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김서령'은 1950년대에 태어났다. 경북안동 출신인데, 어릴적 살던 집은 사랑채가 따로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가끔만 찾아오는 곳에서 김서령의 어머니는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게다가 거의 하루 온종일을 부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그런 삶을 살았다. 외동딸 하나를 두고 어쩌다 사랑에 찾아드는 남편을 기다리는 삶. 게다가 그 남편은 '작은년'까지 둔다. 남편의 작은년에 대해 속이 상하지만 화를 낼 수도 이혼할 수도 없고, 자기의 언니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는 것만이 고작이다.


김서령의 글은 '글맛이 상당하다'는게 어떤건지를 알게 해주는 글이었다. 어떻게 매꼭지 이렇게 글을 썼을까, 한글을 어떻게 이리 다루나 싶을 만큼 감탄이 나오는 맛깔스러운 글을 써냈다. 김서령은 덤덤하게 자신의 엄마와 고모의 삶을 기술하지만, 읽는 나는 딥빡이 온다. 


고모의 이야기도 그렇다. 고모는 어린시절 결혼해 사랑채에서 남편과 보낸 시간이 20여일 남짓. 사회주의자가 되어 북으로 넘어간 남편을 기다리며, 고모는 시아버지의 삼시세끼를 50년간 차리고 살았다. 56년만에 고려호텔에서 이북에 사는 남편을 만나게 된 고모는, 그 남편이 평양에서 3남 1녀를 두고 살고있다는 걸 알게된다. 자신의 나이 77세까지 남편도 없는 집에서 혼자 시아버지 밥을 챙겨 드렸는데(시아버지는 99세까지 사셨다), 남편은 평양으로 가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던 거다. 고모는 아이도 없었고 남편도 없었다. 그렇게 시아버지 밥만 챙기며 살았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퍽퍽 치게 만드는 삶이 그 안에 있었다.


여자 개개인들의 이야기들로도 그렇지만 여자들 전체의 삶을 봐도 정말이지 한숨밖에 안나온다. 곶감 얘기엔 딥빡이 왔는데, 그러니까 감껍질을 까서 말려두는게 곶감인데, 그 곶감은 남자들에게만 나가고 여자들에게는 감껍질 말린 것만 허락된다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네. 감껍질 까는 것도 여자인데 알맹이 쳐먹는 건 남자들의 몫인거다. 게다가 어쩌다 오는 남편은 손님을 맞이하다가 '국수 먹고 가' 라고 하면, 아내는 잽싸게 일어나서 반죽을 하고 국수를 만들어내야 하는거다. 아내에게 '우리 국수 좀 해줘요'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우리집 국수 먹고가' 이 말에 눈치채고 일어나야 하는거다. 진짜 ..남의 아버지 욕하기 싫지만 정말,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양반자제이지만, 너무 쌍놈이란 욕밖에 나오질 않는다. 물론 남편만 그런건 아니다. 게다가 이 남편은 어쩌다 집에 오는 주제에, 시원한 무를 간식으로 먹고 싶으면 그냥 사랑채 방문만 탁 열면 되었다. 그러면 아내는 아, 무 가져오라는 소리구나 하고 벌떡 일어나 무 썰어다 갖다줘야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남편만 그런건 아니다, 당연히. 이 남편이 어찌 이런 삶을 살게 되었겠나. 다 어른들 보고 배운 탓이지. 며느리에겐 돌아가지 않을 갈치를 혼자 삭삭 먹고서는 '갈치는 얕은 맛이 있어놔서'라고 흠흠 거리는 어른도 있다. 



무는 반찬거리이기도 했지만 간식이었다. 겨울밤 아버지가 사랑채 큰 방문을 탁 열면 엄마는 그게 무 하나를 잘라 오라는 소리인 줄을 자동으로 알아들었다. 아무 말 없이도 그저 사랑방 문이 바람벽을 탁 치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엄마는 어둠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리나케 남쪽 무 구덩이로 달려갔다. (p.118)


고모는 몇 해 전 평양을 다녀왔다. 1949년 솜을 두둑하게 둔 명주 한복을 밤새워 지어 꿀 한 병과 함께 들고 갔던 서대문형무소에서의 면회 이후, 실로 56년만에 고려호텔에서 남편을 재회한 것이다. 고모부는 평양에서 3남 1녀를 두고 살고 있었다. 유교에서 사회주의로 곧장 건너가버린 그 대책 없는 좌익 노인은 평생 자식도 남편도 없이, 시부모를 공양하며 종가를 지켜온 옛 아내를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되레 울지 않은 건 고모였다. (p.152)



"여자는 맵씨(맵시), 솜씨, 말씨, 맘씨의 네 씨를 갖춰야 부모 흉을 사지 않지만 그 네 씨의 근본은 음식 솜씨니라"라는 말과 "무 하나로 상에 올릴 수 있는 반찬 가짓수가 많을수록 맵짠(알뜰하고 솜씨 좋은)계집"이란 훈계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p.182)





배추적은 '깊은 맛'을 가진 음식이었다. 깊은 맛을 설명하려면 할 수 없이 얕은 맛을 들고 나와야 한다. 깊은 맛이란 게 도대체 뭐냐? 물으면 '얕은 맛'과 반대라고 대답하는 게 최선이란 소리다. 얕은 맛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갈치 한 마리를 구워 가운데 토막을 할배 밥상에 올린다. 얼마 후 할배가 상을 물리면 접시에 앙상한 갈치 뼈가 드러난다. 앙상한 가시를 며느리 앞에 내놓기 민망해진 할배는 헛기침을 하며 떠듬떠듬 변명하신다.

"갈치 이놈은 얕은 맛이 있어 놔서 …… 큼큼 ……."

점잖은 어른이 생선 가시를 깨끗이 발라 드신 건 체면을 잊은 행위다. 어쩌면 혀에 대고 쪽쪽 빨았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불경스럽다. 얕은 맛이란 그렇게 혀에서만 단, 달게 먹고 난 후엔 조금 민망해지는 그런 맛이다. 간사해서 사람의 혀를 지배하는 맛이다. 어쩌면 살짝 '죄'의 냄새가 깃든! 식욕이되 성욕과도 흡사하게 허망하고 말초적인 맛이다.

그러나 깊은 맛은 반대다. 먹고 나서 전혀 죄스럽지 않다. 빈접시가 부끄러울 리도 없다. 양념장이 없으면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밍밍한 맛이다. (p.15-16)




양반이란게, 군자란게 도대체 뭘까. 이런 문장도 있었다.



"글을 읽는 자가 어찌 음식을 탐해?"란 이데올로기가 안동엔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이밥을 수북이 퍼놓고 아귀아귀 퍼먹어서는 선비일 수 없었다. 그건 거꾸로 밥을 수북이 퍼담을 만한 재력이 없었기에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합리화일 수도 있다. 삶의 남루함을 군자라는 추상으로 외면하거나 미봉하려 했다는 심증이 가기도 한다. (p.111)



글을 읽는 나는 음식을 탐하는데, 이건 뭔가 어긋나는 것인가보다. 그러보고니 나의 아빠는 내게 종종 그러셨다. '술을 좋아하면서 책읽는 것도 좋아하는게 참 특이하다'고. 둘 중 하나만 좋아하는 건 평범하지만 그 두 개를 함께 좋아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빠는 내가 책읽는 걸 몹시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그래도 자꾸 집에 택배로 책이 도착하니 종국엔 짜증을 내셨다. 지금은 책을 사무실에서 받고 있고 그래서 사무실 책상 한 귀퉁이에 책이 쌓여있다. 나는 가방에 한두권씩 넣어 집으로 나른다. 인생 뭘까?

아무튼 나는 글을 읽으면서 음식을 탐하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도 점심에 매운 육개장을 먹을 생각에 몹시 흥분된다. 날씨도 더운데 매운걸 먹으니 아마 목덜미에 땀이 흐르겠지. 손수건을 가지고 나가야겠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 책,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는 그런 시대를 그리고 그 당시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고모부를 딱히 비난하거나 하는 책은 아니다. 김서령은 덤덤하게 그저 자신이 보았던 것을, 살아왔던 삶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삶이란게 너무 기막혀서 읽는 내가 빡치는거지.


아무튼 다 읽고나니 밤..밤이 먹고 싶어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옷을 갈아입고 편의점에 가 맛밤을 샀다.

지금막 커피랑 맛밤을 한 봉지 먹었다. 히힛.




그러고보니 나는 '글을 읽는 자가 음식을 탐하는'게 아니라, '글을 읽었기 때문에 음식을 탐하는' 사람인게 아닌가.. 나여..





이시대 최고의 명저, '이유경'의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읽으면서 도넛츠를 먹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말한 독자를 내가 알고 있다.

무릇, 읽는 자가 탐하는 것.

그것이 독서의(혹은 삶의) 진리.












이 책의 리뷰대회가 있다고 해서 참여할려고 부랴부랴 읽기 시작했는데 몇 장 안읽고 리뷰대회 참가는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은 이 책의 독서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저 읽을까 말까 엄청 고민하고 있다.












나의 인스타그램의 팔로잉 목록에는 요기니가 많은데, 그 틈을 비집고 '크리스 햄스워스'가 있다. 크리스 햄스워스는 가끔 운동하는 영상을 올려주는데, 나는 요기니들의 요가수련을 보는게 너무 좋고 크리스 햄스워스가 운동 영상을 올려주는게 너무 좋은거다. 며칠전에는 트레이너로 보이는듯한 사람과 함께 운동한 영상이 너무 좋았는데, 넷플릭스에 들어가니 크리스 햄스워스의 새로운 영화 《익스트랙션》이 있더라. 아, 이 영화 홍보차 그런 영상을 올렸는가 보구나. 마침 운동 많이한 사람의 액션 영화를 보고싶기도 했던 터라 줄거리를 보니, '용병'이 '자아성찰'을 하는 내용이라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나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의 액션인데, 무려 자아성찰까지 한다고? 나는 이 영화를 당장 다운받았고, 그렇게 보았는데,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엄청 죽이는 영화였다. 용병이 돈 받고 하는 일이 납치된 아이를 구하는 일이니, 사람을 죽이는 액션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아성찰은 언제 나오나, 이제나저제나 자아성찰 기다렸는데, 구하고자 하는 아이를 위해 이 한 몸 충실히 바치는 그것이 바로 자아성찰인가 보았다. 아이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인도 국민의 절반쯤을 죽이는 것 같은데, 아이를 구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또 거기에 최선을 다하여야 겠지만, 조직폭력배의 그 수많은 부하들과 조직폭력배에 협조하는 인도의 경찰과 군인들까지 싸그리 죽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왜 죽는지는 알고 있을까?


공권력도 이미 조직폭력배와 손잡고 있는 상황이라 용병 하나 잡자고 다리도 봉쇄하고 경찰 군인 다 내보내 공격하는데, 경찰과 군인들은 자기가 공격하는게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여기서 총을 쏘다가 죽어야 하는지, 알까? 시키니까 해야되겠지, 하면서 죽어가는 그 상황에서, 과연 자신의 죽음에 대한 명분이 뭐라고 생각할까?



납치된 아이는 인도 조직폭력배 보스의 아들이다. 인도 내에서 큰 폭력배1팀과 2팀이 서로 맞서는데, 폭력배 보스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납치될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뜻한다. 엄청난 부자라서 커다란 집에서 좋은 자가용 타고 다니지만, 자유롭지 못한것. 게다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고. 가난한 아이들은 어쩔수없이 조직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온갖 협박에 목숨이 똥값이 되고,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보쓰의 눈에 들어야 하며, 그래서 어린나이부터 총을 쥐고 혹은 칼을 쥐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실행한다. 자신의 결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이겠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가난한 사람들은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고 목숨을 구할 가능성은 낮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자신을 구해줄 어른도 없고 공간도 없는데 그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게 무얼까. 그렇게 폭력 조직으로 들어가 어린 나이에 사람을 죽이는 어른으로 자라는데, 거기서는 또 어떻게 빠져나오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도처가 늪이다.



이 영화 포스터 가져오려고 검색하니 맨 위에 있는 평들이 이 영화를 극찬하더라. 나는 별로였다. 크리스 햄스워스 멋있다고 해주는 영화였다. 이 멋진 용병 남자를 보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하는 이 멋진 어른을 보란 말이야! 흠..






그런한편, 친구가 추천해준 영화 《스펜서 컨피덴셜》은 재미있었다. 보면서도 몇 번 웃었는데, 액션인데 피식 웃는 장면 나와서 재미있었다. 특히나 '저기 저 덩치 큰 인간이 고양이를 죽여서 사람을 협박하고 결국 그 사람도 죽였다'는 말에 '고양이를 죽였다고?' 화난 멤버가, 그 고양이 살해범의 엄청나게 고가인 스포츠카에 고양이 얼굴 스크래치를 낼 때에는 너무 좋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는 내게 이 영화 재미있다고 추천해주면서 "여자 친구가 나오는데, 그 여자친구가 되게 독특하고 ... 대단해." 라고 하길래, 뭐가 어떻게 대단한데? 했더니, '그건 보면 알아' 하는게 아닌가.


- 엄청난 글래머야?

- 음..

- 페미야?

- 음..

- 그럼 뭐가 어떻게 대단하다는거야!

- ㅋㅋ 그냥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대화를 한 게 아닌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대단해. 대단하다는 말에 걸맞지 않게 사실 여자친구 등장씬은 얼마 안되긴 하지만, 성격강한 연상의 여자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친구가 그래서 그랬구나,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익스트랙션》보다 재미있었고, 이건 2편도 나왔으면 좋겠다. 암튼 여자친구는 연상이 짱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새겨들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운동과 요가에 대한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제 한 요가영상을 살짝 추천하련다. ㅋㅋ 이건 요가가 아니라 맨몸 웨이트라고 해야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허벅지 안쪽 근육통이 상당한데, 1시간짜리 영상이고 본격 운동은 45분 정도이다. 뒤에 15분은 명상. 처음 시작부터 빡세게 시작하기 때문에 18분에 영상을 멈추고 좀 쉬어야했다. 내가 보통 요가에 대한건 네이버에 쓰기는 하지만, 이건, 보통 맨몸운동, 홈트 하려는 사람들도 해보면 좋을것 같아서 ㅋㅋㅋ 플랭크, 사이드플랭크의 자세가 어떤건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기꺼이 해볼만하다. 엄청난 근육운동이다. 평소 운동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다 따라하기 힘들것이고, 운동 했던 사람들이라도 다음날 근육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때요, 도전의식 느껴지지 않나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난 연휴중에는 제부 생일이 있어서 제부네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 식구들이야 평소 생일선물을 통장에 현금으로 보내는터라, 이번에도 선물을 보냈는데,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면서 빈손으로 가는건 실례잖아, 이번엔 무얼사갈까, 하다가, '제부가 꽃다발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꽃다발을 예약해 주문해 두었다. 꽃다발을 찾아오면서 제부가 좋아하는 '크리스피크림'도넛도 샀다. 제부네 집에 도착해 생일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꽃다발 받아본 적 있냐고 물으니 각종 행사에서 받아본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 했다. 좀 뒤늦게 꽃다발을 본 여동생은 '그거 나 주려고 한거야?' 했더니, 제부는 '아니야, 내꺼야, 나 주는거야' 했다. 나는 응, 제부 주려고 산거야, 너 아니야. 라고 말했다.






어제는 동네 스벅으로 나가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스벅1도 사람이 바글바글 스벅2도 바글바글 스벅3도 바글바글했다. 스벅 카드를 가지고 있는터라 스벅을 가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나는 우리동네 지하철역에 얼마전에 <투썸플레이스>가 생겼다는 걸 기억해냈다. 옳지, 거길 가보자! 마침 내게는 씨제이포인트가 좀 있다! 그렇게 들렀는데, 와, 분위기부터 너무 좋았다. 천장이 높았고 빈 자리가 많이 보였다. 포인트를 이용해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와 앉아 책을 읽는데, 간혹 빵 데우는 냄새가 날 때면, 와, '나 행복해'라는 느낌이 절로 들어버리는 것이다. 앞으로는 여길 와야지.






열심히 먹고, 마시고, 읽고, 쓰고, 운동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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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0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 햄스워스 는 미국에서는 완벽한 남자로 추앙(?)받는다는 말을 듣고 사실 좀 의아. 금발에 잘 생긴 체격 좋은 백인 남자. 부인과 연애해 결혼해 아이 셋 두고 가정적이기까지 한 남자. 게다가 유머까지 겸비했다고.. 워낙 근육질을 안 좋아해서 공감은 안 갔지만, 뭐 그런가? 싶은. 저 영화의 용병남자로는 적합해보이네요 ㅎ

저도 이제 담달부터는 코로나 대응수준도 좀 떨어진다고 해서 요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있어요. 워낙 오래 쉬어서 몸이 접혀질 지 의문이지만 (사실 살이 넘 쪄서 앉아 있기도 힘든데) 그래도 요가는 좋아 하면서 해보려구요.

다락방 2020-05-06 14:33   좋아요 0 | URL
ㅋㅋ저는 크리스 햄스워스가 잘생겼다는 생각은 1도 안하는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 그런데 미국에서 인기있다는 말에는 왜인지 알것 같네요. 용병 남자로는 매우 적합했고 그래서 보고 싶었는데 성찰은..잘 모르겠고 영웅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캐릭터를 본인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5월 요가도 쉬려고요. 요가센터 수업 사진 보니까 다들 마스크 착용하고 수업하더라고요. 마스크 착용하고 일상생활하는 것도 너무 싫은데 요가까지 그러고 해야하나 싶어서 생각날 때마다 집에서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집에서는 잘 안되기는 해요. 하기싫고.. 센터 가야 비로소 일주일에 단 며칠만이라도 한시간씩 운동하긴 하는데..집에서는 잘 안하게 되네요. 역시 운동은 의지의 문제인가 싶고요 ㅠㅠ 집에서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던데..아무튼 비연님 화이팅입니다!!

psyche 2020-05-0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좋아하면서 책 읽는 사람 여기 또 있는데요? ㅎㅎ 지금은 예전처럼 많이 못 마시지만 젊을 때는 유명한 주당이었는데 술만큼 책도 많이 읽었다죠. 저희 친정 아버지께서도 한 술 하시는데 책도 많이 읽으세요. 쓰다보니 술과 책이 잘 어울리는 듯? ㅎㅎ

다락방 2020-05-06 14:34   좋아요 0 | URL
저도 생각해보면 술과 책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혼자서 술도 마시고 책도 읽고 .. 뭔가 너무 완벽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아닌가요? 홀짝홀짝 거리면서 책 읽는거 말예요. 크- 너무 완벽하네요. 하하하하하하.

우리 건강을 유지합시다, 프시케님. 그래야 술도 계속 마시고 책도 계속 읽지요!

보슬비 2020-05-06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맛밤 좋아해서, 스벅에서 맛밤 사먹어봤어요. 양이 적어서 몰래 몰래 저 혼자 먹었네요. ㅋㅋㅋㅋㅋ
사실 맛밤 좋아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어서 다행인지도.

다락방 2020-05-07 08:35   좋아요 0 | URL
오, 스벅에서도 맛밤을 팔아요? 저는 편의점에 사러갔는데 마침 2+1 행사더라고요. 그래서 세 개 사서 아버지 하나 드시라고 드리고 나머지 제가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
 















엄마는 각종 반찬들과 또 정육점의 고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놀다 오시겠다고 시장에 나가셨다. (응?) 

나는 좀전에 나가서 내일 먹을 김밥 재료를 사왔다. 김밥 싸야지. 엄마는 '너 또 스트레스 받으려고 그래, 그냥 사먹어' 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런 엄마에게 '여자가 한 번 말했으면 지켜야지!, 한다면 하는거야!' 하고는 기어코 나가서 김밥 재료를 사온 것이다. 김밥 재료를 사고, 무슨 기획전이라는 저렴한 와인도 사고, 연휴중에 하루는 이모가 놀러올 거라 이모가 좋아하는 맥주도 좀 샀고, 그리고 빵도 좀 사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손을 씻고 커피를 내리고 빵을 썰어두고서는 여성성의 신화 리뷰를 썼다. 정말이지, 좋은 시간이다. 한적한 오후, 빵과 커피, 그리고 책과 글쓰기... 정말이지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삶은 순간순간 반짝이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온전히 즐기는 삶. 그렇다면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속에서도 반드시 반짝이는 순간을 캐치할 수 있게 될테니까. 거창한 게 아니어도, 또 사람이 주는 게 아니라도,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슴 가득 충만한 그런 행복한 순간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오후, 빵, 커피, 책.... 진짜 샤랄라 해피니스 아닌가. 




여성주의책 같이읽기를 시작하고 1년을 넘기면서 나는 매달 완독했다. 멤버중 유일하게 나만, 매달 해당도서를 완독하는 열정(!)과 성실성을 보였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 모임 자체를 주선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책임감은 내가 게으르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지가 하자고 해놓고 지가 못읽어'라는 말 같은 거 내가 너무 듣기 싫어하는 말이고, 또한 '내가 하자고 했는데 내가 못읽네' 하고 나 스스로에게 쪽팔리는 걸 내 스스로 견딜 수 없어하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이렇게 성실하게 매달 책읽기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4월도서를 말일을 하루 앞두고도 다 읽지 못해 초조해서 퇴근후에 까페에 들러 읽기 시작했다. 배고플까봐 샌드위치까지 먹고 온거였는데,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아아, 멤버중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있다가 배고프다고 육개장을 먹으러 간다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멤버들중에 나를 포함 세 명이 이 책을 동시에 읽는 중이었다. 한 명은 오므라이스를 먹은 뒤였고 한 명은 배가 고픈채였고 한 명은 샌드위치를 먹은 뒤였는데, 배고픈 멤버가 육개장을 먹으러 가서는 아니, 육개장의 사진을 보내는 게 아닌가.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는 육개장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고파졌다. 샌드위치, 그거 양도 얼마 안됐어. 그렇지만 나는 샌드위치로 오늘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건데 갑자기 밥을 먹으면 어떡해. 게다가 먹을 거면 일찍 먹었어야지,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밥을 먹겠다는 거야? 안돼 참아, 계속 책을 읽어라, 나여!! 하다가 가방 싸들고 육개장 집으로 향했고, 주문하고 음식을 받은 시간은 20:42 ...



내가 주문한 건 매운 육개장이었는데 진짜 너무 맛있었다. 평소에 육개장을 좋아하지 않고 엄마가 만들어도 나는 육개장을 잘 먹지 않는데, 아니, 어젯밤의 그 육개장 왜이렇게 맛있어. 게다가 다 먹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뱃속이 편안하고 따뜻하다. 너무 늦게 먹었지만 뭐랄까, '아, 되게 잘먹었다, 먹기를 잘했다'는 느낌이 드는거다. 내 속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 느낌적 느낌... 그래서 나는 힘을 내어 책을 계속 읽기로 한다. 4월 말일이 되기 전에 이 책을 반드시 다 읽겠다! 그렇게 나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책을 들고 침대로 향했다. 침대...는 무엇인가요? 침대에만 들어가면 왜 졸려요? 나는 졸음이 쏟아지는 걸 참아가며 읽고 또 읽고 넘기고 또 넘기고, 그렇게 새벽 한시를 넘기면서 이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4월 30일 01:00... 되시겠다. 내친 김에 리뷰를 쓰려고 했지만 진짜 너무 졸렸다. 평소에 내가 잘 시간을 넘겼으므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 나는 이 책을 완독하고 잠이 든다. 딥슬립...은 아니었지만 어쨋든 잤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다른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들과 마찬가지로 읽기를 잘한 책이었다. 해답이 교육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너무 짜릿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 공부해야해, 여자들아, 공부하자! 배워! 공부해! 교육이다! 막 이런 마음이 되었고, 해답이 교육이라고 말해준 베티 프리단에게 너무 고마운거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은 사실 내 개인적으로 이 결론에 앞선, <13 박탈당한 자아> 꼭지였다. 제목은 박탈당한 자아이긴 하지만, 우월감을 가진 사람에 대해 계속 기술한다. 이 꼭지에서 가장 많이 가져온 연구 결과는 1930년대 후반의 '매슬로 교수'의 것이었다. 섹슈얼리티와 '우월감', '자아 존중', '자아 단계'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인데,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일전에 남자친구 때문에 괴로워하는 회사 동료에게 '니 삶의 우선순위와 유일한 가치가 남자친구이기 때문에 그렇게나 괴로운거다, 니 삶의 목표를 여러갈래로 찢어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고 사는게 단 하나라면, 그 하나가 무너졌을 때 나 역시 무너지지 않겠는가. 나는 동료에게 남자친구 말고도 널 살게할, 너를 기쁘게 해줄 다른 것들을 더 찾아보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남자친구만 보며 살지 말라고. 이건 무슨 가치이든 마찬가지다. 단 하나라면, 그 하나 때문에 내 삶이 무너지기가 너무 쉬운 거다.  이 책에는 섹스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자신의 가치 혹은 삶의 기쁨이 섹스인 사람이라면, 그 섹스에 더 열중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게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섹스에 만족할 확률은 적다는 거다. 그리고 섹스에 만족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또 괴로워지기 시작하는거다.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매슬로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높은 여성이 성적 만족감을 더 크게 느낀다는 걸 밝혀냈다. 뭐 이건 그냥 아는거라서 굳이 연구까지 해야했었나 싶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당연한 거다. 이를테면 다시 섹스얘기로 돌아가서, 남자들 중에는 특히 유독 더 섹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섹스 영상을 뒤져보려고 하고 더 섹스를 잘하고 싶고 더 섹스를 많이 하고 싶고, 그래서 많은 여성과 섹스한 게 자랑이고.... 그러니까 섹스섹스 하다가 섹스로 망하게 되는거다.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하게 되고, 그렇게 이섹스 저섹스 섹스천국 섹스만세 하노라면, 내 여자친구와의 섹스에서 만족감을 느낄 확률은 매우 적어지는 거다.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자꾸 요구하게 되기나 하고. 게다가 분명 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섹스하고 나면 왜이렇게 공허할까...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이다. 


반대로 섹스에 미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게 좋고, 하고 싶고, 하면 즐겁지만, 하지 않는 매순간에 섹스섹스 머릿속이 온통 섹스로 가득해~ 이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 돈도 벌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타인과의 관계도 유지해야 하고. 세상엔 내가 에너지를 쏟을 게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해 자기계발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삶을 이런 형태로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같은 다른 많은 생각들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귀에 섹스.. 이렇게는 안되는거다. 섹스는 삶에 있어서 부차적인 것이 되는거지. 매슬로 교수의 연구에서는, 그렇게 섹스를 부차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섹스에 만족감을 얻고 오르가슴을 느낄 확률이 매우 크다고 말하는 거다. 아니,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내 경험을 놓고 봐도 섹스에 안미친 남자가 섹스를 가장 잘했다.



무엇보다 '우월감이 강한 여성' 에 대한 매슬로 교수의 모든 연구결과들이 하나를 가리켰다. 뭐냐, 나다. 나는 읽다가 '뭐야, 내 얘기하는건가' 했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까페에서 읽다가 다이어리에 메모했다. '내 얘기 하는 줄?' 이렇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몇 구절 가져와보겠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매슬로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자아실현에 성공한 사람들이 항상 삶에 사명감을 느끼고 헌신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 사명감은 거대한 세계 속에서 그들을 살아가게 하며, 매일매일 살아가는 매우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개인적 느낌과 선입견을 넘어선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삶에서 어떤 임무를 가지고 있고, 성취해야 할 과업이 있으며, 외부에는 자신들의 에너지를 대부분 쏟는 어떤 문제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업들은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이지 않으며 일반적인 인류의 이익이나 일반적인 국가의 이익에 관심을 가진다. 보통 기본적인 문제와 영속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가능한 한 광범위한 참도의 틀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넒고 작지 않으며, 일반적이고 지엽적이지 않으며, 순강적이기보다는 지속적인 가치관의 틀 안에서 일한다. (p.555)



매슬로는 더 큰 세상에 살며 자아실현을 달성하는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그날그날의 삶을 즐기는 것과, 그들만이 유일한 세계인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날 수 있는 사소한 일에 결코 지루해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런 경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진부한 경험이 된다 해도 경외, 즐거움, 경이, 심지어 황홀감을 가지고 새롭고 소박하게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또한 ˝성적 쾌락은 자아를 실현하려는 사람의 가장 격렬하고 황홀한 완벽함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는 강한 인상을 준다.˝고 보고했다. 더욱 넓은 세계에서 개인의 능력을 성취하는 것이 성적 환희의 새로운 전망마저 열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섹스나 사랑도 인생을 추동시키는 힘은 아니다.(p.556)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은 관계를 맺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성적 만족도도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성관계는 에전보다 더 나아졌으며 항상 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밝혀지는 매우 평범한 보고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자신이 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 깊고 심오한 관계를 맺고, 더 포용하고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더 완벽하게 식별할 수 있고, 자신의 경계를 더 많이 초월하며,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p.557)




자아실현에 힘쓰는 사람들,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은 고차원적인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매슬로 교수는 이런 사람들은 섹슈얼리티의 부재를 쉽게 인정한다고 한다. 그래,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거다. '고차원적인 욕구 수준에서 산다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의 좌절과 만족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받아들이며,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쉽게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들이 기쁠 때 진심으로 즐기도록 한다. (p.556)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이 무엇보다 삶에 있어서 습관적으로 어떤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함께 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삶에 있어서 습관적으로 어떤 임무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들. 4월이 하루 남았다고 다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끝마치려는 사람들. 아, 정말 내가 성공했지만, 내가 멋지다. 뭐랄까, 뭐가 돼도 될 사람이야, 정말. 이런 습관적임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사실 내게도 좋다. 매일 책을 읽는 것도 그렇고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어제 퇴근 후에 까페에 들러 책을 읽고 있다고 했더니 여동생은 '언니 피곤하지 않아? 여태 회사에서 일했잖아' 라고 물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이렇게 책 읽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부러 내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돼' 라고 말했다. 특히나 일이 고되고 지칠수록 책읽기를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도 많았고, 그래서 평소보다 늦게 끝났다. 이럴 때 나는 꼭 부러 책을 읽는 시간을 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읽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메모하고 이렇게 글로 써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은 관계 유지도 잘하고 또 사랑도 더 단단해진다고 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내가 그랬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오래 사랑했다고 애정이 식는게 아니라, '매일매일 어제보다 더 사랑해' 라는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상대를 사랑하는 나 자신에 대한 만족도도 함께 커져간다. 사랑은, 그러니까 내가 하는 사랑은, 상대와 나에게 동시에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슬로 교수가 연구한 결과에 나오는 그 '우월감을 지닌 여성'에 다름아닌 것이다.



아... 멋져. 매일매일 나는 스스로 내가 너무 멋져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매슬로 교수는 사람들 모아놓고 연구를 한건데, 그냥 나만 관찰해서 써도 충분히 연구결과가 나온다. 우월감을 지닌 여성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태도로 사는지 다 알 수 있어. 




어제 엄마는 아빠와 동네 지인분과 함께 쑥과 미나리를 캐러 다녀오셨다. 집에 미나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나는 엄마에게 '그렇다면 미나리 삼겹살을 먹자!' 했고, 그래서 엄마는 돼지고기를 사러 가신 거다. 으하하하하하하핫. 그렇다. 우월감을 가진 여성은 매순간 삶의 목표를 하나씩 정해두고 그걸 클리어하면서 살아간다. 오늘 나의 목표는 미나리삼겹살이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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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30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처님 오신 날 이게 뭐예요! 섹스로 가득한 포스팅이라니! ㅋㅋㅋㅋㅋ 섹즉시공입니까? ㅋㅋㅋㅋ ‘석적 만족감’은 또 뭐예요. ㅋㅋㅋㅋㅋ 김밥 부엌초토화 없이 성공하시길!

다락방 2020-04-30 17:31   좋아요 1 | URL
저 석적 만족감 발견하고 고쳤는데, 아니 고치기 전에 댓글 다셨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제뽕에 차서 글을 다다다닥 써가지고 오타가 아주 난리가 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섹스로 가득한 페이퍼로 보이시다니... 잠자냥 님 ... 사람은 보고 싶은 걸 보게 되는겁니다. 네? 아시겠어요?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내일 김밥 안에 들어갈 계란 부칠 생각에 벌써 스트레스 오네요. 크게 부칠까 잘게 부쳐서 썰어서 여러개 넣을까... 세상은 진짜 온통 고민투성이에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유부만두 2020-04-30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덩달아 짝짝짝 치고 싶어요!

다락방 2020-04-30 17:32   좋아요 0 | URL
어느 부분에서 박수일까요. 설마...미나리 삼겹살? ㅋㅋㅋㅋㅋ

2020-04-30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30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0-04-30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다락방님의 이런 면이 좋아요. ㅋㅋ 저도 사실 며칠 전 제 자신이 너무 좋았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미나리 삼겹살이 뭐예요? 어떻게 해먹는 거죠?

다락방 2020-04-30 18:03   좋아요 0 | URL
그냥 삼겹살이랑 미나리 같이 먹는거에요. 미나리를 삼겹살과 같이 구워서 먹어도 되고요 상추에 미나리 넣고 구운 삼겹살 넣어 싸먹어도 돼요. 맛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우리 자신을 계속 열심히 좋아하며 삽시다, 블랑카님. 우리가 우리를 좋아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그게 맞지요.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0-04-3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리 삼겹살 사진 찾는 사람,
저 하나 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다락방님.
한다면 하는 사람, 역시 멋져요!!!

다락방 2020-04-30 18:04   좋아요 0 | URL
미나리 삼겹살은... 미나리랑 삼겹살을 같이 먹는 걸 말합니다. 아주 단순해요. 미나리랑 삼겹살이랑 잘 맞는 것 같아요. 미나리에 쌈싸먹어도 되고 미나리 같이 구워먹어도 되고요. 아 설레어. ㅋㅋㅋㅋㅋ

그치요? 한다면 하는 저는 진짜 멋진 사람이에요. 저는 오늘 제 멋짐에 실컷 취하고 있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블랙겟타 2020-04-30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다면 하는 사람, 역시 멋져요!!!
동의하는 사람 여기 또 있습니다.
이 달 안으로 다 읽으신거 수고하셨어요!
...
(그러고 보니 어찌 내가 읽자고 한거같은데....ㅠㅠ)

다락방 2020-05-04 08:09   좋아요 1 | URL
겟타님의 진도는 어디까지 나가있나요?
4월도서 간신히 읽기는 했는데, 저는 5월 도서 시작이 너무 두려워요. 흑인 페미니즘 사상..어쩐지 책장이 잘 안넘어갈 것 같지 않나요? ㅠㅠ 우리가 만날 때에는 모두가 다 이 책을 완독한 후였으면 좋겠어요. 엉엉 ㅠㅠ

아무튼 남은 독서 화이팅입니다, 겟타님!

블랙겟타 2020-05-11 09:21   좋아요 0 | URL
드디어(?) 읽어냈습니다. 4월도서는요. 이제 바로 5월도서 넘어갑니다..
네. 5월엔 반드시 다 읽으려구요.
다락방님도 파이팅!

다락방 2020-05-11 09:58   좋아요 1 | URL
겟타님과 저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 가장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이겠네요. 언제 시작할거에요? 저는 일단 당장은 아니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 겟타님 시작하는거 보고 시작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05-11 15:3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당장은 아니래서... 저는 당장 시작합니다~ ٩(ˊᗜˋ*)و
조금이라도 먼저시작해야지 다락방님이 놀라실 것 같아서요.
곧 무서운 속도로 쫒아오실거라고 보지만요 ㅋㅋ

syo 2020-04-3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해도 되는 사람 여기 하나 또 있네!
끝까지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사람 ㅎㅎ

다락방 2020-05-04 08:10   좋아요 0 | URL
너무 신기해요. 저는 추진력도 대단하고 머릿속에 다 계획있고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왜 다이어트는 1도 못할까요? 아...이해할 수 없어요.. ㅠㅠ 뭘해도 다 되는 사람인데 다이어트는 안되는 1인.. 휴..

비연 2020-05-01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보다 미나리삼겹살에 꽂힌 1인.. 여기... (휘릭)

다락방 2020-05-04 08:10   좋아요 0 | URL
미나리 삼겹살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ㅎㅎ 미나리 너무 좋고 삼겹살 좋고 소주도 좋고. 울라울라~ ㅋㅋㅋㅋㅋ

수이 2020-05-01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이미 대강 알기에 미나리 삼겹살 참 신선하구나! 에 꽂힌 1인 여기두......

다락방 2020-05-04 08:11   좋아요 0 | URL
미나리 삼겹살은 엄청 많이들 먹던데 제 서재에 오신 분들은 미나리 삼겹살을 안드셔본 분이 많네요! 어찌된 영문인지... ㅋㅋㅋㅋㅋ 맛있게 먹었습니다!

보슬비 2020-05-0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리 삼겹살에 낚여, 즐겁게 입질했습니다. ㅎㅎ 은근 삼겹살과 미나리 조합도 꿀조힙죠~^^

다락방 2020-05-04 08:11   좋아요 0 | URL
삼겹살과 미나리 너무 좋죠! 고기랑 야채는 진짜 진리입니다. ㅋㅋㅋㅋㅋ 좋은 술안주 였어요. (응?) ㅋㅋㅋㅋㅋ
 
여성성의 신화 -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정희진 / 갈라파고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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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 태어난 '베티 프리단'은 이 책을 1963년에 출간했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집에 있으면서 청소와 요리를 하고 남편과 아이를 키우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여자의 역할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그랬고 대중매체에서도 그랬다. 여자들은 대학을 가지 않거나 대학에 다니다가도 중퇴하고 결혼을 했다. 그러는 것이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다. 그렇게 결혼을 해 집안일을 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분명 이것이 여성이 해야할 일이며 이것이 여성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바라고 하는데도 어딘가 공허했다. 분명 누가 봐도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데, 하라는대로 하고 있는데, 살라는대로 살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공허할까. 왜 이렇게 다 아플까. 그런데 어디가 아픈지 병원에서는 왜 진단내릴 수 없어하는걸까. 그리고 왜 그렇게 아픈 가정주부가 나 뿐만이 아닌건가. 


베티 프리단이 대단한 건 이런 시기를 살면서 '나도 아프다'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게 왜그럴까' 그리고 이걸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깊이 생각했다는 거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현상에 대해 이상하다는 의문을 갖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고 또 문제해결방법까지 제시한 게 베티 프리단이 이 책으로 한 일이다. 누구보다 앞서 나아갔고 누구보다 생각이 깊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부인할 수가 없다. 모두가 살라는대로 살면서 지치고 공허해할 때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다니, 그 하나 만으로도 베티 프리단의 업적은 기릴만하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써낸 베티 프리단의 이 책은 그래서 매우 '세다'. 만약 페미니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관심도 없던 '기혼 유자녀 고학력자 전업주부 여성'이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한동안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후려쳐지는 걸 활자로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뭔가 비어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짚어내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베티 프리단은 가사 노동 자체는 그렇게 머리써서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거, 누구든 시켜도 할 수 있어, 남자들도 잘 할 수 있지. 그런데 머리 좋고 지적인 여자들이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아무 발전 없는 일을 쳇바퀴 돌리듯 하고 있으니 안아프고 베기겠니? 오늘 하는 일 내일 또 하고, 그러면서 하루를 보내고 일년을 보내야 하니 새로운 청소도구를 쓰고 새로운 청소방법을 써보고..그런다고 그 일이 해결되니? 그렇다면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아이를 낳아 육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겠지. 그런데, 아이는 언제까지 낳을 수 있나. 그것 역시 언젠가는 그만 낳아야 해. 매해 아이를 낳을 수도 없잖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다 자라면, 스무살전후로 결혼한 여성들이 30,40대가 되었을 때, 그 때 그 시간은 어떻게 보낼 것이야?



베티 프리단은 지적인 성인 여성들을 이렇게 집에 가둬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그건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지만,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얘기한다. 아이들에게만 온 열과 성의를 다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어하고 아이들에게 역할 대행을 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은 성장할 수 없고 각종 질환들을 끌어안게 된다고. 그러면서 동성애 까지도 이런 식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이게 단순히 여성들을 위한 문제가 아니라니까, 라는 의도로 강하게 말하려고 했던 까닭이겠지만, 이런 주장들은 반발을 살 위험이 너무 높아 보인다. 어떤 의도로 쓴 글인지 알겠지만, 그렇다해도 '아이들이 잘못되는 건 다 엄마 탓이라니까!' 라고 읽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 잘못되는 건 다 엄마탓이야, 그건 그런데 엄마를 그렇게 만든 세상탓이지. 이렇게 주장하려는 바이긴 하지만, 그래도 왜그렇게 죄다 엄마탓을 하는거지? 라고, 어떤 의도인줄 알면서도 거부반응이 들었다. 물론 알고있다. 조곤조곤 살살 말했다면 아마 귀기울여 듣는 사람도 현저히 적었을 것일 뿐더러, 들었어도 새기질 않았겠지. 거칠게, 세게 말해야만 들어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나 세게 얘기한 것일테다.



결론은 놀랍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교육'이었다. 여성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문제들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음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교육이 답이라고 말하는 베티 프리단의 주장을 읽노라니 너무 짜릿했다.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 같았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 자신을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혼한다고 교육을 멈추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교육은 어떻게든 답이 된다고. 배우기를 멈추지 말라는거다. 그건 동네에서 문화센터에 가 교양을 쌓는 그런 교육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남자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바로 그 교육, 똑같은 교육이었다. 언어, 화학, 수학, 물리 등에 대한 교육들. 그런 교육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마치라고 한다. 어떻게든 마치라고. 그러면 설사 결혼하고 일에서 멀어졌어도, 나중에 아이들이 다 자란 뒤에도 세상에 나가서 뭘 어떻게 할지 감이라도 잡을 수 있다는 거다. 자, 어디가서 무얼 해볼까,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그녀가 인터뷰한 전업주부들 중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병'으로부터 스스로 빠져나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배운다던가 학교를 다시 다닌다던가. 뭔가를 배웠던 사람들은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교육 자체로부터 멀어졌던 사람들은 아이들이 자라고 이제 자신에게 쏟을 시간이 왔을 때 조차, 어디에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또한, 교육을 받고 거기에 머리를 쓰고 그걸 이용해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 이 모든 것이 여성 개인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 여성이 속한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서도 더 나은 방법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도 높은 여성이 아내인 것이 또 엄마인 것이 더 낫다는 것. 그 가족들은 가족 내에서 더 잘 지낼 수 있었고 가사 노동에 들어가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 게다가 아주 흥미롭게 읽은 부분인데, 이렇게 자기 만족이 높은 여성이 섹스에서도 더 즐길 수 있었다.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섹스로 즐거움을 찾으려 하거나 아이에 몰두하거나 하게 되는데, 내가 일을 하고 나의 발전을 위해 힘을 쏟는 사람들에게는 섹스가 부수적인 것이 되고, 하면 즐겁게 하지만 굳이 안한다고 스스로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뭐, 너무 당연한 말이다.



미국의 전업주부 여성들이 모두들 아프다고 할 때 그 현상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베티 프리단은, 이 책이 날개 돋힌 듯 팔린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단체를 조직하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거다. 그러나, 아, 베티 프리단은, 래디컬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남성을 끌어안지 않으려는 래디컬들을 향해 비난한다. 베티 프리단은 반드시 남성과 함께 가야 한다고 하는데, 읽으면서 '베티 프리단, 남자 디게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이 책은 지금 읽기에는, 그리고 지금의 젊은 페미니스트나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읽기에는 그렇게 획기적은 책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에 이 책이 얼마나 놀라웠을지는, 이 책 속에 숱한 인터뷰이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베티 프리단이 말하는 여성의 교육, 그리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있어서는 나 역시 마음 깊이 동의하는 바다. 전업주부로 살며 아프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여자가 어떤 식의 삶의 형태를 선택하든, 단단하게 설 수 있기 위해서 교육을 받고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는 거다. 내가 결혼해 남편과 함께 살더라도, 그리고 그 남편이 운좋게 돈을 마구 벌어온다고 해도(그레이의 오십가지 그림자 속 그레이처럼), 거기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내가 교육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은, 그 축이 무너졌을 때 나 역시 쏟아져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기대야 하는 게 나 자신이라면, 내 축을 내가 잘 세우는 한 내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교육에 대한 부분이 너무 짜릿했다. 여성들이 더 많이, 더 열심히 배움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베티 프리단의 주장은 그런 지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역시나 좋은 독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인의 아들들이 성취감이 없고, 개인에 대한 가치관을 상실하고, 독자적인 행동이 결핍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딸들이나 이전 세대에 그 딸들의 어머니들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 건 비극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어떤 문화가 여자가 인간적으로 성숙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여자가 미숙하다고 해서 손실로 생각하거나 그것이 노이로제와 갈등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모욕적인 것은 우리가 국가적으로 여성들이 그들의 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고 나서야, 여성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우리 문화의 정의가 진정으로 반영되어 있다. - P366

원시사회에서 부족들이 처녀를 신에게 바치는 것처럼, 우리는 소녀들을 여성성의 신화에 희생시키고, 우리나라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되도록 성적 상술을 통해 그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손질한다. - P412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쾌락이나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성장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라면, 편안하면서 공허하고 목적 없는 나날들은 정말로 이름 없는 테러의 원인이 된다. - P542

인류를 발전시키는 욕구, 즉 지식에 대한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는 다른 동물들의 식욕과 성욕 그리고 생존 욕구만큼이나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이다. - P543

매슬로는 더 큰 세상에 살며 자아실현을 달성하는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그날그날의 삶을 즐기는 것과, 그들만이 유일한 세계인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날 수 있는 사소한 일에 결코 지루해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런 경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진부한 경험이 된다 해도 경외, 즐거움, 경이, 심지어 황홀감을 가지고 새롭고 소박하게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또한 "성적 쾌락은 자아를 실현하려는 사람의 가장 격렬하고 황홀한 완벽함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는 강한 인상을 준다."고 보고했다. 더욱 넓은 세계에서 개인의 능력을 성취하는 것이 성적 환희의 새로운 전망마저 열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섹스나 사랑도 인생을 추동시키는 힘은 아니다. - P556

(매슬로는)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은 관계를 맺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성적 만족도도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성관계는 에전보다 더 나아졌으며 항상 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밝혀지는 매우 평범한 보고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자신이 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 깊고 심오한 관계를 맺고, 더 포용하고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더 완벽하게 식별할 수 있고, 자신의 경계를 더 많이 초월하며,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 P557

오르가슴을 온전히 즐기는 여성들은 특히 자아실현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하는 여성이며, 집 밖의 세상일에 적극 참여하도록 교육 받은 여성이었다. - P563

미국에서 여성의 정체성의 위기가 시작된 때는 개척이 끝나고 남성이 집 밖에서 산업사회와 전문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시작할 때였다. - P574

잠재력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존재한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자신들의 충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노동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정체성은 남편이나 자녀와 같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는 발견할 수 없다. 여성의 정체성을 가사노동이라는 단조로운 틀에 박힌 일에서 찾을 수 없다. 모든 시대의 사상가들이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의 삶을 몰수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직시할 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때때로 이러한 자각은 죽음의 순간에만 온다. 수동적 순응과 무의미한 일에 의한 자아의 죽음. 여성성의 신화는 사실 여성들에게 그런 살아있는 죽음을 요구한다. - P575

그 함정의 열쇠는 물론 교육이다.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허락하는 것이 회의적이고 불필요하며 위험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이야말로 미국 여성들을 여성성의 신화라는 끔찍한 위험에서 구했으며, 앞으로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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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어야 할 200여 페이지가 남아있고 그러나 4월은 단 하루 남았기에 퇴근 후 까페에 들러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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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4-29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제대로 다 못 읽었어요. 그런데 다 읽었어요. 크크크크.

다락방 2020-04-30 15:31   좋아요 0 | URL
멋져요. 게다가 리뷰까지 쓰셨으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5월에도 만나요! >.<
 















업무적으로도 그리고 업무 외적인 것으로도 스트레스가 많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제부터 한숨을 깊이쉬고 있으며 또 자주 쉬고 있다. 내가 내 가슴을 토닥토닥여주며 답답한 마음 달래고자 하지만 안된다. 커피향이라도 실컷 맡자 싶어 커피를 한사발 내렸지만, 이 향으로도 풀어지질 않아. 어떡해야 할까, 내가 무언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것이라면 내 마음을 바꿔야 할텐데, 어떻게해야 이 스트레스가 풀어질까. 좋은 것들을 떠올려봐도 대체가 안되는데. 그러다 내게는 글쓰기가 있다는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그래, 글을 쓰자. 글을 써보자. 그렇게 이번달 같이읽기 도서인 여성성의 신화를 끌고 온다.



어제 비연 님이 이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쓰시면서 '마거릿 미드'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당시에 누구보다 빨리 깨친 사람이었고 여성을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앞서 나간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의 한계에 대한 부분. 그것을 베티 프리단이 지적한 것에 대해 어떤 씁쓸한 마음을 표현한 글이었다. 그 마음이 무언지 너무 잘 알겠는데, 내가 잘 알겠는 까닭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옳기만 할수도 없고 완벽할 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거릿 미드가 자신의 생각을 펼쳐가는데 있어서는 그 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이 있어야 했다. 그건 이런게 잘못됐잖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그러니까 무에서 갑자기 유를 창조하는 것은 아예 없는 일은 아니어도 드물다. 그러나 있던 것에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우리는 다들 그렇게 나아가지 않나. 마거릿 미드는 아마도 그 당시에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최선으로 나아갔을 것이었다. 결국 실망과 백래시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어쨌든 나아가는 과정은 분명히 있었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었다.



베티 프리단이 마거릿 미드의 그런 완벽하지 못함, 결국은 어떤 주저앉음에 대해 지적했다면, 나는 베티 프리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얘기하고 싶다. 우선 완벽한 가정주부가 되어야 하는데, 누가 봐도 부족할 게 없는 상황인데 이름 모를 병을 앓고 있다고 시작하는 이 책, 《여성성의 신화》는 그걸 지적해 풀어냄으로써 또 그에 대해 많은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고 기록함으로써 너무나 대단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 내가 살았다해도 이런 책을 기획하고 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바로 이런걸 우리는 고전이라 부르는거다. 베티 프리단의 지적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었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 후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이 책을 가져와 덧붙이는 것은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도 그리고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테니 앞으로의 독자들도 이 책을 읽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에는 이런 너무나 대단한 '베티 프리단'이 젊은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나타나고 나서는 오히려 백래시의 주역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백래시에 대한건 아니고, 베티 프리단이 말하는 '동성애'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 직업뿐만 아니라 집 밖에서 어떤 중대한 일을 하는 것까지도 주부이면서 어머니인 여성들의 '여성성'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헌신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쏟아넣을 수 있고, 이런 종류의 헌신은 잠재적이거나 확실한 동성애를 낳을 수 있다. 이런 기생적인 어머니의 사랑에 질식되어 있는 소년은 성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성장하지 못했다. 동성애자들은 학교를 마치고 어떤 직업적인 일에 종사하기에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다. (킨제이는 동성애 경향이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에게 많으며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의 성생활의 특징인 비현실성, 미숙함, 난잡함, 계속적인 만족감의 결여 등은 그들의 생활과 일, 모든 것에 특징적이다. 성 이외의 생활, 교육, 일에 있어서 개인적인 사명 의식의 결여는 '여성적'으로 여겨진다. '여성성의 신화'에 의해 사는 딸들처럼, 그 아들들은 생애 대부분을 성적 공상 속에서 지낸다. 이렇게 슬픈 '게이'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 주부와 유사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 주변에 짙은 안개처럼 퍼져있는 동성애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 된 조혼 속에서 공격자가 된 젊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성과 마찬가지로 불길한 것이다. (p.482-483)



나는 오늘 아침 지하철안에서 위의 부분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물음표가 이천개쯤 생겼다. 우선 베티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 점은 분명히 옳다. 동의하는 바다. 여성들을 교육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집안에 들어앉히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전혀 틀림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위의 인용한 문장을 보면, 여성성의 신화 때문에 집에 있는 여자들이 극성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면 그 아들이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고개를 갸웃한다. 여자들을 코너로 몰아 넣으면 발생하는 부작용중의 하나가 그 자식의 동성애, 라는거 아닌가. 그렇다면 동성애는 어떤 부작용의 하나인건가. 무언가 잘못 발현되는 것이 동성애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거 아닌가 싶은거다.



오래전 연애에서 막 연애를 시작했던 나의 남자친구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그들은 아픈거니까' 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그 말을 듣고 잠깐동안 고민을 했다. 이 연애를 진행할것인가, 말것인가. 이성애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아픈걸로 생각해도 되는것인가? 그것은 이성애만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나는 위의 문장에서 베티 프리단으로부터 그 때의 당황스러움을 다시 떠올렸다. '니네 그렇게 잘못하면 동성애가 많아진다니까?' 라는 뉘앙스의 저 문장이 걸리적거린다.


어떤 동성애는 그런식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라는 과정에서 이성으로부터 호되게 고통을 당해 꼴도 보기 싫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동성만 사랑하게 되는, 그런 식의 발현. 뭐, 있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저 뉘앙스는 불편한 게 사실이다. 덜 자라서, 어딘가 잘못되어서 발현될 수 있다고 하는 것. 이건 너무 불편하지 않은가.



베티 프리단이 마거릿 미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최선의 것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던 바로 그 지점이 나는 베티 프리단에게도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그래, 사람이 완벽할 순 없지. 그 당시에 획기적이고 혁명적이며 또 오래 읽힐 수 있는 고전이어도, 그렇다고 그 안에 담긴 모든것들에 내가 기립박수치며 환호할 순 없을 것이다. 베티 프리단 이후의 학자들이 할 일이 바로 여성성의 신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일테다. 이것봐, 이런 작품이 나왔어, 정말 대단하고 날카로운 지적이 담긴 책이지! 하면서도, 그렇지만 말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그 후세대의 학자들이 할 일이 아닌가. 그런식으로 우리는 점차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동성애 발현에 대한 걱정이 담긴 저 문장을 읽고 내가 베티 프리단 싫다, 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이 책, 여성성의 신화는 베티 프리단이 그 때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최선이며 동시에 가장 좋은 최선. 최선(最善)의 최선(最先). 혹은 최선(最先)의 최선(最善).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잘못된 사랑이 있다. 아니지,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잘못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인줄 착각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게 맞겠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지극하게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것이라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는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계속 자신 옆에 있어달라고, 상대가 '싫다', '아니다' 라고 하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커짓을 하는 게 그렇다. 열 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그렇게 열 번 찍는게 그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다. 싫다고, 아니라고 하는데도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내 사랑을 왜 안받아줘, 이 지극한 내 사랑을 왜 몰라줘, 너를 너무 사랑해'라고 자기 할 말만 하는것. 이건 자기가 상대를 사랑한다는 감정에 취해서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인 자기애의 상태다.


얼마전의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개빡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뒤부터 그 드라마를 안봤는데, 내가 그 드라마에서 빡쳤던 건 데이트폭력남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 또 이도저도 못하고 사랑사랑 거리는 그 김희애 남편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늘상 사모했던 여자가 남편의 불륜으로 속상한 걸 알고 바로 접근하는 유부남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어라, 이 여자 지금 속상하고 외롭겠네, 그렇다면 바로 이때다! 하고 접근하는 거. 정말 토나오게 싫다. 정말정말 토나온다.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에서도 애인의 죽음으로 상실한 데미 무어에게 그 친구가 대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여자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그 때에 훅- 들어가는 거.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고 한심하고 자존감도 낮은 머저리의 형태다. 너무 싫어. 진짜 토나와.


정반대의 경우는 영화 [러브, 비하인드]를 들 수 있겠다. 여자는 가까스로 이별을 받아들이고 아파하는데, 이 때 여자에게 새로운 남자가 등장해 대시한다. 여자는 '나는 일단 혼자 서고, 그 후에 너랑 데이트할게'라고 말한다. 정말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외로운 감정이 휘몰아쳐 있을 때 연인이 되는 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최악의 선택이다.


















그리고 또 사랑이 아닌데 사랑인줄 착각하는 건, 상대에 대한 철저한 의존이 있다. 베티 프리단은 이 책에서 바로 그걸 언급한다. 읽다가 답답해서 가슴을 쳐야했던 부분이다. 상대를 숨막히게 하는 이런 사랑.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어리석음. 베티 프리단은 '대리 생활'이라고 연구한 '안드레아 안쥐알Andrea Angyal'의 글을 인용한다. 




대리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징후는 특히 다른 사람에게 구조적으로 의존하는 것인데, 이것은 자주 사랑이라는 형태로 오인된다. 그러나 그렇게 강하고 집요한 애착은 헌신, 직관적 이해, 자기 자신의 권리와 방식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즐기는 것과 같은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애착은 극도로 소유욕이 강하고, 상대방에게서 '그 자신만의 삶'을 빼앗는 경향이 있다. …… 상대방은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의 공허함과 무無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존재다. 이러한 무無는 원래 단순한 환상에 불과하지만, 지속적인 자기 억압을 통해 실제의 상태가 된다.

대리 생활을 통해 대체 인격을 얻으려는 이런 모든 시도는 그 사람을 막연한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순수하고도 자발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감정적 무의미함(공허함)을 느끼게 하며, 거의 존재감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Andrea Angyal, "Evasion of Growth" 재인용, p.506-507)




나도 저런식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다. 상대는 그것을 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너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나는 너의 신이 아니다, 라고 당시에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님을. 그는, 그 자신을 가장 사랑했다. 그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나를 필요한 존재로 생각해 곁에 두려고 했던 거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나를 옆에 두려고 하면서, 그러면서 나를 신인것처럼 생각했다. 위의 안드레아 안쥐알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당연한 듯 '김 숨'의 <당신의 신>을 떠올렸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p.64)













남편은 아내를 신이라 여기고 신이 아니라며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이제는 '나를 버리려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사람. 아내는 그저 아내였을 뿐인데, 그의 영혼을 구원하고 또 파괴하는 사람이 된다. 아내가 한 일이 아니다. 아내를 구원자로 또 파괴자로 몬 남편 자신이 한일이다.


이혼을 원한다는 그녀의 요구를 그는 번번이 묵살했다. 혀가 꼬이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밤, 마침내 따지듯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무엇을 위해 시를 쓰지?"

"무슨 말이야?"

"시 말이야. 무엇을 위해 쓰지? 응?"

그녀가 차가운 침묵으로 일관하자 감정이 격해진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아니었어?"

"영혼­……? 나는 당신과 이혼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날 버리겠다는 거 아니야?"

"버리다니? 누가 누구를?"

"네가, 나를!"

"나는 지금 당신을 버리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당신과 이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

"억지 부리지 마!"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 (p.58-59)




사랑이라고 입밖으로 낼 때, 그것이 과연 상대에 대한 사랑인지를 수십번 수백번 스스로 물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몇천번 얘기하면서 그러나 거절은 번번이 묵살한다면, 그것이 과연 상대에 대한 사랑인가.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 폭력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아무때나 사랑 갖다 붙여 쓰지 말라. 사랑이 너무 엿같은 게 되어버리는 게,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사랑이라니, 지긋지긋해, 이렇게 되어버린다고.




어휴..폭발하듯 글쓰기하는 아침이었네. 자, 이제는 마음을 좀 가다듬고,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일...일..일..일을 하자. 720쪽 까지 있는 여성성의 신화를 이제 막 5백쫌 넘겼다. 내일 4월 30일까지 이 책을 다 읽어내려면, 나는 오늘도 퇴근하고 까페에 들러야할 것 같다.






새로운 섹스 테크닉을 기술하고 있는 매뉴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흥분이 고갈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 P460

성과 지성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이든, 성행위를 뒤로 미루는 것은 고등교육에서 필요로 하며 그 결과물인 정신적 행위의 성장과 사회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의 성취를 동반하는 듯했다. - P484

빠른 성교는 대개 오르가슴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런 소녀들은 계속해서 교육을 받고 5~10년 또는 15년 뒤에 결혼한 소녀보다 오르가슴을 덜 느꼈고 성적 만족도도 덜했다. 교외의 날라리 소녀들처럼, 이른 성 경험의 편견은 연약한 자아를 나타내며 결혼으로도 자아는 강화되지 않았다. -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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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4-29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뭔가를 얘기할 때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내 태도가 누구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주장할 것을 주장하지 못하며 사는 건 안 될테니.. 그럼에도 참 조심하면서도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구요.

[부부의 세계]는 보지 않고 있는데.. 우유부단에 비열함을 겸비한 남자도 싫고 그런 남자를 미워하며 복수하느라 아까운 에너지 쓰는 여자도 안스럽고 주변 군상의 가지각색 저 밑바닥 인간상도 싫고 해서 그냥 외면하는 중이에요. 앞으로도 그럴 듯. 그나저나 [사랑과 영혼] 저 장면, 기억났어요. 급빡...

저도 내일(헉 내일이 4월 30일이에요! ㅜ) 까지 이 책 다 읽으려면 오늘도 내일도 전진해야 할 듯.. 흠냐..

다락방 2020-04-30 16:38   좋아요 0 | URL
비연님, 지금쯤은 열심히 읽고 계실까요, 아니면 오후 네 시가 넘었으니 읽기를 마치셨을까요? 저는 좀전에 리뷰 쓰기 까지 마쳤습니다. 음화화핫. 뿌듯합니다. 날이 다 가기 전에 마치다니. 정말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자랑자랑)

맞아요, 비연님. 뭔가를 주장하고자 할 때 조심스러워지죠. 혹여라도 지금 내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닐까 부터 나의 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까지. 그렇지만 상처줄 게 무서워 내가 할 말을 하지 못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생각하게 되고요. 그래서 계속게속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묻고 또 답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것이 나은가,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최선인가, 하고 말이지요.

연휴라서 너무 좋아요. 알람 안 맞춰도 돼서 너무 좋아요. 우리 연휴를 즐깁시다!

잠자냥 2020-04-2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성의 신화> 첫 번째 인용 구절만 보면 이 책 안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하하하하하. -_-;;
남은 200백쪽 내일까지 꼭 읽게 되시길! ㅎㅎ

다락방 2020-04-30 16:39   좋아요 1 | URL
끝까지 다 읽으면 음, 동시대를 살았다면 나랑은 서로 싫어했겠군,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긴 합니다. 하하하하.
어조가 세긴 하지만 또 래디컬은 미워하더라고요? 남자 안챙기는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합니다. 남자를 너무 사랑하는 베티 프리단이에요. ㅎㅎㅎㅎㅎ
아무튼 저는 어제 새벽까지 완독했습니다. 꺅 >.<

단발머리 2020-04-3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으면서, 고전을, 특히 페미니즘 고전을 읽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천천히 두 번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다락방님^^

다락방 2020-04-30 16:41   좋아요 0 | URL
독서중이신가요, 단발머리님? 이 책도 역시 읽기를 잘했어요. 단발머리님은 기존에 읽으신 책이니 아마 아시겠지만, 해법은 교육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너무 짜릿하더라고요. 맞아, 맞아, 정말 그렇지! 그 부분에 있어서 너무 짜릿했고 다시 한 번 공부 의욕 불태우게 하는 그런 독서였어요. 역시나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훗.

저는 여성성의 신화 다 읽고 리뷰 쓰기를 마쳤고요, 이제 페이퍼를 쓸겁니다. 여성성의 신화로요. 우후훗-

- 2020-05-01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만 쓸 수 있는 책 엮어서 쓰기! 드라마 추가 ㅋㅋㅋㅋ ㅎ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때다 하고 남의 외로움을 이용하는 자들이 많죠. 작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더 빈번한 듯... 사랑도 잘하려면 정말 많이 똑똑(?) 해져야 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20-05-04 08:13   좋아요 1 | URL
이때다 하고 외로울 때 공략하는 것도 그렇고, 싫다는데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도 그렇고, 상대가 나의 신이라고 추켜세우는 것도 그렇고... 죄다 너무 자존감 낮은 행위들이에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이죠. 아 너무 싫어요 징그러워. 가끔은 세상에 사랑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랑이란 개념이 없어진다면 다들 사랑이란 이름을 끌고와서 폭력을 저지르는 걸 멈추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니면 남자들이 대부분 사라지던지...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