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값을 호기롭게 내가 계산하는게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야 문자를 확인하고, 쉬바, 이 금액을 내가 긁었냐, 하고 땅을 쳤다. 게다가 문자는 그거 하나뿐이 아니었다. 헛개컨디션을 인원수대로 사와 돌리기도 했으므로, 그 금액도 찍혔다. 하룻밤에 저질러 놓은 금액이 너무 크다. 다음달 카드값은 아마도 내 목을 조를것이다.


- 주는 술을 다 받아먹는게 아니었다. 힘들다고 했지만, 천천히 조금씩 나눠 마시려고 했지만,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냐며, 너의 본모습은 그게 아니지 않냐며, 뭐하는거냐며 다그치는 그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고 다 마셔버리다니. 그러는게 아니었다. 머리가 뎅뎅 울리고 있다. 그렇게 받아마시지 않았다면 카드를 내가 꺼내는 미련한 짓을 하지도 않았을텐데..


- 무엇보다 하아- 한 남자직원한테....하아- 그러면 안되는 짓을 해버렸어...하아- 오늘 아침 나는 그가 어제의 일을 부디 기억 못하기를 그토록 바랐는데, 같이 술을 마신 여직원으로부터 그의 상태가 완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멘탈은 이럴 때 붕괴된다. 기억...하겠지? 나는 어제 같이 술을 마신 멤버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았는데, 그 직원한테는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그 직원의 얼굴을 보나. 제발, 부디, 기억하지 말기를. 흑흑. 내가 너무 추하게 늙고있어. 흑흑. 술을 마셔도 이성을 반드시 붙들어 맬 것. 정신줄을 놓지 말 것! 매일 볼 사람인데 ㅠㅠ 나 외로웠나. 흑흑 ㅠㅠㅠㅠㅠ 아니면 내게 이런 주사가...있는걸까. 하아- 그런데 싫지..않았.....orz



- 오늘 출근길의 버스와 지하철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며 뭔가에 열중하는 사람들, 책을 펼쳐들고 읽는 사람들 그 모두가 나는 부러웠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뎅뎅 울려서 나는 그것들중 어떤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 그래도 출근을 했고, 지독한 숙취로 아침을 걸렀는데, 엄마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우유라도 사먹거라.]


내가 아침을 거르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끼라도 때를 놓치면 굉장히 우울해지고 스트레스 받는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어지러워......손도 떨려. 후덜덜덜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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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2-11-0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일은 힘들죠. ㅜㅡ (전 오늘 약속이... OTL...)

다락방 2012-11-09 13:12   좋아요 0 | URL
평일도 힘들고
카드값 결제일도 힘들어요.. orz

테레사 2012-11-0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술 잘하시나요? ㅋㅋㅋ 기운내세요! 전 술은 아마 유전적으로 잘 하게 태어났을 터인데, 안마셔요. 살찌는게 싫고, 왜냐면 전 먹으면 곧장 정직하게 몸으로 반응하는 몸이거든요. 그리고 음...사람들과 어울리는 거 싫어요.ㅋㅋㅋ...하지만, 다락방님의 이야기는 참 재밌네요...기운내시고, 꼭 우유 챙겨 드세요.

다락방 2012-11-09 13:12   좋아요 0 | URL
아뇨, 술을 잘하진 못하는데 술을 되게 좋아해요. ㅎㅎ 술은 우정을 돈독하게 해주고 사랑을 끈끈하고 뜨겁게 만들어주잖아요. ㅎㅎ 저야말로 정직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마시는 술만큼 배가 나와 있습니다. 저는 살찌는게 싫은것보다 술 참는게 더 싫어서...그냥 살 붙여가며 살고 있습니다. 하하하하하.

동료직원이 브로콜리스프를 줘서 아침에 그거 먹었어요. 따뜻하고 위로가 됐어요. 흣 :)

다크아이즈 2012-11-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듣고, 책 읽는 지하철 사람들을 부러워하시는 다락방님이 전 더 부럽습니다.
술 마신 다음날 이런 맛깔스런 페이퍼를 쓸 수 있다니.
술 좀 마시는 법을 평생 연구만 하는 일인이^^

다락방 2012-11-09 13:10   좋아요 0 | URL
고개를 숙일때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이런 저를 부러워하시다뇨! 아니되옵니다. 괴로워요. 게다가 카드값은 어쩝니까. 하아- 이건 전혀 부러워할만한 상황이 아니라구요. 흑흑. orz

깐따삐야 2012-11-0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주사는 귀여웠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염려 마시고 따끈한 점심으로 해장하셔요.^^

다락방 2012-11-09 13:07   좋아요 0 | URL
제가 저를 안고 토닥여주고 싶어요. 흑흑. 이제 그러지마, 라고 하면서 쓰다듬어주고 싶어요. 하아-

야클 2012-11-0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김에 남자직원에게 도대체 무슨 말(행동)을 하셨을까요? 이 페이퍼의 핵심인데 정작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은 없군요.

핵심 키워드는 '매일 볼 사람', '싫지 않았어'라고 해석해도 되나요?

매일 보다....

평생 보다....



그럼 장차 .... 가족이 될 (가능성이 쬐끔이라도 있는) 사람 ???

Mephistopheles 2012-11-09 12:56   좋아요 0 | URL
여기 그것이 궁금한 사람 하나 추가요~

다락방 2012-11-09 13:07   좋아요 0 | URL
하아- 떠올리게 하지마세요. 이렇게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또 그러고싶어진단 말예요. (읭?)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야클님, 그러나 그에게 저는 매우많이 아까운 여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족은 커녕 연인이 될 생각도 눈꼽만큼도 없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전 사악한 다락방입니다. ㅋㅋㅋㅋㅋ(어쩐지 나쁜녀자의 기운이 물씬~)

Mephistopheles 2012-11-0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지가 잔뜩 들어간 해장국.
북어 폴폴 끓여 뽀얀 국물낸 북어국,
보글보글 뚝배기에 끓여 나와 계란 하나 탁 까놓은 콩나물해장국.
시원한 육수가 일품인 냉면 혹은 동치미김치말이국수.
각종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진하고 얼큰한 짬뽕.

자 뭘 드시고 오셨나요?

야클 2012-11-09 13:02   좋아요 0 | URL
쇠고기 사 먹었겠지.....

다락방 2012-11-09 13:14   좋아요 0 | URL
아니 이분들이....절 뭘로 보시고...제가 육덕육덕 육식만 하는 여자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네? 그.렇.지.않.아.요. (매우강조 ㅎㅎ)

방금 삼각김밥 하나 먹었구요, 좀이따 라면 먹을겁니다. 저는 속풀이 스타일이 완전 저렴해서, 라면을 먹어야만 해장이 되더라구요. ㅋㅋㅋ 참 저렴해서 다행이지 뭡니까. 진짜 소고기로 해장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제 돈 어뜨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야클님 개콘버젼 댓글이었구나. 난 심각하게 받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2-11-09 13:11   좋아요 0 | URL
자아, 해장은 라면으로 하고 그럼 점심은??? 라면은 한끼가 아니잖아요?? 점심먹어야지!!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2-11-09 13:13   좋아요 0 | URL
삼각김밥 하나 더 있어요. 알맹이 있는 부분 걍 먹고 알맹이 없는 부분 떼서 말아먹을거야.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지 않으면 속이 허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2-11-09 13:40   좋아요 0 | URL
자 그럼 이제 속이 허하지 않으실 정도로 허기도 해결했고 해장도 하셨으면
본격적으로....

그 남자직원에게 무슨 행동을 하셨나요? (진지진지)

다락방 2012-11-09 13:43   좋아요 0 | URL
쿨럭;;;; (애써 외면)

야클 2012-11-09 14:15   좋아요 0 | URL
쇠고기 먹였겠지.....

다락방 2012-11-09 14:17   좋아요 0 | URL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진짜 완전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12-11-09 16:11   좋아요 0 | URL
야클님 너무 웃겨요. ㅠ_ㅠ

야클 2012-11-09 16:51   좋아요 0 | URL
쇠고기 먹이는 방법이 문제인데...

아마도 락방님이 술김에 Mouth to Mouth 방법으로 먹인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남자직원은 알고 보니 철저한 채식주의자였고...

그래서 락방님이 고민하는듯.


다음 회식땐 부디 술김에 먹이더라도 상추나 당근, 고추 등을 입에 물고 Mouth to Mouth 하시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오이를 물고 빼빼로 방식으로 나눠 먹는 것도 애정이 넘쳐 나는 좋은 방법 같다.

다락방 2012-11-09 17:18   좋아요 0 | URL
노코멘트.

라고 말하면 더 궁금하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야클님, 그 직원은 다행히도(!!??)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서 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2-11-09 17:20   좋아요 0 | URL
그래서 결국 어떻게든 쇠고기를 먹였겠지....

다락방 2012-11-09 17:23   좋아요 0 | URL
저는 그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서 다만, 결제를 했을 뿐입니다.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2-11-0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마신 다음날 나만 취했던 것 같을 때, 또는 제발 취해있었길 바라는 단 한 사람만 멀쩡해 보일 때.




저도 알아요. 그 마음. ㅠ_ㅠ;;;;;;;;;;;;;;;;;;;;;;;;;;;;;;;;;;;;;;;;






그치만, 다락방님은 취해도 (저와는 달리)귀여울 거라고 믿습니다. ^^

다락방 2012-11-09 17:18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오해십니다. 저는 전혀, 저어어언혀,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주접이에요. 하아- 진상 ㅠㅠ

2012-11-09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1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11-0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도 술먹고 호기 부린 다음날,카드를 완전히 산산 조각 낸 기억이 나는군요ㅜ.ㅜ

다락방 2012-11-11 02:45   좋아요 0 | URL
저도 카드를 산산조각낼까요. 휴...

가연 2012-11-10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지금은 괜찮아요?? 불금이라고 또 술드시는 거 아니시죠?? 저는 술을 끊은 대신에 요즘은 다른 음료수를 마시고 있어요.. 닥터페퍼라고.. 원래 있으면 닥터페퍼를 마시고 없으면 다른 음료수를 마시는 수준이었는데.. 어쩌다 한 박스를 사서.. 푸하하.. 이거 묘하게 감기약맛이 나서 참 좋네요, 풋.. 이제 술을 슬슬 줄이시고 다른 음료수로 갈아타시는건 어때요? 그나저나 태그가ㅎ

다락방 2012-11-11 02:45   좋아요 0 | URL
우앗. 닥터페퍼는 십오년전쯤 커피숍에 들러 친구들과 자주 마시던 음료인데 말입니다. 그거 마시면 잠이 안온다고 그랬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어요. ㅎㅎ 그나저나 한 박스라니. 대박이네요. ㅋㅋ
저는 불금에 술을 마구 퍼마신건 아니지만 집에서 큰 캔맥주 두 개를 마셨답니다. 지금은 토요일 새벽이라 갈등중이에요. 맥주를 마실까 와인을 마실까 꾹 참을까...

전 술과 커피 물 말고는 다른 음료는 전혀 땡기지가 않아요. 참..왜그런지 원 ㅠㅠ

태그는, ㅎㅎㅎㅎㅎ, 어제 하루종일 술에 취해있었지 말입니다.

비로그인 2012-11-12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문자에 ,,,흑흑..ㅠㅠ다락방님 어머님께 자꾸만 효도하고 싶어지는 이 마음(응?)

다락방 2012-11-13 09:5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른님, 제가 효도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때뿐이지만 ㅠㅠ)
 
우리가 함께 있을때 정전이 된다면


어느날 문득 다시 읽고 싶어졌을 때,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읽는것이 가능하다는 게 단편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장편소설이라면 책장에서 꺼내어 침대로 가 앉아 아무곳이고 펼쳐야 하고, 부분만을 읽어야 하지만(다 읽으면 잠 못자요), 단편소설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 완전한 이야기를 잠깐동안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장편소설을 좋아하지만, 잠들기전 문득 어떤 단편들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 아, 장편이 떠오를 때도 물론 있다. 장편과 단편중 뭐가 더 좋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ㅠㅠ 어제는 아침부터 줌파 라히리의 단편 하나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예쁜 드레스를 사고, 섹시한 속옷을 사고, 더 섹시한 구두를 사 신는 여자가 나오는 단편, 「섹시(SEXY)」.
















이 이야기 속에서 여자가 느꼈던 설레임과 사랑을 그리고 기대와 허무함을 다시 느껴보자 했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뭐야, 이거 원래 문장이 이렇게 어색했어? 였다. 분명 미쳐가지고 좋다고 읽었는데 이렇게 어색한 문장들, 한번에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문장들로 쓰여져 있었던거야? 했던거다. 뭐, 내용 파악에는 별 문제가 없긴 했지만 절로 인상쓰게 되다니. 일전에 N님이 이 어색한 문장들을 다른 사람들은 참고 읽는거냐고 구매자평 쓰셨던 게 생각났다. 아, N 님은 처음 읽는 순간 알았는데, 나는 줌파에 대한 맹목적 사랑으로 그냥 넘긴건가? 여하튼.



스물두살의 미란다는 백화점에서 한 남자를 우연히 맞닥뜨리고 반하게 된다. 그건 그 남자도 마찬가지. 그 둘은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는데, 남자에게는 인도를 여행중인 아내가 있었다. 시차로 인해 아침 여섯시 쯤에는 아내의 전화를 받아야해서, 남자는 미란다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지 않는채로 늘 새벽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모든것들을 그녀는 감당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미란다는 그에게 아주 많은 것들을 '처음' 경험하게 해 준 남자니까.


"당신이 처음이야."

그는 침대에 누워 그녀를 존경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처럼 긴 다리를 가진 여자는 말이야."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해준 것은 데브가 처음이었다. 고교 시절의 남자 친구들보다 좀 덩치가 클 뿐인 대학 때 데이트 상대들과는 달리, 데브는 데이트 비용을 전부 부담했고, 그녀에게 문을 열어 주었으며, 레스토랑에서 테이블 위로 상체를 깊숙이 숙여 그녀의 손에 키스했다.

그런 행동을 그녀에게 해온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여섯 개의 와인잔에 나누어 꽂아야 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부케를 그녀에게 가져온 남자도 그가 처음이었다. 사랑을 나눌 때 그녀의 이름을 거듭 거듭 속삭인 남자도 그가 처음이었다. (pp.63-64)



그녀에게 섹시하다고 말해 준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그 속삭임이 그녀의 피부 밑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70)



나를 포함한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처음이란 말이 앞에 붙는 순간, 그 모든것들은 특별해진다. 첫사랑, 첫키스, 첫데이트, 첫남자, 첫관계. 그러나 그 모든것들이 사실 부질없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깨닫게 된다. 스물 여섯때였나, 나는 친구와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 남자가 했던 어떤 말이 나를 몹시도 황홀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정말 그 남자가 말한 그런 여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남자는 단순히 분위기에 취해 그 말을 했던 것 같다고. 그 말은, 어떤 남자도 할 수 있고, 어떤 여자도 들을 수 있다고. 진짜 그래서가 아니라 그건 일종의 매뉴얼 같은거라고. 내 말을 듣던 친구는 자신도 자신의 연인으로부터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스물 아홉에 만난 남자도 내게 같은 말을 했다. 내가 그 말을 들은게 처음이 아니듯, 그는 그 말을 한게 처음이 아닐것이다.


몇달전에는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은 직원이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남자는 지금 이남자가 처음' 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 자신의 연인을 지칭한 말이었다. 나는 그때 술을 마시면서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모든게 다 처음이지. 이 느낌은 이 남자한테 처음받고, 다른 남자한테는 다른 느낌을 처음 받고. 그동안 그러지 않았어? 그러자 그 직원은 홀린듯 그렇다고 답했다. 맞아요, 그렇네요. 사람이 다 다르니까 그때마다 각자 다른 느낌이 드는거지. 그게 더 세고 안 세고의 차이는 아닌것 같아. 지나고나면 그 놈이 다 그 놈이더라고. 그러자 우리의 대화를 듣던 앞자리의 y 대리는 그 여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씨, 과장님 말 듣지마요! 물들지마요!"


하하하하. 난 나쁜 물 들이는 여자구나. 하하하하. 다시 소설속으로 돌아가자면, 



여자는 모든걸 자신에게 처음 경험해준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더 섹시하게 보이고 싶어서 은빛 드레스를 산다. 공단 슬립을 산다. 검은 하이힐을 산다. 그 옷들을 입고 어디에서 그를 만나야지, 하는 생각에 설레인다. 그런데 인도를 여행중이던 그의 아내가 돌아왔고, 남자는 미란다의 집에 운동복 차림으로 찾아온다. 아내에게 일요일마다 운동을 한다는 핑계를 댔다며.


그녀는 은빛 드레스를 입을 일이 없고, 공단 슬립을 입을 일이 없고, 하이힐을 신을 일이 없다. 그는 일요일마다 운동복 차림으로 오고, 그녀는 그를 집안에서 청바지 차림으로 맞는다. 그녀는 벵골 출신인 그 남자 때문에 벵골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지도에서는 벵골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녀는 고작 스물두살이다. 아니 그녀가 마흔두살이었어도 괜찮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춰야 하는 사실에 대해서, 또 그런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그런 감정들에 대해서, 그녀는 그 사랑이 끝나는 순간 후회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겠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 사랑으로 인해 발생됐던 여러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조금 더 나은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사랑의 허무함, 또 쓸쓸함에 대해서도 알게 됐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 하나쯤 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욕망이라고 불러야할지,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겠지. 그리고 그녀는 그 다음 사랑에서, 그 남자보다 조금 더 나은 남자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내가 없는 남자를,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는 남자를, 거짓말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찾아오는 남자를, 드레스를 입고 만날 기회를 가져오는 남자를, 운동복을 입고 찾아오는 것이 일상이 아닌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여자는 다시 한 번 다른 많은 것들에 처음을 느낄 것이다. 모든 아프고 안타까운 감정들에 대해서 또 과거의 실수에 대해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다' 라는 후회와 자책이 들 때가 있지만, 어쩌면 그런것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란다의 드레스와, 공단 슬립과, 검은 하이힐은 다른 순간, 다른 사람 앞에서 훨씬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위대한 유산』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줌파 라히리의 단편에 푹 빠져있었네.




- 어젯밤 식구들이 텔레비젼 앞에 둘러앉아 조카의 재롱을 보다가 [환경스페셜]을 보다가 했다. 잠깐 시선을 돌린 텔레비젼에서는 뱀과 개구리가 나왔는데, 나는 으윽, 싫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조카는 내게로 오더니 그 작고 작은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며 말했다.



"무셔? 이모, 보지마."



아, 대체 내가 이 아이가 아니면 다른 누구를 사랑한단 말인가!





- 책상위에 놓여진 초콜렛통의 뚜껑을 열고 딱 한 개만 먹고싶은데, 차마 그러질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어제도, 그리고 그제도 매번 그렇게 결심했지만 한 개를 입에 무는 순간 손이 멈춰지지를 않았었으니까. 먹으면서도 중얼거렸다. 초콜렛은 왜 하나만 먹고 멈춰지지 않는거지? 왜이러지? 그래서 쓰레기통에 죄다 쏟아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었다. 물론, 그러진 않았지만. 신이시여, 제가 초콜렛통의 뚜껑을 연다면, 딱 한 개만 먹고 뚜껑을 닫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흑흑.




- 오늘 아침에 나는 맹렬한 질투심에 휩싸였다. 그 질투심으로 가슴이 아프고 시리기도 했는데, 이런 종류(!)의 질투심은, 처음이었다. 사실은 그 감정의 이름이 질투심인지 뭔지도 명확하지가 않다. 처음이라, 뭐라 이름붙여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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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11-0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질투라니요.
맹렬하기 까지 하다니! 대상이 사람이라면... 오호홋!

다락방 2012-11-08 12:15   좋아요 0 | URL
사람이 아닌것에도 맹렬한 질투가 생기기도 합니까, 마중물님?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점심엔 매운거 먹고 잊어야겠어요. 휴..

아무개 2012-11-08 13:19   좋아요 0 | URL
전 저보다 어리고 얼굴도 작고 게다가 눈까지 큰 그의 "개"를 질투한 적이있었습니다. 맹렬하게!!!


매운 점심 드셨습니까? 오늘저녁 계획이 성공하면 저도 아주 매운 낙지볶음을 먹을 예정입니다..


다락방 2012-11-08 17:53   좋아요 0 | URL
전 글 잘 쓰는 사람에 대한 질투에요. 흑흑 ㅜㅜ

테레사 2012-11-0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이거 첨 나왔을 때 읽었더랬어요. 좋아요..글고 줌파씨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다락방 2012-11-08 12:16   좋아요 0 | URL
저는 줌파 라히리의 최고 단편은 [지옥 천국] 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레사님! 므흣. 줌파 짱이죠!!

레와 2012-11-0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저 책 볼때마다 표지가 확 깨요..-.-;;;

역시 타미가 진리구나. 타미 최고!

다락방 2012-11-08 12:16   좋아요 0 | URL
응? 난 뭐랄까, 표지에 좀 관대한 스타일인듯? 그러고보면 내가 사람 외모도 안 가리고 잘 사귀는 것 같아...(이건 뭔소리? ㅋㅋ)

타미는 진리에요, 진리입니다. 훗.
점심 맛있게 먹어요!

Jeanne_Hebuterne 2012-11-08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락방 2012-11-08 13:14   좋아요 0 | URL
쟌님, 뭐가요?

Mephistopheles 2012-11-0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 아홉에 만난 남자도 내게 같은 말을 했다.

"락방...고기 좋아해?"

이 말일꺼라 확신합니다.

다락방 2012-11-08 13:15   좋아요 0 | URL
헉.
메피스토님.......
어떻게 아셨어요? 진짜 신기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2-11-08 17:47   좋아요 0 | URL
설마...맞췄을 줄이야...

다락방 2012-11-08 17:5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설마 정말 맞히셨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지요. 아무렴, 제가, 그래도 그렇지, 고기 좋아하냐는 말에 쑝- 하고 넘어갔겠습니까! 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2-11-09 09:19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 2012-11-09 09:28   좋아요 0 | URL
전........전............전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울면서 뛰어나간다)

2012-11-08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8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9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1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12-11-0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쓴 페이퍼를 다시 읽어보았어요. 그러다가 오타 발견. "웃고, 울었다"인데 "웃고, 웃었다"라고 썼더라구요. 다락방님의 댓글을 보고 알았어요.
페이퍼를 수정했으니 다락방님의 댓글도 수정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 <건축학개론>을 보고 어찌 웃을 수만 있었겠어요. 미련하게 눈물이 고여야 정상이죠.ㅠ

다락방 2012-11-11 02:47   좋아요 0 | URL
하하 깐따삐야님 저는 건축학개론을 안봤거든요. 그게 오타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 댓글 보자마자 가서 댓글 수정했답니다. :)

카스피 2012-11-0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조카가 넘 귀엽네용^^

다락방 2012-11-11 02:47   좋아요 0 | URL
최곱니다, 제 조카는. ㅎㅎ

가연 2012-11-10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처음이라는 말, 잘 기억해둘께요. 이렇게 저의 연애스킬이 올라가는 거겠죠!

다락방 2012-11-11 02:4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가연님의 연애스킬이 전문가 수준이 되면 그중 일부는 제 덕일거라고 제 마음대로 생각할게요! ㅎㅎㅎㅎ
 

사정상 아직 점심을 먹기전이고, 고로 몹시 배가 고프다. 흑흑. 게다가 비가 내리고 있..........이런 날은 그냥 집에 가라 그랬으면 좋겠다. 

를 써두고서는 점심을 먹었다. 후훗.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 중이다. 역시 김치찜은 맛있다. 다 먹고난 후에도 침나오네.


어제 잠들기 전에 토요일자 경향신문을 봤고, 나는 아니나 다를까, 책 한 권을 메모해 두었다. 그러다가 이내 스맛폰으로 알라딘 어플에 접속하여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다음에 책을 지를 때(부디, 내년이 되기를!!), 이 책을 넣어야지 하면서.

















[알라딘 책소개]

1628년 10월 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신조선 '바타비아 호'가 총 332명을 태우고 암스테르담에서 자바의 네덜란드 상관을 향해 출항하였다. 자바까지의 항해에 소요될 예상시간은 약 8개월. 그러나 목적항까지 30일 정도를 남겨놓은 1629년 6월 4일 새벽, 배는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해역에서 암초와 충돌하여 좌초한다. 생존자는 320여 명. 

이들을 살린 것은 근방에 흩어져 있던 작은 산호섬. 좌초된 배 위에서 공포에 떨다가 산호섬에 올라선 사람들은 일단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살린 이 섬이 끔찍한 무덤으로 변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구조 요청을 위해 선장과 대상인을 포함한 48명이 보트에 초과탑승한 채 1500마일의 험난한 항해에 나섰고, 나머지 250여 명 이상은 산호섬에 남았다.

대상인과 선장이 부재한 산호섬의 생존자들의 미래는 이제 부상인인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의 손으로 옮겨갔다. 9월 중순, 기적처럼 자바 항해에 성공한 대상인이 구조선을 이끌고 좌초지점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생존자 중 120여 명이 이미 무참히 살해된 후였다. 나중에 '바타비아 호의 무덤'으로 불리게 될 이 섬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국의 역사저술가 마이크 대쉬의 역작으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해난 참사로까지 불리는 바타비아 호 좌초사건의 전말과 살인을 오락으로까지 즐기며 대량살육을 행한 코르넬리스라는 인물의 감정 저변에 흐르는 정신병의 핵심을 기독교적 이단의 가능성과 함께 날카롭게 파헤쳤다.



신문에는 이 소개보다 더 많은 소개가 실려있었는데, 마치 '윌리암 골딩'의 『파리대왕』의 리얼 버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파리대왕을 읽으면서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법한 일이라고, 이건 현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현실이 정말 존재했다는거 아닌가. 아니나다를까,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는 [파리대왕]의 성인판! 이라고 쓰여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끔찍한 책을 왜 읽으려고 하는걸까. 제대로 읽을 수나 있을까.




그리고 며칠전에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으로는 이 책이 있다.



















시집은 가급적 사지 않게되는데-나는 시를 잘 못읽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연준이란 이름은 간혹 검색해보곤 했다. 나는 박연준 시인의 이전 시집인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을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며칠전, 알라딘 자목련님의 서재에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된 것. 오, 드디어 박연준의 새로운 시집이!


전 시집에서도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곤 했는데, 이젠 제목에 아버지가 들어가 있네. 제목이, 어쩐지 읽고 싶지 않고 불편한데, 그래서 고민중이다. 박연준, 이란 이름을 믿고 살 것인가, 제목이 주는 불편함으로 그냥 이 시집을 밀어낼 것인가. 보통 책의 미리보기를 잘 하지 않는편인데(그냥 산다), 이 시집은 자꾸 갈등이 되어서 미리보기를 조금 해봤다. 그런데 이런 시가 있더라.



보라색 자물쇠



이를테면 피아노 건반의 검고 흰 막대들이

어느 것이 '도'이고 어느 것이 '솔'인지

그네들 속내를 밝히지 않기로 다짐했다는 듯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아침은 쿵쾅쿵쾅 제멋대로 연주되고

누군가는 항갈망제를 삼킨다 사력을 다해

이 생을 통째로 깨뜨리려 애쓰고

이미 사라진 사과나무 아래서

하나만, 딱 하나만 붉은 우주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봉합된 눈꺼풀을 한 올 한 올 뜯으며

눈물을 좀 흘려볼까,

몇 시간째 끙끙 힘을 주고



모든 이별은 활달하기만 한데



잃어버린 발목을 찾기 위해

휘어진 길이 절뚝이며 헤매도 되나

이대로 아침이 방긋, 깨어나도 되나



아! 다른 시가 궁금해진다.




또 이런 책이 장바구니에 있다.















이 책도 경향신문에서 알게 된 책인데, 나는 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책소개가 유독 와닿는다.



[알라딘 책소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마가렛 로렌스의 장편소설. "흉내가 아닌 하나의 계시(뉴욕 타임즈)"라고 극찬받았던 것처럼, 고독과 육체적 고통 그리고 타들어가는 삶의 마지막 촛불을 마주해야만 하는 노년 여성의 삶을 매우 흥미롭고도 통찰력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황혼도 다 지나가고, 이제 남은 것이라곤 자존심과 스려져가는 몸뚱아리만이 전부인 왕고집 할머니 헤이거 쉬플리. 환갑이 넘은 아들 마빈과 며느리 도리스와의 불안한 동거는 하루도 끊이질 않는 다툼과 긴장으로 헤이거를 힘겹게만 한다. 그러던 어느날, 마빈과 도리스는 감당하기 힘든 헤이거를 양로원에 보내려 하고, 헤이거는 삶의 마지막 촛불을 태우며 끝맺지 못한 기억의 여정을 떠난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게 될까, 죽음 직전에는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게 될까. 남은게 자존심뿐인 노인이라면 그 자존심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갈까.

아직 사두고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한데, 그래도 자꾸만 자꾸만 읽고 싶은 책이 생기고, 그것들을 또 자꾸만 자꾸만 쓸어담는다. 자, 이제는 다시 일이나 하자. 여기는 여전히 사무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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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6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2-11-0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은 "어라. 다락방님이 이런 책을???"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더군요.

다락방 2012-11-06 16: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메피스토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제가 잘 읽어내지 못할 것 같아요. 흐음..

Mephistopheles 2012-11-06 16:1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일단 책을 먼저 사세요..시도는 해보셔야죠...(그리고 저에게 토~스~)

다락방 2012-11-06 16:24   좋아요 0 | URL
일단, 내년까지 기다리세요. ㅎㅎㅎㅎㅎ 전 내년에 구매할 예정이란 말입니다!!

blanca 2012-11-0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 관심 가네요. 책 소개를 눈여겨 보고 읽었는데 저랑 관심사가 비슷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다락방님, 파리대왕 어땠어요? 저는 영화로만 봐서 책을 읽어볼까 이랬거든요. <스톤엔젤>도 어떨지 궁금하고요. 저는 망구엘 책 한 열흘 붙잡고 있나봐요^^

다락방 2012-11-06 16:11   좋아요 0 | URL
저는 파리대왕 읽은지 좀 오래됐는데요, 블랑카님. 굉장히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전 영화를 보지 못했네요. 영화가 있는줄도 몰랐어요. 당시에 파리대왕 읽고 꽤 충격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어린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권력을 주고 권력에 무릎꿇고 반대세력이 생기고 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서요. 흐음, 댓글 쓰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갑자기 스티븐 킹의 [옥수수밭 아이들]이 왜 떠오를까요? 전 [옥수수밭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요, 블랑카님. ㅠㅠ

저는 망구엘의 [독서일기] 예전에 중간까지 읽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습니다, 블랑카님. 그래서 이번 신간도 패쓰했어요. ㅎㅎ [스톤엔젤]은 비밀댓글님이 지금 읽고 계시다는데, 괜찮답니다. ㅎㅎ 저는 어제 회사동료로부터 선물 받았어요. 빨리 읽고 싶어요!!
 
네, 이게 사랑이죠.


"핍, 이보게 친구, 인생이란 서로 나뉜 수없이 많은 부분들의 접합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고 어떤 사람은 양철공이고 어떤 사람은 금 세공업자고, 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이게끔 되어 있지. 사람들 사이에 그런 구분은 생길 수밖에 없고 또 생기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지. 오늘 잘못된 뭔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다 내 탓이다. 너와 난 런던에서는 함께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야. 사적(私的)이고 익숙하며, 친구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는 그런 곳 외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우린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야. 앞으로 넌 이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텐데, 그건 내가 자존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저 올바른 자리에 있고 싶어서라고 해야 할 거야. 난 이런 옷차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난 대장간과 우리 집 부엌과 늪지를 벗어나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대장장이 옷을 입고 손에는 망치, 또는 담배 파이프라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너는 나한테서 지금 이런 차림의 반만큼도 흠을 발견하지 못할 거야. 혹시라도 네가 날 다시 만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땐 대장간에 와서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대장장이인 이 조가 거기서 낡은 모루를 앞에 두고 불에 그슬린 낡은 앞치마를 두른 채 예전부터 해 오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도록 하거라. 그러면 넌 나한테서 지금 이런 차림의 반만큼도 흠을 발견하지 못할 거다." (p.411)



















핍은 자신을 구박하는 누나의 남편인 조로부터 대장장이 일을 배우고 있었다. 조는 누나한테 구박당하는 핍을 구해주고 위로해주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다. 조는 핍에게 세상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는데, 그래서 핍은 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항상 그의 옆에 있었는데, 어느 익명의 후원자가 핍에게 신사가 되는 후원금을 지원해줌으로써 핍은 조와 멀어진다.


신사가 되는 교육을 받기 위해 핍은 대장장이 일을 배우는 것을 그만두고 조의 곁을 떠나 도시로 간다. 거기에서 그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점점 더 신사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 도시로 온 조는, 핍과 핍의 친구 앞에서 위축되고 실수를 저지른다. 핍은, 그런 조를 부끄럽게 여긴다. 그때 조가 저 긴 말을 핍에게 한다. 내가 늘 익숙했던, 나에게 어울리는 공간에서라면, 너는 나로부터 흠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처음인데, 역시나 기대했던 만큼 재미있다. 숱한 소설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언급하는지를 알겠다. 먼 훗날 언젠가 나도 근사한 소설을 한 편 쓰게 된다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꼭 언급하고 싶어질 정도다. 아직 핍이 어렸을 때, 그래서 핍이 어린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들에 대해 찰스 디킨스는 명확하게 그려낸다. 책을 읽다가 나도 공포감을 느낀다. 아, 이 어린 나이에 이런 상황이라면, 어떡하지,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할까, 역시 비밀로 하는게 좋을까. 찰스 디킨스의 다른 소설을 아직 읽어보기 전이지만,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도 못했지만, 나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가장 따뜻한 시선을 지닌 작가중의 한 명으로 찰스 디킨스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우리 누나의 양육 방식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누구한테 양육을 받든지 간에 아이들이 존재하는 조그만 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만큼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인식되고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사가 그저 조그만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존재이고 아이의 세계도 작다. 그리고 그런 작은 세계에서 아이의 흔들목마는 비율로 칠 때, 우락부락한 아일랜드 사냥개만큼이나 커다랗고 높이 솟은 존재로 보이는 법이다. (p.118)



이렇게 말해주는 찰스 디킨스에게 이미 내 마음은 홀랑 반해있었는데, 찰스 디킨스가 가진건 이뿐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넘치는 유머감각도 있었다. 핍을 구박하는 핍의 누나는, 마음이 따뜻한 조의 입을 빌어 말하건데, '풍채가 좋은' 여자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자신의 어린 동생을 구박하고 매로 때리기도 한다. 조는 그런 그녀를 흉을 보지도 않고 그녀의 곁을 떠나지도 않으며 그녀의 말을 잘 따라주며 그녀의 곁에서 핍의 친구가 된다.


"그 문제에 대해 집안 식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또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핍, 네 누난 말이다 ‥‥‥."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난로 맨 위쪽 가로막대를 부지깽이로 한 번씩 두드리며 말했다. "풍채가, 훌륭한, 여자, 란다!"

나는 달리 더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기쁘네요, 조."

"나도 그렇단다." 조는 내 말을 그대로 받아서 대답했다. "나도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기쁘단다, 핍. 얼굴이 좀 빨갛기로서니 또는 여기저기 뼈가 좀 튀어나왔다고 해서, 그게 나한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p.91)



아...나도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기쁘단다, 를 읽는데 웃으면서 슬프다. 슬프면서 웃기다. 


그런 핍에게 조는 왜 누나에게 대들지 않느냐고 말한다.


"왜 내가 들고 일어나지 않냐고? 내가 네 말을 가로막았을 때 하려던 말은 바로 그거였지, 핍?"

"네, 맞아요, 조."

"글쎄 ‥‥‥." 조는 구레나룻을 어루만지기 위해 부지깽이를 왼손으로 바꿔 쥐며 말했다. 그가 그렇게 평온한 자세를 취할 때마다 나는 그를 이겨 낼 희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네 누난 주도자란다. 주도자."

"그게 어떤 사람인데요?" 나는 혹시 그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을 품으며 말했다. 하지만 조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 그 단어의 정의를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pp.94-95)



조는 글자를 읽지도 못하고 가난한 대장장이다. 그런 그가 핍이 묻는 말에는 언제나 따뜻하게 대답해준다. 핍은, 주도자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만큼은, 조가 잘 해내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읽으면서, 대체 주도자의 정의를 조가 어떻게 내릴것인가 내심 기대했다. 아, 그런데, 이런 대답을 듣게 됐다. 



그는 나를 빤히 응시하면서 "네 누나 같은 사람이지."하고 순환논법으로 대답함으로써 나를 완전히 좌절시켜 버리고 말았다. (p.94)



아, 조에게는 이길 수가 없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밤에 침대 위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키득거렸다. 몇 장 읽지도 않고 재밌다고 흥분했다. 이 재미있는 책의 2권을 이제 읽을 생각을 하니 신난다! 



어제는 분홍색 장갑을 샀다. 이번주중에는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부츠도 좀 꺼내놔야 할 것 같다. 에단 호크와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술 좀 그만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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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짓말
    from 마지막 키스 2012-11-11 02:29 
    몇 년전에 영화 『위대한 유산』을 보기는 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바, 당연히 이 책의 결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야기가 어떤식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의 끝부분을 읽어갈무렵, 나는 한 손에 휴지를 들고 눈물과 콧물을 닦아야만 했다. 그러니까 핍이 자신의 후원자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자신이 알고있는 진실을 말해주는 그 장면 때문에. 아, 이게 이런 책이었구나!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나는 영화를
 
 
하루 2012-11-0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매번 좌절하고 있다구요. 디킨스에게

다락방 2012-11-05 12:46   좋아요 0 | URL
하루님 ㅠㅠ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다 읽으셨어요? 전 그거 사두었는데 오타와 편집 때문에 점수 깎아먹는다는 소리가 들렸는데, 너무 급하게 나온 탓일까요, 오늘 마노아님의 밑줄긋기 보니 책 반품하고 싶은 심정이네요. orz


하루 2012-11-06 11:57   좋아요 0 | URL
[두 도시 이야기]
못 읽겠다구요!!!!!! OTL

네꼬 2012-11-06 14:33   좋아요 0 | URL
그 책 참고 있는 1인 여기요.

다락방 2012-11-06 14:39   좋아요 0 | URL
우잉 ㅠㅠ 저 반품할까요 ㅠㅠ

Mephistopheles 2012-11-0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가 참 의미심장하네요. 어찌 고전이라고 생각하는 소설에 에단호크&기네스펠트로의 수도꼭지 키스로 유명한 현대적 배경의 영화가 표지로 쓰이다니..

다락방 2012-11-06 16:00   좋아요 0 | URL
영화에서는 어린시절의 저 남녀가 저 장소에서 키스를 했잖아요. 실제 책에서는 그런 식으로 키스하지 않았어요. 볼에다 했더라구요. 아, 내가 본 영화랑 책이랑 다르구나....하고 좀 당황하고 있답니다.

야클 2012-11-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대한' 유산 보다 '막대한' 유산이 탐나요.

다락방 2012-11-06 16:00   좋아요 0 | URL
저는 위대하면서 막대한 유산이요. ㅎㅎ

야클 2012-11-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해본 소리랍니다. 유산은 무슨....

다락방 2012-11-06 16:00   좋아요 0 | URL
그러나 내가 받을 유산 같은건 존재하지 않을 뿐이고!!

야클 2012-11-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낳아주고 길러주셨으면 되지....

Mephistopheles 2012-11-05 19:32   좋아요 0 | URL
그래도.....이왕이면........

다락방 2012-11-06 16:01   좋아요 0 | URL
ㅎㅎ 아, 일하기 너무 싫어서 미칠 것 같아요. 어제 오늘 미친듯이 일하느라 토나올 것 같아서 흑흑. 때려치고싶습니다, 이놈의 직장!!

테레사 2012-11-0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드뎌 위대한 '위대한 유산'을!!! 정말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죠? 제가 디킨즈들 좋아하게 된 계기죠. 아니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된 그 책..완전 좋아요.^^

다락방 2012-11-06 16:0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아요, 테레사님. 어릴 때 읽었다면 아마 가치를 모르지 않았을까, 지금 읽어서 다행이다, 뭐 이런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헤헷. 어서 빨리 끝까지 다 읽고 싶어요!

댈러웨이 2012-11-05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인가 이 책 사진 올리셨던 거 기억하는데, 드디어 읽기 시작하셨네요. 주변에서 찰스 디킨스에 관한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이 작가는 참 마음 무거운 숙제로 남아 있는데. 영화는, 에단 호크였어요? 저는 왜 브레드 피트랑 기네스 팰트로가 나왔던 걸로 기억을 하고 있죠? 분명히 브레드 피트였는데. (막 우긴다! 내가 본 건 뭐였지???) 그나저나 저 위에 보라색 시집, 표지때문에 사고 싶어져요. 다락방님이 올리신, <피로사회>의 인용구를 읽기도 했지만, 그 책도 커버가 보라색이라서 장바구니에 넣어놨는데. 이건 내용때문이 아니라 커버 때문에 책을 사는 격. 점심으로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습니다. (응?)

다락방 2012-11-06 16:05   좋아요 0 | URL
너무 읽고 싶어서 여름에 사두고서는 이제야 읽게 되네요. 하긴 사두고 몇 년이 됐지만 쳐다보지도 않는 책들도 있긴하지요. ㅠㅠ 댈러웨이님은 저처럼 쌓아두고 안 읽은 상황에서도 또 막 책 사고 그러시나요? 아니면 다 읽은 후에 새 책을 또 사시나요? 아...전 정말이지, 제가 다 읽은 다음에 다음 책들을 샀으면 좋겠어요. 흑흑.
영화는 에단 호크입니다, 댈러웨이님. 댈러웨이님의 댓글을 보고 브래드 피트랑 기네스 팰트로가 어딘가에선 함껴 출연했으니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것일텐데, 그러니 함께 출연한 영화가 있을텐데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세븐]에서 둘이 부부로 나왔었다네요. 오만년전에 본 것 같은데 내용은 전혀 기억 안나고 기네스 팰트로의 모습도 전혀 떠오르질 않네요. ㅎㅎ

점심으로 콩나물 국밥은 드셨어요? 저는 오늘 점심으로는 김치찌개를 먹었어요. 그런데 너무 진해서 국물을 떠먹기가 힘겨웠어요. 아...근데 떠올리니 침나오네요. 하아- 저란 인간은 왜 이모양일까요. orz

댈러웨이 2012-11-06 16:37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다락방님 방에 단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고 싶어도 못 달겠어요. 너무 바쁘시니까. 근데 답댓글 읽는 게 너무 웃겨요. ㅋㅋㅋ가 그냥 나오는. 또 실없는 소리 하는 것 같은데, 흠, 그게 다시 댓글을 다는 이유가요, 저도 다락방님처럼 책 막 사요. 쌓아두기만 하면서. 그렇지만 아마도 다락방님 만큼은 책을 안사지 않을까요?? 세븐 아닌데... 위대한 유산 맞는데... 그나저나 제가 어디서 콩나물 국밥을 먹을 수 있겠어요? 라일라님 방에 가기 전에는 고기가 먹고 싶었었는데 갑자기 전주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어져서... 아, 진짜 전주를 가야겠어요. --;

다락방 2012-11-06 16:42   좋아요 0 | URL
맞네. 거기 계신분한테 콩나물 국밥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하핫. 전주비빔밥도 먹고싶지 않아요? 아 난 또 왜 먹고싶지. ㅎㅎ
그런데요 댈러웨이님, 제가 댈러웨이님보다 책을 많이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댈러웨이님이 이곳에 계셨다면 저보다 많이 사셨을 건 확신해요. 문학적 소양이 대단하시잖아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를 하시구요. 전 왜이렇게 댈러웨이님만 보면 사두고 안읽었으며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는 [늦여름1] 이 생각날까요? 그나마 사두고 안 읽을 줄 알고 1권만 샀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게 자랑 ㅎㅎ)

이진 2012-11-0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거 진짜 읽고 싶어요. 전에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군침 돌아서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는데 지금까지도 못 사고 있네요. 장바구니가 삼십만원을 넘어가는 터라.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있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놀라고 있어요. 번역가해서 먹고 살기 참 쉽겠다고 말이어요. 최소한 우리 문법에 맞도록 문장을 바꾸어 주기라도 했으면 좋을 걸 말입니다. 물론 원문 그대로 살리는 번역이 좋기야 하겠지만 말이어요. <파리대왕>도 ... 번역이 최악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터라 읽고 싶지가 않네요. 크흑. 외국 작품들을 서서히 읽어 나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꾸고 있는데 번역 때문에 걱정이네요.

다락방 2012-11-06 16:0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하~ 위대한 유산 완전 좋다요!! 흑흑.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 출판사로 읽고 있어요? 제 경우엔 민음사로 읽었는데 그때 당시(오래전이라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읽는데 문제 없었던 것 같아서요. [파리대왕] 역시 민음사로 읽었는데 전 완전 재미있게 읽었네요. ㅎㅎ 어쩌면 저는 번역문에 완전 길들여져서 그런것 같아요.

이진 2012-11-07 22:17   좋아요 0 | URL
오옹 민음사 번역으로 읽고 있는데 카프카는 그나마 괜찮아요. 한 문장 한 단어 곱씹어 가며 읽으니까 대충 내용 파악은 되더라구요. 다락방님 이야기를 철썩 같이 믿고 민음사 파리대왕 한 번 읽어 볼까요!! ㅎㅎ

다락방 2012-11-08 09:54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제가 어제 예전에 읽었던 [축복받은 집]을 꺼내 읽었는데요. 아 글쎄 문장이 엉망이지 않겠습니까! 읽을 당시에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말예요. 이건 왜그런걸까요?
그래서 소이진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파리대왕]의 문장에 대해 자신이 없어지네요. 한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건, 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겁니다!!

프레이야 2012-11-0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ᆢ 또다른 숙제 잊고있다가 번쩍! 영화부터 보고싶은 건 뭐죠. 기네스 펠트로를 좋아해서 그런가봐요. 책 담아가요^^

다락방 2012-11-06 17: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은 이 영화도 책도 무척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저는 벌써부터 프레이야님의 평이 기다려집니다. 흣.
:)
 
네, 이게 사랑이죠.
커피소년 - 1집 기다림
커피소년 노래 / 오이일이뮤직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그의 음악에 이러한 감성이 묻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커피소년이 된 이유로 설명된다.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년전 그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좋아한 커피를 따라 마시다 보니 그도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커피를 사랑하는, 자신을 '커피소년'이라 부른다. 그리고 일년동안 외사랑의 아픔을 겪으며, 또 희망하며 로스팅을 과정을 거친 원두 처럼 그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한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 알라딘의 커피소년 앨범소개中 에서




굳이 저 소개글을 읽지 않더라고 커피소년의 그간 음악들을 착실하게 들어왔다면, 그가 짝사랑을-외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 맞다- 앓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아픈 노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절반 이상이 차지하는 '헤어진 후의 슬픔에 대한 노래'가 그중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아직 이루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노래'가 또다른 하나겠다. 그리고 커피소년은 후자이다. 그는 아직 자신이 혼자 사랑하는 여인과 이를테면 봄을 맞게된 것도 아니고, 그녀와 손잡고 거리를 걷는 과정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는 혼자 바라보고 혼자 사랑하고 혼자 속끓이고 혼자 애태우고 그렇게 혼자 자신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이 그의 앨범들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 1-1. Intro
  • 1-2. 하루만 더
  • 1-3. 혼자
  • 1-4. 커피나무
  • 1-5. 생일 축하합니다
  • 1-6. 엔틱한 게 좋아(feat.타루)
  • 1-7. 아껴둘게
  • 1-8. 커피잔
  • 1-9. 피베리
  • 1-10. 니가 그리워
  • 1-11. 블렌딩



물론 나는 짝사랑은 하지 않는것보다 하는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사랑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이 되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매우 많이 아프다고 해도, 그 감정은 그 감정 자체로 소중하니까. 게다가 커피소년처럼 음악을 하는 예술인이라면, 그 감정은 그 예술에 더할나위 없이 도움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도 마찬가지. 슬픔이 극에 달할 때 쓰는 글들이 감정이 찐득찐득 들어박혀 더 아름답게 느껴지곤 하지 않나. 커피소년의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는 아마도 이 1집앨범 『기다림』을 만들때즈음이 아니라, 그 전이었던 것 같다. 이번 앨범의 노래는 기존의 노래들만큼 좋거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중에 「사랑이 찾아오면」과 「그대를 내안에」는 정말이지 얼마나 좋았었는가! 정신줄놓고 들어가면서 내노래야 내노래야 했단 말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딱히 와닿는게 없다. 물론, 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 노래들을 듣던 당시에 내 감정이 극에 달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 노래들이 가슴을 후벼팠는지도 모른다고.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음악을 만드는 이와 듣는 이가 같은 크기의 감정으로 음악을 만들고 듣는건 아니니까. 그때의 나는 최강으로 그의 음악을 흡수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를 못하다.


이번 커피소년의 앨범을 들으면서 이십년전의 공일오비가 떠올랐고 에피톤 프로젝트도 떠올랐다. 그들의 감성이 묘하게 닮아있는듯해서. 나는 이번 앨범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앞으로 불러낼 노래들이 궁금해서 계속 그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다. 사실은, 그의 사랑이 궁금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커피소년에 대한 애정으로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 그는 자신에게 글을 남기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남겨진 글들 모두 커피소년을 '오빠'라고 부르더라. 아....뭔가.....씁쓸한데? 나는 그의 나이를 모르지만, 모두가 오빠라고 부르는 그곳에 대고 '나는 누나란다' 라고 달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내게도 이성은 조금 있어, 참았다.





그의 이번 앨범 노래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너의 쓴 아픔은 내가 감싸줄게
너의 시린 눈물은 내가 닦아줄게

너의 그 웃음은 내가 지켜줄게
혼자이고 싶을 땐 먼발치에서 기다릴게

니가 쉬고플 땐 너의 집이 될게
니가 지쳤을 땐 너의 힘이 될게
맘이 식었을 땐 너의 낭만이 될게
혹시 니가 아플 땐 내가 대신 아파 줄게   -「블렌딩」中



일단 한숨한번 쉬고. 하아-. 앨범에 대한 태클을 걸려는 건 아니고, 이 노래를 듣다가 그냥 한숨이 났다. 이렇게 노래하는 커피소년의 마음을, 아니 세상의 모든 짝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물론 나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가 뭐가 되고 뭘 해주고 어쩌고저쩌고 해도 그게 나의 짝사랑이라면, 상대로서는 전혀 기쁘지 않을수도 있다는 거다. 니가 왜 나를 감싸줘, 니가 왜 내 눈물을 닦아줘, 니가 내 집이 될 필요가 없어, 할 수 있단 말이다. 그냥 이건..뭐, 답답한 마음에 적어보는건데, 그러니까 상대의 집이, 힘이, 낭만이 되려고까지 굳이 노력하고 다짐하는 일들이 부질없다는거다. 그것조차 짝사랑하는 '내가' 원하는게 아닌가. 당연히, 그러다 지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뭐, 나로서도 루나가 노래했던것처럼 누군가의 '슬픔의 강'이 되려고 마음먹었던 적도 있던터라 이해안되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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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이 식었을땐 너의 낭만이 될께...
아이고~~~ ㅜㅜㅜㅜ

다락방 2012-11-01 09:24   좋아요 0 | URL
하아- 저도 영원히 그의 낭만이 되고 싶네요. 후아-

Mephistopheles 2012-11-0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등장하나 모르겠으나 라디오 프로그램 중 유인나씨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고정패널로 "커피소년"이 나옵니다.

다락방 2012-11-01 16:23   좋아요 0 | URL
네.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나름 대중적인 가수인가 봅니다. ㅎㅎ
아니, 근데 메피스토님은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아! 한동안 라디오 많이 들으셨죠!)

가연 2012-11-0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어떻게 지내셨나요?? 요즘 너무 바빠서..ㅎㅎ 커피소년이랑 에피톤 프로젝트랑 느낌이 닮았네요.

다락방 2012-11-05 09:5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가연님 엄청 바쁘신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통 리뷰도 페이퍼도 올라오질 않아서 말이지요.

커피소년이랑 에피톤이랑 느낌이 좀 닮긴했는데, 이 앨범까지 들으니 역시 에피톤 쪽으로 마음이 기우네요. 이 앨범 듣기 전에는 커피소년에 대한 엄청난 사랑에 어쩔줄을 몰랐는데요. 아, 물론 이틀간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