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2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틴 에덴》1권에서는 마틴과 루스의 만남이 시작된다. 항해하는 남자, 그래서 육체적으로 탄탄한 마틴이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세계에 살고 있는 루스를 만나 반하게되는 만남. 루스 역시 마찬가지. 부잣집에서 교양있는 가족들과 함께 대학 교육까지 받아가며 살아온 루스는 자신이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남자의 출현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세상에, 너같은 남자는 너가 처음이야! 루스는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르는채로, 자기에게 찾아온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채로 속절없이 그에게 끌려간다. 매력적이야 너무 매력적이야, 그는 그녀에게 마치 동물처럼 느껴진다. 그의 뿜어져나오는 남성미는 그녀를 감싸고 돌아.. 라는 내용만으로도 사실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데, 그런 후에는 세상 짜릿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마틴이, 자신이 흠뻑 빠져들게 된 루스의 세계로 진입해 그녀의 옆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 그들과 같아지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그들의 옷차림을 관찰하고 식사 예절을 관찰하고 그들의 청결을 관찰한다. 그의 생활 방식 자체가 더 나아진 것은 물론이요, 무엇보다 그는 지식을 향한 열망에 휩싸인다. 자신이 제대로 된 문장을 혹은 단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루스로부터도 배우지만 수많은 책들을 읽어가면서 점점 더 나은 문장을 갖게 되고 그리고 지식을 차곡차곡 쌓게된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 다르게. 그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가족들 모두의 이름으로 대출카드를 만들어 도서관에 틀어박히고 책을 빌려오면서 읽고 또 읽는다. 그가 단순히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네이버 지식인에 답하기 위해서도 읽은게 아닌, 그는 그 자체가 정말로 그 지식을 원해서 탐구했으므로 누구보다 더 빨리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예전에는 감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던 지식인들과의 사이에서도 이제는 어떤게 엉터리인지-사실 대부분 다 엉터리-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맹렬하게 지식을 탐구해가는 과정은 너무너무 짜릿했는데, 아마도 한 인간의 성장을 보고 싶은 사람들,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게 되는 과정을 얻는 걸 보는게 좋은 사람들은 마틴 에덴의 이런 부분에 끌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 마틴이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쓴다. 맹렬하게 책을 읽고 공부했듯이 맹렬하게 쓴다. 쓰고 쓰고 또 쓴다. 그가 항해하면서 모아뒀던 돈은 다 바닥났지만 그래서 그는 굶으면서도 쓴다. 자신이 쓴 에세이와 소설과 잡문을 잡지사에 보내고 또 보내고 또 보내지만 모두들 그에게 원고를 돌려보낸다. 그는 내 글이 팔리면 얼마의 돈이 들어올건지 나름 계산하며 외상도 졌었는데, 아무 원고도 채택되지 않으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를, 외투를, 정장을 전당포에 맡긴다. 그의 모습이 점점 더 빈곤에 가까워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 그러나, 그 가난에 대해 루스는 이해할 수 없고 알아채지도 못한다. 루스가 살아온 삶은 그런게 아니었으므로 마틴의 달라진 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그녀는 그 안까지 볼 순 없었다. 대신, 세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으며 마틴에게 방을 빌려준 마리아는 그를 궤뚫어본다. 저 사람, 굶고 있구나. 가난은 가난의 흔적을 재빠르게 캐치한다. 고된 노동을 하며 벌어들이는 돈은 별로 없는 마리아이지만, 굶는 마틴을 그대로 둘 수 없어 그녀는 자신의 음식을 내어주고 그가 아파 몸져 누웠을 때는 그를 간호해준다. 마틴은 그런 마리아에게 네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이냐 묻고 농장을 갖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네 말대로 될거라고, 당신은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마틴은 열심히 썼다. 어디서도 마틴의 원고를 실어주지 않았는데도 돌려보내기만 하는데에도 열심히 썼다. 쓰고 쓰고 또 쓰고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고 그렇게 그가 써둔 원고가 쌓여갔고, 그러다 더러 잡지에 실린 적도 있지만 잡지사는 원고료를 주지 않거나(떼먹는다) 소액만 주었다. 간신히 먹고 사는 삶을 유지하던 그를 루스가 그리고 마틴의 가족이 곱게 볼 리 없다. 루스는 제발 일자리를 가지라고 애원한다. 마틴은 자신이 쓴 글을 언제나 루스에게 읽어보라 주지만 루스는 읽고 좋은 글이지만 그런데 팔리지는 않잖아, 하며 자신의 아버지 회사에서 월급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마틴은 잠자는 시간까지 아까워하며 읽고 썼는데 마틴의 매형은 지독한 게으름뱅이라고 마틴을 욕한다. 마틴은 그 누구보다 깨어있는 시간 맹렬히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는 일자리도 마다하는 사람이었다. 루스의 가족은 처음부터 루스와 마틴의 사랑을 반대했지만 이제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 하고 루스는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자, 그러나 마틴의 노력은 보상받는다. 아니 그것을 보상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틴이 원하던 때에 주지 못하는데 그것은 과연 만족할만한 보상일까. 그의 원고 하나가 책으로 나오고 초판은 1,500부 였는데 서평들이 쏟아지더니 미친듯이 팔려 재인쇄 재인쇄.. 그러다가 다른 나라에서도 막 앞다투어 번역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이제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이 되고 그의 원고를 달라고 출판사들마다 요구한다. 마틴은 이미 써둔 원고들을 슝 슝 보내고 그의 통장에 돈이 쌓인다. 그는 명실공히 엄청난 작가가 되었고 출판사에서는 그에게 줄 인세를 높이고 선인세를 주는등 마틴 모시기에 급급하다. 그의 명예가 더욱 무게를 더할수록 당연하게도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그를 어리석은 사회주의자라고 욕하던 판사도 그를 우리랑 다르다 무시하던 루스의 가족도 그외 다른 모든 사회 각계 인사들이 그를 정찬에 초대한다. 그를 무시하던 매형도 매제도 그를 식사에 초대한다. 일도 하지 않는 천하의 게으름뱅이이며 쓸모 없는 놈이었던 마틴은 세상 모두가 어떻게든 알고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마틴은 이런 일들에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 나는 그냥 나인데. 하물며 지금 계속해서 책으로 나오고 잡지에 실리는 그 모든 글들은 뭔가 달라진 마틴이 쓴 게 아니라 게으름뱅이에 쓸모없는 놈이란 욕을 듣던 바로 그 당시에 썼던 바로 그 글들인데, 자기가 잠도 줄여가며 썼던 그 글들을 썼을 때는 세상 쓸모없는 놈이 이제는 누구나 함께 밥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다니. 그런걸 보는게 너무 역겹다. 나는 변한게 없는데? 왜 내가 굶주려서 그 무엇보다 식사가 하고 싶을 때는 아무도 나에게 밥을 주지 않았지? 왜 내가 내 돈주고 밥 사먹는게 충분해진 지금은 모두들 밥을 주겠다고 하지? 왜 가장 절실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던거지? 그리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자고 하는데 나는 외롭지?



그는 정찬 초대를 무수히 받았고 일부에 응했다. 사람들은 그를 정찬에 초대하기 위해 그와 안면을 텄다. 사소한 일이 큰일이 되어 그는 어리둥절했다. 버나드 히긴보삼이 그를 정찬에 초대했다. 그는 더욱 황당했다. 자신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아무도 정찬에 초대하지 않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기는 저녁 식사가 절실하고, 식사를 하지 못해 몸이 허약해지고 현기증이 나며, 순전히 굶어서 체중이 빠지던 때였다. 역설이었다. 그가 저녁 식사를 원할 때는 아무도 주지 않았는데, 이제 수십만 번이나 외식을 할 수 있게 되어 식욕을 잃은 판국에 사방에서 저녁 식사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왜? 이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며, 그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한 모든 일은 그 일을 수행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때 모스 부부는 마틴이 게으름뱅이에 뺀질이라고 비난하면서, 루스를 통해 사무실의 직원이 되라고 몰아쳤다. 더군다나 그들은 그가 해 놓은 일을 알고 있었다. 그의 원고는 쓰는 족족 루스의 손을 거쳐 그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들은 그 원고들을 읽었다. 그의 이름을 모든 신문지상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그 작품들이었는데, 그들은 그의 이름이 모든 신문지상에 올랐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초대한 것이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스 가 사람들은 그라는 사람 자체나 그의 작품 때문에 그를 만나려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지금 그들이 그를 원하는 이유는 그라는 사람 자체나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닌, 그가 가진 명예 때문이었다. 그가 발군의 인물이고, - 왜 아니겠는가? - 또수십만 달러쯤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가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니, 어떻게 그렇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2권, p.206~207



그는 자기에게 들어온 돈으로 자신이 은혜를 입었던 마리아에게 집을 사주고 낙농장을 마련해준다. 자신에게 돈을 바라고 접근하는 가족들에게도 원하는 만큼의 돈을 준다. 이 모든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진 원고도 이젠 다 돈으로 받고 없겠다, 배나 타고 섬으로 가야겠다, 생각하는데 그의 과거 연인 루스가 온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가 그에게 온다. 자신의 사랑은 변한게 없다고 자신은 용기를 내어 이제 마틴과 사랑하겠다고 하는거다. 



"그런 짓을 왜 전에는 저지르지 않았어?" 그는 거칠게 물었다. "내가 일자리가 없을 때는? 내가 굶고 있을 때는? 남자로서 또 예술가로서, 내가 지금과 똑같은 마틴 에덴이었던 그때,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 숱한 날을 나는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 왔어…당신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관해서.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달라지지 않았어. 나에 대한 평가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나 스스로도 내가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지만 말이야.

나는 예전과 똑같은 살을 뼈에 붙이고 있고, 예전처럼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을 달고 있어. 나는 똑같아. 없던 능력과 장점을 새로 개발하지도 않았어. 내 뇌는 예전의 그 뇌야. 그 이후로는 문학이나 철학에 새로 덧붙인 말조차 없어. 나라는 개인의 가치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던 예전과 똑같아.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이제 왜 나를 원하는지 영문을 모르겠어. 그들이 나 자체 때문에 나를 원하는 건 분명히 아니야. 왜냐하면 나 자체는 그들이 원하지 않던 예전의 나와 똑같으니까. 그들은 뭔가 다른 것, 내 외면의 어떤 것 때문에 나를 원하는 게 틀림없어. 무엇인가 내가 아닌 것 때문에! 그게 뭔지 당신한테 얘기해 줄까? 내가 얻어 낸 명성이야. 그 명성은 내가 아니지. 그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 또 내가 벌었고 지금도 벌고 있는 돈 때문이야. 그런데 그 돈도 내가 아니야. 돈은 은행과 이 사람 저 사람의 호주머니 속에 있잖아. 당신이 나를 이제 원하는 것도 그것, 명성과 돈 때문인가?"

"당신은 말로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어." 그녀는 흐느꼈다. "내가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을 사랑해서 내가 여기 왔다는 걸, 당신은 알잖아."

"당신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내 말은 이거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사랑하게 된 거야? 그때는 당신의 사랑이 나를 거부할 정도로 약했잖아." -2권, p.226-227



나는 마틴의 울분을 이해한다. 그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된 사람들의 속물적인 면에 대한 경멸 역시 이해한다. 자신이 그렇게 동경했던 그 위치가 굉장히 보잘것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의 허무를 이해한다. 또한 그가 그렇게나 책을 읽고 알고자 노력하며 결국 이전과 달라진 사람이 된 것에 대해서라면 너무 좋다. 현실에서의 내가 마틴 친구라면 그를 응원해 주었을 것이다. 굶주리는 그를 위해 가끔은 밥을 사주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험한 일을 겪었고 육체적 으로 탄탄하면서 이제 지식까지 갖춘 그를 좋아하지 않기란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나 나 역시 루스가 된다. 나는 루스다. 내가 상류층 여성이란 얘기가 아니라, 만약 내가 마틴의 매력에 빠져 그와 사랑하고 연애하게 되었다면, 나 역시 계속해서 돈을 벌지 않고 자신의 글이 잘 될거라는 장담만 하는 그를 기다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그 글이 좋다고 감탄한다 한들, 그 글이 돈을 벌어다주지 않음에 나는 '그런데 말야, 일단 일자리를 잡아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글을 쓰면 어떨까?' 를 결국엔 말했을 것이다.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글로 돈을 벌거라고! 그가 장담한다해도 번번이 퇴짜맞아 돌아오는 원고를 앞에두고, 그러면서 굶주리는 그를 보고 나는 마냥, 계속해서, 내 사랑 뽀에벌~ 하면서 기다릴 순 없었을 것이다. 마틴은 왜 명예가 없는 내 옆에서는 떠나고 명예가 있는 내게로 돌아오냐고 루스를 원망하지만, 그 원망은 마틴으로서는 너무나 타당하고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나였어도 마틴을 떠났을 것이다. 일을 하라 젊은이여,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 나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는 그를 보면서 결국은 고개를 젓고 돌아섰을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재벌이 되어 나를 호강시켜달란 말을 하는게 아니라, 매달 이백만원이라도 네 손으로 벌라는 말이야, 라고 돌아섰을 것이다. 사실 이 책 속의 루스는 그와 결혼하게 되면 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하므로 그의 노동이 절실했다. 너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잖아, 가 루스의 답답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나는 조금 다르다. 그가 이백만원씩이라도 꼬박꼬박 번다면, 그와 내가 함께 산다고 했을 때 일상의 고단함이 조금 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백만원씩이라도 꼬박꼬박 번다면, 설사 나와 헤어졌어도 그는 자신을 챙기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원하는 건 돈을 벌어'오라'가 아니라, 돈을 '벌어'라는 것이다. 



루스가 마틴에게 일자리를 갖길 원하는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틴의 생각대로 루스에게는 시야가 좁았던 지점이 있다. 루스는 가난을 모르니까. 누구나 노력하면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순진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고된 노동에 시달려도 루스의 아빠만큼은 결코 벌 수 없다. 그렇다면 마틴에게 일자리를 구하라고 말하는 나는 마틴을 사랑하는게 아니었나? 사랑했다. 사랑했지만, 내 사랑은 그런 식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내 사랑은 꼬박꼬박 이백만원을 벌고자 하는 사람에게 향하지 번번이 퇴짜맞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향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그 글을 읽었고 그 글이 좋다는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다면, 내가 볼 때 훌륭하므로 그 글이 잘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냥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읽고 좋았어도 지금 세상이 원하지 않아, 게다가 내가 기다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야. 나는 얼마간 그를 지켜봤고 또 얼마간 그가 일하기를 바라면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못하겠다, 하고 돌아섰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나는 결국 사랑은 머리로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나만' 사랑을 머리로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나의 속물된 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머리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알거나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를 사랑하는 기준이나 원인이 나랑 달랐다는 거지, 나는 사랑에는 머리가 관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 내 사랑은 그렇다면 그 기준을 노동하는 삶에 둔 것일테다. 물론, 


마틴은 노동했다. 글을 맹렬하게 썼다. 그가 노동하지 않은게 아니었다. 그는 게으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일자리가 있는데 박차고 굶주림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마틴은 글을 쓰는 삶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삶에 대한 기준이 달랐다. 루스, 루스의 가족들, 마틴의 가족들, 마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고 그 눈높이로 보고 있을 때 마틴은 그런것과는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거다. 나는 그런 마틴의 방향성과 삶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내 곁에 두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가끔 만나 밥을 사줄 순 있지만 그와 사랑하고 함께할 순 없다. 그는 그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한 것이고 그가 선택한 삶이 내가 선택한 삶과 다르다면 세이 굿바이 해야 하지 않겠나. 마틴 에덴의 루스에 대한 원망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리고 그 원망 나 역시 받아 마땅하지만, 그러나 그렇다해도 나는 나의-루스의-그런 선택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잭 런던은 마틴 에덴을 통해 계급을 드러낸다. 저기 저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는 잘 사는 사람과 바로 여기에서 오늘 먹을 밥을 궁리하는 고된 노동의 삶. 그 격차를 과연 사랑으로 메꿀 수 있을까? 메꿀 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믿으며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젊은이인 마틴 에덴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은 믿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현실의 간극은 이렇게나 크다. 나는 잭 런던이 보여주는 이 간극이 아프지만 너무 좋다. '좋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지만, 잭 런던의 마틴 에덴을 읽으면서 가난의 이쪽과 부유함의 이쪽에 있던 사람들이 만나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작가들을 생각해본다. 샐리 루니가 그랬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랬다. 아, 진짜 자지러지게 좋다. 그런 한편 나는 현실에서 한 번도 상대와 빈부격차로 인해 괴로웠던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닫는다. 한마디로 돈 많은 남자와 연애해본 적은 없다는 거다. 아마, 내가 앞으로 연애한다고 해도 그럴 일은 없겠지.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책은 재미있는데, 그 다른 계급 속으로 기어코 향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뛰어난 점이다. 그러나, 그토록 맹렬히 필사적으로 자신을 불살랐던 젊은이에게 필연적으로 닥쳐올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지, 책장을 덮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면서도 씁쓸해진다. 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좋다고 살고 있고 돈이 세상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돈이 나에게 해주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은 분명 없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역시나 씁쓸한 결론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을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본주의를 박차고 나갈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고, 그러므로 나는 마틴 에덴을 이해하지만 루스가 될 수밖에 없다. 아, 


한가지 루스와 내가 다른게 있다면, 나는 내가 돌아선 남자가 내가 떠난 뒤 명예를 얻고 부자가 됐다고 해서, 그를 다시 찾아가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그가 그렇게 된 뒤에 나를 찾아와 '이런 나를 받아주면 안되겠니?' 한다면, 웃으며 받아줄 순 있지만, 내가 찾아가서 '나는 너를 잊을 수 없어'라고 그의 명예 뒤에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것은 나의 자존심이며 그것이 나의 인간된 도리이다.



이만 끝.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2-12-08 1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작품에서 루스가 돈을 ‘벌어‘라고 말한 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돈을 벌어서 ‘오라‘가 덧붙여져 있었지만 그건 그 당시 사회 상황이 여자가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였으니까 그랬던 것이고... 현재로 치환해 생각해보면, 돈은 벌지 않은 채 언제 채택되거나 출판될지 모르는(심지어 출판되고도 1쇄에서 끝나는 책이 부지기수인 이 마당에), 글을 계속 써대면서 나는 ‘노동‘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남자나 여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이라고 그 무책임을 받아준다는 것은...... 결국 이 작품에서도 마틴은 주변의 도움을 얻게 되잖아요? 요즘도 마틴 같은 사람이 있다면 결국에는 당연히 주변 사람에게 손을 벌리게 되겠죠(특히 연인에게) 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도망가야해요!

마틴이 꾸준히 일하면서 글을 썼다면 그것이야말로 금상첨화였을 거예요- 현재의 마틴들도 그렇고요.
남자나 여자나 일(노동)은 중요합니다.

다락방 2022-12-08 11:54   좋아요 1 | URL
제가 보기에 제 연인의 글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것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정말로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제가 연인에게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저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헤어지게 되겠죠? 하하하하하. 돈을 벌면서 쓰란 말이다!! 나 봐라, 돈 벌면서 쓰잖아! 왜냐, 글이 돈을 벌어다 주질 않아서!!

아무튼 제가 마틴 에덴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엉뚱하게도, 나도 투고를 하자!! 입니다. 저 이제 투고하면서 살아볼까 싶어요. 말리지마세요, 투고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투고한 글이 잠자냥 님께 닿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틈에 나도 마틴 에덴처럼 글로 재벌이 되는 일이....

없겠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단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걸로... (눈물을 닦고)

2022-12-08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8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8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2-12-08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아무튼 루스 굴욕...... 돈과 명예가 생겼다고 그 남자 다시 찾아가고 그러지 마.......... 진짜 굴욕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너무 싫은 여주인공........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12-08 11:51   좋아요 1 | URL
저는 루스가 싫지 않고요 이해가 되더라고요. 다시 돌아간 지점에 대해서도 말이죠. 그러니까 저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루스에게는 딱 그만큼의 용기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가난한 남자를 내 연인이다, 그를 믿고 살아보겠다 라고 할만큼의 용기까지는 없었던 거고, 그게 너무 당연한건데, 그런데 이제 그 남자가 부자가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견딜 수 있겠다! 하는 그 간극만큼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쳐나갈 용기는 부족했지만 명예를 가진 남자에게 다시 찾아가는 굴욕을 견딜만큼의 용기는 있었던.. 저는 루스를 보면서 ‘제인 오스틴‘의 <설득> 속 여주인공 ‘앤‘이 생각났거든요. 그걸 쓰면 리뷰가 너무 엄청나게 길어져서 확 빼버리긴 했는데, 앤도 가족들이 말리는 바람에 가난한 연인과의 사랑을 끝내버려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남자가 부자가 되어 쨘- 나타났는데 앤은 그렇다고 그 남자에게 다시 사귀어달라고 하지는 않죠. 그러면서 다시는 자신의 사랑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선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앤이 있죠. 그게 앤과 루스의 차이일텐데 그 지점은 제인 오스틴과 잭 런던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고요.

아무튼 저는 저런 굴욕을 감내하는 것도 루스의 어떤 용기 같은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굴욕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12-08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은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이상도 좋지만 상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상만 바라보는 남자와 헤어져본 사람으로서)

저는 오늘 <제인 에어> 에 대해 글을 썼는데 <제인 에어>에도 계급과 사랑 그리고 극복(?)이 나와서...
다락방님 글을 읽으니 왠지 조금 ‘찌찌뽕‘ 하고 싶었습니다. (수줍)

다락방 2022-12-08 11:56   좋아요 1 | URL
마틴에게 자신이 굶는 일보다 자신의 글을 써내는 일이 더 중요했고 그것이 마틴의 가치이며 마틴의 방향이었겠지만, 그렇게 사는 삶은 혼자일때에만 가능한 것 같아요. 먹고 살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돈이 필요한 일이고 그걸 내가 하지 않는다면 나 대신 누군가가 해야하는 거겠죠. 저는 마틴이 가진 마틴의 가치관을 이해하지만 그러나 그런 마틴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성공할 사람의 옆에서 함께 고생하며 인내하는 일.. 저는 반대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오오, 저는 수하 님의 제인 에어에 대한 글을 읽으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슝=3

단발머리 2022-12-08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리뷰 너무 가슴 절절하네요. 다락방님이 나는 루스다... 하는게 너무 잘 이해되고 사실... 저도 루스입니다. 못 기다려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을 때 몸을 숨겼다가 연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난 스웨덴 귀족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루스와 반대죠. 연인이 잘 나갈 때는 뒤로 물러섰다가 친구들이 다 떠났을 때 곁을 지켜주는.... (저 눈물 좀 닦을게요.....)

다락방 2022-12-08 11:58   좋아요 1 | URL
저는 아무래도 현재를 사는 사람이기 땜시롱 언젠가 잘 될 그날을 위해 함께 기다리는.. 건 못할 것 같아요. 언젠가 빵터질 미래가 올거라는 믿음에 기대기 보다는 현재에 소박하게 양꼬치 먹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음.. 양꼬치는 소박한가 아닌가...

그나저나 연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난 스웨덴 귀족... 은 뭐죠? 어떤 이야기죠? 알려주세요!! 너무나 궁금하네요. 또 제가 그런거 좋아하잖아요.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재이슨 스태덤... 같은 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12-08 12:08   좋아요 0 | URL
스태덤은 아니에요. 쫌만 더 궁금하세요. 나는 울고 있어요 😭😭

독서괭 2022-12-08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으니 마틴도 루스도 이해가 됩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루스가 돈 벌라고 한건 합리적인 요구이고.. 굶어가며 글 쓰는 사람을 어떻게 기다리나요 에혀 ㅠ
이책 끝까지 좋으셨군요. 내년에 읽을 소설로 찜입니다^^

다락방 2022-12-08 12:0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독서괭 님. 저는 마틴 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를 격려하고 응원하고요. 그가 잘되는 걸 보면 저도 기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그랑 삶을 함께 하느냐.. 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제 삶을 사는 걸로.. 사실, ‘내가 언젠가 글로 재벌이 될거야‘ 를... 어떻게 믿나요? 못믿습니다...

독서괭 님, 저는 마틴 에덴 너무 좋습니다. 오늘 잭 런던의 다른 책도 한 권 구입했어요. 네, 책 샀다는 이야깁니다. 다음주 월요일의 책탑 사진을 기대해주세요. 샤라라랑~

다락방 2022-12-08 11: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나 글 너무 잘썼다.. 나야말로 글로 돈을 쓸어담아야 되는데 세상이 내 글을 보는 눈이 없네. 마틴 에덴이 그랬듯이.. 어리석은 세상이여.....

- 2022-12-08 14:36   좋아요 1 | URL
현실을 사는 다락방은 미래가 알아볼 글을 쓴다… 🥲는 비극

다락방 2022-12-08 15:01   좋아요 2 | URL
이 세상엔 내가 너무 아까워.....

물감 2022-12-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다락방 님이 보시기에 이 작가가 저랑 맞을 것 같으신가요?
그렇다고 하시면 도전해보게요 ㅎㅎㅎ

다락방 2022-12-08 15:36   좋아요 2 | URL
저는 물감님도 마틴 에덴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새파랑 2022-12-08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마틴이 다시 돌아온 루스를 거부한게 약간 아쉽더라구요. 그렇게 좋아했었고, 루스 때문에 미친듯이 글도 쓴건데~

뭐 원하는대로 되지않은 비극적 결말이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은것 같아요.

그런데 마틴은 양치질을 했던가요? ㅋ

다락방 2022-12-08 17:35   좋아요 2 | URL
마틴은 루스를 알게된 후부터 양치질을 시작합니다. 샤워도 시작합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사랑은 시작되고 사랑을 알고부터 그대만을 느꼈어요... 샤라라랑~

2023-02-08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7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식동물 2024-10-1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 의견? 심정?에 진짜진짜 동의합니다... 솔직히 마틴 응원? 많이 했다... 정말 많이 했다 근데!!! 내가 남자의 벌이에 온전히 의존해야 하는데 남친이 직업은 안 찾고 쫄쫄 굶으면서 글만 쓰고 있으면 직업 구하라고 정신공격을 할듯해요!!!

다락방 2024-10-18 08:0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루스를 이해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느냐 아니었느냐 보다는 저에게는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기 땜시롱 이 사랑이 나를 가난에 놓을것이라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잔소리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노동과 그리고 작가가 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혔어요. 전 나중에 마틴이 유명해진 뒤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걸 보고 허무해하는 것도 너무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책식동물 2024-10-18 1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마틴이 작품활동하는 과정 보면서 눈물흘렸습니다ㅜㅜ.....어쩜이렇게사실적으로 썼는지 100년이 지나도 눈물... 또 마틴의 현타랑 노동자 정체성을 계속 유지한 게 인상깊었어요 여러모로 후대에 남을 작품이긴 합니다ㅋㅋ... 나중에 재독하게될것같아요
 
아워 바디
한가람 감독, 최희서 외 출연 / 인조인간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티 블루 보다가 아워바디 생각남. 이 캐릭터도 겁나 싫음.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자영에게 일자리도 소개시켜주는 친구 있던데, 그 친구 너무 착한 사람.. 나는 자영과 친구 끊겠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2-12-0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첨 보네요??
여성 감독인가요? 여성 감독 영화들은 웬만하면 재밌던데...이 영화는 아녔군요?

다락방 2022-12-06 15:24   좋아요 1 | URL
아 주인공 너무 자기 침몰 민폐 캐릭터 너무 싫었어요 흑흑 ㅠㅠ
이 영화 개봉 당시 여성서사다, 남성은 소모품으로만 나온다 해서 나름 인기도 있었는데, 저는 캐릭터가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이 영화 본 후에 친구 만나서 주인공 욕 엄청 했어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2-06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좀 싫은 느낌;;;; 아워 바디............................

다락방 2022-12-06 15:39   좋아요 0 | URL
여주가 달리기 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영화일거라 막연히 짐작했는데 너무 자기 자신 찾느라 주변에 대한 생각 1도 없는것 같고요. 어후~ 싫어요. -.-

바람돌이 2022-12-06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기 여배우 최희서씨. 영화 박열 볼때 진짜 매력적이던데..... 주인공의 매력으로 커버가 안되었을까요? ^^

다락방 2022-12-06 16:19   좋아요 1 | URL
저는 저 배우를 이 영화에서 처음 봐서 캐릭터로 만났네요. 제가 너무 현실에서 싫어라 하는 캐릭터라서 어떻게 커버가 안되네요 ㅠㅠ
 
베티블루 37.2 [고전명작 특가할인] - [초특가판]
기타 (DVD)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연도 죄다 조금씩 미쳐있고 주연은 더 미쳐있고 그래도 뭔가 있겠지 싶어 꾹 참고 세시간이나 보느라 힘들었다. 너무 자기에게만 몰두하는 사람임. 겁나 분노해서 발광하다가 겁나게 사랑하다가 겁나게 깔깔대고 웃다가, 와 너무 내가 싫어하는 캐릭터임. 영화 한 편 보고 기빨림. 무려 세시간이나..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2-12-0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래도 다 보셨네요?^^
저는 예전에 앞부분만 보다가 주인공들에게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되어 꺼버린 영화는 이 영화였습니다ㅋㅋㅋ 근데 왜 유명할까? 좀 의아했던...ㅋㅋㅋ
근데 따뜻한 색 블루는 조금씩 조금씩 보고 있는데요? 좀 뭐랄까? 사랑씬만 아니라면 좀 괜찮은 영화인 듯도 하고? 좀 흥미롭네요^^

다락방 2022-12-06 15:27   좋아요 1 | URL
저 진짜 그만볼까 생각 이천번 했거든요? 그런데 워낙에 이 영화 좋다고 하는 평도 많이 들었고, 제가 일전에 봤던 영화 <인 비트윈>에서도 주인공들이 이 영화를 보고 둘 다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끝까지 보면 뭔가 있겠지, 주인공이 이렇게 비호감인 어떤 이유가 있을거야, 끝까지 보면 울면서 감동할지도 몰라! 라는 생각으로 봤는데... 주인공 감정 기복도 너무 심해요. 웃다가 울다가 화내다가...
와 진짜 보기 힘든 영화였어요. 게다가 고추 덜렁거리는 장면도 너무 많아요. 하하하하하.

잠자냥 2022-12-0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 좋아함.........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12-06 15:36   좋아요 0 | URL
아 진짜 보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았어요. 너무 기빨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분노도 한가득 웃음도 한가득 사랑도 한가득 너무 어휴 ㅜㅜ 어휴 ㅠㅠㅠ

잠자냥 2022-12-06 15:40   좋아요 0 | URL
사람들을 프랑스 영화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원흉 같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12-0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좋하함요. 기빨려요.

다락방 2022-12-06 16:27   좋아요 1 | URL
전 정말 기빨리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싶습니다. ㅠㅠ
이 영화 세시간이나 돼요 ㅠㅠ
 

아니, 내가 하루에 페이퍼 두 개는 쓰지 말자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고 그래서 오늘 한 개 좀전에 썼으니까 오늘은 안써야 되는건데, 신간 소식을 확인하다가 이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 놀라지말자, 심호흡 해.

쨔쟌-

두둥-

이것 좀 봐라.













아 미치고 팔짝 뛰겠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5% 밖에 할인 안하고 ㅋㅋㅋ 금액은 그래서 135,850원 인데 ㅋㅋㅋㅋㅋㅋ어떡하지 ㅋㅋㅋㅋㅋㅋㅋ갖고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얼마나 뽀대날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크리스마스 선물 고고씽? 어떡하죠.. 여러분 나 어떡해? 여러분이 나라면 어떡할건가요? 그런데 여러분은 내가 아니다.... 


인생..


그리고, 마사 누스바움 신간 무슨 일이야. 아 갖고 싶다..

















그리고 이 책들도 넣어뒀는데!!
































한나 아렌트, 마사 누스바움... 아 여러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아 오랜만에 연애 욕망 돋는다. 애인한테 한나 아렌트 셋트 사달라고 하게. 한나 아렌트 전집 사주는 애인 너무 멋지지 않나요....


한나 아렌트 셋트가 아니라 한길 셋트라서 욕망 많이 사라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 메뉴나 생각하자.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2-12-05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침착하자. 책 어디 안가..

- 2022-12-05 10:05   좋아요 0 | URL
근데 한나 아렌트 그 세트는 어디 갔다는 거…. 후…

다락방 2022-12-05 10:39   좋아요 1 | URL
저거 한길 세트네요 아렌트 세트가 아니라. 너무 다행이다. 침착할 수 있어!! 나는 아렌트 세트를 기다리는 걸로..

수이 2022-12-0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을 좀 새로 해서 내면 더 좋을 거 같은데 말이죠 힝

다락방 2022-12-05 10:38   좋아요 0 | URL
저도 아렌트가 번역 새로해서 나오면 좋겠어요. 그러면 정말 닥치고 구매!!
이거 한길세트라서 침착해집니다. 후훗.

거리의화가 2022-12-0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렌트 세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좀 아쉽더라구요.

다락방 2022-12-05 10:38   좋아요 1 | URL
어휴 거리의 화가 님 덕에 제가 진정할 수 있네요. 이게 아렌트 세트가 아니라 한길 세트라서 제가 침착할 수 있습니다. 안사도 된다, 안사도 된다. 만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만 보고 흥분했어요. 휴..

- 2022-12-0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릭홉스 봄 이랑 아담 스미스는 사고 싶다 ㅋㅋ 나 대학생 때였으면 샀는 데 ㅋㅋㅋ 이제 페미 됏지롱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12-06 08:53   좋아요 0 | URL
저는 다 알고 싶고 읽고 싶긴 한데 저걸 사봤자 지금 읽을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렌트 세트를 원합니다. 후훗.

잠자냥 2022-12-05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에 이거 보고 예쁘다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패스…. (요기 달린 댓글들과 거의 비슷한 이유)

다락방 2022-12-06 08:52   좋아요 0 | URL
저도, 한나 아렌트 세트가 아니라서 패스가 가능해지는 부분!! ㅋㅋㅋㅋㅋ 한나 아렌트 세트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 모르겠다 좋은건지 아닌건지.. ㅋㅋㅋㅋㅋㅋㅋ

붉은돼지 2022-12-05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이 세트를 보고 사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꾸역꾸역하는 것을 참다가, 참다가, 참다가, 참을 인자를 세 번 쓰고는, 내 살 많은 허벅지를 두번 푹 쑤시고,,,,,, 참긴 참았는데..,,,,,,내 참.......다른 세트를 주문하고 말았습니다. ㅜㅜ 108,000원짜리 세트를!!!
더하여 위에 계시는 공쟝쟝님(쟝님의 이름을 발음할 때는 입술의 움직임이 조금 과도해서 나름 신경을 집중하고 말해야 정확한 발음이 가능한 것 같은데요,,,,,게다가 그 밑에 계시는 잠자냥님은 왠지 쟘쟈냥으로....발음하여야 할 듯하구요...) 쓸데없는 소리는 각설하고요, 쟝님의 페이퍼 보다가 교보 장미의 이름 완전판 에센셜을 또 구입하고 말았답니다. 좀전에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네요. 빨리 퇴근하고 싶어 못살겠어요 ㅜㅜ

- 2022-12-05 21:33   좋아요 0 | URL
만족하실겁니다 ㅋㅋㅋ 이거 참 붉은 돼지님께 집에 가야할 이유를 만들어드리다니 (쿨럭)

다락방 2022-12-06 08:52   좋아요 0 | URL
붉은돼지 님, 108,000원 세트는 어떤건가요? 안살거지만 궁금해요.ㅋㅋㅋㅋ
저는 어제 블랑카 님 서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역되어 나온 셋트 보고 아.. 아... 이러고 저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12-0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렌트 세트면 또 사야하나? 했는데 아니군요.. 아렌트 세트도 다시 내어달라!

다락방 2022-12-06 08:4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아렌트 세트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큰 돈 나갈 뻔 했어요. 후훗. 그렇지만 아렌트 세트도 다시 내어달라, 내어달라!!

책읽는나무 2022-12-05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책 예쁘다!!!!
근데 가격이 넘 후덜덜하네요ㅜㅜ

다락방 2022-12-06 08:49   좋아요 1 | URL
네 저는 만약 한나 아렌트 세트였으면 바로 질렀을 것 같아요. 한길 세트라서 제 자신을 자제시킬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12-06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혹하네요. 나빳어요, 다락방님. 이런거 자꾸 보여주고.

다락방 2022-12-06 08:49   좋아요 1 | URL
예쁘죠.. 뽀대나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바람돌이 2022-12-06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길 그레이트북스 진짜 디자인 구린데 왠일이래요? ㅎㅎ
저는 이제 아무리 멋져도 제가 읽지 못할 책은 눈돌리지 않는것으로.....ㅠ.ㅠ

다락방 2022-12-08 12:00   좋아요 0 | URL
저도 저거 사봤자 꽂아두기만 할 것 같아서 꾹 참으려고 합니다. 사실.. 10만원 이상이라는 큰 금액이 저로 하여금 참는데 딱히 힘들지 않게 했답니다? 껄껄..

따라쟁이 2022-12-0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욕심은 끊임없이 생겨나요.. 저도 책장이 가득 찼지만 계속 책을 사들이고, 만화책과 그림책까지 보태져서
정말이지... 근데. 이거 사고 싶어요. 네, 뽀대날것 같아요.

다락방 2022-12-08 12:01   좋아요 0 | URL
만화책과 그림책까지 사모으면 정말로 책장에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공간 너무 많이 차지하잖아요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 세트는 지적인 뽀대가 샤라라랑 밝혀주니까 .... (이하 생략)
 

자, 이 얘기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어느 얘기를 먼저 할까. 


금요일에 만난 친구와는 제법 오래된 사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의 만남은 2009년 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에겐 우리 둘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더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여러명이서 만났었고 따로 둘이서만 만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아마도 그 친구가 외국에서 거주할 때를 빼고는 일 년에 두어번 정도 만나면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아니다, 외국에 거주하던 친구가 한국에 들르러 오면, 그 때도 나를 만났다. 유럽에 머물다 들어왔을 때는 친구의 피부가 까매져있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좋아서 꺅꺅 거리던 기억이 난다. 너무 멋있어, 하면서! 그 친구는 유럽에도 있었고 북미에도 있었다. 나를 알기 전에는 서호주에도 있었다. 

금요일에 친구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만나던 그 때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그 때 마음이 뜨거웠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를 벗어난 다른 관계들에 대해 얘기하며 어떤 마음은 집착이 되었고, 집착은 사랑이었을까, 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런데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너를 엄청 많이 좋아했는데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너로부터 응답을 받았기 때문인것 같아."


나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이야, 너는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한 적이 없어! 아니야, 나 너 되게 많이 좋아했어, 해서 아니야, 나는 그렇게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이러면서 투닥거렸다. 좋은 시간이었다. 깔깔대고 우리는 웃었다. 그리고 친구는 사실 이 모든 대화의 전에, 몽상가들의 그 친구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몽상가 친구와는 안 본지 오래되었고, 그 친구가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나랑 이제는 아무 상관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그리고 그 친구의 손을 놓은건 사실 나였는데, 그런데 그 소식은 내게 충격이었다. 나는 양꼬치를 구우면서 소주잔을 들고, 그 자리에 없는 몽상가 친구에게 건배했다.


잘 가라, 잘 살아라. 굿바이.


한동안 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충격이었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결혼하지 않고 살아갈거라 생각한걸까. 나는 친구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 북플을 열고 글을 썼다. 뭐라도 해야 했다. 몽상가들 그 사람이 결혼했다고. 그 충격이 나를 그 술자리 내내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소식을 내내 모른 채로 살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몽상가와 나 사이에 친구가 있어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친구는 내게 말하지 말아야 했을까, 물었고 아니 잘 말했다고 했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낫다.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 아침, 모든게 다 제자리였고 나는 괜찮았다.


그리고 어젯밤,

오, 윌리엄을 읽었다.

















몽상가 친구에 대해서라면 우리 사이에 다른 관계들이 있어 이렇게나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신변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식이 궁금한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서 내가 그 사람의 소식을 알 수 없는 경우. 그 사람의 소식을 알고 싶다면 기어코 내가 손을 뻗어야 하는 경우. 그러면 참고 참고 참으면서 그저 잘 지내겠지,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 때 그 사람을 괴롭히던 것들은 해결됐을까?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가끔은 우연히라도 마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면 반갑게 인사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어머님은 건강하신지, 그런걸 묻고 싶은데. 가끔, 아주 가끔씩이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좋을텐데.



그래, B 라고 하자.


B와 헤어지 뒤 반년쯤 지났을 때, 나는 그에게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가 응답을 해줄지 어떨지 모르면서 말을 걸었다. 그는 바로 응답해주었고, 우리는 헤어지고 반 년이 지난 뒤에 깔깔대며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 통화에서 그가 내게 사과를 했다. 우리가 헤어졌던 방식에 대해서, 그 때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 일에 대해 그를 원망하긴 했지만, 그건 그 방식 때문은 아니었다. 헤어짐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런 한편, 그렇게 말하기까지 그에겐 얼마나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을까를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그가 내게 사과를 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반 년이 지난 뒤에, 그 때 그 일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어, 그는 내게 사과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사랑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헤어진 뒤로 우리는 이런거의 정확히 이런ㅡ대화를 꽤 오랜 세월에 걸쳐 나누었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서로에 대한 사과의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윌리엄에게도, 내게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직조물의 일부다.

우리에게는 그 순간 그런 말을 하는 게 전적으로 적절한 일 같았다. - P164



어제 오, 윌리엄을 읽는데 어김없이 B 의 생각이 났다. 윌리엄과 B 는 공통적인 지점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같이 했던 시간에 대해, 고통을 주었던 과거의 시간에 대해 사과를 한다. 윌리엄은 루시와 결혼 시절 바람을 피웠다. 윌리엄의 사과는 반드시 이 일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루시도 윌리엄에게 사과를 한다. 루시는 자신이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 순간 옳지 못한 행동을 해서 잘못된 엄마였던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 루시와 윌리엄이 이혼한 뒤 윌리엄도 루시도 다른 결혼을 했고 다른 배우자와 살고 있는데, 그들은 아직 가끔 만나고 이렇게 가끔 사과를 한다. 여전히 어떤 순간에는 상대가 밉기도 하다. 그리도 다시 어떤 순간에는 바로 이 지점이었어, 라는 감탄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사과하는 그들이 있었고, 그리고 루시의 자책-나는 그때 못되게 굴었어-에 윌리엄은, 당신은 나쁜 사람인 적이 없다고 달래준다. 물론, 당신은 당신에게만 몰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한다는 서운함에 대한 토로도 다른 시간엔, 있다. 오랜 시간 그들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이어져왔다. 루시 바튼의 말대로, 


그것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직조물의 일부다.



어릴 적 한 동네에 사는 친구의 엄마는 베틀로 직조하는 분이셨다. 그 집에 놀러가면 친구의 엄마는 발로 밟아가며 세로로 쭉 늘어진 선들 사이로 다른 선을 넣고 딱딱 각을 맞추고 또 발로 밟아 여기로 온 선을 저 방향으로 넣는 일을 반복하며 한 장의 직조물을 만드셨다. 이미 세로로 펼쳐진 실들 사이로 다른 실을 집어 넣는일, 그것을 꾹꾹 누르는 일, 그리고 발로 밟는 일, 그것의 반복이 한 장의 직조물에 필요하다. 


내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 내가 친구 1과 친구2와 그리고 B 와 맺는 관계. 이것이 우리 사이를 이루는 직조물의 일부일 터. 우리는 꾸준히 오래 함께 그 직조물을 이루어가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끊어져버리기도 한다. 더이상 직조하기를 원치 않는 한 쪽의 의지가 발현되면 별 수 없다. 먼훗날 우리가 돌이켜보며 이것이 우리의 직조물의 일부야, 하기 위해서는 직조하는 너와 내가 필요하다. 


윌리엄은 일흔한살이다. 그에게는 세 번의 결혼이 있었다. 모든 아내들이 그를 떠났지만, 그러나 윌리엄은 처음 결혼했던 아내 루시와 여전히 연락하고 그가 무서운 순간에 루시를 찾는다. 루시 역시 두번째 남편이 죽고나서 무얼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윌리엄에게 연락한다. 어떤 관계들은 왜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지 그리고 왜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지 그리고 왜 그런 식으로 끝맺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든 것은 당신과 나이며 함께한 시간들이다. 일흔한살의 상대를 여전히 만나는 일이, 그러니까 지금은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 않아도, 내가 말이야 비행기를 타고 저기를 가야 하는데 혹시 같이 가줄 수 있어? 라고 물어보는 게 가능한 사이가, 도착해서는 이제 각자의 방을 따로 잡아야 하지만 그렇게 함께 가는 사이가, 나는 좀 좋다. 여전히 실망할 게 남아있다 할지라도 인간은 원래 나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실망하고 또 다시 사랑하면서 사는 거잖아. 무엇보다 그들 에게는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나는 그 지점이 좀 아프게 부러웠다.


















친구들과 함께《Oh William!》 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도 읽는 동안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오래된 관계와 그들 사이의 사람들,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이 어른이 된 내게 미친 영향, 가난에 대한 이해,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에 대한 욕망부터 비슷한 사람에 대한 안정까지. 그리고 사랑받고 싶었던 욕망도.


어제 한자리에서 번역서를 다 읽었다. 아껴 읽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다는 말도 부족한 소설이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22-12-0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겁나 읽고 싶네요 ㅜㅜㅜ 하지만 저는 빌레뜨 빼들었습니다. 벌써 12월도 5일이네요 ㅜㅜ 다미여 달리고난 뒤에 나에게 상주는 마음으로 읽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쨌든 잘 읽었습니다.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에 대한 욕망부터 비슷한 사람에 대한 안정과 사랑 받고 싶었던 욕망..이라니. 끝내준다.

다락방 2022-12-05 10:40   좋아요 0 | URL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계급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너무 좋네요. 마틴 에덴에서도 너무 좋은데 스트라우트도 정말. 샐리 루니까지. 사랑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빈부의 격차- 너무 훌륭하게 펼쳐주셔서 진짜 땡큐 베리 머치고요. 스트라우트는 어떻게 이렇게 책을 읽을 때마다 좋은건지. 오 윌리엄 진짜 좋네요. 짱 좋다.
나도 이제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가야하는데...

- 2022-12-05 10:51   좋아요 1 | URL
루시바턴에서 가난한 집 딸인 거 ㅠㅠ 나올때 부터 난 스트라우트 사랑했어요 ㅠㅠㅠㅠㅠ 계급 ㅜㅜ 나 계급 좋아 ㅠㅠ 근데 진짜 스트라우트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장난 없고… 그걸 정말 아무렇지 않게 써내는 거 같은 게 진짜 치임 포인트예요. 진짜 천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쓰더라고요? ㅋㅋㅋ 갑자기 또 진짜 천재 한 분 생각나네요 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2-12-0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리에서 원서 한 권을 다 읽으시다니... 완전 부럽!!! 저 이 책도 얼마 전에 사두었습니다. 서재에는 들어오면 안 된다니까요. 책을 사기만 해, 분명 이렇게 좋은 글을 읽고 이 책 읽고 싶어서 샀으면서 말이죠. 욕망과 안정.... 멋진 말입니다. 막 읽고 싶습니다. 저 책갈피 꽂아 둔 책만 엄청난데 큰일입니다. 인간은 왜 잠을 자야만 하는 걸까요ㅠㅠ

다락방 2022-12-06 13:46   좋아요 1 | URL
아뇨, 꼬마요정 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번역서를 다 읽은 겁니다. 원서는 현재까지 두 장 읽었나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도 사전 검색해가면서 이틀간 두 장 읽은 겁니다. 그런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ㅋㅋㅋㅋㅋ

꼬마요정 님, <오, 윌리엄> 은 너무 좋네요. 아, 진짜 이 맛에 소설 읽는 것 같아요. 너무 좋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천재천재 대천재 되십니다.
저도 어제 책 좀 읽고 잘라고 침대 헤드에 딱 기대고 앉았는데 한 장도 채 읽지 못하고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열 시에 잤습니다. 흠흠..

꼬마요정 2022-12-07 21:26   좋아요 0 | URL
아, 난독인가 봅니다. ㅋㅋㅋ 사진이 원서라 그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천재로군요. <올리버 카터리지> 재밌게 봤어요. 기대합니다^^

책 읽으려고 커피까지 마셨는데 왜 눈 뜨니 새벽인가요...ㅜㅜ 그것도 고양이가 깨워서 깹니다...ㅠㅠ

바람돌이 2022-12-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윌리엄을 한국어로도 읽고 원서로도 읽고.... 너무 좋네요. 물론 저는 못하지만..... ㅎㅎ
저는 뭐랄까 인간관계에서 한번 인연이 끊기거나 마음이 떠나면 사실 다시 그 사람 소식을 듣거나 연결되거나 이런거 좀 싫어한달까요? 옛날 애인 소식도 안듣는게 최고라는 마인드라.....ㅎㅎ
다락방님의 애틋한 마음은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네요. ^^

다락방 2022-12-08 12:05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로 한 번 인연이 끊기면 다시 연결되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우연히 마주칠까 두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에 대해서만은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고 소식을 듣고 싶다, 예외가 있죠. 아마도 헤어짐이 나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왜 그 심리학자 있잖아요, 이고은이요. 이고은이 <마음 실험실> 에서 이렇게 말했거든요.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 이고은, 《마음실험실》,P207>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저는 이 케이스인것 같아요. 크- 아련해지네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