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면서 견딜 수 있는 모멸감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나는 어제 저녁에, 아마도 여기까지가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이 들기 전까지 했다. 어제는, 정말이지, 너무 치욕스러웠다. 제대로 고용주한테 갑질을 당했고, 이걸 내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당장 드럽다고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또 너무 부끄러웠다. 저녁 밥도 건너뛰는, 아주 늦은 퇴근을 하고, 이 상황에 같이 맞닥뜨린 다른 직원들과 소주를 한 잔 하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혼자 울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답이 나오질 않아서. 그냥 나가버리는 게 누가 봐도 속시원한 답인데, 그건 그냥 일시적인 답일 뿐이었다. 내가 지금 당장 나가면 저 꼴을 다시 안봐도 되지만, 이 자리의 누군가와 다른 직원들은 계속 볼 것이고, 또 내가 다른 직장을 들어간다면, 아마도 다른 형태의 갑질에 노출되겠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산다는 게 뭐지?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나는 계속 이런 감정을 수시로 느껴야 하나? 이렇게 바닥에 쳐박힌 것 같은 느낌을 견뎌야 하고, 너덜너덜해진 자존감을 부둥켜 안으며 살아야 하나?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 밖에 없는건가? 

어제 택시 안에서 줄줄 눈물 흘리면서 이런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갑자기 '아나스타샤'와 '그레이'가 생각났다. 아, 그레이... 그레이를 만나고 싶다.



일전에 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두 번째 편을 보고서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fallen77/9135173


요약하자면, 그레이는 아나스타샤가 일하지 않아도 될만큼 아주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서 아나스타샤한테 사고 싶은 거 사라고 막 돈도 주고, 아나스타샤가 다니는 회사도 살 수 있고 그런 사람인데, 이런 사람하고 결혼했다가 경력단절 온다, 나중에 헤어져도 나는 먹고 살아야 되니까 내 능력이 있어야 된다, 뭐 이런 얘기였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레이를 선택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써놨더랬다. 

어제 택시안에서 이 글 생각이 났던 거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을 뒤집었다.

나한테 그냥 꼼짝없이 집에만 있으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어떤 조건이 됐든 다 들어줄테니,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에게 계약하자고 했던 그런 계약서에도 싸인할테니, 주인으로 받들어 모실테니, 경력단절 걱정 안할테니, 말대꾸 하지 말라면 안할테니, 나를 소유물로 간주한다면 그것도 내버려 둘터이니, 그레이랑 결혼하고 싶어졌다. 그레이랑 결혼해서 그레이가 주는 큰 돈 받아 쓰면서 살고 싶어졌다. 생각 같은 거 안하면서, 고민 같은 거 안하면서, 그러면서 그냥 주는 돈이나 쓰면서 살고 싶어진 거다. 그리고 조금 더 큰 바람이 생겼는데, 그레이랑 결혼해서 그레이한테 우리 회사를 사라고 하는 거다. 내가 다녔던 회사 사버려, 그리고 오너를 내쫓아버려!! 그러면 나를 니 맘대로 해도 내버려둘게. 니가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까, 나를 밥벌이의 전쟁터로 보내지 말아줘.... 



이런 마음이 된거다.



어제의 나를 아는 엄마는 오늘 내게 잘 잤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코피를 멈추느라 코에 휴지를 돌돌 말아 꽂고 있었다. 엄마는 너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어떡하냐 물으셨고, 나는 엄마한테, '엄마 나는 나 돈만 안벌게 한다면 그게 누가 됐든 결혼하고 싶어졌어, 아무 생각 없이 살테니까, 아무 말없이 살테니까, 돈 많은 놈한테 시집가고 싶어' 라고 했다. 엄마는 '그래, 잘생각했다' 하시면서, '너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중에 그런 남자 없어? 연락해봐' 하시는 거다.



"엄마, 없어...다 꼴도 보기 싫어..."




이러고 나는 또다시 회사로 출근한 것이다.............................인생............................내게는 그레이가 없어........................그레이 같은 놈 만나본 적도 없어..........................내가 아나스타샤가 아니기 때문인거야? 세상의 모든 그레이들은 어디에서 아나스타샤를 찾는거지?






어제 점심엔 혼자서 좀 먼 데 있는 식당으로 눈누난나 걸어갔다. 이어폰에서는 심규선의 새로운 앨범이 재생되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차돌박이를 먹으러 갔다. 차돌박이를 앞에 두고 먹으면서 심규선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아아, 이건 뭐지, 갑자기 구슬픈 가사가 귀에 쏙- 박히는 거다.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행복…. 하소




뭐라고??? 어떻게 그래???? 어떻게 가라고 하고, 발병도 나지 말고, 행복하라고 할 수가 있어? 어떻게 그래? 뭐야? 이건 바보야 미치게 착한 거야? 이것이 소위 말하는 그 진정한 사랑...뭐 그런 거야? 그러면 나는 진정한 사랑 안할래. 이게 뭐야 등신같이... 어떻게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하라고 해!! 난 못해!!! 네가 불행하길 바라진 않지만, 나랑 지낼 때보다는 덜행복해야해!!



막 이런 마음이 되어가지고 울먹울먹 차돌된장찌개를 떠서 밥 그릇에 넣고는 슥슥 비벼서 밥을 먹는데, 어라? 얘 좀 보소? 글쎄, 이러는 거다. 그러니까, 저렇게 말하면서, 안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짜 마음'은, 이렇다는 거다.



마침표 없는 문장을 가득히 눌러 안고
안으로 외치는 말

가지 마소 가지 마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멀리 멀리 저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두고 가신 임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소
아라리요, 아라리야 끝내 떨치고 가신 임아
돌아보소…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속으로는 저러고 있었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심규선, 당신은 또 한 곡 해냈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또 내 가슴을 찢어놓는구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심규선 콘서트 예매해놨는데, 아아, 정말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 가기 전에 신곡 들어보고 가야지, 했던 거였는데, 아아, 이런 보석 같은 노래가 있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심규선은 진짜 ㅠㅠ 가끔 완전 내 안에 들어갔다 나왔나 싶을 정도의 노래를 만들어내는데, 그래서 여전히 내 아이폰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곤 하는데, 콘서트도 내가 다 갔는데, 아아, 이번에 또 한 번 해냈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 노래를 심규선이 부르는 걸 듣노라니, 콘서트에서 꼭 보고 싶어졌고, 아아, 어쩐지 이 노래 부르다 심규선 울지 않을까 싶은 거다. 심규선이 이 노래 부르다 울면...나도 울어야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같이 울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심규선 진짜 내 영혼의 썅둥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출처] 심규선(Lucia) - 아라리(2017)|작성자 열혈공부part2

막 이런 마음이 되어가지고 울먹울먹 차돌된장찌개를

막 이런 마음이 되어가지고 울먹울먹 차돌된장찌개를



그래서 이 노래 들으며 멍하니 창밖을 보고, 아아, 가지 마소... 막 이러다가 정신 차려보니, 내 앞에는 차돌된장찌개가 놓여있었고, 아아, 이미 슬픈 감성에 쩔어버린 나는 밥맛이 훅- 떨어져버린 거다.



어라? 어쩌냐..밥맛이 훅 떨어져버렸네.

.

.

.

.

.

.

.

.

.

.

.

.

.

.

.

나는 차돌된장찌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흐음, 밥맛이 떨어졌어, 어떡하지....하다가, 다시 슥슥- 밥을 비볐고, 그렇게 남김 없이 다 먹었다. 그리고 노래를 들으면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도 찬, 서리 같은 마음 어찌 품었나

너는 하오에 부는 바람만큼 온화했는데

우는 날 떼놓고 걸음 어찌 걸었나

하염없이 비 내릴 때 너도 억수처럼 울었나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행복. 하소

 

연무처럼 흩어지는 맘 어찌 붙잡나

너는 그믐에 피는 손톱달처럼 저무는데

기어이 돌아서는 널 어찌 탓할까

너는 아무도 몰래 받을 벌을 다 받았는데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언약과 증표 가련한 맹세여 다시없을

사람

마침표 없는 문장을 가득히 눌러 안고

안으로 외치는 말

 

가지 마소 가지 마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멀리 멀리 저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두고 가신 임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소

아라리요, 아라리야 끝내 떨치고 가신 임아

돌아보소

 

간 밤에 꾼 꿈결인 듯 전부 다 잊고 행복 하소

나를 두고 가신 임아 누구보다 더 행복 하소

행복. 하소.






어젯밤에 집에 돌아가서 남동생과 맥주를 한 잔 하고, 내 방에 돌아와서는 내 소중한 책장 앞으로 가서 《올리브 키터리지》를 꺼내두었다. 내일 출근길에 읽어야지, 하고 가방 옆에 두었고, 오늘 가지고 나왔는데, 오늘 출근길에서는 한 장도 읽지 않았다. 오늘부터 읽어야지. '우리 심장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마' 라고 했던, 그 대사가 나오는, 그런 책이다. 



















"말해요." 몹시 침착했다. 그녀는 한숨마저 내쉬었다. "제발, 얘기해줘요." 제인이 말했다.

어두운 차 안에서 가빠진 그의 숨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녀의 숨결도 거칠어졌다. 제인은 말하고 싶었다. 이런 일을 겪기엔 우리 심장이 너무 늙었다고. 이런 일을 계속 우리 심장한테 시키면 안 돼. 당신 심장이 이런 일을 견뎌낼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 (p.246)




6월 1일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7-06-0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란게.. 신기합니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이 모멸감이든 안도감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훅 치고 들어온다죠.. 하아 고생하셨어요. 비록 그레이는 없어도.. 그 그레이가 돈을 주면 결국 그가 갑질 상사가 되어버릴테니.. 그냥 잊어요ㅠㅠ 망각은 신의 선물 같으네요ㅜㅜ

저도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어요ㅠㅠ 다만 다락방님이 힘을 내면 좋겠어요~

다락방 2017-06-01 15:1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레이랑 결혼하면 또 그레이한테 속박당하겠죠. 내가 네 덕에 밥벌이에서 벗어났다...라면서 그레이에게 구속감을 느끼겠죠. 아아, 인생에는 진짜 정답이 없는가봐요, 꼬마요정님.

고마워요. 힘내라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기운낼게요.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거니까요.... 아하하하하.

2017-06-01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이슨 2017-06-0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소한의 돈으로 최소한의 삶을 살면 됩니다
저처럼요
 

















열네 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수업이었다. 콜먼은 처음 몇 강 동안은 학생들 이름을 익히고자 강의 시작 전에 출석을 불렀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된 지 오 주가 다 되도록 출석을 부를 때 대답이 없는 학생이 두 명 있었다. 육 주째에 콜먼은 이런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 두 학생에 대해 아는 사람 없나요? 이 학생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나요, 아니면 유령spooks 인가요?" (p.19)



콜먼은 대학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있고, 그의 강의는 인기가 많았으며 대학내에서 단단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학장을 지내기도 했고 학교 분위기를 싹 바꿔놓기도 했던 것. 그런데 인종차별 혐의로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중 '유령 spooks ' 가 유령과 '흑인'을 가리키는 단어였고, 공교롭게도 오 주가 다 되도록 출석을 부를 때 대답하지 않았던 학생이 흑인이었던 것. 보이지 않는 존재, 출석하지 않았던 학생에 대해 유령이냐, 물은 것이, 흑인이었던 당사자들에게는, '흑인이냐'로 들렸던 것이고, 이에 해당학생은 교수를 학교에 고발해버리는 것이다. 



콜먼은, 문맥상으로 봐서 어떻게 내가 흑인을 혐오하는 뜻으로 저 단어를 썼겠냐며 열심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변호한다. 그러나 한 번 인종차별로 낙인찍힌 이상 그의 편을 들어주는 이는 없다.




"만약 우리가 사전에서 'spooks'라는 단어를 찾아본다면 첫번째 의미로 뭐가 나올까요? 일차적 의미는 이것입니다. '1.<구어>유령이나 귀신.'" "하지만 실크 학장님, 그 말은 그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두번째로 나와 있는 의미를 읽어드리지요. '2. <경멸조> 검둥이.' 그 단어는 이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학장님도 논리적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아시잖아요.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그 학생들은 여러분이 모르는 흑인인가요" "만약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할 작정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그 학생들이 흑인이라서 여러분은 그들을 모르는 건가요?'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아무도 그 학생들을 모르는 것은 혹시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인가요?' '그 학생들을 아는 사람 있나요, 아니면 그 학생들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흑인인가요?' 만약 내가 그런 의미로 말하려는 거였다면 바로 이런 식으로 말했을 거란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출석부에서 이름을 본 것 말고는 그 학생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들에 대해 아는 바도 전혀 없는데, 그 학생들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p.139)



나는 콜먼(실크 학장)이 자신을 변호한 대로, 유령을 빗대어 저 단어를 쓴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초반부터, 그의 입장은 상당히 억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콜먼이 운이 나빴네, 라고 생각했던 거다. 물론, 나는 콜먼이 운이 나빴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흑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태였던 게 아닐까. 늘상 흑인이어서 차별을 받고 혐오와 비하 발언에 노출되어 있었다면, 매번,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저 학생은 저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었고, 그러므로 저 단어에 대해서는 그 강의를 들었던 다른 학생들로부터 전달받았던 바, 그 학생은 당연히 저 단어에서 유령을 유추하기 보다는 '검둥이'라는 단어를 캐치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늘상 들었던 말이었으니까. 물론 그 수업에 들어가서 저 문맥을 그대로 다 들었다고 해도 나는 그 학생이 '으응, 이건 내가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어'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령을 뜻하는 하고 많은 단어중에 왜 하필이면 흑인을 비하하는 뜻을 함께 가진, 그 단어를 썼을까, 당연히 확, 그 단어가 기분 나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콜먼이 굳이 '인종차별 해야지' 라고 다짐하며 저 단어를 쓴 것은 아니었어도, 이미 인종차별과 흑인 혐오가 퍼져 있는 상황에서, 그의 상황이 면죄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비하와 혐오를 함께 가진 단어에 대해 입밖에 내려면,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콜먼의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적극적으로 콜먼을 변호할 수 있었을까? 아니, 난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은 거다. 콜먼에게 '이 인종차별주의자야!' 라고 손가락질하며 등을 돌리진 않았겠지만, '너는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썼겠구나' 생각은 했겠지만, 좀 실망을 하긴 했을 것 같다. 말은 한 번 입밖으로 낸 이상 돌이킬 수 없고, 게다가 이미 아주 오래 혐오와 비하에 노출됐던 사람이라면, 숱한 단어들을 그냥 무심히 넘기는 것이 혐오에 힘을 실어주는 것쯤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 학생은 저 문맥을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왜그렇게 예민해?' 혹은 '피해의식이다' 라고 말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만, 그 학생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리액션이 아니었을까.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하고.




아직 1권도 다 읽지 못해서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1권의 절반을 넘긴 즈음, 콜먼 역시 '옅은 색의 흑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콜먼의 아버지는 항상 백인 사회에서 흑인을 혐오하는 것에 대해 콜먼에게 말해주곤 했는데, 혐오와 비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백인이 너희를 대할 때는 항상." 아버지는 가족을 모아놓고 늘 말했다. "그 백인이 아무리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가정을 깔고 있기 마련이다. 말이나 표정, 말투, 조바심 같은 것으로, 심지어 정반대의 관대함으로, 자비심을 한껏 드러냄으로써 직접 표현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아무튼 백인은 늘 너희가 멍청이라고 생각하며 너희에게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러다 너희가 멍청이가 아닌 것 같으면 놀랄 거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빠?" 콜먼은 묻곤 했다. 혐오감도 혐오감이지만 그보다는 자긍심 때문에 아버지는 좀처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p.167)




상대방이 나보다 멍청할거라고, 나보다 아는 게 적을 거라고, 당연히 너는 그걸 모를 거라고, 니가 그걸 알 리가 없다고, 내가 너보다는 모든 걸 많이 알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격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능의 문제인 것 같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전제하지 않는 건, 멍청이다. 지능이 딸리는 거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알 수 있다, 라는 것쯤을 미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배려심이 없는 게 아니라 진짜 무식하고 무지한 거다. 뇌에 그런 게 들어가있지 않은 것이므로, 무식의 또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네가 그걸 알 줄 몰랐지', '네가 그걸 잘할 줄 몰랐지' 라니, 뭘 그렇게 다 몰라. 그렇다면 너는 모자란 인간인거야.





이 책에서 콜먼은 아내가 죽은 후에 34살 차이나는 여자와 섹스파트너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학장으로 있었던 대학에서 청소를 하는 여자인데, 여자는 30대이며 남자는 70대인 것. 남자는 이 여자와 섹스파트너를 유지하며 삶을 지속시키고 싶기 때문에, 비아그라를 복용한다. 비아그라는, 뭐지? 아니, 성욕..뭐지? 그보다는 섹스가 뭐냐 물어야 하는걸까. 일흔이 넘어도 변함없이 섹스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혹은 40년이 지나도, 섹스하고 싶다고 매일 욕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면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 뭐가 나쁠까. 그런데, 섹스 뭐길래, 약까지 먹어가면서 해야되나...막 이런 생각도 들고.... 비아그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만 하는걸로... 이건 좀 생각이 복잡하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골절로 인한 수술 때문인데, 때문에 울엄마는 옆에서 내내 병간호 중이시다. 수술은 잘되었고, 나는 어젯밤 아홉시 넘어 할머니가 입원하신 병실을 찾았는데,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병실 호수는 알았지만 할머니 침대가 어디인지를 모르겠는거라.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있고 조용해서, 아아, 여기서 내가 울할머니랑 울엄마를 어떻게 찾나 싶은 거다. 만약 내가 "엄마!" 하고 부른다면, 6인실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 중에 많은 분들이 고개를 내밀 것 같은 거다. 흐음. 그러다 퍼뜩 생각난 게 이름이었다. 다른 사람은 안내다보고 우리 엄마만 내다볼 수 있는 호칭! 이름!! 그래서 나는 나지막하게 엄마의 이름 석 자를 불렀다.



"권**!"




그러자 이내 '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우리 엄마 목소리였다. 어라? 근데 첫번째 침대인지 두번째 침대인지 살짝 헷갈리는데? 그래서 다시 한 번 불렀다.



"권**!"



그러자 첫번째 침대에서 엄마가 네~ 이러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야, 너 오지말라니까 왜왔어, 누가 내 이름 부르나 했네,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나는 너무 천재적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똑똑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름 부를 생각을 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영특하다 영특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똑똑함에 내가 반했다! 아아, 나는 나한테 이렇게 수시로 반해... ♡♥♡♥






양재역에는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우동집이 있다. 매번 저거 한 번 먹어봐야지, 했다가, 드디어 오늘! 주문을 하고 내 번호가 뜨기를 기다렸다. 공부할 때는 1등 한 번도 못해봤지만, 우동을 주문하는 데는 1번이었다.





히힛. 우동이 나왔다. 김밥도 시키고 싶었는데 김밥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더라. 흐음. 나는 먹고 얼른 출근해야 하는데? 그래서 우동만 하나 간단하게 시켰다.




아아 좋아. 내가 딱히 우동을 좋아하진 않는데, 양재역 모닝우동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 나는 후루룩 후루룩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국물도 떠 먹으면서. 마침 아주 배가 고팠다고. 이거 먹을라고 집에서는 아침을 안먹었다. 도넛츠만 조금 먹었어.. ( ")



그리고, 클리어!!! 클리어했다!1



난 저렇게 핑크빛 들어간 예쁜 어묵 싫어한다. 아니, 어묵 자체를 별로 안좋아해. 그래서 어묵은 빼고 다 먹었다. 헤헷. 히죽히죽. 절로 웃음이 나와... 역시 사람은 배가 불러야 되는구나. 배가 부르다며, 둥그렇게 나온 배를 쓰다듬으면서, 출근을 위한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후 버스가 왔는데, 환승이 되더라. 아아, 지하철역에 내려 환승 가능한 시간안에 우동을 먹고 그렇게 환승을 해서 버스를 타다니.... 좋구먼...... 행복하다 ♡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지내야겠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는 문득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건..집에 있나?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가 나오던, 맨 앞의 단편, <약국> (맞나?)을 읽고 싶다. '너의 손을 놓지 않을게' 라고 말했던 그 뒤의 단편도, '우리 심장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마' 라고 말했던 또 그 뒤의 단편도...아아, 나는 새로운 책이 쌓여있는데, 왜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 또 읽고싶은 거지? 왜죠?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7-05-3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저 핑크 우동 좋아해요. 모닝우동 좋네요. 난 모닝볶음밥 먹었어요! ^^ 휴먼스테인 저런 내용이었어요?!!!! 근데 필립 로스 불편하고 무서워요.

다락방 2017-05-31 10:45   좋아요 0 | URL
저는 어묵도 별로 안좋아하고 우동도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우동 클리어 ㅋㅋㅋㅋ
휴먼스테인은 사실 노인과 젊은 여자의 육체적 사랑..에 대한건가 싶어 읽었는데(응?), 다른 내용들이 굵직하게 나오네요. 꼼꼼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유부만두 2017-05-3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닝 운동 대신 모닝 우동....의도적이죠? 메뉴선택?

다락방 2017-05-31 10:45   좋아요 0 | URL
모닝 운동은...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네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05-3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모닝 독서 모닝 운동으로 읽은걸까요...
모닝마다 지덕체를 고루 단련하는 깨치신 분이시다ㅡ하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우동사진이 등장해서 제목 다시 한번 확인하고 왔어요ㅎ

다락방 2017-05-31 10:46   좋아요 0 | URL
아마도 모닝 우동 보다는 모닝 운동이 더 익숙한 표현이어서가 아닐까요. 살면서 모닝 우동이란 말, 몇 번이나 들어보셨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처음....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닝마다 지덕체..라뇨. 무슨 말씀을. 지덕체..같은 걸 제가 가지고 있을리 없잖아요. ㅋㅋㅋㅋㅋ

별족 2017-05-3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혐오표현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모른다,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 걸 아는데도, 피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맥락들조차 혐오스러운 것들 말이죠. 게다가 가끔은 그저 우리말이 혐오표현이라고 해서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벙어리는 혐오표현이라 언어장애인,이라고 해야 한다더라구요.

다락방 2017-05-31 10:48   좋아요 0 | URL
저는 ‘병신‘이요. 병신이란 걸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욕이라고 생각해서 내뱉었었는데, 그게 장애인 혐오라고 해서 스스로 부끄럽고 당황하고 그랬었어요. 제가 또 알게모르게 그런 걸 얼마나 쓰고있는걸까 싶고요. 생각 없이 쓰고 있지만 거기에 얼마나 많은 혐오가 있을까 생각하면 아득해져요. 네, 맞아요, 모른다는 게 면죄부가 되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혐오인가를 알고 배워야 한다는 것은, 뭔가 절망스럽기도 하죠. 그 좌절이 이해됩니다.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는데도 아득히 멀게 느껴져요.

단발머리 2017-05-3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애정하는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을 읽고 계시군요!
완전 반갑고 완전 멋짐요~~
32-3쪽의 콜먼의 등판에 대한 묘사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오늘은 제목이 짱이예요!
모닝 독서 모닝 우동이라니~~
모닝 독서 모닝 커피에 버금가는
이 화사하고 충만한 느낌적 느낌이라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5-31 12:11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하던 내용이 아니라서 당황했지만, 이 내용은 또 이 내용대로 아주 깊고 진해서 꼼꼼하게 읽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이에, 오늘 밤이나 내일엔 올리브 키터리지가 새치기를 할 것 같아요. 친구랑 같이 읽기로 해서요. 후훗. 저는 이렇게 필립 로스가 이 책에서 그러듯이, 이런 소설 너무 좋아요. 뭐라고 해야하나. 가볍지 않은? 묵직한? 깊은? 이런 거요. 너무 좋아요!! 책이 이렇게나 좋습니다, 단발머리님!!


모닝 우동 너무 좋죠! 제가 모닝 우동 하면서도 좋았고 쓰면서도 좋았어요. 역시 음식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배부르게 먹는 것은 저를 행복하게 해요. 맛있는 것,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지내자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어요. 뭐, 그동안 못한 것도 아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 충만한 느낌이 좋은데, 벌써 배가 고픕니다. 이제 점심 먹으러 가야겠어요. 차돌된장찌개 먹으러 갈거에요. 이히힛

2017-05-31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7-05-3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저도 내일 모닝 우동을 먹을까..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페이퍼네요 ~ ㅎㅎㅎ
아 배고파요... 지금 이걸 보고 있자니... 머리 속에서 우동이 자꾸 떠올라서.

다락방 2017-06-01 08:59   좋아요 0 | URL
지금은 벌써 다음날이 되었고 게다가 오전 아홉시가 되려는데, 어떻게, 비연님, 그 사이에 우동은 드셨습니까? 저는 아침에 카레에 비벼서 밥 먹고 왔어요. 점심은 뭘 먹어야 할지..
책상위엔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가 있습니다. 샷도 추가했어요! >.<

붕붕툐툐 2017-05-3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겟아웃‘이 생각나네요. 일상적으로 만연한 인종차별이라니.... 자신에게 반하시는 락방님 모습 넘나 귀엽고 사랑스러우세요~ 저도 반함~♡♥♡♥

다락방 2017-06-01 08:57   좋아요 0 | URL
전 아직 겟아웃 못봤거든요. 저도 꼭 보고 싶어요.

아하하하. 반하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븅븅토토님. 히히히히히. 씐나요~ 얼쑤~

레와 2017-06-0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 스테인]의 이야기는 결국 어디로 향할까, 다락방?! ㅎㅎ
진도가 팍팍 안 나가서 답답합니다.

얼른 읽고 영화 보고 싶은데.. 나는 영화가 더 보고 싶은걸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다락방 2017-06-01 16:21   좋아요 0 | URL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닌데, 이게 또 나름 괜찮아요. 뭔가 깊이 있는 이야기라서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데, 또 이렇게 막 명확하지 않은? 이런 내용이 마음에 들고요. 저도 또 올리브 키터리지가 새치기를 해서 진도가 언제 나갈지 알 수가 없숑. 그렇지만 어쨌든 끝까지 읽어보려고요. 어떤식으로 이야기가 끝날지 궁금해요!

clavis 2017-06-0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덕분에 삽니다♥진짜로요..나한테 잘 해줘야겠다,싶어요..또 많이 먹었다고 동그랗게 나온 배를 쓰다듬어 주기는 커녕 미워했는데..잘 해줘야죠^^!!!락방님..페미니즘이 따로있나요~인간해방=여성해방♥♥또또 배우고 갑니다♡생에 대한 사랑과 지혜가 가득하신 우리의 락방님♥그대의 모닝 우동을 축복합니당♡♡♡

다락방 2017-06-02 08:58   좋아요 1 | URL
아 클래비스님... 세상 소중한 존재네요 ♡
안그래도 칭찬 너무 듣고 싶었는데, 칭찬에 목말랐는데, 클래비스님이 막 나 쓰담쓰담 해주고 좋아해줬어. 아아, 감사합니다. 게다가 축복해주시다니, 아아, 클래비스님은 사랑의 화신인 것입니다. 사랑덩어리!! ♡
 
너에게 간다
















나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결말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토록 긴 여운을 줄 수 있는 거라고. 다른 결말이었다면 그 소설을 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할 순 없었을 거다. 그래서 오래전, 그 소설의 후속편이 나왔을 때, 읽지 말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읽었지만.


그런데 며칠전 다시 읽은 새벽 세시의 결말은,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나는 이미 후속편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그 뒤의 이야기를 읽어야만했다. 그렇게 어제 배송되어진 《일곱 번째 파도》를 읽는데, 아아, 나는, 답 없는 레오에게 집착하는 에미가 되어서... 몇 장 읽지도 않은 채로 눈물이 났다. 이미 보스턴으로 가버린 레오에게 메일을 보내보지만, 시스템 관리자로부터만 답장을 받는 거다. 얘랑은 연락 안돼..하면서. 새벽 세시의 나는 '레오'라는 남자를 사랑하는 '에미' 였는데, 일곱 번째 파도의 나는, 이미 어떤 선을 넘어가 버린 것 같다. 에미가 나의 현실이 되었고 내가 에미가 되었고, 그렇게 날 두고 떠난 레오에게 계속 말을 거는, 그런 에미가 되어서... 초반부터 눈물이 ㅠㅠ 



(자, 이제 스포일러 팡팡 터집니다!!!!!)



그런 에미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레오로부터 답장을 받는다. 보스턴에 가있는 9개월동안, 레오는, 현실을 살았다면서, 그래서, 현실의 여자친구를 만들었단다. 파멜라...



파멜라...



아, 이름부터 너무 육감적이야.... 싫어........아무 잘못도 없는 파멜라가 싫어. 파멜라를 싫어할만한 이유는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파멜라가 나에게 잘못한 거 진짜 1도 없어. 파멜라는 심지어 나의 존재 조차도 몰라. 그런데 나는 파멜라가 끔찍하게 싫다. 파멜라라니... 파멜라는 나의 존재도 모르고, 그러므로 나에게 해를 끼친 게 1도 없고, 잘못한 게 1도 없는데, 나는 파멜라가 너무 싫어.... 신경질나! 울고 싶어! 눈물나! 



왜?




나는 에미니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에미니까!! 나는 레오의 옆집 여자가 아니라, 에미니까! 레오의 동창1이 아니라, 에미니까!!!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쉐키가....파멜라를 사랑한대!!! 파멜라랑 사귄대!!!!!! 그러니까 내가 눈물이 나, 안나!!!!! 훌쩍 ㅠㅠ




일곱 번째 파도에서의 에미는 굉장히 레오에게 집착한다. 도대체 왜이러나 싶을 정도로 집착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집착했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그렇게 집착할 수 있었던 건, 그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레오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에미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니가 원하는 게 뭔데? 니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거야?' 하고. 에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기 위해 액션을 취한다. 대답없는 메일을 계속해서 보내고, 답을 보내라고 재촉한다. 끊임없이 기다리고,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바를 레오에게 알린다. 그런 한편,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걸 싫어하고, 자신이 무얼 싫어하고 무엇을 끔찍하게 생각하는지를 당당하게 밝힌다. 새벽 세시에서 자신의 남편인 베른하르트가 레오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알게 된 에미는, 당연히 분노한다. 내가 분노한 그 이유로, 에미도 분노한다. 나는, 내가 결혼했어도, 내 남편의 소유가 아니며, 너희들은 나를 '소유할 수 없고!', 자신이 아무리 레오를 사랑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 비록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기 위해 애를 쓴다. 




레오, 당신은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당신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배신당한 느낌, 물건이 되어 팔려버린 느낌이에요. 내 남편과 애인이 나 몰래 협정을 맺다니! 둘 중 한 사람이 나를 생상하게 느끼고 싶다면 다른 한 사람이 특별히 눈감아준다고요? 그러고 나서 한 사람이 영원히 사라져주면 다른 한 사람이 나를 영원히 갖는다고요?

어디서 주운 물건인 양 한 사람은 나를 원래 소유주인 내 남편에게 돌려주고, 다른 한 사람은 일종의 보상금으로 환상 속 인물과의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만남', 성적 모험을 허락하는군요. 정확한 분배, 완벽한 이별, 비열한 계획이에요. (p.150-151)




나는 에미의 이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내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분노는 마땅한 것이며, 표현되어져야 했다. 또한, 자신이 한 짓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레오와 베른하르트를 그려준 것에도 매우 고맙다. 자신들이 한 짓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걸 스스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작가인 다니엘 글라타우어에게 매우 고맙다. 베른하르트는 자신이 '사랑해서' 한 짓이라고,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에서 저지른 짓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봤자, 자신이 한 짓이 옳지 못한 행동이란 걸 알고 있다. 




일전에, 《비를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읽으면서도 썼었지만, '내가 혼자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은 한계가 있다. 고작해야 내가 생각하는 선에서만 답이 나올 뿐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고민을 풀어나가고자 하면, 그 답은 내가 생각해내지 못한 부분에서 나올 수도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아주 좋은 답.

레오는 에미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에미의 곁을 떠나는 거였다. 에미를 두고 떠나는 거. 그리고 이제, 시간이 아주 흐른 후에, 자신이 다른 여자를 사귀고, 그 사귀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므로 노력하고 있는' 이 때에, 자신이 뭘 잘못한건지를 알게 된다. 내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한 부분이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자기가 아는 장면.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적절한 때에 언제나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는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니까. 우리는 모두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니까.


레오, 당신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야.




나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을 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 자신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어요. 유감이고 불행이에요. 기회를 놓쳤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p.242)




자, 이 미안함은 어디에 가 닿을까? 레오는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하려고 해봤지만, 자신이 내내 에미랑 살고 있었음을, 내면에 에미를 간직하고 있었음을, 힘겹게 인정하고 만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고? 자신이 파멜라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다. 레오의 이런 실수는, 이미 나 역시 현실에서 해본 바가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누군가의 옆에 있었던 일. 그렇지만 결국은, 그래서는 안됐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 




파멜라가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거죠. 그런데 내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보냈어요. 그사이에 내가 공간을 떠나 누구 곁에 있었을까요? 에미 당신 곁에 있었어요. 내가 나의 비밀스러운 내면에서는 누구랑 살았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살았어요. 언제나, 오로지 당신과 함께 였어요.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환상에 등장하는 하나의 얼굴 또한 당신 얼굴이었어요. (p.334-335)




레오는 에미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 에미를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랑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이 최선이었으며 응당 그랬어야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면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고, 그 내면은 자꾸만 수시로 레오와 파멜라 사이로 끼어들며 튀어나오려고 한다. 매일 파멜라와 섹스할 순 있었지만, 파멜라가 닿을 수 없었던 어떤 지점이 레오에게 있었다. 레오는 에미에게 가기 위해서는 베른하르트가 있다고 자꾸만 생각을 했고 의식을 했으므로, 자신이 느끼는 진짜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에미는, '베른하르트의 에미'가 아니다. 에미는, 에미다. 에미는, 에미 자신이다. 에미는,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있고, 자신을 치료하려 하고 있고, 자신의 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려 하고 있고, 정확히 자신이 어느 지점에 서있는건지를 자꾸 보려고 한다. 그래서 에미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 대로를 실행할 수가 있다. 에미는, 기다린다. 에미는 기다리지 않는다. 에미는 끊임없이 다가서고, 집착하고,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는다.



아무리 당신이 이번에는 확실하게 얘기할 테니 두고 보라고 해도 이제 나는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알고부터 나는 줄곧 기다렸어요. 최근 이 년 반 동안 기다린 게 그 전 삼십삼 년 동안 기다린 것의 세 배는 될 거예요.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기다렸어요! 기다리는 데 질렸어요. 정말로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요. (p.327)




레오는 이제 '베른하르트 없이' 에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Aw:

에미, 나는 기꺼이 당신과 함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30초 뒤

Re:

무엇을요?



40초 뒤

Aw:

앞날을. (p.374-375)





아아, 그래서 어찌되었냐고? 이들이 어찌 되었냐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된거냐고?

그건 책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아주 좋은 독서였다. 처음엔 울면서 시작했지만, 그리고 분노도 화르르 타올랐지만, 그러나 좋은 독서였다. 몇 년전에 그저 에미로 읽었을 때보다, 지금은 '에미인 나'가 읽어서 더 좋은 독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아주 아주 좋은 독서였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은 독서였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는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 아침엔 공대생 출신의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공대생 판타지가 있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러니까 일전에 공대생 前애인을 사귀면서, 수학 노트 같은 거 사진 찍어주면 좋아했던 일 같은 거. 그와 나는 얼마나 달랐는지(나는 개구리가 되어 볼 수 있었다니까?), 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가 고통을 수치화 시킨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니까 아프다고 하면,

-설마 1부터 10까지?

-응.



그렇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했더니, 다정한 나의 공대생 前애인은, 고통을 1부터 10까지라고 했을 때, 어느 지점인 거냐 물은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거기다 대고 또 얌전하게, '어제는 7쯤이었는데 오늘은 4쯤이야' 라고 대답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하다가 또 빵터졌네. 그래서 오늘 대화한 사람이 '그게 좋냐' 물었는데, 나는 '어 난 너무 좋았어'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랬더니 그건 페티시 같다고 했다. 아아, 어쩌면 그런건지도... 나의 페티시...뭐지....역시 나는 변태인건가.....그렇지만, 누구나 가슴속에 변태기질 조금쯤은 가지고 있는거잖아요?



아무튼지간에, 나는 지금 세상에서 일곱 번째 파도가 제일로 좋다. 



음..아무 맥락 없는 글을 써버리고 말았군.

뭐, 내가 언제는 맥락 있는 글을 썼나...





아침에 출근하는데 8살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꺅 소리지르며) 타미야!!!!!

-이모 어디야?

-이모 회사 가는 길이야. 타미는 학교가?

-아니, 지금 일어났는데?

-아 그래?

-응, 이모 끊어.

-타미야! 전화 왜 했어?

-이모 보고싶어서.



꺅 >.<



아, 너무 소중하다. 보고싶을 때 보고싶다고 전화하고, 보고싶다고 말하는 존재. 진짜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다. 소중해 ♡ 일어나자마자 이모한테 전화하는 조카라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소중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대치, 의도, 목적. 정사는 즐기려고만 하죠. 함께 지내기는 언젠가 정말 아름답게 같이 살기 위해 함께 머물고자 하는 거예요. (에미, p.376)


댓글(2) 먼댓글(2)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Should I be worried, or can I be hopeful?
    from 마지막 키스 2017-12-18 16:30 
    번역본은 집에 있고 지금 내게는 원서뿐인데, 내가 가진 원서는 링크한 것들과는 표지가 다르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었던 5월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가끔, 불쑥불쑥, '에미는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에미는, 레오로부터 응답이 없는데, 시스템관리자만이 계속해서 답장을 보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끈질기게 메일을 보낸다. 답 없는 레오에게.Three weeks laterHalf a year laterThree days
  2.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from 마지막 키스 2018-01-10 11:11 
    어제 퇴근길과 오늘 출근길에 읽는 고미숙 쌤의 책이 좋아서 그 책에 대한 글을 쓰려고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뭐가 어떻게 어디서 꼬인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왜때문인지, 《일곱번째 파도》에 대해 내가 쓴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 고미숙 쌤 책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리뷰로 쓸까-아직 다 안읽었으니 보류-, 페이퍼로 쓸까) 이런고 고민하다가, 아, 요즘 너무 힘들어 밤에 잠을 못이루는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하고는, 장바구니에 머그컵 두개를
 
 
제이슨 2017-05-3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타미 초등학교 갔어요?

다락방 2017-05-30 16:52   좋아요 0 | URL
네.
 
단어의 사생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다. 내가 언제 누구를 만나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고, 내가 당장 내일 무슨 책을 읽을 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단어의 사생활》을 읽다가, 심리학자인 저자가 언어에 대해 연구한 책을 읽다가, 아아, 언어를 연구한다고 했던, 내가 오래전에 사랑에 빠진 남자, '레오'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 그냥 가볍게 훑어볼까, 하고 출근길에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들고 나왔는데, 가만있자, 어디서 그가 언어를 연구한다는 게 나오더라? 초반이었던것 같은데, 하다가 처음부터 책을 읽게 되었고, 마침 다정한 청년과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아아, 에라이, 내친 김에 이 책을 그냥 통째로 다시 읽게된 것이었다. 도대체 몇 번을 읽는건지 모르겠지만, 아아, 책이란 너무 신기하고 좋은 게, 읽을 때마다 그 감정이 다르고, 공감하는 부분이 다르고, 빡치는 부분이 다르다!!! 빡쳤어!! 나 빡침!!!!!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어디에서였지, 우연은 필연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정말 그렇지 않을까, 싶은게, 에미와 레오를 보면서도 그렇다. 읽은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에미는 잡지 구독을 취소하는 메일에 스펠링을 잘못 써서 엉뚱한 개인인 '레오'에게 이메일을 보내게 된다. 레오는 너 메일 잘못보냈다, 고 알려주는데, 그로부터 무려 9달 뒤, 에미는 크리스마스 단체 인사를 메일로 보내게 되고, 거기에 또 레오가 섞여있다. 그 크리스마스 즈음, 레오는 개인 사정으로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잠깐 에미랑 사소한 메일을 주고받고 끝낼 수 있었는데, 아아, 38일 뒤, 또한번 에미는 잡지 취소하는 메일을 레오에게 보낸다. 다, 그녀가 자꾸 손가락이 습관적으로 움직여 오타를 냈기 때문인데, 그렇게 그들은 시작한다. 무얼? 이메일 관계를, 이메일 사랑을!



그리고 내 기억대로, 레오는 자신이 이메일 언어를 다루고 있다고 에미에게 말한다.



'제가 요즘 직업상 이메일 언어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p.15)


'저는 커뮤니케이션 카운슬러이자 대학의 언어심리학 조교수입니다' (p.20)



아아, 그 누가 알았을까. 《단어의 사생활》같은 책을 읽다가, 엉뚱하게 새벽 세시에 꽂히게 될 줄을... 다른 누가 그 책을 읽다가 새벽 세시를 떠올릴까. 나다! 나만이 할 수 있다!! 내가 그렇다!!!!




그렇게 나는, 사두고 안읽은 책들을 수백권 쌓아둔 채로,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책,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쭈욱- 꼼꼼하게. 




이렇게 '너 메일 잘못보냈다' 와 단체메일들 틈에서, 에미와 레오는 서로 조금씩 사적인 대화를 하게 된다. 에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이런 대화가 지속됐을까? 레오가 아니었어도 에미는 그 메일을 주고받는 삶을 살게 됐을까? 어쩌면 그건 상대가 레오이고, 에미이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건 그들이 그렇게 대화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문체로 메일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우리가 이 세상의 모두와 대화가 가능한 게 아니고, 누구나와의 대화가 모두 만족스러운 게 아니니까. 우리는 유독, 대화가 잘 통하는, 대화가 즐거운 상대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들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어서, 그래서 자꾸 메일을 왔다갔다 하게 된 게 아닐까.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 스타일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이 적응은 보통 몇 초 안에 일어난다. 이때 두 사람은 상대방의 형식성, 명확성, 감성적인 정도, 사고방식에 맞추어 즉시 적응한다. 두 사람 모두 어떤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즉 그녀, 그,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따라간다. 대화라는 공이 계속 굴러가게 하려면 둘 다 주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둘 중 한 명이나 둘 다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거나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면(거짓말 등) 상대방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단어의 사생활, 제임스W페니베이커, p.312)



대화란, 누군가와의 지속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겠지만, 할수록 더 할 얘기가 늘어난다. 이미 대화를 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대화가 즐거운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과 또 대화를 시도하게 되고, 그렇게 반복해서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의 생활에 깊이 침투하게 되며, 제임스 페니베이커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제 일일이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옆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되고, 그 사람이 하루종일 어떤 삶을 살게 됐는지 알게 되며, 이런 뉘앙스의 말은 어떤 것을 뜻하는지 알게된다. 척, 하면 착, 이 되어버린달까. 대화를 잘 나누던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어쩌면 호감이 생겼기 때문에 대화가 잘 지속된건지도 모른다. 레오는, 이제, 에미에게 관심을 갖는다. 스스로 어떡하지, 싶을 만큼.




에미, 변명부터 할게요. 사실 당신에게 날마다 메일을 썼어요. 보내지 않았을 뿐이지요. 아니, 보내지만 않은 게 아니라 다 지워버렸어요. 말하자면 제가 우리 대화에서 힘든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당신, 신발 치수 37인 에미라는 여자에게 서서히, 그저 얘기 상대라는 틀에 맞는 선을 넘어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p.29)




얘기가 잘 통하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경우엔 얘기가 잘 통하는 상대를 좋아하고 또 사랑했다. 얘기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저 얘기 상대'라는 틀에 상대를 넣어두었다 하더라도, 아, 그 얘기가 겁나게 잘 통한다면, 어떻게 더 많은 애정을 쏟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애초에 이 대화를 나누지 말았어야 했어.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애초에 대화를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했다고. 이미 대화를 해버린 이상,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담? 



물론 에미도 마찬가지다. 에미는 남편과 아이 둘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살지만,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레오의 메일을 기다리고, 레오에게 이메일을 쓰는 기쁨으로 삶을 유지한다. 에미 역시 이메일로 레오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린다. 레오도 그랬고, 에미도 그랬다. 자, 다시 단어의 사생활이다.



아마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하거나, 미친 듯이 화나게 하거나,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이름은 뺀 채 그 사람을 가리키는 다양한 대명사를 넣어 말할 때가 많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다면 3인칭 단수 대명사를 높은 비율로 사용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단어의 사생활, 제임스W 페니베이커, p.374)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나 역시 누군가로 인해 행복하거나, 화가 나거나, 슬픔에 빠졌을 때, 그 사람의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루 온종일 신경이 그 사람에게 쏠리는 거다. 행복하면 행복해서, 화가 나면 화가 나서, 슬픔에 빠지면 슬픔에 빠져서. 우리가 행복하거나, 화가 나거나, 슬픔에 빠질 때, 그게 온전히 나 혼자, 스스로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내게 이런 감정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했고, 그 다른 사람은 그러므로 내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서 이런 감정들을 샘솟게 하며 나를 휘두른다. 에미와 레오가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일하는 내내, 길을 걷고 밥을 먹으면서도, 서로의 생각 뿐이었을 거다. 오늘은 그(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나에게 메일을 보냈을까? 우리는 상대의 한 마디에 천국을 갔다가 지옥을 갔다가 할 것이다. 동굴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구름 위를 걷기도 하고. 이렇게 온 신경을 쏟게 만드는 사람의 한마디는 얼마나 힘이 센가. 그렇게 레오와 에미는 서로에게 말을 걸고, 또 상대가 나에게 말을 걸기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그들의 답장은 몇 초만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간혹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며칠이 걸릴 때는 서로 애가 탄다. 에미와 레오가 애가 타면, 나 역시 애가 탄다.




서로 만날까 만나지말까 고민하면서 그들은 후버까페에서의 만남을 갖는다. 그러니까 같은 시간에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고, 서로에게 '혹시 니가 레오냐' 같은 거 묻지 않기로. 그리고나서는 집에 돌아가 '너 왔었니?' 라고 묻고, '너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누구였니?' 묻는다. 하하하하하. 귀여워.... 

이메일로 이들은 언제까지 교류할 수 있을까. 이것이 오래,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수 있을까? 나는 아마 그러기는 어렵다고 본다. 언젠가 누군가는 먼저 만나자고 제안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책에서도 레오가 혹은 에미가 만나자고 했다가, 그러지 말자고 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반복한다. 그 마음 내가 충분히 잘 알겠다.

책속에서 레오는 에미의 실체 없음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렇다. 

사랑을 나누는 데 대화가 중요하지만, 실체도 중요하다. 이 실체 없는 사랑을 대체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현실에서 다른 연인, 실체를 가진 사람과 사랑하면서, 그 사람과 만나 서로 고개를 돌릴 때 일어나는 바람을 느끼면서, 그러면서 살 수 있지만,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 이메일에 열중하는 삶이라면, 이게 어느 하나 계속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메일에 빠져 있다면 실체에게 소홀할 테고, 실체 앞에서 자꾸만 '빨리 가서 이메일 확인하고 싶다' 같은 거 생각할텐데, 이 실체와의 사랑이 가능해질까. 또한 이 실체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시간과 신경을 쏟을텐데, 메일을 열어보는 횟수라든가 답장하는 횟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화와 실체가 한 사람에게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그 둘을 쪼개야 한다면, 그건 길게 유지되지 못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상대를 만나서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이 부분에서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영화 《HER》가 생각나고, 또 내게는 '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도 생각난다.
















《HER》에서 남자는 소프트웨어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와 실체 있는 사랑을 나눌 수 없다.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남자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은 시작되는 단계에서 힘차게 스타트 하지 못하고, 그렇게 남자는 여자의 주변만 맴돌게 되는데, 어느 하루는, 술 한잔도 안마시고, 그리고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은채로, 섹스를 하는 거다. 그 장면에서 얼마나 에미와 레오 생각이 나던지!




에미는 자신이 레오를 만나지는 않은 채로, 자신의 친한 친구 '미아'를 레오에게 소개시켜주려 한다. 레오는 처음에 기분나빠했지만 곧 미아를 소개받게 되는데, 아아, 너무 싫어...나는 대체 에미가 왜그랬는지, 이 바보 멍청아!! 하면서 한껏 욕해주고 싶지만, 그렇지만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어차피 내꺼가 될 수 없는 남자를 어떻게든 가깝게 옆에 두고자 하는 마음 같은 거, 자신의 친한 친구와 연결시켜서, 어떻게든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도 싶었을거고, 가장 큰 거는, 자신의 친구에게 레오가 자신을 어떻게 말하는지,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를 알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해도 이건 진짜 미련한 방법인 거다. 아마 한 번 해봤으니 에미도 다시는 안하겠지.


아주 오래전의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내가 혼자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내 친구를 소개시켜준거다. 어차피 내 남자도 아니니까..하면서. 그당시 나는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는 생각했지만, 내 친구를 소개시켜주고 그들이 내가 모르는 만남을 가졌다는 걸 알게되면서, 아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 이 사람을 많이 좋아했구나..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내가 왜 이런 미친짓을 했을까 엄청 후회했다. 아아, 싫어..그때의 나여, 미워 ㅠㅠ 바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고나서 시간이 흘러 내가 다른 남자에 대해 호감이 생겼을 때, 그러나 나랑 사귀지 않는 사이가 됐을 때, 내 친한 여자친구가 '그렇다면 그남자 나 소개시켜줘'라고 했는데, 나는 단번에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다시는, 내가 호감가는 남자를 내 친구에게 소개시키는 일 따위를 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더랬다. 이게 나랑 사귀는 게 아니어도, 나로 인해 이 둘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게 하지는 말자. 우연이 작동해서 이들이 서로 어떻게든 만나 사랑하게 됐다면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그 다리를 놓고 또 후회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불킥 같은 거 하는 삶을 선택하지는 말자, 그런 식의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아! 


아마 에미도 다시는, 다시는 그런 일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레오가 ㅠㅠ 미아랑 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그 사실을 '짐작만' 하고 있을 때와, 레오의 입을 통해 그걸 알게 됐을 때의 에미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에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에미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 가슴이 다 찢어진다. 그렇다고 뭐라고 잔소리도 못해. 왜냐면 내가 그러라고 소개시켰으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누굴 원망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과거의 나자신을 원망해야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세상에서 제일 바보는 누구? 나! 바로 나!!!!! 아아, 에미는 얼마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을까, 얼마나 자신을 때리고 싶었을까, 얼마나 자신을 원망했을까,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렇지만 그 화를 어떻게든 표출할 수가 없어 얼마나 속이 뒤집혔을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일상이 지옥이었을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누가 지옥으로 보냈다? 내가! 바로 내가!! 나!!!!! 내가 나를 지옥으로 보냈어!!!!!!!


그래, 에미가 잘못했는데, 굳이 소개시킨 거 잘못한건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레오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다고 왜 미아랑 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그래?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왜 미아랑 자는거야?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레오 미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레오 빵꾸똥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엎드려서 펑펑 울고싶다. 




토요일에 총 여섯명의 돌아가며 강의하는 페미니즘 강연을 듣고 왔는데, 누군가는 처음부터 몰입시키는 반면, 누군가의 강연은 전혀 집중이 되질 않았다. 나는 이것이 왜그럴까, 생각해보다가 '목소리'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는데, 그 사람의 목소리가 나와는 맞지 않는 목소리였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그 말이 내게 와 닿지 못했던 건 아닐까.


레오와 에미는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그래서 서로의 자동응답기에 목소리를 남기게 되는데, 레오는 에미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 뻑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포르노방송 진행자 같은 목소리라며. ㅋㅋㅋㅋㅋㅋㅋㅋ아아, 목소리 뭐지? 목소리까지 듣고나니 이들의 감정은 더 커지고야 만다. 아흙- 




2분 뒤
Aw:
에미, 말문이 막혀버렸어요. 내가 몹시 놀랐다는 소리예요. 당신 목소리와 말투를 전혀 다르게 상상하고 있었거든요. 당신, 정말로 늘 그렇게 말해요? 아니면 목소리를 일부러 꾸민 건가요? 

45초 뒤
Re:
제 목소리가 어떤데요? 

1분 뒤
Aw:
끝내주게 에로틱해요! 포르노방송 진행자처럼. 

7분 뒤
Re:
그거 칭찬이죠? 한시름 놓았어요! 당신도 나쁘지 않은걸요. 당신은 글보다 말이 훨씬 대담해요. 목소리가 아주 허스키하게요. "내가 줄곧 이런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었던 거야?" 이 대목이 마음에 들어요. 뭐랄까, 무척 방탕하고 섹시한 느낌이 나요. 그런 목소리라면 비아그라 같은 정력제 광고에 써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p.304) 



목소리, 라고 하면 나도 진짜 할말 많은 사람인데...(뭔들 할 말이 없겠냐마는 ㅋㅋㅋㅋㅋ)

나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아주 좋아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두 명의 남자쯤에게 그저 목소리만으로도 자지러질만큼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아, 생각하니까 또 갑자기 막 가슴이 뛰는데, 한명은 특히, 웃음소리가 좋았다.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상투어로 '낮은 웃음소리'같은 거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웃음소리였는데. 언제나 차분하게 말하고 웃는 것도 차분해서, 가끔 그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웃으면 정말이지 심장이 쏘옥 하고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더랬다. 내가 그사람에게 목소리 좋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그건 모르겠네. 그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좋은 목소리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오래 좋아했었고, 좋아해서 그의 목소리가 특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도 내가 무척 좋아했더랬다. 그 차분한 말투는 진짜 다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내가 만났던 남자중에 가장 레오에 근접했는데, 내게는 여전히 레오=그사람 으로 자동연상된다. 아아, 이제는 오래전의 일이구나. 이미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어...

그에게 목소리 좋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지, 말한 적이 없다면 언제라도 다시 만났을 때 꼭 말해주고 싶다. 이젠 모두 지난 일이 된걸까...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는군. 아! 그런데! 그로부터는 내 목소리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로부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더랬다. 그가 내 목소리를 좋다고 생각하는지, 그를 몇해간 알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아, 그만 생각하자, 혼란하다....내 심장에게 이제 이런 일을 시키지 말자. 가만 잠자고 있는 심장에 불을 지르지 말자... 심장아, 미안해!



또 한명의 목소리 좋은 남자는...얘기하는 순간 내 심장이 폭발해버릴지도 모르므로 패쓰하겠다. 다만, 그가 성대 찢어져라 신해철의 노래를 불러주던 것이 내내 떠오른다. 참 신기하지, 목소리는 기가 막히게 좋은데 이상하게 음치였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남자가 너무 좋은 건, 음치인데도 노래를 수시로 잘 불러줬다는 거다. 아 쓰면서 절로 웃음이 나는군. 불러달라는 노래도 잘불러주고(심규선!), 그냥 자기 흥에 겨워서도 잘 불러줬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목소리가 좋아도 음치일 수 있다!!! 세상은 살아볼만한 것이여..... 이 남자도 내 목소리와 말투를 좋아했는데, 역시 목소리에는 합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역시 모두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 시간은 앞을 향해 흐르고 내 남자의 목소리는 과거로 남아버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목소리 실컷 들을 수 있었을 때 녹음이라도 해둘걸. 그리울 때마다 틀어두게...음..이건 변태같나? 그렇지만 누구나 가슴속에 저마다의 변태기질은 있는 거잖아요? (글썽)




책을 읽는 내내 막 이생각 저생각 내 과거가 수시로 떠올라서 너무나 괴로웠다. 그리고 이 책의 결말까지 접하고나서, 아아, 이 책의 결말은, 세상 그 어떤 소설의 결말보다 완벽하지만, 그렇지만 이대로 끝낼수는 없다! 하는 마음이 되어서는, 이미 읽었고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이 책의 후속편, 《일곱 번째 파도》가 읽고 싶어졌다. 새벽 세시는 여러차례 읽어도 일곱 번째 파도를 그렇게 읽진 않았었는데, 아아, 이번에는 꼭 그 책이 필요해, 꼭 그 책을 읽어야겠어!! 하는 마음이 되어, 내 소중한 책장 앞으로 갔지만, 그 책이 보이질 않는다...아니 대체..왜...어디간거야 ㅠㅠ 난 내 책들을 대체 어디로 보내고 있는거야 ㅠㅠ 내가 그걸 팔 리가 없는데 ㅠㅠㅠㅠㅠ 그러면 어딜 갔어 ㅠㅠㅠ 별수없이 나는 오늘 아침에 또 사고 말았다. 아아- 인생은 뭐지....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는 '윤종신'의 노래 <너에게 간다>가 나왔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였는데, 구절구절이 다 속속 박히면서 새삼 좋게 느껴졌다. 그래서 출근길 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너에게 간다
다신 없을 것 같았던 길

내가 지금 숨이 차오는 건 
빠르게 뛰는 이유만은 아냐 
너를 보게 되기에 그리움 끝나기에 

나의 많은 약속들 가운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들었고 
며칠 밤이 길었던 약속같지 않은 기적 

너와 헤어짐에 자신했던 세월이란 믿음은 
나에게만은 거꾸로 흘러 
너를 가장 사랑했던 그 때로 나를 데려가서 
멈춰있는 추억속을 맴돌게 했지 

단 한번 그냥 무심한 인사였어도 좋아 
수화기 너의 목소리 그 하나 만으로도 
너에게 간다 다신 없을 것 같았던 길 
문을 열면 네가 보일까 
흐르는 땀 숨고른 뒤 살며시 문을 밀어본다 

내가 지금 숨이 차오는 건 
빠르게 뛰는 이유만은 아냐 
너를 보게 되기에 그리움 끝나기에 

나의 많은 약속들 가운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들었고 
며칠 밤이 길었던 약속같지 않은 기적

너의 갑작스런 전화속에 침착할 수 없었던 
내 어설펐던 태연함 속엔 
하고픈 말 뒤섞인 채 보고싶단 말도 못하고 
반가운 맘 누르던 나 너를 향한다 

단 한번 그냥 무심한 인사였어도 좋아 
수화기 너의 목소리 그 하나 만으로도 
너에게 간다 다신 없을 것 같았던 길 
문을 열면 네가 보일까 
숨고른 뒤 살며시 문을 밀어본다




어휴... 이건 진짜 노래가 너무 좋은데, 구구절절 왜 좋은지 설명하자면, 너무 나의 찌질함이 드러나는 것 같으므로, 내 상황을 대신해 영화 《만추》를 대입해보고자 한다. 영화 만추에서,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마지막 장면, 탕웨이는 현빈이 만나자고 했던 그 장소에서 현빈을 기다린다. 문이 열릴때마다 쳐다보고 쳐다보고...영화는 그렇게 끝나는데, 위의 윤종신 노래는, 영화속에 나오지 않았던 현빈의 마음인 것 같은 거다. '너에게 간다' 도 그렇고, '문을 열면 네가 보일까' 라니... 그러면서 숨고른 뒤 살며시 문을 밀어보는, 그 마음... 아아.......거기에 너는 있을까 없을까........



노래는 윤종신의 10집 앨범이라는데, 나는 그래서 그 앨범을 엠피삼으로 사려고 한다.














너에게 간다, 니. 정말 좋지 않은가.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간다

.

.

.

.

.

.

.

.

.

.

.

.

그래, 와라. 나에게 와라. 내가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을게. 아,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노라니, 져니의 <open arms>가 또 생각나???






자, 나는 두 팔 벌려 기다린다.
나에게 오라.

컴온, 베이비!!



컴온 베이비, 라고 하니까 미스터 빅의 <to be with you>가 생각나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오늘 안에 페이퍼를 끝맺지 못할 것 같으므로 여기에서 줄이기로 한다.


컴 온!


댓글(4) 먼댓글(1)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파멜라 싫어...
    from 마지막 키스 2017-05-30 11:21 
    나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결말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토록 긴 여운을 줄 수 있는 거라고. 다른 결말이었다면 그 소설을 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할 순 없었을 거다. 그래서 오래전, 그 소설의 후속편이 나왔을 때, 읽지 말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읽었지만.그런데 며칠전 다시 읽은 새벽 세시의 결말은,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나는 이미 후속편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뻔
 
 
syo 2017-05-29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 몇갠지 세보다가 포기했어요. 자기들끼리 막 뭉쳤다가 떨어졌다 하는데....

다락방 2017-05-29 12:27   좋아요 0 | URL
으응? 뭐가요? 뭐가 몇 개인지 세보다가 포기했다는 거에요? 뭐요, 뭐? 응?
책? 찌질한 기억?

syo 2017-05-29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ㅠ˝요. ㅠ가 몇갠지 세고 있었어요.... 찌질한 기억 세어보게 하기 없기에요.

다락방 2017-05-29 12:32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앞에 ㅠ 가 있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해요. 여러가지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ㅠㅠㅠㅠ 이거 많이 써서 미안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지간에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감정들은 입밖으로 내는 순간 더 진해지지만, 어떤 감정들은 입밖으로 내는 순간 그 크기가 작아지고 따라서 내 속도 편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감정을 입밖으로 내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들이 말을 했으면, 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더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내 경력으로 말하자면 초기에는 건강, 감정, 트라우마 경험의 특징등을 연구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나는 우연히 발견한 사실에 마음이 끌렸다. 지독한 트라우마 경험을 혼자서만 간직하는 사람들은 그 경험을 드러내 놓고 말하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상의 문제가 훨신 많았던 것이다.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왜 그리 해로울까? 더 중요한 질문을 하자면, 강렬한 감정을 수반하는 비밀을 터놓는 사람들은 더 건강해지는 것일까? 나와 제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금세 알게 되었다. 답은 <그렇다> 였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루 15분에서 20분 정도씩 사나흘 연속으로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글로 써보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 결과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 했던 사람들에 비해 건강이 호전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이후의 연구들에서는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 가 면역 기능을 높이고, 혈압을 낮추며, 우울한 감정을 줄이는 한편 평소의 기분도 더 나아지게 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최초의 글쓰기 실험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전역에서 2백 건 이상의 비슷한 실험이 수행되었다. 연구 결과는 그리 대단치 않을 때도 많지만, 감정의 격변을 <언어의 변환>하는 단순한 과정은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과 꾸준히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26)




내가 이토록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언제나 말과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나는 계속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앞으로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구나. 실제로 나는 아주 많은 감정을 글을 쓰면서 다스리곤 한다. 분노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뭐든 글로 쓰는 것이 내게는 좋고 편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의 내용이 막 어렵다거나 한 것은 아닌데, 우선적으로 이 책은 '영어로 읽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거다. 번역된 채로 이 글이 원래 전하던 바를, 다른 문학작품이 그러한것보다, 완벽히 전달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원서로 읽으면 뭔가 더 와닿지 않았을까 했던 것. 또한 사람들의 단어(내용어와 기능어)를 연구해서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한다는 것은 의미있고 중요한 일로 보이지만, 그것은 그저 우리가 추측하는 것에 비해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일뿐 완전한 방법도 아니며, 매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식으로 되어서 흐음, 하고 약간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그렇고, 아니, 이 세상에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글을 계속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거기에 흥미를 가지고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넘나 신기하고... 이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전에 고래를 연구했던 박사에 대한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처럼,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는 꽤 흥미를 갖는다는 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은가.



이 책에서 이메일을 연구하고 단어와 말, 트윗을 연구하는 이 심리학자 덕에, 나는 이메일로 언어를 연구한다던 레오(그래, 바로 그 레오!) 생각이 났고, 덕분에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새벽 세시 얘기는 몹시 길어질 것 같으므로 따로 페이퍼를 작성하기로 한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당신 남자예요 여자예요?" 독자 여러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는 말아요." 라고 시작하는 문장 치고 듣는 사람에게 좋게 끝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브리타니는 자기가 못되게 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예고한 것이다. (p.89)





일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상사가 내 밑에 직원에게 늘상 하는 얘기가 "기분나쁘게 듣지 마, 나는 속에 품지는 않아, 금세 잊어버려" 였단다. 그러면서 그 직원은 내게 하소연 했더랬다. '아니, 자기는 꽁하고 있지 않는다면서 나한테도 그러라고 잔소리 실컷 하는데, 제가 목석이에요?" 하는 거였다. 저 말 너무 웃기지 않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라니. 어디다대고 명령질이야 ㅋㅋㅋㅋㅋㅋ 내 기분을 왜 니가 컨트럴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겁나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하하하하하. 저 말 딱 듣는데 그 상사 생각 넘나 났고..... 아 싫어...


무릇 상사들이란 그래야하는걸까..싫어야 하는걸까...그런데 나도 상사..이지.....인생 뭘까?



신디의 발견에 따르면 다이어트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표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참여 여부다. 요컨대 다른 사람들과 메시지나 게시물을 더 많이 주고받을수록 살 빼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글을 쓴 사람들은 음식과 다이어트에 대해서만 글을 쓴 사람에 비해 훨씬 성공적으로 살을 뺐다. (p.198-199)



위의 문장대로라면, 아아, 나는 지금 모델을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인지적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인지적 단어는 다양한 사고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단어(이해하다, 알다, 생각하다), 인과적 사고를 나타내는 단어(왜냐하면, 이유, 근거), 이와 관련 있는 여러 차원들의 단어를 포함한다. 여자들이 이러한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은 여자는 남자보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믿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뺨을 후려갈기는 셈이다. (p.248)



후훗. 아리스토텔레스의 뺨을 후려갈겼다!




서로의 지위를 판단하는 행동은 영어를 사용하는 대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훨씬 더 간단한 잣대로 지위를 가늠하는 사회도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사회적 서열을 판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가 나이다. 나이가 같으면 그 다음에는 재산이나 수입으로 파난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의 생활에 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일이 흔하다. 서양에서는 이런 행동이 무례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한 예로, 나는 치ㅗ근 한국에 다녀오는 길에 나와 나이가 얼추 비슷해 보이는 한국 남자 옆에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10분 정도 지나자 그는 내 나이를 물으면서 말문을 텄다. 우리가 정확히 같은 나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는 내 연간 수입이 얼마인지 물었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만 말했다. "뭐 둘 다 비슷하네요." 아마 그가 나보다 수입이 훨씬 높은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후 나와 대화하면서 더 편안하게 느낀듯했다. (p.90-91)

수치스럽거나 자신의 평판을 해칠 수 있는 사건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질 때가 많다. 나는 이것을 일찍이 발견하고, 17세 이전에 트라우마가 될 만한 성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묻는 항목을 설문지에 넣었다. 수천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자의 경우 22퍼센트, 남자의 경우 11퍼센트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충격적인 점은 이렇게 답한 집단이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 상태가 훨신 나빴다는 사실이다. 이후 수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문제는 그런 성적인 트라우마가 거의 모두 비밀이라는 점에 있었다. 어떤 유형의 사건이든 사람들이 혼자서만 알고 있는 일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로울 가능성이 높았다.
중요한 감정적 격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에 어긋나는 일이다. 우리는 감정적 사건을 겪으면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p.199-200)

감정은 단순히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다양한 감정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다른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감정은 사람들을 가까워지게 하거나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사회적이다. 감정은 다른 사람들의 동기, 목표, 의도에 대한 의미 있는 신호이기도 하다. 기능어와 감정 상태는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기능어는 이런 생각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p.201)

생각과 감정의 관계는 여러 세기 동안 철학과 심리학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논리와 감정도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학자 데카르트는 한 발 더 나아가 감정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초기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역시 감정과 열정이 어떻게 판단을 흐리는지 강조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근본적인 감정의 문제들이 성격과 행동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감정과 이성에 대해 매우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뇌과학에서 발견된 점들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새로운 관점을 가장 설득력 있게 대변하는 사람 중 하나는 안토니오 R. 다마지오다. 다마지오는 전두엽이 손상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써온 신경과학자다. 전두엽은 원시적인 감정 담당 영역과 추상적 논리 및 언어와 관련된 영역에서 보내는 정보를 통합한다. 이 통합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일어나므로 감정과 생각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p.201-202)

즉 감정은 생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장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감정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은 우리가 기능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반영된다. 한 발 더 나아가, 기능어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p.202)

글쓰기와 말하기에서 나타나는 형식성은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형식적 사고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지위와 권력에 관심이 더 많고 자기반성적인 경향이 낮은 편이다. 이들은 덜 형식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에 비해 음주와 흡연을 적게 하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지만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덜 정직한 경향도 있다. 또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글쓰기과 말하기 스타일이 즉각적인 쪽에서 형식적인 쪽으로 변한다. (p.213)

분석적 사고는 그 사람이 인지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거나 글을 쓸 때 구별을 하는 사람은 대학에서 더 높은 성적을 받고, 더 정직한 경향이 있으며, 새로운 경험을 열린 태도로 대한다. 이들은 또한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낮은 사람에 비해 글을 더 많이 읽고 자기 자신을 더 복합적인 관점으로 본다. (p.214-215)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 스타일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이 적응은 보통 몇 초 안에 일어난다. 이때 두 사람은 상대방의 형식성, 명확성, 감성적인 정도, 사고방식에 맞추어 즉시 적응한다. 두 사람 모두 어떤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즉 그녀, 그,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따라간다. 대화라는 공이 계속 굴러가게 하려면 둘 다 주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둘 중 한 명이나 둘 다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거나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면(거짓말 등) 상대방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p.312)

한편 <우리>라는 단어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한 연구에서는 심부전증 환자들을 배우자와 함께 인터뷰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비롯하여 여러 질문들에 대답했다. "두 분이 심장병을 극복해 오시면서 제일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배우자가 이 질문들에 답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사람일수록 6개월 후 환자의 상태가 더 좋아졌다. 배우자가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환자의 건강 문제를 부부가 함께 전념해야 할 공통의 문제로 보았다는 의미였다. 부부가 병을 극복하려고 함께 노력하는 경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p.318)

아마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하거나, 미친 듯이 화나게 하거나,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이름은 뺀 채 그 사람을 가리키는 다양한 대명사를 넣어 말할 때가 많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다면 3인칭 단수 대명사를 높은 비율로 사용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p.374)


댓글(0) 먼댓글(2)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너에게 간다
    from 마지막 키스 2017-05-29 11:05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다. 내가 언제 누구를 만나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고, 내가 당장 내일 무슨 책을 읽을 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단어의 사생활》을 읽다가, 심리학자인 저자가 언어에 대해 연구한 책을 읽다가, 아아, 언어를 연구한다고 했던, 내가 오래전에 사랑에 빠진 남자, '레오'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 그냥 가볍게 훑어볼까, 하고 출근길에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들고 나왔는데, 가만있자
  2. 내가 얼마나 당신의 일기를 읽고싶은지,
    from 마지막 키스 2018-11-07 09:21 
    나는 자주 일기를 쓴다. 매일 쓰진 않아도 언제나 글을 쓰는 편에 속한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과 느낌은 이 곳에 쓰지만, 책과 상관이 없는 사적인 것은 네이버 블로그에 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사적인 내용,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좀 더 깊은 속내에 대해서는 늘상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다이어리에 쓴다. (이것이 나의 다이어리들...)기록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 내 경우엔 그렇다. 이 책, '서민'의 《밥보다 일기》에서도 일기의 중요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