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save me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채워지질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 그 부재는 무엇보다 혹독한 불행으로 느껴지네요.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거릿 누님. 성공에 대한 열의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 환희에 동참해줄 이도 없고,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들을 종이에 적을 수야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을 소통하는 데는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공감 해줄 사람이 동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라보면 눈빛으로 화답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사랑하는 누님, 제가 낭만적으로 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친구의 부재를 쓰라리게 절감합니다. 제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온화하면서도 용감하고, 교양을 갖추었으되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저와 취향이 같고, 제가 세운 계획을 인정해주거나 수정해줄 만한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p.24)


















이 책의 1/3정도를 남겨두고 있고 할 말이 아주 많은데, 오늘은 일단 저 '친구'에 대해서 얘기해야겠다. 이 편지를 누님에게 보낸 '로버트 월턴'은 선원을 모아 긴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열심히 선원을 모으고 항해를 준비하지만, 자신과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어 심한 외로움과 부족함을 느낀다. 그는 그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부터 메리 셸리가 너무 좋았는데, 이 작가는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던 거다. 대화를 나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 참에 로버트는 빅토르를 구조하게 되고, 그와 절친한 벗이 되어 그로부터 괴물을 만들어낸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책은 진행된다.


'메리 앤 섀퍼'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에도 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된다.



하지만 소피, 대체 나는 뭐가 문제인 걸까? 내가 너무 까다롭니? 나는 그저 결혼하기 위한 결혼은 싫어.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 혹은 더 나쁜 경우에는 침묵을 나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다고 생각해. -구판, p.18-19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위에 로버트 월턴이 말했던 것처럼 아주 많은 것을 함께한다는 걸 의미한다. 한쪽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주고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기운을 내도록 으쌰으쌰도 해주고 인생의 계획을 들어주는 것. 이 모든 게 다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인데,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절실하다는 것을 로버트 월턴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대화가 통화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얼마나 기쁠까.



어제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서 함께 술을 마셨다. 이 셋의 구성으로는 처음 갖는 술자리였는데, 어색할 틈도 없이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들어주었다. 게다가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대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직장일부터 시작해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 여자로서 직장내의 위치에 관한 것, 페미니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고, 아아, 다른 사람들이랑은 잘 할 수 없는 독서! 독서에 대한 것! 우리는 책, 소설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었던 거다. 소설은 얼마나 좋은지, 소설이 얼마나 많은 걸 줄 수 있는지를 흥분해서 얘기했던 것. 그러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 처음 함께 술을 마신 친구1은 자꾸 뭔가를 사주고 싶다, 술이 깰만한 무언가를 꼭 사주고 싶다며 스타벅스에 가자 말했고, 그렇게 스타벅스에 갔지만 문을 닫았어... 결국 지하철 역으로 향했는데, 서로 집에 가면서 단톡방 만들어서 각자 느낀 이 흥분을 전했다. 다들 너무 좋다는 얘기였다. 지하철역에 함께 걸으면서도, 너무 좋다, 우리 또 만나자, 우리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자, 이런 얘기를 했는데, 친구1은 술자리에 점점 빠지게 됐던 상황에서 이 즈음에 이렇게 좋은 술친구를 만날 수 있을줄은 몰랐다며 크게 기뻐했다. 나도 너무 흥분해가지고 좋다 좋다 했는데, 셋이 만든 단톡방에서 아주 그냥 다들 흥분하고 기분 좋아가지고 갔다. 아하하하하. 우리가 같은 것에 분노하고(우리는 엄청 분노해 얘기하기도 했다), 같은 것에 신나할 수 있다는 거 너무 좋았고, 다들 술 마시고 먹는 것도 좋아해서, 셋이서 와인 세 병 마시고 취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값을 엔분의 일 하기로 했지만, 엔분의 일가격도 높게 나왔다.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페미니즘과, 먹고 사는 것과,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라니. 세상 소중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톡방을 만들어서 서로 흥분하는 거 너무 좋고. 우리가 사이사이 분노하기도 했지만 결국 술을 마시면 유쾌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좋았다. 



친구1은 어제 나한테 목소리 너무 좋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우 같다고 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고맙다며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씐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목소리 좋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목소리 좋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싫어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목소리 좋다는 말 들으면 참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러분 나 목소리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이 얘길 트윗에 썼더니, 다른 친구가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너 전화 목소리는 더 좋다고 얘기하지 그랬어'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전화 목소리는 더 좋은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뭐 그렇다는 나 잘난척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훗.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은데, 그건 다 읽고나서 다음 페이퍼로 하기로 하자. 여러분 프랑켄슈타인이 정말 좋다 짱좋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메리 셸리 너무나 짱되는 것....





어제는 갑자기 제이슨 므라즈의 Lucky 노래가 생각났는데, 

제이슨 므라즈, 당신 진짜 행운아네.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지다니. 하는 마음이 되었던 거다.

이 가사에서 높이살 점은,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 보다도,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진걸 스스로 lucky 라고 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자기가 가진 게 뭔지 아는 거 너무 중요하고, 그걸 잘 파악하는 거 정말 소중한 재능이다.

위에 로버트 월턴은 진정한 친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고 했는데,

제이슨 므라즈는, 내가 베스트 프렌드랑 사랑에 빠지다니 정말 행운이야, 라고 말한다.

세상엔 이렇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아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또 자기가 가진 게 얼마만큼의 행운이고 축복인지 인지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I′m lucky I′m in love with my best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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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12-0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소설에 저런 글귀가 있었군요.
오래 전 읽어 기억이 가물^^
침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더없는 다행이라
생각되네요. 대화보다 더욱 친밀한!
아침부터 제이슨 므라즈 노래에 기분 좋아져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7-12-06 13:32   좋아요 0 | URL
저는 저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같이 살기로 약속한 약혼자한테 몹시 실망해서 저런 편지를 친구에게 쓰죠.
대화와 침묵을 나눌 수 있다는 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커다란 축복이에요, 프레이야님.

:)

단발머리 2017-12-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친구가 필요하죠.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아버지의 유산> 140쪽에 ‘나‘(필립 로스죠^^)가 친구에게 전화를 해요. 전화를 해서는 아버지가 이렇게 아프다, 아버지가 약해진 모습을 보는게 힘들다, 내 이야기는 아버지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친구는 섣불리 위로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말을 받아주고요.
맨 위에 인용해주신 박스 보니까 그 친구가 딱 그런 사람인 거예요.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사람.....

제가 다락방님 첨 만났을 때도, 제가 다락방님 고운 목소리에 뿅~~~ 갔더래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12-06 13:3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맞아요, 친구는 엄청 중요한 것 같아요.
메리 셸리는 그 점을 알고 있는 작가라서 너무 좋아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가는 거 너무 중요하고,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한 것 같아요.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주고, 함께 웃어주고, 미래의 계획에 귀를 기울여주는 친구, 너무 소중하지요. 너무 소중한 존재라 쉽게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으흐흐흐. 단발머리님도 제 목소리에 뿅 가신 분이시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는 왜 목소리가 좋아가지고 사람 여럿 뿅가게 하는가 몰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공개 2017-12-0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시고 글도 잘쓰시고 목소리도 넘나 좋은 다락방님.. 오늘 페이퍼 참 따뜻합니다. 프랑켄슈타인 사러 가야겠습니다. 읽을 시간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사서 옆에 두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7-12-06 13:36   좋아요 0 | URL
아니, 오늘은 제 칭찬데이 입니까? 두 줄의 댓글에 제 칭찬 엄청 많이 들어있어요!! >.<
얼쑤~

해장은 하셨는지요. 저는 점심에 햄버거 따위를 먹어서 몹시 우울해요. jsshin 님은 맛있는 거 드시고 컨디션 좋아지셨기를 바랍니다. 후훗.

비공개 2017-12-06 15:03   좋아요 0 | URL
저는 콩나물해장국을 먹었답니다. 햄버거를 드실수 있었다면 ‘술도 세신’을 덧붙여야 겠어요. 저는 아마... 햄버거집 근처에도 못갔을듯 합니다 ㅜㅜ

다락방 2017-12-06 16:08   좋아요 0 | URL
저는 당연히 햄버거로 해장하고 싶지 않았으나 ㅠㅠ 제 보직상 어쩔 수 없이 저에게 오늘 햄버거가 닥쳐와서....부득이하게 ㅠㅠ 이렇게 되었어요. 저도 콩나물국밥을 원합니다.
술도 세다뇨... 저도 어제 엄청 취했는데요. ㅎㅎ

psyche 2017-12-0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슨 므라즈의 럭키 제가 좋아하는 곡이네요.
남편 전화 링톤을 이 곡으로 지정했더니 아이들이 으윽 닭살이라고 난리쳤었던...
베스트 프렌드와 사랑에 빠지는 건 럭키한게 맞는데 결혼해서 같이 사는것도 럭키인지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ㅎㅎ

다락방 2017-12-06 14: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노코멘트 답변에 웃습니다 프시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럭키 노래 좋아해요. 한동안 엄청 반복해서 들었었어요. 어제 오늘 여러가지 음악들을 생각나는대로 듣고 있는데, 제이슨 므라즈의 럭키도 그 중 한 곡이에요.
베스트 프렌드와 사랑에 빠지는 건 럭키한 게 맞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후훗.

psyche 2017-12-06 16:06   좋아요 0 | URL
요 위에 햄버거 드셨다고 쓰셨길래.. 미국에서는 햄버거로 해장해요. 락방님은 미쿡 스타일! ㅎㅎ

다락방 2017-12-06 16:09   좋아요 0 | URL
해장은 당연히 라면으로!! 하고 싶습니다. ㅎㅎ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햄버거를 먹을 수밖에 없었어요. 햄버거 먹는데 소스가 너무 많아서 막 손이며 입에 묻어가지고 ㅎㅎㅎㅎㅎ 아 여러가지로 좋지 않은 식사였어요. ㅎㅎ