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궁이 대체 무슨 뜻인가, 그러니까 궁이 나오는 시대물인가 했었는데, 오, 아니었다. 에메랄드는 모텔 이름이었다. 이 모텔을 운영하는 주인 부부와 그 모텔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모텔을 찾는 사람들에 관한 사연들로 가득차 각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모두의 이야기가 버무려진 이 소설은 재미있었다. 맛깔스럽게 쓰여져 있어 책장도 팔랑팔랑 넘어가고. 이 책의 화자이자 이 모텔의 주인인 '연희'는 다른 사람들의 신음 소리 듣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데, 그러고보니 나는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구나, 싶어졌다. 영화에서야 물론 보고 듣지만 실제로는 그럴 일이 없었던 것. 그러다 생각해보니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본인의 것이 아닌 타인의 신음 소리를 들을 일이 없지 않나? 싶어졌다. 모텔 주인이 아니고서야...
장소가 모텔인만큼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 때로는 먹고사는일 조차 힘겨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들의 사연이 저마다에게 애틋하지만, 그중 할아버지와 할머니 커플은 현실에 존재할것 같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가발공장에 다닐 무렵, 그 공장 사장의 아들이 그 할머니를 좋아해서 매일 그녀가 끝나기만 기다려 단팥빵을 손에 쥐어주곤 했던거다. 그러나 당연히 사장이 엄청난 반대를 해서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그 할아버지가 결혼하기 전날, 할머니를 찾아온다.
"할아버지 결혼하기 전날, 나를 찾아왔더랬죠. 평생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화분을 하나 줬어요. 거기에 씨앗을 심었다고, 그 씨앗이 싹을 튀우고 가지를 벌리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꼭 너를 찾아가겠다고 ‥‥‥그때까지 살아 있어달라고 ‥‥‥"
"정말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을 때 정말 오셨나요?"
"오 년전에 부인이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찾아왔어요. 사십년 만이었죠. 나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냐니까 임자 어디 사는지 그거 수소문 안 되면 못 살았다고 그러대요. 그때까지 난 남편도 없이 홀몸으로 자식들 뒤치다꺼리하느라 거울 한 번 볼 시간도 없었어요. 입에 밥 들어갈 걱정도 못 떨쳤는데 사랑이 뭔가 싶더라고요." (pp.206-207)
젊었을 적에는 그녀가 가난하고 배운게 없어 그의 부모들이 반대를 했는데, 사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들을 반대할 부모는 없지만 이제는 그의 자식들이 반대를 한다. 그 할머니는 꽃뱀이라고, 재산 노리고 덤비는거라고. 그게 문제다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부자일 수 밖에 없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계속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것.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성실하게 온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결코 재벌이 될 수 없다. 재벌은 태어날 때 재벌이어야 계속 재벌이다. 그러니 부자 남자의 부모가 반대했던 결혼 그 자식들이 반대하는 거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자신들이 가진게 없었다면 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하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결국 그들은 자식들의 눈을 피해 매일매일 모텔을 찾아든다.
무엇보다 나는 그가 그녀 있는 곳을 수소문하고 사십년이 지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싶었다.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소설에도 그런 남자가 등장한다. 다른 여자랑 살고 있지만,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주시하고 있는 남자,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제일 먼저 그 집으로 경호원을 보낸 남자. 아..왜이렇게 가슴이 낭만으로 들끓을까.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뜨거워진다.
물론 나는 너무 지나친 사랑은 싫다, 그러니 사십년간 나를 기다리고 혹은 나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이 지구상의 한 명쯤은 어딘가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고, 내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 알고 있으려 한다면, 그건 근사한 일이 아닌가? 아, 물론 나 역시 그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겠지만. 그렇지않다면 상대는 내 스토커가 될 뿐. 그러다 문득, 나란 인간을 수소문할 필요까지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 알라딘에 계속 있으니까. 수소문할 노력도 필요없이 걍 알라딘에만 접속하면 내가 있으니까... ( ")
내가, 응?, 당신말야, 수소문하는데 힘들지 말라고, 계속 여기 있잖아!!
뭐, 그렇다는 말이다.
돈도 없고 안읽은 책은 쌓여있어, 그래 이제 올해 말까지는 진짜로 책을 사지말자, 라고 며칠전부터 결심했는데, 아아, 그럴수록 왜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책이 눈에 띄는걸까.
아놔 ㅠㅠ
북유럽 최고의 고전 로맨스라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게다가 타락한(?) 신부라니,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라니, 이 둘이 만난다니, 아 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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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책소개]
이야기는 1820년대 황량한 스웨덴의 시골을 배경으로 벌어진다. 목사 예스타 베를링은 눈부시게 잘생기고 총명한 청년이지만, 외딴 시골에 발령받은 후 술독에 빠져 직무를 등한하다가 파면당한다. 걸인이 되어 죽음에 이른 이 풍운아를 교구의 세력가인 에케뷔 소령 부인이 구해내 자신의 장원으로 데려간다.
에케뷔 소령 부인은 본래 아름답고 선량한 여자였으나, 부모의 강요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후 모진 심성으로 줄곧 살아왔다. 예스타 베를링이 그녀의 휘하에서 장원의 기사로 살아가던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 그와 동료 기사들이 잔치를 벌일 때 악마가 나타나 일러주기를, 소령 부인이 해마다 기사 한 사람의 영혼을 악마에게 넘겨주기로 계약을 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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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월플라워』때문이었는지, 『우아한 연인』 때문이었는지, '아인랜드'의 『마천루』를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대체 왜 1권은 절판인걸까? 2권만 판매중이네?
그리고 오늘 우연히 알라딘에서 이런 책광고를 봤다. '송혜교가 제주도에서 읽은 책'
아니..그게 뭐? 송혜교가 제주도에서 이 책 읽었는데..그래서 뭐? 송혜교가 읽으면 좋은책인가? 송혜교가 읽은책이라고 하면 송혜교 팬들은 그 책을 읽나?
『에메랄드 궁』은 다락방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책이다, 뭐. -_-
오늘 아침엔 엄마가 호박전을 반찬으로 내주셨다. 호박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푼 거에 푹 담갔다가 부쳐내야 호박전이지만, 엄마는 이 과정에서 밀가루를 빼버리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호박만 듬성듬성 썰어 계란 푼 건에 푹 담갔다 부쳐내신 것. 근데 와, 너무 맛있는거다. 기절할 뻔했다 진짜. 너무 맛있어서 그거 먹느라 출근하기 싫을 지경이었다. 여태까지 먹어본 호박전 중에 최고였다. 나는 원래 호박전을 좋아하지도 않는데..히융.
음...그런데 수소문하지 않아도 된다니....너무 쉽나?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