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는 아나스타샤의 친구다. 그러나 그는 아나스타샤를 좋아한다. 아나스타샤가 그레이랑 연인이 된 지금 그는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 호세가 사진 전시회를 연다. 아나스타샤는 친구 호세의 전시회에 찾아가는데, 거기에서 벽에 아주 크게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게 된다. 게다가 한 두 장이 아니다. 자연스런 아나스타샤의 모습인데, 거기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게 될 줄 몰랐던 아나스타샤는 당황한다. 아나스타샤가 자신의 사진을 보며 당황하고 있을 그 때, 사진전을 연 호세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너의 사진이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제일 좋다고.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사진이 이렇게 크게 벽에 걸리게 될 줄은 몰랐다고 당황함을 표현하는데, 호세는 이에 이렇게 말한다.



미리 말하면 니가 부끄럽다고 안된다고 할까봐 말 안했어.



...뭐라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아니, 내 사진을 거는데...나한테 말을 안한다고? 내가 부끄러워할까봐? 그러면 안걸었어야지. 미쳤냐, 지금? 이걸 친구라고 그간 두고 있었던 거야? 와- 진짜 그 장면에서 죽빵을 날리고 싶었다. 아나스타샤의 사진은 너무 예뻤고, 나조차도 그 사진을 갖고 싶을 만큼 아름답게 그녀가 나오긴 했지만, 설사 내가 아무리 아름답게 나왔다고 해도 나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내 사진을 올리다니...지금 제정신인가......어쩌면 이렇게 개념이 없지? 그렇게 사람들 다 보게 전시해놓고는 왜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하지? 내 사진을, 내 얼굴을 그렇게 내 허락도 없이 모두에게 공개해놓고 왜 뿌듯해해? 쳐돌았냐?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심연》은 이렇게 영화의 시작부터 나를 개빡치게 했는데, 그 다음장면도 난리가 났다. 아나스타샤의 전시된 초상사진 여섯장을 한 남자가 다 샀다는 것. 후훗. 이러면 그레이지. 이런 식으로 등장하시는군... 



영화의 전편에서 그레이는 아나스타샤를 성적 흥분을 위해 때렸다. 아나스타샤는 고통스러워서 울었고, 이에 그레이에게 이별을 고했다. 나는 이것이 고통스럽고, 나의 고통을 보며 네가 흥분해한다는 게 싫다, 고. 그런데 그레이가 전시장에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다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고서는 자신에게 돌아와달라 말한다. 이제 니가 싫어하는 그런 거 안할게, 내가 그런 걸 좋아하지만 네가 더 좋아, 하면서는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한다. 이제 그런 계약도 없고 룰도 없다고. 아나스타샤도 그레이를 사랑하고 있던 터라 그레이에게 돌아간다. 




그레이는 진짜 억만장자다. 고작 스물일곱(27)의 나이인데 큰 회사를 가지고 있고 이 회사 저 회사 다 먹어치우고 있고, 15분 꼴로 24,000 달러를 번다고 한다. 그레이는 아나스타샤의 취업을 축하한다며 맥북과 아이폰을 선물로 보내주고, 좋은 헤어샵에 데려가며 개인 요트를 태워준다. 그리고 돈도 준다. 아나스타샤는 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수표를 돌려주지만 그레이는 '너 써' 라고 한다. 이에 아나스타샤는 그레이가 보는 앞에서 그 수표를 박박 찢어버리는데, 그러자 그레이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비서에게 전화를 해서는 '아나스타샤 계좌에 돈을 넣어' 라고 하는 거다. 아니..왜이러지? 내가 돈 주지 말래잖아? 싫다고 수표를 찢기까지 했잖아? 근데 왜 계좌에 돈을 넣으래? 도대체가 왜이렇게 말을 들어쳐먹질 않는거지?????????????? 야, 싫다고. 싫대잖아. 나도 취업해서 돈 벌고 있는데 니 돈 안받겠다고. 싫다는데 왜 꾸역꾸역 줘?? 얘도 참 어지간히 강압적이네. 진짜 딱 싫어...



이 억만장자 그레이는 자신이 돈 많은 걸 알고 있고 그걸 쓰는데에 거리낌이 없다. 게다가 상대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나스타샤라면 오죽할까. 자선 무도회가 있는 날 밤에 그녀에게 드레스를 골라보라며 수십벌의 드레스를 자신의 집에 가져와 골라보게 한다. 옷걸이에 좌악 걸려있어..




(이 한 칸에만 걸려있는 게 아니라 다른 칸에도 있다)




아나스타샤는 이제 막 입사한 신입직원이다.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팀장의 비서를 맡고 있다. 팀장이 지시한 것보다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나스타샤를 보는 팀장의 눈빛이 껄끄럽다. 그 눈빛을 목격한 그레이는 가서 자신의 소개를 한다.



남자친굽니다.



그런데 이 팀장도 지지 않는다.



보씁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른 사람이 내 것을 보는 게 싫다'는 그레이는, 그래서, 아나스타샤가 입사한 회사까지 살 생각을 한다. 인수를 추진중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참 세상 편하게 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침 출판업에 진출하고 싶었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새꺄. 있는 놈이면 있는 놈답게 있는 거나 좀 잘지켜라. 괜히 여기저기 다 끼어들어서 그것만이 유일한 밥줄인 사람들 굶어죽게 하지말고. 하여간 있는 놈들이 욕심이 똥구멍까지 차가지고... 물론 이건 여자를 온전히 자신 혼자 차지하기 위한 게 더 크지만...


이 팀장은 아나스타샤를, 그레이와 마찬가지로 갖고 싶어하는데-하여간 새끼들 왜 정상적으로 달달한 연애할 생각을 안하고 가질라 그래...개놈들-, 그 과정에서 아나스타샤는 이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아나스타샤의 몸에 손을 댄다. 이에 아나스타샤는 그의 고환을 걷어차고(아오마메!!) 그 상황에서 뛰어나오는데, 여기에 빡친 그레이는 그 회사에서 편집팀장을 짤라버린다. 자, 여기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갑자기 빈 그 편집팀장 자리에, 편집팀장의 비서였던 아나스타샤가 앉게 된다.



읭??????????????????????????????????????????????????????????




갓 들어온 비서가 자신의 보쓰 자리에 앉게 된다고??????????????????????????????????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야, 내가 회장 비서면, 회장님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내가 회장 되는거냐?????????????????????????????????? 물론 아나스타샤의 상사는 회장이 아니라 편집팀장이긴 했지만, 이것이 무슨...대학 졸업하고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이게 가능해? 그래서 선임으로 있던 다른 비서가 아나스타샤의 비서가 된다. 이게 무슨 개같은 상황이야. 하아- 그 다른 비서도 아나스타샤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데, 하아, 진짜 얼마나 이를 갈았을까. 그거 보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레이는 아나스타샤의 진급을 축하하며 '네가 능력이 있어서' 라고 말한다. 정말? 정말 아나스타샤의 능력이야? 신입사원으로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능력을 발휘했길래 갑자기 팀장이 돼?????????????? 



어처구니가 없다.




위에서도 한 번 언급했지만 그레이는 억만장자다. 돈이 많아도 보통 많은 게 아니다. 로또 같은 거 살 필요도 없을 정도로 돈이 많고, 로또를 산다면 당첨된 수의 조합을 포함한 로또까지 죄다 살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성적 취향까지 바꾸면서까지 옆에 두고 싶은 아나스타샤를 위해 좋은 옷과 좋은 차와 좋은 음식과 뭐 기타등등을 사주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아나스타샤의 입장에서 막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월급이란 많지 않을 터. 자신이 1년에 버는 돈을 그레이가 한 시간안에 다 쓰는 것을 종종 목격할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나에게 이렇게 돈을 주지 말라고 말하고, 나였어도 이러지 말라고 말했겠지만, 이게 생각해보니 좀 복잡하다. 일단 내 연봉을 한시간안에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를 만나면서 얼마나 많은 자괴감이 들까. 나 이만큼 벌기까지 겁나 스트레스 받는데 이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 하고 말이다. 그런 한편, 회사 다니기 싫은데 이 참에 회사 그만두고 이 남자 옆에서 지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당연히 들 것 같다. 내가 돈을 보고 그 사람을 사랑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고자 연애를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마침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억만장자라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서 해주는 모든 것들을 누린다고해서, 그게 뭐 잘못된 일인가? 그러니 나는 그냥 그가 사주는대로 받아도 되는거잖아? 나 일하기 얼마나 싫었어? 그러니 얼마나 좋은 기횐가 말이다. 이거, 나쁜 거 아니잖아? 안 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다. 너무나 돈 많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는데, 내가 그걸 받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는 맥북 하나 살 때 이걸 살까말까 몇날 며칠을 고민했고 또 사면서도 할부는 몇개월을 할까를 고민했는데, 이런 내가 그레이를 사귄다면 그냥 '맥북 있었으면 좋겠네' 하고 말하면 끝이잖아? 내가 거의 이십년을 빡세게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눈에 다크써클 생겨가면서 일했는데, 지금처럼 새벽 다섯시반에 기상해서 하루종일 회사에 앉아있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면, 내가 그걸 선택하면 뭐 어때? 게다가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해서 나에게 해주는 게 기쁘대. 그러면 쌍방이 좋잖아? 




이게 안될 게 없구먼...좋구먼..... 생각하다가, 그러나 모든 사랑은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던 줄리언 반스의 말이 똭-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그랑 헤어지게 된다면? 그 다음은?



아아 경력단절..경력단절이 이렇게 오는구먼. 


그와 연애하는 동안 일하지 않았던 나는, 그와 연애중에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해도, 그와 연애를 끝내는 순간 다시 돈이 필요해진다. 그때 가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면 그 연애 기간이 길면 길수록 나의 경력단절의 시간도 그만큼 길어질 터. 재취업을 해도 월급은 쥐꼬리만큼일테고, 재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어. 게다가 나처럼 저기 어디에 있는 대학 나오고 저기 어디에 있는 회사를 다녔던 사람, 뭔가 스펙같은 거 1도 없고, 전문직도 아니며, 나이만 먹은 여자...의 경우엔 재취업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면 나 어떡해. 뭐 먹고 살아. 아아 경력단절 노노해. 역시 회사를 다녀야겠구나.. 극중에서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일이 좋아서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다. 이 일이 싫지만,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와서 경력단절 되어버리면 그 다음에 내가 살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계속 일을 해서 차곡차곡 내 커리어를 쌓아야지, 그래야 홀로된 노년이 다가온다고 해도 먹고살 수가 있겠지, 돈 많은 남자 만났다고 얼쑤~ 하면서 그 돈으로 살다가, 헤어지면 낭패야....



이 얘길 오늘 망고남에게 하니, '위자료를 받으면 되지 않냐' 라고 말한다. 어? 그러네? 그렇지만... 음.....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길게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랬더니 '사귀는 동안 샵을 하나 차려달라고 해' 라고 하더라. 으음... 아무리 그래도 그 말은 못할 것 같아... 출근길에 여자동료1을 만나 이 얘길 하니, '사귀는 동안 계속 돈을 모아야죠, 남자한테 돈 받아서' 라더라. 어? 이것도 또 생각못했네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역시 하수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때문에 나는 '부자 남자랑 사귀다 헤어지면 경력단절로 굶어죽을지도 모르니 연애를 하더라도 계속 일을 해서 헤어진 뒤에도 잘 먹고 잘 살자' 같은 거 밖에 생각을 못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의 집은 엄청 좋다. 아주아주 크고 방도 많은데 거실에서는 통유리 바깥으로 시내 전경이 다 보인다. 와우- 진짜 내가 꿈꾸는 그런 집이야. 전망 진짜 좋고요! 그런데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에게 청혼을 한다. 와우- 아나스타샤는 예스를 말하는데, 예스를 말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저 집에는 가사도우미가 있으니까 아나스타샤는 가사노동에서 해방이구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졸 편해지겠어. 아아, 역시 가사도우미를 채용할 수 있는 부자 남자랑 결혼하거나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부자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부자가 되기는 낙타의 똥을 먹는 것보다 어려운 게 아닌가. 히잉 ㅠㅠ 그 커다란 집을 가진 억만장자 그레이가, 자신의 요트로 데려가 네가 운전해봐, 이러면서 여자친구에게 알려주는 억만장자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에게 청혼을 하는 순간, 아아, 나는 수키에게 청혼하던 남자가 생각났다. 그는 슈리브포트에 아파트가 있다고 했어!!!!!








우리는 함께 있으면 서로 즐거워해요. 나는 내 침대 안에서 당신을 보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너무 심해서 아플 지경이에요. 우리가 함께 더 지내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 당장 살 곳이 필요하잖아요. 내게는 슈리브포트에 아파트가 하나 있어요. 당신이 나와 함께 머무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214쪽







주말에 여동생이 와서 내 책장을 보면서, 언니 책 자주 파는데 저 책들은 안파네? 하며 수키 시리즈를 가리켰다. 나는 응, 저 책 너무 좋거든, 여주인공 캐릭터가 진짜 짱이야, 했다.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또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아주 당당해. 너무 좋아. 그리고 '나는 슈리브포트에 아파트가 있어요' 하고 청혼하는 남자도 나와.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저문장 너무 외우고 다닌다.



내게는 슈리브포트에 아파트가 하나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거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그레이는 아파트 하나뿐만 아니라 진짜 별 걸 다 갖고 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맞다. 나 서울 시내에 아파트 사면 어떤 남자한테 청혼하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딱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가 그게 언제냐고 물었는데, 내가 그랬지. 환갑 때까지는 될까???? 라고. 하아- 인생....Orz 역시 나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해.....





아나스타샤는 확실히 나보다 용기가 있다. 그레이의 결혼을 승낙했다는 사실로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나라면 그레이에게 이별을 말할 것이다. 세이 굿바이.. 그는 그렇게나 돈이 많지만,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일이 몹시 피곤한 일이라 그렇다. 과거에 만났었다는 여자가 총을 들고 아나스타샤를 찾아온다. '내게는 없고 당신에게 있는 게 뭐지?' 라면서 총을 아나스타샤에게 겨누는 거다. 아이고야... 게다가 그레이에게 성을 가르쳐준, 성에 눈뜨게 해준 그레이의 엄마 친구는 자꾸 아나스타샤에게 '그랑 헤어져, 너는 그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야, 넌 꽃뱀이야' 이딴 소리 해대고.... 과거의 여자들이 자꾸 앞에 나타나서 아나스타샤에게 해코지 하는데, 아니 이런 일들을 겪고서도 그레이를 선택할 수 있다니, 진짜 대단하다. 어쩌면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진짜 너무 우라지게 울트라캡숑으로 사랑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피곤함과 고통과 두려움과 신경쓰임을 다 극복하고서도 그의 옆에 있기로 결심할 정도로 그를 사랑하는 걸테지. 그렇지만 나는 이 결혼에, 그가 아무리 큰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아파트로 청혼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NO!!



라고 할 것이다. 나는 살면서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과거의 여자들이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나길 원치 않는다. 여태 나타난 두 명은 어찌어찌 해결했지만, 사실 그게 해결이 완벽히 된건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또다른 여자가 나타나서 어떤 식으로 해코지 할 줄 어떻게 아나. 아니 무슨 총 들고 과거의 여자가 찾아와.... ㅠㅠ 내가 피곤해서 이런 남자랑 어떻게 살아. 그에게 아무리 경호원이 여러명 붙어 있다고 해도, 이런 삶을 어떻게 살아. 나는 자유롭고 싶다. 그렇게 총들고 찾아오는 사람 만나고 싶지 않고, '너는 그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야' 같은 거 졸졸 따라다니면서 말하는 여자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어휴, 나는 고통스러워, 싫어. 피곤해..나는 피곤한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아. 그냥 혼자 지낼래. 나는 그레이에게 이별을 말할거야.



그레이, 잘가.... 안녕. 이소라 노래의 가사처럼, 널 잊진 않을게, 그렇지만 우린 헤어져...




어제 친구랑 이 영화를 보고 나와 집에 가기 위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내가 '어휴, 그렇게 과거의 여자들이 막 총들고 오는데 그 연애를 피곤해서 어떻게 해, 나는 헤어지자고 할래' 라고 하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후에 몇 초간의 적막이 찾아왔고, 나는 갑자기 빵터져서 웃었다.



아 또 왜 나 아나스타샤가 됐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왜 그걱정을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억만장자남자 사귀면서 경력 단절되는 고민.... 내가 왜 하고있는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빠져나와라, 얍!! 현실로 돌아와야햇!!





어제 친구랑 에로틱한 장면들이 되게 부드럽고 약하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레이 비슷한 책 있지 않았나? 하고 둘이 지하철에 앉아서 검색 들어갔다. 나 그거 전자책으로 사서 읽어볼래, 하고. 그런데 제목이 생각이 안나는 거다. 제목에 '파이어'가 들어갔던 것 같은데...파이어폭스? 이건 아니고...캣칭 파이어? 아아 이것도 아닌데...그러다가 똭- 크로스파이어! 하는 벼락같은 깨달음!!




















이 책도 3부작인데, 이게 그레이보다 나은 작품일 수 있을테니, 오오, 재미나게 전자책으로 읽어볼까? 하고 책소개를 봤다.





아니... 이건 뭐 ..... 그레이 쥬니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명적인 성적 매력,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력, 어두운 과거.....무슨 소설 주인공들이 다 이모양이야. 그리고 책소개 더 읽어보니 여기 남자주인공은 28살이다. 그레이보다 한 살 많군. 이렇게 젊은 나이에 뭘 이렇게 이뤄놓은 게 많냐. 치명적인 성적 매력과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력, 어두운 과거를 가진 남자들은 왜 이렇게 평범한 직장에서 쥐꼬리만한 월급 받는 여자들과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걸까. 참나원...나야말로 평범의 대명사인데, 내가 만난 남자들 중에 치명적인 성적 매력,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력, 어두운 과거를 모두 다 갖춘 남자는 진짜 단 한 명도 없었다. 치명적인 성적 매력은...뭐여?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력은... 또 뭐고??????? 그건 어떤 거냐, 대체???



그래서 이 책은 안 읽고 패스하기로 했다. (아니야, 이북 읽어볼까??)




오늘 아침엔 출근하면서 내가 자판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랑 책을 넣으면 생각이 쏟아져나오는 자판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심연》은 지루하고 화나는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생각을 겁나 많이 했거든. 억만장자와의 연애, 경력단절, 과거의 여자...까지. 영화를 보는 것보다 그 후의 생각과 대화들이 좋아서 계속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멈추지 말아야지. 




자, 이제 일하러 가볼까.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그렇게 서울 시내에 아파트를 사야 내가 청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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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7-02-1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이렇게 생각만해도 짜증나는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재밌는 글이 튀어나오는 락방님! 진짜 자판기야... 내방에 하나 설치하고 싶오... -구 lovelydew

다락방 2017-02-15 14:14   좋아요 0 | URL
스윗듀님 오랜만이에요! 자주 좀 오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스윗듀님 방에 저를 설치해주세요... (부끄..) ㅋㅋㅋㅋㅋ

>.<

단발머리 2017-02-2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그런 억만장자들은 대체 어느 별에서 산대요... 우리로서는 볼 일이 전혀 없네요. ㅎㅎㅎㅎ

나도... 억만장자의 청혼, 아파트, 직장, 승진, 경력단절, 아~~ 드레스, 이런 거 고민해보고 싶어요.
아나스타샤가 되어야겠네요. 영화 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