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목차에 친절하게도 영화의 제목이 나와있어,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이면 아마도 그렇게 하겠지만, 내가 본 영화는 몇 편이나 있나 세어보았다. 자전거를 탄 소년을 내가 보았나 안보았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본문으로 읽어보니 전혀 기억이 안나는 걸로 보아 안보았구나. 가만있자, 그렇다면 내가 본 소년이 나오는 영화, 대필해주는 여자가 나오는 영화가 뭐더라...하고 머리 싸매고 끙끙대다가 그제서야 내가 본 영화는 《중앙역》이라는 게 떠올랐다. 어찌됐든 내가 '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영화는 이 책에 실린 51편의 영화중에 21편 이더라. 언젠가부터 영화를 많이 보지 않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겹친다 싶다. 어쨌든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가다가, 아, 이렇게 읽으면 안돼, 그러지 말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부분을 보자, 해서는, 내가 본 영화를 우선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같은 영화이지만 내가 본 영화와 이 책의 저자가 본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됐다. 특히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 《Take this waltz》에 대해 '틈'을 얘기하다니, 그 영화 그렇게나 좋아해놓고서 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나여...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내가 본 영화와 그녀가 본 영화가 같은 게 맞나 싶다. 그렇게 읽어가다가, 내가 아직 보지 않은 영화중에, 그러니까 보고 싶었지만 놓쳤던 영화중에 '아 진짜 놓친 게 아쉽구나' 하는 영화를 만났다.



















'최상의 파트너', '완벽한 파트너'의 이야기라는 게 진짜 너무 좋은 거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앞에 놓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는 거. 결국 현실적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 라는 답을 내린다는 것에서 이 영화를 강렬하게 보고싶어졌는데, 후다닥, 네이버 굿다운로더 검색해보니 이 영화는 굿다운로더 목록에 없어 ㅠㅠ 슬픔 ㅠㅠ 슬픔의 새드니스.


또, 이 영화를 이런 내용이라니 보고 싶다는 것과는 별개로, 밑줄 그은 부분에서 다른 것들을 소환해냈다. 비포 시리즈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어웨이 위 고》에서 남자와 여자가 길을 떠나며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들의 삶에 대한 고민에 답을 얻는 바로 그 부분에서 나는 비포 시리즈가 생각난건데,


시작되는 모든 연인들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에서 남자와 여자는 상대만 쳐다본다. 상대의 얘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상대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대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내 모든 말과 행동에 신경을 쓰면서 상대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거다. 다른 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고 다른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시작되는 그 지점에서 중요한 건 상대를 향한 최선의 노력과 집중이니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도 '에미'와 '레오'의 이메일은 서로에게만 향한다. 서로의 일과와 감정 연애 그리고 각자가 서로의 메일을 기다리는 시간에 집중한다. 그 둘 사이에서 대화의 촛점은 오직 둘을 향해서만 맞춰져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사회에 대해 딱히 얘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 입고 자요?' 같은 것들인 것이다.



자, 다시.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가 진행되고 그들이 공식적 커플이 되고나서는, 이제 둘 이외의 것들을 봐야한다. 내가 비포시리즈에서 가장 좋았던 건, 영화가 이걸 드러내준다는 데 있다. 자연스럽게 그걸 표현해줬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제 훌쩍 나이들어 버렸고, 함께 살며, 아이도 있다. 이들의 삶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녹아들었는데, 이제 커플로 굳어져버린 그들에게는 '오롯이 상대만'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에 갔고,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지만, 다른 사람들과도 섞인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에서는 없었던 장면. 그들은 그들 커플과 함께 다른 사람들과도 섞여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보기도 하는 거다. 그들이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점을 넘어갔기 때문에 서운한 게 아니라, 그랬기 때문에 그들이 단단한 커플이 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서로를 봤고 그렇게 서로에게 섞여들었다면,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섞여내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일이고 과정일 테니까. 그들은 둘이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 호텔에 갔다가 싸우고 돌아서고 말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지냈음에도 다시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단단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것이 그들이 개인이 아닌 그들로서 다른 사람들과 섞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이 사람의 옆자리에 있고, 이 사람의 내 옆자리에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내보일 수 있는 건 굉장한 특권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인데, 《고마워 영화》에서 만난 《어웨이 위 고》에서, 이 커플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다른 곳에 가는 이 장면에서 바로 비포 미드나잇의 '다른 사람들과도 섞이는 장면'이 떠올랐던 거다. 



새벽 세시의 에미와 레오는 어떤가. 그들이 그렇게 서로에게 집중해 연인이 되었다면, 그 후에 그들은 이제 서로가 아닌 다른 것들이 보이고 얘기를 나누게 될것이다. 이봐,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데 어떻게 생각해? 라든가, 한국의 한끼줍쇼 프로그램 너무 엿같지 않아? 라든가, 개그프로그램에서 여자의 외모를 비하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거 진짜 구리지? 라든가. 기타 등등. 우리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 



















아 너무 좋지 않은가. 

나와 너였다가 우리가 되고, 그렇게 우리로서 다른 사람들과 섞이는 것. 그것이 반드시 친구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여행지에서 만나 스쳐지나는 사람들일 수 있고, 자주 가는 카페 직원일 수도 있다. 응, 우리는 우리야, 할 수 있는 거. 그리고 그런 우리로서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거.


어웨이 위 고 너무 보고싶은데 ㅠㅠ 굿다운로더에 없어서 ㅠㅠ 진짜 슬픔의 새드니스.




나는 우울해지면 이상하게 아름다운 요리책이 보고싶어지는데 그래서 킨포크 테이블 사고싶다. ㅠㅠ

사진 보면 막 힐링힐링 될 것 같아.

살까... ㅠㅠ
















토요일에 친구들 만나서 여러 좋은 이야기들 함께 나누었는데, 그 중에 가장 좋았던 건 한 친구가 나한테 '잘생겼다'고 말한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잘생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화장실 갔다오면서 거울 들여다봤다. 내가 뭘 그렇게 잘생겼다고, 거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정도면 그냥 평범한거지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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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12-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이 아름다운 책 <고마워 영화> 시작해야겠어요. 사실 저는 안 본 영화가 41편일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ㅠㅠ
비포 시리즈도 저를 기다리고 있지만서도, 이 책 읽으면 더 많은 영화들이 나도! 나도! 할 것 같아요.
얘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다락방 2017-12-11 12:10   좋아요 0 | URL
비포시리즈는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님. 1편부터 3편까지 정말 다 좋아요! >.<
이 책 읽다 보니 [어웨이 위 고] 너무 보고싶은데 지금 이걸 어떻게 봐야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하하. 지금 저한테 너무나 필요한 영화인것 같은데 말이죠.

2017-12-1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7-12-1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생겼...^^;;;;;; 비포 시리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ㅎ

다락방 2017-12-11 14:57   좋아요 0 | URL
비포 시리즈는 진짜 명작인것 같아요. 저도 다시 보고싶네요. DVD 도 셋트로 다 사고 싶고요! >.<

transient-guest 2017-12-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영화광이었던 적이 있어요. 20상영관을 가진 극장의 영화를 모두 보고, 다른 인디나 아트무비까지 다 보던 시기였는데,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몇 번 중 하나에 속하는, 꿈과 시간은 많고 현실은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갑자기 이 책을 보니 그때가 생각이 나서 저도 보관함에 담았어요. 프레이야님이 쓰신 두 번째 책이라니, 저는 첫 번째 책도 모르는데 말이죠. 궁금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 중 제가 아는 건 몇 개나 될지...

다락방 2017-12-12 09:08   좋아요 1 | URL
현재까지는 제가 가장 많이 겹치는 것 같은데(이상한 경쟁심 ㅋㅋ) 아마도 이 책을 받고 목차를 펼쳐드신다면, 게스트님은.. 저보다 더 많은 영화가 겹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중학생때 비디오 플레이어를 아빠가 사셨거든요. 너무 신나서 매일매일 미친듯이 비디오샵에 가서 테이프 빌려다 봤어요. 방학때면 삼남매가 난리가 나서, 비디오샵 사장님이 나중엔 하나 빌리면 하나 서비스로 더 빌려주시고 그러셨어요. 그때는 그런데 미성년자여서... 더 많은 영화를 다양하게 보진 못했던 것 같아요. 대신에, 이름도 알지 못하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영화들을 싹 다 봤었죠. 다 지난 일이네요.
불과 몇해전만 해도 보고싶은 영화 있으면 평일에 극장 달려가서 보고 그랬는데 이젠 늙어서(응?) 평일 극장은 힘들어요. 주말이면 내리 두 편을 보기도 했는데, 그역시도 힘들어졌고요. 체력이 될 때 독서든 영화든 여행이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죄다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잘 지냅시다, 게스트님.
 

'엠마뉘엘'은 동생 '파스칼'로부터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병원에 바로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다다다닥 나가다가, 뉘엘은 자신이 콘택트렌즈를 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올라가 렌즈를 낀다. 그리고 내려와서는 택시를 잡으려다 줄이 길어서 지하철이 더 빠르겠다 하고는 지하철을 타러 간다. 아버지는 괜찮을거야, 자신에게 속삭이다가, 무슨 일이 있었으면 파스칼이 연락을 했겠지,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와의 어릴 적 일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어서 빨리 병원에 닿기를, 어서 빨리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제 눈으로 확인하길 원한다. 그렇게 지하철 안에서 끊임없이 마음이 소란스러운데,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건다.



나는 덩치 큰 남자 옆에 앉는다.

지하철 신호음, 열차의 문들이 닫힌다.

옆의 남자가 이내 커다란 파리 시내 지도를 펼친다. 남자는 나에게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가리켜달라고 영어로 말한다.

도톰한 광택지 지도가 내 무릎 위에 펼쳐진다. 나는 우리가 탄 지하철 노선에 손가락을 올린다.

지도의 밑에서부터 위까지 관통하는, 장밋빛 스파게티 같은 긴 선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바둑판무늬가 크고 작은 묘지와 십자가처럼 보인다.

땡큐. (p.12)

















낯선 이, 외국인이 내게 지도를 내밀며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는 그 말이, 그 때의 뉘엘에게 가 닿았다는 게 놀랍다. 지금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해서 렌즈도 빼먹을 정도로 정신이 사나운데, 그 상황에서 낯선 이에게 지도를 같이 보고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킬 수 있다는 게, 바로 인간의 놀라운 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평온한 듯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어떤 생각들이 가득할지 모르고, 내가 웃는 듯 보여도 그 안에 어떤 사정들이 뜨겁게 들끓어 오를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일을 하러 가고, 사람들을 만난다. 


뉘엘에게 저 시간 지하철안은, 아니 그게 어디라도, 너무나 힘든 곳이었을텐데, 그런데 다른 이에게 마치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위치를 가리켜줄 수 있는 일, 인간이 자신의 인간적 특성의 가장 깊은 부분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 낯선이에게 지하철 옆자리의 뉘엘은, 그저 파리에 사는 현지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도를 내밀며 여기가 어디야?라고 물을 때 그에게, '혹시 저 여자에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지금 정신이 사납거나 하진 않을까?'같은 걸 생각하진 않을테니까. 나는 방향치에 길치이며 지도를 봐도 여기가 어디고 저기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낯선 이에게 길을 묻는다. 건대 앞에서도 그랬고 창원에서도 그랬고 대전에서도 그랬고 싱가폴에서도 그랬고 뉴욕에서도 그랬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그랬고 하노이에서도 그랬다. 그렇게나 자주 낯선이에게 길을 물을 때, 나는 한 번도 내게 길을 알려줄 사람의 개인적 사정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사람의 내면에 어떤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길을 알려달라는 이방인의 이 '사소한' 질문. 그러니까 나는 이것이 너무나 '사소'해서 상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다. 


그러나 뉘엘에게, 뉘엘에게는 어땠을까. 뉘엘에게는 지금 일분 일초가 너무나 급하고 초조하고 애가 탔을텐데, 머릿속에 여러가지 기억과 생각과 추억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을텐데, 그런데 지도를 같이 들여다보고 손가락으로 위치를 짚는 일이, 과연 사소했을까? 


내가 길을 물었던 그 많은 순간에 내게 답을 해준 사람들에게도, 매번 사소했을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준 적이 많았는데, 그때 나는 늘상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금 여기야' 혹은 '응 저 길로 가서 왼쪽으로 돌면 돼'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그게 인간적 특성인 건 아닐까. 대답하지 않아도 될것이고, 지금 마음이 시끄러우니 '몰라요' 라고 해도 됐을텐데, 그런데 기어코 대답을 해주고야 마는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나에겐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겐 결코 그 사소하지 않은 순간이, 그 누군가의 배려로 사소함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바로 그 지점. 그게 인간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부분에서 괜히 감동을 받아가지고, 뉘엘,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도 아무도 당신에게 뭐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속으로 말했다. 




뉘엘의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야 하고, 여기저기 아프고, 그간의 삶이 행복했고,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아닌 것 같다. 이제 그 삶을 스스로의 결정으로 끝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딸에게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p.61)고 말한다. 깊은 고민과 대화 뒤에 뉘엘과 파스칼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스위스에 가 그 일을 진행하기로 한다. 언제가 좋을지 시간을 정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안락사를 돕는 스위스 단체와 만나 이야기도 나눈다. 그 과정에서 뉘엘은 '스위스 부인'에게 혹여나 결정해놓고 나중에 취소한 경우는 없었는지 묻는다.



어쩌면 베른에 도착하니 아버지 생각이 바뀌어서 우리는 파리로 함께 돌아올 것이다.

나는 스위스 부인에게 환자 중에 계획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는지 물었다. 스위스 부인은 그런 일이 딱 한 번 있었다고 대답했다. 중병에 걸린,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는데 젊은 아내와 동행했다. 부부는 베른 시내로 산책을 나갔고 마지막 저녁을 위해 아내에게 빨간 드레스를 선물했다. 남편은 아내가 드레스를 갈아입는 동안 호텔 바에서 기다렸다. 빨간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난 아내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남편은 살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부부는 스위스 부인을 초대헤서 샴페인을 마셨고, 다시 떠났다. (p.211)




아.... 빨간 드레스 차림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살기를 결심할 수도 있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런데, 윌은 다른 선택을 했지. 아침에 눈을 뜨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클라크인데, 그런 클라크가 있어도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삶을 끝내려 했었지.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얘기다.
















"혹시 이런 거 알아요?"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특유의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웃음. 목이 어깨로 이어지는 그 지점.

"뭔데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밖에 없다는 거." (p.388)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클라크, 그런 클라크가 자신의 옆에 있는데도, 윌은 자신의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아니, 이건 내가 원하는 내 삶이 아니에요, 하면서. 아침에 눈을 뜨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는 그랬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빨간 드레스 입은 아내가 아름다워 살기를 결심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도 있는 거다. 아, 윌 ㅠㅠ



"미안해요. 내겐 충분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을 내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말하기 전에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꼭 정확한 단어들을 골라야만 하겠다는 듯이.

"난 그걸로 안 돼요. 이, 내 세상은, 아무리 당신이 있더라도 모자라. 진심으로 말하지만, 클라크, 당신이 오고 나서 내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물러설 차례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곁에 있다면, 어쩌면 썩 괜찮은 삶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내'인생이 아니에요. 당신이 얘기를 나누었던 그 사람들과 나는 달라요. 그건 내가 원하는 삶과 전혀 다르단 말입니다. 비슷한 구석도 없다고요." (p.471-472)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윌의 말을 이해한다. 사고로 신체에 마비가 찾아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으로 인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어졌지만, 그러나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 그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어야 했는데,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는 거. 그렇지만, 그렇지만.... 죽음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남아있는 클라크는, 도대체 그 슬픔을, '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며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을 보는 클라크는, 어쩌나. 



음... 페이퍼를 쓸 때만 해도 미 비포 유 까지 가져올 생각을 하진 못했었는데... 음.....

아... ㅠㅠ



그러나 윌이 클라크 만으로, 그러니까 아침에 눈을 뜨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클라크의 잘못이 아니다. 클라크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차은주는 자신의 노래 <알 수 없어요>에서 '내가 많이 부족한가요' 라고 떠난 연인에게 물었지만, 박화요비는 자신의 노래 <그런 일은> 에서 '내가 미워졌나요?' 라고 물었지만, 아니, 윌이 자신의 결정을 한 것은 결코 클라크가 부족해서도, 모자라서도, 잘못해서도 아니다. 클라크가 춭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클라크 자체로는 충분하고 완벽했다. 클라크가 거기에서 더 무엇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윌이 원하는 삶은 클라크가 전부인 삶이 아니었던 거다.



제기랄..

인간의 대단함, 위대함, 복합적임 뭐 이런 것에 대해 얘기하려다가 사랑과 이별로 끝나버렸네...





오늘 아침엔 스벅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직원의 얼굴이 보인다. 사실 그간 이 직원분을 볼 때 딱히 어떤 느낌이 있다거나 감정이 들었던 건 아니었는데, 오늘 뭔가 며칠 만에 보니 막 반가워? 나도 모르게, '언제 근무하시는 거예요? 되게 오랜만이에요' 했더니, 그 직원분이 막 웃으시면서 '고객님들이 그 말씀 진짜 많이 하시는데 저 이번 주에 하루 밖에 안쉬었어요' 하더라. 아 그래요? 했더니, '제가 근무중인데 바깥에 나와있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하면서, '내일도 모레도 월요일도 근무할거예요' 하시더라. 그렇게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나도 막 웃게되고, '오랜만에 뵙게 되니 너무 반가워요'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그런 말이 나왔어. 그렇게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나오는데, 텀블러에 커피를 채워가지고 나오면서 활짝 또 웃게 됐다. 걸으면서도 계속 웃었다. 그리고 직원 분과 대화하느라 빼놨던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으니, 이어폰에서는 '박정현'의 <꿈에>가 나오고 있었지. 이 뭔가 언밸런스한 조화라니.... 노래를 들으니 또 슬프고 감상에 푹 젖어버리는데, 입으로는 활짝 웃고 있었던 나여...





그나저나, 빨간 드레스라...빨간 드레스면... 되는 건가. 당신이 살아갈 충분한 이유 같은 거 말이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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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12-0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의 스벅은.. 참 좋아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음료를 사먹었죠. 돌체 라떼. 수첩 받기 위한 시도였지만, 꽤 맛난.

다락방 2017-12-08 13:07   좋아요 0 | URL
저도 스노우돌체라떼는 괜찮더라고요. 무지방우유라 좋아요. 물론 아메리카노가 짱이지만요! 우후훗.

비연 2017-12-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Me before you˝를 읽으면서 윌의 저 심정이 이해가 되었더랬어요.
사랑 때문에 살 수 있어... 가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볼 때 이쯤에서 끝내야겠다는 마음. 그건 사랑과는 별개의.
그래서 좀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더랬죠... 아 소설 다시 읽어야겠어요. 요즘 넘 건조한 책만..ㅜ

다락방 2017-12-08 13:1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윌의 심정이 이해가 됐어요. ‘이렇게는 사는 게 의미가 없다‘, ‘이것은 내 삶이 아니다‘ 하는, 그 마음. 사랑말고도 다른 것들이 내게 필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충분치 않은 그거요. 그것도 이해되는데, 그런 한편, 저는 생에 대한 욕망이 강해서 ‘그럼에도불구하고‘ 삶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미 비포 유 읽으면서 이거 소설이니까 그나마 윌이 부자 남자라 이렇게 간병인 두고 살지, 보통 사람에겐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펑펑 울었어요. 나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알겠는데, 서운하잖아요. ㅠㅠ

one fine day 2017-12-08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재밌게 보고있는 미드 굿닥터라고 있는데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주인공 소년이 자폐 외과의사로 나와요. 우리나라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미드지만 원작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재미있게 보고있어요. 어제 본 에피소드는 자발적 희생이라는 주제였는데 최고 프로게이머가 팔을 쓸 수 없게되서 처음엔 간단한 수술인줄 알았는데 뇌에 종양이 발견되서 곧 죽을 거라는 선고를 받습니다. 프로게이머는 처음엔 충격을 받지만 곧 자기는 정상을 올라가 봤다며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담담하게 얘기해요. 그러면서 담당의에게 당신은 당장 죽어도 좋을 삶을 살고있느냐고 되묻죠. 그순간 저도 자신에게 물었어요. 이대로 죽어도 좋겠느냐고. 그래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한가해지면 읽으려고 사둔 재미난 책때문에 안되겠다라구요. -,-;
이 드라마의 결말은 반전이 있습니다. 수술을 하면 생명을 건지겠지만 왼쪽은 불구가 될거라고 그래도 수술을 받겠느냐고. 프로게이머에게 건강한 팔은 목숨보다 소중할터이니 당연히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수술동의서에 바로 싸인을 하며 나는 게이머이고 다시 인생을 살 것이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면된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죠. 저도 어제 윌과는 다른 결정을 내린 게이머를 보며 미비포유를 생각했었는데 반갑네요.

다락방 2017-12-10 22:54   좋아요 0 | URL
윌의 결정은 이해가 되고 저였어도 그랫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야속하기도 해요. 살아주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죠. 그렇지만 그건 ‘남아있는 자‘의 바람이죠. 그래서 윌의 선택을 뜯어말릴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책 [다 잘된거야]에도 아버지의 안락사 선택을 어떻게든 뜯어 말리려는 사촌이 나오거든요. ‘경찰에 신고해버릴거야!‘ 라고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경찰에 신고가 되기도 햇습니다. 사촌이 신고한 건 아니었지만요. 윌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세상 어딘가에 더 많이 존재할테지만, 책으로 읽으면서 주인공인 윌을 만나버리는 바람에, 윌에 대해 더 아쉽고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클라크를 알기에 더 그런거겠죠.

저는 지금 죽는다면 여한이 없는가, 라고 물었을 때, 아직 못해본 것도 많아서 죽기 싫지만, 그런걸 떠나서도 삶을 계속 살고 싶어요. 당장은 우울하고 슬프고 힘든 일들이 있어서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계속 살고 싶어요. 더 살아서 계속 삶을 유지하고,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싶어요. 저는 생에 대한 욕망이 엄청 강한 사람이구나 싶어요.
말씀하신 드라마에서 나온 게이머처럼,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만 그렇게 삶을 선택하는 게 또 좋으네요. 그런 한편, 윌도 다른 삶을 받아들여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원 파인 데이님. 이렇게 다른 걸 보면서도 같은 책을 떠올릴 수 있다니, 정말 근사하지 않아요? 우울한 일들로만 연속되는 삶이 아니라는 걸 이럴 때 또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사소한 즐거움 같은 것들이 일상에 더 많이 끼어들었으면 좋겠어요.
:)
 
프랑켄슈타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내가 아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모습을 지우는 것'이다. 역자 후기에도 이 말이 가장 먼저 나와있는데, 내가 영화에서 봤던 모습과 익히 프랑켄슈타인 괴물이라고 알려진 모습이 너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이 책의 몰입을 방해한다. 내 머릿속에 박힌 그 괴물은 흉측하다기 보다는 어눌하고 좀 맹한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이 책속에서 메리 셸리가 그려낸 괴물은 겉모습이 거대하고 우리랑 다른, 그래서 흉물이라 모두가 놀라 비명을 지르긴 하지만, 굉장히 명민하고 사랑과 박애가 넘치는 캐릭터다. 빅토르는 그와 말도 섞어보지 않은 채로 자신이 만들어놓은 살아 숨쉬는 육체가 눈을 뜨자마자 '으앗 괴물이다' 하고 그로부터 도망치지만, 그는 제대로 사랑할 줄도 알고 감동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으며, 자연과 햇살 바람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날씨로부터도 행복을 느끼는 존재였던 거다. 게다가 그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꽤 흥미로운데, 한 가족을 엿보면서 사랑과 우아함을 알기도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언어를 습득하기도 하는 거다. 놀라운 건, 그가 책을 읽고 아주 많은 것들을 습득하고 고뇌한다는 데 있다. 그는 우연히 《실낙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젊은 베르테리의 슬픔》을 읽게 되는데, 이로부터 주인공들의 처지에 공감도 했다가 자신과 다른 점도 찾으면서 지식과 삶에 눈을 떠가는 것이다.


그런 그가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가족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사랑을 주고 받는, 그들의 그 다정함 속에 자신도 섞이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그들의 성품이 얼마나 온화하고 인자한지를 확신한 후에, 맹인인 그 가족의 아버지만 남았을 때 찾아가 말을 건다. 괴물의 겉모습을 알지 못한 아버지는 그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또 그의 친구가 되어줄 준비를 하는데, 괴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다른 가족들은 속히 그 집으로부터 떠난다. 당연히 그 괴물로부터도 멀리.


괴물은(사실 그 괴물에게 이름이 없다) 이에 절망한다. 물가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해줬는데, 그 어린 아이의 가족 조차도 그를 경멸한다. 그는 인간에게 절망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면서, 이에 자신의 외로움을 구원해줄 존재를 절실히 원하게 되고, 자신을 만들어준 빅토르를 찾아가 '나같은 여자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한다. 만약 나의 창조주인 당신이 나같은 존재를 만들어준다면, 나는 그 여인과 함께 인적이 드문 먼 곳으로가 우리끼리 그냥 잘 살겠노라, 인간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겠다고 맹세하노라, 얘기를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빅토르에게 하는 말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설득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어낼만큼 논리적인데, 그런 괴물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꾸 머릿속에 내가 아는 괴물의 모습이 그려지면 너무 매치가 안되는 거다.


빅토르는 이미 자신의 가족을 잃어 가슴이 아팠고, 그를 괴물로 마음과 머리로 인정해버린 터라, 그의 말을 듣기를 거부했지만, 듣다보니 그의 말에 한 점 틀린 게 없어, 그래, 너같은 존재, 여성인 존재로 만들어주마, 말을 한다. 자료를 다시 수집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이 괴물의 여자 존재, 괴물에게 친구가 되어줄 존재, 괴물의 외로움을 함께 나눠줄 존재를 만들려던 빅토르는, 그러나 '그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지금 괴물같은 존재가 될 줄 어떻게 알겠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이 괴물은 만들어진 직후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고, 지식을 습득하고, 사랑과 박애와 동정심을 갖게 되었지만,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그렇지 않다면? 또한,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무리 자신과 같은 존재라 해도 그 괴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럴 경우엔 같은 종족으로부터 버려진 괴물은, 지금보다 더 괴물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그로하여금 다른 존재를 만드는 걸 포기하게 하고, 이에 괴물의 분노는 폭발해서 자신의 창조주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빅토르는 소중한 모든 걸 잃게 되고 몸도 쇠약해지게 되는데, 이 때 항해하던 로버트 월턴을 만나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버트 월턴도 이 괴물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괴물을 괴물로만 대해 그를 물리치려 하다가 괴물의 죄책감을 알게 된다. 



괴물은, 괴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괴물은 괴물로 만들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 빅토르는, 그렇게 한 생명을 만들어내는 데 흥분해 그 후를 생각하지 않고 절대권력자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만들어놓고 뒤도 안돌아보고 쌩까서도 안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생명체를, 그냥 버려두는 거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은 옳을까? 이 책에서 빅토르는 공부와 연구를 거듭해 육체를 만들고 생명을 넣을 수 있는 걸 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 없이 했다. 그에게는 그때 이것이 윤리적으로 어떤 것일지, 이 생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우리가 하나의 생명(혹은 그보다 더 많이)을 만들어내고 혹은 맡게 되었을 때, 그것을 한 순간의 감정으로 내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선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한 행동, 선한 마음가짐은, 애시당초 장착된 게 아니라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닐까. 나라면 이 괴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겉모습만 보고 괴물이라 칭하지 말아야지, 얘기해보면 저 존재는 나에게 소중해질지도 몰라'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친구란 무엇일까? 빅토르가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갖기 보다, 그와 대화해서 그가 삶에 눈뜨는 것들을 함께 바라봐주고 또 그가 지식 습득하는 과정중에 함께 했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오히려 누구보다 더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친구든 애인이든 본인이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거지만 말이다.

외로움은 무엇일까. 언젠가 페미니즘 강연 들을 때 '외로움이 가장 무섭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괴물이 자신에게 '나 같은 존재'를 만들어달라 청한 건 지극히 본능적인 요구는 아니었을까. 사랑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어떻게 혼자 지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우아함과 다정함 그리고 따뜻함이 무엇인지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는데. 우리가 일단 사랑에 관련된 감정들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충족시키는지를 안다면, 그것들 없이 살아가는 건 너무도 힘겨워지지 않을까.

그러나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빅토르의 의심대로,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이 괴물을 사랑하리란 보장은 또 어디에 있는가. 사랑이란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던가. 어쩌면 괴물은 '나같은 존재'로 부터도 버려졌다는 사실에 더 큰 슬픔에 잠길 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괴물로 칭해놓고서, 그러나 그 존재에게 '그렇다고 해서 너가 그렇게 쉽게 괴물이 되어서는 안돼'라고 말해도 되는걸까. 그건 옳은가. 우리는 선하지 않았고, 선하게 다른 존재를 대한 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그에게 '악마가 되어서는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나를 혐오하는 그들을 어찌 내가 증오하지 않겠는가?"(p.133)



의문문으로 시작하지도 끝을 맺지도 않은 이 한 권의 소설에서, 그러나 읽는 동안 수만 개의 의문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많은 것들을 묻게 하고 그러나 확신을 가진 답을 할 수 없게 한다. 자연, 인간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 그리고 지식의 습득까지 이 놀라운 소설 한 권에 다 들어있는데, 아이구야, 메리 셸리는 이 대단한 소설을 자신의 나이 19세에 썼다고 한다. 그녀가 19세에 이 소설을 썼다는 걸 알지 못하면서 읽었을 때에도 '천재다 천재' 라고 계속 감탄했는데, 뭐라고? 19세라고? 이건 뭐 어떻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구나. 나는 그저 독자의 자리에서 감탄만 끊임없이 하다가 책을 덮을 뿐이다. 



가끔, 나는 왜 소설을 좋아하는가, 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데, 이 책을 읽노라니 자연스레 이런 답이 내려진다.


'소설이 이러니까.'


진짜 소설이 이러니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괴물이라 칭해지는 존재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있어서, 그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 순간 순간의 감정이 어떠했을지 손에 잡히는 듯해서, 인간이란 건 그렇게 쉽게, '선한' 혹은 '악한'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이렇게 잘 보여주니까. 소설이 이러니까. 소설이 이러니까 좋아한다. 이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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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2-07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미 있었는데 모르고 또 산 건 비밀 ^^

syo 2017-12-07 10:27   좋아요 1 | URL
이 비밀은 분노의 포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다락방 2017-12-07 10:29   좋아요 1 | URL
아 맞다. 나 그것도 그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인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7-12-0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이것도 보관함에... 아.. 근데 이 글 읽으니 바로 사야 할 것 같아요..ㅜㅜ

다락방 2017-12-07 11:19   좋아요 1 | URL
네 비연님. 보관함의 그 많고 많은 책들 사이에 포함하지 마시고 이것은 바로 장바구니로 넘겨도 되실겁니다. 후훗.

비연 2017-12-07 13:25   좋아요 0 | URL
아아... 락방님.... 장바구니... 방금 넣었는데... 어찌 아시고...ㅜㅜㅜㅜㅜㅜㅜ

다락방 2017-12-07 13:35   좋아요 1 | URL
달려요, 달렷! 으하하하하. 자, 질렀으니 열심히 읽어봅시다!!

비연 2017-12-07 15:34   좋아요 0 | URL
락방님... 프랑켄슈타인만 사야지 했다가 12권 주문..ㅠ 저 중독인 듯.
.. 그러나 도자기 식판 동그란 거 주문! 크하하하하하

다락방 2017-12-07 16:16   좋아요 1 | URL
아니, 열 두권이라뇨, 비연님! ㅎㅎㅎㅎㅎ
어쨌든 식판 하나 받으시는군요! 우히히히.
저는 언제쯤 식판에 안주 담아서 술 마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언제 하지? 헤헷. 즐거운 고민!

레와 2017-12-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은 생각과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네요!! 와.. 다락방 리뷰만 읽었는데 엄청난 책이다.
열아홉살때 작품이라니.. 와.....

다락방 2017-12-07 16:17   좋아요 0 | URL
나는 .. 나는.... 아아 비교하지 말아야지. 감히 천재작가와 나를 비교하려 하다니.
메리 셸리 진짜 대단해요! 이렇게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다니 진짜 짱이에요. 레와님도 꼭 읽어봤으면 해요! >.<

hellas 2017-12-0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책장에 방치했는데. 얼른 읽어야 겠다!! 생각하게 되네요:)

다락방 2017-12-08 08:00   좋아요 1 | URL
저는 읽고 엄청 재미있었는데요, 헬라스님께도 그런 책이 된다면 좋겠어요!! >.<

보물선 2018-03-1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커버판 소개에 다락방님 리뷰가 첨부되었어요! 축하드립니다^^

다락방 2018-03-16 10:45   좋아요 0 | URL
오옷 그래요? 가서 봐야겠네요. ㅋㅋㅋㅋㅋ
이게 알라딘에서는 볼 수가 없는가봐요? 실물 찾아봐야겠네요. 이런 ㅋㅋㅋㅋㅋ


보물선 2018-03-1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75496

보물선 2018-03-16 11:16   좋아요 0 | URL
친절한 보물선! ㅎㅎㅎ

다락방 2018-03-16 14:54   좋아요 1 | URL
제가 못찾고 있으니까 다른 친구가 알려줘서 봤어요. ㅋㅋㅋㅋ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ㅎㅎㅎ
 
God save me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채워지질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 그 부재는 무엇보다 혹독한 불행으로 느껴지네요.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거릿 누님. 성공에 대한 열의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 환희에 동참해줄 이도 없고,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들을 종이에 적을 수야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을 소통하는 데는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공감 해줄 사람이 동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라보면 눈빛으로 화답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사랑하는 누님, 제가 낭만적으로 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친구의 부재를 쓰라리게 절감합니다. 제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온화하면서도 용감하고, 교양을 갖추었으되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저와 취향이 같고, 제가 세운 계획을 인정해주거나 수정해줄 만한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p.24)


















이 책의 1/3정도를 남겨두고 있고 할 말이 아주 많은데, 오늘은 일단 저 '친구'에 대해서 얘기해야겠다. 이 편지를 누님에게 보낸 '로버트 월턴'은 선원을 모아 긴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열심히 선원을 모으고 항해를 준비하지만, 자신과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어 심한 외로움과 부족함을 느낀다. 그는 그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부터 메리 셸리가 너무 좋았는데, 이 작가는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던 거다. 대화를 나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 참에 로버트는 빅토르를 구조하게 되고, 그와 절친한 벗이 되어 그로부터 괴물을 만들어낸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책은 진행된다.


'메리 앤 섀퍼'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에도 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된다.



하지만 소피, 대체 나는 뭐가 문제인 걸까? 내가 너무 까다롭니? 나는 그저 결혼하기 위한 결혼은 싫어.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 혹은 더 나쁜 경우에는 침묵을 나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다고 생각해. -구판, p.18-19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위에 로버트 월턴이 말했던 것처럼 아주 많은 것을 함께한다는 걸 의미한다. 한쪽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주고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기운을 내도록 으쌰으쌰도 해주고 인생의 계획을 들어주는 것. 이 모든 게 다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인데,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절실하다는 것을 로버트 월턴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대화가 통화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얼마나 기쁠까.



어제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서 함께 술을 마셨다. 이 셋의 구성으로는 처음 갖는 술자리였는데, 어색할 틈도 없이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들어주었다. 게다가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대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직장일부터 시작해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 여자로서 직장내의 위치에 관한 것, 페미니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고, 아아, 다른 사람들이랑은 잘 할 수 없는 독서! 독서에 대한 것! 우리는 책, 소설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었던 거다. 소설은 얼마나 좋은지, 소설이 얼마나 많은 걸 줄 수 있는지를 흥분해서 얘기했던 것. 그러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 처음 함께 술을 마신 친구1은 자꾸 뭔가를 사주고 싶다, 술이 깰만한 무언가를 꼭 사주고 싶다며 스타벅스에 가자 말했고, 그렇게 스타벅스에 갔지만 문을 닫았어... 결국 지하철 역으로 향했는데, 서로 집에 가면서 단톡방 만들어서 각자 느낀 이 흥분을 전했다. 다들 너무 좋다는 얘기였다. 지하철역에 함께 걸으면서도, 너무 좋다, 우리 또 만나자, 우리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자, 이런 얘기를 했는데, 친구1은 술자리에 점점 빠지게 됐던 상황에서 이 즈음에 이렇게 좋은 술친구를 만날 수 있을줄은 몰랐다며 크게 기뻐했다. 나도 너무 흥분해가지고 좋다 좋다 했는데, 셋이 만든 단톡방에서 아주 그냥 다들 흥분하고 기분 좋아가지고 갔다. 아하하하하. 우리가 같은 것에 분노하고(우리는 엄청 분노해 얘기하기도 했다), 같은 것에 신나할 수 있다는 거 너무 좋았고, 다들 술 마시고 먹는 것도 좋아해서, 셋이서 와인 세 병 마시고 취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값을 엔분의 일 하기로 했지만, 엔분의 일가격도 높게 나왔다.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페미니즘과, 먹고 사는 것과,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라니. 세상 소중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톡방을 만들어서 서로 흥분하는 거 너무 좋고. 우리가 사이사이 분노하기도 했지만 결국 술을 마시면 유쾌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좋았다. 



친구1은 어제 나한테 목소리 너무 좋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우 같다고 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고맙다며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씐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목소리 좋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목소리 좋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싫어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목소리 좋다는 말 들으면 참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러분 나 목소리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이 얘길 트윗에 썼더니, 다른 친구가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너 전화 목소리는 더 좋다고 얘기하지 그랬어'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전화 목소리는 더 좋은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뭐 그렇다는 나 잘난척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훗.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은데, 그건 다 읽고나서 다음 페이퍼로 하기로 하자. 여러분 프랑켄슈타인이 정말 좋다 짱좋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메리 셸리 너무나 짱되는 것....





어제는 갑자기 제이슨 므라즈의 Lucky 노래가 생각났는데, 

제이슨 므라즈, 당신 진짜 행운아네.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지다니. 하는 마음이 되었던 거다.

이 가사에서 높이살 점은,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 보다도,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진걸 스스로 lucky 라고 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자기가 가진 게 뭔지 아는 거 너무 중요하고, 그걸 잘 파악하는 거 정말 소중한 재능이다.

위에 로버트 월턴은 진정한 친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고 했는데,

제이슨 므라즈는, 내가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지다니 정말 행운이야, 라고 말한다.

세상엔 이렇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아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또 자기가 가진 게 얼마만큼의 행운이고 축복인지 인지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I′m lucky I′m in love with my best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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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12-0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소설에 저런 글귀가 있었군요.
오래 전 읽어 기억이 가물^^
침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더없는 다행이라
생각되네요. 대화보다 더욱 친밀한!
아침부터 제이슨 므라즈 노래에 기분 좋아져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7-12-06 13:32   좋아요 0 | URL
저는 저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같이 살기로 약속한 약혼자한테 몹시 실망해서 저런 편지를 친구에게 쓰죠.
대화와 침묵을 나눌 수 있다는 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커다란 축복이에요, 프레이야님.

:)

단발머리 2017-12-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친구가 필요하죠.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아버지의 유산> 140쪽에 ‘나‘(필립 로스죠^^)가 친구에게 전화를 해요. 전화를 해서는 아버지가 이렇게 아프다, 아버지가 약해진 모습을 보는게 힘들다, 내 이야기는 아버지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친구는 섣불리 위로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말을 받아주고요.
맨 위에 인용해주신 박스 보니까 그 친구가 딱 그런 사람인 거예요.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사람.....

제가 다락방님 첨 만났을 때도, 제가 다락방님 고운 목소리에 뿅~~~ 갔더래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12-06 13:3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맞아요, 친구는 엄청 중요한 것 같아요.
메리 셸리는 그 점을 알고 있는 작가라서 너무 좋아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가는 거 너무 중요하고,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한 것 같아요.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주고, 함께 웃어주고, 미래의 계획에 귀를 기울여주는 친구, 너무 소중하지요. 너무 소중한 존재라 쉽게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으흐흐흐. 단발머리님도 제 목소리에 뿅 가신 분이시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는 왜 목소리가 좋아가지고 사람 여럿 뿅가게 하는가 몰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공개 2017-12-0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시고 글도 잘쓰시고 목소리도 넘나 좋은 다락방님.. 오늘 페이퍼 참 따뜻합니다. 프랑켄슈타인 사러 가야겠습니다. 읽을 시간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사서 옆에 두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7-12-06 13:36   좋아요 0 | URL
아니, 오늘은 제 칭찬데이 입니까? 두 줄의 댓글에 제 칭찬 엄청 많이 들어있어요!! >.<
얼쑤~

해장은 하셨는지요. 저는 점심에 햄버거 따위를 먹어서 몹시 우울해요. jsshin 님은 맛있는 거 드시고 컨디션 좋아지셨기를 바랍니다. 후훗.

비공개 2017-12-06 15:03   좋아요 0 | URL
저는 콩나물해장국을 먹었답니다. 햄버거를 드실수 있었다면 ‘술도 세신’을 덧붙여야 겠어요. 저는 아마... 햄버거집 근처에도 못갔을듯 합니다 ㅜㅜ

다락방 2017-12-06 16:08   좋아요 0 | URL
저는 당연히 햄버거로 해장하고 싶지 않았으나 ㅠㅠ 제 보직상 어쩔 수 없이 저에게 오늘 햄버거가 닥쳐와서....부득이하게 ㅠㅠ 이렇게 되었어요. 저도 콩나물국밥을 원합니다.
술도 세다뇨... 저도 어제 엄청 취했는데요. ㅎㅎ

psyche 2017-12-0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슨 므라즈의 럭키 제가 좋아하는 곡이네요.
남편 전화 링톤을 이 곡으로 지정했더니 아이들이 으윽 닭살이라고 난리쳤었던...
베스트 프렌드와 사랑에 빠지는 건 럭키한게 맞는데 결혼해서 같이 사는것도 럭키인지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ㅎㅎ

다락방 2017-12-06 14: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노코멘트 답변에 웃습니다 프시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럭키 노래 좋아해요. 한동안 엄청 반복해서 들었었어요. 어제 오늘 여러가지 음악들을 생각나는대로 듣고 있는데, 제이슨 므라즈의 럭키도 그 중 한 곡이에요.
베스트 프렌드와 사랑에 빠지는 건 럭키한 게 맞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후훗.

psyche 2017-12-06 16:06   좋아요 0 | URL
요 위에 햄버거 드셨다고 쓰셨길래.. 미국에서는 햄버거로 해장해요. 락방님은 미쿡 스타일! ㅎㅎ

다락방 2017-12-06 16:09   좋아요 0 | URL
해장은 당연히 라면으로!! 하고 싶습니다. ㅎㅎ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햄버거를 먹을 수밖에 없었어요. 햄버거 먹는데 소스가 너무 많아서 막 손이며 입에 묻어가지고 ㅎㅎㅎㅎㅎ 아 여러가지로 좋지 않은 식사였어요. ㅎㅎ
 

 
















칠봉이는 수시로 내게 소설만 읽지 말고 인문학도 좀 읽으라 말했'었'지만, 나는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설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 역시 인문학을 읽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간혹 읽지만, 그러나 나를 더 깨우는 건 소설임에 틀림없다. 왜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냐면, 이 소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절반만 읽어도(그렇다, 지금 절반까지 읽었다), 생각할 게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성찰할 수 있다면, 도대체 더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모든 필요한 것이 여기에 다 있고 그것을 또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절반만 읽어도 이게 가능하다니까? 이 책 너무 재미있어서 좋아 ㅠㅠ 재미있는데 중요한 말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다. 오, 메리 셸리...천재님이시여....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유복한 집에서 좋은 부모와 화목한 가정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의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사랑으로 보살펴주셨고, 사랑하는 애인이자 친구인 '엘리자베트'도 있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친구 '앙리 클레르발'도 있다. 그는, '나보다 더 행복하게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p.45)' 라고 자신하기도 한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얼마나 부족함이 없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열세살에 집에서 독학으로 자연철학에 빠졌던 그는, 모국이 아닌 곳에서 대학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에 독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다. 거기에서 화학에 흥미를 가져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데, 엄청 재미를 느끼고 푹 빠져서 공부를 한 덕에 2년만에 대학에서 배워야할 모든 걸 배우는 경지에 이른다. 그렇게 공부하고 더 깊은 연구를 하는동안, 그는 모국에 있는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일을 미룬다. 미루고 애써 무시하며 자신이 터득한 생명의 원리에 깊이 빠진채로,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연구를 진행한다. 아름다운 생명체를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그가 만들어낸 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괴물(p.71)'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그 생명체는 만들어졌고 자신은 경악하며 이미 그 생명체로부터 도망쳐버렸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닫는다. 자신이 한 연구와 실험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뒤늦게 드는 것이다. 이걸 깨닫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깊은데, 인용해보겠다.




아버지의 심기가 편치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차마 연구에 대한 생각들을 뇌리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자체로 혐오스러운 관념들이 어느새 내 상상력을 불가항력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이제 본성을 철저히 삼켜버린 이 위대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미루고 싶었다.

그때는 무심함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내게 잘못을 묻는 아버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 비난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보았던 아버지가 옳았다고 확신한다. 완벽한 인간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정념이나 찰나의 욕망에 휘둘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 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 좀 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p.68-69)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자꾸 뒤로 미룬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잘못된 몰입이란 얘기다. 나는 여기에 나에게 일어났던 일, 내가 몰입한 일을 넣어보았다. 뭘 넣어도 맞아 떨어졌다. 내가 잘못했을 때도 그랬고 잘못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그랬다. 내가 잘못한 일, 아직도 여전히 후회하는 어떤 일들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나는 가족 앞에 떳떳하지 못했다. 가족에게는 숨기는 일이, 내게는 잘못된 일이었고, 나도 그게 잘못된 일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일을 밝히는 걸 뒤로 미루고 끝내는 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인생의 오점으로 남고야 말았다. 그러나 내가 내 사랑하는 가족을 잊지 않고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것 역시 계속 진행시켰던 일들, 그게 변함없이 유지되면서 몰입했던 것들도 있다. 가장 최근에 내가 사랑하는 이에 대해서 나는 누구에게도 숨김 없이 밝힐 수 있었고, 그렇게 밝히면서도 떳떳하게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공부도 마찬가지. 나는 내가 하는 공부가 어떤 것인지, 강의를 들으러 갈 때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사랑과 이 공부는 내가 나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데 그래서 도움이 되었다. 가족들도 친구들과 연인도 내가 어떤 것에 지금 신경을 쓰는지, 몰입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었기에 더 행복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 내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작은 순간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몰입이라면,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메리 셸리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입을 빌어 그것을 얘기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소중한 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을 빅토르도 사실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감각이 찾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몰입이 너무 커서, 자신에게 찾아온 '이건 아니지 않나'를 무시해버렸을 것이다. 나는 이 감각,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감각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하고, 유감스럽게도 이 감각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감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감각이 모두에게 있었다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많은 잘못된 일들, 틀린 일들은 지금보다 현저히 적게 일어났을 것이다. 성희롱부터 시작해서 강간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향한 범죄에 있어서도 그렇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 내가 타인에게 이런 말 혹은 이런 행동을 하는 거, 정확히 어떻게 설명할 순 없다 해도, 그 순간 감각적으로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가 찾아든다면, 우리는 말이나 행동에 앞서 주춤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괜히 떠오르는 게 아니란 거다. '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감각, 무척이나 소중하다. 만약 그게 떠올랐다면, 다시 생각해보고 그 말이나 행동은 삼키고 삼가는 게 옳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그렇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나는 페미니즘 감수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감수성의 저 가장 기본적인 바닥, 일단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감각이었다. '왜 안되는데?'라는 물음에 논리정연하게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도, 그저 본능적으로, 나도 왜그런지 정확히 이유는 댈 수 없지만, '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찾아든다면, 우리는 거기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 일에 대해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자신에게 찾아드는 감각에 귀를 기울였다면 -사실 그에겐 이 감각이 찾아드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뒤이어 일어나는 그 모든 불행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구, 그 잘못된 몰입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물을 만들었고, 그 괴물의 흉측한 모습에 그로부터 도망갔으며, 그를 세상에 그런 채로 풀어놓았고, 그것은 자신을 비롯한 여러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괴물'이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 



바로 여기에서 또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이, 빅토르가 그를 '괴물'이라 칭한 건, 단순히 그의 모습만 보고 그런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놓고서는, 아름답게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한 그 커다란 육체를 보고서는, 그와 말도 섞어보지 않은 채로 그를 괴물이라 칭한다. 이 세상을 처음 알게 되자마자, 태어나고 눈을 떠 빛과 자연을 인식하기도 전부터, 나를 만들어놓은 사람이 나를 괴물이라고 끔찍하게 여기며 나로부터 도망간다면, 그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괴물은 서서히, 창조주와 떨어진 곳에서 추위와, 불과, 자연과, 새와, 햇빛을 알게 된다. 그 모든 것들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사람들 속에 섞여들려 해보았지만 모두가 자신을 보면 비명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까닭에 섞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어느날 냇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고 절망한다. 그런 그는 어느 헛간으로 숨어들어 그곳의 인간들의 삶을 매일 엿보게 되는데, 그 인간들의 우아함, 사랑,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고 순수하게 감동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언어를 익히게 되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차라리 모른 채로 혼자 살았다면 나았을 것을, 그는 이제 아름다움과 사랑에 눈을 떠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그에게 가득차 버렸다. 아아, 나는 이 장면에서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의 자연스런 일상과 그 일상 속에 스며드는 예술-그것은 악기 연주이기도 하고 음악 감상이기도 할터이다-을 보고 순수하게 감동할 수 있다는 거, 이건 정말이지 얼마나 근사한가! 그러나, 그는 세상이 그를 괴물이 칭한대로, 괴물이 되었다. 그는 괴물이 되어서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가 토로한다.



"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아무리 애원해도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호의를 보일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당신의 선의와 연민을 갈구하는데도? 내 말을 믿어라,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 사막 같은 산맥과 음침한 빙하들이 내 안식처다. 수많은 날들을 여기서 방황했다. 얼음 동굴도 나는 두렵지 않다. 그러니 여기가 인간들이 불평하지 않는 내 유일한 거주지다. 이 황량한 하늘을 나는 반가이 맞는다. 저 하늘은 당신의 동포들보다 내게 훨씬 더 친절했다. 무수한 인류가 내 존재를 안다면, 당신처럼 무장을 하고 나를 파멸시키려 들 것이다. 그러니 나를 혐오하는 그들을 어찌 내가 증오하지 않겠는가?" (p.133)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리고 그 하나의 인간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구성되어진다. 유복한 환경, 사랑하는 식구들, 다정한 연인과 신뢰를 주는 친구가 있음에도, 누군가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기어이 하고야 만다. 어떤 이는 순수하게 자연과 사랑에 감탄하게 태어났음에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저주와 공포,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이 어떤건지 잘 아는 존재가, 한 생명을 만들어놓고 그 생명을 바로 그 자리에서 버려버린다. 그리고 혐오한다. 우리는 아주 손쉽게 사랑을 받은 자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그러한가? 어떤 환경이냐가 그 사람을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비단 환경만이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도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니까. 환경과 그 사람 본연의 성격. 이것들이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일테다. 그렇지만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감각을 어떻게 한 인간에게 찾아들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감각이 찾아들었을 때 거기에 귀 기울이는 것 역시,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렇게 살고자 하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걸까. 많이 읽고 듣고 말하고 쓰면서 훈련할 수 있는걸까?




절반만 읽었는데도 이 책은 이렇게나 좋다.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아마도 나는 이 책을 2017년 올해의 책으로 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 진짜 소설 너무 좋아 짱 좋아 최고되는 것이다!!! 이 책 한 권에 공포와 혐오와 윤리와 사랑이 다 들어있다. 메리 셸리는 천재되는 것이다!!! >.<




날이 너무 추운데 따뜻한 데서 따뜻한 차를 한 잔 앞에 두고 이렇게나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수 있다면 세상 행복할텐데..현실은 새벽같이 일어나 또다시 출근이지.... 제기랄...... 오늘은 무지방우유가 베이스인 '스노우돌체라떼'를 그랑데 사이즈로 텀블러에 담아왔다. 처음 마시고 아 맛있어, 좋아, 헬렐레 했는데, 절반쯤 먹고 나니 못먹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메리카노가 급 그리워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건 진짜 한 달에 한 번만 마시면 될듯. 당장 뛰쳐나가서 아메리카노 사오고 싶은 마음이야. 절박하다. 아메리카노, 겁나 원하고요.....




포털에 뜨는 기사나 짤 같은 걸 보지 않는 편이다.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daum)에 들어갔다면, 나는 곧장 메일을 확인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기사도 제대로 읽지 않고 그저 보이는 사진만 살짝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본래의 의도한 바가 무엇이든,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어제는 한 남자의 전완근... 을 보게 됐다. 얼굴을 안봐서 연예인 누구인지 모르겠는데...(김생민인가?) 전완근이 딱히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막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냥 그 부위가 처음 딱 보이는데, 아 또 너무 좋았어. 나는 전완근이 왜이렇게 좋지? 전완근은 정말... 아.... 나를 넘나 미치게 하는 것 같다. 어쩔 줄을 모르겠어. 전완근과 손이 주는 그 엄청난 매력에 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내게는 훌륭한 전완근이 없어서일까? 아니야 그런 것 같지 않아. 나는 손이 예쁜데도(응?) 손 예쁜 사람 보면 막 미쳐버릴 것 같아. 어제는 누가 자기 반지 샀다고 손 사진 올렸는데, 진짜 너무 예쁜 거다. 반지는 안예쁜데 손이 너무 예뻐서.... 아 너무 예쁘다....하고 한참을 봤다. 전완근과 손은 진짜 어휴.... 전완근과 손으로 유혹하면 나는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아. 그거슨 너무나 치명적인 것..... 전완근이 지금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전완근....아 넘나 좋아...... 넘나 두근거리는 것이야..... 전완근도 너무 보고싶고 아나스타샤도 보고싶고.... 인생 뭔지...... 아나스타샤..너무 예쁘지.....아나 스타샤...날 닮았어........여러가지로..................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그만두자. 어쨌든. 너무 예쁜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 넘나 좋아 ♡




그건 그렇고,

잘못된 몰입, 당당한 사랑...같은 거 페이퍼 쓰면서 얘기하다 보니, 로렌 크리스티의 컬러 오브 나잇 생각난다. 




all I want is just once to see you in the light

but you hide behind the color of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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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친구의 부재
    from 마지막 키스 2017-12-06 09:18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채워지질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 그 부재는 무엇보다 혹독한 불행으로 느껴지네요.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거릿 누님. 성공에 대한 열의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 환희에 동참해줄 이도 없고,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들을 종이에 적을 수야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을 소통하는 데는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공감 해줄 사람이 동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라보면
 
 
비연 2017-12-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보관함에 퐁당... 요즘 책 진도 안 나가는 연말인지라.... 아 언제 읽을 지 몰라도. ㅜ

다락방 2017-12-05 11:21   좋아요 0 | URL
비연님 이 책 너무 재미있어요. 계속 읽고 싶은데 제가 회사라는 게 넘나 싫어요. 흑흑 ㅠㅠ

단발머리 2017-12-0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그렇게나 좋군요. 저는 괴물-프랑케슈타인의 단어만 떠올라서 어쩐지 기괴하고 무서운, 그러면서도 슬픈 것 같은 예감을 가졌더랬는데,
다락방님이 올해의 책으로 할까보다~~에서 감동받습니다.
저도 읽어야겠어요. 우앗! 신난다~~~^^

다락방 2017-12-05 11:30   좋아요 0 | URL
많은 이야기들이, 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이 책속에 담겨있어요. 천재적인 작가인 것입니다. 제가 올해 뭘 읽었는지 일단 살펴봐야겠지만, 저는 이 책을 강하게 후보군에 놓습니다. 으하하핫. 절반 밖에 안읽어서 나머지 절반 얼른 읽고 싶은데 제가 직딩이라는 사실이 슬프네요.... 하늘에서 돈 좀 떨어졌으면........Orz

잠자냥 2017-12-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또한 문학이, 소설이 웬만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문예출판사 버전으로 사두고 읽지는 않았는데, 하루 속히 이 글을 보니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다락방 2017-12-06 13:38   좋아요 1 | URL
저는 아주 오래전에 헬레나 본햄카터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거든요. 아주 오래전이라 그저 괴물의 탄생쯤인가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이 괴물은 사랑과 박애를 아는, 제대로 감동할 줄 아는 존재였어요! 그를 괴물로 몰고간 건 그의 창조주와 그의 겉모습만 보고 그를 괴물로 칭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중간을 좀 넘어가면 그가 우연히 세 권의 책을 읽게 되고 거기에서 크게 지식과 감정을 알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진짜 너무 좋아요! 이 소설책 한 권에 다 들어있습니다, 잠자냥님!!
저는 소설이 가진 많은 것을 이미 알아챈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잠자냥님 처럼요!
:)

심술 2017-12-07 14:11   좋아요 0 | URL
저도 헬레나 본햄카터랑 로버트 드 니로 나온 <프랑켄슈타인> 스무 해도 전에 본 기억이 있어요.
다른 영화에선 늘 무시무시한 악당으로만 나오던 괴물을 추한 생김새 속에 담긴 고귀한 마음씨로 그려서 의아했지만 워낙 게을러 왜 감독이 괴물을 그리 그렸는지 찾아보지는 않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원작소설을 따라서 그런 걸 오늘에야 알았네요.
그러고보니 괴물을 악당으로만 그렸던 다른 영화들이 원작소설에서 벗어난 건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원작소설에도 괴물이 악당이려니 하고 살았군요. 부끄러워요.
방금 검색해 보니 그 1994년 <프랑켄슈타인> 감독이자 빅터 역을 맡은 배우이기도 한 사람이 케네쓰 브라나네요.
요새 상영하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도 감독이랑 주인공 포와로 역을 맡은 바로 그 사람.

심술 2017-12-07 14:14   좋아요 0 | URL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다락방님이 전완근과 함께 좋아하시는 아나스타샤가 누굽니까?
방금 인터넷 검색했는데 아나스타샤가 하도 많아서 어느 아나스타샤인지 모르겠어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마지막 차르의 딸인 아나스타샤, 가수 아나스타샤, 일본 애니 캐릭터 아나스타샤, 러시아 테니스 선수 아나스타샤 미스키나...

다락방 2017-12-07 14:19   좋아요 0 | URL
저는 근데 헬레나 본햄카터 나온 프랑켄슈타인 내용이 잘 기억나질 않아요. 거기서 괴물이 고귀한 마음씨를 가진 걸로 나왔던가요? 몇몇 장면만 드물게 기억나서... 하핫.
책 너무 재미있어요, 심술님. 이게 이런 내용이구나, 감탄하며 읽었어요. 소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진 그런 소설이네요. 읽어보시라고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아, 그리고 아나스타샤!!
저는 그간 여기에 꾸준하게 글을 써왔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따로 페이퍼 쓰면서 뭔가 추가할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요, 전완근과 함께 언급된 아나스타샤는, 그러니까, 심술님의 댓글에 언급된 사람들중 그 누구도 아니구요. 하하하하하. 대답하기 몹시 부끄럽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여자주인공 ‘아나스타샤‘ 입니다. 배우 이름은 ‘다코타 존슨‘ 이고요, 멜라니 그리피스의 딸이라고 하네요. 전 이 아나스타샤가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예쁘고 막 매력적이고. 으하하핫. 사실 전완근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러니까 전완근과는 뜬금없이 나란히 쓴겁니다. 아하하핫. 어쩐지 부끄러워서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7-12-08 14:38   좋아요 0 | URL
브라나 감독 헬본카,로드니 주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보기엔 흉하지만 선량한 인물이다가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버림받고 분노의 화신이 되는 걸로 그리죠.
제가 본 <프랑켄슈타인> 영화들 가운데 소설원작이랑 가장 비슷했던 걸로 기억해요.
기회 잡아 원작소설도 읽어봐야겠네요.

댓글 읽고 나니 락방님께서 <그레이 그림자> 얘기 서재 곳곳에서 쓰셨던 게 비로소 생각나네요.
맞아, 그 아나스타샤 스티일도 있었지.
다코타 존슨은 멜라니의 달이기도 하지만 히치콕 감독 <새>의 주연이었던 티피 헤드렌Tippi Hedren의 손녀기도 하죠.
멜라니가 티피 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