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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도 망하지 않아 - 프랜차이즈는 따라할 수 없는 동네카페 이야기
강도현 지음 / 북인더갭 / 2012년 11월
평점 :
나는 프랜차이즈 까페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겨찾는 편이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까페인만큼 다른 상호를 달고 있어도 프랜차이즈 까페안에 사람은 가득하지만, 그 사람 가득한 공간에서 가장 독립되게 있을 수 있음을 느낀다. 커피를 한 잔 시켜두고 책을 읽는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인 것 같아 내게는 소중하다. 그때의 나를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프랜차이즈 까페는 내가 독립적일 수 있는 곳 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낯선 동네를 걷다가도 익숙한 상호를 발견하면 안심이 되곤 했다.
그러나 나같은 사람만 가득해서 그런 까페만 수두룩하다면 그 안에서 안심이 아닌 소외를 느끼는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을 것이다. 내가 혼자라서 안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무관심하고 차갑고 외로운 곳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이 책은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작은 동네까페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깁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마케팅이 아닌, 존재의 이유이자 근거로서의 이야기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자의적으로 혹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스토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관심'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할까요? 무엇이 스토리의 시작인가요? 정답은 '타인'입니다. '나'에게 집중돼 있는 관심을 '타인'으로 옮기기 시작하면 비로소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pp.227-228)
스토리가 있는 까페는 내 개인적으로 원하는 카페는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카페는 스토리가 있는 카페가 아니다. 가족적인 환경의 카페를 내가 가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보니 내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혼자이면서도 안정적임을 느꼈던건, 그 카페안의 모두가 다들 지나다가 그곳을 들른 사람들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그곳이 동네 카페라서 늘 친숙하게 오던 사람들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나는 내가 이방인임을 느끼며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이방인이어서 편한건 다른이들도 이방인임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속에서 저자가 찾아갔던 동네 까페들은 하나같이 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대로 '스토리'를 가진 까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이 까페 운영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정신병원 의사로 근무하며 카페를 운영하고 그 카페에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고용한 의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장애인이나 마음이 아픈 분들은 어떤 일자리를 원할 것 같아요? 답은 간단해요. 모두가 원하는 일자리, 당신이 일하고 싶은 그곳에서 그들도 일하고 싶어하죠. (p.79)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청년에게 커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같이 일하고 있는 [행복한 카페]의 진은영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소통 가능한 직업이 서비스직이잖아요. 커피는, 즉 커피를 파는 것은 단순업무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잖아요. 그래서 세상에 장애인 친구들을 보여줄 수 있고 이 친구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까페를 만들게 됐죠. 저는 커피가 관계라고 생각해요. 카페에 혼자 갈 때조차 제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가거든요. 커피를 통해서 사람들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돼요. 장애인 친구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 바로 그 관계였거든요. 세상과의 관계요. (p.200)
내가 까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책을 읽고 앉아 있는 그 시간의 나는, 오로지 나만을 생각했다. 물론 나는 그 시간과 그 공간의 내가 특별히 못됐다거나 이기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골목의 카페들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알지못했음은 분명하다. 물론 우리동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카페들이기는 하지만, 그 카페라는 공간 안에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소통하기 위해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같아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같지 않을 것이다. 카페는 그 과정중에 가장 친근한 과정이 아닐까.
호기롭게 카페를 시작했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동네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던 저자는 이제 자신의 카페에 이야기를 만들기로 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카페를 시작한다. 그는 카페의 이야기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SNS 에 풀어놓는다. 저자가 운영하는 카페바인은 삼성카드 가맹을 해지하고 그 사실을 트윗에 알려 다른 카페와 식당들을 동참시킨다. 투표독려 캠페인을 하고 반값등록금 투쟁에 참여하고 온 학생들에게는 커피를 반값에 제공했다.
지금까지 가장 파급효과가 컸던 트윗은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저녁, 경찰이 FTA 반대 시위대에 물대포를 마구 뿌리던 날이었습니다. 물대포 세례에 젖어 추운 시위대에게 혹 홍대까지 오실 수 있다면 따뜻한 커피를 그냥 드리겠다고 썼습니다. 이벤트는 아니었고 저희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쓴 트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트윗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그날 하루에 팔로워가 거의 2천명이 늘었습니다. RT 횟수를 셀 수가 없었죠. 커피란 그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몸을 녹여주는 따뜻함. 그날 경험을 통해 카페바인이 어떤 커피를 세상에 내놔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pp.239-240)
단순히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 트윗을 RT 한 건 아니었을거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너희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게 이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RT 를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나누어 줌으로써 그리고 그런 사실을 스마트폰 창으로 알리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SNS 를 통해서 저자가 운영하는 [카페바인]은 자신의 스토리를 알릴 수 있었고, 그 스토리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책 말미에는 인터뷰한 카페 말고도 다른 카페 몇 군데가 더 등장하는데, 그중에 나는 3층은 법률상담을 할 수 있고 2층은 카페로 꾸며놓고 있는 [동네변호사카페]가 인상적이었다. 동네에 위치한 법률상담소라 사람들은 뭔가 크게 각오하지 않아도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그게 애초에 이런 카페를 내게 된 변호사의 의도였다. 마지막에 실린 [책 읽는 고양이 카페]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공정무역 커피를 내리고 있으며 길고양이를 포함해 총 열 두마리의 고양이들이 카페 안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찾아가 보고 싶을것 같아 검색했더니 시사인에서 한 번 소개한 기사가 있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687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에게는 여분의 존재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 여분의 존재가 카페에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카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뜻에 맞게 그리고 타인과 함께 하는것을 고려해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안심이 됐다. 어쩌면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맡기고 편하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는 별 넷을 주지만, Arch님, 마중물님, 레와님이 읽는다면 아마 별 다섯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