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목사의 딸들
















로렌스의 목사의 딸들이란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 「목사의 딸들」에는 결혼 할 나이가 된 두 딸이 나온다. 이 두 딸은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달랐다. 큰딸 메어리는 자신에게 일정한 지위와 권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이 모두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자신의 남편감으로 받아들인다. 그와 결혼하면 그녀는 언제나 교양있고 지위있는 여성으로 머물 수 있으니까.


메어리가 매씨 옆을 따라 올더크로스를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수군대곤 하였다.

"아이고, 메어리가 상대를 잡긴 잡았구먼. 그런데 어디서 저렇게 작고 형편없는 난쟁이를 골랐담!" (p.70)


그녀라고 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동생인 루이자는 그와 다니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메어리는 매씨 씨와 결혼하면서 자신도 남편처럼 감정이나 충동이 없는 순수한 이성이 되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을 닫아걸었다. 그녀는 처음에 닥쳐온, 수치로 인한 고뇌와 침해당하는 공포감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자신을 닫아걸었다. 그녀는 결코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그에게 묵묵히 따른는 하나의 순수한 의지로 자처했다. 그녀는 어떤 한 종류의 운명을 선택했다. 그녀는 선해지고 순수하게 정의로우며, 자신이 이미 알던 것보다 더 높은 자유 속에서 살아가고, 세속적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었다. 그녀는 의(義)를 향해 가는 하나의 순수한 의지였다. 그녀는 자신을 팔아넘겼지만, 덕분에 새로운 자유를 얻었다. (p.82)



이 결혼은 그녀의 의지였다. 그녀는 어떤것을 잃는대신 또 어떤것을 얻는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남편은 결혼하고 나니 무척 잘해주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간혹 견딜 수 없을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느날 그녀는 그에게 온 식구가 다함께 친정에 가자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차를 타고 간다.



"구석으로 들어앉아요."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기를 꼭 안아요."

아내는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는 창밖을 응시했다. 그가 영원히 옆에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자신의 뇌를 누르는 쇳덩이와 같았다. 그러나 이제 며칠 동안 그것을 다소나마 피하게 될 것이었다. (p.90)



아, 도스트예프스키가 자신의 단편인 「영원한 남편」에서 '영원한 남편같은' 남자에 대해 묘사했던게 어렴풋이 생각나면서, 이 장면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순수하게 육체적인 면으로 보자면 경멸하고 싶기까지한 남자를, 그녀는 다른식의 욕구로 버텨가며 살고 있는데, 그러다가 문득 돌아본 그 남자가 영원히 나와 함께 살게 될 남자라는 걸 자각하게 되면, 그 순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언니 메어리는 동생 루이자에게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신은 아무리해도 언니처럼 고결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언니가 그런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는 걸 보면서 루이자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은 반드시 '사랑'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다짐한다.


"그들은 틀렸어-모두 틀렸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때문에 자기 영혼을 갉아먹은 거야. 그들한테는 어디에도 손톱만큼의 사랑도 없어. 하지만 난 사랑을 차지할 거야. 그들은 우리가 사랑을 부정하기를 바라고 있어. 자기들은 한번도 사랑을 찾아내질 못했으니까 사랑이란 건 없다고 말하고 싶지. 하지만 난 사랑을 차지하고 말 거야. 난 사랑할거야- 이건 내가 타고난 권리야. 난 내가 결혼한 사람을 사랑할 거야-내게 중요한 것 이것뿐이야." (p.88)



루이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녀가 다짐한대로, 그녀가 마음먹은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루이자의 식구들은 루이자가 사랑한 남자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저렇게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형편없는 남자와 루이자가 결혼한다는 게 챙피하기도 하다. 결국 루이자와 그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하고 루이자의 식구들은 그것을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루이자는 사랑을 원했고, 그것을 손에 얻었지만, 가족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나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결혼'에 대해서 각자가 가진 생각은 모두 다르다. 조건이 맞아야 편안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삶을 이끌어나가는게 아닌가 싶다. 이것 대신 저것을 선택한 건, 순간순간마다 내가 선택한대로 그 길이 열리는 거니까. 물론, 그때마다 다른 길은 닫히지만. 그 선택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지는 내가 판단할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메어리는 사랑보다는 의를 택했고, 루이자는 다른건 다 필요없고 사랑을 택했다. 그건 모두 그녀들이 원하던 바였다. 앞으로의 날들이 어떻게 흘러가게 되든간에.




메어리가 기차안에서 이 남자와 영원히 함께 해야하다니, 하고 끔찍하게 생각할 때 이 소설이 굉장히 완벽하게 느껴졌는데, 로렌스는 이 소설에 달콤함도 잊지 않고 넣어두었다. 사랑을 차지하려는 루이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자신을 붙들지 않아서 초조하고 애가 탄다. 이에 그녀는 자신이 먼저 입을 연다.


"날 원하지 않아요?" (p.134)


절망적으로 이 말을 꺼낸것도 루이자였고,


"당신을 사랑해요." (p.135)


라고 먼저 흐느끼는 것도 루이자다.


하아! 멋지다. 자신의 사랑에게 자신의 사랑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여자라니, 그렇게 결국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차지하다니. 사람은 역시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그게 뭐든 하는것 같다. 물론, 그토록 열과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그건, '그렇게까지' 원한건 아니어서라는 말도 되겠다. 포기하는게 더 쉬웠다는 건, 그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었다는 게 아닐까.




이 단편소설집의 다른 단편인 「국화 냄새」와 「프로이쎈 장교」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가 되시겠다. (그런데 지금 몇시지?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원제가 무려 You Touched Me 인 이 소설은, 218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한 페이지 전체가 그저 예술이라고밖에 표현되질 않는다.



하아- 이 한 페이지를 읽는데 정말 미춰버릴 것 같다. 그녀는 아픈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대려고 했던거다. 그런데 아버지가 거실로 옮겨가고 아버지의 방에 헤이드리언이 누워 있었던 거였다. 그 사실을 그녀가 잠깐 잊었다. 그런데 ...그런데.....헤이드리언은 자신의 이마에 얹어졌던 마틸다의 손길을 잊지 못하고 마틸다는 헤이드리언의 고운 이마가 자꾸 생각난다. 히융.


헤이드리언은 그 손길 뒤로 자꾸 마틸다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지만 마틸다는 자꾸 헤이드리언을 피하기만한다. 하아. 이게 뭔지 너무 알겠어. 그래서 강한 느낌의 터치(결코 강한 터치가 아니다, 강한 느낌의 터치다)는 사람을 피말리게 한다. 잊지는 못하겠지, 하루종일 생각나지, 일상을 쥐고 흔들지. 이게 생활이 되겠는가 말이다. 키보드 치다가 멍때리고 책을 읽다가 멍때리고 지하철 안에서 손잡이를 쥐고 있다가 휘청이고. 아, 이래서 안돼 안돼. 갑자기 다리가 스르르 풀려버리면 대체 어쩌라고. 두 발로 굳건히 버티기 위해서는 이런 망측한(!)일은 일어나서는 안되는거야. 힘들어. 힘들고 싶지 않아. 흑흑.


나는 마틸다가 되어 헤이드리언을 피하다가, 결국 맞닥뜨리고 나서는 '너의 엄마뻘' 이라고 말했다가, 그러나, '내게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라는 헤이드리언의 말앞에 그저 무릎 꿇는다. 응, 아니야, 아니지.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날 네 마음대로 해. 흑흑. 난 어쩌자고 그 때 널 만졌을까. 내가 널 만진건 신의 섭리가 아니었을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널 만져도 될까. 물론, 마틸다는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마틸다는 내가 아니고 나도 마틸다가 아니니까. 킁.



여하튼 로렌스는 최고란 말이다. 난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정말이지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가 최고다. 이 얘기를 스맛폰 메신저로 친구와 나누고 있는데 친구가 로렌스의 장편도 좋다고 하는거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그렇지만 『무지개」와 『아들과 연인』도 출판사가 여러군데다. 나는 흐음, 민음사를 선택해서 읽어보기로 해야겠다. 일단 『아들과 연인』을 읽어봐야지. 뭔가 엄청난 작품일 것 같아서 막 가슴이 뛴다. 이 안에도 삶 속에서 느끼는 비참함과 비굴함과 한숨이 다 들어있겠지, 이 책 속에도 그러나 가슴 떨리는 느낌도 들어있겠지? 아, 너무 기대 되는구나. 흑흑. 내일 질러야지. 꺄울 >.<


로렌스의 단편집은 그토록 어렵게 구매할 가치가 있었다.




회사 빌딩에서 틀어주는 난방때문에 내내 건조한 느낌이었는데 비가 내리니 안심이 된다. 좀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겐 이게 필요했다. 비가, 습기가, 촉촉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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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12-1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몸의 기억의 머리의 기억을 압도 할때가 있어요.
저는 항상 그 사람의 검지 손가락만 잡고 다녔어요. 제가 손에 땀이 많아서 손 잡고 다니긴 좀 그랬거든요.
아...검지 손가락의 기억이여~ ㅎㅎㅎ

몸정이 더 무섭다고 누구누구가 그럽디다....

다락방 2012-12-14 13:40   좋아요 0 | URL
마중물님, 저도 알아요! 몸의 기억이 머리의 기억을 압도하는 그거요. 하아.
아, 저도 무엇이 기억난다고 구체적으로 쓰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남은 시간을 육체의 추억에서 허우적 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꾸욱- 눌러 바깥으로 삐져나오지 못하게 하렵니다. 흑흑.

몸정이 더 무섭다고 제가 그러지 않던가요. ㅎㅎㅎㅎㅎ

레와 2012-12-1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ㅎㅎ

다락방 2012-12-14 16:05   좋아요 0 | URL
팔딱팔딱 거리죠, 심장이? ㅎㅎㅎㅎㅎ

댈러웨이 2012-12-1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로렌스가 저 로렌스가 아닌 줄 알았어요. 다락방님이 읽는 로렌스는 분명히 다른 로렌스일거라고 생각... --; 또 주말이네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2-12-14 16:06   좋아요 0 | URL
이 로렌스가 그 로렌스가 맞습니다, 댈러웨이님! 제가 요렇게 팔딱 거리는 부분만 발췌해서 그렇지 같이 실린 다른 단편 두개는 그렇지 않아요. 씁쓸합니다. 그나저나 댈러웨이님, 세상에 읽을 책이 어떻게 점점 더 많아질까요? 이건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흑흑.

여긴 지금 비가 와서 어두워요.

moonnight 2012-12-1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사람이 미국에서 학위를 땄는데 전공이 로렌스였다고 하더군요. 다락방님이 로렌스에 대해 훨씬 더 훌륭한 논문을 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저런 남녀의 심리를 묘사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작가란 생각 들어요. +_+;

다락방 2012-12-16 17:33   좋아요 0 | URL
ㅎㅎ 논문이라면 전 정말 자신없습니다, 문나잇님. 저는 워낙에 논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고 뭐랄까, 딱 꽂히는 부분에만 집중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논문을 쓴다고 생각하면 글은 딱- 멈춰지고 말거에요. ㅎㅎㅎㅎ

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책을.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책 주문 했습니다. 로렌스의 책을 포함해서요. 마냥 기다려져요. 히히히.

Mephistopheles 2012-12-14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속에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가 현실로 튀어 나온다면.....아 범죄겠군요.

다락방 2012-12-16 17:33   좋아요 0 | URL
그게 그러니까, 음, 범죄일수도 아닐수도 있게 되겠지요. 흠흠.

dreamout 2012-12-1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 딸들 모두.. 혼자 살 생각은 아예 안했군요. ㅋ

다락방 2012-12-16 17:34   좋아요 0 | URL
네, 저 두 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ㅎㅎ

음, 저 남자와 결혼하면 어쩐지 나중엔 좀 불행해질 것 같아요. 만져서 흥분하고 잊지 못하고 하는 것이 평생 가지는 않을테니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