 정착하다니(지금은 아니지만), 정말 신기했다. 여행이라는 게 친하다고 아무나와 같이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정말 대단히 친하고 잘 맞는 친구 사이인가 보다. 나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나에게 라다크에 함께 가서 살자고 해도 일 초의 고민 없이 '아니'라고 말할텐데. 설사 현빈이 와서 그러자고 해도 나는 싫다고 하고 그와 헤어질텐데. 그래서 삶의 방향이 같은 쪽을 향하는 사람을 만나서 인생을 설계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





"승려들이 추는 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어?"

"글쎄, 승려들이 추는 춤이니까 부처님하고 과련이 있는 건가?"

"그것보다도 훨씬 깊은 뜻이 있어. 참을 통해 우리가 죽은 후에 보게 되는 것들, 그 무서운 형상들을 미리 보여주느느 거야. 죽은 후에 걷게 되는 길 위에서 헤매지 않도록."

"죽음을 연습한다고?"

"말하자면 그런 거지. 사람은 죽은 후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깨닫게 되거든. 지금부터 머릿속에 넣어두면 죽은 뒤에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게 되는 거야. 이전에 몇 번 보았던 것들이라면 아무리 무서운 모습이라도 두렵지 않을 것 아니야? 익숙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데려와서 참을 보여 주는 거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릊만 죽고 난 이후에는 자신이 생전에 모았던 것들을 기억해낼 수 있거든."

"그럼 참도 여러 번 보면 그만큼 더 연습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pp.135-136)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참' 이라고 하는데, 거기엔 죽음을 연습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영혼의 존재를 믿거나 혹은 믿지 않거나, 연습할 수 있다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참 이란건, 한 번쯤 봐두는게 좋지 않을까? 보고나면 어쩐지 마음이 조금 더 덤덤해지고 두려움을 조금쯤 몰아낼 수 있을것 같다. 그렇다해도 이 춤을 보기 위해 내가 라다크로 날아가고 싶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다면, 내 눈앞에서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죽음을 연습하는 춤을 추는 그 공간에 있다면, 나는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될까? 조금 두근거리게 될까? 그 춤을 눈 앞에서 보고 싶다.








그건그렇고, 엊그제였나, 나비님 덕에 보관함에 담긴 책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중고가 등록되어있는지 확인할 수 있단걸 알게됐다. 예전엔 미처 몰라서 혹시 이거 중고떴나, 궁금하면 그 책 검색해서 중고 확인했는데, 보관함 리스트를 보니 중고등록 2건 뭐 이런식으로 표기가 되어 있더라. 덕분에 어제 또 나에게 책이 한 박스가 도착......아, 이건 나비님 덕이라고 하지 말고 '탓' 이라고 해야겠다. 모르는게 나았어요. 흑흑. orz




기침이 며칠째 떨어지지 않아 약을 먹고 있는데, 엊그제부터는 닥터가 약을 바꿔줬다. 이 약 탓인지 모르겠는데, 어제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붓는다. 쌍커풀은 풀어지고 눈은 튀어나오고 뜨고 있기가 힘들다. 오늘은 특히 더해서, 사무실에 왔는데도 가라앉질 않고있다. 힘들어...이따 닥터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나, 이게 약 탓이냐고..쩝...오늘 저녁에 친구랑 맥주를 마시기로 했는데 이 눈탱이로 어떻게 나가나. 오후에도 이 눈이 변함없이 이 지경이라면, 친구한테 다음에 만나자고 해야겠다. ㅠㅠ 나는 날씨가 구질구질해도 또 몸이 아파도 약속을 취소하진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내가 취소하는거 싫어한다), 부은 눈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아- 차라리 스타킹이 빵구난거라면 좋을텐데. 그럼 새로 사서 신으면 되니까. 에잇, 짜증나. 




어제 친구와의 대화.


나: 나쁜 남자 상권 다 읽었어요. 친구: 나쁜 남자예요? 웃는 남자가 아니고요?

하아- 친구의 말을 채팅창으로 읽고 빵터졌다. 위고의 위대한 작품을 내가 삼류로맨스로 바꿔버렸...orz 




오늘 아침 가장 친한 직장동료와의 메신저 대화.


동료: 좋은 아침입니다~ ^^

나: 너 누구냐, 너 e양 맞냐, 사기꾼이지.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을 대봐.


그동안 동료는 말을 걸 때 저런식으로 한 번도 말을 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잠깐 의심했던것. 메신저 사기꾼이군, 하면서. 그리고 이어진 대화.



동료: 하하하하. 둘만 아는 비밀 없는데요?

나: 그럼 e 양 맞구나. 





선물 받은 향수를 뿌렸다. 향이 아주아주 좋다. 그러면 뭐해. 눈이 이모양인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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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3-29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ㅋㅋ 달려가서 이 책을 사야겠군요!!!

다락방 2013-03-29 12:40   좋아요 0 | URL
오 뽀 ㅋㅋㅋㅋ 뭡니까 이 알바틱한 댓글은. 뽀답지 않아! ㅎㅎㅎㅎㅎ

라로 2013-03-2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시간을 많이 절약하신 건 제 덕??ㅠㅠ

저도 저 책 보관함에 담아요,,당장 달려가 살 여력은 안되어,,쿨럭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혹시 저 두 작가 레지비언?????3==3=3=3=3=33333
아침부터 상상력이 너무 불량해~~~~흑

다락방 2013-03-29 12:43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책을 다 읽어보고 말씀드리는데 둘 사이에 '로맨스'는 없어보이던데요. 살짝 '견제'가 있는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요. ㅎㅎ 여행기를 비롯해서 에세이는 그래서 전 읽기가 좀 꺼려져요. 저자에 대해 공감이 되는 반면 금세 반감도 생기게 되거든요. 역시 소설이 짱인듯.. ㅎㅎ

금요일이지만 내일 출근이라 기분이 좋질 않아요. 그래도 흐음. 점심 먹고 힘내야죠. ㅠㅠ

에르고숨 2013-03-29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갖고 싶은 중고책 페이지에서 ‘중고등록알림신청’해 놓으면 심지어 전화문자로 꼬박꼬박 연락도 받을 수 있답니다. 혹시 모르시나 싶어서 글 남깁니다. 라다크는 <오래된 미래> 이후 다시 듣는 반가운 이름이네요. 저도 곧 지르지 싶어요, 소개 고맙습니다. 어서 쾌차하시고요(눈이 부은 게 혹시 새 향수 때문은... 아니겠지요?)!

다락방 2013-03-29 16:44   좋아요 0 | URL
지하생활자님. 저 이 댓글 읽고 지금 제 보관함에 가서 아주 여러권에 대해서 중고등록알림신청 해두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우. 전 정말 알라딘을 몇년간 이용하면서도 아주 무지하네요. ㅎㅎㅎ부끄럽습니다.

지하생활자님은 [오래된 미래]를 읽으셨군요.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오래된 미래]를 자주 언급하거든요. 지하생활자님은 이미 오래된 미래를 읽으셨으니, 저보다 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시겠네요.

눈이 부은건 향수 때문은 아니에요. 향수를 뿌린건 나오기 직전이고 눈은 일어나자마자 부어있었어요. 이 약이 독하거나 안좋은건가봐요. 피부도 썩고있는 기분이에요. orz

2013-03-29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30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핑키 2013-03-3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나쁜남자 ㅋㅋ 빵터졌어요ㅋㅋ 오!오?오. 중고 알람기능까지 되는줄 지금 알았어요ㅋ 헤헤 늘 다락방님께 고급정보 얻어갑니다ㅋ 감사해용ㅋ

다락방 2013-03-30 09:06   좋아요 0 | URL
저란 여자는 역시 삼류로맨스랑 어울리는 여자인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중고알람기능 설정해뒀으니 우린 앞으로 더 많이(!!) 지르겠군요. ㅎㅎ

mira 2013-03-30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책도 궁금하고 메신저 대화도 웃기고 다락방님 눈부은것 구경도 하고 싶어지는데요. 죄송합니다

다락방 2013-03-31 19:49   좋아요 0 | URL
ㅎㅎ 약을 끊었더니 눈 붓는건 이제 없어졌어요. 다만 피부가 울퉁불퉁해져서 속이 쓰립니다. ㅠㅠ 그것 때문에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는. ㅠㅠ 하아- 2013년이 너무 가혹하네요, 제겐. 여러의미로다가. ㅠㅠㅠㅠ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밀라 쿠니스' 주연의 영화 『프렌즈 위드 베네핏』에서,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나누는 친구사이었는데, 어느날 여자가 자신은 이제 연애를 하고 싶다고 선언하자, 그 둘은 이제 각자 연애 상대를 찾기로 한다. 센트럴 파크였나, 여자는 산책하던 남자사람에게 말을 걸기로 하고, 남자는 계단의 한 구석에 서서 책을 읽던 여자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로 한다. 그러자 여자는 그에게 말한다.


저거 소설책일걸?


그래도 남자는 다가가서 말을 걸긴하는데, 아니, 소설책을 무시하는듯한 저 발언은 뭐지? 만약 내가 그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이 대화를 들었다면, 내가 읽던 책의 책등으로 이마를 한 대 때려주었을 것 같다. 너 소설책에 대해 알기나 하고 말하는거냐고. 니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읽어보기나 했냐고. 어디서 소설을 읽지도 않고 무식하게 막말하냐고. 



그렇다. 나는 지금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읽고 있다.


















『레 미제라블』다음으로 위고의 책은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자 싶어서 민음사 판으로 준비해두고 있었는데, 지지난주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영화 『웃는 남자』의 예고편을 보게됐다. 3월 28일에 개봉한다고 한 것 같아, 오, 그전에 책을 읽어볼까, 하고 부랴부랴 주문해서 파리의 노트르담 보다 먼저 읽게 된 것. 아무리 읽을 책을 많이 사둬봤자 언제나 이렇게 예고도 없이 다른 책들이 불쑥 끼어들어 사 둔 많은 책들은 쌓이고만다...흠.. 아니, 그건그렇고.


당연히 위고의 책이니 좋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 아직 '상'권의 절반쯤 밖에 읽지 못했는데,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안한 상태인데, 그저 등장인물들이 나왔을 뿐인데, 포스트잇을 수두룩하게 붙여두었다. 오늘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는 정말이지 울 뻔했다. 바로 이런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여자 아이는, 피가 엉겨 심장이 멎기 직전이었다. 그 어미가 죽음의 일부를 이미 그녀에게 주었다. 시신은 스스로 번지는 바, 그때 제일 먼저 옮는 것이 냉각 현상이다. 어린것의 발과 손, 팔, 무릎은, 얼음에 마비된 듯했다. 아이는 무시무시한 차가움을 느꼈다.

그에게는 젖지 않아 따뜻한 옷, 즉 선원 작업복이 있었다. 그는 어린것을 죽은 여인의 가슴팍 위에 내려놓은 다음, 옷을 벗었다. 그것으로 아기를 감싼 후 다시 품에 안았다. 그리고 삭풍이 몰고 온 눈보라 속에서 거의 벌거숭이가 된 채, 어린것을 안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기는 아이의 볼을 다시 찾는 데 성공해 그것에 입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다시 온기를 느꼈는지, 잠이 들었다. 암흑속에서 두 영혼이 나눈 첫 입맞춤이었다.

아기의 엄마는, 눈 위에 등을 대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누워 있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이 어린 여자 아이를 감싸려고 옷을 벗엇을 때, 무한의 저 깊은 곳에 있던 그녀는 아마 소년을 보았을지도 모른다.(p.216)




아이는 어른들로부터 버려졌다. 그의 나이 고작 열 살이었다. 아무도 없는 눈 쌓인 벌판을 걸으며 그는 굶주림에 시달렸고 당연히 바지는 눈에 다 젖고 말았다. 그는 추웠고 배가 고팠으며 그가 걷는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절망만이 그를 감싸려는 그때에, 그는 한 여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 시체위에는 눈이 덮여 있었고, 거기, 아직 생명을 붙들고 있는 아기가 있었다. 자기가 얼어죽을지도 모르는데, 굶어죽을지도 모르는데, 아이는 그 아기를 거둔다. 뿐만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중에 유일하게 젖지 않은 외투를 벗어 아기를 감싼다. 



춥고 미끄러운 길을 걷는데 아기가 그에게 장해가 됨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어린 여자 아이는 곤경에 처한 물그릇을 넘치게 하는 한 방울의 물이었다. (p.219)


아이가 아기를 안고 그 길을 다시 걷고자 하는 결심과 행위는 분명 위대하고 거룩하지만, 그러나 아이가 선택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른에게도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그러나 아이는 아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아기를 더 감싸안는다.



어린것이 두세 번 울음을 터뜨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서성거리며 걸었다. 그러면 아기가 평온을 되찾고 입을 다물었다. 결국 아기는 잠이 들어 달게 잤다. 그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아기의 체온이 따뜻한지 확인하곤 했다.

그는 아기를 감싼 작업복 자락으로 어린것의 목둘레를 자주 여며 주었다. 혹시 벌어진 틈 사이로 서리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녹은 눈이 옷과 아기 사이로 스며들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p.218)


그는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결심을 다시 굳건히 하고, 아기를 돌보고, 옷자락으로 아기를 여며 주고, 머리를 덮어 주고, 다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가다가, 미끄러지면 즉시 몸을 일으키곤 했다. 바람은 비겁하게 그를 밀었다. (p.219)



아이의 마음때문에 세상이 위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 하긴 하지만, 자기 욕심 채우느라 급급하긴 하지만, 그러나 어쩌면 인간의 바탕 저 안에는, 저 깊숙한 곳에는 선한 마음이 굳건히 자리를 버티고 있는건 아닐까? 그 위로 세상의 때가 쌓이고 먼지가 묻어 가끔 우리가 선한 마음을 잊고 살긴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본디 선하게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자신이 바로 '버려진' 존재이면서, 눈 앞에서 자신을 버려두고 등을 돌리는 어른들을 숱하게 봤으면서, 그러면서도 버려진 다른 존재에 대해 손을 내밀 수 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말 눈물이 핑- 돌지 않는가. 게다가 이 문장을 소설로 완성시키는 힘은 저 마지막 문장에 있다. '바람은 비겁하게 그를 밀었다' 라니. 하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강남역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오면서 나는 문득 소설의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좋은 소설을 혼자만 읽는다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소설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강의같은걸 해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테면, 나는 수능을 마치고 조금 여유로워진 고등학생들을 혹은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 신입생들을 찾아가는거다. 아니면, 사회초년생들이어도 좋고. 그 사람들을 찾아가 앞에서서 처음에 이렇게 묻는거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길때, 어떤 말로 그 관심을 표현하게 되나요?


그러면서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을 들어 모두에게 보여주는거다. 이 책에서 팅커는 관심있는 상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걸 내게 말해줘요.




'빅토르 위고'의 이 책, 『웃는 남자』를 집어 들었다면, 이렇게 시작할 수 있을거다.



여러분은 모두에게 버려져 혼자가 됐습니다. 눈이 내려 몹시 추웠어요. 배도 고팠죠. 인적이 있는 곳을 찾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러다 버려진 아기, 그러나 숨이 아직 붙어있는 아기를 맞닥뜨리게 되는거죠. 그 추위에 배가 고프고 어디까지 가야 구원의 빛이 비출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여러분이라면 그 아기를 품에 안아들 수 있을까요?



라고. 




이렇게 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게 하고 싶다. 소설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면서 소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기좋게 한 방 날리고 싶다. 늬들이 소설을 알아? 되묻고 싶다. 소설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일단 빅토르 위고를 읽어보란 말야, 머저리들아, 라고 소리치고 싶다. 소설 안에는 다 있다. 버려지고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고가는 감동과 따뜻한 마음이, 그것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있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읽지 않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또 버텨낸단 말인가. 소설이야말로 인간이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거룩한 예술이 아닌가. 암튼 위고는 감동이다. ㅠㅠ 위고 아저씨 진짜 짱멋져요! ㅠㅠ 존경합니다 ㅠㅠㅠㅠㅠ







내 방 책장의 밑에서 두번째 칸이 33개월된 조카에게 가장 잘 맞는 위치인가보다. 그 자리에 있는 책을 잘 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카는 유독 그 중의 왼쪽 한 구석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 수키시리즈만 뺀다. 며칠전부터 우리집에 와있는 조카는 이모 책읽자, 라더니 또 내방에 들어와서 수키 시리즈를 차례로 빼고는 표지와 책을 분리시킨다. 조카가 그 놀이에 질려 내 방을 떠나고 나면, 나는 다시 표지와 책을 맞추어 입혀놓고는 책장에 꽂아놓고, 잊을만할 때쯤 조카는 내방에 들어와 그 책들을 다시 꺼내 표지와 몸통을 분리시킨다.





옆칸에는 문학동네 책도 있고 펭귄의 책도 있다. 그런데 자꾸 수키시리즈만 뺀다. 저 비어있는 곳에 있는 책들은 이미 조카가 빼서 안방에 가져다 둔 상태. 알록달록한 표지 때문일까? 왜 자꾸 저 책들만 뺄까? 나중엔 한 번 생각나면 물어봐야겠다. 조카야, 이 옆에 이 책들도 있고, 이 책들도 있잖아. 그런데 너는 왜 이 책들만 빼는거야? 라고. 조카는 뭐라고 답할까?





여하튼 책은 진짜 짱이다. 소설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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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2013-03-2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두근두근 하네요. 다락방님.

나도, 소설 만쉐이!

다락방 2013-03-27 18:23   좋아요 0 | URL
가슴은 왜 두근두근하세요, 관찰자님? 제가 사랑을 고백한것도 아닌데! ㅎㅎ

소설 만쉐이~!!

다다 2013-03-2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읽는데 왜 이리 가슴이 뛰던지요 다락방님 만만쉐이!

다락방 2013-03-27 18:23   좋아요 0 | URL
위에 관찰자님은 두근댄다 하시고 소금꽃님은 가슴이 뛴다니...이 페이퍼가 왜... ㅎㅎ

라로 2013-03-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이미 제게 소설의 전도사세요!!!
소설 안 읽는 제가 얼마나 많은(?) 소설을 사고 읽고 있는지,,,늦었지만 고마와요~~~:D

다락방 2013-03-27 18:24   좋아요 0 | URL
ㅎㅎ 나비님, 안그래도 [옆 무덤의 남자] 읽으신 리스트 봤어요. 저는 그 결말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비님은 별로라 하시고 브론테님도 당황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소설 괜찮앗죠? 저도 아직 팔지 않고 가지고 있는 소설이에요. ㅎㅎ

라로 2013-03-26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저도 저 예고편 보고 책 찾아 읽을 생각했는데,,,역시 전도사님은 빠르셔!!!♥

다락방 2013-03-27 18:25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있어요, 나비님. 역시 위고님은 짱 ㅠㅠ

마노아 2013-03-26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키시리즈 표지가 아이 눈에 예쁜 것 같아요. 책표지도 귀엽고 아이는 더 귀엽고요~^^

다락방 2013-03-27 18:25   좋아요 0 | URL
알록달록해서 그럴까요? 물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까먹고 이제는 조카가 자기집에 가버렸어요. 흑흑 ㅠㅠ

blanca 2013-03-2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책도 있었어요? 다락방님 조카 얘기 들으니 제 딸도 제 여동생 방에 들어가서 화장품 케이스 다 꺼내 놓고 또 꺼내 놓던 기억이 ㅋㅋ 나네요.

다락방 2013-03-27 18:29   좋아요 0 | URL
저도 레 미제라블과 파리의 노트르담 밖에 몰랐었어요. 최근에야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게됐지요. ㅎㅎ
아 블랑카님. 조카 너무 예뻐요. 블랑카님 여동생분도 아마 화장품 케이스 꺼내놓는 조카를 보며 너무 예뻐서 어쩔줄을 몰랐을거에요. 아, 정말 예뻐요, 블랑카님!!

단발머리 2013-03-2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호~~ 너무 멋진 페이퍼예요. 난, 막, 상상이 되는 거예요.

'소설의 전도사~ 다락방님~~'

시험은 끝났고, 점수는 엉망이고, 앞길은 막막하고, 학교는 와야되는 고3들이 다락방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죠.
<우아한 여인>을, <웃는 남자>를, <벨아미>를, <내 연애의 모든 것>을 그리고 <레 미제라블>을요.

답답해하던 고 3들은 다락방님의 설명과 소개를 듣고, 소설을 집어들게 되죠. 그리곤, 깨닫게 되는거예요.

"이 세상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 있구나.
세상은 생각보다 더 아름답구나.
인생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치열한 거구나.
사랑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구나."

그렇게 말이죠... ㅎㅎ

제 진도로 말씀 드리자면, 최근엔 <에코 Emergency> 때문에요, <프라하의 묘지>를 읽고 있어요.
그 다음은 무조건 <레 미제라블 2>예요. 더 이상의 끼어들기는 절!대! 용납 못 해용~~~

다락방 2013-03-27 18:3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에코의 책 어렵지 않아요? 전 [장미의 이름] 읽다가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에코의 신간 나와도 관심이 없었어요. 어려워 어려워 내가 읽을 수 없는 작품이야, 하면서 말이지요.

그나저나 제가 상상한것보다 단발머리님 상상이 좀 더 깊이 들어갔는데요? 아 당장 회사 때려치고 회사 하나 차려가지고 강의 뛸까요? 그러다가 케이블에 다락방 강의 하나 생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reamout 2013-03-2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빅토르 위고를 읽긴 읽어야겠군요. ㅎㅎ

다락방 2013-03-27 18:32   좋아요 0 | URL
네, 드림아웃님. 꼭이요, 꼭!

비로그인 2013-03-2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서 책 때문에 좋아서 미치겠다고 하실 때 저도 좋아서 미치겠어요 희희~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길때, 어떤 말로 그 관심을 표현하게 되나요?>
이 전문성 넘치는, 모두를 휘어잡는 매력의 소유자, 다락방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스포트라이트가 쫙 비치며 순간 시간 멈춤~
이미 전도당했는걸요!

다락방 2013-03-28 17:11   좋아요 0 | URL
에헤헷 :)
위고를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그의 책이 주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좋은 소설책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읽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른님. 어떤 사람들이 소설을 무시할 때는 화가 나요. 그들에게 니가 못 읽고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고요.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게 하기 위해 제가 뭔가 하고 싶어요. 의욕 뿐이네요, 그렇지만..

아른님, 이번주 토요일에도 알라딘 중고샵 가실거에요? 저도 지금 계획은 그런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우, 주말이 빨리 가는건 싫지만 아른님의 페이퍼는 빨리 읽고 싶어요!! >.<

감은빛 2013-03-2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덕분에 좋은 책을 또 알게 되었네요.
아직 레미제라블도 시작도 못했는데, 과연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다락방 2013-03-28 17:12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이 책 정말 좋아요!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나 많이 나와서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였어요. 감은빛님도 이 책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마 감은빛님에게선 엄청나게 근사한 리뷰가 나오지 않을까요? 레 미제라블은 다섯 권이니 두 권인 웃는 남자를 먼저 시작해보시는 건 어때요? 희희 :)

테레사 2013-03-2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소설전도사라는 닉네임이 딱 어울리고 귀여워요...저도 거의 소설만 읽는 이로서 저런 닉네임 한번 받아봤으면 하는....부러움...부러워요.

다락방 2013-03-29 12:39   좋아요 0 | URL
아니 테레사님, 저는 누가 저한테 그렇게 해준게 아니라 저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다고 칭한건데 말입니다. 테레사님도 스스로 칭하시면 됩니다. ㅎㅎ

점심 메뉴는 뭐에요, 테레사님? 저는 새우볶음밥이에요. 이제 곧 올거에요. 헤헷 :)

테레사 2013-03-29 14:25   좋아요 0 | URL
ㅋㅋ 전, 도시락 -현미밥, 달걀말이, 시금치나물,김무침, 깍두기김치,된장찌개 그리고 사과한알...이에요. 이거 만드느라 2시간 넘게 걸렸어요...

다락방 2013-03-29 15:10   좋아요 0 | URL
오 완전 건강식이네요! 저는 새우볶음밥 양이 많아서 배 터지겠다고 말하면서도 다 먹었어요. 딸려나온 짬뽕국물도 다 먹고요. 그랬더니 졸려요. ㅠㅠ

이진 2013-04-1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늦었지만 댓글 달래요. 페이퍼를 읽다가 '장해'라는 단어에 멈칫했어요.
저는 잠깐 제 머리를 쥐어싸며 이 단어는 뭐지. 왜 이렇게 낯설면서 낯익은 거야!!!!
하고 혼란에 빠졌어요. 급히 검색을 해보았지만 혼란은 사라지지 않네요... 뭐야 이건 정말 ㅠㅠㅠㅠㅠㅠㅠ
요즘 제 어휘력에 ... 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언제 읽어볼 수 있을까요. 레미제라블이나 웃는 남자나 다 읽고 싶어요 ㅠㅠ

다락방 2013-04-14 19:37   좋아요 0 | URL
아 소이진님 저랑 똑같네요. '장해'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서 등장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멈칫 했어요. 그리고 사전을 찾아봤죠. 찾아보고나니 잘못 쓰였다는 생각이 들진 않더라고요.

소이진님, 위고의 소설은 정말 훌륭해요. 소설을 사랑하는 소이진님이라면 또 앞으로 소설을 쓰고자 하는소이진님이라면 배울게 아주 많을거라 생각해요. 물론 그전에 아주 많은 감명을 받겠지만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