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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정말 놀랍다. '한 노인이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는 식의 뻔한 이야기일거라 짐작했지만,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보다 더한 성찰과 성장이 담겨 있어서 내내 감탄하고 감동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게이츠 길'은 잘나가는 광고회사의 중역이었고 당연히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일했었다. 그러다 오십대 중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혼자 일해보려 하지만 그조차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외도로 아이를 낳기도 해서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했다. 더이상 아무도 자기를 만나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때,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마시던 그에게 스타벅스 매니저가 자신들과 함께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로서는 정기적인 수입이 생길 수 있는 일자리니 고맙긴하지만 영국 여왕과 차를 마시기도 했고 헤밍웨이와 대화를 해보기도 했으며 시나트라와도 인사했던 그가, 막스앤스펜서와 비엠더블유의 광고를 따내고 능력을 인정받던 그가 하기엔 한없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하나하나 성실히 일을 배워나간다. 빠지는 날도 없이 청소부터 커피를 만드는 일까지 열심히 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그곳에 적응하려 하고 자신보다 훌쩍 어린 상사의 밑에서 기초부터 배워나간다. 그 기초란 손님의 주문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는 기초를 말하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기초.
"제 영업장에서는, 우리 영업장에서는 ‥‥‥누구든 반갑게 맞이해야 합니다. 누가 됐든 화장실 사용을 막지 마세요. 특히 다른 사람의 환영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더더욱 반갑게 맞이하세요. 그들을 무시할 사람들보다는 그 사람들을 더 많이 신경 쓰세요." (p.99)
노숙자로 보이는 돈없는 노인이 화장실을 쓰려고해서 그가 사용을 금지시켰는데, 그 모습을 본 크리스털이 그에게 하는 말이다. '그들을 무시할 사람들보다는 그 사람들을 더 많이 신경 쓰세요' 라고.
그곳에서 파트너들(스타벅스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를 파트너라 부른다)과 함께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온 그 모든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는 것도 인식하게 된다. 그간 자신의 딸이 그렇게 목이 아프게 부르짖어도 흘려넘겼던 말인데.
로라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서 내 호사스러운 생활방식을 비난했다. (p.57)
게다가 이곳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또 스타벅스 자체가 그의 성장을 돕는다. 무릇 인간이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십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는데도, 아직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니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순네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깨닫고 또 여전히 성장할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그가 호사스럽게 누려왔던 모든것들을 주었던 대기업, 그곳의 경영이 그간 얼마나 '인간'을 무시하는 것이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고작 커피를 파는 회사에서. 이건 미국의 이야기지만, 한국이라고 뭐가 다를까.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라 부속품 취급을 받게 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에 반해 스타벅스의 경영진들은 '직원이 즐거워야 우리가 즐겁다'는 자명한 이치를 깨닫고 그걸 몸소 실천하려고 한다. 이 경영방식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세상 대부분의 커다란 기업들이 이 당연한 걸 해내지 못해서 이 기본적인 일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일이 된다.
대기업의 중역으로 있을 때에도 시력검사 혜택까지 무상으로 지원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조앤이 시간제 직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스타벅스의 직원복지 제도는 정말이지 특별하다 할 만했다. 솔직히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p.172)
"대학에 진학해서 역사 강의를 들어보려구요. 스타벅스에서 학비를 대 주거든요." (p.232)
시간제 직원들에게까지 학비 지원을 해 주는 스타벅스의 복지제도는 훌륭하다. 그러나 그 훌륭한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려는 파트너에게는 남다른 열정과 인내가 요구된다. 앤서니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크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목표를 이루는 데 스타벅스의 도움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p.233)
스타벅스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안과와 치과를 찾을 수 있는 직원들, 듣고 싶은 강의를 스타벅스의 지원 덕에 들어볼 수 있는 직원들. 이건 사실 우리가 일하면서 받아야 하는 당연한 복지가 아닌가.
이 책은 시종일관 스타벅스와 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이고 밝은면, 칭찬으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삐딱하게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질 않는다. 그건 이 책의 저자가 진심으로 그곳과 그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그가 성장하는 모습이, 점점 달라지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가 경비일을 처음 시작하실 때, 간식이라도 싸들고 아빠한테 갈까, 했더니 아빠가 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다. 아빠는 경비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이 책에서 주인공 마이크도 딸 앞에 부끄러워했다. 카운터를 보게 된 지 얼마 안되서 한창 긴장하고 있었는데 주문을 받고서야 자신의 딸임을 알아챘던 것.
"안녕, 아빠."
애니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딸오 달아보지 못한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거기다 초록 앞치마를 두르고 검정색 모자를 쓴 채 일이 손에 익지 않아 쩔쩔매고 있었으니‥‥‥.(p.133)
그러나 나는 경비일을 하는 아빠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외려 자랑스러웠다. 이 책속에서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본 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
"멋졌어요. 까만 스타벅스 모자를 쓰신 아빠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어요." (p.141)
2교대인 경비일은 24시간 꼼짝없이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하므로 지독하게 고단한지라 지금 아빠는 일을 쉬고 계신다. 그래서 더더욱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아빠가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일하지도 않고, 시간제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미 프리젠테이션과 광고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고, 커피를 사랑하며 커피맛을 구분할 줄 아는 마이클과는 준비되어 있는게 다른 분이신데,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돈계산, 커피에 대한 상식까지, 아빠가 새로 배우기 시작해야 할 게 한두개가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예순 넘은 분에게 일하기 위해 이 많은것들을 배우도록 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 아닐까 싶어졌다. 지금의 나라면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것 같지만, 우리 아빠에게는 가혹한 일이 되겠지.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를 훌쩍이면서,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성장이 내게는 눈부시게 느껴졌다.
읽다가 정말 당장이라도 스타벅스에 가서 취직하고 싶어졌었는데, 그건 내가 이런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패스트리에 이상이 없는지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봤다. 그 과정에서 라즈베리 스콘 하나가 깨진 걸 발견했다.
"같이 나눠 먹어요."
조앤이 웃으며 말했다. (p.173)
그러니까, 본사에서는 깨진 스콘이나 부서진 패스트리에 대해서 교환을 해준다는 것. 그러니 깨진 걸 먹어도 되는거다. 꺄울!! 나는 스콘을 정말 좋아하는데! 따뜻한 스콘을 쪼개어 거기에 버터를 듬뿍 바르고 그 위에 딸기쨈까지 발라서 입 안에 한가득 넣고 씹으며 그 뻑뻑함을 커피로 넘기는 걸 엄청 사랑하는데!!
그리고 이런 부분에선 좀 미안해졌다.
손님들은 냅킨을 한움큼씩 집어간다. 소비하는 설탕의 양도 엄청나다. 가끔은 스타벅스에서 더 많이 나가는 게 커피보다 냅킨과 설탕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pp.276-277)
스타벅스에서 한움큼씩 냅킨을 집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나다. 스타벅스 냅킨(을 비롯하여 다른 까페의 그 누런냅킨들도)이 얼굴 기름 닦는데는 정말 탁월한 효과가 있거든. 기름종이보다 낫다. 쿨럭.
내가 미국에 가게 된다면, 마이클이 일하는 스타벅스를 찾아가보고 싶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혹은 차가운 캬라멜마끼아또를 주문해야지. 그에게 싱긋, 미소지어주고 싶다. 책 표지속의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손님들이 좋아하는 직원이 된 것도 당연해보인다. 참 좋은 할아버지란 인상을 준다. 그 인상은 그의 성장이 빚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